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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빌 2:1~4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빌 2:1~4
이름 김광일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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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허드슨(Hugh Hudson)이 감독한 영화 불의 전차(Chariots Of Fire)는 1924년 파리 올림픽을 배경으로 한 영국 육상선수들의 이야기입니다.

휴 허드슨(Hugh Hudson)이 감독한 영화 불의 전차(Chariots Of Fire)1924년 파리 올림픽을 배경으로 한 영국 육상선수들의 이야기입니다. 영화에는 두 주인공이 소개됩니다. 한 사람은 유대인 고리대금업자의 아들로 명문 케임브리지 대학생 해롤드 아브라함(Harold Abraham)이고 다른 한 사람은 스코틀랜드 선교사 에릭 리델(Eric Liddell)입니다. 두 사람은 육상을 사랑했지만 방법이 달랐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서 승부에 집착하면서 의무감으로 달렸습니다. 그러나 리델은 하나님이 기뻐하심을 믿고 달렸습니다. 자유은총을 받은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리델이 달리는 모습을 보면서 저 친구는 야생 짐승처럼 달려. 저 친구를 보면 기운이 빠져라고 중얼거렸습니다. 리델은 목표를 향해 달리는 힘이 위로부터 내려온다면서 오직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마음으로 달렸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달리는 사람’ (God's Joyful Runner)이라고 불렀습니다. 두 사람은 각각 100미터와 400미터에서 금메달을 획득하였습니다. 후에 아브라함은 법률가, 영국 체육회 원로로 활동하다가 사망했습니다. 그러나 리델은 중국 선교사로 나갔다가 일본군 포로가 되어 수용소에서 영양실조로 죽었습니다. 죽어가면서 그는 말했습니다. “하나님, 끝까지 순종할 수 있어 기쁩니다.” 리델은 온전히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기쁨 그 자체였습니다.

복음성가 나 주님의 기쁨 되기 원하네를 부릅니다. “나 주님의 기쁨 되기 원하네 내 마음을 새롭게 하소서 새 부대가 되게 하여 주사 주님의 빛 비추게 하소서 내가 원하는 한 가지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 내가 원하는 한 가지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 겸손히 내 마음을 드립니다 나의 모든 것 받으소서 나의 맘 깨끗케 씻어 주사 주의 길로 행하게 하소서 내가 원하는 한 가지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 내가 원하는 한 가지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우리가 소원하는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충분한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본문 4절에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감옥에 갇힌 바울의 마음을 무겁게 한 것은 빌립보 교회의 분열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사랑도 있고 열심이 있었는데 하나가 되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바울은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사랑의 공동체가 될 것을 당부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는 길이 되기 때문입니다. 1절에서 4절까지 나오는 본문의 주동사는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는 단어입니다. 바울은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고 명령하지만 사실은 자신의 기쁨보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하나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는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마음은 몸보다 훨씬 더 중요합니다. 잠언 423절은 모든 지킬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켜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떠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까?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본문에 하나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는 마음들이 나옵니다.  어떠한 마음으로 행해야 합니까?
 

첫째로 하나된 마음으로

두 사람이 버스 안에서 심하게 다투고 있었습니다. 좁은 공간에서 다른 승객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소리를 높이고 있었습니다. 함께 타고 있던 다른 승객들이 얼마나 불편하겠습니까? 한 중년의 승객이 참다못해 다음 정거장에 내리면서 다투던 사람들에게 소리를 쳤습니다. “여기가 교회인줄 알아?” 교회가 세상 사람들에게 다툼의 장소로 인식된 것은 극히 슬픈 일입니다. 세상에서의 큰 다툼은 작게 보이지만 교회에서는 작은 다툼이라도 크게 보이는 모양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작은 다툼이라도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말하는 것이 드러나는 것이듯이 드러나는 것이 보이는 것입니다.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지만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하나 되는 마음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본문 2절입니다.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한 마음은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입니다. 그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그래야 같은 뜻이 나오며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믿는다면서 그리스도의 마음이 아닌 인간의 마음을 품고 있다면 어찌 하나가 되겠습니까? 교회는 같은 마음, 같은 뜻을 가진 이들이 모인 곳이어야 합니다. 자신의 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교회에 들어온 사람은 결코 같은 말을 할 수 없으며 반드시 분란을 일으키게 되어 있습니다. 그들 때문에 당파가 생기고 분쟁이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분쟁에 휩쓸리지 않도록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기에 힘써야 합니다.

같은 사랑으로 하나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사랑 없이 하나가 되는 것은 의무에 의한 것이기에 응집력이 없습니다. 의무에 의해 모인 공동체는 하나가 된 공동체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일을 잘하는 것도 보시지만, 한 마음으로 하나 되는 것을 더 기뻐하십니다. 상대가 나와 생각이 다르고 시각이 다르고 입장이 달라도 하나 되는 마음으로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부디 하나된 마음으로 하나님의 충만한 기쁨이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겸손한 마음으로

미국의 린든 존슨 (Lyndon B. Johnson)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고 고향에 돌아갈 때 전용 비행기를 타고 갈 수도 있었지만 기차를 택했습니다. 그리고 비서를 시켜 기차표를 살 수도 있었지만 직접 나가 줄을 서서 표를 사는 그의 모습이 보도되었습니다. 전날 까지 세계를 움직이던 사람이 기차표를 사려고 줄을 서서 기다리는 모습을 본 많은 사람들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낮아지면 부딪힐 일이 없습니다. 낮아지면 언제나 어디서나 평안합니다. 낮아지면 존경을 받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에게나 만나고 싶은 사람으로 사셨습니다. 신분이 낮아서 열등의식을 가진 사람에게는 나는 목수의 아들이다, 너는 괜찮다고 하십니다. 외모가 못생겨서 고민하는 사람에게 나는 볼품도 없고 풍채도 없다하십니다. 학력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에게 나는 배운 것이 없다고 하십니다. 물질 때문에 괴로워하는 자에게 나는 집도 없었지. 너는 괜찮아하십니다. 예수는 만나는 사람마다, 자신은 낮추시고 상대를 높였습니다. 그러기에 모두가 예수를 만나고 싶어 했습니다. 누구든지 만나고 싶어 하는 겸손한 마음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겸손한 마음을 품을 때 하나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할 수 있습니다.

본문 3절입니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남게 여기고육체에 속한 사람은 어디를 가나 시기와 분쟁을 일으킵니다. 그러나 성령의 사람은 무슨 일이든지 다툼과 허영으로 하지 않습니다. 여기의 아무 일에든지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교회 일이든지, 직장 일이든지, 가정 일이든지, 나라 일이든지, 모든 일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남을 낫게 여긴다는 것은 계속해서 존경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경외하듯이 서로 복종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남을 낫게 여기는 마음을 가질 때 비로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높이면 그만큼 기쁨이 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을 높이고 다른 사람은 낮추고 무시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과연 어떠합니까? 자신이 높아지려는 마음은 아닙니까? 다른 사람을 높일 때마다 그 기쁨은 배로 커집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돌보는 마음으로

가족찬송 경연대회에서 어느 집사가 찬송을 부르다가 가사가 틀렸습니다. 교인들이 깔깔대고 웃었고 집사는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자리에 돌아와서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바로 이어 담임목사 가정이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런데 목사도 가사를 틀리게 불렀습니다. 교인들은 다시 깔깔대고 웃었고, 사모님과 자녀들은 왜 틀렸느냐?”고 핀잔을 주는 얼굴로 목사를 힐끗 쳐다보았습니다. 어느 날, 그 목사가 과로로 쓰러져 돌아가셨습니다. 장례를 마치고 장로들이 유품을 정리하다가 일기장을 발견했습니다. 일기 가운데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714, 교회 가족찬송 대회가 있었다. 김 집사가 찬송을 부르다 틀려서 교인들이 다 웃었는데 김 집사가 너무 무안해했다. 분위기가 이상해지는 것 같아, 그 다음 차례로 우리 가정이 찬송 부를 때 나도 일부러 틀려주었다. 다시 교인들은 깔깔대며 일제히 웃었다. 그때 슬쩍 김 집사를 쳐다보니 목사님도 가사를 틀릴 수 있구나!’ 라고 생각하고 안도하는 것 같았다. 오늘도 작은 일로 한 영혼에 위로를 줄 수 있어서 기쁜 하루였다.” 그 일기를 읽고 장로들은 한 바탕 울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마음은, 남의 수치를 가려주려고 나의 수치를 넉넉하게 받아들이는 마음입니다. 남의 허물을 오래 기억하고 들추어내는 마음은 불행한 마음이고, 남의 허물을 안 보려고 하고 금방 잊어버리고 덮어주려는 마음은 행복한 마음입니다.

본문 4절입니다.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돌보는 마음은 다른 사람이 맡은 일을 잘못하면 대신해서 감당하려는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일을 잘못하는 사람들을 비난하기에 앞서 대신 짐을 져주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돌보는 마음이요 하나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는 모습입니다.

섬김은 다른 이의 사정과 형편을 돌보는 마음입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판단합니다. 문제가 보이면 비판부터 먼저 합니다. 그러나 비판하기 전에 도울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 하나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는 마음입니다. 아무리 오랫동안 교회를 다녔어도 교회일이나 다른 성도의 일에 관심이 없다면 참된 그리스도인이라 부를 수 없습니다.

월간 잡지 좋은 생각에 실린 나비가 꽃을 사랑하듯이라는 제목의 시입니다. “사람들은 꽃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향기를 뿜기 위해 꽃을 대량 학살하고 향수 냄새를 뿌리면서 꽃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사람들을 꽃병이라는 것을 만들고 꽃병에 꽂아두기 위해 싹둑 자르면서 꽃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때로 우리는 한 꽃에서 벌과 만나는 일이 있지만 우리는 싸우지 않고 꽃을 사랑하는데, 사람들을 자기 혼자 가지려고 다투면서 꽃을 사랑하는 마음을 자랑한다. 사람들은 열매 맺는 일은 조금도 도와주지 않으면서 익기가 무섭게 열매를 탐한다. 꽃이 한없이 주면서 말없이 웃는 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 사랑하면서 열매 맺기를 도와준다. 우리는 사랑한다는 말 이상으로 말없이 사랑한다.” 시인이 본 세상, 말로는 그럴듯하게 말하지만 뒤에서는 온갖 음모와 거짓으로 가득 찬 세상을 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시인은 꽃 사이를 날고 있는 나비를 보면서 사랑한다는 말은 없지만 순수하게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돕고 나누고 있는 진실을 보면서 인간도 저와 같을 수 없을까 생각한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자기의 기쁨과 만족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에게 기쁨을 주고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려는 자를 찾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충만한 기쁨이 되기 위해 힘써야 할 것입니다. 세상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하나가 되어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는데 하물며 교회가 그렇지 못하다면 이미 정체성을 잊어버린 것이 아닙니까?  교회는 웅장한 건물이 상징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교인들이어야 합니다. 교인이 바로 설 때 바른 교회가 될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는 바울의 외침은 교회가 교회다워지는 것이요, 성도가 성도다워지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회가 교회다워지고, 성도가 성도다워질 때 비로소 세상에 기쁨을 줄 수 있으며 하나님의 충만한 기쁨이 될 것입니다.

모름지기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충만한 기쁨이 되어야 합니다. 부디 다투지 말고 자기를 버리고 하나 되는 마음을 품으시기 바랍니다.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마음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자기 일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일도 돌보는 마음을 가져 하나님께 충만한 기쁨을 드리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5-10-17 17:48: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