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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말씀을 통하여 풍성한 은혜가 늘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
시편에 150개의 시가 수록 되어 있습니다. 150개의 시 중에서 23편 이 가장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시라고 한다면, 103편은 가장 기쁨 이 넘치는 시이며, 119편은 절 수가 176절이나 되는 성경에서 가장 절 수가 많은 장이고, 시편 51편은 죄 에 대하여 가장 철저하게 참회하며 슬퍼하는 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인 시편 84편은 시편 중에 도 가장 달콤한 시라고 찰스 스펄전 목사는 말하고 있습니다. 시편 84편 은 하나님의 궁정을 갈망하며 사모 하는 시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예루살렘의 성전은 지상에서 가장 거룩한 장소입니다. 왜냐하면 성전 안에 있는 지성소에 는 하나님의 영광가운데 임재하시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성전을 하나 님께 봉헌하면서 기도하기를 "하나 님이시여, 그렇지만 주께서 정말 땅 에 계실 수 있겠습니까? 가장 높은 하늘도 주를 모실 곳이 못 되는데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성전에 어떻 게 주를 모실 수 있겠습니까? (왕상 8:27현대인의성경)"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며 무소부재 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어느 한 장소에 제 한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께서는 솔로몬이 지은 성전의 지성 소에 안치된 법궤의 뚜껑인 속죄소 위에 영광가운데 임재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 라엘 백성들이 예배 드리는 성전 안 에 그의 영광가운데 계시겠다고 말 씀하셨습니다. 그러하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성전 을 사랑했고, 명절이나 절기에 성전 을 방문하게 되는 날을 기다렸습니 다. 시편 84편을 기록한 시인도 하나 님이 그의 영광가운데 임재 하시는 성전을 갈망하고 사랑하고 있습니 다. 그는 성전에서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일이 얼마나 귀한 선물이요 특권이요 기쁨인지를 잘 알고 있습 니다. 시인의 영혼과 마음과 몸, 그 의 인격전체가 하나님의 성전을 몹 시도 그리워하고 갈망합니다. 1-2절 을 읽겠습니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 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 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 나이다." 시인이 항상 하나님의 궁 전 뜰에 들어가기를 사모하는 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날마다 하나님 의 성전에서 예배 드리며 살 수 없 기에 그는 하나님의 성전에서 제사 장으로서, 레위인으로서 일하는 사 역자들과 하나님의 성전에 동아리를 짓고 살고 있는 참새와 제비를 부러 워합니다. 3-4절을 보면,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 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나이 다. 저희가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 다." 참새는 이 세상에서 가장 많고 흔한 새입니다. 성경에서 참새는 값 어치가 별로 없는 것의 상징으로 많 이 쓰여집니다. 팔레스타인에서는 소년들이 참새를 잡아 팔아 그들의 용돈으로 사용했는데 참새 두 마리 는 한 앗사리온에 팔렸고, 참새 다 섯마리는 두 앗사리온에 팔렸습니 다. 앗사리온이란 가장 값싼 동전 의 단위였습니다. 이스라엘에서 가 장 보잘 것 없으며, 값싸게 팔리는 참새라 할지라도, 성전의 제단 옆에 성전 건물의 조용한 곳에 그들의 보 금자리를 만들고 하나님의 은총을 입으며 살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 리 가운데는 나는 아무 쓸모없는 사 람이며, 나는 아무 값어치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 다. 나는 잊혀진 존재이며 버림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습니 다. 그러나 새 중에서도 가장 값어 치 없는 참새도 하나님의 성전 안에 서 보금자리를 얻고, 폭풍이 불어도, 비가 와도 안전한 곳에서 안식하며 살고있습니다. 마태복음 10:29-31절 에 보면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 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 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 신바 되었느니라.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우리는 참새보다 훨씬 귀한 존재들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나 한 사 람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자신의 생 명을 주실 정도로 우리는 존귀한 하 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은 그 의 성전에 나아와 예배드리는 모든 경배자들 위에 영원한 구원의 확신, 자존감, 하나님 자녀로서 나의 소중 함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주십니다. 제비는 추운 겨울철을 따뜻한 팔 레스타인에서 지내기 위하여 북쪽에 서부터 날라옵니다. 제비는 하루종 일 아침부터 해질 때까지 부지런히 날아다니며 일합니다. 제비는 잠시 도 가만있지 못하고 항상 움직이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비는 안 정감을 가지지 못하고 항상 염려하 며 걱정하며 두려워하며 사는 사람 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만 히 있지 못하고 항상 움직이고 있는 제비도 하나님의 성전에 동아리를 만들고 겨울철을 안전하게 평화롭게 살게 됩니다. 예수께서는 불안해하 고 초조해하는 우리를 향하여 말씀 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 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 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 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 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 11:28-30)." 성 어거스틴은 그의 고 백론에서 말합니다.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 안에서 안식하기 전에는 안 식이 없게 됩니다." 제비도 하나님 의 성전에서 안전한 보금자리를 찾 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자녀가 된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영원한 평강, 세상이 줄 수 없는 평 강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시편 84 편의 시인은 이처럼 하나님의 장막 인 성전에서 날마다 예배 드리며 찬 양을 행하는 사역을 담당하는 제사 장, 레위인들을 부러워하며 심지어 성전에 집을 짓고 사는 참새와 제비 까지도 부러워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이토록 시인은 성전을 사모하며 그리워하고 있습니까? 솔 로몬의 성전건물이 화려하고 웅장해 서 입니까? 그러치 않습니다. 그것 은 성전에 영광 중에 임재하시는 하 나님 때문입니다. 시인은 하나님이 우리의 기쁨과 행복의 근원이 되심 을 알았기에 그 하나님을 갈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을 기뻐하고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하나 님의 맛보기 보다는 세상의 것을 더 갈망하고 맛보려고 합니다. 우리는 멋진 휴가, 재미있는 영화, 신나는 컴퓨터게임, 성의 퀘락, 스릴이 있는 스포츠, 술이나 환각제, 직장에서의 승진, 부동산이나 주식투자를 성공 적으로 행함으로 인한 부의 축적 등 으로 만족을 찾으려고 합니다. 그러 나 이러한 것들은 우리에게 일시적 인 만족과 기쁨을 가져 다 줄뿐입니 다. 이러한 것들을 성취하고 획득한 다음에도 무엇인가를 계속하여 찾고 갈망합니다. 왜 그럿습니까? 이러한 것들은 우리에게 영원한 만족과 기 쁨을 가져 다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 다. 우리가 이 세상의 것들 만으로 만족할 수 없다면, 우리는 다른 세 상을 위하여 만들어진 존재들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있는 배고픔과 갈망은 영원하신 하 나님에 의해서만 채워 질 수 있습니 다. 영원한 만족과 행복은 하나님에 게서만 찾을 수 있습니다. 요한복은 4장 13-14절에 보면 예수께서 사마 리아 여인에게 말씀하십니다.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 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 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 는 샘물이 되리라." 예수께서는 요 한복음 6장 35절에서 "내가 곧 생명 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 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고 말 슴하셨습니다. C.S. Lewis는 우리가 너무나 쉽 게 즐거워 하며, 너무나 변변치 않 은 것으로 만족해한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바다 의 모래 위를 산책하며 수영을 즐길 수있는 아름다운 세상이 있다는 것 을 모르며, 빈민가의 시궁창에서 진 흙 놀이에 만족해 하는 아이들 같다 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문제는 너무도 값싼 것들로 쉽게 만족 해하 며 즐거워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 니다. 우리는 집, 가정, 몇 명의 친 구, 직장, 텔레비전, 전자 레인지, 이 따금의 외식, 휴가, 새 퍼스널 컴퓨 터로 만족해 합니다. 우리가 이처럼 빈약하고 짧은 기간동안만 즐거움을 주는 것들에 익숙해졌기 때문에 진 정한 기쁨에 대한 갈망이 메말라 버 린 것입니다. 창세기에 보면 야곱의 장자 에서 는 팥죽 한 그릇에 만족하여 장자의 권한을 동생 야곱에게 넘겨주었습니 다. 그러나 모세는 그러하지 않았습 니다. 히브리서 11장 24-26절을 보 면 "성장한 모세는 믿음으로 이집트 공주의 아들이 되는 것을 거절했습 니다. 그는 일시적인 죄의 쾌락을 누리는 것보다는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통 당하는 길을 택한 것입니 다. 모세는 약속된 메시야를 위해 받는 고난을 이집트의 보물보다 더 값진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것은 장 차 상받을 것을 기대하고 있었기 때 문입니다." 모세는 에서와는 달리영 원한 하늘의 행복, 기쁨을 위하여 세상의 기쁨을 버릴 수가 있었습니 다. 성경은 우리를 향하여 "하나님" 을 기뻐하라고 말합니다. 시편 37편 4절에 보면 "여호와를 기뻐하라" 고 말합니다. 기뻐하라는 것은 권면이 아니고 명령입니다.시편 34편 8절에 보면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 보아 알지어다."고 했습니다. 시편 16:11절에는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 거움이 있나이다."라고 말합니다. 시 편 119편 103절에는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 에 꿀보다 더하니이다."라고 했습니 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영원한 즐거 움, 행복, 기쁨과 만족을 하나님 안 에서 맛볼 수 있어야 합니다. 기독교는 기쁨과 즐거움의 종교 입니다. 기독교는 금욕의 종교가 아 닙니다. 예수께서는 마가복음 8장 34-35에서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 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 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 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 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 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시기 위하여, 우리의 행복을 빼앗아가기 위하여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 고 그를 좇으라고 말씀하시지 않습 니다. 예수께서는 너무나 값싸고 천 박한 것에 만족해 하는 우리에게 세 상의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영원한 행복, 영원한 생명과 하늘의 기쁨을 주시기 위하여, 우리에게 이기적인 욕심과 정욕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 가를 질머 지고 그를 좇으라고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1857년 12월 아프리카에 최초로 복음을 전한 위대한 선교사였던 영 국의DavidLivingstone은 Cambridge 대학 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 습니다. "나는 하나님이 나에게 주 신 직책을 즐거워 함을 멈추어 본적 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내가 아푸리 카에서 많은 희생을 했다고 말합니 다. 그러나 영원토록 갚지 못할 하 나님의 은혜의 빚에 대하여 지극히 작은 빚갚았을 뿐인데 그것을 희생 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선교사역을 행하면서 마음의 평안, 선을 행한다는 의식, 장차 영광스러 운 하나님나라에 대한 소망을 받게 되는 축복을 받는데, 어찌 그 일이 희생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 러한 생각을 버려야 할 것입니다. 아프리카에서의 선교사역은 결코 희 생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걱정과 질 병, 고난과 위험은 나의 영혼을 잠 시 낙심시킬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 나 우리에게 주어질 장차의 영광에 비교한다면, 나는 결코 희생하지 않 았습니다." 그렇습니다. David Livingston은 하나님 안에서 영원한 기쁨과 행복을 이미 맛본 사람이었 기에 선교사역에서의 고통과 고난을 희생으로 여기지 않았던 것입니다. 시편 84편의 저자는 하나님 안에 서만 영원한 기쁨, 즐거움, 행복과 만족이 있음을 알았기에 그는 하나 님이 영광 중에 임재 하시는 성전을 사모하며 갈망했습니다. 그는 성전 에서 살며 하나님을 예배하며 찬양 하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 심지어 참새와 제비를 부러워합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은혜로 왕 같은 제 사장이 된 사람들입니다. 그러하기 에 우리는 놀라운 은혜를 받은 복된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 입니다. 5-7절에서 시인은 절기와 명절 때 예루살렘에 예배 드리러 올라가 는 순례자들이 복있는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해마다 명 절이 되면 고향을 방문합니다. 서울 에서 부산까지 때로는 12시간 13시 간이나 걸리는 교통대란이 있어, 고 향 가는 길이 몹시도 고생스럽습니 다. 그래도 사람들은 기를 쓰고 머 나먼 고향 길을 떠나는데 그것은 행 복한 고통이기 때문입니다. 고향에 서 부모님들을 만나 뵙고, 오랫 만 에 흩어져 살던 형제 자매들이 다 함께 모여 공동체 식사를 나누며, 사랑과 대화를 나누게 됩니다. 여기 에서 어떠한 삶의 생기와 활력소가 주어지기에 우리는 고향 가는 길이 아무리 먼 길이라 할지라도 고향을 다녀오는 것입니다. 만찬가지로 이스라엘의 순례자들 이 명절이나 절기 때 예루살렘 성전 을 향하여 순례의 길을 떠나는 것은 영적 고향을 향한 회귀 본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드 림으로 인하여 삶을 살아가는 영적 인 권세를 얻는 축복을 받을 수 있 기에 순례자들은 그들의 영적인 고 향인 하나님의 성전을 향하는 것입 니다. 그런데 성전을 향한 순례의 길은 평탄한 길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예배 드리기 위하여 순례의 길을 떠나는 사람들은 고통스러운 광야의 메마른 골짜기 즉 눈물의 골 짜기도 통과를 해야만 했고, 순례의 길에는 독사와 전갈과 해로운 짐승, 강도와 도적의 위험도 있는 것입니 다. 순례의 길은 고달픕니다. 그러나 그들이 성전을 향하여 순례의 길을 떠나게 될 때, 하나님은 그들의 발 자국에 힘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순 례자의 발걸음을 복된 발걸음이 되 게 하시기에 그들은 순례의 길을 떠 나게 됩니다. 5-7절을 현대인의 성경으로 읽 겠습니다.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 이 시온으로 가는 것을 사모하는 사 람은 복이 있습니다. 그들이 바카 (눈물의) 골짜기를 지나갈 때 그곳 이 샘의 골짜기가 되며 가을비도 그 곳을 축복으로 채워 줍니다. 그들은 점점 더 힘을 얻어 시온에 계신 하 나님 앞에 각자 나타날 것입니 다." 오늘 우리들도 천성을 향하여 신앙의 여정 길에 오른 순례자들입 니다. 천성을 향한 순례의 길은 평 탄하고 즐거운 것만은 결코 아닙니 다. 어려움과 고통과 눈물도 있습니 다. 그러나 성령님께서 우리와 동행 하시며 발걸음을 도우십니다. 하나 님 나라에 대한 희망이 우리의 발걸 음마다 힘을 주며, 포기치 아니하도 록 합니다. 영국의 세계적인 계관 시인이었던 Robert Browning은 한 때 작품의 자료를 얻기 위하여 로마 교외에 있는 빈민촌에서 생활한 적 이 있었습니다. 빈민굴의 가난한 노 동자들는 날마다 이른 아침 도시락 을 들고 직장을 향하여 피곤한 얼 굴, 어두운 낯으로 새벽 길을 걸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중 한 소녀는 밝은 표정으로 도시락을 들 고 즐겁게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일터를 향하여 걸어가는 것이었습니 다. 그는 처음에는 그 소녀가 정신 이 좀 모자라는 사람으로 생각하였 으나 며칠 지나는 동안 그렇지 않음 을 발견하고 소녀의 노래 내용에 귀 를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그 노래 내용을 확실하게 알게 되었을 때 Browning은 말로 다할 수 없는 감 동을 받고 자기 작품의 소재를 얻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소녀의 노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한 해는 봄으로부터 시작한다. 하루는 아침 으로부터 시작한다. 아침은 7시로부 터 시작한다. 언덕의 이슬은 진주처 럼 빛나고, 하나님은 분명히 저 하 늘에 계시니, 이 세상 일은 오늘도 잘 되어 나갈 것이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살 아계셔서, 인간의 역사와 우리의 삶 을 친히 주관하시고 인도하시기에 우리는 오늘도 천성을 향하여 순례 의 길을 걸어갈 때 어려운 일을 만 나도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희 망을 가슴에 품고 한 발자국 한 발 자국 걸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8-9절은 왕을 위한 중보기도입 니다. 왕의 평강은 곧 백성들의 평 강입니다. 왕은 백성을 대표하기에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축복이 전달 됩니다. 왕이 평안의 축복을 받으면 이스라엘의 순례자들이 평안의 축복 을 받게 됩니다. 그러하기에 시인은 왕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왕을 위한 중보기도는 이스라엘의 순례자들을 위한 중보기도가 됩니다. 8-9절을 보겠습니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 여 내 기도를 들으소서, 야곱의 하 나님이여 귀를 기울이소서. 우리 방 패이신 하나님이여 주의 기름 부으 신 자의 얼굴을 살펴보옵소서." 하나님은 태양과 방패가 되시며, 은혜와 영예를 내려 주시며, 흠 없 이 사는 사람들에게 좋은 것을 아낌 없이 내려 주시는 하나님이시기에 시인은 성전에서 보내는 하루가 다 른 곳에서 보내는 천 날보다 나으 며, 악인의 장막에서 편안하게 살기 보다는 하나님의 집의 문지기로 있 는 것이 더 좋다고 고백하고 있습니 다. 우리는 하나님과 더불어 사는 하루가 하나님을 없이 사는 천년보 다 더 낫다고 시인처럼 자신있게 말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알지 못 하고 세상에서 크게 출세하여 호화 롭게 사는 것보다, 비록 세상에서 인정 받지 못하는 비천한 직업을 가 지고 가난하게 산다 할지라도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로 정직하게 사 는 것이 훨씬 복되다는 사실을 우리 가 시인처럼 확실히 믿습니까? 10-11절을 보겠습니다. "주의 궁정 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 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 오니,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 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 며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그동안 시인은 성전에서 살면서 하나님께 예배와 찬양의 사역을 담 당하는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복 있 는 사람들이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예루살렘 성전을 향하여 순례의 길 에 오른 사람들도 복 있는 자들이라 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전 안에 거하지도 않고, 여건이 허락자 않아 성전에 순례자로 올라가는 기 회를 가지지 못할지라도, 날마다 삶 의 현장에서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 만을 의지하며 사는 사람들도 복 있 는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마지막 12절을 보면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베 드로전서 2장에 보면 대제사장 되시 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는 모든 사 람은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말합니 다. 우리는 삶의 현장인 가정과 학 교, 직장과 상점에서 날마다 왕 같 은 제사장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 는 영광과 특권을 가지게 되었습니 다. 날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 드리며 기도하는 기쁨을 맛볼 수 있 게되기를 원합니다. 예수께서는 마 태복음 18장 20절에서 "두 세 사람 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고 말씀하셨습 니다. 주일마다 우리가 예배공동체 로 모여 하나님을 경배하며 찬양할 때, 주님은 우리 가운데 성령으로 임재 하셔서 세상의 것과 비교할 수 없는 하늘의 기쁨과 즐거움, 행복의 맛을 보게 하십니다. 성령님을 통하 여 크신 은혜와 축복을 나리워 주십 니다. 신앙생활을 한 지 얼마되지 않는 영국의 한 젊은 부부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다닌지 이제 일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벌써 고향 집처럼 느껴집니다. 사랑과 친 교와 감격이 가득한 분위기는 다른 어느 곳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것 입니다. 그 기쁨은 선술집이나 파티, 고급 식당에서 보내는 어떤 저녁보 다 더 큽니다.. 내가 이런 말을 하다 니 놀랍군요(이 세가지 모두를 아직 은 좋아하긴 하지만 말입니다). 우 리 두 사람에게 일요일 예배와 수요 일 기도회는 한 주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일이 되었습니다. 때때로, 그것은 숨을 쉬기 위해 물 위로 올라오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특히 수요기도회는 직장에서의 일이 라는 깊은 물 속에 빠져 익사하기 쉬운 우리에게 산소를 마실 수 있게 해줍니다. 주일 예배와 수요일 기도 회 둘 중 어느 하나를 놓치면, 한 주간 내내 우리 마음의 공허감은 다 른 어떠한 것으로도 채워지지 않습 니다. 물론 우리는 혼자 있을 때나, 여럿이 모일 때나 하나님께 예배 드 리며 기도할 수 있지만, 함께 모이 는 행위는 신앙이라는 불꽃에 바람 을 계속 불어넣어 주는 풀무와 같다 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너무나 값싼 것으로 즐거 워 하고 만족 해합니다. 우리의 창 조자되시며, 구속자가 되시며, 현재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안 에서 영원한 만족, 기쁨, 행복을 누 리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소 망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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