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기뻐하라(빌 4:1-7)
2014. 7. 20. 설교자 : 권혁길 목사
하나님은 우리가 기뻐하는 삶을 사는 것을 원하신다. 마치 자녀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지켜보시면서 행복해하는 부모님의 심정과 같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항상 기뻐하라고 권면하신다. 사실상 항상 기뻐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사는 것이 인생의 본분이다.
빌립보서의 총 주제가 기쁨이라 할 정도로 바울은 기쁨을 강조하고 있다. 빌립보서를 기록하는 시점과 장소가 바울이 감옥에 갇혀있는 때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기뻐할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이었을까?
1. 모든 사람과의 관계개선을 통하여 기뻐할 수 있다.(1)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 바울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로 생각을 했다.
모든 사람을 가족이라는 개념을 보았다. 가족은 사랑할 수밖에 없는 한 형제들이다. 우리도 하나님의 같은 형상을 따라 같은 영으로 지음 받은 사람들이다. 그리고 같은 예수님의 보혈로 형제관계가 이루어진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따뜻한 온정을 품어야 할 같은 형제들이다.
* 같은 형제이므로 사모하고 사랑해야 한다.
우리는 같은 형제이기 때문에 서로 사랑하고 사모해야 할 대상이지 생존경쟁을 위하여 적대감을 갖거나 경쟁할 대상이 아니다.
* 나의 기쁨이며 면류관과도 같이 내게는 귀한 존재들이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고 섬김으로 기쁨을 누릴 수 있다. 내가 남을 해코지하고 괴롭히면서 내가 즐거울 수 없다. 오히려 그를 섬기고 기쁘게 함으로서 그들의 기쁨이 내 기쁨이 되고 그들의 행복이 나의 행복이 되는 것이다.
* 모든 사람이 나에게는 축복의 통로가 되어야 한다.
내가 그를 섬김으로서 그가 나에게는 기쁨이 되고 나에게는 면류관이 되는 것이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이 나의 대적이나 원수가 아니고 내가 싸워 이겨야할 치열한 경쟁자가 아니라 내가 그를 섬김으로 내가 복을 받게 되니 그는 곧 나의 기쁨이며, 면류관으로서 축복의 통로인 것이다. 단 나의 형제로서 내가 그를 섬기고 사랑할 때만 가능하다.
* 세상 모든 사람들은 내가 하기에 달려있다.
내가 그를 미워하면 그도 나를 미워할 것이고, 내가 그를 싫어하면 그도 나를 싫어할 것이다. 내가 그에게 슬픔을 주면 그도 나에게 아픔을 줄 것이다. 반면에 내가 그를 사랑하고 축복하면 그도 나를 사랑하고 축복할 것이다. 내가 그를 사랑하고 섬기며 기쁨을 준다면 그도 나에게 기쁨을 줄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항상 기뻐하는 삶을 살아가려면 나의 주변 사람들을 사랑하는 형제관계로 관계를 유지하면 된다. 나의 삶에 기쁨과 슬픔은, 나의 주변 사람들과의 인간관계가 어떠하냐에 달려있다.
2. 같은 마음을 품을 때 기뻐할 수 있다.(2-3)
『[2]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3]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 같은 마음을 품으라는 것은 상부상조하라는 것이다.
빌립보 교회에는 유오디아와 순두게라는 충성스러운 두 여자 성도가 있었다. 이들은 바울 사도의 사역 초기부터 함께 수고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어떤 일로 인하여 마음이 하나가 되지 못하여 본인들은 물론 보는 사람들과 주변 사람들이 힘들었고 목회자인 바울에게도 큰 부담이 되었다.
* 이처럼 마음이 하나가 되지 못하면 사역이나 삶에 기쁨이 없다.
무엇보다 가까이 있는 사람과(부부, 가족, 성도, 친구, 이웃) 마음이 하나가 되지 않는다면 매우 불편 할뿐 아니라 기쁨이 없다. 특별히 교회 안에서 마음이 하나가 안 될 때에 가정에서 다른 것으로는 기쁨이 있으나 사역에는 기쁨이 없는 경우가 있다. 매우 슬픈 일이다. 무엇보다 교회에서의 사역의 기쁨을 최고의 기쁨으로 삼아야 한다. 그러므로 같은 마음을 품어야 한다.
* 주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상대편을 내 마음의 기준에 맞추려고 하지 말고, 내가 상대편의 뜻을 이해하고 그의 마음에 맞추어주면 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내 마음도 버리고 네 마음도 버리고 예수님의 마음을 기준하면 가장 이상적이다.
그래서 바울은 빌 2:1-5절에서 아주 중요한 말을 했다.
『[1]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2]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4]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러면 예수님의 마음은 어떤 마음인가? 빌 2:6-8절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 상대가 내 마음에 안 들더라도 주의 일을 하는 사람들을 돕는 것이 곧 기쁨이 된다.
바울은 3절에서 누구인지는 알 수 없으나(에바브로 디도, 혹은 바울의 아내?) 자기와 멍에를 같이한 사람에게 부탁하기를, 마음이 하나가 안 되는 유오디아와 순두게를 돕고, 글레멘드와 그 외에 바울의 동역자들을 도우라고 권면했다. 이처럼 비록 성격은 좋지 못하고 아직 마음이 하나가 되지 않아 불협화음이 있더라고 그러나 주의 일을 힘쓰는 저들을 도우라는 것이다. 그럴 때에 기쁨을 누리게 된다.(기쁨 제조기)
3. 관용할 때 기뻐할 수 있다.(5)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관용 ejpieikhv" (에피에이케스) 온순한, 온유한, 친절한, 참을성 있는, 성격이 좋은,
* 요즘 유행하는 말로 표현한다며, 까칠한 사람이 있다.
까칠한 사람은 기쁨을 누릴 수 없다. 원문의 의미와 같이 온순한, 온화한, 온유한, 친절한, 참을성 있는, 성격이 좋은 사람 사람들이 기뻐하는 삶을 살 수 있다.
* 특히 우리 기독교인들은 관용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사소한 일로 극단으로 치닫지 말아야 한다. 악의와 고집을 버리고 넓은 이해와 너그러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 즉 좋은 성품을 가지고 친절하게 대할 때 상대편도 물론이지만 자신에게도 기쁨이 있다.
* 주께서 가까우시니라는 말씀을 기억하라.
무슨 뜻일까? 예수님이 가까이 계시면서 우리가 슬퍼하는 삶과, 기뻐하는 삶을 다 보고 계시며 반면에 남을 슬프게 하고 아픔을 줄 때, 머지않아 속히 오셔서 심판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항상 기뻐하며 즐거운 삶을 살아야 한다.
4. 염려대신 기도할 때 기뻐할 수 있다.(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아야 한다.
염려 merimnavw (메림나오) 염려하다, 걱정하다,
사람들은 주로 의식주 문제와 생사 문제로 염려한다. 그러나 염려나 걱정은 자신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염려 그 자체가 하나님께 대한 불신이다.
* 그러므로 염려대신 기도와 간구를 해야 한다.
염려의 해독제는 오직 기도뿐이다.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우리의 구할 것을 하나님께 구하라. 즉 염려가 되는 그 문제를 하나님께 기도하라. 그리하면 염려가 변하여 기쁨이 된다.
*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우리의 기도와 간구에는 필연적으로 감사가 따라야 한다. 염려되는 문제를 하나님께 기도로 맡길 수 있음을 감사하라. 기도할 수 있는 시간과 환경을 주심을 감사하라. 기도와 간구를 드릴 때 응답해 주실 것을 인해서 감사하라.
* 그리할 때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킨 신다.(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하나님은 지혜와 능력이 뛰어나신다. 우리의 어떤 문제도 해결 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분이시다. 그러므로 염려가 되었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염려 그 자체를 평강으로 바꿔주신다.
평강 eijrhvnh (에이레네) 평화, 복지, 번영, 안식, 안정, 만족, 흡족, 염려 없음,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염려할 필요가 없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염려와 걱정과 근심을 해결해 주시고 평강을 주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다. 십자가를 지시기전에 힘차게 외치셨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 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고... 십자가 위에서 운명하시기 직전에 또 다른 말씀으로 외치셨다. “다 이루었다”라고 ... 주님의 그 은혜와 하나님의 크신 사랑으로 인하여 우리가 아무것도 염려하지 않고서도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이 시간 염려스러운 어떤 문제가 있는가?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아뢰라고 하신 이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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