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뢰아 사람들의 좋은 점
설교자 : 마경훈목사
본문 - 사도행전 17장 10 - 12절(개역개정)
10 밤에 형제들이 곧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내니 그들이 이르러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니라
11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12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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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지방마다 여러 가지 독특한 특징이 있습니다. 특히 말은 지방마다 큰 차이가 납니다. 보통 충청도 사람은 말하는 것이 매우 느리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런 편견을 뒤집는 몇 가지 사례가 나왔습니다. 각 지방 사투리로 간단히 비교해 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사례 1> 서울말: 돌아가셨습니다. / 경상도: 돌아가셨다 아임니꺼. / 전라도: 죽어 버렸어라. / 충청도: 갔슈!
<사례 2> 서울말: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 경상도: 내 좀 보이소. / 전라도: 아따 잠깐만 보더라고. / 충청도: 좀 봐유!
<사례 3>서울말: 어서 오십시오. / 경상도: 퍼뜩 오이소. / 전라도: 허벌라게 와 버리랑께. / 충청도: 빨랑 와유!
<사례 4> 서울말: 괜찮습니다. / 경상도: 아니라예. / 전라도: 됐어라. / 충청도: 됐슈!
<사례 5> 서울말: 선배님, 인생이 뭔지 이제 알아들었습니다. / 경상도: 행님, 인제 겨우 인생을 알겠심더. / 전라도: 형님, 인생을 알게 해 줘서 고마워 버린당께. / 충청도: 알었슈!
신앙생활도 각 지방마다 조금씩 차이가 납니다. 어떤 지역에 가면 불교가 강하고, 어떤 지역에는 유교가 강하고, 어떤 지역에는 기독교가 강한 지역이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데살로니가 지역 사람들은 기독교에 대해서 상당히 닫혀있었습니다. 반면에 베뢰아 사람들은 상당히 열려있었습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갔을 때에는 복음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바울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도망치다시피 데살로니가에서 나와서 베뢰아로 향합니다. 그런데 베뢰아 사람들은 매우 너그러운 사람들이었습니다.
베뢰아는 데살로니가에서 서남쪽으로 약60마일(약96km) 떨어진 지점에 있는 도시입니다. 지금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인구는 약 1만 8천에서 2만 명 정도이고 그 중에 유대인은 약 2천 명 정도였다고 합니다.
바울의 복음 사역이 베뢰아에서는 성공적이었습니다. 12절에 보니 베뢰아에는 믿는 자의 수가 많았고 또 적지 않은 헬라의 귀부인들과 남자들이 믿었습니다.
베뢰아가 데살로니가보다 열매가 좋았던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 설교는 “베뢰아 사람들의 좋은 점” 이라는 제목으로 베뢰아가 더 열매가 좋았던 이유를 살펴보겠습니다.
1. 베뢰아 사람들은 말씀에 대한 반응이 좋았습니다.
베뢰아 사람들이 말씀에 보인 긍정적인 반응은 세 가지입니다.
1) 너그러운 마음으로 말씀을 받았습니다(11절).
11절에 보니 베뢰아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웠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베뢰아 사람들의 마음의 밭이 데살로니가 사람들보다 좋았다는 말입니다.
그들은 말씀을 들을 때 잘못된 것을 찾아내려고 들었던 것이 아니라 넓은 마음으로 이해하려는 마음으로 말씀을 들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열매가 풍성했습니다.
말씀을 듣는 사람들을 보면 같은 말씀인데도 시험에 드는 사람이 있고, 은혜를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엄청난 은혜를 받았는데 어떤 사람은 아무런 은혜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말씀에 은혜를 받느냐 받지 못하느냐는 말씀도 중요하지만 마음 밭도 중요한 것입니다.
마 13장 씨 뿌리 자의 비유가 나옵니다. 거기서 뿌려지는 씨는 똑같지만 어느 마음 밭에 뿌려지냐에 따라 결과가 다릅니다. 길가는 마음이 단단한 사람들을 보여줍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말씀이 떨어지지만 새들이 씨를 먹어버리는 것처럼 마귀가 와서 말씀을 먹어버리기 때문에 열매가 없습니다. 돌밭은 말씀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말라버리는 사람들을 보여줍니다. 돌밭에서는 씨앗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기 때문에 말라죽는 것처럼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잠깐 깨닫다가 잊어버리기 때문에 열매가 없습니다. 가시 떨기는 염려가 많고 물질의 유혹에 넘어지는 사람들을 보여줍니다. 말씀을 잘 받아들이고 성장하는 것 같지만 염려 때문에 신앙을 포기하거나 재물의 유혹 때문에 하나님의 잘 섬기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여줍니다. 좋은 땅은 말씀을 기쁨으로 받고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을 보여줍니다. 이런 사람들은 말씀을 듣고 깨닫고 열매를 맺는데 30배, 60배, 100배로 결실을 합니다.
여러분! 말씀 앞에 설 때 자신의 마음을 점검하십시오. 닫혀 있다면 마음을 여십시오. 무슨 문제 때문에 마음이 닫혀 있어도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혹 사람 때문에 시험 거리가 있다면 사람을 생각지 말고 은혜 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하십시오. 사람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막힌다면 어리석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에 대해서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십시오. 그래야 은혜를 받고 열매가 풍성할 수 있는 것입니다.
2) 간절함으로 설교를 들었습니다(11절).
11절에 보니 베뢰아 사람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았습니다. 말씀은 간절한 마음으로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간절함을 집중력으로 표현을 하고 싶습니다. 배가 고프면 밥에 집중을 합니다. 사흘 굶으면 얼마나 간절하게 밥을 원하겠습니까? 그 사람의 생각은 온통 먹는 것에 집중이 될 것입니다. 사흘을 굶고 밥상을 대하면 배가 찰 때까지는 다른 것에 신경 쓰지 않고 밥 먹는 일에만 집중 할 것입니다.
간절함은 집중하게 만듭니다. 간절한 사람과 간절하지 못한 사람은 같은 시간에 같은 곳에서 같은 설교자에게서 같은 말씀을 듣지만 분명히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낼 것입니다. 간절한 사람은 설교자가 좀 부족해도 은혜를 충만하게 받을 것입니다. 간절함이 없는 사람은 세계적인 설교자가 설교를 해도 별로 은혜를 못 받을 것입니다.
수학능력시험을 보고 채점이 끝나면 발표가 있습니다. 그 때 전체 수석합격자, 남,녀 수석합격자, 계열별 수석합격자가 발표됩니다. 그리고 반드시 수석합격자의 인터뷰기사가 TV와 신문에 실리게 될 것입니다. 수석합격자들이 하는 말 가운데 꼭 들어가는 말이 있습니다. “나는 특별히 과외공부하지 않았다. 예습과 복습을 철저히 했다. 그리고 공부시간에 집중해서 공부했다, 수업시간에 집중해서 선생님 말씀 들었다” 거의 예외 없이 그런 말을 합니다. 수석합격자들의 인터뷰 내용을 들어보면 공부 잘하는 것은 별것 아닙니다. 얼마나 집중해서 공부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말씀에 은혜를 받는 것도 집중이 중요합니다. 얼마나 말씀에 집중하느냐가 은혜를 받느냐 못 받느냐를 결정합니다. 베뢰아 사람들은 간절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말씀에 집중했고 그 결과 좋은 열매가 풍성하게 열린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집중하지 못합니다. 멍하니 앉아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눈은 설교자를 바라보고 있지만 마음은 다른 생각으로 가득합니다.
설교를 하면 은혜를 받는 사람은 늘 은혜를 받습니다. 말씀을 듣는 습관이 좋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은혜를 못 받는 사람은 늘 은혜를 못 받습니다. 말씀을 듣는 습관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설교에 집중하십시오. 설교 시간에는 설교에만 집중하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은혜를 받을 것입니다.
탑헬리건대회라고 최고의 공격헬기 사격수를 뽑는 육군항공 사격대회가 있습니다. 거기서 우승을 한 손광호 준위의 인터뷰 내용을 읽어봤습니다. 그는 우승의 비결을 “안정된 자세를 취하는 게 노하우가 되겠습니다. 항공기의 진동을 몸으로 느껴 거기에 따라 조종관을 움직이면 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헬기에 집중을 했습니다. 그리고 헬기와 자신의 몸이 하나가 되게 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우승의 비결이었습니다. 설교도 그렇게 집중해서 들어야 큰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간절한 마음은 준비된 마음입니다. King James 번역본에서는 본문의 간절함을 ‘전적으로 준비된 마음’으로 번역했습니다. 말씀을 받기 위해 준비가 된 마음이 간절한 마음입니다.
어떻게 마음을 준비해야 합니까? 먼저 죄 문제를 해결하십시오. 마음이 청결한 자가 복이 있어서 그가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더러운 그릇에 음식물을 담을 수 없는 것처럼 더러운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담을 수 없는 것입니다. 교회에 오면 먼저 참회의 기도를 드리십시오. 하나님 앞에 범죄한 것이 있다면 아주 사소한 죄까지도 자백하시고 마음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 다음은 마음에 치고 있는 세상의 파도를 잠재워야 합니다. 마음에 근심 걱정이 가득하면 말씀에 집중할 수 없습니다. 걱정 근심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보트 위에서 바늘귀에 실을 낀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 때 파도가 치면 집중력이 떨어지지요. 실을 끼는 것이 어려워집니다. 마찬가지로 근심과 걱정을 내려놓아야 말씀에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설교를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해야 합니다. 살전 2:13을 보면 데살로니가 사람들은 바울의 설교를 들을 때 사람의 말로 받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습니다. 이런 자세가 있어야 설교를 통해서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3) 설교도 잘 듣고 성경도 상고했습니다.
11절에 보니 베뢰아 사람들은 날마다 성경을 상고했습니다. 상고 했다는 말은 대충 속독으로 읽은 것이 아니라 자세히 읽었다는 말입니다. 이 부분을 성경 공동번역 개정판에서는 ‘연구했다’로 번역 되었습니다.
신앙생활을 잘하려면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의 인생의 올바른 코스를 알려주는 역할을 합니다. 마라톤 선수가 코스를 따라 달라야 하는 것처럼 우리 인생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코스로 가야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가 어떤 길을 하야 하는지 어떤 코스로 가야 하는지를 가르쳐줍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을 잘하고 인생을 바르게 살려면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영국의 윌리엄 4세가 죽자 궁중에 있던 18살의 소녀가 이튿날 왕으로 간택을 받았습니다. 그녀가 빅토리아 여왕입니다. 그녀는 64년 동안 왕위에 있었습니다. 영국의 번영은 이 빅토리아 여왕 때 성취한 것입니다. 영국이 해가 지지 않는 나라가 된 것도 빅토리아 여왕 때였습니다. 일찍이 인류의 역사상 빅토리아 여왕만큼 위대한 왕도 드물다고 합니다. 빅토리아 여왕의 승리의 비결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입니다.
그녀는 왕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즉시로 무릎을 꿇고 성경을 폈습니다. 잠시도 자신의 품에서 떠나지 않았던 성경을 놓고 “주여, 제가 여왕이 되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정치를 하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빅토리아 여왕은 모든 것을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해결했고 기도로 정치를 했습니다. 인도의 왕자 한 사람이 여왕께 “그렇게 정치를 잘하는 비결이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성경을 펴 들고 “바로 이것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어느 목사님이 독일에 신학박사 학위를 받으러 갔습니다. 그 학교 기숙사에서는 매일 예배를 드려야 하는 규칙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함께 신학박사 과정을 공부하는 룸메이트들과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성경 본문이 골로새서였는데 한 학우가 골로새서를 못 찾고 성경을 계속 넘기다가 결국은 포기하더랍니다. 신학박사가 되려고 공부하는 사람이 골로새서를 못 찾았으니 참으로 놀랄만한 일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한 성도의 가정에 심방을 가서 축복하기 위해서 성경 말씀 중에 이사야서의 말씀을 찾아서 읽게 했습니다. 그래서 심방대원들은 열심히 성경을 찾아 읽으면서 '아멘, 아멘'하고 은혜를 받는데, 막상 은혜 받아야 될 주인 집사는 설교를 다 끝나갈 때까지도 뒤적거리고 있었습니다. 이사야서를 찾지 못한 것입니다. 목사님의 설교가 끝날 때까지도 이사야서를 찾지 못하더니 성경을 덮으면서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내 성경에는 이사야서가 없네” 성경을 안 읽으니가 못 찾는 것입니다.
시 1편에 보면 복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입니다. 묵상이 무슨 뜻입니까? 읊조린다는 의미입니다. 조용히 소리 내서 읽거나, 암송하거나, 곰곰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성경말씀을 읽거나 암송하거나 곰곰이 생각하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어느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대학에 들어가면 차를 사주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아들은 대학에 합격했고 아버지에게 차를 사 달라고 졸랐습니다. 아버지는 약속을 지키는 조건으로 아들에게 성경을 주면서 읽으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그 말씀 안에 차보다 더 좋은 보화가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들은 화가 나서 대학 근처에서 하숙을 하는 동안 집엘 가질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약속을 지키지 않으셨다고 불평을 하면서 대학 4년을 보냈습니다.
졸업을 할 때가 되어 하숙 생활을 마치고 짐을 싸는데 선반 위에 아버지께서 주신 성경책이 먼지에 쌓여 있었습니다. 아들은 먼지를 툴툴 털면서 무심코 그 성경책을 뒤적거리니 그 속에서 종이쪽지 한 장이 떨어 졌습니다. 그 종이는 자동차를 사고도 남을 만한 액수의 수표였습니다. 그러나 이미 그 수표는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기한이 넘어 버렸습니다. 아들은 그제야 성경을 읽으라고 하신 아버지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아들은 4년 동안 아버지를 미워했던 자신의 우둔함을 애석해 하면서 자신의 행동을 반성했습니다. 집에 도착했을 때 그는 자신이 원하던 차가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아버지는 몇 년 동안 그 수표가 사용되지 않은 것을 알고 아들이 졸업하고 집에 돌아 왔을 때 놀랄만한 선물을 주려고 차를 사 놓았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사랑을 다시 나눴습니다.
성경 속에는 하나님께서 숨겨놓은 보화가 있습니다. 성경을 읽는 사람은 그 보화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암8:11-13입니다. 말세에 대한 예언입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12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리니 13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쓰러지리라” 마지막 때에는 말씀이 없어서 기근이고 말씀을 듣지 못해서 기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성경은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말씀의 샘입니다.
왕상 17장에 보면 사르밧 과부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니 그 집에 있는 가루 통에 가루가 떨어지지 않았고 기름병에 기름이 없어지지 않고 계속해서 솟아났습니다. 가루통과 기름병 때문에 가뭄이 끝날 때가지 사르밧 과부에게는 걱정이 없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성경을 읽는 사람은 말세에 영적인 기근과 기갈이 찾아와도 성경 속에서 솟아나는 영혼의 양식과 영혼의 생수를 먹고 마시게 될 것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오랜 만에 동창을 만났는데 동창이 목사님에게 자랑하더랍니다. “나도 요즘 교회에 나간다! 우리 교회 목사님은 고리타분한 성경 얘기를 안 해서 좋다!” 이건 좋은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독초를 먹이는 것과 같습니다.
성경의 재미는 주님과의 사랑에 달려있습니다.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면 성경 읽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주님과 관계에 문제가 생기고 사랑이 식어지면 성경이 고리타분하게 느껴집니다.
어떤 한 아가씨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책을 한 권 선물 받아 신이 나서 읽어보았지만 재미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처음 몇 장을 읽고 나서는 한쪽에 밀쳐놓고 말았습니다. 몇 달 후 그녀는 배를 타고 가다가 한 청년을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아가씨가 그에게 말했습니다. “내 서재에 있는 어떤 책의 저자의 이름이 당신의 이름과 똑같답니다.”, “그 책 이름이 뭔데요?” 그가 물었습니다. 아가씨가 책 제목을 대답해 주자 그가 말했습니다. “그 책은 내가 쓴 책이에요.” 아가씨는 집에 돌아가자마자 그 책을 찾아내 먼지를 털어 내고 처음부터 끝까지 샅샅이 읽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책은 그녀가 이때까지 읽은 책 중에서 가장 재미있는 책이었습니다. 저자를 사랑하니 저자가 쓴 책이 재미가 있어졌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면 성경이 재미있습니다. 성경의 내용이 꿀과 송이 꿀보다 더 달게 느껴집니다.
성경을 읽으면 믿음이 생깁니다. 박요한 선교사가 선교지에 가서 언어공부를 할 때 있었던 간증입니다. 박선교사는 대학생을 아르바이트생으로 고용을 하고 하루에 몇 시간 씩 그 나라 성경을 소리 내서 함께 읽었습니다. 그런데 그 학생이 은혜를 받았습니다. 후에 그가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성경을 읽으십시오. 믿음이 성장할 것입니다.
베뢰아 교인들에게 열매가 풍성했던 이유는 말씀에 대한 반응이 좋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너그러웠으며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았고 성경을 상고 했습니다.
2. 베뢰아 사람들은 열심히 전도했습니다(12절).
12절에 보면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했다고 말씀합니다. 믿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말은 그들이 열심히 전도했다는 말입니다. 전도하지 않으면 절대 교회가 부흥할 수 없습니다.
전도를 위해서 2가지를 제안합니다.
1) 불신자와 접촉해야 합니다.
전도는 초신자가 잘합니다. 그 이유는 불신자들과 접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목사는 전도를 못합니다. 왜냐하면 목사 주변에는 믿는 사람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전도를 위해서 불신자와 관계를 끊지 마십시오. 우리들은 그들을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전도를 위해서 불신자와도 늘 좋은 관계를 유지하시기를 바랍니다.
미국의 교회성장학자인 엘머 타운즈 박사는 교회 나오는 사람들이 어떻게 교회에 나오게 되었는지 그 경로를 연구해봤습니다. 전체 교인 중에 86%의 교인이 가족이나 친지를 통해서 나온 사람들로서 거의 대부분이었습니다. 불신자와 접촉이 되어야 전도가 되는 것입니다.
2) 불신자에게 생활의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베뢰아 사람들은 말씀공부를 열심히 하고 믿음이 생겨서 믿음대로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 결과 주변 사람들에게 감화를 주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믿게 된 것 같습니다.
교인들이 본이 되고 좋은 소문이 나니까 사람들이 모여들었던 것입니다. 행 2장에 보면 예루살렘 교회도 교인들이 칭찬 듣는 생활을 하니 주님께서 역사하셔서 구원 받는 사람들이 날마다 더해졌습니다.
전도는 입으로도 해야 하지만 더 힘이 있는 방법이 생활로 하는 것입니다. 불신자들은 신자가 어떤 교리를 믿는지 어떤 신앙관을 가졌는지 보다 그가 믿는 대로 사는지를 봅니다. 술자리에서는 불신자들은 교인들이 주님을 믿는다고 해도 술을 먹이려고 합니다. 그런데 정작 함께 술 먹는 사람은 가짜 신자라고 생각합니다. 믿음 때문에 술을 마시지 않거나 죄를 짓는데 동참하지 않으면 그 사람을 미워하는 것 같지만 속으로는 그의 신앙이 진짜라고 인정을 합니다.
신자가 본이 되어 좋은 소문이 나야 합니다. 소문을 위한 소문은 아니지만 잘 살면 당연히 소문은 나게 되어 있지요. 그러면 불신자들이 그 모습을 보면서 ‘예수님을 믿으면 저렇게 되는구나’라고 생각하고 스스로 교회를 찾아오지 않겠습니까!
교회 안에서도 그렇습니다. 교회생활은 열심히 하는데 생활이 엉망이 되면 곤란합니다. “그 사람 믿음은 좋은데 성질이 지랄 같아. 그 사람 기도는 많이 하는데 마음이 너무 좁아. 그 사람 교회 봉사는 많이 하는데 가정생활은 엉망이야.” 이런 소리 들으면 안 됩니다.
어느 읍 소재지에 300여명이 모이는 교회가 있는데 목사님은 아침 조기축구를 합니다. 축구하는 분 가운데 그 지역에 유지가 있었습니다. 자연히 목사님이 전도하였습니다. 도무지 듣지 않더니 어느 날 주일에 그 분이 교회에 나왔습니다. 기쁨으로 환영하고 예배 후에 식사를 같이 하면서 대화하는 중에 “제가 그렇게 권유하였더니 드디어 나오셨군요.” 라고 말하니까 그 분이 정색을 하면서 “저는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교회 나온 게 아닙니다. 교회 옆에 사시는 정 모 집사님이라고 나이 많으신 분계시지요?”, “예.”, “그 분 때문에 교회 나왔습니다.”, “그 분이 전도하던가요?”, “아니요. 전도는 무슨 전도입니까? 만나지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 분이 아침마다 저의 집 앞과 동네의 길을 다 청소하더군요. 언제인가 내가 하려고 마음먹고 나가보니 그날도 먼저 했더군요. 그분에게 감동을 받고 교회에 나오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더랍니다.
좀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요즘 한국교회는 불량품 공장이 많은 것 같습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예수 믿는 것이 쉬워지고, 치리가 사라지니 불량 신자가 많이 만들어졌습니다. 핍박이 사라지고 목회 귀족들이 많아지니 사명감도 없는 사람들이 신학교를 갑니다. 또 신학교도 학생 모집에 급급해서 사명감도 없는 학생들까지 아무나 받아드리면서 불량 목회자가 많이 생산되고 있습니다. 불량교인과 불량목회자가 많아지니 세상 사람들이 기독교를 공격하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는 개혁할 때가 아니라 회개할 때입니다. 바르게 살지 못했음을 회개해야 하는데 우리가 그렇게 살지 못하면서 자꾸 뭔가를 바꾸려고만 합니다. 이런 개혁은 능력이 없습니다. 온전히 회개해야 개혁이 온전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로 살아야 우리의 말에 힘이 있는 것입니다.
인도의 간디는 독실한 예수님 숭배자였습니다. 그러면서도 기독교인은 아니었답니다. 그가 교인이 아니라는 것을 세상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하였습니다. 그런 이유가 있었습니다. 두 가지 이유입니다.
하나는 간디의 친구 중에 앤드류스 라는 영국 선교사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이 선교사가 간디에게 찾아와 교회에 가자고 하여 교회에 나갔답니다. 주일예배를 드리려고 앤드류스와 함께 교회당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문 앞에 서있던 안내위원이 유색인종이라고 밖으로 쫓아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후로 간디는 교회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또 하나의 이유는 간디가 영국에 유학을 가서 하숙생활을 했는데 하숙집 주인이 교회생활은 열심히 하는데 생활은 기독교적이지 못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실망해서 교회에 나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세상의 빛이 되는 방법은 말이 아니라 행동입니다. 말씀대로 살며 세상에 본을 보여야 세상은 밝아지고 불신자들이 교회로 들어오게 되어 있습니다.
베뢰아의 부흥의 원인은 그곳 사람들이 좋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좋은 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베뢰아 사람들은 말씀에 대한 반응이 좋았습니다.
1) 너그러운 반응이었습니다. 그들은 밭이 좋았다는 말입니다.
2) 간절함으로 설교를 들었습니다.
3) 설교만 듣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상고했습니다.
2. 베뢰아 사람들은 열심히 전도했습니다.
전도를 위해서 2가지를 제안했습니다.
1) 불신자와 접촉해야 합니다.
2) 불신자에게 생활의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비전교회] 경기도 하남시 감이동 361-4
(02) 443-9197
비전교회 : http://www.visionchur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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