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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설교/김남준목사

[스크랩] 물러가는 자여 돌아오라

“그들은 애굽 땅으로 되돌아 가지 못하겠거늘 내게 돌아 오기를 싫어하니 앗수르 사람이 그 임금이 될 것이라 칼이 그들의 성읍들을 치며 빗장을 깨뜨려 없이하리니 이는 그들의 계책으로 말미암음이니라 내 백성이 끝끝내 내게서 물러가나니 비록 그들을 불러 위에 계신 이에게로 돌아오라 할지라도 일어나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호 11:5-7)

Ⅰ. 본문해설
북왕국 이스라엘의 번영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었으나 그들은 바알에게서 받은 열매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바알을 열렬히 사랑하였다. 하나님은 부르면 부를수록 바알에게로 도망가는 이스라엘에게 바알에게서는 찾을 수 없는 특별한 사랑을 보여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언약관계’이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약관계로 연합되어 있었다. 이는 하나님께 이스라엘이 필요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 있는 사랑이 이스라엘에게로 향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당신을 아는 참된 지식과 사랑을 이스라엘에게 베풀어 주었는데도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멀리 떠나 방탕하였고 하나님께 반역하였다.

Ⅱ. 이스라엘의 반역
A. 애굽을 그리워함
첫 번째로 이스라엘은 애굽을 그리워하였다. 광야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끊임없이 애굽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그곳에서 먹었던 고깃국과 마늘, 외 등이 그리웠기 때문이다. 그들은 애굽에서 마치 짐승처럼 채찍으로 맞으며 노동력을 착취당했다. 남자 아이를 낳으면 죽일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온가족이 이렇게 비참한 생활을 하였건만 그들은 애굽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이것은 그들의 기억이 왜곡되었기 때문이었다.
애굽으로 돌아가려는 이스라엘처럼 그리스도인들도 끊임없이 세상을 바라보고 하나님 없이 살던 때를 그리워한다. 그것은 하나님 없는 삶에 대한 자유, 자기를 주인삼고 마음대로 살던 삶에 대한 향수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때 어떻게 비참한 영혼으로 죄의 종살이를 했는지 기억해야 한다. 주님은 세상을 그리워하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말씀하신다. “너희는 애굽으로 돌아갈 수 없단다. 그것이 너희의 선택이 되어서는 안 된단다. 그렇다고 광야에서 나를 원망하며 죽는 것도 너희들의 선택이 되어서는 안 된단다. 나와 함께 약속의 땅, 가나안에 이르자.”

B. 앗수르가 지배함
두 번째로 하나님은 앗수르가 이스라엘을 지배하게 될 것을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은 원래 하나의 나라였으나 솔로몬 때 균열의 조짐이 보이다가 르호보암 때에 북왕국 이스라엘이 탄생하면서 나라가 나누어졌다. 시간이 흘러 북왕국 이스라엘은 722년에 앗수르에 의해서 멸망당하였고 혹독한 앗수르의 통치가 시작되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통치를 싫어하고 거절하였더니 그 다음에 얻은 것은 자유가 아니었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은혜가 점차 사그라들어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일이 힘들어지면 왠지 하나님께 속받받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면 하나님을 벗어나 자유를 찾고 싶어 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벗어나면 우리가 자유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죄의 지배를 받고 마귀의 통치를 받게 됨을 기억해야 한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었고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을 때만 존귀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삶이 싫어서 하나님의 통치를 벗어나고 나니 이방민족에게 짓밟히는 피지배 민족이 되어버렸다. 이처럼 하나님의 백성의 영광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데 있다.

C. 하나님을 떠나감
세 번째로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떠나갔다. 본문의 “내 백성이 끝끝내 내게서 물러가나니”를 히브리어 성경은 ‘나로부터 돌아갈 것을 결심하여’라고 나온다. 그들은 확고하게 하나님을 거스르겠다고 결심하였고 강한 의지로 다시는 주님의 품으로 돌아가지 않겠노라고 다짐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포기하지 않으셨다. 이스라엘이 반역하면 반역할수록 더욱더 충성스러운 당신의 종들을 보내어서 그들을 돌아오라고 부르셨다. 그러나 그들은 돌아오지 않았기에 앗수르의 지배를 받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그들이 그토록 애지중지하며 섬겼던 바알이 그들을 앗수르로부터 구해주었는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바알을 사랑하였으나 바알은 이스라엘을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바알에게는 이스라엘을 구원할 힘이 없었다. 바알의 목표는 이스라엘을 사랑하여 가족관계로 사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타락하게 하여 구별된 나라가 아닌 그저 그런 보통의 세상 나라처럼 만들어버리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을 사랑한 사람들의 말로이다.

Ⅲ. 결론
여러분은 새이스라엘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눈물로 부르셨던 것처럼 여러분을 부르신다. 호세아가 자신의 가정의 슬픔을 사용하여 핏빛 연애편지를 보냈던 것처럼 예수님은 당신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서 찢어 그 피로 여러분에게 사랑의 편지를 보내신다. 호세아보다 더 크고 위대하신 분이 호세아의 마음속에 있던 사랑보다 더 큰 핏빛 사랑으로 여러분을 부르고 있다. 주님의 이러한 사랑을 깨닫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길 바란다.

 

김남준 목사

출처 : 보좌로부터흐르는생명수
글쓴이 : 하늘산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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