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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길시편 127편 1-5절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길
시편 127편 1-5절

< 행복한 가정은 하나님의 뜻 >

미국에서 링컨 다음으로 존경받는 대통령이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입니다. 루즈벨트는 대통령이 되기 전에 6남매를 낳고 키우면서 아주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다리가 점차 마비되면서 결국 휠체어를 타게 되었습니다. 주위 친척들은 그의 아내 엘레나에게 말했습니다. “얘야! 저런 남편과 살면서 6남매를 어떻게 키울래? 그냥 헤어져라!” 그때 엘레나는 말했습니다. “저는 남편의 다리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남편을 사랑했습니다.”그런 아내가 있었기에 루즈벨트는 장애인으로 누구보다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사람이 성공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는 바로 가정의 행복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우리가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왜 우리가 예수를 믿습니까? 세상적인 축복 때문이 아니라 행복을 위해서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행복하게 사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고, 하나님께 가장 영광 돌리는 길이며,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그처럼 하나님은 사람이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시는데 그 행복한 삶을 위해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신 두 개의 기관이 있습니다. 하나는 ‘작은 교회’인 가정이고, 또 하나는 ‘큰 가정’인 교회입니다. 즉 모든 행복은 가정의 행복에서 출발합니다. 그러므로 가정의 행복은 물질보다 소중하고, 재능보다 소중하고, 명예보다 소중한 것입니다.

<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길 >

어떻게 행복한 가정을 이룹니까? 오늘 본문은 행복한 가정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잘 말해주는 본문입니다. 오늘 본문 표제를 보면 솔로몬의 시’라는 표제가 붙어 있습니다. 솔로몬은 역사상 가장 부귀영화를 누렸던 사람인데, 그는 본문에서 부귀영화보다 가정이 더 소중함을 짧은 말로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행복한 가정을 이루려면 무엇이 필요합니까?

1. 하나님이 지켜주셔야 합니다

본문 1절 말씀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솔로몬은 성전 건축에 7년, 왕궁 건축에 13년을 보냈던 왕입니다. 그는 건축에 한해서는 도사 경지에 올랐지만 성전이나 가정이나 하나님께서 세워주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고, 또한 하나님이 지켜주시지 않으면 파수꾼이 열심히 성을 지켜도 아무 소용이 없다고 고백합니다. 엄청난 세상 권력을 가진 솔로몬이 그런 고백을 했다면 우리에게는 더욱 그런 겸손한 고백이 필요합니다.

지금 우리 주변에서는 수많은 불행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런 불행한 일들이 어느 날 우리 가정에도 닥칠 수 있습니다. 교통사고로 누군가 죽는 일이 우리 식구의 일이 될 수 있고, 물놀이 사고로 누군가 죽는 일이 우리 식구의 일이 될 수 있고, 누군가 암 판정을 받고 시한부 인생을 사는 일이 우리 식구의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인생이기에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과 영혼을 지켜주셔야 합니다. 사실 자신의 힘과 능력과 주먹과 도덕성을 믿다가 자녀의 죽음 앞에서, 그리고 큰 문제 앞에서 하나님 앞에 돌아선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간혹 사람들은 죄가 없으면 문제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생각도 버려야 합니다. 욥을 보십시오. 욥은 순전하고 정직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 사람이었습니다(욥 1:1). 그런 그에게 고난은 쓰나미처럼 예고 없이 찾아와 그의 모든 삶을 휩쓸어 갔습니다. 그처럼 가난과 병과 고난이 사람의 죄 때문만은 아닙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 모든 일을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일이란 사람의 예측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람을 지켜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외면하시면 우리 인생은 오늘이라도 끝나게 되고, 하나님이 지켜주시지 않으면 우리의 모든 수고는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되고 맙니다.

본문 2절 말씀을 보십시오. “너희가 일찌기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사람은 열심히 일해야 하지만 열심히 일해도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헛수고가 됩니다. 돈을 들어올 때는 시간이 걸리지만 돈이 나갈 때는 대개 순식간에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마음의 평안을 주시고 편안한 잠을 주십니다. 잠을 잘 자는 것도 큰 축복입니다.

얼마 전에 돌아가신 한신교회 이중표 목사님의 얘기입니다. 그분이 교회 개척 전에 함께 기도하던 두 분의 개척교회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그런데 두 분의 기도 스타일이 아주 달랐습니다. A 목사님은 금요일에 기도원에 오면 골방에 들어가 실컷 잠을 자고 토요일에는 얼굴이 훤하게 되어서 내려갔습니다. 반면에 B 목사님은 금요일에 기도원에 오면 좋은 바위에 터를 잡고 밤새도록 “주여!” 하고 부르짖고 토요일에 목이 쉬어서 내려갔습니다.

그렇게 6개월쯤 되었을 때 B 목사님이 이중표 목사님에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요새 참 실망이 됩니다. 하나님이 너무 불공평하신 것 같습니다. 왜 초저녁부터 잠만 자는 A 목사님 교회는 저렇게 급속도로 부흥하는데, 밤새 철야를 하는 저의 교회는 이렇게 전혀 부흥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살아 계시면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그 말을 듣고 이중표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목사님! 목사님도 잘 주무십시오. 개척교회 하려면 얼마나 근심과 스트레스가 많습니까? 그런데 A 목사님은 그 모든 근심과 스트레스를 ‘믿습니다!’하고 잠으로 풉니다. 그러니까 얼굴이 훤해져서 교인들이 ‘우리 목사님은 기도원에 갔다 올 때마다 얼굴이 훤해지네!”하고 얼굴만 봐도 은혜가 되니까 교회가 부흥되는 것입니다.“

그 말은 철야기도가 잘못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그만큼 믿음의 중요성을 역설한 것입니다. 믿음은 사람의 어떤 수고보다 중요한 것입니다. 그 믿음은 편안한 잠을 통해서 잘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에게 믿음 주시고, 잠을 주시고, 그 가정을 지켜주십니다. 그처럼 하나님이 지켜주시는 가정이 행복한 가정이 될 것입니다.

2. 자녀를 잘 양육해야 합니다

본문 3절 말씀을 보십시오.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자녀는 어쩌다 생긴 존재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또한 자녀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내려주신 특별한 선물이고 가장 큰 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명감을 가지고 자녀를 잘 길러야 합니다. 자녀를 잘 기르는 일은 돈을 잘 버는 일이나 다른 어떤 일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옛말에 침묵은 금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가정 내에서는 침묵은 금이 아니라 금이 가게 하는 것입니다. 가정에서는 격려의 말, 사랑의 말을 많이 해주어야 합니다. 자녀에 대해 속상하다고 “도대체 누굴 닮아서 그래?”라고 말하는 것은 큰 잘못입니다. 성경은 우리 자녀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런 자녀에게 “누굴 닮아서 그래!”라고 하는 말은 하나님께는 가장 모욕적인 말입니다.

가끔 부모 자신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고 “너 도대체 몇 살이냐?”라고 하면 자녀는 점차 비관적인 자녀가 됩니다. 사실 자기 눈높이에 맞추려는 것은 미성숙한 것이고, 남의 눈높이에 맞추려는 것이 성숙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 도대체 몇 살이야?”라고 하면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그렇게 말하는 부모에게 “너야말로 도대체 몇 살이냐?”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가끔 보면 자녀의 약점 때문에 속상할 때가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그 약점을 주었을까요? 그 약점 때문에 속상해하거나 그 약점을 지적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부모가 그 약점을 보충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녀의 약점이 보일 때마다 부모는 그 약점을 보충해서 자녀를 잘 키울까를 생각해야지 속이 상하다고 한탄만 하면 안 됩니다. 이 세상에 약점이 없는 아이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어떤 믿음이 좋은 부부는 결혼 15년 만에 아이를 가졌는데 낳고 보니까 기형아였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그 믿음이 좋은 부부에게 그런 아이를 주셨을까요? 하나님의 저주일까요? 아닙니다. 그 반대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그 아이는 어차피 이 세상에 태어날 아이였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이 아이를 어느 가정에 보낼까? 아! 저 가정에 보내면 저 부부가 누구보다 잘 키우고 사랑해주겠지!” 그처럼 그 부부를 믿으시고 그 가정에 장애아와 기형아를 보내셨을 수도 있습니다.

그처럼 아무리 부족한 자녀도 하나님의 소중한 선물로 여기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그 약점을 보충해주고, 그 약점 때문에 자녀를 더 사랑해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모습을 보시고 “너는 내 기대대로 내가 보낸 나의 소중한 생명을 잘 키우고 있구나!”고 흡족하게 여기시고 축복의 문을 활짝 열어주실 것입니다.

3. 부모가 본이 되어야 합니다

본문 4-5절 말씀을 보십시오.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 전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저희가 성문에서 그 원수와 말할 때에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 고대 전쟁에서 화살이 전통에 가득 차 있으면 대적 앞에서 당당할 수 있었습니다. 그처럼 자녀라는 화살이 우리의 가정이라는 전통(箭筒, 화살통)에 많이 있으면 인생에 큰 힘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녀를 많이 낳고, 육신의 자녀가 적으면 영적인 자녀라도 많이 낳아야 합니다.

특별히 본문에 나오는 “자식이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다!”는 말씀은 부모가 자녀를 키울 때 삶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레바논의 시인 칼릴 지브란은 말했습니다. “부모는 활이고, 자녀는 화살이다. 자녀라는 화살은 부모가 쏜 대로 나간다.” 그러므로 부모는 자녀라는 화살을 엉뚱한 곳에 쏘지 말고 자녀가 하나님 안에서의 바른 가치관과 목표를 가지고 살게 해야 합니다. 그처럼 자녀가 바른 길을 가도록 하는 것은 부모의 제일 중요한 사명입니다.

유대인들은 자녀라는 화살을 세상이 아닌 하나님을 향해 쏩니다. 그런데도 신기하게 세상에서 누구보다 뛰어난 존재가 됩니다. 반면에 오늘날 많은 부모들은 자녀라는 화살을 하나님이 아닌 세상을 향해 쏩니다. 그래서 교회보다 학원을 더 보냅니다. 그런데도 신기하게 세상을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지배를 받게 되고, 결국 잘못 쏘아댄 화살은 눈물의 씨앗이 되어 돌아와 자신의 가슴과 마음에 박히게 될 것입니다.

요새 자녀를 기 살린다고 부모들이 많이 노력합니다. 그러나 너무 기를 살려서 버릇없게 키우면 사회에서 낙오자가 됩니다. 그러므로 기를 살리는 교육도 필요하지만 남을 배려함으로 인격을 살리는 교육이 더욱 중요합니다. 내 자녀가 사랑스러우면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받도록 바르게 잘 가르쳐야 합니다. 그렇게 잘 가르치기 위해서 부모도 본을 보여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이 무엇일까요?

1)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요새 가정을 파괴하는 제일 요인 중의 하나가 바로 돈입니다. 돈 때문에 가족을 등한시하고, 형제간의 우애가 깨지고, 불효자가 생깁니다. 우리는 정당한 땀의 대가로 얻은 돈을 소중히 여겨야 하지만 돈을 하나님처럼 섬기지는 말아야 합니다. 현대인들이 불행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모든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욕심이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면 사망을 낳는다”고 했습니다(약 1:15). 사람을 죽이는 근본 원인은 욕심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자녀의 행복을 원하면 자녀의 욕심부터 제거하려고 부단히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서는 부모가 먼저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이론교육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실물교육을 해야 합니다.

TV를 볼 때 사랑의 리퀘스트나 재난 방송을 하면서 ARS 후원을 요청하면 그때가 자녀 교육의 좋은 기회입니다. “은혜야! 한나야! 전화 한 통씩 돌려라!” 그러면 자녀들은 남을 도와준다는 생각에 신나게 전화를 돌립니다. 그런 교육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자녀의 일생의 행복을 좌우하는 소중한 교육이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선교와 구제에 힘쓰는 부모의 모습은 자녀의 축복을 예비하는 가장 소중한 길입니다.

십일조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십일조 생활은 믿음의 표시이고, 말씀의 은혜를 받은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이지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부모의 정성스런 십일조 생활을 자녀가 보면 속으로 부모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게 됩니다. 술 먹는 부모 밑에서 자란 자녀가 술을 배우듯이, 헌신하는 부모 밑에서 자란 자녀는 헌신을 배웁니다.

자녀가 헌신을 배워 욕심을 이기는 능력을 키우면 그 자녀는 베풀고 살면서 행복하게 살 수 있고,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베푸는 손길이 커질 것이고, 하나님께서는 더 베풀 수 있는 능력도 주실 것입니다. 어렸을 때 자녀의 욕심을 제거하지 않으면 커서 “무자식이 상팔자야!”라는 탄식이 반드시 나오게 될 것이고, 어렸을 때 자녀의 욕심을 버리는 훈련을 잘 시키면 나중에 자식 때문에 기쁜 일이 많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

2) 배우자를 존중해야 합니다.


자녀가 이 세상에서 가장 원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엄마 아빠가 서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부부 간의 사랑은 자녀에게 최대의 안정감을 주는 것으로, 부모가 자녀에게 줄 수 있는 최대의 선물입니다. 오늘날 많은 부모들이 자녀를 사랑한다고 여러 가지 해주려고 애쓰지만 부부가 서로 사랑하는 것만큼 큰 자녀 사랑은 없습니다.

무엇보다 자녀들 앞에서 배우자 흉을 절대 보지 말아야 합니다. 흉보기에 가장 좋은 비밀 장소가 있습니다. 그곳은 바로 하나님 앞입니다. 배우자에 대해 실망했거든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며 흉을 보십시오. 그러면 신기하게 배우자에 대해 이해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그리고 난 후에 배우자를 칭찬하고 높여주는 말을 하면 그 말을 자녀들이 듣고 아빠 엄마에 대한 생각이 싹 달라집니다. “우리 부모님이 이렇게 존경받을만한 분이구나!”

그처럼 서로를 높여주는 부부의 예절 바른 말은 자녀를 직접 칭찬하는 말보다 훨씬 더 자녀의 인성과 인격 형성에 큰 보탬이 됩니다. 반대로 부부가 생각 없이 툭 던지는 나쁜 말은 부부 당사자뿐만 아니라 자녀에게도 큰 상처를 줍니다.

어떤 아내는 남편이 일찍 들어오면 말합니다. “이게 웬일이야! 해가 서쪽에서 뜨겠네.” 앞으로도 일찍 들어오라는 말이지만 그런 말을 들으면 오히려 집에 들어오고 싶은 생각이 사라집니다. 어떤 남편은 아내가 외출할 때 이 옷 저 옷을 입어보면서 고민하니까 특 말을 던집니다. “영국산 요크셔 뚱보가 옷에 왜 그렇게 옷에 신경을 써!” 그 말은 살 좀 빼라는 말이지만 진짜 그 문제로 심각하게 고민하는 사람에게는 큰 상처가 됩니다.

부부는 오래 함께 살았어도 예절 바른 언어를 쓰려고 노력해야 하고, 특별히 배우자의 약점을 건드리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가문이나, 학력이나, 외모나, 다른 어떤 약점이 있습니다. 그 약점만은 절대로 건드리지 말아야 합니다.

힘든 시집살이는 대개 남편 때문에 생깁니다. 남편이 아내의 허물을 품어주지 못하니까 그 가정에서 며느리가 힘들어지는 것입니다. 부부는 서로의 허물을 덮어주고, 서로를 존중하는 언어를 최대한 사용해야 합니다. 물론 재미있게 농담할 때도 있어야 하지만 항상 서로를 존중하고 언어의 예절을 지켜줄 때 자녀는 누구보다 바르게 자랄 것입니다.

3) 책임감이 있어야 합니다.

배우자가 서로 존중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자신이 책임감을 가지고 존경받을만한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남편이 돈에 욕심이 없는 것은 좋지만 아내와 자녀의 먹는 문제는 책임을 져야 하고, 그 일을 위해서라면 어떤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도 해야 합니다. 자녀는 부모가 3D 업종에 종사해도 책임감이 있는 모습을 보면 큰 존경심을 보낼 것입니다. 아내도 마찬가지입니다.

책임감이 있는 사람을 보면 든든합니다. 집밖에서는 강한 것이 매력이지만 집안에서는 든든한 것이 매력입니다. 사자가 밖에 나가서는 정글을 호령하지만 굴 안에 들어올 때는 발톱을 싹 감추고 꼬리치면서 들어옵니다. 그처럼 가정 밖에서는 큰소리를 쳐도 가정 안에서는 부드럽고 의지할만한 남편과 아빠가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가정은 싸우는 일터가 아니라 서로 의지하고 서로의 허물을 덮어주며 사는 보금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옛날에 12살 먹은 꼬마신랑이 있었습니다. 신부는 18살인데, 꼬마 신랑이 항상 졸졸 따라다니면서 누룽지 달라고 보채고, 같이 놀자고 보채니까 귀찮아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하루는 시어머니가 장터에 나갔을 때 신부가 밥을 하는데 옆에서 꼬마신랑이 또 계속 놀아달라고 하니까 신부가 귀찮아서 신랑을 번쩍 들어다가 지붕에다 올려놓았습니다. 그러자 꼬마신랑이 지붕 위에서 엉엉 우는데 저쪽에서 시어머니가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신부는 간이 콩알만 해졌습니다. “저 꼬마가 울다가 어머니에게 일러바칠 텐데 큰일 났다.”

드디어 시어머니가 가까이 왔습니다. 신부가 초조하게 있는데 꼬마 신랑이 눈물을 그치고 말했습니다. “색시야! 여기 호박 큰 놈 딸까? 작은 놈 딸까?” 그래도 신랑이라고 시어머니 앞에서 자기 아내 허물을 싹 덮어주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신부는 생각했습니다. “신랑이 지금은 어려도 앞으로는 든든한 남편이 되겠구나!” 결국 그 일의 계기로 꼬마 신랑을 잘 받들어서 훌륭한 남편으로 성장시켰다고 합니다.

부부는 서로의 허물을 덮어주고, 서로 높여주어야 합니다. 우리나라 속담 중에 나쁜 속담이 많은데 그 중에 하나가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속담입니다. 요새 그 속담은 바뀌어야 합니다. “암탉이 울면 알을 깐다.” 요새 부동산으로 돈 버는 사람 보면 거의 여자입니다. 남자는 대개 돈을 모으지 못합니다. 돈은 여자가 모읍니다. 성공하려면 암탉이 울어야 합니다.

왜 암탉이 웁니까? 대개 보면 수탉이 책임감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부모가 책임감이 없으면 자녀의 존경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부모가 책임감을 가지고 열심히 살면 자녀도 책임감이 있는 멋진 자녀로 잘 자랄 것입니다.

< 가정을 잘 지키십시오 >

베드로전서 3장 7절 말씀을 보면 “아내를 귀하게 여길 때 기도가 막히지 않는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을 귀하게 여겨야 하지만 누구보다 우리 식구를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우리는 항상 진실해야 하지만 무엇보다 식구들 앞에서 진실해야 합니다. 식구 앞에서 진실한 사람은 위대한 사람이고, 아내로부터 존경받는 남편은 천하를 얻은 사람입니다.

목사도 강단에서 설교하기는 쉽지만 아내 앞에서 진실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설교할 때 솔직히 아내가 없으면 설교가 더 잘 됩니다. 그처럼 가까운 식구들로부터 진실함을 인정받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야 됩니다. 그래야 기도가 막히지 않고 은혜가 막히지 않게 됩니다.

이제 우리는 사랑받는 배우자, 존경받는 부모가 되기에 힘써야 합니다. 짧은 인생을 사는 우리가 가족끼리라도 서로 사랑하며 아끼고 살아가도 아쉬운 것이 인생인데 하물며 가족끼리 서로 사랑하지 못하고 산다면 얼마나 인생이 비참해지는지 모릅니다.

가정은 우리에게 무엇보다 소중한 것입니다. 로마 제국이 멸망한 원인에는 정치적인 이유나 군사적인 이유보다 성도덕의 문란으로 가정이 붕괴된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로마의 철학자인 쎄네카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가정으로 돌아가 가정을 지키십시오.”

그 말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말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주신 가정을 잘 지켜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서 인내할 줄 알아야 합니다. 너무 쉽게 “나는 행복할 수 없어! 나는 잘 살 수 없어!”라고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힘든 날이 지나면 좋은 날이 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족끼리 오순도순 지내고 서로 사랑함으로 그 좋은 날을 준비해야 합니다.

어느 날, 소크라테스 집에 손님들이 찾아왔습니다. 그때 악처 크산티페가 소리를 지르니까 소크라테스는 “손님이 왔으니 조용히 하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크산티페는 더 소리를 지르면서 물동이를 집어 들고 소크라테스에게 물세례를 했습니다. 그 광경을 보고 손님들이 말했습니다. “선생님! 어떻게 살려고 합니까? 빨리 갈라지세요.” 그때 소크라테스가 말했습니다. “천둥이 친 후에는 비가 오고, 비가 온 후에는 곧 날이 갤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가정에 이런 마음의 여유와 인내가 필요하고, 무엇보다 사랑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서로 사랑하라고 부르셨습니다. 그 사랑을 훈련하고 실천하는 제일 장소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족을 주셨습니다. 그 가족 사랑을 실천하면서 점차 우리의 사랑의 폭을 넓혀가는 것이 우리의 할 일입니다. 항상 가정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내 가정을 행복한 가정으로 만들기에 최선을 다하는 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