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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3.27.주일밤설교> 산이라도 옮길만한 믿음

(우)340-901    충남 예산군 삽교읍 창정리 183-1번지
기독교대한감리회 창 정 교 회   담임목사 박 한 응(朴 漢 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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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3.27. 주일 밤예배 설교문
         【사순절 셋째 주일】
본  문 : 마태복음 17 : 14 -20
제  목 : 산이라도 옮길만한 믿음
찬  송 : <새>272, 384, 545, 597.
복음송 : 할 수 있다 하신 이는(80), 주님 가신 길(119)

 

       할렐루야!!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오늘 저녁에도 성전에 나와서 예배드리는 성도 여러분에게 충만하게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오늘은「사순절 셋째 주일」을 맞이해서 우리 주님께서 겪으신 일들을 생각하면서 주님이 당하신 고난을 다시 한 번 생각하고 또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아 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 성도들을 사랑하시는 그 사랑은 고난 속에서 역사 하십니다.
       성경 속에 기록된 모든 믿음의 사람들은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였습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아 멘!>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얼마나 고난을 당하였습니까? 이삭도 야곱도 요셉도 다니엘도 바울과 사도들도 모두 고난을 당하였습니다.
       예수님도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의 고난과 가시관의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옆구리를 창으로 찔리고 채찍으로 맞으셨습니다.
       (사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주님이 당하신 고난은 지금 우리들이 당하는 고난에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체포되시고 밤새도록 가야바의 뜰에서, 또 헤롯의 법정과 빌라도의 법정을 오가며 수치와 모욕을 당하시고,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시기 위해 그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올라 가셔야 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후에도 온갖 수치와 멸시를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그 모든 고난을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참으셨다고 하였습니다.
       (히12:2-3)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그래서 우리는 이 사순절 기간 동안 예수님이 이 십자가의 고난을 앞두고 겪으신 일들을 생각하면서 오늘도 주님 가신 길을 따르는 우리 믿음의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다 같이 복음성가를 부르겠습니다.

 

               주님 가신 길(119)
1. 주님가신길 십자가의길 외롭고 무거웠던길
   골고-다의 거친언덕길 지치-신 주님의 음성

<후렴> 오나의 주님 용서하소서 죄인위해 고난받으셨네
       이세상에 생명주시길 그렇게도 원하셨던길

2. 머리-에는 가시면류관 허리에는 굵은창자국
   손과-발목 다-찔리신 지치-신 주님의 모습

3. 나의죄짐을 홀로지시고 피흘리며 걸어가신길
 
  우리주님의 그-모습은 참사랑의 주님의모습

 

       오늘의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열 두 제자 중 베드로와 야고보. 그리고 요한, 세 제자만을 데리고 산에 올라가시고 산 아래에는 나머지 아홉 명의 제자만 남게 되었습니다. 아홉 명의 제자들은 세 명의 제자만을 대동하시는 예수님에 대하여 은근히 불평도 하고 불만을 터뜨리는 제자도 있었습니다.
       성경에는 예수님께서 열두 명의 제자 중에 세 명만을 데리고 간 곳이 세 번 기록이 되어 있는데 그 중에 한군데가 바로 오늘 말씀의 내용이고,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었을 때 그 딸을 살리려고 갈 때에 세 명의 제자를 대동하셨고, 또 마지막 겟세마네 동산에 가실 때에도 세 명의 제자만을 대동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이런 내용에서 무엇을 알 수가 있겠습니까?
       예수님의 제자 12명을 분석하여 보면 대충 네 그룹으로 분류할 수가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과 함께 어디든지 동행하는 제자가 있고
       둘째, 나중에 복음서를 기록하고 크게 활약한 제자가 있고
       셋째, 제자의 이름은 있는데 아무런 업적이 없는 제자가 있고
       넷째, 가룟 유다와 같이 예수를 판 제자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자라고 해서 다 제자가 아닙니다. 교회 다닌다고 해서 다 교인이 아닙니다. 예배에 참석하였다고 해서 다 은혜 받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이 또 하나 있습니다.
       마27:57절 말씀을 보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뒤에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하여 장사 지냈는데 성경에는 이를 가리켜 예수님의 제자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27:57)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의 부자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왔으니 그도 예수의 제자라”
       어떤 사람은 그 영광스러운 예수님의 열두 제자의 수에 들었어도 별 볼일 없이 일생을 보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예수님의 열두 제자에 들지도 못하였어도 다른 제자가 하지 못한 큰일을 하고 예수님의 제자라는 칭호를 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 하나님 성전에 나와 예배하는 우리 창정교회 성도들은 교회에서뿐만 아니라 가정에서, 일터에서, 지역사회에서, 인정받고 주님께 인정받는 사람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예수님과 세 명의 제자가 산으로 올라간 뒤에 아홉 명의 제자들이 무료하게 기다리고 있는데 한 가지 사건이 터졌습니다.
       남루한 옷에 머리와 얼굴은 상처투성이고 사람의 꼴이 아닌 한 소년을 앞세우고 많은 사람들이 뒤따라 아홉 제자가 있는 곳으로 오는 것이었습니다. 그 무리들이 이르러 한 사람이 제자들 앞에 나서더니 "이 애는 내 아들로서 간질병으로 심히 고생하고 있으니 고쳐주시기를 바랍니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이에 아홉 제자는 제각기 자기가 고치겠노라고 앞을 다투며 나서 보았지만 아무도 고쳐줄 수가 없었습니다. 이로써 아홉 제자는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1. 그러면 먼저 실패의 내용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람마다 다 성공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실패하는 경우가 많고 자기의 재능. 기술, 힘, 수단과 방법을 다해도 실패함에는 어찌할 도리가 없는 모양입니다. 성경에 봐도 몇몇 실패의 사실이 나타나 있음을 봅니다.

       모세는 자기 백성이 고난당하는 것을 보고 의분을 느껴 애굽인 하나를 죽였다가 이것에 탄로가 되어서 도망을 쳐 미디안으로 가서 은둔 생활을 했습니다.
       신랑을 맞이하러 간 미련한 다섯 처녀는 기름을 준비하지 아니했다가 신랑을 맞이하는 일에 실패를 하였고, 베드로는 수제자로 잘 지내다가 마지막에 예수께서 잡히시던 날 밤 주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하였고, 오늘 본문 말씀에 예수님의 제자 아홉 명이 믿음이 없으므로 간질병 걸린 아이를 고치지 못해서 부끄러움을 당한 사실 등입니다.

 


2. 왜 실패를 했는지 그 실패의 원인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1) 불평과 원망이 있었기 때문에 실패를 하였습니다.

 

       아홉 제자들은 어찌하여 나를 빼놓고 베드로, 야고보, 요한만을 데리고 가더란 말인가? 하는 불평에서 예수님에 대한 원망과 세 제자에 대해서 시기를 하였던 것입니다. 아홉 제자들은 예수를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전부 다 데리고 가야할 일이었다면 어찌하여 세 제자만 데리고 갔겠습니까? 그것을 알지 못하고 불평하면서 그런 마음으로 어찌 이적을 가져올 수 있었겠습니까?

 

(2) 교만이 앞섰기 때문에 실패를 하였습니다.

 

       아홉 제자들은 불만으로 한참 열을 올리고 있을 즈음에 병자를 데리고 온 아버지로부터 아들의 병을 고쳐줄 것을 요청 받았습니다. 제각기 아홉 제자는 앞을 다투며 자기가 고치겠노라고 야단법석을 떨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결과는 모두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시101:5) "눈이 높고 마음이 교만한 자를 내가 용납하지 아니 하리로다“
       (약4:6)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고 했습니다. 교만이 앞선 저들은 아무리 예수의 제자라고 자부했어도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3)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실패를 하였습니다.

 

       주님은 17절 말씀에서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라고 책망했습니다. 믿음만이 기적이 가능한 것입니다.
       히브리서 13장에는 믿음의 선조 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벨의 제사하며,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에 옮기운 에녹, 방주를 예비하여 여덟 식구 전부를 구원케 한 노아, 모험으로 고향을 떠난 아브라함, 잉태치 못했던 사라의 잉태나, 그 외 야곱, 요셉, 모세의 어머니, 모두가 믿음으로 좋은 결과를 얻었던 것입니다.
       (막9:23)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고 예수님께서 말씀했습니다. 과연 저들이 믿음이 있었으면 실패함이 없었을 것이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였을 것입니다.

 

         할수있다 하신이는 나의능력 주하나님
         의심말라 하시고 물길위를 걸라하시네
         할수있다 하신주 할수있다 하신주
         믿음만이 믿음만이 능력이라 하시네
         믿음만이 믿음만이 능력이라 하시네

 

(4)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패를 하였습니다.

 

       막9:28-29에 보면 제자들이 조용히 실패의 사실을 물으니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고 이유를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은 가이사라 빌립보에서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으신 후에 베드로에게 칭찬하시기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16:19)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때 말씀하신 천국 열쇠가 바로 기도의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천국 문을 열 수 있는 열쇠가 됩니다.
       그래서 모든 기도는 응답이요 승리의 비결이 됩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끊임없는 기도로 모든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영광을 누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는 사람을 가까이 하시며 그의 요청을 들어주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아 멘!>

 

(5) 예수님이 계시지 않아서 실패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곳에 계셨더라면 이와 같은 문제가 발생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계시지 않은 인간들만의 모임에서는 항상 여러 가지 부작용과 문제가 발생을 합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신 후에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 가셨습니다.
       그런데 배타고 가던 제자들에게 문제가 생겼습니다. 잔잔하던 호수가 갑자기 파도가 일어서 작은 고깃배는 금방이라도 파선하여 침몰할 지경이 되었습니다.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제자들이 예수님이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를 지를 때에 예수님은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말라” 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안 계신 배는 풍랑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셨을 때 바다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잔잔해 졌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의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 없이 살아가다 보면 실패와 좌절만이 있게 됩니다. 이제부터는 주님 모시고 날마다 승리하는 삶을 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어두워진 세상길에(108)

  어두워진 세상길을 주님 없이 걸어가다
  나의 영혼 어두워졌네.
  어느 것이 길-인지 어느 것이 진리인지
  아무 것도 알 수 없었네.
  주님 없이 살아가는 모든 삶
  실패와 좌절뿐이네
  사랑하는 나의 주님 내 영혼
  눈을 뜨게 하-소-서
  열려라 에바다 열려라 눈을 뜨게 하소서
  죄악으로 어두워진 나의 영혼을
  나의 눈을 뜨게 하소서

 


3. 산을 옮길만한 믿음은 작은 겨자씨의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아홉 명의 제자들이 실패한 원인을 조용히 물을 때 대답하시기를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 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고 하셨습니다.

 

       겨자씨는 씨앗 중에 아주 작아서 잘 보이지도 않는 씨앗인데 그것이 땅에 묻혀 싹이 나서 자라게 되면 큰 나무가 되어서 새들도 깃들일 수가 있고 그늘도 제공해 주는 나무가 됩니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씨앗이라도 그 씨앗만 가지고는 싹이 날 수 없습니다. 반드시 땅에 묻혀야 합니다. 마13장에는 씨 뿌리는 자의 비유가 있습니다. 땅에 묻히지 못한 씨는 싹이 나지 못하고 새들이 먹어버리든지 혹 싹이 나도 금방 말라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내게 있고 마치 옥토와 같은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할 때에 내가 가지고 있는 작은 믿음도 산을 옮길 수 있는 큰 기적을 일으키게 될 줄로 믿습니다.<아 멘!>
       예수님은 70명을 뽑아 둘씩 짝을 지워 능력을 주어서 전도하러 보냈습니다. 저들이 나중에 돌아와 보고를 하는데 “기뻐 돌아와 이르되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눅10:17)라고 하였습니다.

 

       문제는 지금 내게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한다고 하였습니다.(히11:6) 이 말씀은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내게 믿음이 있어서 믿음으로 행할 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고 기적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아무리 큰 기적의 역사도 작은 믿음에서부터 시작이 됩니다.
       예수님은 항상 믿음을 보시고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축복하시는 것이 아니고 믿음을 보시고 그 믿음을 축복하십니다.<아 멘!>

 


결  론 : 오늘의 말씀을 마칩니다.

 

       우리가 믿는 성경은 믿음에 관한 책입니다. 성경에는 믿음에 대하여 수없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에만 믿음이란 말이 230번 기록되어 있고 오늘 읽은 본문 말씀에도 3번이나 기록되어 있습니다.
       (행16:31)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롬1:17)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나님은 믿음 있는 자를 사랑하시고 축복하십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세상에 계실 때 어떤 사람을 가장 기뻐하시고 칭찬하셨는가 하면 지식이 많은 사람도 아니요, 부자도 아니요, 윤리와 도덕이 훌륭한 사람이 아니라, 믿음 있는 자를 칭찬하시고 기뻐하셨습니다.
       그리고 병자를 고치실 때도 병자 본인의 믿음이든지 아니면 그 사람의 부모든지 그것도 아니면 동행한 사람들의 믿음을 반드시 확인하시고 고쳐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 가셨을 때 일입니다. 가버나움 동네는 갈릴리 호수 서북쪽에 자리 잡고 있는 마을입니다. 그곳에 주재하고 있는 로마의 백부장이 예수님께 찾아와서 간구를 하였습니다.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  하나이다” (마8:6) 고 말하며 고쳐 달라고 하였습니다. 이때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마8:10) 고 칭찬을 하셨습니다.
       그런 반면에 주님께서는 믿음 없는 자는 책망하셨습니다.
       (마6: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믿음은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신앙생활 하는데 원동력(Motive Power)이 됩니다. 그래서 믿음이 있는 자는 항상 추진력이 있고 앞으로 잘 나갈 수가 있고 또 신앙도 날마다 새롭게 성장을 하지만 믿음이 없는 사람은 10년 전 믿음이나 오늘의 믿음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앞으로 전진하지 못하는 앉은뱅이와 같습니다. 반신불수와 같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부탁하기를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딤전4:15) 고 하였습니다.
       우리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눅18:8)고 하셨습니다.

      

       이 마지막 말세를 당한 이때에 믿음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은 성도들의 자본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도 없고 천국에 들어갈 수도 없습니다.
       아무쪼록 오늘 이 저녁에 예배드리는 우리 창정교회 성도 여러분들은, 믿음이 충만하여, 모든 환난이나 시험도 이기고, 주님이 주신 사명을 충성되이 감당하는, 성도가 되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출처 : ╋예수가좋다오
글쓴이 : 아모스박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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