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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설교/김필곤목사

우리는 항상 홀로가 아닙니다/딤후4:9-18

우리는 항상 홀로가 아닙니다/딤후4:9-18

 

일본에 '히키코모리'가 유행한다고 합니다. 방안에만 콕 박혀 있는 '방콕족' 소위‘은둔형 외톨이’들입니다. 일본 인구 1억 2000만명중 1%에 해당하는 120만명이 히키코모리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것이 사회문제화 되고 있어 일본에서는‘히키코모리 퇴치’운동을 벌인다고 합니다. 우리 나라도 상당히 있다고 합니다. "외로워 외로워서 못살겠다"는 것입니다. 혼자라는 사실을 못견디어 정신병에 든 사람들을 주변에서 우리는 보게 됩니다. 사회학자 리즈먼(Riesman, D.)은 '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많은 사람들 속에 있는 것 같지만 인간은 근본적으로 외롭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외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엘리야도 다윗도, 욥도 오늘 성경에 나오는 바울도 외로울 때가 있었습니다.
바울이 오늘의 편지를 쓸 때는 중년을 지나 노년에 이르렀을 때였습니다. 아니 노년보다는 자신이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 때였습니다. 4장 6절을 보십시오.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 죽음의 순간이 다가 온 것입니다. 순교의 제물로 자신이 드려질 때가 가까이 온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지금 있는 곳은 어디입니까? 1:8, 16을 보십시오. 로마의 감옥입니다. 1차 투옥 이후 잠시 풀려나 복음을 전하였으나 갑자기 잡혀가 감옥에 갇힌 것입니다. 네로 황제의 박해로 외롭고 추운 감옥에 갇혀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를 쓰는 것입니다. 주님을 위해 결혼도 하지 않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한평생 사신 어른이십니다. 이제 백발이 성성하여 조금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편히 쉬시다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을 때입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원로 목사가 되어 대접도 받고 많은 사람으로부터 존경을 받으며 조금은 편안하게 사실 때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삶은 그렇지가 못하였습니다. 죽음의 순간에 이르기까지 복음 때문에 감옥에 갇혀 있어야 할 형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바울 선생님을 더 외롭고 쓸쓸하게 만들었던 것이 무엇일까요?
1) 같이 일했던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버림받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동역자들이 바울을 떠나갔습니다. 4장 10절을 보십시오. 데마는 세상을 사랑하여, 그레스게, 사랑하는 아들처럼 생각했던 디도마저 떠나 버렸습니다.(딛 1:4) 감옥에서 가장 어려운 때입니다.
2) 어려운 상황에서 도와주기는커녕 몹시 괴롭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구리 세공을 하는 알렉산더는 바울에게 해를 끼쳤습니다. 4장 14절을 보십시오. 핸슨은 이 구절을 "나에 대해 많은 악한 것들을 밀고했으며"라고 해석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주석가들은 이가 바로 바울이 두 번째 체포되는데 결정적인 밀고자였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였든 그는 바울을 심히 대적하였습니다.
3) 그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누구로부터도 도움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재판을 받는 위기에 처했을 때 그를 변호해 주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16)
현대어 번역 "내가 처음 재판관 앞에 끌려 나갔을 때 나를 변호해 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모두가 나를 버리고 가버린 것입니다."

바울은 노년에 너무도 외롭고 쓸쓸했습니다. 혹 이런 소외감과 이런 외로움에 처하신 분은 없습니까? 나만 남았구나? 아무도 나를 도와주는 사람 없구나? 어제 김정문집사님이 책을 보내와서 읽어 보았더니 58세에 부도가 나니까 아무도 돕는 사람이 없었다는 내용을 보았습니다. 사람은 어쩔 수 없습니다. 무엇인가 있을 때는 주변에 많은 사람이 있는 것 같지만 내가 자신들에게 짐이 된다고 생각하면 자식도 부부도 싫어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욥의 부부를 보십시오. 동방에서 최고의 부자였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재산을 다 잃어 버리고 자식들은 다 사고로 죽고 욥은 심각한 질병 악창에 걸렸습니다. 이 때 부인이 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욥2:9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키느뇨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남편도 귀찮은 존재입니다. 빨리 죽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40년 동안 입법 행정 사법권을 한 손에 쥐고 휘두른 다윗 역시 어려움을 당하니까 따르던 사람들이 배신합니다. 그 때 그는 "시25:16 주여 나는 외롭고 괴롭사오니 내게 돌이키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심지어는 예수님도 마찬가지 일을 당하였습니다. 십자가를 지시자 다 도망갔습니다. 막14:50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이런 때 어떤 감정이 들겠습니까? "나는 쓸모 없는 사람이 되었구나? 나와 함께 하는 사람이 없구나? 나는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이구나? 다 쓸데없어, 결국 혼자 가는 거야"라는 생각을 합니다. 기독교 심리학자 크레이 엘리슨 이럴 때 느끼는 외로움을 세 가지 유형으로 설명합니다. ① 정서적 외로움을 느낍니다. 정서적으로 완전히 혼자다는 느낌을 갖습니다.
② 사회적 외로움을 느낍니다. 목적이 없고 막연하고 공허하다고 느낍니다. 고립되어 있으며 삶의 변두리에 있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아무 쓸모 없는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③ 실존적 외로움을 느낍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았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1. 왜그렇습니까?
다 떠난다 하여도 주님께서 함께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17)
사람은 자신의 이익에 맞지 않으면 배신하고 따돌립니다. 정작 내가 필요할 때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모든 사람들로부터 따돌림받고 외로워 할 때, 우리 곁에 끝까지 계시는 분이십니다. 사람은 때가 되면 다 떠납니다. 아내도 남편도 자식도 부모도 때가 되면 우리 주변을 다 떠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떠나시지 않으십니다. 사람들이 왜 외롭고 고독합니까? 홀로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홀로가 아닙니다. 죽음의 순간까지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눈물 흘리는 골짜기에도, 실패와 절망 가운데 울부짓는 순간에도, 승리의 환호에 젖어 있는 순간에도 우리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바울이 고린도에서 고난을 받을 때(행18:9-10) 함께 하셨고, 바울이 공회에서 잡혀 죽음의 위험에 처했을 때(행23:11)도 함께 하셨으며 파선의 위험을 당했을 때(행27:23) 함께 하였습니다. 엘리야가 홀로 있다고 생각할 때 하나님이 함께 하였습니다. 다윗이 음식 먹을 기력까지 잃었을 때도 하나님은 다윗과 함께 하였습니다.(시102:1-7) 모세가 실패하여 광야에 쫓겨나 절망가운데 처했을 때도 하나님은 모세와 함께 하였습니다. 야곱이 형을 속이고 도망자로 불안과 초조에 떨고 있을 때에고 하나님은 야곱과 함께 하여 주었습니다. 우리는 어떤 순간에도 혼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이 우리의 고통의 현장에 외로움의 현장에 실패의 현장에 함께 있습니다. 이 사실을 잘 아는 다윗은 시32에서 "내가 비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해받음을 두려워 아니함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사업을 하면서 나 홀로 남았다고 생각하며 홀로 외롭게 싸워 가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 있습니까? 가정에서 남편도 아내도 자식도 부모도 나의 외로움 나의 고통을 몰라준다고 생각하시는 분 계십니까?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를 환영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시는 분 있습니까? 나만 외롭게 홀로 신앙 생활하신다고 생각하시는 분 계십니까? 아닙니다. 항상 우리 곁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바울과 함께한 하나님, 다윗과 함께한 하나님,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함께하신 하나님, 모세와 함께하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얼마나 커다란 희망입니까? 내가 걷고있는 이 삶의 여정에서 오늘의 고통이 아무리 심각하고 오늘의 방황이 아무리 어렵고 오늘의 좌절이 아무리 눈물겹다 하더라도 하나님만 떠나지 않으신다면 두려워 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우리는 홀로가 아니다
주님께서 약속해 주시고 있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20)"

2. 그러면 우리 곁에 서 계신 주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그저 외로움을 홀로 감수하도록 고통을 홀로 안고 살도록 관망하시는 방관자이십니까? 아니면 우리의 고통과 외로움을 보고도 어쩔 수 없으신 무능한 분이십니까? 성경을 보십시오.

1)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여 우리에게 힘을 주십니다.(17)
곁에 서서 방관하시는 것이 아니라 힘을 주십니다. 능력을 주십니다. 오늘의 문제를 해결할 만한 능력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외로워하고 소외감을 갖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게리콜린스 외로움의 심리적 원인을 ① 낮은 자존심(자신을 과소 평가) ② 의사소통 능력 부족(대화) ③ 자멸적 태도, 적의 ,두려움 등이라고 말합니다.
사람은 능력의 부족 때문에 소외당하고 외로워합니다. 힘이 없을 때, 재력이 없을 때, 능력이 없을 때 소외당하고 따돌림받습니다. 돈 있으면 아버지 입원하면 뻔질나게 찾아갑니다. 그러나 사업 망하고 돈 없으면 빨리 돌아가셨으면 하는 것이 인간들의 악한 모습니다.
박지만 씨의 이야기가 신문에 보도될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봅니다. 언젠가 그분은 "벙어리라도 좋으니 누구라도 함께 살 수만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왔다"고 검찰조사 과정에서 말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결혼이지만, 그에게 호감을 가진 여자는 없었다고 한다.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익명성]이 보장되는 사창가를 찾았고, 여기서 마약에 손을 대게 됐다고 합니다. "마음 편하게 대해준 사람은 사창가 여자들뿐이었다"는 그의 고백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외로움을 근원적으로 풀어 줄 대상을 만나지 못하였습니다. 돈, 사람, 명예, 권력으로 인간의 외로움이 근본적으로 풀릴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초가 삼간에서도 만족할 수 있고, 실패의 현장에서도 질병의 고통에서도 새 힘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힘을 주십니다. 외롭지 않도록 능력을 주십니다. 외로움을 해결할 만한 능력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문제를 해결할 만한 능력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체험한 사람입니다. 행9:22 다메섹 도상에서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명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을 굴복시키니라"라고 했습니다.
살전2:2 "너희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먼저 빌립보에서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으나 우리 하나님을 힘입어 많은 싸움 중에 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말하였노라"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새 힘을 얻습니다.(사40:27-31) 하나님이 힘을 주시면 어떤 경우도
(1)곤비치 않고 피곤치 않습니다.(31) 힘을 다 잃고 죽기를 자청하기까지 하였던 엘리야 40주야를 달리 수 있는 새 힘을 얻었습니다.(왕상19:1-8) 울 기력이 없을 정도로 맥이 빠졌던 다윗이 (삼상30:40)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을 때(삼상30:6) 이틀을 계속 싸울 새 힘을 얻어습니다.(삼상30:17)
(2)고난 능욕 많은 싸움에서도 하나님의 일을 계속 할 수 있습니다.(17,살전2:2)
(3)그들이 하는 일을 마침내 완성합니다.(17,시84:7)
하나님이 힘을 주셔서 결국 하나님의 일을 이루게 만듭니다. 모두가 다 바울을 버리고 갔을 찌라도 하나님이 친히 바울과 함께 있어 바울에게 힘을 주어 결국 바울에게 맡기신 일을 다 이루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내 힘으로 하려고 할 때 지치고 외롭습니다. 내 힘으로 하려고 할 때 실패하기 쉽습니다. 하나님의 힘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도우시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도저히 풀리지 않은 문제들이 신비하게 풀립니다. 홀로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무능력하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힘의 근원이신 하나님이 있지 않습니까?

2) 함께 일할 사람을 붙여 주십니다(11,12,)
사람이 어려움을 당하면 다 떠나 버리는 것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함께 일할 사람을 붙여 주십니다. 다 떠나 버린 것 같지만 누군가 남아 있습니다. 바울의 주치의입니다. 자신의 일에 유익한 마가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에베소에 보내어 자신 대신 사역을 할 신실할 두기고가 있습니다. 홀로 방안에만 앉아 있으면서 나는 홀로다 나는 홀로다라고 생각하며 방콕족이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이 들수록, 실패할수록, 잃어버릴수록 남겨 놓은 자, 남은 것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남겨 놓은 자들이 있습니다. 엘리야가 자기 혼자만 남았다고 하나님께 죽여 달라고 합니다. 그 때 하나님은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천 인을 남기리니 다 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아니하고 다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왕상 19:18)"라고 말씀합니다. 실패한 모세가 바로에게 갈 수 없다고 했을 때 입술이 둔하다고 거절했을 때 하나님은 네 형 아론이 있다고 말씀했습니다. 요셉이 홀로 팔려가는 것 같았지만 하나님은 보디발을 준비시켜 놓았고 보디발의 아내와 술맡은 관원장, 떡맡은 관원장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우리는 보디발의 아내같은 사람은 왜 만나야 하는가 생각할 수 있지만 하나님은 요셉을 위해 준비해 놓았습니다. 만약 그 아주머니를 만나지 않았다면 감옥에 갈 수 없었을 것이고 감옥에 가지 않았다면 왕을 만나게 하는 관원장을 만나지 않았지 않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우리의 비전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열망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붙여 주셔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게 하십니다.

3) 일을 주어 사명을 이루게 하십니다.(17-18)
해야할 일과 사명이 있는 한 사람은 외롭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노년의 바울을 통해 하실 일이 있었습니다. 전도의 말씀이 온전히 그로 말미암아 전파되어 이방인들이 돌아 오게 하시기를 하나님은 원한 것입니다. 바울은 확실한 간증이 있었습니다. 이 일을 하게 하기 위해 과거 하나님께서 사자의 입에서 건져 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미래 모든 악으로부터 보호해 주시고 영원한 천국에 이르도록 보장해 주실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바울은 어떤 자세로 일했습니까? 4장 7-8을 보십시오.
(1) 그는 선한 싸움에 진력했습니다. 욕심을 위한 투쟁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한 선한 싸움에 일생을 투자한 것입니다. 이것은 죽음의 순간까지 졸업장이 없습니다. ①반대 세력과 싸웠습니다. 유대인들의 율법, 로마인들은 법, 헬라인들은 문화를 자랑하였습니다. 바울은 나무 십자가를 자랑하였습니다.(고후11:23-27) 때로는 옥에 갇힘, 39대의 매 5번, 태장 3번, 돌에 맞아 죽을 뻔 함, 세 번의 파선, 강도의 위험, 동족, 이방인의 위험 등을 당했습니다.
②자신과의 싸웠습니다.
롬7:19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 도다"
23절 "내 지체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 잡아 오는 것을 보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도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라고 절규하였습니다.
③질병과 싸움웠습니다.
그에게 육체의 가지가 있었습니다.(고후12:7) 기도하였습니다. "네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자고 하지 않도록 평생 주었습니다.
(2) 그는 이 싸움에서 믿음을 지켰습니다. 믿음으로 승리하였습니다.
(3) 오직 이 땅의 영광이 아니라 주님 만난 그 날에 주실 부르심의 상을 바라보았습니다.

외롭습니까? 홀로라고 생각합니까?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낄 수 없습니다. 바쁜 사람 자기 일에 몰두하는 사람에게는 외로움이라는 이끼가 낄 수 없습니다. 바쁜 꿀벌에게는 슬퍼할 시간이 없다고 합니다. 사명을 이루는 사람에게는 외로움은 사치일 수밖에 없습니다. 인생이란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당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내게 맡겨준 사명을 따라 사는 길입니다. 리빙스턴은 정글에서 수많은 난관과 위험에 직면할 때마다 "하나님의 뜻이 내게 이루어 지기 전까지 나는 죽지 않는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인생은 너무 짧습니다 자기연민 속에서 고독을 느끼면서 자기를 학대하고 자기 감상속에 빠지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습니다.
고독하십니까? 외롭습니까? 홀로라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께서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힘이 없고 능력이 없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포기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힘을 주십니다. 베토벤은 보청기를 사용해도 들을 수 없을 정도 귀가 먹었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 고독을 극복하고 제9번 "영광의 합창"을 작곡했습니다. 윌러 스코트는 어려서부터 절름발이었지만 세계적 작품을 만들었고 디즈니랜드 세문 월트 디즈니는 젊은 시절 교회창고에 절망의 나날을 보내었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 속에서 미키 마우스를 그려 디즈니랜드를 만들었습니다. 로버트 스티븐슨은 14년간 앓아 누워있으면서도 "보물섬"을 썼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능력을 주십니까? 성경은 말씀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 4:1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막 9:23)"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에게는 이미 세상을 움직일 수 있는 믿음이 있고 능력의 통로 기도가 있습니다. 아무도 나를 돕는자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의 눈으로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십시오.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칠천 명을 준비해 놓았듯, 요셉에게 보디발과 술맡은 관원장을 예비해 놓았듯 우리 앞길에 함께 일어설 사람을 준비해 놓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말씀합니다.
사58:11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마른곳 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네 뼈를 견고케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