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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생명의 떡이십니다./요한복음6:30-35

예수님은 생명의 떡이십니다./요한복음6:30-35

 

우리 나라 조선 시대 왕들의 평균 수명은 얼마나 되었을까요? 44.6세였다고 합니다. 오래 살기 위해 갖가지 보약을 먹고 10대의 어린 소녀들을 침소에 들이게 했던 조선 시대 왕 27 대 중 70세를 넘긴 분은 한 분 환갑을 넘긴 임금은 두 분 뿐이었다고 합니다. 아방궁에 살며 오래 살기 위해 3천명으로 하여금 불로초를 구하게 했다는 진시황제는 얼마나 살았을까요? 51살 살았습니다. 과거 인간의 수명을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고대 그리스 때에 평균 수명은 19세, 16세기에 21세, 18세기에 26세, 19세기에 34세, 20세기 초에 45~50세로 되어 있습니다. 지금은 2001년을 기준으로 평균 수명은 76.5세로 남자가 72.84세, 여자가 80.01세가 되었습니다. 이 인간의 수명이 무엇과 관계가 있을까요? 학자들은 세계의 3대 장수촌을 조사하였답니다. 의학계가 세계3대 장수촌으로 꼽는 것은 파키스탄의 훈자, 러시아연방의 코카서스, 에콰도르의 빌카밤바 지방 사람들의 왜 오래 사는지를 조사해 보았습니다. 그들의 환경이나 생활방법을 연구해 보니까 자연조건. 생활습관. 식생활. 운동. 성격 등이 수명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고 합니다. 이들 지방의 자연조건은 나무가 울창하며 공기가 맑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고, 식생활은 채식과 과일 위주로 하며 늙어서도 계속 노동을 하고 쉴 때는 틈틈이 민속 놀이를 즐기며, 한가하게 쉬는 경우가 드물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들의 장수 요인 중 음식이 장수와 어떤 관계가 있는가를 조사해 보았답니다. 영국의 의사이며 인도의 식량문제연구소의 소장으로 있었던 메카리손 박사가 쥐를 통해 실험을 해 보았습니다. 그는 건강한 흰쥐를 약 1.000마리씩 세 그룹으로 나누어 각기 훈자식, 인도식, 영국식 식사를 27개월(이 27개월은 인간수명 50세에 해당한다)동안 사육한 뒤 그것들을 해부하여 비교, 검토하였답니다. 그 결과 훈자식이 주어진 쥐들은 예외 없이 건강하고 단 하나의 질병도 없었으나 인도식을 먹인 쥐들은 거의 전부가 안질, 궤양, 종양, 곱추, 불량치의, 탈모, 빈혈, 피부병, 심장병, 신장병, 위장병 등에 걸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영국식을 먹인 쥐들은 인도식을 먹고 걸린병 외에 신경계에 이상을 일으켜 성질이 흉포해지고 서로 물어 죽이는 등의 약육강식의 수라장이 되어 버렸다고 보고서에서 밝혔습니다. 실험에서 쥐들에게 먹였던 훈자식 음식은 자피티(훈자인의 주식인 잡곡을 가볍게 구운 것), 콩나물, 생당근, 생야채, 생우유(살균하지 않은 생우유)등이었고 인도식 음식은 흰쌀, 두부, 야채 등을 조미료를 써서 조리한 음식 등이었으며 영국식 음식은 흰빵, 마아가린, 백설탕 등을 넣은 각종 음식, 통조림고기, 잼 젤리 등이었다고 합니다. 장수자들이 먹은 음식의 종류는 한 마디로 말해서 식물성 식품이었다는 것입니다. 코카서스 크루지아 지방의 장수자들이 1일 섭취하고 있는 음식을 구분해 보면 1일 섭취하는 식품전체를 100으로 보았을 때 식물성 식품은 71.7%, 동물성 식품은 28.3%이었다고 합니다. 똑같은 음식일지라도 음식의 양에 따라 사람의 건강과 장수에 많은 영향을 준다고 합니다. 노화연구분야에서 세계적인 학자로 인정받고 있는 미국 텍사스주립대 생리학과 교수 겸 노화연구소장인 유병팔박사는 3년 수명의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그는 일정량으로 식사를 규제한 쥐가 마음껏 먹게 한 쥐보다 평균수명이 크게 연장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습니다. 자유식의 40% 절식을 시켰더니 쥐의 수명이 44개월까지 늘어났고 질병에 대한 면역능력 등 각종 기능도 마음대로 먹게 한 쥐들보다 월등히 뛰어났다고 합니다. 한 마디로 사람의 건강과 장수는 음식의 종류, 양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장수자들의 식생활에 대한 공통된 특징은 ① 매우 간소한 식사 ② 저칼로리 식사, 저콜레스테롤 식사 ③ 현지 생산품을 많이 먹고 ④ 자연 그대로의 강물을 식수로 마시고 ⑤ 생활 수준이 변해도 식생활은 변하지 않았고 ⑥ 밭이나 산에서 나오는 식량을 즉시 요리해서 먹고 ⑦ 콩, 과일 등을 껍질채 먹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렇게 복잡하게 계산하지 않고 관리하지 않더라도 한 번 먹으면 영원히 사는 음식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오늘 성경은 우리가 한 번 먹으면 영원히 사는 음식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음식은 영혼이 영원히 사는 음식이고 비록 육식은 죽지만 부활하게 하여 영원히 살게 하는 음식입니다.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오늘 성경 35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생명의 떡입니다. 결코 주리지 않고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떡입니다. 영혼에게도 육신에게도 효력이 있는 떡입니다. 40절을 보십시오. 마지막날에 다시 살리는 떡입니다. 48절부터 51절까지를 읽어 보십시오.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이 사실을 믿습니까? 저는 이 사실을 정직히 믿습니다. 영혼이 영생하고 이 육신도 죽지만 예수님 재림하실 때 그 생명의 떡을 먹었으므로 부활하여 영원히 살 것을 믿습니다.

1. 이 생명의 떡이 무엇이겠습니까?(48)
누가 생명의 떡이라고 합니까? 내가입니다. 곧 예수님입니다. 이것은 요한 복음에서 "내가 ...이다"라는 말씀이 7번 하시는데 그 첫 번째 말씀입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라(8:12) 내가 문이니(10:9) 나는 선한 목자라(10:11)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11:35)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14:6) 내가 참 포도 나무다(15:1)" 이 표현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구약의 여호와와 동일하신 분이심을 말씀하시는 표현입니다. 32절을 보십시오. "아버지가 하늘에서 내린 참떡" 33절에 "세상에 생명을 주는 떡", 51절에 "산떡"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산떡이 곧 무엇이라고 말씀합니다. 내 살이라고 말씀합니다. 십자가에서 인류의 죄를 위해 찢겨 돌아가실 예수님의 육신을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먹는 자에게 영생이 있습니다. 53절 54절을 읽어 보십시오.

2. 그러면 생명의 떡을 먹는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35, 36, 40)
떡은 감상용이 아닙니다. 떡은 사색용이 아닙니다. 사색하며 분석한다고 배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떡은 먹어야 합니다. 그 먹는다는 것이 곧 믿는다는 것입니다.
36절을 보십시오.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영원히 살게 하시려고 이 땅에 오신 생명의 떡으로 믿는 것입니다. 40절을 보십시오. 이 예수님을 믿으면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여기서 먹는 것은 계속 먹는 것이 아닙니다. 한 번 먹으면 끝이 나는 것입니다. 미래에 영생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믿으면 영생을 갖는 것입니다. 47절을 보십시오.
1)그런데 이 사실을 믿지 못합니다. 당시의 사람들을 보십시오.
(1) 이땅의 떡을 찾는 유대인들을 보십시오. 수근 거립니다.(41). 51절을 보십시오.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42절을 보십시오. 요셉의 아들 예수라고 합니다.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수근거리지 말라(43)"라고 말씀하시면서 44절 "아버지께서 보내신자만 올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영안을 열어주시고 은혜로 믿게 해 준 자들만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2) 소위 예수님을 따른다는 제자들을 보십시오. "어렵도다(60)"라고 합니다. 64절에 보십시오. 믿지 않는 사람들 있습니다. 66절에 물러갑니다. 71절에는 팔아먹습니다.
(3) 예수님의 형제들을 보십시오.(요7:5)
그 형제들이라도 예수를 믿지 아니하였습니다. 심지어는 미쳤다고 했습니다.
2)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미쳤겠습니까? 사기를 쳤겠습니까? 아닙니다. 부활하신 후 제자들은 믿었습니다. 주를 위해 일평생을 살았습니다. 주님께서 생명의 떡이다는 사실, 주님께서 부활했다는 사실을 전하다가 순교를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형제들은 어떻게 됩니까? 행1:14을 보십시오.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행 1:14)" 부활을 목격한 후 주라고 고백합니다.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는
요7:5이는 그 형제들이라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 (요 7:5)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약 1:1)"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바로 이 예수님에 대한 말씀입니다.
성경은 바로 이 예수님에 대하여 말씀하는 것입니다. 모세가 기록한 것이 누구에 대한 것이라고 합니까? "모세를 믿었더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요 5:46)"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눅 24:27)"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 20:31)"
우리는 이 믿음을 선물로 받은 것입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엡 2:8)"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고전 12:3)"

3. 이 생명의 떡을 먹으면 어떻게 될까요?(35)
35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주리지 않고 목마르지 않습니다. 만족을 누립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생명의 떡을 먹으면 즉시 구원얻고 영원히 삽니다.(47, 54) 구원을 얻을 것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영생을 가졌다고 말씀합니다. 영생을 가졌고라고 말씀합니다. 먹는 자는 부정 과거형으로 단 한번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이 죄로부터 죽음으로부터 구원 얻는 길을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영접할 때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죄의식에서 벗어나 은혜 의식으로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 참 자유를 누리며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계속 강조하고 있는 말씀을 보십시오.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39,40,44,54, 58) 영생함을 누린다는 말입니다. 부활한다는 말입니다. 생명의 떡을 먹은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효력입니다. 이 땅의 장수 정도가 아닙니다. 영원히 살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을 믿습니까? 저는 확실히 믿고 있습니다. 이 떡을 먹지 않으니까 인생이 불안하고 죽음의 공포로 떨고 있습니다.
이번 주 주간 조선에 보니 「빈손으로 왔다 가는‘빈배’」라는 제목의 글이 있었습니다. 제목이 상당히 매력적이었습니다. 「빈손으로 왔다 가는‘빈배’」, 기사를 읽어 보니 전 신한국당 대표 김윤환씨가 암과의 사투(死鬪)하고 있다는 글이었습니다. 작년 9월에 등에 통증이 있어 대 여섯 차례 병원에 들어가 치료를 받다 12월에 암으로 판정이 되었다고 합니다. 한때‘천하(天下)의 허주’‘킹 메이커’‘이 시대 마지막 로맨티스트 정치인’으로 불리기도 했던 허주가 깊어가는 가을 그의 건장한 모습은 온대간대 없고 초라한 모습으로 하루 종일 침대에 누운채 암과 싸움을 벌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자는 마지막에 이렇게 썼습니다. " 이제 허주는 여한(餘恨) 없이 ‘빈배’로 삶의 원점을 향해 회항(回航)할 수 있을 것인가? " 가을이 깊어 가고 있습니다. 인생의 종착역인 겨울이 반드이 우리에게는 옵니다. 그 때 영원한 하늘 나라 천국에서 눈을 뜰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사망을 이기고 세세토록 왕노릇할 영원한 천국이 있습니다. 이 생명의 떡을 먹는 자는 천국에 이 생명의 떡을 먹지 않는 자는 영원한 형벌 당하는 지옥에 갑니다. 예수님 말씀합니다. 마태복음 10장 28절에 "몸은 능히 죽여도 영혼을 죽이지 못하는 자를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지옥에 멸하는 자를 두려워하라"하셨고 "거기는 구더기로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도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을(데살로니가후서)"날이 있음을 말씀하고 베드로도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베드로후서 2장 4절)"할 날이 있음을 말씀합니다. 사도 요한도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지우리라 (요한계시록 20장 15절)"에 말씀하셨습니다. 영원한 형벌의 날이 있습니다. 생명의 떡을 먹은 사람들은 그 형벌의 날 구원을 받습니다. 생명의 떡이 없는 사람들은 그 형벌이 무서워 고통가운데 죽는 것입니다.
1778년에 죽은 계몽주의 철학자요 무신론자인 볼테르(Voltaire)는 50년 안에 자기가 기독교를 다 파괴해 버리겠다고 하고 100년 안에 성경이 다 없어지고 만다고 큰 소리 쳤습니다. 그러나 그가 죽을 때에 "나는 하나님과 사람에게 버림을 받았습니다. 나는 지옥으로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오 주님! 예수님!..."하면서 무섭게 떨며 흉한 모습으로 "의사여 나의 생명을 6개월만 연장시켜 준다면 나의 재산절반을 주겠다"고 하더니 자기 입으로 지옥 간다고 하면서 죽었다고 합니다. 자기를 못 고친 의사에게도 "그러면 나는 지옥으로 가는데 당신도 나와 함께 지옥으로 갑시다"하면서 숨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1679년 죽은 무신론자 홉스(Hobbes)는 임종시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의 생명을 단 하루만이라도 연장시켜주는 자에게 전 재산을 주겠다. 나는 지금 어둠 속에서 사라져 가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성의 시대(The age of Reason)란 책을 쓴 유명한 무신론자 토마스 페인은 죽어 가면서 "내가 쓴 '이성의 시대'가 출판되지 않았더라면 그 책을 모두 거두어들일 수 있다면 내 모든 것을 다 바치겠습니다. 오 주님! 나를 도와주옵소서. 그리스도시여, 나를 구원하시옵소서! 나와 함께 있어 주시옵소서 홀로 있으면 지옥 같이 무섭습니다."라고 하면서 죽었다고 합니다.
세상에 있는 떡은 그 어떤 떡일지라도 먹고 죽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떡은 먹으면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 안에 예수님이 계신 것을 믿습니까? 오늘 돌아 가셔도 하늘 나라에 가서 눈을 뜰 수 있다는 사실을 믿습니까? 아멘. 교회 다니면서도 영적 무감각증, 영적뇌사 상태에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말씀을 들어도 반응이 없습니다. 텔레비전을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면서는 잘 웃는데, 영화를 보면서는 눈물을 흘리는데 생명의 떡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는 반응이 없으면 안됩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떡이라는 이 말씀에 아멘으로 화답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2) 생명의 떡을 먹으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풍성한 교제를 누립니다(35, 56, 57)
35절에 보십시오. 결코 주리지도 않고 영원히 목마르지 않으리라고 말씀합니다. 모세 시대 때 광야의 만나는 매일 거두어야 합니다. 먹어도 먹어도 끝이 없는 것입니다. 물질도 명예도 쾌락도 지식도 권력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채워도 끝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생명의 떡은 한 번 먹음으로 만족함을 누리게 됩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하겠습니까? 56절에 보십시오. 참된 양식과 참된 음료가 내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생수의 근원이 내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57절에 보십시오. 이제는 주님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미 생명의 떡을 먹었으면서도 참 만족을 누리지 못하고 늘 불평과 불만 가운데 사는 신앙인들을 가끔 봅니다. 무신론 철학자 니체는 본래 독실한 기독교 배경인데 "내가 예수를 믿을 필요성을 느끼지 않은 이유는 그들의 생활에서 기쁨을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고 비판하였습니다. "상상 빈곤"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고귀한 것들을 받았는데 그것을 누리지 못하고 거지처럼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미준과 한국 갤럽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기독교인의 일상생활 만족도는 그리 높지 않았습니다. 살림 살이에 대한 만족도는 44.0%로 나타났습니다. 전체적으로는 만족도가 59.9%로 별로 만족한 삶을 살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왜 만족한 삶을 살고 있지 못할까요? 이유는 여러 가지 일 수 있을 수 있습니다. 아마 대표적인 이유는 결핍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욕구 충족을 통해 만족을 누리려고 불철주야 뜁니다. Maslow가 말한 ① 생리적 욕구( physiological needs ) ② 안전 욕구( safety needs ) ③ 사회적 욕구( social needs ) ④ 존경 욕구( esteem needs ) ⑤ 자아실현 욕구( self-actualization needs )를 채우면 만족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조금 고상한 사람들은 욕구를 억제하면 만족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것처럼 자아(自我)에 붙은 욕심을 버리면 만족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채워도 만족할 수 없고 아무리 자신을 비운다하여도 비울 수 없는 것이 인간이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이 술을 좋아하시는 분에게 "술을 먹겠습니까? 떡을 먹겠습니까? 아니면 밥을 먹겠습니까?" 물었답니다. 그러자 이분은 "술에 밥 말아 떡 안주해 먹겠다."고 하더란 것입니다. 욕심은 끝이 없어 만족을 누릴 수 없습니다.
17세기의 파스칼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인간의 마음속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어져 있다. 그 구멍은 세상적인 쾌락이나 물질로, 명예나 권세로 채울 수 없다. 그럴 경우 오히려 실망과 불만족과 허무만이 남게 된다. 오직 그 구멍을 채울 수 있는 것은 끝없이 부어 주시는 '그리스도의 사랑'뿐이다. 그래서 인간은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실 때에만 진실한 만족을 느끼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 마음속에 충만할 때 우리는 정말로 만족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저는 오늘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라는 말씀을 믿습니다. 이미 생명의 떡을 먹은 사람들은 욕구 충족을 통해 만족을 얻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것으로 주님 안에서 만족을 누리는 것입니다. 주신 것을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만족의 대상을 바꾸면 간단합니다. 주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래서 주님 안에 있으면 그 어떤 경우에도 만족한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무엇이 주어지든 주어지지 않든 상관이 없습니다. 소유가 많든 적든 상관이 없습니다. 그 모든 것의 있음과 없음에 관계없이 우리는 만족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주님은 변하지 않으신 분이시고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떡을 먹은 바울을 보십시오. 감옥에 갖혀 있으면서도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빌1:7,13). 그는 아내도 없습니다. 자식도 없습니다. 재물도 없습니다. 건강치도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명예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끝없는 복음 증거로 육체는 피곤한 상태입니다. 복음을 전하고도 배신을 당하는 정신적인 갈등이 있습니다. 때로는 거짓 사도로 가짜 자칭 사도로 오해받았습니다. 모세의 율법을 파괴하는 범법자라고 난동자, 반란 선동자, 삯꾼, 위선자라고 비난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한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가 참 만족을 누리는 비법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돈이 촛점이면 돈 있을 때에는 기뻐하고 만족하지만 돈 없어지면 살 맛 안납니다. 사업이 촛점이라면 사업이 잘 될 때에는 기쁨과 만족이 넘치지만 사업이 잘 안되면 죽을 상이 되고 맙니다. 자식이 초점이라면 자식이 잘 될 때는 만족을 누리지만 자식이 잘 안되면 신앙마져도 살아집니다. 초점이 명예, 건강이 되면 그것이 있을 때는 기쁨과 만족있지만 잘못되며 죽을 상이 되는 것입니다. 초점을 주님께 두어야 합니다. 은과 금도 다 주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cf.대상29:6-14). 사업의 성패도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모든 것이 주님에게 있음을 알 때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고 만족하는 삶을 살수 있습니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롬 11:36)" 복음 성가 "나는 행복해요 그 사랑 받았으니.."

3) 생명의 떡을 먹으면 영원히 보호를 받습니다.(37)
생명의 떡을 먹은 사람들 결코 우리 주님께서 내어 쫓지 않습니다. 영원히 우리 주님의 품안에서 보호를 받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말씀합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요 16:33)"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입니다. 그 예수님이 우리를 지켜 주십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롬 8:38)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롬 8:39)" 사단의 세력은 우는 사자처럼 다니면 두루 삼킬자를 찾고 있습니다. 광명의 천사로 우리를 유혹하고 있습니다. 무엇으로 이길 수 있겠습니까? 우리 주님의 능력으로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힘으로 참으로 부족합니다. 주님이 보호해 주어야 합니다. 선악과로 유혹하여 아담을 무너뜨렸던 사단은 지금도 우리를 거짓의 떡으로 무너뜨리려고 합니다. 예수님을 세상의 떡으로 유혹했던 사단이 지금도 우리를 세상의 떡으로 유혹하여 넘어뜨리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 어떤 것도 우리를 넘어뜨릴 수 없습니다.
무엇에 근거하여 우리가 보호를 받습니까?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이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가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입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 8:28)"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 실수 많았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하나님이 보호하십니다. 야곱 참으로 욕심많고 거짓으로 얼룩진 사람입니다. 그러나 왜 야곱을 보호해 주었습니다.
지렁이 같은 야곱이지만 하나님은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사 43:1)"
"내가 나의 종 야곱, 나의 택한 이스라엘을 위하여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나는 네게 칭호를 주었노라 (사 45:4)"
베드로 실수하고 부인하고 저주까지 하지만 끝까지 지켜 주십니다. 예수님 말씀해 주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 28:20)

예수님은 생명의 떡이십니다./요한복음6:30-35/김필곤 목사/2003.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