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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17-18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사도 야고보는 오늘 본문 속에서 하나님은 어떠하신 분이신지를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십니다. 또 우리를 낳으신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지극히 사랑하시겠습니까?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신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어떠한 시험을 만나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지극히 사랑하시니까 언제나 내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고, 또 나를 언제나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 모두에게 바른 신관을 확립하는 은혜가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시골의 어느 마을에 한 소년이 살았습니다. 하루는 그가 조각칼을 가지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나무를 깎아 배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쉽지 않았습니다. 이따금씩 손가락이 칼에 찔려서 피가 나기도 했습니다. 드디어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소년은 예쁜 나무배를 완성하게 되었습니다. 소년은 개울로 뛰어갔습니다. 그는 자기가 만든 나무배를 물 위에 띄웠습니다. 돛까지 단 예쁜 나무배는 깜찍할 정도로 잘도 떠내려갔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물살이 생각보다 빨랐습니다. "아차!"하는 순간에 배는 멀리 떠내려갔습니다. 소년은 허둥지둥 배를 따라 갔지만 그의 발걸음보다도 물결이 훨씬 더 빨랐습니다. 배는 차츰차츰 그에게서 멀어지더니 급기야는 그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애써 만든 나무배를 잃어버린 소년의 마음은 너무나 허전했습니다. 여러 날이 지났습니다. 소년은 장터에 나갔다가 우연히 자기가 만든 나무배가 어떤 가게의 진열대 위에 놓여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반가웠겠습니까? 소년은 가게의 주인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난 뒤 그 배는 자기가 만든 것이니까 자기에게 돌려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가게의 주인은 딱하다는 듯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얘야, 너의 사정은 내가 충분히 알겠지만 나도 돈을 주고 그것을 사다놓았단다. 그러니 그냥은 줄 수 없구나! 돈을 받아야만 줄 수 있겠다." 소년은 그 말을 듣고 얼른 집으로 뛰어갔습니다. 그리고는 그의 책상 위에 있는 돼지저금통을 깨뜨렸습니다. 소년은 그 속에 있는 동전을 다 들고서 상점의 주인에게로 다시금 달려왔습니다. 소년은 주인에게 그것을 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저씨, 이것은 제가 가지고 있는 것의 전부입니다." 물론 얼마 안되는 돈이었지만 주인은 그것을 받고서 기꺼이 소년에게 나무배를 되돌려주었습니다. 소년은 잃어버렸다가 되찾은 자기의 나무배를 가슴에 안고서 너무나도 기쁜 나머지 이렇게 외쳤습니다. "너는 두 번이나 나의 것이 되었어! 첫째로는 내가 너를 만들었기 때문에 너는 나의 배였고, 둘째로는 내가 너를 돈주고 샀기 때문에 너는 또다시 나의 것이 되었어. 그러니 나는 너를 결코 잃어버리지 않을거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두 번이나 하나님의 것이 되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이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우리를 사셨기 때문에 우리는 진정한 하나님의 것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겠습니까? 이 사실을 깨닫는 사람은 어떠한 시험이 있어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사43:1∼3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누구인가? 나는 하나님의 것이다.' 이 사실을 깨닫는 사람은 어떤 시험을 만나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언제나 나와 함께 하시면서 나를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신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사람은 어떤 시험을 만나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지극히 사랑하셔서 언제나 내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고, 나를 의의 길로 인도해 주신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도 야고보가 본문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교훈입니다. 편의상 본문의 말씀을 세 대지로 나누어 생각하면서 하나님은 어떠하신 분이신지 바르게 깨닫는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17절 상반부의 말씀입니다.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위에 계신 분은 누구이십니까? 빛들의 아버지가 누구이십니까? 누가 빛들을 만드셨습니까? 하나님이 만드셨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실 때 하나님은 첫째 날에 빛을 만드셨습니다. 창1:3∼5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하나님은 첫째 날에 빛을 만드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빛들, 곧 해와 달과 별들은 몇 째 날에 만드셨습니까? 넷째 날에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분이 바로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자녀된 우리에게 무엇을 주신다고 하셨습니까?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은사'나 '선물'이나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가리킵니다. 은사는 주시는 행위에 강조점이 있고, 선물은 주신 것 자체에 강조점이 있습니다. 아무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되 어떠한 것을 주신다고 했습니까? 각양 좋은 은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것만 주십니다. 마7:11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사람은 악할 지라도 자기 자식에게는 언제나 좋은 것을 줍니다. 하물며 하나님은 선하신 하나님이신데 왜 자녀된 우리에게 나쁜 것을 주시겠습니까? 가장 좋은 것을 주십니다. 또 하나님은 우리에게 온전한 선물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에게 무엇이 부족해서 하나님이 그 사랑하는 자녀된 우리에게 부족한 것을 주시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언제나 온전한 것, Perfect한 것을 주십니다. 사도 야고보가 이 말씀을 통해서 의도하는 바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고 온전한 것을 주시니까, 그것으로 만족을 삼고 그것으로 기뻐하며 감사하게 살자는 것입니다. 쓸데없는 욕심에 미혹을 받아서 잘못된 길로 나아가서 시험에 빠지지 말자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에덴동산을 주셨습니다. 말 그대로 낙원입니다. 좋은 곳입니다. 그들에게 먹을 것이 부족했습니까? 에덴동산에는 각종 나무의 실과가 다 있었습니다. 마음대로 따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것으로 만족을 삼지 못하고, 자기 욕심에 끌려서 선악과를 따먹고 말았습니다.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러웠습니다. 욕심에 끌려서 미혹을 받아 시험에 넘어가고 만 것입니다. 그러나 욥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엄청난 시험을 만났습니다. 재물을 다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들 딸 십 남매도 사고로 다 죽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욥은 시험에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입술로 범죄하지 않았습니다.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습니까? 욥에게 이러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이 믿음이 욥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내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신다. 언제나 나를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신다." 이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욥은 그 극심한 시련 속에서도 하나님의 이름을 오히려 찬송했습니다. 욥1:21의 말씀입니다.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오늘 우리에게 이러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십니다. 온전한 것을 주십니다. 이 믿음이 있을 때 우리는 어떠한 시험을 만나도 그 시험을 넉넉히 이겨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깊은 산 속에 멧돼지 한 마리가 살았습니다. 하루는 이 멧돼지가 산 속을 헤매고 다니다가 땅바닥 위에 맛있는 도토리가 널려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 멧돼지는 도토리들을 맛있게 다 주워먹었습니다. 그리고 난 뒤에 멧돼지는 자기의 앞발로 낙엽을 파헤쳤습니다. 그러자 그 속에서 또 도토리가 나왔습니다. 미련한 멧돼지는 도토리가 땅 속에서 나오는 줄 알고, 먹고 나면 계속해서 땅을 깊이 파헤쳤습니다. 결과적으로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도토리 나무가 쓰러져 멧돼지는 그 나무에 깔려 죽고 말았습니다. 좋은 것은 위로부터 내려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좋은 것과 온전한 것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욕심으로 무엇을 얻으려고 하지 맙시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우리가 확실하게 믿고 하나님을 의지할 때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떠한 시험이라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좋으신 분이십니다. 이러한 바른 신관을 갖고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은 좋은 것을 주시되 변함이 없으시기 때문에 언제나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십니다. 온전한 것을 주시되 변함이 없으시기 때문에 항상 우리를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17절 하반부의 말씀입니다.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세상의 모든 것들은 다 변합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빛들도 변합니다. 낮에는 태양빛이 환합니다. 그러다가도 석양이 되면 그 빛이 흐려집니다. 밤이 되면 캄캄해져 버립니다. 또 빛들은 회전을 합니다. 예컨대 태양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집니다. 거기에 따라서 생기는 그림자도 길었다, 짧았다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십니다. 그 분의 능력도 변함이 없으십니다. 지혜도 변함이 없으십니다. 물론 우리를 향하신 사랑도 변함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은 언제 어디서나 지극한 사랑으로 그 자녀된 우리를 사랑해 주십니다. 또 하나님은 빛이십니다. 하나님에게는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십니다. 하나님은 빛 자체이시기 때문에 어두움이 전혀 없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의의 길로만 인도해 주십니다. 우리가 이러한 바른 신관을 가질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떠한 시험을 허락하신다 할지라도 우리를 하나님께 다 맡기고,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하심에 따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 부인했습니다. 물론 그는 닭 우는 소리를 듣고서 철저하게 통곡하면서 회개했습니다. 그러나 괴로운 마음을 이겨낼 길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갈릴리 바다로 되돌아갔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사람 낚는 어부로 삼아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고귀한 사명을 망각해 버리고, 다시금 고기 잡는 어부의 신세로 되돌아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베드로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를 찾아오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예수님은 베드로의 마음 속에 있는 예수님을 향한 사랑을 너무나도 잘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대답했습니다.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세 번 반복해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씩이나 부인했던 베드로의 깊은 상처를 예수님은 말끔히 씻어주시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에게 자기의 사랑을 고백하는 과정 속에서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깊은 상처가 하나씩하나씩 치유되어 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사랑의 고백을 들으시고 난 뒤에 다른 제자들 앞에서 다 보는 가운데, "내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과거보다 훨씬 더 크고 중요한 사명을 맡겨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본래 베드로에게 주신 사명은 무엇이었습니까? "사람 낚는 어부가 되어라." 전도자의 사명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보다 더 귀한 사명을 주셨습니다. "내 양을 먹이라." 목자의 사명을 맡기신 것입니다. 요즘 말로 표현하면 전도사를 목사로 승격시켜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결코 변함이 없습니다. 언제 어떠한 상황에서도 변함없이 끝까지 우리를 사랑해 주십니다. 그런데 악한 마귀는 우리의 마음에 의심을 불러 일으킵니다. '하나님은 결코 너 같은 죄인을 사랑할 수 없어! 너는 하나님 앞에서 쓸모없는 죄인이야. 어떻게 하나님이 너 같이 죄많은 사람을 사랑하실 수가 있겠어?' 이런 마음을 집어넣어서 우리를 미혹케 하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변함도 없으십니다.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십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이러한 바른 신관을 우리가 가질 때 우리는 시험을 이기되 넉넉히 이길 수가 있습니다. 예컨대 다윗 왕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엄청난 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는 간음죄를 저질렀습니다. 또 그 사실을 숨기기 위해 사람을 죽였습니다. 살인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는 아무도 모를 줄 알았습니다. 아무도 모르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나단 선지자가 찾아왔습니다. 나단 선지자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를 질책했습니다. 그 때 다윗은 정신을 바짝 차렸습니다. 그는 통곡하면서 하나님 앞에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난 뒤에 다윗이 어떻게 했습니까? 베드로가 괴로운 마음을 부여잡고 갈릴리 바다로 돌아간 것처럼, 다윗도 자기의 왕권을 내놓고 "나는 더 이상 수치스러워서 왕노릇 못하겠다!"라면서 베들레헴으로 되돌아갔습니까? 아니었습니다. 그는 수치스러운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그에게 맡기신 왕의 사명을 끝까지 충성스럽게 감당했습니다. 그것이 다윗의 위대한 점입니다. 다윗은 그 큰 시험을 이겨내고 이스라엘의 성군으로서 길이길이 기념될 위대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그 일이 가능하겠습니까? 다윗에게는 이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내가 비록 수치스럽고 부끄럽고 엄청난 죄를 지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으시다.' 그래서 그는 시23:6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으십니다.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은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고, 변함없이 나를 의의 길로,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이 믿음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어떤 시험을 만날지라도 쓰러지지 아니하고, 다시금 일어서서 하나님이 주신 사명에 끝까지 충성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셋째로, 하나님은 우리를 낳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우리는 사랑받는 자녀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왜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지 아니하시겠습니까? 우리가 어떤 시험을 만나도 그 속에는 아버지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습니다. 하찮은 것은 가져가시고 내게 더 중요하고 소중한 것을 주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시험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닙니다. 왜 나를 사랑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이 내게 나쁜 것을 주시겠습니까? 시험은 복된 것입니다. 내게 축복을 주시기 위해서 시험 너머에 생명의 면류관을 준비하시고 나를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18절의 말씀입니다.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사도 야고보는 하나님이 우리를 낳으셨다는 사실과 관련해서 중요한 세 가지를 18절 말씀에서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왜 하나님이 우리를 낳으셨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거듭나게 하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18절 초반부를 보시기 바랍니다.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는 본시 하나님의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하나님은 특별히 우리를 택해서 두번째로 다시 한 번 하나님의 것으로 삼으셨습니다. 우리로 첫 열매가 되게 하려 하심이었습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의 초태생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것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소중히 생각하시겠습니까? 사49:15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잊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의 것으로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이름을 하나님의 손바닥에 새기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만큼 우리를 사랑하시면서 늘 우리를 지키시고, 우리를 눈동자와 같이 보살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이 우리를 낳으신 동기가 무엇입니까? 내가 잘나서 그런 것입니까? 내가 의로워서 그런 것입니까? 아닙니다. "자기의 뜻을 좇아"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입니다. 여러분, 왜 하나님이 에서를 미워하시고 야곱을 사랑하셨습니까? 야곱이 에서보다도 나은 점이 있어서 그런 것입니까? 아닙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의 것으로 삼으신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사도 바울은 엡1:4∼6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이미 창세 전에 하나님은 예정 가운데 우리를 택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삼아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 나 같은 죄인을 왜 구속해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일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 은혜에 감격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셋째로, 하나님은 우리를 무엇으로 낳으셨다고 하셨습니까? 거듭남의 방법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습니다. 벧전1:23의 말씀입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또 우리가 잘 아는 롬10:17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말씀을 들을 때 우리의 마음 속에 믿음이 생깁니다. 거듭남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구원은 믿음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낳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니 왜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쁜 것을 주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언제나 좋은 것을 주십니다. 언제나 우리를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이 믿음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떠한 시험을 허락하신다 할지라도 조금도 동요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시는구나! 하나님께서 내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구나! 하나님이 내게 더 큰 축복을 주려고 하시는구나!" 그러면서 우리는 기쁨으로 우리의 걸음을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맡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사도 바울은 롬8:31∼39의 말씀에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밀물처럼 밀려오는 은혜가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 깨달으셨습니까? 하나님은 좋으신 분이십니다. 선하신 분이십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결코 변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능력도 하나님의 지혜도 변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빛 자체이십니다. 그 속에는 어두움이 없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언제나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고,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왜 하나님이 우리에게 의미없는 십자가를 허락하시겠습니까? 왜 의미없는 시험을 주시겠습니까? 하나님은 그것을 통해서 우리를 축복하시고 더 나은 것을 주고자 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하나님이 주시는 것으로 만족을 삼고, 하나님이 주시는 것으로 기뻐하며 감사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들입니다. 하나님의 특별하신 백성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까지 아낌없이 내어주신 분이십니다. 그런 분이 왜 우리를 나쁜 길로 인도하시겠습니까? 언제나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믿음이 없고 지혜가 부족해서 그것을 깨닫지 못할 뿐입니다. 잠시 잠깐만 인내하면 하나님이 뜻하시는 선하신 뜻을 우리가 밝히 깨달아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우리의 모든 곤경을 속히 돌이켜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전보다도 갑절의 복을 우리에게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어떤 어려운 일을 당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생각하십시다. 아울러 하나님의 사랑을 의지함으로 시험을 이기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다 받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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