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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대한감리회 창 정 교 회 담임목사 박 한 응(朴 漢 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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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30. 주일 낮예배 설교문
【설 날 주 일】
본 문 : 출애굽기 5 : 1- 3
제 목 : 고향(故鄕)을 찾아가는 사람들
찬 양 : <새>235, 239, 240, 243, 246, 347.
복음송 : 오늘도 하룻길(107)
할렐루야!!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은총이 이 시간 예배드리는 성도 여러분들에게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이번 주간에 우리 민족의 고유명절인 설날이 있습니다. 이 명절에는 무엇보다도 고향을 떠났던 사람들이 고향을 찾아서 그동안 헤어져서 살던 부모님들과 친지들을 만나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입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 제목을『고향(故鄕)을 찾아가는 사람들』이라고 정했습니다.
예년 같으면 설날을 기하여 우리나라의 인구가 약 3분지2에 해당되는 3천만 명 이상이 이동을 한다고 하는데 금년에는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구제역과 AI고병원성 조류독감 때문에 고향에 있는 부모님들이 “얘야, 올해는 구제역 때문에 오지 마라” 고 하니까 젊은 며느리들은 얼씨구나 하고 호호 거리면서 외국으로 여행을 떠난다고 합니다. 금년에는 설 연휴가 5일에서부터 최장 9일까지 계속되기 때문에 해외로 여행을 나가려고 하는 사람들 때문에 여행사들은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답니다. 참으로 웃어야 할 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와 같이 명절을 지내는 풍속도(風俗圖)도 많이 변해 가고 있습니다. 또 고향도 옛날의 고향이 아니고 많이 변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중가요 중에도 「고향에 찾아와도 그립던 고향이 아니더라.」는 노래도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
그런데 올해도 고향을 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 북한에다가 고향을 두고 남하한 사람들은 고향을 가지 못한 설음에 북녘 땅이 바라보이는 임진강변에서 고향을 향하여 눈물짓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찾아갈 수 있는 고향이 있다는 것만 해도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래서 오늘은 「고향」을 주제로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고향이란 무엇인가?
(창47:29-30) “이스라엘이 죽을 날이 가까우매 그의 아들 요셉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이제 내가 네게 은혜를 입었거든 청하노니 네 손을 내 허벅지 아래에 넣고 인애와 성실함으로 내게 행하여 애굽에 나를 장사하지 아니하도록 하라 내가 조상들과 함께 눕거든 너는 나를 애굽에서 메어다가 조상의 묘지에 장사하라 요셉이 이르되 내가 아버지의 말씀대로 행하리이다”
이 말씀을 보면 야곱은 그의 아들 요셉을 따라 애굽에 가서 살다가 죽을 때에 그 아들 요셉에게 유언하기를 애굽에 장사하지 말고 고향 가나안 땅 선영에 장사하라 하였습니다. 야곱의 일생 147년 동안에 애급에 가서 사는 17년 동안의 생활이 가장 영화로운 생활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죽어서는 고향에 묻어 달라고 유언을 하였습니다.
또 요셉도 그가 죽을 때에 유언하기를 언젠가는 우리 민족이 애급 땅에서 나갈 텐데 그때에 나의 해골을 가져다가 가나안 땅에 묻어 달라고 유언을 하였습니다.
(창50:25)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당신들은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
그래서 모세를 비롯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할 때에 요셉의 해골을 취하여 가지고 나갔습니다.
(출13:19) “모세가 요셉의 유골을 가졌으니 이는 요셉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단단히 맹세하게 하여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너희를 찾아오시리니 너희는 내 유골을 여기서 가지고 나가라 하였음이더라”
그 후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주전597년 이스라엘 나라는 바벨론에게 포로가 되어 끌려갔습니다. 바벨론 그발강 가에서 그들은 고향을 그리면서 버드나무 가지에 거문고를 걸어놓고 망향가를 부르면서 슬피 노래한 역사를 시편137편에서 찾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인간은 왜 이렇게도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입니까?
고향에는 자기를 낳아준 부모님이 계시고 그리고 가족과 친척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고향은 자랄 때에 뛰어 놀든 정든 산천이 있고 자신의 탯줄을 묻은 땅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타향에서는 모든 여건과 환경이 아무리 좋다고 하여도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이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자연히 고향을 사모하게 되는 것입니다.
시인 노천명(盧天命.1912-1957 황해도 장연 출생)씨는 인간이 고향을 끊을 수 없는 관계를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언제든 가리
마지막엔 돌아가리
목화 꽃이 고운 내 고향으로
조밥이 맛있는 내 고향으로
언제든 가리
나중엔 고향 가 살다 죽으리.
메밀꽃이 하-얗게 피는 곳
내 고향으로.....”
그런가 하면 수많은 시인이나 문인들이 고향을 무대로 고향을 그리는 마음을 글로 썼고 가수들이 고향을 노래하였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김동진 작곡 「가고파」와 현제명 작곡 「고향생각」이런 노래들은 참으로 고향을 그리면서 지은 노래들입니다.
또 이원수작사 홍난파작곡 「고향의 봄」이란 동요는 동요의 차원을 넘어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이 노래를 듣노라면 누구나 고향을 그리는 마음에 콧날이 시큰해지곤 합니다. 다 같이 한 번 불러 보겠습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리인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430년 동안 온갖 고초와 고생을 하다가 드디어 그들의 부르짖음이 하나님께 상달이 되어 하나님께서 그들을 권고 하셔서 모세를 보내어 애굽에서 인도케 하셨습니다.
모세가 애굽의 바로에게 가서 “우리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대로 하나님께 희생의 제사를 드리려 하니 이 백성들을 보내주소서” 라고 요청하는 내용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야곱의 가족 70명이 기근을 피하여 애굽에 들어간 후 요셉도 죽고 세월도 흘러 애굽의 왕도 바뀌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억압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어언 애굽에 온지 430년이란 세월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였습니다. 그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이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출3:7-10)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 이제 가라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히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명을 받은 모세가 애굽의 바로에게 가서 백성들을 돌려보낼 것을 요청하였으나 마음이 강팍한 바로왕은 듣지 않았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을 쏟아 붓게 되었고 이에 항복한 바로왕은 어쩔 수 없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2. 고향을 찾아가는 사람들
성경에는 고향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을 보면 두 가지로 분류가 됩니다. 기쁨과 소망가운데 고향을 찾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실패와 낙심 중에 슬픔과 비통에 잠겨 찾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1) 기쁨으로 고향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①창세기 31장에는 야곱이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20년 만에 자기 집 고향을 찾아가는 모습이 있습니다.
그는 아버지와 형을 속인 죄로 에서에게 쫓겨 외삼촌의 집으로 갈 때 루스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났고 그 후 20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 고향을 찾아오고 있습니다.
야곱은 20년 전 벧엘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생각해 봅니다.
(창28: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그 말씀대로 지금 야곱은 거부가 되어 금의환향(錦衣還鄕)하고 있습니다.
야곱은 일찍이 부친과 형을 속이고 형이 받을 축복을 가로 채어 형 에서의 진노로 말미암아 외삼촌의 집으로 도망을 하였습니다. 외삼촌의 집에서 20년의 세월동안 많은 어려움과 고난을 무릅쓰고 이제는 가정과 재산을 어느 정도 마련한 야곱은 고향을 찾아가기로 결심을 하였습니다.
(창30:25) “라헬이 요셉을 낳았을 때에 야곱이 라반에게 이르되 나를 보내어 내 고향 나의 땅으로 가게 하시되 내가 외삼촌에게서 일하고 얻은 처자를 내게 주시어 나로 가게 하소서” 라고 간청을 합니다.
야곱은 범죄하고 도망을 갖던 사람이 뉘우치고 돌아온 모습입니다. 결국 돌아왔을 때에 그의 형 에서와도 화해를 하였고 그는 본래 하나님을 만났던 벧엘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②에스라서 1-3장에서는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어 끌려갔던 유다 민족이 70년 만에 해방이 되어서 돌아오는 모습이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죄로 바벨론으로 끌려가 70년 동안 종살이를 하였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진노에서 풀려나 해방이 되어 고향 이스라엘로 돌아올 때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노래하였습니다.
(시126:1-6)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려보내소서.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1945년 8월 15일 우리나라가 일제의 압박에서 해방이 되고 외국에 흩어져 살던 수많은 동포들이 돌아오면서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달토록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를 목이 터져라 고 불렀고 또 “돌아오네. 돌아오네. 고향산천 찾아서~” 라는 『귀국선』이라는 노래가 한창 유행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1968.10.20일 월남전에 참전하였다가 복무기간이 만료되어 1968년 11월 1일 귀국선을 탓을 때 감동과 감격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아마도 일제의 압박에서 해방이 되어 귀국선을 탄 사람들의 감격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70년 만에 돌아온 유대인들은 먼저 허물어진 예루살렘 성전 재건에 힘을 모았습니다. 많은 방해와 어려움이 있어서 중단 되는 일도 있었으나 선지자들이 전해주는 하나님의 말씀에 위로를 받으면서 마침내 성전 재건을 마치게 됩니다.
사랑하는 창정교회 성도 여러분!!
이 말씀은 분명 유대인들이 바벨론에서 돌아올 때의 기쁨의 말씀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이 시간에 깊이 명심해야 할 것은 마치 바벨론의 긴긴 세월동안의 포로생활에서 해방되었을 때의 기쁨과 같이 우리들은 사탄의 올무와 죄악의 무거운 짐에서 해방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기뻐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아 멘!>
(2) 실패자로서 슬픔과 낙심 중에 귀향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①룻기 1장에서는 나오미가 초라한 모습으로 고향을 찾아오는 모습이 있습니다.
나오미라고 하는 사람은 그의 남편 엘리멜렉과 말룐과 기룐이라는 두 아들과 함께 베들레헴 고향의 기근을 피하려고 모압나라로 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두 아들을 결혼시켰습니다. 그러나 그의 가정에 행복은 오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또 두 아들마저 죽었습니다. 이제는 홀로된 두 며느리만 남았기에 작은 며느리는 돌려보내고 큰 며느리인 룻만을 데리고 고향을 찾아왔습니다.
이때에 나오미의 고향 사람들은 나오미를 따뜻하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나오미는 말하기를 “나를 나오미라고 부르지 말고 마라라고 하라” 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에는 큰 희망과 포부를 가지고 고향을 떠났던 사람이 실패하고 상한 마음을 가지고 찾아가는 실패자의 귀향입니다. 나오미는 애당초 베들레헴을 떠나는 것부터가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어쨌든 간에 결과는 고향 베들레헴에 찾아왔을 때에 축복을 다시 회복할 수가 있었습니다.
②누가복음 24:13절 이하의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의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시고 무덤에 장사 지낸지 3일이 되는 날 예수님은 분명히 부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글로바와 누가는 이제는 자신들의 바라던 소망이 끊어졌다고 생각하고 고향 엠마오를 향하여 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3년 만에 찾아가는 고향입니다. 3년 전 예수님을 따라서 고향을 떠나 올 때는 희망도 있었고 새로운 포부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무언가 새로운 삶을 살겠다고 저들은 당당하게 고향을 떠나왔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소망은 산산이 부서진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실의에 빠져서 무거운 발걸음으로 고향을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금의환향하는 고향길이라면 얼마나 기쁘고 즐거운 길이었겠습니까?
그러나 저들은 무거운 침묵에 싸여서 걸음을 옮기고 있었습니다. 이때에 부활하신 주님께서 저들을 찾아오셨습니다. 길을 가면서 저들에게 인자가 이와 같이 많은 고난을 당한 후에 제3일에 부활할 것에 대한 구약성경에 예언된 말씀들을 풀어서 들려주었습니다. 이 말씀을 들을 때에 저들의 마음이 뜨거워지고 저들의 눈이 밝아져서 예수님을 알아보게 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이 말씀은 좌절과 실망가운데 찾아가는 고향 길이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큰 희망과 포부를 가지고 고향을 떠나갑니다. 그리고 마음속에 다짐하기를 크게 성공하여서 돈을 많이 벌기 전에는 고향을 찾지 않겠노라고 합니다. 그러나 세상이 그리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번 설날에도 고향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③눅2:1-7절에는 예수님의 부친 요셉과 그의 모친 마리아가 당시의 총독 가이사 아구스도의 명령에 따라서 고향으로 호적을 하러 가는 모습입니다.
이 장면에서 요셉과 마리아는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가는 고향 길이었습니다. 고향 가는 길은 즐겁고 기쁨의 길이어야 하는데 당시의 총독인 가이사 아구스도는 인구를 정확하게 파악하여 더 무거운 세금을 거두기 위하여 전국에 호적 령을 내렸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더 더욱 그들의 발걸음은 무거울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거기다가 마리아는 만삭이 되어 그들의 여행은 더욱 힘이 들었습니다. 고향을 가도 아무도 그들을 반겨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베들레헴에 도착하여 보니 이미 날은 어둡고 어디 가서 하룻밤을 보낼만한 곳이 없었습니다. 할 수 없어서 요셉과 마리아는 마구간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는데 그러나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이날이 바로 성탄절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던 것입니다.
더욱이 놀랄 수밖에 없는 것은 예수님의 베들레헴 탄생은 이미 이사야 선지자와 미가 선지자를 통하여 예수님의 탄생하시기전 730년 전에 이미 예언된 것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④ 누가복음 15장 11절 이하의 말씀에는 아버지의 집을 떠났다가 만신창이의 몸을 이끌고 아버지께로 돌아오는 탕자의 모습이 있습니다.
탕자의 비유를 통하여 많은 것을 생각할 수가 있고 또 여러 가지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 비유의 말씀은 탕자와 같은 우리 인생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올 때에 하나님은 저희들을 기쁨으로 영접하여 준다는 것이 이 비유의 바른 뜻입니다.
탕자는 아버지에게서 받을 수 있는 자신의 몫이 되는 유산에 대하여 계산해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 유산을 가지고 대대로 가업으로 내려오는 목축업이나 농사일보다는 좀 더 새로운 삶을 살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상당히 진보적인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자신의 의지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또한 세상이 그렇게 순진하지도 않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그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그러나 이 탕자에게 훌륭한 점이 있다는 것은 아버지께로 돌아가겠다는 생각입니다. 고향에는 풍성한 생활 속에서 아무런 걱정이 없이 풍요함을 누리는 그의 고향집을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늦었다고 생각하면서 포기 한 것이 아니라 새롭게 도전한 것이 그에게 아주 훌륭한 생각입니다. 아버지께로 돌아갔을 때에 그는 자기의 기대치 보다 몇 십 배 아니 몇 백 배의 축복과 은혜를 입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잃었던 아들의 신분을 다시 회복하였습니다.
3. 우리들은 더 낳은 고향을 사모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11장을 우리들은 「믿음의장」이라고 합니다. 여러 명의 믿음의 사람들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믿음은 여러 가지로 설명이 되었지만 한 가지 사실로서 압축하여 볼 수가 있습니다.
이것을 히브리서를 기록한 사람은 (히11:15-16) “그들이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그들은 한결같이 이 땅을 본향으로 생각하지 아니하고 하나님 나라를 본향으로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예비하신 하늘에 있는 우리의 본향은 어떤 곳입니까?
그곳은 우리가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이지만 성경을 통하여 그곳이 어떤 곳인가를 알 수가 있습니다.
(1) 그곳은 영광에 둘린 화려한 성이라고 하였습니다.
(계21:10-11)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하나님의 영광이 있어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더라”
사도 요한은 성령에 이끌림을 받아 화려한 성 새 예루살렘을 보았습니다. 그 성은 높은 성곽이 둘리어져 있고 사방으로 열 두 진주 문이 있는데 열 두 천사가 수직하고 있고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으며 그 성의 거리는 정금으로 되었고 그곳에는 해와 달이 쓸데없으니 아버지와 어린양의 영광이 해보다 밝은 까닭이라고 하였습니다.
(2) 그곳은 죄와 고통과 슬픔과 사망이 없는 곳이라고 하였습니다.
(계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 이러라”
인류의 조상 아담이 죄를 범한 이후로 이 세상은 괴로움뿐입니다. 그래서 가는 곳마다 사람들은 죽겠다는 탄식소리만 합니다. 그리고 이 세상은 죄악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날마다 사망의 눈물이 그칠 날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바라고 사모하는 본향 천국은 괴로움도 고통도 슬픔도 사망도 없고 기쁨과 즐거움만 있는 곳입니다. 거기에는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흐르는 생명시내가 있고 생명의 강 좌우에는 생명나무가 있어 열 두 종류의 실과를 맺습니다.
(3) 그곳은 기쁨과 찬양과 감사가 충만한 곳입니다.
요한계시록 19장에는 수많은 천군과 천사가 찬양을 부르고 보좌에 둘러선 24장로가 찬양을 부르고 구원받은 천만 성도가 찬양을 부르는 모습이 있습니다.
마가복음 9장에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세 제자가 변화산상에서 천국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너무 기뻐서 우리가 여기에 장막을 지으리다. 라고 까지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후 12:4절에 삼층 천에 올라갔더니 말로다 형용할 수 없는 것을 보았노라고 하였습니다.
스데반은 돌에 맞아 순교를 당하면서 돌무더기 속에서도 그의 얼굴이 천사와 같이 빛이 났는데 바로 천국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가야 할 본향, 우리 주님이 예비하신 새 예루살렘성은 우리가 상상 할 수도 없는 좋은 곳입니다. 그 본향에 갈 수 있도록 다 같이 힘쓰고 노력하여야 하겠습니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가 차지한다고 하였습니다.(마11:12)
결 론 : 오늘의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이 말씀들 속에서 몇 가지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첫째, 사람들은 누구에게나 고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태어나서 자라난 곳, 바로 거기가 고향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이 고향을 항상 동경하고 그리워합니다. 이와 같이 모든 사람들이 고향이 있듯이 우리 성도들이 가야 할 영원한 고향은 바로 하늘나라 아버지 집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 멘!>
둘째, 어떤 모습으로든지 즉 성공한 모습으로 당당하게 금의환향하든지 아니면 크게 성공을 하지 못하였다고 하더라도 돌아오기만 하면 고향은 따뜻하게 맞이해 준다는 사실입니다.
마찬가지로 탕자와 같은 우리 인생들이 만신창이가 된 몸이라도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만 하면 우리 하나님은 지난날의 모든 죄와 허물은 기억도 하지 않으시며 우리를 기쁘게 맞이해 주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아 멘!>
셋째, 영원한 하늘나라의 고향을 사모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예비하신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그 곳이 바로 우리가 돌아갈 영원한 본향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14:2에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라” 고 하셨고 사도 바울은 빌3:20절에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고 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가야할 고향은 어떤 곳입니까?
우리 주님께서 우리들을 위하여 예비해 두신 영원한 본향입니다. 이 세상은 잠시 보이다가 없어질 안개와 같은 세상이요 우리는 나그네와 같이 잠시만 머물다가 가야할 인생입니다.
설날을 맞이하여 모든 사람들이 교향을 찾아 대 이동을 하는 이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가 가야 할 영원한 본향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면서 이 세상에 머물 동안 주의 일에 더욱 힘쓰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충성을 다하여 주님 앞에 서는 날 『착하고 충성된 종아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 된 나라를 상속하라』고 칭찬 듣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참고 : 본 설교문을 작성하기 위하여, 성서연구사 발행.「쉐마 주제별종합자료」제2권을 부분적으로 참고 인용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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