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의 땅을 향한 로드맵(5)홍해앞에서
작년(2007)년 4월 영국 헴프셔 주에서 6개월 된 키노스라는 허스키종 견공이 담벼락 틈으로 밖을 내다보다가 머리가 끼어 목을 뒤로 빼지도 앞으로 밀어내지도 못하는 사고가 일어났다고 합니다. 이 견공의 주인은 이 급박한 상황을 인터넷에 올려 도움을 호소했다고 합니다.(사진) 이런 상황을 한문 고사성어로 무엇이라고 표현하면 좋을까요? 앞으로 갈수도 뒤로 물러 갈수도 없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말입니다. 예, 그렇습니다. 이런 상황을 우리는 ‘진퇴양난’(進退兩難)이라고 표현하지 않습니까? 다행이 이 견공은 소방 구조대에 의해 구출되었다고 합니다. 어느 한국의 유수한 회사 입사 시험에 ‘진퇴양난’을 영어로 표현해 보라는 면접시험이 출제되었다고 합니다. 10명중 9명은 대부분 장황한 여러 단어와 문장을 사용하여 이 상황을 설명하려 했다고 합니다. 단 한 사람만이 간단한 한 단어로 명답을 말했다고 합니다. 그 명답은 ‘딜레마’였습니다. 사전을 찾아보면 ‘딜레마’(dilemma)라는 단어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두가지 다 바람직하지 못한 대안사이에서 직면하는 선택의 상황이라”(A situation requring a choice between equally undesirable alternatives)고.
어제 성남 아트 센터에서 여러 교우들과 함께 감상한 ‘뮤지칼 버스’의 상황도 그런 것이었습니다. 시끄러운 시골 동네 사람들을 싣고 산길을 굽이굽이 돌아가던 길에서 버스가 브레이크 고장을 일으킵니다. 한쪽은 절벽, 한쪽은 낭떠러지인 내리막길을 간신히 잘 피해 내려왔나 싶었는데 충돌 완충을 위해 건초더미로 돌진하던 중 버스 기사는 건초더미 앞에선 한 아이를 발견합니다. 그러나 그 아이를 피해가려면 버스안의 7명의 승객의 목숨을 희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합니다. 진퇴양난이 아니겠습니까? 오늘 본문의 상황도 동일했습니다. 숙곳을 떠난 이스라엘 백성은 바로의 군대의 추격을 받게 됩니다. 출14:6-7에 보면 병거 육백 대와 애굽의 모든 병거를 거느리고 추격해 온 것입니다. 당시의 세계에서 최고로 훈련된 정예부대를 거느리고 추격한 것입니다. 그리고 앞에는 홍해 바다 히브리어로는 ‘얌숲’(yam-suph)갈대 바다(Reed Sea)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 바다를 홍해(Red Sea)라고 부른 것은 산호초의 빛깔이 때로 붉은 색조로 이 바다를 보이게 만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현재의 위치로는 수에즈 운하 북서쪽의 한 지점이었을 것입니다. 지금은 운하가 자리잡고 있어 수심이 변화되었지만 모세 당시에는 홍해의 연장으로 여전히 깊은 수심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됩니다.(홍해 지도) 뒤에는 바로의 군대, 앞에는 홍해 바다가 넘실대는 문자 그대로 진퇴양난의 상황이었습니다. *인생의 도상에서 이런 진퇴양난의 상황을 만날 때 우리가 할일은 무엇이라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습니까?
1. 두려워하지 말고 기도를 시작해야 합니다.
10절을 보십시오. “바로가 가까이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들 뒤에 이른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그들을 향하여 모세가 전달한 첫째 메시지는 무엇이었습니까? 13절입니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왜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두려움을 경계하십니까? 두려움은 우리의 마음과 판단을 마비시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에서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상황이나 환경보다 더 두려워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인 것입니다. 미국 경제 대 공황 중에 대통령에 취임한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미국인들에게 “우리가 두려워 할 오직 한 가지는 두려움뿐이다”(The only thing we have to fear is fear itself.)라는 유명한 대국민 연설을 남겼습니다. 두려움에서 온전히 자유로운 인생은 아무도 없습니다. 두려움은 인간 생존의 방식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과도한 두려움입니다. 이런 정도를 지나친 두려움은 하나님에게서 유래한 것이 아닙니다. 디모데 후서 1:7에 보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과도한 두려움이 임하거든 이것이 하나님이 아닌 마귀에게서 온 것임을 즉각적으로 인지하셔야 합니다. 마귀는 두려움의 영입니다. 그러므로 마귀를 대적하십시오. 두려움을 대적하십시오. 두려움을 갖고 하나님에게 나아오십시오. 기도를 시작하십시오. 이스라엘 백성들은 심히 두려워하는 가운데서도 다행스럽게도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여호와께 부르짖기 시작했습니다. 본문 10절의 마지막 부분을 주목하십시오.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그들은 두려움으로 절망한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안고 기도를 시작한 것입니다. 그것이 두려움을 극복하는 단초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순간 모든 두려움이 완전히 소멸된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더 이상 두려움의 포로가 될 필요는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두려움이 오거든 두려워하지 말고 부르짖어 기도를 시작하십시오. 그것은 적어도 시선을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전능 자요 사랑이신 하나님께로 옮기는 기적의 시작이었던 것입니다.
2. 가만히 있어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대하셔야 합니다.
우리가 참으로 부르짖어 기도하셨다면 이제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다릴 때가 된 것입니다. 이때 필요한 기도는 더 이상 ‘부르짖음의 간구’가 아닌 ‘침묵의 기도’혹은 ‘관조의 기도’(contemplative prayer)입니다. 주께서는 우리의 충분한 간구가 이루어진 상황이나 혹은 주께서 일하실 때가 차시면 그는 반드시 우리에게 침묵을 요구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의 침묵은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고 상황을 온전히 주께 맡겨 드림의 선포이며 이제 그가 일하실 공간을 내어 드리는 것입니다. 제발 주님께 기회를 드리십시오. 여리고가 무너지기 전 주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의 온전한 침묵을 보고 싶어 하셨습니다. 이런 경우의 침묵은 포기가 아닌 기다림이요, 지켜봄이었던 것입니다. 때로 우리가 너무 설치기 때문에 주께서는 일하실 챤스를 갖지 못하실 수가 있습니다. 해변이나 수영장에서 섬기는 구조대원들이 제일 구조하기 힘들어하는 대상들은 맡기지 못하고 몸부림치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그들에게 구조대원들은 이렇게 소리칩니다. “힘 빼세요. 맡기세요. 숨을 쉬세요” 그것이 오늘 본문의 “가만히 있으라”(Be still)는 말씀입니다. 왜요? 14절 말씀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옛날 수도자들은 낮은 기도와 깊은 기도의 차이를 거울과 창의 비유로 설명하였습니다. 거울을 보면 자신의 얼굴이 나타납니다. 낮은 단계의 기도에서는 거울처럼 아직도 자신의 고통, 자신의 소원, 그리고 자신의 욕망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깊은 기도는 창과 같아서 거기에 자신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는 창 밖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그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의 임재를 기뻐합니다. 그런데 이 낮은 기도에서 깊음의 기도로 나아가는 중요한 길을 ‘잠심(潛心)의 과정’이라고 불렀습니다. 잠심은 잠잠한 마음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잠잠해 질 때 우리의 마음은 맑은 창이 되어 하나님의 일하심을 바라보고 기뻐합니다. ‘잠심’의 반대는 ‘분심(分心)’입니다. 분심은 여러 가지 염려와 욕망으로 나누어진 마음입니다. 이런 분주한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산상수훈에서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하지 않으셨습니까? 바쁘고 분주할수록 잠심을 배워야 합니다. 잠잠한 마음에서 하나님이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3. 믿음으로 홍해 바다를 향해 나아가셔야 합니다.
부르짖는 간구와 잠잠한 기도 다음으로 할일은 무엇이겠습니까? 14:15에 보면 이제는 기도를 멈추고 행동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냐 이스라엘 백성에게 명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라” 이제 전진 명령이 내린 것입니다. 그러나 이때 주의하실 일이 있습니다. 아직 바다는 갈라지기 전이었습니다. 그런데 앞으로 나아가라는 명이 내린 것입니다. 그들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 오직 하나 믿음으로 나아가는 길 밖에 없었습니다. 넘실거리는 홍해를 바라보며 그들은 담대한 첫 걸음을 내디디어야 했던 것입니다. 바로 이 대목에서 그들에게 믿음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우리에게 당시의 상황 이해에 도움을 주는 것이 히브리서 11장입니다. 히11:29을 읽겠습니다. “믿음으로 그들(이스라엘 백성)은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넜으나---” 무엇으로 건넜다고요? 믿음이었습니다. 이런 믿음의 본질은 다시 무엇이겠습니까? 히11:1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그렇습니다. 그들은 바다 길이 보이지 않았음에도 믿음의 첫 걸음을 내디딘 것입니다. 그리고 바다는 갈라진 것입니다. 그러면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를 둘러싼 상황에 전혀 나갈 길이 보이지 않아도 바다에 길을 내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첫 걸음을 내디디시겠습니까?
제가 막 사역을 시작할 무렵 저의 가정에는 경제적인 부채(부친의 사업 실패로 인한 것)의 홍해가 저와 우리 가정을 가로 막고 있었습니다. 전혀 해결의 길은 보이지 않았고 방금 목회 사역을 부목사로 시작한 저에게 주어지는 정말 말도 안되는 월급으로는 가능성 제로의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역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비록 부모님의 부채였지만 해결해야 하겠다는 부담이 제 가슴을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얼마간의 기도 후 채권자들을 만나서 부친 대신 제가 빚잔치를 하기로 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뜻 밖에 그들은 이자 없는 원금만으로 제가 책임을 지는 것으로 하고 모든 것을 청산하는 일에 동의하기로 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쥐꼬리만한 봉급으로 이 빚을 청산한다는 것은 아득한 일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첫 걸음을 내디디기로 했습니다. 당시의 부목사 월급에서 거의 절반이 저희 가정의 부채 상환으로 빠져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수년이 지난 어느 날 우리 가정은 어느새 부채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가정이 되어 있었습니다. 할렐루야! 믿음이 우리를 자유롭게 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가정에 일어난 더 큰 기적은 이 과정에서 저희 가족 거의 전체가 돈의 부채보다 더 무서운 죄의 부채에서 청산함을 받고 구원 받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저의 가족 구성원 모두가 하나님께서 살아계셔서 우리를 도우시는 것을 바라보게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실상 제가 한일은 그냥 이 문제를 주께 믿음으로 맡겨 드린 일뿐이고, 나머지 모든 것은 주께서 친히 해결하신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우리 가족들은 외아들까지 내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가정을 돕고 계심을 구체적으로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저의 형제들부터 시작하여 가족들 한 사람, 한 사람씩 주께 나아오기 시작했고 나중에 부모님까지 그렇게 나아오시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숙제였던 저의 부친까지 마지막 병석에서 신앙을 고백하고 천국으로 가게 하셨습니다. 저는 어제 밤 우리 교우들과 뮤지칼 버스를 감상하며 그런 주의 사랑이 새삼 상기되어 어제 밤 내내 주체하기 어려운 감사의 눈물이 제 가슴을 적시게 되었습니다.
서론에 소개한 뮤지칼 버스의 진퇴양난은 어떻게 해결되었을까요? 뮤지칼 버스에서 브레이크가 고장난 버스를 이끌고 내리막길을 운전하던 기사는 마침내 버스 승객 7명을 살리기 위해 건초더미 앞에 서서 버스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던 한 아이를 희생시키기로 작정하고 고장난 버스로 아이를 넘어가 건초더미 속에 버스를 세우게 됩니다. 승객들은 버스에서 살아 나온 후 비로소 자기들이 타고 있던 버스가 넘어간 그 아이가 기사의 아들임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의외의 구원을 경험한 이들 모두는 충격 속에 새 인생의 길을 찾아 버스를 떠나게 됩니다. 이 뮤지칼은 마지막 이런 노래로 엔딩의 막을 내립니다. “누군가가 사랑했기에, 누군가가 희생했기에 이제 우린 새로운 삶을 살아갈수 있어요” 그렇습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주신 아버지의 애끓는 그 사랑으로 우리는 마침내 홍해를 열고 바다 속 새 길을 걷게 된 것입니다. 아직 우리 가운데 주님을 알지 못하는 분이 계시다면 우리 모두 오늘이라는 인생의 홍해 앞에서 이 사랑을 만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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