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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설교/송수천목사일반

겉 사람보다는 속 사람을 잘 가꿔야 합니다! (고후 4:16-18)

겉 사람보다는 속 사람을 잘 가꿔야 합니다! (고후 4:16-18)


  우리는 오늘 2013년도의 마지막 송년주일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올해도 정말 다사다난했던 한해였습니다. 한해를 보내면서 뒤돌아보면 감사해야 할 일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먼저 부모와 형제들과 가족들에게 참 감사한 일들이 많았습니다. 그래도 세상에서 제일 따뜻한 곳은 가정입니다. 가정이 행복의 요람이고, 희망의 요람입니다.
  또 우리는 이웃들의 사랑을 엄청 받고 살았습니다. 좋은 이웃과 친구들이 있어서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까? 가족 사랑, 이웃 사랑에 감사를 드립니다. /할/
  그래도 큰 감사는 하나님께 돌려야 합니다. 세상에 얼마나 끔찍하고 엄청난 사건들이 있었습니까? 우리 참 행복한 성도들을 오늘 여기까지 인도해 주신 에벤에셀의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인도 속에 여기까지 왔습니다. 시121:8절에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할/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 속에 우리가 오늘 송영주일에 하나님 앞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이것도 감사한 일입니다. /할/ ◀제목 소개!▶
 

  ①송영주일에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일들이 참 많습니다. 
  ㉠포도원의 비유를 잘 들어보야 합니다.

  눅13:6-9절에 보면, 어떤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 한 그루를 심었습니다. 그러나 열매가 열리지 않았습니다. 3년을 기다리던 주인은 과수원지기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실과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 이 말을 들은 과수원지기가 말했습니다.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 후에 만일 실과가 열면이어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이 이야기는 예수님의 비유입니다. 포도원은 교회를 말하고 주인은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과수원지기는 예수님이십니다. 그리고 무화과나무는 우리들입니다.
  포도나무만 있는 포도원에 무화과를 심었습니다. 무화과는 심겨질 자격이 없습니다. 무화과나무 한 그루가 포도원에 심기어진 것은 주인의 전적인 은총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집에 부름을 받은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할/
  그런데 하나님의 기대에 미치지 못 했습니다. 3년을 기다리신 하나님은 이제 그만 찍어 버리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일년만 보류시켜 달라고 요청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요청을 받고 처벌을 일년간 유예시키셨습니다.
  금년을 지나면서 우리는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죄송스러운 것밖에 없습니다. 크게 한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열매맺지 못 한 무화과나무는 바로 '나'입니다. 주인이 3년씩이나 와서 보았는데 열매가 없었습니다. 열매 없는 나를 보고 예수님이 얼마나 허전하셨을까요? 매년 바구니를 들고 왔다가 빈 바구니로 돌아가실 때 얼마나 속상하셨을까요? 찍어버리라고 하시는 말씀 속에는 얼마나 실망하셨는지 그 진한 감정을 느낄 수 있지 않습니까? /할/


  ㉡모세의 인생평가서를 참조해야 합니다(시90:10).
  모세는 이스라엘의 위대한 영도자입니다. 지금도 이스라엘은 모세 하면 꾸뻑합니다. 그런 위대한 지도자가 이런 인생 평가서를 남겼습니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시90편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과 출애굽 여정에서 광야생활 40년 동안 그 모든 어려움을 다 겪고 난 후 느보산에 올라가 가나안땅을 바라보며 120년을 일기로 그의 인생을 마감하면서 세월의 흐름 속에 드린 기도문입니다. 이는 모세의 일생을 통한 그의 신앙고백이기도 합니다. 오늘 송영주일을 맞이하여 시90편에서 모세가 깨달았던 몇 가지 인생철학을 우리도 새겨야 합니다.
  ⑴모세는 돌아가는 인생임을 깨달았습니다. 흙에서 왔다가 흙으로 돌아가는 인생임을 깨달았습니다. 우리의 영은 하나님께로 왔기에 하나님께로 돌아가지만, 우리의 육은 땅에서 왔기에 흙으로 돌아가는 인생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렇습니다. 한번 왔다가는 인생입니다. 그러니 바로 살아야 합니다. /아멘!/
  ⑵모세는 120년을 살고도 짧은 인생이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빨리 가는지 날아가는 인생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세월이 왜 이렇게 빠릅니까?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이는 모세가 깨달은 인생의 연한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깨달은 모세는 이어서 기도하기를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 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12)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짧은 것이 인생이므로 주어진 시간들을 아껴서 살아가는 지혜를 얻고자 기도했습니다.
  욥7:6절에는 '나의 날은 베틀의 북보다 빠르니'라고 했습니다. 이는 욥이 깨달은 인생의 연한입니다. 베틀의 북이란 연세가 많은 분들은 쉽게 이해하실 것입니다. 약4:14절에는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고 했습니다. 이는 야고보 사도가 깨달은 인생의 연한입니다.
  또한 세월의 빠름을 이렇게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10대는 기어가는 듯하고/20대는 걸어가는 듯하고/30대는 뛰어가는 듯하고/40대는 수레를 탄 듯하고/50대는 말을 탄 듯하고/60대는 나는 듯하고/70대는 바람처럼 스쳐 가는 듯하고/80대는 번개처럼 지나간다.>
  나이가 곧 시속이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빨리 가는 것이 우리들의 인생입니다. /할/
  ⑶이렇게 짧은 인생이 기쁘고 즐겁고 행복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모세는 수고와 슬픔뿐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은 울면서 태어나서 고통과 슬픔 속에 울면서 인생을 마치게 됩니다. '괴로운 인생길 가는 몸이'라는 주제의 찬송이 있는데 그와 같이 우리는 괴로움 속에 지나가고 맙니다.
  ⑷그리고 모세는 인생의 마지막에는 심판이 있음을 암시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죽음으로 인생을 마감하면 그 다음에 심판이 시퍼렇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심판대 앞에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게 됩니다.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자신이 잘 압니다. '예수를 잘 믿었는가?'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관계는 누가 뭐래도 본인 자신이 잘 알고 있습니다. 내 신앙의 척도는 누가 뭐래도 내 자신이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자기 신앙을 한번 진단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할/
  ⑸모세의 깊은 깨달음의 고백을 들어보세요! 시90:12절에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 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 고통과 고난의 인생을 슬기롭게 사는 법을 가르쳐 달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슬기롭고 지혜롭게 사는 것인가를 묻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이 우리를 향한 질문인줄 믿습니다. /아멘!/
  그렇습니다. 어리석게 사는 인생들이 많습니다. 술 마시고 방탕하면 저주를 받게 된다고 입에서는 말하면서도 그 유혹을 뿌리치지 못합니다. 손해 보는 일 인줄 뻔히 알면서도 도박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재산을 날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인생은 '다시'가 없고, 지나간 시간을 흘러간 것이고, 하나님 앞에 서서 심판을 받게 되므로 귀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엡5:15-16절에서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고 했습니다. /아멘!/
   

  ㉢한해의 마무리가 중요합니다.   
  저는 얼마 전에 TV 프로에서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자가 화장을 하는 것보다 화장을 지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정성껏 아름답게 화장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잠자기 전에 그 화장을 잘 지우는 것은 더 중요하답니다.
  예뻐 보이려고 한 화장이 오래 두면 피부에 해를 끼치기 때문입니다. 피부에 좋으라고 바른 화장이 피부와 상관관계 속에 노폐물을 만들어 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화장 지우는 방법을 들어보니까 보통 정성이 아닙니다. 오히려 화장을 하는 것보다 지우는 것이 더 정성이 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여자 분들을 존경하기로 했습니다. 화장하느라 얼마나 큰 수고를 하는지, 그리고 또 화장을 지우느라 얼마나 더 큰 수고를 하는지, 이런 수고는 남자들은 도무지 알 수도 없고, 하라고 한다면 모두다 두 손을 다 들만 한 것들입니다.
  ▶어찌 보면 인생도 화장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생을 설계하고 준비하여 시작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이보다 못지 않게 인생을 마무리하는 일도 중요합니다. 일년을 다 살고 난 지금 올 한해를 마무리하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뜻하지 않았던 일들이 생깁니다. 그리고 크고 작은 실수를 범하게 됩니다. 그래서 생각지 못했던 상황이 벌어지게 됩니다. 그러면서 마음에 상처도 받게 되고, 오해에 휘말리게 되고, 인간관계가 복잡하게 엮이게도 됩니다. 이럴 때 마무리가 중요합니다. 어떤 상황을 정리하며 마무리를 잘해야 합니다. 올 한해의 복된 마무리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복된 마무리를 몇 가지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⑴복된 마무리에는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는 건강합니다. 어떤 큰 사고사건의 주인공이 안된 것도 얼마나 감사합니까? 부모와 이웃과 형제들에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더불어 사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동기목사님들 중에 백민기목사님에 대해 너무나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복된 마무리에는 감사가 있습니다. 모두가 마땅히 감사해야 할 것을 감사하는 것은 물론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놓치고 있는 것을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결코 감사할 수 없는 것 안에서도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멘!/
  ⑵복된 마무리에는 용납이 있어야 합니다. 받아들일 수 없는 일들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사람들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우리말에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 말은 '내가 죽을 때까지 절대로...'라는 뜻입니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는 뜻으로 사용되는 말입니다.
  우리가 살다 보면 이런 표현을 쓸 때가 있습니다. 도무지 어떤 일을 용납할 수가 없을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도무지 어떤 사람을 용납할 수가 없을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주안에서는 용납해야 합니다. 골3:13-14절에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할/
  그렇습니다. 우리가 용납하며 살아야 합니다. 모두가 용납할 수 있는 것을 용납하는 것은 물론입니다. 그러나 그 누구라도 용납할 수 없는 것도 용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멘!/
  ⑶복된 마무리에는 축복이 있어야 합니다. 두루두루 잘 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도무지 잘 되기를 바랄 수 없는 사람도 잘 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도저히 축복할 수 없는 사람도 축복해 줄줄 알아야 바른 그리스도인입니다. /할/
  ▶고린도전서는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첫 번째 편지입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쓰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소식을 듣고 무척이나 마음이 아팠기 때문입니다.
  우선 고린도 교회에 심각한 분열과 갈등이 일어났습니다. 자기를 따르던 많은 사람들이 자기에게 등을 돌리고 아볼로를 따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기를 비난하고, 자기를 따르는 자들과 대립하고 있었습니다.
  다음으로 음란과 죄악이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자기가 가르치고 훈련시켰던 것을 저버렸습니다. 대신 세상 풍조를 따라 교인들이 음란한 일들을 저지르고, 세상 사람들이 행하는 죄를 서슴없이 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몹시도 화도 나고 염려도 되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편지에 쓴 첫 번째 말은 축복입니다. 1:3절에 보면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그리고 4절에 보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렇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 때문에 분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린도 교회 때문에 큰 염려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저들을 축복합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고린도 교인들을 사랑하시고 또 저들을 뜻 가운데 부르셨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할/
  우리도 이웃들에게 축복하며 살아야 합니다. 축복할 수 있는 사람들을 축복하는 것은 물론입니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축복할 것을 찾아 축복해야 합니다. 나아가 축복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들도 축복하며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오늘로 2013년 주일예배는 마지막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한 해의 마무리를 잘 해야 하겠습니다. 더 나아가 우리 인생의 마무리를 미리 준비하며 살아야 합니다. /할/


  ㉣행여나 우리 인생 길에 성공자가 있습니까? 더더욱 겸손해야 합니다.
  잠15:33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지혜의 훈계라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 또 잠18:12절에는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
  ▶미국에서 있었던 주지사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주지사가 타고 다니는 마차 자리 옆에는 자물쇠로 굳게 잠긴 상자 하나가 항상 놓여져 있었습니다. 그 어느 누구도 그 안에 무엇이 있는 지 모릅니다. 한번도 열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보여준 적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수군거렸습니다.
  '금은 보화가 들어 있을 것이다.' '광산 개발 허가증이 있을 것이다.' '호신용 총이 있을 것이다.'라는 입 소문은 꼬리를 이었습니다.
  어느 날 궁금함을 참지 못 하는 사람이 주지사가 회의하는 틈에 상자를 열어 보았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그 속에는 '다 떨어진 누더기 옷 한 벌과 찌그러진 깡통' 하나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 동안 궁금함을 참지 못 하던 사람들이 수 백명 몰려 와서 다같이 보았습니다. 그 때 주지사가 나왔습니다. 한 사람이 용감하게 물었습니다.
  '주지사님! 항상 간직하고 다니시는 상자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열어 보았습니다. 왜 거지 옷과 깡통이 들어 있나요?' 주지사는 멋쩍은 듯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사실은 나는 오갈 데 없고 잘 곳이 없는 거지였습니다. 그런 저를 하나님이 주지사까지 시켜 주셨습니다. 주지사가 되어 교만한 마음이 들 때마다 마차를 타고 다니면서 이 상자를 열어 보지요. 그리고 나 스스로를 낮추며 산답니다. 나는 거지였습니다.'
  모인 모든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감동을 받아 두 손을 높이 들고 외쳤습니다. '주지사님, 만세! 주지사님, 만세!' /할/ 그 사람은 주지사가 되어도 물질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사람을 보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높이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멘!/ 
  이런 사람은 더더욱 축복을 받게 됩니다. 잠29:23절에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 그리고 잠22:4절에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아멘!/
  ▶인생을 참 멋있게 살다간 한 인생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이런 인생도 있었습니다. 그 당시 나이는 54살입니다. 가정이 없습니다. 결혼도 하지 않아 독신입니다. 자녀도 없고 부모도 없고 친척도 없습니다. 공부도 하지 못 했습니다.
  중국집에 취직하여 오토바이를 타고 짜장면 배달하는 배달원입니다. 그 당시 한 달에 70만원 받는 것이 전부입니다. 재산이 없어 겨우 한 명 누우면 꽉 차는 쪽 방에서 혼자 잠만 자고 있습니다. 이 분을 계절로 말하면 봄 일가요? 여름일가요? 가을일가요? 겨울입니다. 말할 것도 없이 겨울인생을 사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의 이름은 김유수입니다.
  그런 그가 중국집의 음식을 배달하던 중 승용차와 충돌하여 병원에 실려 갔습니다. 25일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대통령이신 이명박 대통령과 김윤옥 여사가 조문을 갔습니다. 나경원, 정동영 등 정계 거물들이 그의 장례에 참여를 했습니다.
  그의 죽음이 왜 온 국민의 관심을 끌었을까요?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살면서도 매월 5만원-10만원을 어린이 재단을 통하여 소년소녀 가장을 도왔습니다. 2006년부터 쉬지 않았습니다. 보험 4,000만 원짜리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죽으면 그 돈을 타서 어린이를 돕게 했습니다. 어린이 재단 후원회장 최불암이 상주 역할을 맡아 장례를 주도했습니다.
  그의 영정 앞에는 그에게 도움을 받은 아이들이 애도하는 편지가 쌓였습니다. '희망을 가지고 당당하게 살라고 항상 격려하여 주시던 아저씨를 가슴에 묻고 평생 살아가겠습니다.'
  대통령 영부인 김윤옥 여사가 영정 앞에서 말했습니다. '기부나 봉사는 돈이 있다고 하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고인의 마지막 길을 잘 보살펴 드리십시다.'
  이명박 대통령도 고인 앞에서 말했습니다. '고인은 가진 것을 나눔으로서 그것이 더욱 커지고 누군가에게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진정한 나눔의 삶을 실천으로 보여 주었습니다.'
  그가 그렇게 죽은 후 어린이 재단 홈페이지에는 기부가 꼬리를 이었습니다. 댓 글은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천사 중국집 배달원 아저씨의 뜻을 이어 기부를 시작하겠습니다.'
  겨울 추운 인생을 살면서도 이렇게 많은 씨를 꾸준히 뿌리고 나니 그의 인생을 아름다운 마침이 되었습니다. 김유수씨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며 살게 해 주고 갔습니다. 주님은 행20:35절에서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갈6:7절에서는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아멘!/


  ㉤인생은 '인생 깊은 곳에서 깊은 깨달음'이 있습니다.
  인생의 여정은 언제나 깊은 바다를 항해하는 것과 같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드넓은 바다를 보면서 늘 '저 바다 깊은 곳은 어떻게 생겼나? 거기에는 어떤 생명체들이 살고 있을까?'를 궁금했었습니다.
  우연히 어떤 분의 자료를 보니까, 전 세계 바다의 평균 깊이가 대략 3,800미터랍니다. 우리나라 동해의 평균깊이가 1,350미터니까 그 깊이를 상상하기 힘이 들 것입니다. 그리고 바다 한 가운데로 가면 깊이가 3키로가 넘는 깊은 심해 바닥이 대평원을 이루고 있답니다. 이 심해 대평원은 지구상 육지 면적을 다 합한 것보다도 넓답니다. 여기에 우리가 상상하기 힘든 식물들과 동물들이  셀 수 없이 많이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바다 표면에서 파도가 치고 풍랑이 일어도, 수심 10미터 아래로 내려가면 별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답니다. 태풍이 일어나고 해일이 일어서 바다 물을 뒤집어 놓아도, 수심 50미터 정도만 내려가도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답니다. 그리고 태양 빛이 아무리 강렬하게 내려 쬐어도, 수심 200미터 아래로 내려가면 전혀 태양 빛이 도달하지 못한답니다. 그야말로 딴 세상입니다. 그곳이 바로 '깊은 곳'입니다.
  ▶그런데 시130:1절에 보면, 우리 인생 길에도 '깊은 곳'이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시인은 '여호와여 내가 깊은 곳에서 주께 부르짖었나이다.' 시인은 깊은 곳에서 주께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지금 '깊은 곳'에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깊은 곳이란 바다 저 깊은 곳처럼 평상시에는 상상하기 힘이 드는 곳을 말합니다. 일상 속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곳을 말합니다. 성경에는 나름대로 인생의 '깊은 곳'을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 가운데 하나가 요나입니다.
  ▶요나에게서 깊은 곳은 물고기 뱃속이었습니다. 욘1:17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요나가 밤낮 삼 일을 물고기 뱃속에 있으니라' 그리고 2:2절을 보면,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나는 바다 가운데 던져졌습니다. 마침 그 때 큰 물고기가 요나를 삼켰습니다. 요나는 그 큰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이곳에서 밤낮 삼 일을 머물게 됐습니다. 이 때 요나는 그 자리를 '스올의 뱃속'이라고 불렀습니다. 여기서 스올은 '음부'입니다. 이 음부란 한마디로 '지옥의 대기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옥에 들어가기 직전 잠시 대기하는 장소라 할 수 있습니다. 요나는 이 스올과 같은 물고기 뱃속에서 인생의 깊음을 맛보았던 것입니다. /할/


  ▶사람들은 이 스올의 뱃속과 같은 인생의 깊은 곳에서 대개 다음과 같은 것들을 겪게 됩니다.
  ⑴고통입니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밤낮 삼일을 머물렀습니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정신적 고통과 육체적 고통 속에 정말 힘겨운 시간을 보냈을 것입니다.
  우리도 때로는 평상시에는 상상하기 힘든 고통의 시간을 겪을 때가 있습니다. 정신적 충격을 받아 견디기 힘이 드는 스트레스를 받을 때가 있습니다. 질병이나 사고로 견디기 힘이 드는 육체적 고통의 시간을 겪을 때가 있습니다.
  철학자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내가 존재한다.'라는 명제를 내 걸었습니다. 생각하는 나를 보면서 나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내가 고통을 겪는다. 고로 내가 존재한다.'라는 명제를 내 걸었습니다.
  무슨 말씀인가? '고통을 겪으며 인생의 깊음을 맛보며 나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평상시 상상하기 힘이 드는 고통을 겪으며 인생의 깊음, 존재의 깊음을 만나게 됩니다. 이때부터 인생의 깊이를 깨닫게 됩니다. 이때부터 막 살지 안습니다. 주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살게 됩니다. 그러므로 고통은 아주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할/
  ⑵두려움입니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모든 것을 다 내려놓아야 했습니다. 어딜 봐도 빠져나갈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자기 힘으로 길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머리 속에 쌓아두었던 지식, 온 몸으로 체득해 왔던 인생의 경험들, 자기가 그토록 정성껏 모아왔던 재물들, 그동안 유지해 왔던 인간관계들, 지금 이 순간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제 무엇 하나 붙잡고 의지할 것이 없었습니다. 그 때 두려움이 해질 녘 땅거미 밀려오듯 온 마음 가득 밀려들었습니다.
  우리도 때로는 걷잡을 수 없는 두려움에 빠져들 때가 있습니다.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안간힘을 써 봐도 그 두려움을 이겨낼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평상시 상상하기 힘이 드는 두려움을 겪으면서 인생의 저 깊음을 만나게 됩니다. 이때부터 그 인생은 막 살지 안습니다. 생각하며 살게 됩니다. /할/
  ⑶절망입니다. 요나는 2:5-6절에서 '물이 나를 영혼까지 둘렀사오며 깊음이 나를 에워싸고 바다풀이 내 머리를 감쌌나이다. 내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사오며 땅이 그 빗장으로 나를 오래도록 막았사오나...'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그 어떤 희망도 찾을 수 없는 절대 절망을 겪었다는 것입니다.
  최근 우리 사회에 '절망형 은둔자'들이 늘고 있답니다. 실업과 저임금으로 생계가 어려워지고 일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사회적 관계가 단절된 채, 깊은 절망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부유층과 정치권의 부정부패를 목도하면서 사회적 불만을 표출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이 사회학자들의 주장입니다. 그래서 이런 절망형 은둔자들이 저지르는 소위 '절망 살인'이 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평상시 상상하기 힘이 드는 절망을 겪으면서 인생의 저 깊음을 만나게 됩니다. 이때 믿음의 사람과 세상사람들과 확연히 다른 현상이 나타납니다. 어떤 현상이 나타납니까?
  믿음의 사람들은 더더욱 하나님께 가까이 가게 됩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술과 자포자기로 찌들어 그 인생이 절망으로 끝나는 사람들이 엄청 많습니다.
  우리는 이럴 때일수록 더욱 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시130:7절에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여호와께는 인자하심과 풍성한 구속이 있음이라' /할/
  ▶세계적인 성악가 가운데 빅 쓰리 중 한 사람으로 인기를 누리던 테너 '호세 카레라스'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인기 최고의 절정에 있던 나이 41살에 백혈병으로 쓰러지게 됐습니다.
  오페라 '라보엠'의 주인공을 맡아서 열정을 다해 연습하고 있던 도중 갑자기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게 됐습니다. 검사 결과 백혈병 선고를 받고 가망이 없다는 안타까운 의사 소견을 듣게 됐습니다.
  이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도 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이 인생의 깊은 곳에서 깊은 기도를 드렸습니다. 지금까지 자기가 하던 기도와 달리 정말 생명을 걸고 기도했습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서원을 했습니다. '나의 생명을 연장해 주시면 남은 평생 주를 위해 충성을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기적 같은 치유가 시작되었습니다. 골수 이식과 힘든 화학치료도 받았습니다. 머리카락이 빠지고 손톱과 발톱도 엉망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기도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찬송을 더욱 힘차게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역사 하심 속에 회복되어 과거처럼 노래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가 깊이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다시 살려주신 것은 단순히 노래만 부르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증거하고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소망을 주는 삶을 살라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전 재산을 팔아 바르셀로나에 '호세 카레라스 백혈병 재단'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공연 수익금을 이곳으로 보냈습니다. 자기가 깨닫고 서원한 대로 살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생 깊은 곳에서는 깊은 깨달음이 있습니다. 평상시 잘 모르고 지나치던 하나님의 뜻을 깊이 깨닫는 깨달음이 있습니다. 쫓기듯 등 떠밀려 살면서 까맣게 잊고 있던 사명에 대한 깊은 깨달음이 있습니다. 이것이 축복입니다. /할/


  ②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겉 사람보다는 속 사람을 변화시켜야 합니다(고후4:16-18).
  이제 우리는 이틀만 지나면 또 한 해가 지나고 우리는 모두 나이를 한 살 씩 더 먹게 될 것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나이 먹는 것이 반가우면 아직 젊은것이고, 나이 먹는 것이 반갑지 않으면 늙은 것이다.' 여러분은 어느 쪽입니까? 아마 우리 태산이나 다니엘이 아니라면 거의 대부분 나이 먹는 게 반갑지 않을 겁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건대 우리는 모두 늙어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누구에게나 늙어간다는 것은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닙니다. 육신이 쇠약해지고 많은 것을 상실해 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유쾌한 일도 있습니다. 영적으로 보면 점점 더 하나님께 가까워지고, 영원한 본향 천국에 다가가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할/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육신은 나이가 들수록 쇠약해지고 추해질지 모르나 우리 영혼은 날마다 새로워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육신의 나이테는 거친 모습일지 모르나, 영혼의 나이테는 곱고 아름다운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한 해를 정리해야 할 송영주일에 우리 각자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 영혼의 나이테는 얼마나 곱고 아름답게 새겨지고 있는가? 아무쪼록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영혼이 더욱 풍성해지고 아름다워지는 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⑴인생의 겉 사람은 날마다 후패해져 갑니다.
  '겉 사람은 후패하나' 그랬습니다. 인간은 육체와 영혼으로 되어 있습니다. 육체는 겉 사람, 영혼은 속 사람입니다. 육체는 태어나서 일정 기간 동안(약 25년 내외) 성장하지만, 그 후로는 노화됩니다. 아무리 건장한 사람이라도 20대 후반이 되면 자기도 모르게 노화되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래서 육체적으로 예민한 운동선수들의 경우를 보면 30세만 넘어도 벌써 은퇴 소리가 나오는 것을 흔히 보게 됩니다. 이처럼 육체는 세월이 갈수록 쇠퇴합니다. 후패한다는 말이 바로 그런 뜻입니다. 여기서 '후패하다'는 '낡아지다, 닳아서 해어지다, 썩다' 등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육체가 이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특히 중년을 넘어가면서 육체의 노화 현상이 확연하게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어느 날 문득 머리카락이 빠지거나 희어지고, 쉬이 피로를 느끼고 신체 기능이 예전 같지 않음을 직감하게 됩니다.
  성경에도 보면 인간의 육체가 후패하는 모습이 곳곳에 나와 있습니다. 그 중에 노화의 모습을 가장 리얼하게 묘사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전12:3-5절에 '그런 날에는 집을 지키는 자들이 떨 것이며 힘있는 자들이 구부러질 것이며 맷돌질하는 자들이 적으므로 그칠 것이며 창들로 내어다 보는 자가 어두워질 것이며 길거리 문들이 닫혀질 것이며 맷돌 소리가 적어질 것이며 새의 소리를 인하여 일어날 것이며 음악하는 여자들은 다 쇠하여질 것이며 그런 자들은 높은 곳을 두려워할 것이며 길에서는 놀랄 것이며 살구나무가 꽃이 필 것이며 메뚜기도 짐이 될 것이며 원욕이 그치리니 이는 사람이 자기 영원한 집으로 돌아가고 조문자들이 거리로 왕래하게 됨이라'
  노화 현상에 대한 비유적인 표현들입니다. 집을 지키는 자는 '손'을 가리키는데, 늙으면 무기력해지고 손이 떨리는 것을 비유한 것입니다. 힘있는 자들은 '다리'를 가리키는데, 늙으면 다리에 힘이 없어진다는 표현입니다. 맷돌질하는 자는 '이'를 가리키는데, 이가 빠져서 씹기 어려워진다는 뜻입니다. 창들로 내어다 보는 자는 '눈'을 가리키는데, 늙으면 눈이 어두워지는 것을 비유합니다. 길거리 문들은 '귀'를 가리키는데 청각이 어두워지는 것을 의미하고, 맷돌 소리가 적어진다는 것은 '이'가 없어서 음식물을 먹을 때 소리도 나지 않음을 나타냅니다. 새 소리에 잠을 깬다는 것은 잠을 깊이 자지 못해 일찍 깬다는 것입니다. 음악 하는 여자들은 '성대'를 가리키는데, 늙으면 소리도 약해진다는 것입니다. 노년이 되면 높은 곳, 길에 마음대로 거동하지 못함을 나타냅니다. 살구나무를 봉오리 때는 분홍빛이다가 만개해서 떨어질 때가 되면 흰색이 됩니다. 이것은 머리칼이 희어짐을 묘사합니다. 메뚜기도 짐이 된다는 것은 그만큼 몸이 약해진다는 것입니다. 원욕이 그친다는 것은 식욕이 없어지고 매사에 의욕이 없어짐을 나타냅니다. /할/
  이렇게 육체가 후패하니까 자연히 외모나 건강에 신경을 쓰게 됩니다. 요즘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노화 방지를 위한 식품이나 약품, 화장품 등이 인기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늙지 않으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가는 세월을 막을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따라서 육체의 후패 함을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게 좋습니다. 성경은 육체를 부정적으로 말하거나 죄악시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창조물이요 선물입니다. 건강관리 잘 하고 최대한 아름답게 관리하면 좋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만을 전부로 알면 오히려 낙심하게 됩니다. 너무 육체의 후패함에 마음을 빼앗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주목 대상이 아닙니다. 18절 보면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돌아보다'라는 말은 곧 주목하는 것, 뚫어지게 바라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날로 후패해 가는 겉 사람을 너무 신경 쓰며 바라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할/


  ⑵날로 새로워지는 속 사람을 키우십시오!
  인간의 가치는 영혼에 있습니다. 육체도 귀합니다. 기독교는 육체를 죄악시하거나 부정적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육체보다 영혼이 중요합니다. 삼상16:9절에 보면, '하나님은 외모를 보지 않고 중심을 보신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영혼을 더욱 중시하신다는 뜻입니다.
  육체는 영혼을 담는 그릇과 같습니다. 그릇보다 중요한 것은 내용물입니다. 똑같은 그릇이라도 내용물에 따라 달라집니다. 밥그릇, 국그릇, 반찬 그릇 등, 똑같은 상자라도 내용물에 따라 보물 상자도 되고, 쓰레기 상자도 됩니다. 그래서 영혼이 중요하다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감사한 것은 우리 육체는 후패하지만, 우리의 속 사람은 날로 새로워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세월이 흘러가도 우리가 잘 하기만 하면 영혼이 더욱 풍성해지고,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할/
  그러므로 우리는 영혼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신령한 신앙인들은 한결같이 영혼에 큰 관심을 갖고 살았습니다. 바울은 갈4:19절에서 성도들을 향해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그는 성도들의 영혼이 변화되어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룰 수 있도록 얼마나 기도하며 수고하는지 해산하는 수고를 한다고 표현했습니다. 베드로도 비슷한 말을 합니다. 벧전3:3-4절에서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비록 우리 육체가 후패해져도 영혼이 이렇게 새로워지면 됩니다. 본문에서도 강조합니다.
  17-18절에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겉 사람 육체가 쇠하는 것만 보면 낙심이 되지만 속 사람이 새로워지고 영원한 천국에 있음을 생각하면 소망이 있습니다. /할/

 
  ⑶속 사람을 가꾸어감으로 날로 새로워지면 어떤 유익이 있을까요?
  ㈀영생의 기쁨입니다. 영생은 장차 천국에 가서 사는 것만이 아닙니다. 예수를 모심으로 이미 우리 영혼에 시작된 것입니다. 이것은 돈 생기는 일은 아니지만 그보다 더 좋은 것입니다. 더 풍요로운 것입니다. 영생을 얻으면 이 세상에서도 환경을 초월해서 하늘에 속한 신령한 평안과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찬송합니다.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아멘!/
  ㈁천국의 소망입니다. 천국은 육안으로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영혼을 통해서는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영혼이 맑지 않으면 보이지 않습니다. 영혼이 새로워질수록 천국은 가까이 보입니다. 그것이 곧 천국의 소망입니다. 이 소망이 넘치면 이 세상에서 겪는 고난을 능히 이길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천국의 영광을 보면 그 엄청남이 세상의 고난을 가볍게 느끼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육체의 건강과 아름다움입니다. 영혼이 새로워지면 그것이 육체에도 영향을 줍니다. 외모가 아름다워질 수 있습니다. 우리 말 얼굴은 본래 '얼꼴'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얼'은 영혼을 의미하고 '꼴'은 모양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얼굴은 영혼의 모양이란 뜻입니다. 우리 영혼이 강건하고 아름다워지면 외모도 좋아질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보기 좋게 늙을 수 있습니다.
  ▶어느 부인의 이야기입니다. 그분은 항상 밝은 표정입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이 다 좋아합니다. 그런데 그 나이를 알고 나면 깜짝 놀랍니다. 왜냐하면 10년 이상 젊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주위에서 자꾸 묻습니다. '매력을 유지하는 비결이 뭡니까?' 그분은 겸연쩍어서 대답을 못하다가 하도 성화를 부리니까 하는 수 없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글쎄요. 저는 특별히 외모를 많이 가꾸지 않습니다. 영혼을 위해 살았습니다. 입술을 위해서는 진실을 말하고, 음성을 위해서는 찬양을 하고, 눈을 위해서는 긍휼을 품고, 손을 위해서는 자선을 베풀고, 얼굴을 위해서는 정직한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했습니다.'
  흔히 자주 분노하는 사람은 인상이 험하게 바뀌는 것을 보게 됩니다. 찡그리면 안면 근육 72개가 움직이고, 미소를 지으면 안면근육 14개가 움직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웃으면 주름이 덜 생기고, 생겨도 곱게 생긴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연로해서 주름이 생긴 분들을 가만히 보면 어떤 분은 주름이 웃고 있고, 어떤 분은 주름이 화내고 있습니다.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인상이 달라진 것입니다. 영혼에 평안과 기쁨이 있으면 분명히 얼굴이 좋아집니다. 
  건강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건강은 유전적인 요인이나 환경적인 요인이 있으므로 함부로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보편적으로 영혼의 상태가 육체의 건강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잠17:22절에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 /할/
  ㈃부활의 소망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부활의 소망입니다. 빌3:20-21절에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할/


  ⑷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우리의 속 사람 영혼을 아름답게 가꿀 수 있을까요?
  ㈀마음의 문을 통제해야 합니다. 우리 마음 속에는 세상의 악한 것들이 밀고 들어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마음의 문을 잘 통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음속에 좋은 것들만 받아들여야 합니다. 미움, 질투, 의심, 교만, 불안 등 무익하고 악한 것들을 절대로 받아들이면 안 됩니다. 마음을 지키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잠4:23절에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할/
  ㈁죄악의 잡초를 다 제거해야 합니다. 우리 마음 속에 끊임없이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이런 죄악의 잡초를 송두리째 뽑아내야 합니다. /할/
  ㈂가장 중요한 것은 '기도와 말씀으로 무장하고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마음에 악한 것들이 들어오는 것을 막고, 마음 속에서 죄가 솟아나는 것을 조심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소극적인 것입니다.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란 말이 있듯이 신앙도 공격적인 것이 좋습니다. 우리는 죄악을 막아냄과 동시에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야 합니다. 성령 충만할 때 세상의 죄악이 감히 우리에게 엄습해오지 못합니다. 우리가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과 꾸준히 교제하면 성령께서 우리에게 충만히 임하십니다. 그럴 때, 우리 안에 성령의 열매가 맺어지고, 거룩한 주의 형상이 이루어져 갈 것입니다. /아멘!/
  오늘 송영주일에 결론 말씀은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라고 했습니다. /할/

  여러분! 육체의 나이테는 세월이 가면 저절로 새겨집니다. 그러나 영혼의 나이테는 저절로 그려지는 것이 아닙니다. 10-20년 신앙생활을 해도 그냥 한 살, 두 살로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계속 경건의 연습을 해 나아갈 때 비로소 영혼의 나이를 먹게 됩니다. 그리고 영혼은 육체와 달리 날로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의 영혼의 나이테는 곱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하나 둘 새겨지게 됩니다.
  여러분, 부디 우리 영혼에 나이테가 곱게 새겨져서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내 영혼이 만족하는 참 행복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할/ (2013년 12월 29일 대예배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