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의 땅을 향한 로드맵(6)마라에서(출 15:22-27)
영어 표현에 ‘happiness short-lived’라는 말이 있습니다. 행복은 ‘단명하다’ 곧 ‘오래 가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인간이 경험하는 행복의 감정이 그렇다는 말일 것입니다. 아마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에서 행복의 절정 감을 맛본 순간이 홍해를 건널 때였을 것입니다. 죽음의 절망 앞에 섰던 그들에게 상상할 수 없었던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갈라진 바다를 육지처럼 건널 때의 그 스릴과 감동이 어떠했을까요? 그리고 그 백성들이 다 그 바다를 건넜을 때 바다는 다시 닫히고 그들을 추격하던 바로의 군대는 물속에 수장되지 않았습니까? 그들의 지도자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감격에 겨워 노래하기 시작했고 춤추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본문이 포함된 출애굽기 15장은 이런 노래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노래와 춤사위가 오래 가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꼭 사흘을 간 것입니다. 사흘 후 모든 상황은 역전됩니다.
본문이 시작되는 2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 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물이 문제였습니다. 사막 길 여행에서 가장 절박한 필요는 물이 아닙니까. 사흘을 물을 마시지 못한 그 백성들의 타는 목마름을 상상해 보십시오. 마침내 백성들의 원망이 시작됩니다. 지도자를 원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자신들의 처지를 또한 원망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 거기서 우물들을 발견합니다. 얼마나 흥분했을까요?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 물은 마실 수 없는 쓴 물이었습니다. 더러는 이 마실 수 없는 그 물들을 마신 후 토해내고 병들어 눕기 시작합니다. 이 고통의 경험을 안겨다 준 곳이 바로 ‘마라’라는 장소였던 것입니다. 23절을 읽겠습니다.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마라’라는 의미가 바로 ‘쓴 맛‘ 영어로는 ’bitterness', ‘쓰디 쓴 고통’이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넌 후 남동쪽으로 방향을 잡고 사흘간을 여행 합니다. 이 많은 백성들이 여행하기 위해서는 하루에 많이 걸어야 약 20-25km 정도 그러니까 약 60-75km지점이었을 것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 마라라는 땅이 위치했을 것입니다. 성지 순례를 하면 수에즈 운하의 해저 터널을 통과하여 약 15km 정도를 남행하면 대추 야자나무가 무성한 오아시스 마을에 도착하는데 이 곳을 지금도 ‘아윤 무사’(Ayun musa) ‘모세의 우물’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이 지역은 ‘아인 호와라’(Ayn Howara)로 불리우는 지역입니다.(지도) 이 곳에는 지금도 우물이 있으나 바다에서 멀지 않아 쓰고 짜서 마실 수 없는 우물입니다. 하나님의 큰 기적을 경험하고 인생은 하나님이 살아계심으로 살만 하다고 느꼈는데 사흘 만에 지치고 목말라 병들어 누운 이들의 고백이 무엇이었겠습니다. ‘인생 도처 유 청산’(인생 도처에 푸른 산이 있구나!)이 아닌 ‘인생 도처 유 마라’(인생 도처에 고통이 있구나!)가 아니었겠습니까? 인생 ‘마라의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가 할일은 무엇이겠습니까?
1. 기도로 주께 나아와 부르짖어야 합니다.
이제 주의 백성들이 이 시점에서 다시 할일이 무엇입니까? 기도가 아니면 무엇을 하겠습니까? 그러나 이 기도는 백성들에게서 먼저 시작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백성들이 먼저 한일은 원망이었습니다. 24절을 보십시오.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그러나 모세는 어떻게 했습니까? 다음 절 25절을 보십시오.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백성은 원망했고, 모세는 부르짖어 기도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원망만 하시면 백성이 되고, 기도하면 지도자가 되시는 것입니다. 성경적 지도자 상이 바로 이것입니다. 모세인들 왜 하나님을 원망하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원망은 백해무익합니다. 원망은 상황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원망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기도는 상황을 변화시킵니다. 기도는 문제를 해결합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원망하기보다 기도하셔야 합니다. 불평하기 보다 기도하셔야 합니다. 염려하기보다 기도하셔야 합니다.
그러나 기도한다는 것이 기도만 하는 것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기도하며 주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 들으셔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한국 성도들은 ‘부르짖어 기도하는 기도’(간구, 강청 기도)에는 익숙합니다. 그러나 한국 성도들에게 익숙하지 못한 기도가 ‘듣는 기도’(Listening Prayer)입니다. 들어야 거기서 해결책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소리쳐 부르짖어 기도했거든 이제 잠잠히 침묵속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 보십시오. 기도중에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주목하십시오. 다시 모세의 기도로 돌아와 보십시오. 모세가 기도속에 얻은 해답이 무엇이었습니까? 다시 25절을 읽어 보십시오. 기도하는 모세에게 한 나무가 눈에 들어 온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더라” 많은 성경학자들은 아마도 이 나무가 우물물의 해독제의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이 마시지 못할 쓴 물에 대한 해답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기도하기 전까지 보이지 않던 해답이 기도와 함께 보인 것입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이제 마라의 쓴 물은 단 물로 변화되었습니다. 할렐루야! 드디어 상황의 치유가 일어난 것입니다. 기도가 응답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이제 원망을 그치고 문제를 가지고 주께 나아와 부르짖어 기도하시지 않으시겠습니까?
2. 말씀에 대한 순종을 결단해야 합니다.
자, 마라의 쓴 물이 단 물로 변화된 후 하나님이 그 백성에게 요구하신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25절의 하반부를 주목하십시오.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다시 말씀을 베풀어 것입니다. 왜요? 이어지는 26절을 주목하십시오.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 말씀에 대한 순종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왜 이 시점에서 주께서 이스라엘에게 새삼스럽게 순종을 요구하셨을까요? 지금 이스라엘 백성이 풍족한 고센 땅을 떠나 광야로 나온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이 명하셔서 순종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그 순종이 결과적으로 홍해 앞에서 죽을 뻔 하게 했고 가까스로 죽음을 면하고 광야로 나왔는데 물을 얻지 못해 목이 타고 다시 병들지 않았습니까? 자연히 어떤 생각이 낫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 보았자 별로 라는 생각이 아니었겠습니까? 그래서 이 마라의 경험은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시험’ 곧 테스트였던 것입니다. 25절 마지막 대목에 “--그들을 시험하실새”하지 않았습니까? 시험의 제목이 무엇입니까? 순종의 길에서 어려움을 당해도 그래도 변함없이 순종하겠느냐는 것입니다.
시험은 왜 주어집니까? 우리가 학교 다니던 시절 시험을 즐긴 분이 계실까요? 그렇다고 시험은 필요 없다고 감이 주장할 분이 계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저에게 두 가지를 동의하신 것입니다. 아무도 시험은 즐거워 할 수는 없지만 시험은 필요한 것이라고 말입니다. 시험을 치고 나면 우리는 우리의 부족했던 면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그 부족을 보충함으로 더욱 온전함을 향해 나아가게 되지 않습니까? 바로 이런 목적으로 마라의 시험도 주어진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다시 주시는 이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살 것을 결단한다면 주께서 또 무엇을 언약하십니까? 26절 하반부입니다.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무슨 말입니까? 다시 내 앞에서 이 말씀, 이 하늘의 규례, 계시의 말씀을 붙들고 산다면 앞으로는 다시 질병이 없을 것이고, 비록 질병이 오더라도 내가 너희를 치료의 은총으로 함께 하시겠다는 것이 아닙니까?
그는 이미 마라의 물을 치료하심으로 그가 치료의 하나님 곧 ‘야훼-라파’이심을 시범해 보이시지 않았습니까? 그분이 함께 라면 아무리 환경이 열악한 광야이지만 무엇을 걱정하겠습니까? 무엇을 염려하시겠습니까? 그러므로 건강관리도 중요하고 운동도 중요하고 적절한 보약으로 건강을 챙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순종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언 3장을 열면서 잠언 기자는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잠3:1)고 말합니다. 이어지는 잠3:8의 약속을 기억하십니까? “이것이 네 몸의 양약이 되어 네 골수를 윤택하게 하리라” 그러므로 매일 비타민 챙기시고 보약 챙기시는 여러분, 매일 구약과 신약을 챙기시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말씀이 건강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말씀이 치료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인생 마라의 고통을 극복하는 비밀-무엇일까요? 말씀에 대한 순종의 결단으로 날마다를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경건의 시간이 중요하고 그래서 QT가 중요한 것입니다.
3. 믿음의 행진을 계속해야 합니다.
많은 경우, 인생의 시련의 장에서 부르짖어 기도했어도, 말씀에 대한 순종을 결단했어도 여전히 우리를 둘러싼 환경에는 크게 변화가 따라주지 못할 수가 있습니다. 광야의 낮은 여전히 덥습니다. 광야의 밤은 여전히 춥습니다. 물은 여전히 넉넉하지 못합니다. 미래의 전망은 불투명합니다.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래도 기도를 들으신 주님, 말씀을 주신 주님, 그 주님을 믿고 믿음으로 인생의 광야를 계속 걸으셔야 합니다. 이미 함께 하심을 그분은 징조로 보여주지 않으셨습니까? 홍해가 열리던 그 광경을 잊지 마셔야 합니다. 마라의 우물의 물이 변하던 그 순간을 잊지 마셔야 합니다. 이 모든 기적의 주인이 여전히 함께 하시다면 그분을 믿으셔야 합니다. 그리고 일어나십시오. 일어나 다시 약속의 땅을 향한 순례를 계속하셔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라를 떠나 남방 약 10km에 왔을때 도달한 곳이 엘림이라는 곳이었습니다.(아마도 ‘Wadi Ghurundel'로 추정/지도 참조)마라에서 불과 10km 남방에 위치한 이 곳은 전혀 그 백성이 예측할 수 없었던 다른 상황이었습니다.
27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에 물샘 열둘과 종려 나무 일흔 그루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그 물 곁에 장막을 치니라” 자, 이 정도면 사막의 광야에서는 환상의 오아시스라 할만 하지 않습니까? 사막에서는 물 샘 하나도 귀한데 물샘이 무려 열두 개, 그늘을 만드는 한 그루의 종려나무도 귀한데 무려 일흔 그루의 나무들, 자 이런 놀라운 오아시스가 불과 10km 지점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조금 전 마라에서 그들은 불평했습니다. 원망했습니다. 왜 입니까? 단순합니다. 엘림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기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엘림이 보이지 않아도 엘림은 우리를 위해 예비되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엘림을 우리는 몰랐어도 하나님은 미리 엘림을 아시고 우리를 그리로 인도하셨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엘림은 마라를 통해서만 비로소 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러므로 마라에 주저앉아 계신 성도들이 계신가요? 조금만 참으십시오.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곧 우리는 엘림에 도달할 것입니다.
다시 한번 제가 좋아하는 청교도들의 인사법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그들이 믿음 때문에 많은 고난을 견디고 당시의 사회 속에서 오해당하고 핍박당하고 소외당하는 고통의 삶을 견디던 시절 요즈음 서양 사람들의 보편적인 명언으로 쓰여지는 한 메시지가 탄생한 것입니다. “가장 좋은 것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The Best is yet to come) 이 말의 원조가 청교도들이었습니다. 삶이 힘드십니까? 이렇게 자신에게 외쳐 보십시오. “가장 좋은 것은 아직 오지 않았다”고. 고단하게 살고 있는 이웃들이 보이십니까? 그 곁에 조용히 다가가 이렇게 말해 주시겠습니까? “가장 좋은 것은 아직 오지 않았다”고. 이 말을 오늘의 본문 식으로 바꾸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는 아직 엘림에 오지 않았습니다.” 자, 그러면 이제 일어나 다시 한번 외치고 여행을 계속하십시다. “우리는 아직 엘림에 오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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