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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설교/김필곤목사

우리는 후반전이 더 좋은 가정이 되게 할 수 있습니다.룻기4:13-17

룻기4:13-17

 

많은 사람들에게 할렐루야 건강법을 소개하고 계시는 삼손한의원 원장이고 원광대학교 교수인 손인경 박사의 간증을 읽어보았습니다. 대대로 신앙 생활하는 가정에서 태어났는데 대학을 졸업하고 삼손 한의원을 개원했다고 합니다. 삼손처럼 건강하라는 뜻으로 지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삼손이 드릴라의 유혹에 넘어진 것처럼 자신도 넘어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한의원은 연일 문전성시를 이루었고,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손님이 붐볐다고 합니다. 자신도 기독교인이 가장 빠지기 쉬운 함정 `돈의 노예'가 되어 버렸답니다. 어려서부터 신앙생활을 해왔기에 신앙이 습관화 형식화된 부분이 있어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주일성수를 해야 한다는 생각은 가졌지만 십자가 보혈이 가슴에서 뜨겁게 믿어지지 않았고 성령 충만의 은혜를 사모하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주님이 기뻐하지 않을 행동을 하면서도 그것이 죄라고 느껴지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배기량 3천㏄짜리 외제차를 구입하고 주식투자를 시작하고 땅 투기에도 나섰답니다. 골프를 배워 아마추어로 68타까지 기록했다고 합니다. 주일날 골프 하러 가는 경우가 자주 생겼고 주일성수의 중요성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필드의 달콤한 유혹을 뿌리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세상이 온통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았답니다. 그것이 마냥 행복한 가정, 행복한 삶의 모습같이 보였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가 곁길로 가는 것을 가만히 보고만 계시지 않았답니다. 사업을 크게 하는 집안형님이 있었는데 보증을 서주었는데 30억 부도가 나 하루아침에 모든 재산을 잃어 버렸답니다. 엎친대 덮친 격으로 1997년 부활주일 아침 아들이 전신에 3도 화상을 입어 피부가 흐물거릴 정도가 되어 중환자실에 입원하게 되었답니다. 그 때 그는 정신이 들어 차가운 병원 복도에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했답니다. “하나님, 제발 아들을 살려주세요.잘못은 제가 했는데 왜 아들에게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하나님의 살아계신 것을 보여주시면 정말 주님을 열심히 섬기는 일꾼이 되겠습니다”교회를 다닌다고는 했지만 형식과 겉치레만 그리스도인이었던 자신, 주일을 밥먹듯 어기고 영적인 것보다 세상을 더 사랑했던 자신을 하나님이 사랑의 매를 드신 것을 깨달았답니다. 쓰리고 아팠지만 이 매는 주님을 감격적으로 만나게 해주는 거듭남의 통로가 되었답니다. 병원 의사는“화상이 너무 심해 피부이식수술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잘못하면 패혈증으로 전이돼 생명까지 위독하구요.흉터는 각오하셔야 하고 회복이 되더라도 상당기간 치료를 하셔야 합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의 기도를 응답해 주셨답니다. 정확히 아들은 35일만에 퇴원했고 흉터 하나 없이 해맑은 예전 모습 그대로를 간직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당시 의사들도 기적이라고 입을 모았다고 합니다. 이때서야 그의 견고하던 교만과 아집의 탑은 모래성처럼 허물어졌답니다. 주님이 바로 지금 자신과 함께 하시며 역사하신다는 사실이 가슴으로 믿어지며 회개의 눈물을 쏟아내었답니다. 믿어보려고 노력해도 믿어지지 않던 사실들이 가슴이 벅찰 정도로 확신이 되었답니다. 그 때 그분은 기도했답니다. “주님.이 시간 예전의 손인경은 사라지고 새로운 손인경이 태어납니다.주님을 위해 진정 헌신,봉사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그 후부터 자신의 삶은 완전히 변했습니다. 후반전이 좋은 인생이 시작되었습니다. 농어촌 오지와 개척교회를 하느라 건강을 돌보지 못하는 어려운 목회자들에게 약을 지어드리고 누구나 관심을 갖는 한방건강법강의에 복음을 담아 전도하는 일에 나섰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놀라웠답니다. 2년 간 6백 50여명의 목사님에게 건강을 위해 무료로 한약을 지어드리고 할렐루야건강법을 창안해 1백 20여회의 강의를 했답니다. 한달에 30여명의 농어촌 가난한 목회자들을 무료로 진료해 주고 약을 지어준다고 합니다. 그는 고백합니다. 내 힘이나 노력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자신 안에 역사하시는 성령님께서 힘과 능력을 주어 모든 것을 감당하게 하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지나온 인생보다 지금은 얼마나 행복하고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멋진 인생, 아름다운 인생, 생동감있는 인생, 가치있는 인생으로 변했습니다.
혹 무기력하게 신앙생활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맞이 못해 교회에 다니는 분은 안계십니까? 내 가정, 내 인생은 실패한 인생이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시지 않습니까? 왜 우리가정인 이 모습이냐고 한탄하며 사시는 분은 안계십니까? 낙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절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소망이 있습니다.

1. 하나님은 우리를 훈련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 안으로 들어오게 하여 우리의 가정, 우리의 인생은 후반전이 더 좋아지게 만듭니다.(13, 14)
아무리 우리가 어렵다고 해도 고통스럽다고 해도 오늘 성경에 나오는 나오미만큼 힘들고 어렵겠습니까? 나오미는 흉년을 만났습니다. 우리의 가정도 뜻하지 않게 어느날 건강의 흉년, 물질의 흉년, 인간관계의 흉년, 영적이 흉년을 만난 수 있습니다. 흉년이 있다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없는 가정이 어디 있겠습니까? 끊임없이 죽는 날까지 문제는 우리 주변에 있습니다. 나 자신이 문제 덩어리이게 때문입니다. 공동 묘지에 가면 문제가 없습니다. 문제는 그 문제를 어떻게 풀고 어떻게 바라보며 사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푸는 사람이 있고 자기 중심으로 푸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 중심으로 푸는 사람은 항상 욕심과 세상 풍속이라는 두 날개로 문제를 풉니다. 나오미 가정은 시련의 연속은 하나님 중심으로 풀지 못한데에 있습니다. 흉년을 피해 하나님께서 가지 말라고 한 땅 모압으로 흉년을 피해 떠납니다. 두 아들을 이방 여인과 결혼시킵니다. 결국 남편도 잃고 자식들도 잃었습니다.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고난의 연속,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처절히 무너졌습니다. 한 때 신앙이 좋은 가정인 듯합니다. 나오미의 남편은 엘리멜렉(1:2)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왕이시다는 뜻입니다. 한 때 그의 가정은 베들레헴에서 유지였던 것 같습니다. 그의 처 나오미가 베들레헴에 돌아 왔을 때 성읍의 화제거리가 되었고(19) 그의 친척 보아스가 상당한 지위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보아 짐작할 수 있습니다(2:1). 꿈을 갖고 결혼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좀더 잘 살려고 이민을 갔는데 모압 땅에 이주한지 10년 만에 모든 것을 다 잃어 버렸습니다. 남편도 잃고 자식 둘도 잃고 재산도 다 잃어 버렸습니다(21).
그런데 우리 하나님께서는 나오미의 가정을 말년에 회복시키는 것을 봅니다. 나오미 말년에 보아스가 며느리 룻과 결혼하여 아들을 낳은 것입니다. 자신의 기업을 이어받을 자를 낳은 것입니다. 웃음을 주었습니다. 가계를 있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기대를 갖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이스라엘 중에 유명한 자가 될 것을 희망하게 하였습니다. 소망을 갔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상처를 딛고 일어서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우리 가정은 다 끝났다 내 인생은 종쳤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인생은 9회 말에도 홈런을 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돌봄의 은총입니다(13,14). 다른 그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그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실 때 전혀 불가능한 일들이 해결되고 절망이 소망으로 바뀌어 버립니다. 여호와께서 하신 것입니다(18번 반복). 하나님은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그 손으로 고치시나니"(욥5:18)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호 6:1)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룻을 축복해 주었습니다. 좋은 남편을 만나게 했습니다. 오벳이라는 아들을 주었습니다. 룻을 만남으로 보아스가 복을 받게 했습니다. 룻 때문에 나오미가 복을 받습니다. 룻 때문에 베들레헴 사람들이 기뻐하게 합니다. 룻이 낳은 자손 가운데서 다윗이 베들레헴에서 태어납니다. 그리고 이 베들레헴에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십니다. 민족이 복받게 합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은혜 안에 들어온 한 가족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면 불가능할 것이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다 끝났다고 생각할 때 아들이 생깁니다. 한나가 자신의 인생을 절망 속에서 살 수 밖에 없는 존재라고 통곡할 때 하나님은 사무엘을 주십니다. 모세가 젊음을 다 잃어 버리고 광야에서 초라한 목동으로 살아갈 때 그의 후반전 인생을 기적적으로 바꾸어 버립니다. 하나님이 하시면 홍해가 갈라집니다. 여리고성이 무너집니다. 나인성 과부의 아들이 살아납니다. 질병으로 엉망이 된 가정이 회복됩니다. 과거 죄악의 수치로 사람을 피해 대낮에만 물을 길러 오는 여인이 자유함을 받습니다. 마지막 음식을 먹고 죽으려는 부자에게 그치지 않는 기름과 가루가 나오게 됩니다. 하나님이 끝났다고 하기 전에는 끝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후반 인생을 더 아름답게 사용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후반전 인생을 더 빛나게 사용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의 후반 인생을 더 영향력있게 사용하였습니다. 경기는 전반전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닙니다. 후반전이 더 중요합니다.

2. 하나님은 고난 속에서도 은혜의 도구를 통하여 우리의 가정은 후반전이 더 좋아지게 만드십니다.
사람이 아무리 어려움을 당해도 하나님은 항상 은혜의 도구, 남은 자를 남겨 놓습니다. 나오미는 모압에 가서 다 잃은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치신 것으로 생각을 했습니다(1:13). 이제 다 끝났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이제는 나오미라 칭하지 말고 마라라 칭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괴롭게 했다는 것입니다(1:20,21). 누구나 이런 상황을 맞이하면 이런 고백을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나오미 가정을 역전시킬 나오미의 인생을 반전시킬 은혜의 도구를 남겨 놓았습니다. 1장 16절을 보십시오. 다 떠나버렸습니다. 그러나 룻만은 남겠다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가는 곳에 죽어도 가겠다는 것입니다. 일사 각오입니다(17). 왜 그렇습니까?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원리입니다. 어떤 이익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어머니를 따르겠다는 것입니다.
나오미의 가정, 나오미의 인생이 후반전이 좋아진 것은 먼저는 하나님의 사람 룻이라는 여인으로 인해서입니다. 참으로 이런 며느리가 될 줄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습니까? 모압여인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원수처럼 생각하는 여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오미의 가정에 복을 주시기 위해 룻이라는 여인을 보내주었습니다. 노년의 봉야자 생명의 회복자 룻이라는 여인을 보내 주어 아들을 낳게 하였습니다(13,15,16).
어떤 고난이 다가 온다하여도 그 속에 하나님은 믿는 자들에게 은혜의 도구를 숨겨 놓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말씀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 8:28)" 모든 것 가운데는 고통도, 이별도, 사별도, 이혼도, 질병도, 부도도, 실패도, 실수도, 잘못된 선택도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선용하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결코 최후가 비참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 가서 영광과 존귀를 받을 것입니다. 때로는 고통은 우리를 경성하게 만들고 그 은혜의 도구를 만나게 합니다. 용광로는 무서운 것 같지만 결국은 필요없는 것들을 제거하고 정금만 남게 만드는 것입니다.
오직 신앙으로 살았던 아브라함 링컨은 끝없는 실패를 했습니다. 가정도 실패하고 자신의 인생도 반복적인 실패를 만났습니다. 잡화점을 차렸지만 빚만 지고 망했습니다. 빚만 갚는데 15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약혼녀가 사망하고 신경쇠약증에 걸리기도 하고 하원의원, 상원의원, 부통령에 출마했으나 실패한 사람입니다. 어느 한가한 날 링컨이 시골길을 걷고 있는데 한 농부가 말을 몰아 쟁기로 밭을 갈고 있는 게 보였습니다. 링컨은 농부에게 다가가 인사를 했습니다. 그때 말 엉덩이에 파리가 붙어 말을 귀찮게 하고 괴롭히고 있었습니다. 링컨이 파리를 털어 버리려고 손을 든 순간 농부가 말했습니다. "그만두세요. 그 파리 때문에 이 늙은 말이 그나마 움직이고 있답니다." 고통을 우리를 더 자극하여 하나님께 가까이 가게 하고 그것 때문에 기도하게 하고 그것 때문에 은혜를 사모하게 하는 것입니다. [고요한 바다로 저 천국 향할 때 주 내게 순풍 주시니 참 감사합니다 큰 물결 일어나 나 쉬지 못하나 이 풍랑 인연하여서 더 빨리 갑니다 (503장)] 그래서 시편 기자는 고백합니다.“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편 119:71) 당장 우리는 왜 그런 고통이 오는지 잘 모릅니다. 하나님은 일년 내낸 푸른 하늘만을 약속하지 않으셨습니다. 사계절 내내 꽃들이 피어있는 길만을 주겠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폭풍우 없는 바다 슬픔 없는 평화를 약속하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계절의 변화속에서 은혜의 도구를 만나게 합니다. 폭풍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햇빛를 보여 주십니다. 하나님은 그 고통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의 도구를 만나게 하고 우리를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로 이끄십니다. 왕의 신하의 아들을 그 아들이 병들었기 때문에 예수님께 나온 것입니다. 만약 병들지 않았다면 그가 예수님을 만나려고 나왔겠습니까? 교만이 하늘 끝까지 닿았을 것입니다. 백부장은 그 사랑하는 종이 병들었기 예수님께 온 것입니다. 나만 장군은 문둥병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받은 것입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13년이라는 긴 터널을 지나게 됩니다. 장사들에게 팔립니다. 영락없이 노예로 인생을 끝날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보디발을 준비합니다. 보디발의 아내를 만납니다. 보디발의 아내 때문에 억울하게 감옥에 갇힙니다. 그러나 그 여인 마저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은혜를 베푸는 도구로 사용합니다. 그 여인 때문에 감옥에 가서 왕의 관원장을 만납니다. 만약 요셉이 감옥에 가지 않았다면 이들을 만날 수없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왕을 만나게 되고 왕의 꿈을 해석하여 결국 애굽의 국무총리가 됩니다. 결국 그를 통해 가족을 애굽으로 이끌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요셉에게 성취한 것입니다. [너 근심 걱정 말아라 주너를 지키리

3. 하나님은 우리 가정, 우리 인생을 고난이라는 과정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루고시자 하는 뜻을 이루어 후반전을 더 좋게 만드십니다.
하나님은 나오미의 가정을 통해 이루고자하는 뜻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나오미는 당시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흉년이 들고 모압에 이주하고 모압에서 남편과 아들들이 죽고 그곳에서 룻이라는 며느리를 만난 것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며느리 룻이 보아스와 결혼합니다. 그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보아스의 어머니는 기생 라합입니다. 믿음의 여인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간 여인들입니다.
하나님의 의도는 어디에 있었습니까? 17절을 보십시오. 이웃 여인들은 나오미가 아들을 낳았다고 합니다. 그 이름을 오벳이라고 하였고 그는 다윗의 아비인 이새의 아비였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8절 이하에서 족보를 소개하면서 룻기를 끝냅니다. 룻이라는 여인은 메시야를 낳는 족보에 포함되는 것입니다. 유다 지파에서 메시야를 오게하는데 쓰임받는 가정이 됩니다. 구원 사역을 이루는 가정으로 쓰시기 위해 하나님은 나오미에게 그 어려운 환란을 주었던 것입니다. 우리 가정을 통해 우리의 인생을 통해 하나님께서 가장하시고자 하는 일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데 쓰임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늘 기도하지 않습니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여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이다." 우리 인생의 최고의 가치는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루는데 쓰임받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출세하고 권력을 잡고 부자가 되는 것 좋습니다. 그러나 그것 때가 되면 다 살아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주어졌을 때 그것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쓰임받아야 합니다. 그럴 때 그것들이 좀도 동록도 해하지 못하는 천국에 쌓이게 되는 것이고 가장 가치있게 쓰임받는 것입니다. 오병 이어의 기적을 보십시오. 남자 장정만 5000명입니다. 아마 아이와 여인까지 합하면 2만명을 되었을 것입니다. 먹을 것이 없습니다. 굶주립니다. 아무도 그 문제를 해결할 사람이 없습니다. 방법이 없습니다. 그 때 한 아이가 자신의 점심 도시락을 내어 놓습니다. 그것 자신만 먹고 끝냈으면 그 다음날 변으로 나오고 말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예수님께 이것을 내 놓습니다. 5천 명이 배부르게 먹습니다. 5천배 아니 2만 배의 효과가 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원리입니다. 성경에 기록이 됩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보여 줍니다. 나오미 가정을 고난의 과정을 통해 초점을 분명하게 하셨습니다. 메시야 탄생의 족보가 되게 하였습니다. 우리는 룻기를 단순히 효도 이야기 가정이야기로 보아서는 아니됩니다. 나오미의 가정은 완전 몰락한 가정이었습니다. 눈물로 시작하여 찬양으로 전환됩니다. 사별의 통곡으로 시작했으나 탄생의 기쁨이 울려 퍼집니다. 가난에서 풍요로 고독에서 희열의 찬가로, 모든 것을 잃었던 불행에서 풍족하게 회복되는 누림으로 끝이 납니다. 결국 무엇을 보여 주는 것입니까? 룻기서는 룻이 주인공이겠습니까? 나오미가 주인공이겠습니까? 보아스를 주목해 보아야 합니다. 기업무를 자로 등장합니다. 예수님의 모형으로 등장합니다. '기업 무를 자'라는 말이 '구속자'라는 말입니다. '값을 지불하고 사서 자유케 한다'는 말입니다. 보아스가 값을 지불하고 룻을 구속함으로 룻의 가정은 자유함을 누리게 됩니다. 신분이 변화됩니다. 기업을 잇게 됩니다. 미천한 존재를 축복의 근원으로 만듭니다. 무명의 존재를 유명인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룻이라는 가정을 통해 장구한 세월을 거치면서 도도히 약속되어온 메시아 예언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찾아 보십시오. 창세기 3장 15절에서 '여자의 (그) 후손'이라고 말씀합니다. 이 '약속의 씨'로서의 '여자의 후손'은 이후 노아의 후손(창 9:1, 8-9)으로 좀더 구체화되었고, 또한 아브라함의 후손(창 12:1-3)으로 압축되어 나타났습니다. 이 언약의 씨는 점차 다윗에게로 초점을 맞추게 되는데, 하나님은 '다윗의 왕권을 계승한 다윗의 후손'(삼하 7:7-17)을 통해 언약을 완성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오늘 족보가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사55:3-5, 마1:1) 바로 룻이 그 가정의 족보에 들어왔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로 우리의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데 쓰임받는 것보다 고귀한 것은 없습니다.

우리는 후반전이 더 좋은 가정이 되게 할 수 있습니다.
/룻기4:13-17/김필곤 목사/2003.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