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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에 대한 감사/디모데전서1:12-17

은혜에 대한 감사/디모데전서1:12-17

 

미국 주간지 내셔널 인콰이어러에 소개된 내용이라고 합니다. 미국에는 "미세스 아메리카"라는 미인 선발대회가 있는가 봅니다. 행복한 가정생활을 하고 있는 주부들을 위한 대회라고 합니다. 스코트라는 사람이 두 아이를 둔 자신의 아내를 이 대회에 출전을 시켰다고 합니다. 그는 아내에게 "미세스 아메리카 왕관"을 씌워주기 위해 눈, 코, 치아, 가슴 등의 성형수술에 모두 10만달러(1억2천만원)를 들여 '미세스 아메리카'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내가 자신을 위해 최선을 다한 남편의 은혜는 다 잊어 버리고 미세스 아메리카의 왕관을 쓰자 백만장자 사업가인 릭 챈스씨와 재혼해 150만 달러 짜리 호화주택으로 옮겨 가버렸답니다. 불쌍한 스코트씨는 완전 파산하고 말았다는 기사였습니다. 기사 맨 끝에 이렇게 써놓았습니다. "세상의 남편들이여, 아내가 미인이기만을 바라는 허황된 꿈을 이젠 버려야 하지 않을까."
우리 말에 배은 망덕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남의 은덕을 잊고 저버린다는 말입니다. 우리 격언에 "은혜는 물에 새기고 원수는 돌에 새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그만큼 쉽게 은혜를 잊어버린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라고 이렇게 감사절을 만들어 놓고 지키게 하고 있습니다. 유월절, 칠칠절, 초막절 등을 지키도록 했습니다. 오늘날 말하면 성탄절, 부활절, 맥추감사절, 추수감사절 등을 지킴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도록 했습니다. 오늘 추수 감사절입니다. 우리가 먹거리를 거두고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늘 감사하는 생활을 할 줄 알지만 추수감사절을 맞이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한번 감사하는 절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오늘 디모데 전서는 사도 사울이 감옥에서 풀려나 아들처럼 생각하는 디모데에게 편지한 내용입니다. 지금 바울은 감옥에서 풀려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기 때문에 매우 힘든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출옥하여 머물만한 집 한 채 없습니다. 자신을 환영해 주는 사람도 특별히 있는 것도 아니고 따뜻하게 위로해 주는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감사하고 있습니다. 우리 12절 말씀을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금 실정에 예수님께 무엇을 감사할 만한 것이 있습니까? 예수님 때문에 감옥에 갇히게 되었고 예수님으로 인하여 고생을 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예수님으로 인해 감사한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감사하고 있습니까?

1. 우리는 과거 일을 불평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로 해석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12)
어떤 사람들을 보면 과거를 늘 불평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왜 나를 이렇게 낳게 해 주었습니까? 왜 나는 이런 환경에서 살아야 만 합니까? 왜 나는 이렇게 머리가 둔합니까? 왜 나는 운이 안 따라 옵니까? 왜 나만 이렇게 살아야 합니까? 왜 이런 남편과 결혼하고 왜 이런 아내와 결혼하였습니까? 매사 지나온 과거를 불평과 불만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인은 과거를 불평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신앙인의 특징은 모든 과거를 감사로 해석하는 사람들입니다. 바울을 보십시오. 이 디모데 전서는 노년에 기록한 것입니다. 얼마전 감옥에 갇혔습니다. 도둑질하여 갇힌 것이 아닙니다. 정치자금 받아서 사기처서 감옥에 갇힌 것이 아닙니다. 사도의 직분을 맡았기 때문에 이런 어려움과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그 직분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바울은 직분을 맡겨 주심을 감사하고 있습니다.(12) 나를 충성되이 여겨 직분을 주신 그리스도, 그 어려움과 고통을 이길 수 있도록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께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 직분 때문에 때로는 동족들로부터 매를 맞기도 하고 폭풍으로 죽음의 위협도 당하고, 설교 못한다고 비난도 듣고 그릇된 것을 가르친다고 오해도 받고 이중 인격자라는 참으로 듣기 힘든 억울함도 당했지만 바울은 오히려 그 직분을 감사하는 것입니다. 지나온 과거는 감사로 해석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어떤 일이 있었다해도 감사로 해석해야 발전이 있고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감사에는 세 종류가 있습니다. ① 상대적인 감사입니다. 타인과 비교해서 느끼는 감사입니다. 더 부자고 더 잘생겨서 더 출세하고 더 돈벌어 감사하는 감사입니다. 생리적인 감사입니다. 동물적인 감사이고 이기적인 감사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도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② 결과에 대한 해석의 감사입니다. 이루어 진 일을 생각하면서 감사하는 것입니다. 철학적인 감사입니다. 부모가 매를 때리는 것을 보면서 감사하는 것과 같습니다. 부모가 얼마나 나를 사랑해서 때릴까하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한석봉처럼 하는 감사입니다. 사실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은 감사가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해석의 관점만 바꾸면 모든 일에는 불평보다는 감사를 할 수 있습니다. 가장 고귀한 감사는 ③ 절대적인 감사입니다. 영적인 감사입니다. 과거의 불행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아픔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노예에서 풀려났기 때문에, 죽음의 자리에서 생명을 얻었기 때문에 그것을 보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덤으로 사는 인생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가난하여도, 농사가 잘 되지 않아도, 가믐이 들어도 홍수가 와도 감사하는 것입니다. 법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그랬습니다. 베드로가 그랬습니다. 감옥에 가도 병이 들어도 매를 맞도 감사했습니다. 다니엘의 감사, 요나의 감사, 하박국의 감사가 바로 그런 감사인 것입니다. 모든 것을 감사의 경험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성숙을 위한 훈련의 과정으로 해석하는 것입닞다. 에디슨은 청각 장애자였습니다. 에디슨은 신문을 팔며 기차의 한 구석에서 실험을 하곤 했는데 어느날 기차의 진동으로 실험약품이 떨어져 불이 났고 이에 격분한 차장이 에디슨을 떠밀었던 것 때문이었습니다. 후에 에디슨은 [귀가 잘 들리지 않아 연구에 힘들지 않았습니까?]라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대답했답니다. [나는 귀머거리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딴 소리에 신경쓰지 않고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었으니까요]
"일본의 테레사수녀"로 불리는 다마키 여인은 평생을 한센씨병 환자들을 돌보며 살았습니다. 요양원을 만들고 고름이 나는 환자들의 피부를 치료하다가 그만 자신도 한센씨 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한센씨병에 걸린 것을 알고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이제 육의 눈이 가려지고 영의 눈이 열려 감사하다. 눈썹이 빠지면서 눈썹의 고마움을 알았다. 먼지가 자꾸 눈에 들어가 이렇게 고통스러울 줄은 미처 몰랐다. 하나님은 내게 병을 주어 여러가지 감사의 마음을 알게 하셨으니 얼마나 고마운가"

2. 우리는 현재를 잃은 것 보며 원망하지 말고 주신 은혜를 보며 감사로 고백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13,14)
바울은 인간적으로 볼 때 아무것도 없는 사람입니다. 사도행전 28:30절에 보십시오. 마지막까지 셋집에 거하며 목회하였습니다. 노년에 많은 사람들이 바울을 떠나 버렸습니다.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딤후 4:10)"갔습니다. 구리 장색 알렉산더는 바울에게 해를 끼쳤습니다.(딤후 4:14) 몸도 성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지만 병을 고쳐 주시기 않았습니다.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노후 보장이 되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감사하고 있습니다. 13절을 보십시오. 과거 믿지 않을 때 알지 못하고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 노릇을 하엿지만 지금은 하나님의 긍휼을 입어 사도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14절을 보십시오. 은혜가 넘치도록 풍성하다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무슨 은혜입니까? 돈 많이 버는 은혜입니까? 건강한 은혜입니까? 출세한 은혜입니까? 아닙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믿음과 사랑이 넘치도로고 풍성한 은혜입니다. 잃은 것 많지만 믿음과 사랑만큼은 더욱 풍성해 있다는 말입니다. 추수 감사절입니다. 잃은 것 보고 원망하지 마시고 지금 주신 은혜를 보고 감사가 넘치는 고백이 있기를 바랍니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우리는 교회, 주신 직분, 성가대, 교사, 사업, 자녀 그 어느 것 하나 감사하지 않을 것이 없습니다. 죄용서 받은 것 감사하고 천국 가게 된 것 감사하고, 은혜 주어서 이렇게 하나님 아들 딸 되어 신앙 생활하는 것도 감사한 일이고, 볼 수 있는 눈이 있고 먹을 수 있는 입이 있다는 것도 감사한 일이고, 별로 실력은 좋지 않을 지라도 자식들이 있다는 것이 감사한 일이고, 넉넉히 효도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낳아 주신 부모님이 계시다는 것이 감사한 일이고, 안락하게 신앙생활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의 교회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렇게 자유스럽게 모여 예배들일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이 감사한 일이고, 부자는 아니지만 먹고 살 수 있는 재물이 있다는 것이 감사한 일이고 분단된 국가가 늘 긴장이 있지만 그래도 아름다움 강산이 있다는 것이 감사한 일입니다. 목회자, 성도 만난 것 감사한 일입니다. 아내, 남편, 부모, 자식, 옆에 있는 성도님 만난 것에 대하여 감사하지 않습니까? 옆에 있는 분을 보고 한 번 인사해 보십시오. "성도님을 만나 참으로 감사합니다." "성도님의 아름다움을 보니 너무 감사합니다." 매일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해 보십시오. "나는 너가 내 아들 딸이다는 것 하나로 감사하다"
탈무드의 이야기입니다. 어떤 랍비가 당나귀를 타고 한마리 닭과 등불과 천막을 싣고 여행을 떠났습니다. 해가 저물어 천막을 치고 나귀와 닭은 천막에 묶어 두었습니다. 닭을 가지고 다니는 이유는 꼬끼오 하고 아침을 알려주는 시계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천막 안에서 등불을 켜고 성경을 보는데 갑자기 강한 바람에 등잔이 넘어져 그만 불이꺼졌습니다. 할 수 없이 성경을 덮고 기도하고 잤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밤 사이에 맹수가 나귀와 닭을 잡아갔습니다. 그는 찢어진 천막을 챙겨 주의를 보니 바로 동네 가까이서 잤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어젯밤에 강도 떼가 동네를 습격 사람들을 죽이고 물건을 약탈해 갔던 게 아닙니까? 만일 등불이 켜 있었거나 닭이나 나귀가 살아서 소리라도 내었다면 틀림없이 자기도 죽었을 것인데 생각해 보면 잃어버린 것이 많지만 잃은 것보다 중요한 것을 잃지 않았음에 하나님께 감사를 했다고 합니다.
다니엘을 보십시오. 포로입니다. 처참하게 죽을 상황에 놓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포로로 잡혀와서도 그는 느부갓네살 치하에서 정치적인 출세를 하였습니다. 순전히 꿈 해석 잘 해 주고 출세한 사람입니다. 배경이 있는 것 아니었습니다. 벨사살 왕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이제 다리왕이 되었습니다. 세 정권에서 잘 먹고 잘 살았습니다.그것이 다니엘이 뛰어나서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해 주신 것입니다. 다니엘도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단2:19을 보십시오.
"이에 이 은밀한 것이 밤에 이상으로 다니엘에게 나타나 보이매 다니엘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찬송하니라 (단 2:19)"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말입니다. 지금까지 살아 온 모든 것이 감사하다는 말입니다. 만족하다는 말입니다. 감사는 만족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현재 고난을 당한다해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인데 감사하다는 말입니다. 조건부 감사가 아닙니다. 절대적 감사입니다. 이만큼 산 것도 하나님의 은혜라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산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라는 말입니다. 생각해 보면 얼마나 감사한 일이 많이 있습니까?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는 신앙이 있습니다.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우리가 밥을 먹는 데까지는 88단계를 거친다고 합니다.
시편 49편 20절에서는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라고 하였습니다. 괴테는 "이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인간은 감사할 줄 모르는 인간이."이라고 했습니다. 성경 로마서 1장 21절에서는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3. 우리는 미래를 하나님의 섭리를 받아들이고 감사로 영광돌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15-17)
바울의 미래는 인간적으로 볼 때 보장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디모데 후서를 쓸 때는 다시 감옥에 잡혀갑니다. 그리고 순교를 당합니다.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고 인간적으로 볼 때는 참으로 암울한 것입니다. 어쩌면 예수님을 전하지 않으면 그는 감옥에 가지 않고 편안하게 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밭 속에 숨겨진 보화와 같으신 분이었습니다. 15절에서 말씀하는 바울의 고백을 보십시오. 죄인 중에 괴수 같은 바울을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인간을 불행하게 하는 가장 원초적인 문제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분이십니다. 그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셔서 사도의 직분을 맡겨 주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16절을 보십시오.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의 본을 보이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래가 암담하고 앞으로 되어질 일이 칠흑같이 어두워 보일지라도 영원한 하늘나라, 자신을 구원해 주시고 결국 주님의 섭리를 이루어 주실 그 하나님을 보면서 영광과 찬양을 드리는 것입니다. 17절을 보십시오. 얼마나 멋진 감사의 찬양입니까?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만세의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세세토록 있어지이다. 아멘"
인간적인 지혜로 판단해 볼 때 참으로 암담한 미래가 보이고 있습니까? 미래를 바라볼 때 희망이 없이 보이십니까? 오히려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하나님께서 멋지게 한 시대를 사용할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보며 영광과 찬송의 감사를 드려보십시오.
예수님이 그랬습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요 6:11 이하를 보십시오. 사람들이 장정만 5천명이 있습니다. 아이들과 여자까지 합하면 적어도 2만명은 될 것입니다. 그런데 먹을 것이 없습니다. 겨우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입니다. 그런데 없는 것보고 불평하지 않습니다. 현실 속에 없는 것 보면서 불가능하다고 불평하고 원망하지 않습니다. 큰 것과 비교하여 불평하지 않습니다. 주신 작을 것으로 감사합니다. 현재의 조건에 근거해 미래를 비관하지 않습니다. 미래를 만들어가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며 현재의 것으로 헌신함으로 감사합니다. 축사합니다. 감사 기도를 드렸다는 말입니다. 죽은 나사로의 무덤에서도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라고 감사합니다. 실패의 현장에서도 감사합니다(마 11:20-26). 고라신과 벳세다야에서 복음을 전했지만 그들이 믿지 않았을 때 절망하고 좌절하며 포기한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이것이 우리 신앙인의 삶의 모습니다. 다 이런 관점으로 바라볼 때는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현재에 근거하여 미래를 비관적으로 보며 불안해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성적으로 볼 때는 현재를 근거로 하여 미래가 아무리 암울하게 보일지라도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감사로 다시 일어서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한때 제화공이었던 윌리엄 캐리(1761-1834)는 인도 선교의 꿈을 꾸며 라틴어, 헬라어, 히브리어, 독일어, 프랑스어 등을 공부하여 문서로 세계 선교를 하고자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영국 침례교의 파송으로 인도에 가서 인도어를 공부하여 문법 책을 만들고, 영인(英印)사전을 편찬하며, 인도어로 성경을 번역했습니다. 이 소식이 영국에 전해지자 영국은 번역한 성경의 출판을 위해 그에게 인쇄기와 기술자들을 보내주었습니다. 그러나 조판이 완성될 무렵, 캐리 선교사가 지방 순회 전도를 간사이 집에 불이 나서 인쇄기는 물론 그토록 힘들여 완성한 원고까지 몽땅 불타버리고 말았습니다. 참으로 절망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그 잿더미 위에 무릎을 꿇고 “사랑의 하나님, 모든 것이 잿더미로 변해버렸으나 다시 시도해 볼 용기를 허락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제 용기와 인내심을 처음보다 강하게 해주시고, 나를 붙잡아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고, 다시 그 작업을 시작하여 1801년 완성을 보았습니다. 그 일로 인해 그의 실력은 더욱 향상되었습니다. 그 후 그는 캘커타에 설립된 윌리엄 대학의 교수로서 30년 간을 재직하며, 성경을 24가지 인도 방언으로 번역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빌헤름 웰러는 "가장 행복한 사람들은 가장 많이 소유한 사람들이 아니라, 가장 많이 감사하는 사람들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감옥과 수도원의 차이는 단지 불평을 하느냐 아니면 감사를 하느냐의 차이일 뿐이라고 합니다. 거친 식사, 험한 잠자리, 힘든 일과........ 환경은 비슷합니다만 감옥에서는 하루하루가 대개 불평으로 가득하고, 수도원은 감사로 하루가 지낸다고 합니다. 그래서 초대 교회의 교부였던 크리소스톰은 "사람에게는 근본적인 죄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감사하지 않는 죄"라고 지적합니다. 아리스토 텔레스는 "인간의 마음 중에 가장 쉽게 늙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곧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시 50:23)"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 처럼
과거 일을 불평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로 해석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12)
우리는 현재를 잃은 것 보며 원망하지 말고 주신 은혜를 보며 감사로 고백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13,14)
우리는 미래를 하나님의 섭리를 받아들이고 감사로 영광돌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15-17)

은혜에 대한 감사/디모데전서1:12-17/김필곤 목사/2003.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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