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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설교/권혁길목사

영원한 감사(시 30:1-12)

영원한 감사(30:1-12)

2014. 11. 16. 추수감사절, 작성자 권혁길 목사

다윗의 시편을 보면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고백이 주를 이룬다. 여러 형태의 감사가 있는데, 12절에, “영원히 감사하리이다라고 고백을 한다. 한 두 번의 감사가 아니고, 일시적인 감사가 아니라, 영원히 감사한다는 것이다. 오늘 추수감사절을 맞이하여 우리도 영원한 감사를 드리자.

 

1. 위기 상황에서 건저주심을 인하여 감사했다(1-4)

* 나를 끌어내시고(1)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어려운 상황에서 끌어내 주셨다. 원수로 말미암아 봉변을 당할 뿐만 아니라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끌어내 주신 것이다(40:2) 하나님은 다윗을 어려운 처지에서 끌어내신 것만 아니라 높은 보좌에까지 앉게 하셨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죄악의 깊은 수렁에서 끌어내 주셨고, 불행과 절망의 골짜기에서 끌어내 주셨고, 어렵고 힘들 때 마다 끌어내 주셨다.

* 나를 고치셨나이다(2)

다윗은 어떤 일로 인하여 고통 속에서 부르짖어 기도했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심은 물로 그를 고쳐주셨다. 병든 몸을 고치셨고, 상한 마음을 고치셨고, 혼란스러운 환경들을 고치셨다.

* 나를 살리사(3)

다윗은 자신이 무덤에 내려가기 직전의 상황에 이르렀음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기 영혼을 스올에서 끌어내어 살리셨다고 고백했다(3). 스올 l/av] (셰올) 죽은 자의 거처, 음부,

이런 극한 상황에서 살려주신 하나님께 감사했다(4) 그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라는 것이다.

 

2. 잠깐 동안의 노여움을 통하여 평생토록 은총을 누리게 하시는 은혜를 감사했다(56)

하나님께서 때로는 우리에게 노여워하실 때가 있지만 그것은 잠깐이다. 하나님의 화난 얼굴은 잠간이고 곧 밝은 미소로 우리를 대하시는 하나님이다 (54:7-8, 103:8)

* 은총은 평생이로다(5)

하나님의 노염이 계속되는 한 성도들의 울음은 계속된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노염이나 고통은 잠시에 불과하고 은총은 평생토록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이런 은혜가운데 살고 있는 것을 감사하자. *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5)

비록 저녁에 잠자리에 들 그 순간까지도 문제 해결이 안 되어서 눈물을 흘리며 울며 잠들었을지라도 아침에 일어나 보니 하나님께서 그 문제를 해결해 놓으셨다는 것이다.(121:3-4)

* 그러므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에게는 고통은 잠깐이고, 즐거움은 평생이다. 불행은 잠깐이고, 행복은 평생이다. 슬픔은 잠깐이고, 기쁨은 평생이다.

 

3. 부르짖어 간구할 때에 응답하심을 감사했다(6-11)

* 다윗은 형통하고 잘 될 때에 전혀 어려움이 없이 형통할 줄 알았었다.(6) 많은 사람들이 그런 착각 가운데서 살고 있다. 자기는 괜찮을 거라고 생각을 한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지 않다.

* 하나님께서 얼굴을 가리시면 우리는 근심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께서 돌보지 않으시면 우리는 고난가운데 빠질 수밖에 없다(7)

* 그때에 다윗은 하나님께 부르짖어 간구했으며 그 때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셨다.(8-10)

* 어떻게 응답하셨는가?

슬픔이 변하여 춤이 되게 하셨고(11)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다(11)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였던 것은 잠시뿐이었고, 다윗의 울음은 단지 하루 밤 뿐이었다. 그가 입었던 슬픔의 베옷을 벗겨 주시고 기쁨과 즐거움으로 평정을 되찾았다. 하나님께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시고 예전의 형통함을 회복 시켜 주셨다(12) 이제 다윗의 삶은 찬송하는 삶으로 회복이 되었다. 그는 더 이상 잠잠할 수 가 없었다. 하나님께서 다윗으로 하여금 찬송을 하게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도 다윗과 같이 영원한 감사를 드리는 추수감사절이 되자.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생각해보면 어찌 다윗만 못하겠는가? 나를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던 주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셔서 하늘에 오르시고 지금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고 계신다. 그리고 보혜사 성령을 우리 가운데 보내셔서 우리의 삶을 돕고 계신다. 이 엄청난 복을 받았으니 영원한 감사를 드리자. 일시적이거나 이벤트성의 감사가 아닌 영원한 감사를 드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