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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떠나는 이유! (렘 2:1-13)

하나님을 떠나는 이유! (렘 2:1-13)  
 


이혼을 하려는 부부가 가정 법원을 찾아가 판사 앞에 나란히 섰답니다. 판사가 부인에게 “왜 이혼을 요구하십니까?”라고 묻자 부인이 이렇게 대답했답니다. “남편이 코를 골기 때문입니다.” “그래요? 결혼한 지 얼마나 됩니까?” 판사가 묻자 부인이 “3일 됐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판사가 더 이상 묻지 않고 이렇게 판결을 내렸답니다. “이혼을 승인합니다. 그 사람 아직 코를 골 때가 아닙니다”


참 걱정입니다. 이혼율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2000년 자료입니다만 한 해 33만 4030쌍이 결혼했는데 11만 9982쌍이 이혼을 했답니다. 3쌍 당 1쌍이 이혼하는 꼴이고 하루에만 329쌍이 이혼을 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이것은 지난 10년 사이에 무려 10배가 증가한 것이랍니다.

결혼식 주례사에 단골로 등장하는 멘트가 있습니다. “검은 머리 파 뿌리 될 때까지...” 죽을 때까지 해로하라는 권면의 말이죠. 그 말대로 죽을 때까지 이 사랑 변치 않겠다고 다짐하며 결혼했습니다. 결혼 서약하면서 단골로 묻는 멘트가 있습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사랑하며 살겠습니까?” 신랑신부가 목청 높여 대답했습니다. “네!”

그런데 그 다짐, 그 약속을 세 쌍 중 한 쌍이 깨뜨리고 있는 것입니다. 깨는 사람도 물론 아프겠지만 당하는 사람이야 오죽 고통스럽겠습니까? 그 배신감, 그 버림 받은 아픔이야 겪어보지 않는 사람은 상상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정말 큰 불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문장 형태상 법정에서 제시되는 고발장 형태입니다. 이혼 소송에서 일방적으로 당한 사람이 제기하는 고발 내용 형식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일방적으로 버림을 당하셔서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그 내용을 고발하는 형식입니다.

본문 2절에 보면 “광야에서 어떻게 나를 좇았음을 내가 기억하노라” 말씀했습니다.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할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치 청순한 새색시처럼 순수한 사랑으로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사랑하며 따랐다는 것입니다. 저 광야에서 허니문 시절을 보냈었다는 것입니다.

본문 2:4을 보면 “나를 멀리하고 허탄한 것을 따라 헛되이 행하였느냐”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마음이 변해서 하나님 아닌 다른 대상을 기웃거리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비교할 수 없는 허탄한 것을 사랑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척 자존심이 상하셨다는 것입니다.

본문 2:11을 보면 “어느 나라가 그 신을 신 아닌 것과 바꾼 일이 있느냐 그러나 나희 백성은 그 영광을 무익한 것과 바꾸었도다”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다 아예 하나님 아닌 것과 살겠다고 나섰다는 것입니다. 이혼하자고 덤벼들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버림 받으신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너무 화가 나셨습니다. 그래서 9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여전히 너희와 다투고 너희 후손과도 다투리라” 하나님께서 가만 두지 않겠다고 벼르고 계신 것입니다.

부부가 세월이 지날수록 그 사랑이 더 깊어져야 합니다. 그래야 행복합니다. 반대로 세월이 지날수록 사랑이 식어서 별거하느니 황혼 이혼을 하느니 하면 그 인생이 정말 불행합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월이 지날수록 그 믿음이 더 깊어져 하나님과 보다 깊이 있게 동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인생이 복됩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날수록 그 믿음이 약해져 하나님을 떠나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그 인생이 정말 고달픕니다.

오늘 본문을 깊이 있게 살펴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점점 하나님의 곁을 떠나게 된 이유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반면교사를 삼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월이 지날수록 점점 더 하나님 곁으로 가까이 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왜 하나님을 떠나게 됐을까요?


첫째, 하나님의 사랑을 잊었기 때문입니다.

본문 2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네 소년 때의 우의와 네 결혼 때의 사랑 곧 씨 뿌리지 못하는 땅, 광야에서 어떻게 나를 좇았음을 내가 너를 위하여 기억하노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시절을 회고하고 계십니다.

우선 “네 소년 때의 우의를 기억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할 당시에는 아직 민족적으로나 국가적으로 기틀이 잡히지 않았고 제도도 엉성했습니다. 그래서 네 소년 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때 저들이 순수한 마음으로 죽마고우처럼 하나님과 깊은 우정을 나누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점을 기억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결혼 때의 사랑을 기억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역사적으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본격적으로 특별한 관계를 맺기 시작한 것이 바로 출애굽 때입니다. 그래서 이 때의 특별한 관계를 결혼 초의 그 설레는 시절로 비유하셨습니다. 이 때 이스라엘 백성이 갓 결혼한 신부처럼 하나님만을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점을 기억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때 저들이 광야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광야는 그야말로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입니다.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땅이요, 먹을 물도 구할 수 없는 사막이요, 사람이 머물러 거할 수 없는 불모지입니다. 그 때 이스라엘 백성이 이렇게 척박한 땅 광야에 있었지만 그래도 하나님을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그 힘겹던 시절 저들이 주님의 그 크신 사랑을 받았습니다. 주님께서 반석을 쳐서 물을 내셨습니다. 매일 아침 만나를 내려주셨습니다. 밤에는 불기둥으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보호해 주셨고 또 인도해 주셨습니다. 저들이 전무후무한 각별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 때 저들이 그 어떤 때보다 주님을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가나안 땅에 들어온 뒤에 저들이 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복된 땅을 주셨습니다. 농사도 지을 수 있게 됐습니다. 가축도 기르고 살 수 있게 됐습니다. 좋은 땅에 집도 짓고 정착하며 살게 됐습니다. 자기들 말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살게 됐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보답하며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을 떠나게 된 것입니다. 저들이 그 힘겹던 시절 하나님의 사랑을 잊었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전직 대통령 부인 세 사람 포드, 카트, 부시 대통령 부인이 TV 대담 프로에 함께 출연한 일이 있습니다. 사회자로부터 백악관 시절에 무엇이 가장 기억에 남느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포드 부인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남편이 대통령 취임 직전에 기자 회견을 하면서 ‘내가 일생 빚을 진 사람은 내 아내뿐입니다’라고 한 말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부시 부인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남편이 대통령 후보로 지명을 받았을 때 수락연설 도중 한 말을 잊지 못합니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언제라도 돌아올 가정이 있기 때문에 행복합니다’”
대통령이 된 후에 그동안 어려울 때 곁에서 도와준 아내의 사랑에 감사할 줄 알았던 그분들 미국인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계속 미국인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이 된 후에 백악관에서 아내 아닌 다른 여자와 사랑을 나눈 사람도 있습니다. 그 아내의 눈에 피눈물을 흘리게 한 사람도 있습니다. 미국인의 마음에 큰 상처를 남겼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큰 사랑을 받고 살아온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없이 오늘의 우리는 있을 수 없습니다. 어렵고 힘들 때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를 여기까지 인도하셨습니다. 이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힘들었던 시절 주님께 간절했던 그 마음을 기억하고 계시다는 점입니다. 그 때 우리가 하나님께 드렸던 그 서원을 기억하고 계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시절 그 마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 시절 그 서원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상황이 변했다고 마음도 변해서는 안 됩니다. 이제 좀 살만해 졌다고 서원을 버리면 안 됩니다.


둘째, 바람이 났기 때문입니다.

본문 2:4을 보면 “허탄한 것을 따라 헛되이 행하였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허탄한 것이란 히브리어로 헤벨(lbh)이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바람, 허무” 그런 뜻입니다. 그리고 헛되이 행했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하발(lb'h;)이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바람처럼 허무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람에 속아 바람을 따르다가 바람처럼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말에 바람이라는 말은 정말 다양하게 쓰입니다. 자연 현상 그대로 봄바람, 강바람, 하늬바람, 마파람 등으로 쓰이는 것은 물론입니다. 여기에 사람들의 행동거지에 일어나는 이상행동을 바람이라 표현하기도 합니다. 신바람, 춤바람, 늦바람, 치맛바람 등을 들 수 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세상 풍조를 가리킬 때도 바람이란 말이 쓰입니다. 세풍이니, 총풍이니, 노풍이니, 박풍이니 하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압권은 바람났다고 하는 말입니다. 지고지순한 아내와 남편 사이의 사랑 말고 또 다른 사랑이 부지불식간에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그 사랑이 바람처럼 잠깐 있다가 사라지기 때문인지, 바람처럼 언제 어디서 오는지 몰라서인지, 사람의 마음을 바람처럼 뒤흔들어 놓기 때문인지 바람이라고 부릅니다. 이 바람에 미쳐서 일부러 바람을 쫓는 것을 바람 피운다 라고도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람이 났다는 말입니다. 더 적극적으로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과 눈이 맞아 바람이 나서 하나님을 떠났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바람피우고 다닌다는 말입니다.

사사기에 보면 바람난 남자 이야기가 나옵니다. 바로 삼손입니다. 저가 블레셋 땅 딤나라는 곳에 갔을 때 한 여인에게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얼마 후 블레셋 땅 가사에 가서 한 기생에게 마음을 빼앗겨 또 다시 바람이 났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블레셋 여인 소렉 골짜기의 들리라와 눈이 맞아 바람이 났습니다.

삼손의 인생은 한 마디로 “바람, 바람, 바람”이었습니다. 블레셋 여인에게 마음을 빼앗겨 바람이 났습니다. 그 결과 그 인생도 바람처럼 허망하게 끝이 나 버렸습니다.

삼손이 왜 바람이 났을까요? 블레셋 여인을 바라봤기 때문입니다. 경건한 여인들의 수수함에서 볼 수 없는 요염함, 섹시함에 마음이 뒤 흔들렸습니다. 그 마음에 억누를 수 없는 바람이 일었습니다. 그 바람에 나실인의 거룩함도, 사사의 존귀한 사명도, 하나님의 백성이 지켜야 할 계명도 다 날아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우리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 각종 바람이 붑니다. 그 바람에 휩쓸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 바람을 이겨야 합니다. 나아가 그 바람을 잠재워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너는 어느 곳에 있든지 주를 향하고 주만 바라볼찌라” 찬양하듯이 한 눈 팔지 말고 주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셋째, 말씀을 듣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본문 2:8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제사장들은 여호와께서 어디 계시냐 하지 아니하며 법 잡은 자들은 나를 알지 못하며 관리들도 나를 항거하며 선지자들은 바알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무익한 것을 좇았느니라”

당시 상황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우선 제사장과 법 잡은 자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스라엘의 종교를 이끌어가야 할 종교 지도자들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지 않았고 심지어 하나님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관리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백성을 돌보고 이끌어야 할 정치 지도자들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하나님을 거역했다 것입니다. 그리고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대신 바알의 이름으로 예언을 했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의 말씀의 기근입니다. 암 8:11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찌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바로 예레미야 당시가 그랬습니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의 가장 근원적인 문제가 됐던 것입니다. 저들이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이유도 바로 이것입니다. 저들이 바람에 쉽게 휩쓸렸던 이유도 바로 이것입니다. 말씀이 없기 때문입니다.

시 1편을 보면 복 있는 사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특히 2절을 보면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복 있는 사람은 그 심령 속에 말씀이 충만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3절을 보면 마치 수채화 풍경처럼 그림 하나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시냇가에 나무 한 그루가 서있습니다. 그 잎사귀가 늘 푸릅니다. 때마다 풍성하게 과실을 맺습니다. 보는 사람의 마음이 시원합니다. 풍성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그 심령에 풍성한 사람은 바로 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성지 순례를 하다보면 광야에 죽은 것같이 여기 저기 서 있는 나무를 볼 수 있습니다. 싯딤 나무인데 나무가 까맣습니다. 먼지를 잔뜩 뒤집어썼습니다. 잎사귀가 가시처럼 생겼습니다. 그런데 살아있기는 합니다. 물론 열매는 볼 수 없습니다.

보는 사람의 마음이 답답합니다. 그 심령에 여호와의 말씀이 없는 사람의 삶이 이렇다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심령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풍성하시기를 바랍니다. 그 말씀이 우리 심령을 풍성케 해 줍니다. 우리 심령을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살게 해 줍니다.

스승의 날이라고 어떤 분이 조그만 화분을 선물하셨습니다. 이끼와 함께 돌 위에 심겨진 풍란 화분입니다. 이 화분은 난이 돌 위에 심겨져있어서 쉽게 마릅니다. 그래서 아침저녁으로 물을 뿌려주어야 합니다. 하루만 물을 뿌려주지 않아도 이끼가 바싹 마르고 난도 시들합니다. 그래서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심령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지속적으로 공급 받아야 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풍성해야 우리 심령이 열매를 맺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설교를 경청하시기 바랍니다. 성경 말씀을 늘 가까이 하시고 읽으시기 바랍니다. 힘들더라도 Q.T.를 매일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의 심령 가운데 풍성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떠난 이야기입니다. 이혼 직전이 부부 관계처럼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관계가 깨지지 직전입니다. 우리에게 이런 일이 생겨서는 안 되겠습니다. 우리는 정말 금슬 좋은 부부처럼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려면 하나님의 사랑을 잊지 말고, 세상 바람에 휩쓸리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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