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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말씀을 통하여 풍성한 은혜가 늘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
마태복음13:1-9
미신과 기독교를 비교한다면 미신은 자기가 믿는 신의 능력을 이용하여 자신의 뜻과 소원 그리고 욕심을 이루려고 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 기독교에도 그와 같은 면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구하고 찾고 두드려 하나님을 통하여 자신의 소원을 이루며 살라고 직접 말씀해 주십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을 무조건 좋은 일로 생각하고 여깁니다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소원과 욕심이 선하고 의로운 것이라면 우리의 뜻과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이 우리에게 좋은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지고 있는 뜻과 소원이 불완전하고 옳지 못한 것이라면 그와 같은 뜻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우리에게 좋은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뜻과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르고 옳고 선한 뜻과 소원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하여 우리가 품고 살아야 할 뜻과 소원의 모델을 찾아야만 하는데 우리가 품고 살아야 할 가장 좋고 선하고 온전한 뜻의 모델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의 뜻과 생각이 하나님의 뜻과 생각이 같아지게 하는 것 보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만일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뜻과 생각으로 자신의 뜻과 생각을 삼으려는 노력이 없이 기도를 통하여 구하고 찾고 두드려 무조건 자기의 소원과 뜻만 이루려고 한다면 우리의 신앙 수준은 미신과 크게 다를 것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와 같은 신앙을 기복적인 신앙이라고 부릅니다.
예수님을 믿을 마음이 있었던 서기관과 바리새인 몇 사람이 예수님에게 표적과 이사를 구하였을 때 예수님은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것이 없다 말씀하셨습니다. 요나의 표적은 십자가를 의미하는 것이었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사모할 뿐만 아니라 듣고 순종하여 사는 것이 곧 우리가 져야 할 구체적인 십자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이 확인하고 싶었던 것은 예수님의 능력뿐이었습니다. 저들은 예수님을 믿으려고는 하였지만 미신적인 수준의 신앙만을 생각하였습니다. 세상의 어떤 신보다도강한 하나님의 능력을 통하여 자신의 소원과 뜻을 이루려는 마음만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던 서기관과 바리새인에게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이 보다 중요하며 하나님의 능력은 말씀을 통하여 나타난다는 말씀을 저들과 우리에게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곧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으며, 그와 같은 깨달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과 우리의 뜻을 일치시키는 중요한 작업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이름은 '높은 뜻 숭의교회'입니다. 높은 뜻은 곧 하나님의 뜻을 의미합니다. 교회의 이름 속에 우리 교회가 추구하는 가장 중요하고도 고상한 목표가 무엇인가가 담겨져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뜻과 욕심이 이루어질 때 세상이 천국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때 세상이 천국 된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내 뜻과 소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소원인 것입니다.
우리는 원죄로 말미암아 본래 하나님과 같았던 뜻과 생각이 바뀌어 이제는 전혀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전혀 다른 뜻과 생각을 가진 사람이 하나님의 뜻과 생각대로 산다는 것이 우리가 져야 하는 십자가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비록 십자가를 지는 것과 같이 힘들고 어렵다고 하여도 우리는 그 길을 가야만 합니다. 그러나 평생을 억지로 십자가를 진 구레네 시몬과 같이 산다는 것은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일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생각대로 살면서도 십자가를 내려놓을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뜻과 생각을 아예 바꾸어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뜻과 생각을 하나님의 뜻과 생각과 같이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면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일이 더 이상 힘들지 않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내 뜻이 되면 말씀대로 사는 것이 힘들지 않고 오히려 즐거운 일이 될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뜻이 내 뜻이 되고, 하나님의 생각이 내 생각과 같아 질 수 있을까요? 처음에는 믿음으로 말씀의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각오하고 내 뜻을 꺽고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며 사는 것입니다. 담배와 마약을 끊는 사람들이 금단 증세를 이겨내야 하듯 내 뜻과 욕심을 꺽으면서 살 때 나타나는 금단 증세를 이겨내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드디어 승리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말씀의 실상과 증거가 우리의 삶에 나타나게 됩니다. 우리의 삶이 시냇가에 심은 나무 같아지고, 시절을 좇아 열매를 맺되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일단 말씀의 실상과 증거를 체험하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쉬워집니다. 그 다음부터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을 스스로 원하게 될 것입니다. 아예 자신의 뜻과 생각을 하나님의 뜻과 생각으로 바꾸어 버리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마음 밭이 오늘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옥토 즉 좋은 땅이 되어 말씀 때문에 30배 60배 100배의 축복을 받는 참으로 복되고 형통한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 밭을 좋은 땅 즉 옥토로 만드는 것 보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우리에게 어려운 일도 없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어려워도 그 일은 포기할 수 없습니다. 저는 사랑하는 여러분들이 무엇보다도 좋은 마음의 밭을 가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좋은 마음의 밭을 가지시려면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좋지 못한 마음의 밭을 없애야만 합니다. 좋지 못한 마음의 밭이란 길가와 같은 마음의 밭, 돌짝 밭과 같은 마음의 밭 그리고 가시밭과 같은 마음의 밭입니다. 우리들에게는 그와 같은 마음의 밭들이 있습니다. 길가 같이 굳어진 마음을 갈아 업고, 우리의 마음 밭에 있는 돌을 주워 내고 가시들을 거둬 내야만 합니다.
우리에게는 길가와 같은 마음이 있습니다. 길가와 같은 마음이란 완악한 마음을 의미합니다. 말씀의 씨가 먹히지 않는 마음을 의미합니다. 때문에 말씀이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말씀을 간직하지 못하고 새로 비유된 사탄에게 다 빼앗기고 맙니다.
우리의 마음이 길가와 같은 마음이 되는데는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첫째는 무관심이요 둘째는 교만이요 셋째는 부정적인 마음입니다.
우리의 관심은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범죄한 이후부터 義가 아니라 利입니다. 어떻게 하면 많은 이익을 볼 수 있을까에는 관심이 있지만 어떻게 하면 의롭게 살 수 있을까에는 본래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본래 복이 있는 것인데 우리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마음보다 이에 주리고 목마른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옥토 같은 마음 밭을 갖지 못하고 길가와 같은 마음 밭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익에 주리고 목마른 마음 밭을 가지게 되면 자연 하나님의 나라와 의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이 되게 되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에 무관심한 사람이 되면 자연 우리의 마음 밭은 옥토가 되지 못하고 길가와 같은 밭이 되게 되는 것입니다.
교만한 사람들은 모두가 다 길가와 같은 마음의 밭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교만한 사람이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재산이나 명예나 지위에 빠져 그것을 뽐내고 자랑하고 으스대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재산과 명예와 지위와 권력에 빠져 교만한 사람은 자연 하나님의 나라와 의에 대하여 무관심해지게 마련입니다.
대개 보면 국민 소득이 높아지게 되면 사람들이 예수를 잘 믿지 않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소득이 높아지게 되는데, 소득이 높아지게 되면 사람들은 예수를 잘 믿지 않으려고 합니다. 소득이 높아질수록, 삶의 환경이 높아지고 편해질수록 영적인 관심이 낮아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무관심은 교만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옥토와 같은 마음 밭을 갖기 위하여 무엇보다도 겸손하기를 힘쓰시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에 더 깊은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말씀의 씨가 먹히지 않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부정적인 마음과 삐뚤어진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와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무슨 말을 해도 듣지 못합니다. 은혜 받지 못합니다. 불쌍한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희 아버님이 이북에서 금광을 하셨답니다. 그래서 어려서 아버지로부터 금 캐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금광에서 원석을 캐고 그 원석을 제련하여 금을 얻어 내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 금이 들어 있는 원석에는 돌이 많이 들어 있겠습니까 아니면 금이 많이 들어 있겠습니까? 금 속에 돌이 들어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돌 속에 금이 들어 있는 것일까요? 광부들은 그 원석에서 돌을 캘까요 금을 캘까요? 예 맞습니다. 광부들은 원석에서 돌을 다 제하여 버리고 그 속에서 금만을 뽑아냅니다.
목사의 설교에는 금도 있고 돌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의 말에 담아 전하는 것이 설교입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의 말속에 돌이끼는 수가 많이 있습니다. 모든 목사의 설교에는 금도 있고 돌도 있게 마련입니다. 어느 목사도 금만 있는 설교를 할 수는 없습니다. 말이 불완전하기도 하거니와 보다 중요한 것은 삶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제 설교에도 돌이 있습니다. 여러분 제 설교에는 돌이 많을까요 금이 많을까요?
설교를 듣는 사람들 중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돌을 캐는 사람이요 다른 하나는 금을 캐는 사람입니다. 설교를 들으면서 돌만 캐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설교 속에 돌이 있기 때문에 돌을 캐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그는 개인적으로 볼 때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저들은 설교 속에 들어있는 금에 관심이 없고 돌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목사가 언제 진리를 말씀하는가에 관심이 없고 언제 돌과 같은 말을 하는가에 관심이 있습니다. 목사의 설교 중에 어느 부분이 금인가에 관심이 없고, 어느 부분이 돌 인가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은 돌과 금을 구별할 줄 아는 사 람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교인들 중에는 돌도 무조건 금이라고 믿으려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저는 그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돌과 금을 구별할 줄 아는 것이 무엇 보다 중요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을 캐는 사람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금을 캐는 사람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돌을 캐는 사람은 길가와 같은 마음 밭을 갖게 되고 금을 캐는 사람들은 옥토와 같은 마음 밭을 갖게 된다는 사실을 마음에 새기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는 돌짝밭과 같은 마음과 가시밭과 같은 마음 밭이 있습니다. 돌짝밭과 같은 마음 밭이란 말씀이 밑으로 뻗지 못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요 가시밭과 같은 마음 밭이란 말씀이 위로 뻗지 못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말씀이 밑으로 뻗지 못하는 까닭은 말씀으로 인한 환난과 핍박을 견뎌내지 못하는 때문이요, 말씀이 위로 뻗지 못하는 까닭은 세상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 때문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런즉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리운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가에 뿌리운 자요 돌밭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가시떨기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자요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 하여 혹 백 배, 혹 육십 배, 혹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마 13 : 18 ~ 23)
우리에게는 길가와 같은 마음도 있고 돌짝밭과 같은 마음도 있고 가시밭과 같은 마음도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나라와 의에 대하여 무관심한 마음도 있고, 교만한 마음도 있고, 삐뚤어지고 부정적인 마음도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달게 듣기는 하면서도 막상 세상에 나아가 그 말씀 때문에 핍박을 받고 어려움을 당하게 되면 그만 꼬리를 내리고 세상과 타협하는 비겁한 마음도 있고 평생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나라와 의 보다는 세상의 염려와 재리에 대한 유혹을 이기지 못하여 그것에 더 관심을 갖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위하여 기도해야만 합니다. 우리의 기도는 우리의 뜻을 이루기 위한 것 보다 우리의 잘못된 뜻과 생각 그리고 삶의 자세들을 버리기 위한 기도이어야만 합니다. 말씀에 대한 무관심을 버리기 위한 기도, 매사에 부정적이어서 금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캐지 못하는 삐뚤어진 마음을 버리기 위한 기도, 말씀을 달게 받으면서도 용기가 없어서 조금만 힘들고 어려워도 그 환난과 핍박을 이겨내지 못하고 주저 않는 연약한 마음을 버리기 위한 기도 그리고 평생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되지 못하고 밤낮 이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되어 세상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 마음을 버리기 위한 기도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와 같은 기도를 통하여 우리 속에 있는 길가와 같은 마음 밭과 돌짝밭과 같은 마음의 밭 그리고 가시밭과 같은 마음의 밭을 버리게 되면 우리는 오늘 예수님이 말씀하신 옥토와 같이 좋은 땅을 마음의 밭으로 갖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드디어 무슨 일을 하든지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는 축복의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저는 30배 60배 100배의 축복을 믿습니다. 우리의 마음 밭이 옥토와 같은 좋은 땅이 되어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게 되면 무슨 일을 하든지 성공하고 형통하게 되리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것은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우리 높은 뜻 숭의교회의 마음 밭이 옥토와 같은 좋은 땅이 되기만 하면, 그리하여 교회의 이름과 같이 언제나 높으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교회가 된다면 30배 60배 100배로 부흥하고 성장하는 교회가 되리라고 저는 믿습니다.
저는 모든 교회의 부흥과 성장이 다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많은 부흥과 성장 중에는 하나님과 상관이 없는 부흥과 성장도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는 모든 부자가 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모든 높은 사람들이, 세상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마찬가지로 모든 부흥과 성장 그리고 모든 부요함과 성공이 무조건 다 하나님의 축복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세상에는 부흥과 성장 그리고 부함과 성공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지만 그것은 아주 위험한 생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아니하고 세상적으로 살아 쟁취한 풀과 같은 부흥과 성장 그리고 부함과 성공은 비판하여야 하지만, 하나님의 뜻과 식을 따라 살아 말씀에 약속한 대로 시냇가에 심은 나무같이 번성하는 부흥과 성장 그리고 부함과 성공을 부인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잘못된 부흥과 성장을 인정하는 것만큼이나 잘못되고 위험한 생각입니다.
저희 교회는 지난 일년 동안 엄청난 부흥과 성장을 경험하였습니다. 저는 그 부흥과 성장의 이유가 하나님의 뜻과 말씀 그리고 하나님의 식과 방법을 내세우고 고집하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몇 년 전에 포항 외딴 곳에 세워진 한동대학교가 문을 열 때 캐치프레이즈를 '하나님의 식으로 하나님의 인재를 양성하는 대학'이라고 내 세웠습니다. 그 한 가지 말에 학교 문을 열기도 전에 부도부터 난 학교에 얼마나 좋은 학생들이 몰려들었는지 모릅니다.
우리 교회는 지난 일년 동안 인위적인 부흥과 성장을 꾀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와 같은 일을 하지 않으려고 나름대로 노력하였습니다. 물론 수평이동에 의한 성장을 바람직한 성장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느냐는 문제는 있습니다. 그러나 수평이동에도 인위적인 수평이동과 자연적인 수평이동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인위적인 수평이동은 반대합니다. 때문에 무조건 교인들을 많이 모으기 위하여 사방으로 교회 버스를 운행한다든가 하는 것에는 찬성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연적인 수평이동은 반대하지 않습니다. 자연적인 수평이동을 막으면 교회는 오히려 게을러지고 부패하고 타락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달란트 비유에서 게으른 자의 한 달란트를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말씀하시면서 '무릇 있는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 까지도 잃게 되리라'고 말씀하신 것을 저는 자연적인 수평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달란트의 수평이동 때문에 사람들은 정신을 차리고 열심을 내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변명과 같은 말씀이 길어졌습니다. 우리 높은 뜻 숭의교회는 그저 하나님의 뜻과 식을 캐치프레이즈처럼 내 걸었을 뿐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거기에 능력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것을 보면서 말만해도 부흥과 성장이 일어나는데 그것을 정말 실천하고 살면 얼마나 더 큰 부흥과 성장이 일어날까를 생각합니다.
그와 같은 부흥과 성장은 교회에만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와 같은 부흥과 발전은 여러분의 가정과 직장 그리고 사업 속에도 똑같이 일어나는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식대로 살려면 그 때문에 반드시 환난과 핍박을 격게 됩니다. 그 때문에 반드시 십자가를 져야만 합니다. 그것은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어서 우리에게 일종의 금단증세를 일으키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그것을 극복하고 승리하면 성경이 일관되게 주장하고 약속하고 있는 복을 받게 될 것이라고 저는 믿어 조금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무조건 자기의 뜻과 욕심을 이루려고 예수 믿는 사람이 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오히려 잘못되고 이기적인 자기의 뜻과 욕심을 꺽고 하나님의 뜻과 말씀대로 살기 위하여 기도하고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원죄로 말미암아 길가와 같은 밭이 되고 돌짝밭과 같은 밭이 되고 가시밭과 같은 밭이 된 우리의 마음 밭을 갈고 닦아 옥토와 같은 좋은 땅이 되기 위하여 기도하고 노력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옥토 같은 좋은 마음의 밭과 믿음의 밭을 소유함으로 여러분의 모든 삶의 현장 속에 30배 60배 100배의 축복의 역사가 나타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축복된 삶의 증인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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