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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하나님께 영광 (로마서 11:33-36)

   

생명의 말씀을 통하여 풍성한 은혜가 늘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하나님께 영광(로마서 11:33-36)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 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 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 심을 받겠느뇨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 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 리로다. 아멘

    우리는 향상 주님을 찬양 해야 합니다. 시편 34편의 저자는 말합니다. "내가 여 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그 를 송축함이 내 입에 계속하 리로다"(시 34:1). 우리는 기 쁘고 즐거울 때 찬양해야 합 니다. "즐거워하는 자가 있 느냐 저는 찬송할지니라"(약 5:13).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 을 찬양하고 싶지 않을 때라 도 찬양하겠다는 결심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찬양은 우리의 기분에 따라 좌우되 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의 영원하신 사랑과 은혜가 찬양이 찬양의 근거가 되기 에 우리의 찬양은 나의 기분 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 아니 라 의지에 따라서 드려져야 합니다. 다윗은 시편 103편 1절에서 말합니다. "내 영혼 아 여호와를 송축(찬양)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송축하라." 때때로 우리는 영적으로 메마르거나 디프레숀에 빠질 때가 있습 니다. 다윗을 바로 이러한 때에 우리는 나의 영혼에 주 위를 기울이며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말해 야 할 순간이라고 말합니다. 나의 기분이 완전히 침체되 었는데 어떻게 찬양할 수 있 다는 것입니까 라고 우리는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편의 저자들은 그들이 깊 은 사망의 골짜기를 헤메일 때, 하나님이 그들의 삶에서 가장 멀리계신 것처럼 느껴 질 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신 것처럼 생각될 때에 도 더욱 하나님을 찬양했습 니다. 시편 42편의 저자는 실망 되고 낙심되는 일에 직면해 있음을 토로합니다. "내 영 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 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 하여 하는고"(시 42:5절 전 반) 이러할 때일수록 그는 자기자신의 처지와 형편을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을 바 라보며 하나님을 찬양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이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 리로다"(시 42:5절 후반). 하 나님께서는 우리가 나 자신 의 기분과 상황에 관계없이 그분만을 찬양하는 수준에 도달할 수 있기를 원하십니 다. 구약의 하박국 선지자 는 다음과 같이 그의 신앙을 고백합니다. "비록 무화과나 무에 꽃이 피지 않고, 포도 나무에 포도가 없으며, 감람 나무에서 기름이 나지 않고, 밭에서 농작물이 나지 않으 며, 우리에 양이 없고, 외양 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여호 와 하나님이 나의 구원이 되 시므로, 내가 기뻐하고 즐거 워하리라(하박국 3:17-18, 현 대인의 성경)." 이 말씀을 현대식으로 고쳐본다면 "IMF로 내가 직장을 잃어버 렸고, 설상가상으로 아내는 교통사고를 맞나 병원에 입 원하게 되었고, 아들녀석은 대학 졸업후 취직이 되지 않 고, 딸아이는 대학시험에 떨 어져 재수를 할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 여 기뻐하리로다. 우리는 즐거울 때에나 어 려운 일을 만날 때에나 항상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마 땅합니다. 우리는 어디에서 나 찬양을 할 수 있습니다. 시편 149편 5절에 보면 집에 서 누워 있을 때에도 하나님 을 찬양해야 한다고 말합니 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에서 함께 신 앙공동체를 이루며 그를 찬 양할 때 더욱 기뻐하십니다. 시편 22편의 저자는 말합니 다. "주께서 하신 이 모든 일을, 회중이 다 모인 자리 에서 찬양하겠습니다. 내가 약속한 희생제물을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들 앞에서 바 치겠습니다."(시 22:25 표준 번역) 시편 26편의 저자는 말합니다. "주님, 주께서 사 시는 집을 내가 사랑합니다. 주의 영광이 머무르는 그 곳 을 내가 사랑합니다. . . 주 님, 내가 선 자리가 든든하 오니, 예배하는 모임에서 주 님을 찬양하렵니다."(시 26: 8,12 표준번역)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 나님을 찬양합니까? 저는 최근에 Bob Sorge가 쓴 Exploring Worship이란 책 을 읽고 많은 감동을 받았습 니다. Bob Sorge 목사님이 말하는 것처럼 어떻게 예배 드릴까 는 성경에서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어떻게 그를 찬양하기를 원하시는 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손 을 들고 찬양하는 것이 일반 적인 형태로서 성경의 여러 곳에 기록되어 있습니다(느 8:6, 시 28:2, 63:4, 134:2, 141:2, 딤전 2:8 등등). 왜 성 경은 하나님을 향하여 우리 손을 들라고 말합니까? 민 수기 7장 89절에 보면 "모세 가 여호와와 말하려고 성막 에 들어갔을 때 그는 여호와 께서 법궤 뚜껑인 속죄소 위 의 두 그릅 천사 사이에서 자기에게 말씀하시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습니다. 성막 의 지성소 안에는 언약 궤가 있고, 그 언약궤의 뚜껑을 속죄소라고 불렀습니다. 언 약궤는 그룹천사가 좌우에서 날개를 펴고 언약궤의 뚜껑 인 속죄소를 덮어씌우고 있 습니다. 사무엘 상 4:4절에 보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룹천사의 날개로 덮혀져있 는 언약궤의 뚜껑인 속죄소 위에 계신다고 말하고 있습 니다. 하나님은 구룹천사의 날개로 덮어진 언약궤의 속 죄소에서 항상 모세에게 말 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찬양 부르며 두손을 들 때 우리의 벌린 두 팔은 구룹천사의 날 개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 리를 만나 주시겠다고 말씀 하신 곳은 비로 그 그룹천사 의 날개사이, 즉 우리의 올 려진 손 사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역대상 13:6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두 그룹 사이에 계시므로 그 이름으 로 일컫는 궤라"고 했습니 다. 우리가 두손을 들고 하 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찬양 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 씀하시고 우리와 함께 교제 를 나누게 되는 것입니다. 손을 두는 다른 이유는 하 나님께 더 가까이 나가기 위 함입니다. 아버지들이 집에 돌아가면 어린아이들은 너무 나 기뻐 손을 들고 아버지에 게 달려와 안아 달라도 합니 다. 손을 들고 하나님께 나 아간다는 것은 마치 어린아 이들이 손을 들고 달려와서 아버지 품에 안기려는 것과 같습니다. 손을 들고 찬양한 다는 것은 더 가깝게 하나님 과 교제하며, 더 긴밀하게 그와 사랑을 나누고 싶어하 는 심정의 표현입니다. 손 을 들고 찬양을 드리면 우리 의 마음을 더 하나님께 집중 할 수 있습니다. 개인기도 시간에 손을 들고 기도하면 기도에 보다 집중할 수 있고 마음이 이리저리 분산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마 찬가지로 우리의 마음이 산 만해질 때 우리가 손을 들고 찬양하면 우리의 마음을 하 나님께 집중할 수 있게 됩니 다. 손을 들고 하나님을 찬양 한다는 것은 하나님께 순복 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르겠 다는 마음을 표현합니다. 전 쟁에서 집힌 포로들은 다 손 을 들고 항복을 합니다. 우 리가 팔을 꼬고 있다는 것은 스스로를 방어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손을 높이 드는 것은 성령님께 우리 마 음과 삶을 열기를 원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만일 찬양과 경배로 하나님을 진 정 기쁘시게 해드리길 원한 다면 스스로를 방어하던 모 든 것을 해제하고 하나님께 마음의 문을 열어 하나님께 서 내 마음의 깊은 곳까지 들어오실 수 있도록 해드려 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손을 들 고 찬양할 수 있을 뿐더러, 손뼉을 치면서도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저는 중학교에 다닐 때 이단종파 인 박태선 장로의 집회에서 손뼉을 치며 찬송부르는 것 을 보고 손뼉치는것에 대하 여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손뼉을 치면서 찬송을 부르는 것은 성서적입니다. 시편 47:1절에 보면 "너희 만민들아 손바닥 을 치고 즐거운 소리로 하나 님께 외칠 지어다"라고 했습 니다. 또한 이사야 98:8절에 보면 "너희 강들아, 여호와 앞에서 손뼉을 쳐라. 너희 산들아, 기쁨으로 함께 노래 하라"고 했으며 이사야 55:12에는 "들의 모든 나무 들이 손뼉을 칠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찬양할 때 손뼉을 치는 행동은 매우 올바르고 성서적인 행위입니다. 우리 심령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로 뜨거워져 있다면 자연 히 손뼉을 치며 즐거운 마음 으로 찬양을 드리려고 할 것 입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찬양할 때 여러 종류의 악기를 가지 고 하나님을 경배했다고 말 하고 있습니다. 미국에는 그리스도교회라는 교단이 있 는데 그 교단에서는 예배드 릴 때 악기를 사용하는 것을 금하고 있습니다. 악기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성서적 이라고 그들은 말하는데 이 것은 잘못된 주장입니다. 시 편 150편에 보면 "여호와를 찬양하라! 그의 성소에서 하 나님을 찬양하라. . . 나팔 소리로 그를 찬양하며 비파 와 수금으로 그를 찬양하라. 소고와 춤으로 그를 찬양하 며 현악기와 퉁소로 그를 찬 양하라. 제금으로 그를 찬양 하라. 큰 소리 나는 제금으 로 그를 찬양하라. 살아있는 모든 피조물들아, 여호와를 찬양하라! 여호와를 찬양하 라!(시 150: 1, 2-6 현대인의 성경)." 오늘날 기타나 드 럼, 키보드 등은 세상악기 임으로 교회예배시에 사용하 는 것은 올바르지 못하다고 말하는 분들이 있는데 이것 은 잘못생각하는 것입니다. 악기자체는 거룩하거나 세속 적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찬양드릴 때 사용되는 악기 는 거룩한 것이 되며, 퇴폐 적인 나이트 클럽에서 그 악 기가 사용될 때에는 세속적 인 악기가 됩니다. 우리가 예배시에 사용하는 고전적인 파이프 오르간이나 피아노도 한때에는 세상적인 악기라고 배척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악기자체는 거룩하거나 세속 적이지 않습니다. 구약성서 는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드 릴 때 여러 종류의 악기를 동원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할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찬양을 부를 때 일어서서 부르는 것도 매우 성서적입 니다. 미국교회의 성도들은 찬양을 부를 때 일어서서 부 르는 경우가 우리보다 훨씬 많습니다. Bob Sorge목사에 의하면 구약의 성막의 기물 들을 만들 때 하나님은 기구 하나 하나의 모양과 크기를 자세히 알려주셨습니다. 그 런데 성막에 쓰여질 기구들 을 만들 때 하나님께서 만들 라고 하시지 않은 기물이 하 나 있는데 그것은 의자입니 다. 구약시대에 제사장들은 성막안에서 자신들의 일을 완수할 때까지 하나님앞에 계속 서 있어야 했습니다. 구약시대의 제사장들의 서있 는 자세는 오늘날 신약시대 이후에 살고 있는 왕같은 제 사장이 된 모든 성도들이 하 나님을 찬양하는데 매우 적 합한 자세라고 말할 수 있습 니다. 역대하 7장 16절에 보 면 "그때 제사장들은 직분대 로 자기 위치에 서고 레위 사람들은 다윗이 여호와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기 위해 직접 만든 악기를 가지고 '여호와의 사랑은 영원하다!' 하고 찬송하였다. . ."라고 했습니다. 일어서서 찬양하는 것은 존경한다는 것을 의미합니 다. 만일 우리가 방안의 의 자에 앉아있는데 나이가 많 으신 학교 은사님이나, 아니 면 대통령이 들어온다면 우 리는 자리에서 다 일어나 그 분에게 인사를 드릴 것입니 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하 늘 나라의 경배 모습을 보면 하나님은 하늘 보좌에 않아 계십니다. 그리고 모든 피조 물들은 그 보좌 둘레에 서 있습니다. 그 분은 앉아 계 시고 우리는 서 있는 것입니 다. 서 있는 자세는 깨어 있 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우 리는 의자에 오래 앉아 있게 되면 예배에 대한 집중력이 떨어지기도 합니다. 마음은 산만해지고 졸음이 올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 거나 찬양할 시간에 잡다한 생각들이 떠올리기도 합니 다. 사탄은 항상 우리가 예 배드릴 때 마음속에 쓸데없 는 생각으로 가득 차도록 합 니다. 그러하기에 사도바울 은 에베소서에서 우리들에게 말합니다. "마귀로 틈을 타 지 못하게 하라(엡 4:27)." 서 있는 자세는 정신적으로 깨어 있게 함으로 우리가 사 탄의 계락에 넘어가는 것을 막아줍니다. 우리가 때때로 서서 찬양을 드리면 우리의 정신이 자극을 받아 깨어서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해줍 니다. 춤을 추는 것도 찬양의 진 정한 표현입니다. 시편149 편에 보면 "춤추며 그의 이 름을 찬양하며"(3절)라고 했 습니다. 국제 표준 성서 백 과 사전은 구약시대에 있어 서 춤추는 것이란 본래 뛰는 것, 더러는 음악에 맞추어 뛰는 것이었다고 말합니다. 사무엘 하 6:14절에서 "다윗 이 여호아 앞에서 힘을 다하 여 춤을 추는데"라는 말씀을 읽을 때, 우리는 돌아온 언 약궤앞으로 달려가면서 높이 뛰는 다윗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습니다. 시편 150:4은 또한 우리에게 "춤추어 찬양 하며"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문자적으로 말하면 "그의 앞에서 깡충깡충 뛰면 서 찬양하라"가 됩니다. 시 편 30:11-12절에서 다윗은 말합니다. "주께서 나의 슬 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 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 으로 띄우셨나이다. 이는 잠잠치 아니하고 내영광으로 주를 찬송케하심이니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영영히 감사하리이다."라고 했습니다. 다윗왕이 하나님 앞에서 뛰며 춤추는 것은 그 에게 참으로 커다란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 양을 몸으로 표현한 것뿐이 었습니다. 춤으로 찬양을 드리는 것은 우리의 내적 해 방을 가져다주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왜 우리는 하나님 을 찬양합니까? 우리는 하 나님을 찬양하도록 창조되었 기에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웨스트민스터 요리문답 1조 에서 인간의 목적은 하나님 을 영화롭게하며 그를 영원 히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말 합니다. 예례미야 13:11은 하나님께서 찬양과 높임을 받기 위하여 이스라엘 민족 을 부르셨음을 말하고 있습 니다. 베드로전서 2:9절에 보면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 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 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 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 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찬 양)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찬양을 선포할 목적으로 선 택받은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도 말하기를 " 이 백 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 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함 이니라"(사 43:21)라고 했습 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좋은 일이기 때문입니 다. 시편 92편의 저자는 말 합니다. "가장 높으신 하나 님, 주님께 감사를 드리며, 그 이름을 노래하는 것이 좋 습니다. (시 92:1 표준새번 역)."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것이 좋은일이며 우리에게 유익된 일이기에 성경은 하 나님을 찬양하리라고 우리에 게 명령합니다. 17세기 영 국의 헨리 스쿠갈은 "한 영 혼의 가치와 탁월성은 그 영 혼의 사랑의 대상에 의해 측 정된다."라고 말했습니다. 스쿠갈은 계속하여 말합니 다. "하잘 것없고 천박한 것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것 에 의해 상스럽고 천하게 된 다. 그러나 고상하고 적절 한 대상을 향한 애정은 그 영혼이 사랑하는 것의 완전 성을 닮아가도록 그것을 향 상시키고 진보시킨다." 우리 는 하나님의 위대하심, 그의 우리를 향하신 은혜, 사랑, 긍휼을 묵상하며 찬양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닮아갈수 있게됩니다. 하나님을 찬양 하는 것은 좋은 일이기에 우 리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찰스 스펄젼은 다음과 같이 말한적이 있습니다. "그리 스도를 묵상하며 찬양하는 것에는 모든 상처를 치유하 는 치유제가 있습니다. 여 러분의 슬픔과 염려들을 잊 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광대함을 묵상하며 찬양해보십시오. 그러면 여 러분은 안식처에서 나오는 것처럼 기운을 차리고 생기 가 돌아서 나오게 될 것입니 다. 나는 하나님을 묵상하 고 찬양하는 것보다 영혼에 더 위로를 주는 것을 알지못 합니다." 찬양은 하나님께서 우리에 게 주신 영적 무기입니다. 마귀와 영적 전쟁에서 하나 님은 우리를 무방비 상태로 내버려두시지 않았습니다. 마귀와 영적싸움에서 승리하 게 위하여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강력한 영 적 무기들을 주셨는데 찬양 은 그것들 중에 으뜸되는 병 기가 됩니다. 우리는 마귀 와 영적싸움에 승리하기 위 하여 찬양을 드립니다. 역 대하 20장에 보면 남유다왕 국의 여호사밧왕때 유다왕국 은 모압과 암몬족속들의 침 략을 받았습니다. 그때 여 호사밧왕은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찬양대를 조직하여 그들에게 거룩한 예복을 입 히고 들을 군대앞에 세워 찬 양을 부르게 했습니다. "여 호와께 감사하라. 그의 사 랑은 영원하다!"찬양대가 찬 송을 부르자, 하나님께서는 침략군들에게 혼란을 일으켜 자기들끼리 싸워 치게 하셨 습니다. 시편 149편에서는 찬양으 로 마귀의 권세를 결박하는 것에 관하여 말하고 있습니 다. 6-8절을 보면 " 그 입 에는 하나님의 존영 (high prises of God)이요 그 수중 에는 두 날 가진 칼이로다. 이것으로 열방에 보수하며 민족들을 벌하고 저희 왕들 을 사슬로, 저희 귀인을 철 고랑으로 결박하고"라고 했 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날 우리에게 당신의 권능을 풀 어 놓으시기 위해 우리가 찬 양의 무기를 사용하기 원하 십니다. 우리가 어려운 문 제에 직면해 있을지라고 낙 심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찬양으로 하나님만이 주권자 이시며 승리자라는 사실을 믿고 기뻐하면, 하나님께서 는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 다, "나의 자녀들이 이런 상황가운데서도 진정 내가 하나님이요 주라는 사실을 믿기 때문에 이제 내가 나의 힘과 영광을 나타내리라! 하 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승리의 기쁨을 안겨 주심으로 응답 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찬양을 드리는 가 장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께 서 우리의 찬양을 받으시기 에 합당하시기 때문입니다. 시편 48편의 저자는 말합니 다. " 여호와는 광대하시니 ..... 극진히 찬송하리로다." (시 48:1) 요한계시록 4장에 보면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 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 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 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계 4:11) ." 했습니다. 오늘 본 문말씀에서도 바울은 하나님 께 영광송을 돌리고 있습니 다. 그동안 1-11장에 걸쳐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 하여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 나님의 구원의 드리마, 하나 님의 인간 구원의 사역에 관 하여 말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죽음을 통하여 우리의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의롭다고 선언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하 신 사랑, 그리스도를 주님으 로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 함을 받은 우리가 이제는 죄 에 종노릇하지 않고 의의 종 이 되어 살수 있도록 성령 님으로 우리를 도우시는 하 나님의 은혜를 말하며, 예수 님을 주로 고백하는 이방인 들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택 하신 백성인 이스라엘까지도 마지막날에 구원하시려는 하 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파울 은 말해왔습니다. 죄로 인 하여 마땅히 심판 받아 멸망 당해야 하는 우리를 예수 그 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구 원해 주시는 이 놀라운 하나 님의 은총과 사랑, 하나님의 광대하신 긍휼과 거룩하심에 바울은 압도당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하기에 바 울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영 광송으로 로마서의 전편을 끝내고 있습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 단은 측량치 못할것이며 그 의 길은 찾지 못할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 심을 받겠느뇨,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 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서 세세에 있 으리로다. 아멘

출처 : 주님의 시선
글쓴이 : 카페지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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