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영성생활
설교자 : 마경훈목사
본문 - 누가복음 22장 39절(개역개정)
39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 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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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영, 혼, 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의 필요, 혼의 필요, 몸의 필요가 채워져야 합니다. 이 세 가지의 필요가 균형 있게 채워지는 사람이 건강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흔히 장애자라는 표현을 사용할 때는 몸에 이상이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실상은 몸보다는 정신에 이상이 있는 것이 더 큰 장애입니다. 몸에 이상이 있어도 정신이 건강한 사람들은 몸의 이상을 극복하고 아주 훌륭하게 사회생활을 합니다. 반면에 몸은 건강한데 정신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정신에 이상이 있는 사람들은 심각한 어려움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몸보다 정신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영입니다.
영성생활이라는 말은 영의 활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적 영성생활은 거듭난 기독교인의 영이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을 말합니다. 기독교적 영성의 목표는 하나님과 합일을 이루는 것입니다. 합일의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입니다.
기독교 영성생활에서 핵심적인 단어는 ‘항상’입니다. 언제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까? 항상입니다. 언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버지 하나님과 교제해야 합니까? 항상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호흡하는 것과 같고 우리의 몸에 피가 흐르는 것과 같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언제 호흡합니까? 항상 호흡하지요. 여러분의 몸속에 피는 언제 흐릅니까? 항상 흐르죠. 하나님과의 교제 역시 항상 되어야 합니다. 호흡이 끊어지면 죽습니다. 피가 멈추어도 죽습니다. 하나님과 교제가 끊어지면 사망입니다. 하나님과 교제가 연결되어야 생명입니다.
예수님의 영성생활은 항상 하나님과 교제하는 생활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단 한순간도 하나님과 교제가 끊어진 일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항상 하나님 아버지와 교제 하시는 것을 이렇게 표현하셨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요10:30) 요 14:10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과 항상 교제하시면서 완전한 합일의 상태를 이루셨습니다. 단 한 순간도 아버지와 교제가 끊어지신 일이 없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예수님 안에 계면서 예수님을 통해서 일하셨습니다. 아버지와 예수님은 완전한 합일을 유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영성을 전등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항상 빛을 환하게 비추는 전등과 같았습니다. 전등이 항상 빛을 발하려면 전기가 항상 공급되어야 합니다. 전기의 공급이 끊어지면 전등의 빛은 사라지고 맙니다. 전등이 항상 빛을 발한다는 말은 전기가 항상 공급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항상 하나님과 연결 된 상태를 유지하셨습니다.
건강한 영성생활을 하는 사람은 항상 하나님을 의식하고 항상 하나님 앞에 서 있으며 항상 하나님과 교제하는 사람입니다. 기분 좋을 때, 좋은 일이 있을 때, 특별한 경우에만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과 교통하는 사람이 있는데 건강한 영성생활이 아닙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문제가 있을 때, 어려운 일을 만날 때, 사고가 났을 때만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있는데 이것도 역시 건강한 영성생활이 아닙니다. 건강한 영성생활은 어떤 상황과 환경 속에서도 항상 성령님의 인도를 받으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 아버지와 교제하는 생활입니다.
그럼 예수님의 영성생활은 구체적으로 언제 어떻게 이루어 졌는지 살펴보자.
1. 자연을 통해서 하나님과 교제하셨다.
예수님은 자연을 관조하는 습관을 통해서 하나님과 대화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들에 핀 백합화를 보시고도 하나님께서 주의 백성들을 입히신다는 진리를 말씀하셨고, 또 사람들의 눈에 보일 듯 말 듯 한 아주 작은 겨자씨를 보시면서도 역시 하나님의 뜻을 찾으셨고 비유를 통해서 하나님의 진리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공중에 나는 새를 통해서도 하나님과 교제하셨고 하나님의 진리를 보셨습니다. 하늘에 나는 참새를 보고서도 하나님이 먹이심을 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시에 시중에 나가면 몇 푼만 주면 몇 마리라도 살 수 있는 그 보잘 것 없는 새들의 죽고 사는 문제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주권을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자연 안에는 하나님의 음성이 숨어 있습니다. 우리가 자연을 보며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과 교제하려고 한다면 얼마든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과 교제가 가능합니다. 시 19:1에 보니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시 97:6에서는 “하늘이 그의 의를 선포하니 모든 백성이 그의 영광을 보았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자연을 바라보면서 하나님과 교제하시고 그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보십시오. 여름이 되면 나뭇잎이 푸르고 싱싱한 빛깔을 뽐냅니다. 그러나 몇 개월이 지나 가을이 되면 그 푸르던 잎이 누렇게 변합니다. 말라비틀어지고 결국은 땅에 떨어집니다. 나무는 앙상한 가지만 남게 됩니다. 우리 인생도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무를 통해서 우리가 아무것도 뽐낼 것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지금 대단한 것 같아도 잠시 후면 늙어지고, 죽어지게 되는 것이 인생입니다. 지금은 겨울입니다. 주변의 나무들이 다 죽어 있는 것 같습니다. 도저히 다시 살아날 것 같지가 않아 보입니다. 하지만 봄이 되고 하나님께서 생명을 불어넣어주시면 다시 잎이 피고 꽃이 피고 열매 맺게 될 것입니다. 사람이 흙으로 돌아가면 아무런 소망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갑니다. 죽은 시체를 바라보면 부활의 소망이 없어 보입니다. 절망뿐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봄이 되면 만물이 소생하는 것처럼 우리 주님이 다시 오시면 죽었던 자들이 일어나고 부활의 영광 속에서 영광의 주님을 보게 될 것입니다.
저는 약 17년 전에 신비한 체험을 했습니다. 오금 공원에 바람이 불어서 나뭇잎들이 흔들리는데 그 때 신비하게도 나뭇잎들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나뭇잎들은 자신의 푸르름도 자신의 싱싱함도 자랑하지 않고 주변의 나뭇잎들과 합창하며 오직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저에게 미물인 나뭇잎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을 통해서 “만물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존재한다. 만물은 하나님을 찬양한다. 인간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존재한다. 인간도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하여 존재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교회에서 야외예배를 가면 자연묵상을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자연묵상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참 놀라운 것은 이제 갓 교회에 나온 사람들도 자연을 통해서 들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너무나 잘 들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영성생활은 자연을 통해서도 하나님과 교제하셨습니다.
2. 성령님과 교통을 통해서 하나님과 교제하셨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에 자신의 능력으로 만도 충분히 모든 일을 하실 수 있으셨으나 인간의 몸을 입고 계셨기에 성령을 의지하여 성령의 도우심으로, 성령의 인도하심 따라서 사셨던 것이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 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사셨습니다. 예수님께서 40일 금식을 하시기 위하여 광야로 가실 때 스스로 가셨던 것이 아닙니다. 성령에게 이끌리셔서 광야로 가셨던 것입니다. 마12:28에 보면 예수님은 사역을 하실 때도 자신의 힘이 아니라 성령님을 힘입어 사역하셨습니다. 심지어 눅 10:21에 보면 기뻐하실 때도 성령으로 기뻐하셨습니다. 세례요한은 요 3:34에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말씀을 하셨던 이유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성령을 한량없이 부어주셨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자동차의 타이어는 스스로 돌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엔진의 힘에 의해서 돌아가는 것입니다. -기독교적 영성생활도 사람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타이어가 엔진이 돌아가야 움직일 수 있는 것처럼 성령께서 역사하실 때 영적인 생활이 가능한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는 성령의 시대입니다. 신앙생활은 성령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요3장에 보니 거듭나는 것도 성령으로 가능하고, 갈5장에 보면 열매를 맺는 것도 성령으로 가능하고, 고전 12장에 보면 은사와 능력도 성령으로 가능합니다. 행2장에 보면 비전을 갖고 사역을 하는 것 역시 성령의 능력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에 승리하고 예수님처럼 영성생활을 하려면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을 의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3. 일상생활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사소한 일들을 통해서 하나님과 교제하셨다.
예수님은 일상생활 속에서 발견될 수 있는 사소한 경험이나 환경이나 물건들을 의미 없이 지나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깊은 통찰력으로 그것들의 내면에 숨겨진 비밀스런 하나님의 뜻을 찾아내셨습니다.
눅 15장에 보면 한 여인이 잃어버린 동전 한 닢을 찾는 모습 속에서도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셨습니다. 그 여인의 애타는 마음과 그 여인의 동전을 찾는 열심을 통해서 잃어버린 인생들을 찾으시는 아버지의 애타는 마음과 열심을 읽으셨습니다.
마 5장에서는 등불을 보시면서 세상을 밝혀야 할 신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읽으셨습니다. 등불이란 있는 곳을 환하게 비추기 위해서 켜두는 것인데, 그것을 말 아래 숨겨둔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할 신자들의 잘못된 생활 때문에 안타까워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읽으셨습니다.
마 11장에서는 예수님께서 마을 광장에서 피리를 불며 춤을 추는 어린이들과 또 사람이 죽어서 애곡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모습을 보시며 하나님의 슬픔에 반응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즐거움에도 동참하지 못하는 불쌍한 인생들 때문에 답답해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읽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새술을 헌 부대에 넣어서 터져버리는 부대를 보시고도 영적인 진리를 찾아내셨습니다. 예수님은 헌 부대와 새 포도주를 보시면서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가출한 아들 때문에 괴로워하는 아버지를 통해서 하나님을 떠난 자녀들이 아버지 하나님 앞에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읽으셨습니다.
또 잃은 양을 찾고 또 찾는 목자의 열심을 통해서 잃어버린 영혼을 향한 아버지의 열심을 읽으셨습니다.
건강한 영성생활을 하는 사람은 특별한 일을 통해서만 하나님을 보는 것이 아닙니다. 특별하지 않은 아주 사소한 일 속에서도 하나님의 손길, 하나님의 의도, 하나님의 뜻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음성을 듣습니다. 예수님의 영성이 그랬습니다.
4. 그 당시의 사회적 이슈들을 통해서 하나님과 교제하셨다.
눅 13:1-5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 당시 사회에서 일어났던 두 가지 문제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그 뜻을 말씀하셨습니다.
빌라도가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제물에 섞은 일과 실로암 망대가 무너진 일을 말씀하시면서 “그 사람들이 죄가 더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다 이와 같이 망하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시의 사회적인 이슈 속에서도 그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셨던 것입니다.
요즘 우리 주변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우리는 이 시대에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대표적으로 한 가지 사건만 놓고 봅시다.
일본 원전 사고를 생각해 봅시다. 후쿠시마 원자로가 체르노빌 원자로의 11배라고 합니다. 이번 사고는 원자폭탄 몇 천개가 터진 것과 비슷한 방사능이 밖으로 나온 것이라고 합니다. 현재 후쿠시마 원전 4호기에는 핵 연료봉이 1,500개가 남았다고 하는데 이는 인류가 지금까지 써온 원자력의 양이라고 하네요. 그런데 일본 정부는 2050년에 가서 이 연료봉을 추출한다고 합니다. 왜 지금 당장 못합니까? 접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일본에 지진이 일어나 이 연료봉에 물이 흘러들어가서 핵분열이 시작 된다면 반경 100km의 사람들은 모두 피폭으로 죽고 일본 전체가 죽음의 섬으로 변해버린다고 합니다. 일본 어디에서도 사람이 살 수 없다고 합니다. 당연히 우리나라에 까지 강력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보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계 19장에 보면 7년 대환난 중간에 있게 될 유브라데 전쟁을 말씀합니다. 여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면 큰 전쟁이 일어나는데 그 때 동원되는 마병대의 수가 2만 만입니다. 약 2억의 군대가 동원이 됩니다. 2억의 군대라면 온 세상이 전쟁터가 된다는 말입니다. 그 때 사람 삼분의 일이 죽습니다. 그 때 사용되는 무기는 불과 연기와 유황입니다. 여기서 불은 미사일로 봅니다. 연기는 생화학무기로 봅니다. 작년에 시리아가 생화학무기를 사용했잖아요. 그리고 유황은 핵으로 봅니다.
우리는 일본의 후쿠시마 원자로를 바라보면서 “이제 세상의 끝이 멀지 않았다. 어서 회개하고 재림을 준비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지금은 세상의 성공만을 추구할 때가 아닙니다. 내적으로 성령의 충만을 받아서 재림의 주님을 맞이할 준비, 신부단장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외적으로는 열심히 전도하고 선교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 주님처럼 사회적인 이슈들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과 교제하시길 바랍니다.
5. 한적한 곳에서 특별한 시간을 가지므로 하나님과 교제하셨다.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기 위해서 광야로 나가셨습니다. 또 기도하시시기 위해서 새벽미명이면 일어나셔서 한적한 곳으로 가셨습니다. 본문에서도 습관을 따라 감람산에 가셔서 하나님과 특별한 시간을 가지셨습니다. 막 9장에 보면 예수님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변화산에 가셔서 하나님과 특별한 만남을 가지셨습니다.
우리의 영성생활에도 이런 시간들이 필요합니다. 공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과 교제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하나님과 단 둘이 특별한 장소에서 특별한 만남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특별한 만남을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와 관계가 깊어지는 것입니다.
가정생활을 놓고 생각해봅니다. 아내와 남편은 날마다 집에서 만납니다. 함께 자고 함께 식사를 하고 함께 텔레비전을 시청합니다. 보통 남자들은 그 정도면 충분히 만족합니다. 그러나 여자들은 어떻습니까? 그 정도로 만족하지 못합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남편을 사랑하는 아내들 중에는 남편과 둘만의 특별한 만남을 원하기도 합니다. 다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곳에서 둘만이 깊은 대화를 원합니다. 특별한 장소에서 둘만의 특별한 시간을 원하는 것입니다. 일상적인 가정생활만으로는 가질 수 없는 깊은 사랑이 특별한 장소, 특별한 시간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이런 특별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새벽기도시간이 될 수도 있고 새벽이 어려운 사람은 다른 시간에 조용한 장소에서 하나님을 독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영성가 중의 하나인 토마스 머튼 (Thomas Merton)은 “그대가 내적인 고요함을 획득하면 그것을 세상 어느 곳이라도 지니고 다니면서 아무데서나 기도할 수 있다. 그러나 구체적이고도 외적인 고행이 없이는 내적인 금욕 생활이 이루어질 수 없듯이, 외적인 고요함도 없는데 내적인 고요함을 논하는 것은 극히 어리석은 일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복잡하고 어지러운 세상에서 흔들림 없이 하나님과 교제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아셨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러기 위해서 늘 한적한 곳을 찾으셨고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셨습니다.
6. 크고 중요한 일을 통해서 하나님과 교제하셨다.
예수님은 일상적인 일들 속에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셨을 뿐만 아니라 아주 크고 중요한 일을 통해서도 하나님과 교제 하셨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광야로 가셔서 40일 동안 특별한 시간을 가지시며 하나님과 교제하셨습니다. 공생애의 시작은 너무나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마귀도 알고 예수님을 시험했던 것입니다. 그 중요한 사역을 위해서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과 깊은 교제의 시간을 40일 동안 가지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역 중에 12제자를 세우시는 사역은 굉장히 중요한 사역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떠나시면 그들이 주님의 사역을 계승해서 대신해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12명에게 사역의 미래가 달린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중차대한 일을 앞두고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크고 중요한 일을 하시기 전에 먼저 철야 기도를 하시면서 하나님과 교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의 하이라이트는 십자가였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셔야 하는 중대한 결정을 내리려고 하실 때 감람산으로 가셔서 밤을 지새워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두고도 하나님과 깊은 교제의 시간을 가지셨습니다.
우리도 세상을 살아가면서 특별히 중대한 일을 결정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주님의 모범을 따라야 합니다. 조용한 곳에서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아버지의 뜻을 묻는 기도를 드리고, 아버지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아버지께서 시키시는 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이것이 승리 생활의 비결이고 영성생활의 비결입니다.
7. 극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과 교제하셨다.
예수님의 생애를 보면 몇 번의 극한 상황이 있었습니다.
먼저 예수님께서 40일간 금식하시고 주리신 상황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마귀는 예수님을 시험했습니다. 돌을 떡으로 만들라는 시험이었습니다. 그 때 주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했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다. 예수님은 극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마음이 매우 슬프셨습니다. 육신을 입은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통을 생각할 때 마음이 매우 슬프셨습니다. 그럴 때 예수님은 그 슬픔에 빠지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슬픔을 가지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교제하시면서 슬픔을 기도로 극복하셨습니다. 주님은 사람들에게 동정 받기를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극한 상황에서 도망치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극한 상황 속에서 아버지 앞에 나아가 엎드려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에게 가장 극한 상황은 십자가에 달리시는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십자가의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입니다. 숨을 쉴 때마다 온 몸이 찢어지는 고통입니다. 그 때는 이것저것 생각할 마음에 여유가 없는 때입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오직 십자가의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만 가질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 때도 하나님과 교제하셨고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셨습니다. 주님은 그런 고통을 당하시면서 말씀의 성취를 위하여 마취제인 쓸게 탄 포도주를 거절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의 성취를 위하여 “엘리엘리라마사박다니”라고 외치셨고, 아버지의 말씀을 다 이루셨기 때문에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운명 직전까지 하나님과 교제하셨고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셨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의 영성생활의 비결은 항상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어디서나 하나님을 의식하고,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하나님을 뜻을 말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었습니다. 작은 일이든지 큰일이든지 하나님과 연결 시키셨습니다.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들으면 그것을 하나님 앞에 올려드리고 그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셨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예수님처럼 범사에 하나님을 의식하고,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의 뜻을 찾고, 하나님의 뜻을 말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를 바랍니다.
[비전교회] 경기도 하남시 감이동 361-4
(02) 443-9197
비전교회 : http://www.visionchur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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