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의 땅을 향한 로드맵(13)가데스의 레슨(민 13:25-33)
우리 모두는 ‘루비콘 강을 건넌다’(cross the Rubicon)는 표현을 잘 알고 있습니다. BC49년 1월 유명한 줄리어스 시저(카이사르)는 갈림길에 서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로마의 반역자가 되느냐, 혁명가가 되느냐는 선택이었습니다. 시저는 갈리아 지역 정복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로마에 돌아가 집정관에 취임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시저보다 봄페이우스를 더 선호한 원로원은 그가 무장해제를 하고 돌아오도록 결정을 내립니다. 시저는 그러면 자신의 라이벌 봄페이우스와 함께 동시에 군사 지휘권을 내려놓게 해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러나 원로원이 이를 최종적으로 거부하자 1월 10일 그는 1개 군단을 거느리고 갈리아 지역과 로마의 경계선상을 흐르는 루비콘 강을 건너면서 유명한 말을 남깁니다. “전우들이여, 이 강을 건너면 세상은 바뀐다. 그러나 이 강을 건너지 않으면 우리는 멸망한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진격하라!” 이렇게 해서 시저는 봄페이우스를 제압하고 위대한 대 로마제국의 기초를 놓게 되는 전기를 만들게 됩니다. 그래서 ‘루비콘을 건넌다’는 말은 중요한 결단을 내린다는 표현으로 쓰여지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다보면 그렇게 루비콘 강을 건너는 체험을 하게 되는 순간들을 직면하게 됩니다. 그런 소위 전환점의 시간들을 어떻게 직면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미래는 운명적으로 달라지게 됩니다. 애굽을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시내 산을 떠나 다베라를 거쳐 바란 광야에 들어와 바란 광야 북쪽의 변경도시 가데스 혹은 가데스 바네아에 드디어 도착합니다.(출 애굽 지도 참조) 신1:19을 보십시오.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호렙산(시내산)을 떠나 너희가 보았던 그 크고 두려운 광야(바란 광야)를 지나 아모리 족속의 산지 길로 가데스 바네아에 이른 때에” 이제 이어지는 신1:22-23에 보면 중요한 결정을 하지요. “너희가 다 내 앞으로 나아와 말하기를 우리가 사람을 우리보다 먼저 보내어 우리를 위하여 그 땅을 정탐하고 어느 길로 올라가야 할 것과 어느 성읍으로 들어가야 할 것을 우리에게 알리자 하기에 (23)내가 그 말을 좋게 여겨 너희중 각 지파에서 한 사람씩 열둘을 택하매” 그렇게 해서 가나안 땅을 정탐하기 위한 12명의 정탐을 보내게 됩니다.
오늘의 민수기 본문은 그 12명이 돌아와 보고를 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그런데 그 보고는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을 제외하고 나머지 10명은 부정적인 보고를 하게 됩니다. 10:2로 나뉘게 된 것입니다. 백성들은 다수를 따라 이제 모든 것을 포기하고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저항을 하게 됩니다. 본문에 이어지는 민14:1 이하에 보면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였더라--(3)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이제 이스라엘은 출애굽이후 최대의 위기에 직면하게 됩니다. 결국 이 큰 소요와 저항 사건으로 어떤 결과가 초래됩니까? 14:33을 보십시오. “너희 자녀들은 너희 반역한 죄를 지고 너희의 시체가 광야에서 소멸되기 까지 사십년을 광야에서 방황하는 자가 되리라” 결국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 대부분이 광야에서 방황하다가 죽고 새로운 세대만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리라는 징계를 받게 됩니다. 이 가데스의 반역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중요한 두 가지 역사적 레슨을 남기게 됩니다. 이 두 가지 레슨은 무엇일까요?
1. 믿음의 레슨입니다.
저는 부정적 보고를 한 10명의 정탐의 보고가 결코 잘못된 보고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10명은 나름대로 사실과 경험에 입각한 성실한 객관적 보고를 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 땅은 우리가 살만한 땅이 아니고 거기 사는 백성들은 우리가 상대하기 어려운 우리보다 신장이 강한 자들이라고 보고합니다. 마지막 절 33절을 보실까요?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을 것이니라” 여기서 ‘메뚜기 콤플렉스’라는 말이 유래하게도 됩니다. 어떤 분은 ‘거인 콤플렉스’라고 칭하기도 합니다. 상대는 거인인데 우리는 작은 메뚜기에 불과하다는 뜻이지요. 이것을 우리식으로 말하면 과거 일제 식민지 통치를 벗어난 직후 우리가 스스로를 자조적으로 비하할 때 ‘엽전’(일본 화폐에 비해서 우리 엽전의 화폐가치가 낮은데서 유래한 비하적 표현)이 무얼 하겠는가고 말한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 이들이 이렇게 패배 의식과 열등의식에 사로잡히게 되었을까요? 아직도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노예근성을 벗어나지 못한 때문일까요? 도대체 무엇이 이들의 문제이었습니까?
저는 근본 문제는 결국 믿음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아직도 이들이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홍해를 여시던 하나님, 반석을 열어 물을 주시던 하나님, 마라의 쓴 물을 치유하시던 하나님, 하늘에서 만나를 내리시던 하나님을 아직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들만의 문제일까요? 우리는 성경의 하나님, 기적의 하나님을 믿는다고 늘 고백하지만 자신의 인생에서 다시 어려움을 경험하게 되면 오늘의 나의 어려움 앞에서는 다시 믿음 없는 사람처럼 행동하지 않습니까? 다시 믿음 없는 사람처럼 말하지 않습니까? 어제는 믿었는데 오늘은 또 다시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이것을 신앙인의 불신앙이라고 말합니다. 아니 아직도 우리는 충분히 믿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어제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오늘 이 순간은 더 더욱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롬1:17에서 복음적 삶의 본질을 어떻게 설명합니까?“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믿음의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언제 어디에서나 믿음으로 사는 것을 배워가는 것입니다.
갈렙이 그런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반응은 군중들과 아주 달랐습니다. 30절을 보십시오.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조용하게 하고 이르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무엇이 갈렙으로 하여금 나머지 정탐들과 이렇게 다른 반응을 하게 했을까요? 객관적인 상황의 유리함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민14:8이 그 대답을 들려주고 있지 않습니까?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민14:9하반부의 고백을 주목하십시오.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예,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홍해에서 그 백성들과 함께 하신 하나님, 마라에서 그 백성들과 함께 하신 하나님, 르비딤에서 그 백성들과 함께 하신 하나님, 시내 산에서 그 백성들과 함께 하신 하나님이 오늘 우리의 삶의 자리에 여전히 함께 하심을 참으로 믿는다면--무엇을 걱정하시겠습니까? 무엇을 염려하시겠습니까? 누구를 두려워하시겠습니까?
그러므로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어떻게 사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우리의 상황에 하나님을 더하기 하는 것입니다. “이 환경 속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어떻게 될까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이 문제가 어떻게 될까요?” 더하기(+)하나님을 해 보십시오. 그래서 누군가가 십자가를 ‘더하기 표’라고 말했습니다. 아무것이나 더하기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더하기 하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전지하신 하나님, 편재하신 하나님, 신실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이 당신과 함께 하신다면 어떻게 될 까요? 그러므로 갈렙 처럼 믿음의 사람이 되십시다. 아직도 우리 눈앞에 처치 불가능의 거인이 서 있다면 ‘넌 내 밥이라’고 소리치십시다. 함께 하시는 그분-내 하나님 때문에 나는 물러 갈수가 없다고 선포하십시오. 그리고 그가 이미 약속한 승리를 믿음으로 선포하십시오.
2. 순종의 레슨입니다.
결국 10명의 정탐 그리고 그들을 따라 소요에 동참한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또 하나의 근본 문제는 불순종의 문제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명하심 그리고 인도하심을 따라 애굽을 떠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지금 하나님의 명하심을 따라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하여 가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지금 이들은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외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불순종이 아닙니까? 그래서 여호수아와 갈렙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제일 엄중하게 경고한바가 무엇이었습니까? 민14:9이 어떤 말씀으로 시작되었습니까?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는 것입니다. 후일 히브리서 기자는 광야 시절의 이스라엘 백성의 경험을 반추하며 그들 대부분이 가나안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 원인을 이렇게 규명합니다. 히4:6입니다. “그러면 거기에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들어가지 못하였으니” 이어지는 히4:11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우리의 환경이 어려워질 때 제일 먼저 걱정할 것은 환경 그 자체보다도 지속적인 순종의 여부입니다. 우리 중에는 환경이 어려워 졌다고 너무나 쉽게 하나님의 인도 따라 해오던 사역을 중단하고, 하나님이 주신 일이라고 기쁨으로 섬기던 봉사도 중단하고, 환경이 어려워 졌다고 한때 하나님의 인도라고 믿었던 십일조와 헌금도 중단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시겠습니까? 여러분과 저를 향한 그분의 기뻐하심이 없다면 어떻게 재기가 가능하겠습니까? 건강 제약품 맨솔레담으로 백만 장자가된 알버트 알렉산더 하이드(Albert Alexander Hyde)라는 그리스도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한때 경제 공황시절 10만불의 빚을 지게 되자 빚잔치를 한 후 새롭게 결심하고 시작한 것이 십일조였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당신 제 정신이냐. 빚더미위에 앉아 무슨 십일조냐”고 했을 때 “나 제 정신이라고. 내가 깨달은 것은 하나님의 빚부터 갚아야 한다는 것이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물론 그는 멋지게 재기했고 십의 이, 삼, 사까지, 나중에 10의 9까지 드리는 전설적인 믿음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순종할 때 늘 유혹은 다음에 대한 걱정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나 갈렙은 어떤 마음으로 순종했을까요? 순종하면 하나님이 책임져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순종하면 이후의 한 걸음 한 걸음 주께서 인도하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민14:8의 고백이 그것이 아닙니까?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그리고 이런 믿음, 이런 순종이 마침내 그와 그의 백성들을 약속의 땅, 아름다운 땅으로 인도할 것이라고 믿은 것입니다. 물론 10명의 정탐의 보고처럼 그 땅에는 아직 그들을 기다리는 여러 위협이 있을지 모르고 그 땅 자체도 본문 32절의 악평처럼 불편하고 위험한 곳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들의 순종의 노력을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면 마침내 그 땅은 약속의 땅, 기업의 땅, 창조의 땅이 될 것을 믿은 것입니다.
그러면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가 아닙니다. 지금 현실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우며 여기서 어떻게 탈출할 것인가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순종입니다. 오늘의 난관 앞에서 다시 하나님을 믿으시겠습니까? 그리고 다시 그 하나님께 순종의 삶을 결단하시겠습니까? 그러면 구체적으로 우리가 다시 순종을 결단할 삶의 영역은 무엇인지요? 십자가를 앞둔 겟세마네의 밤, 예수님이 보여주신 결단도 그것입니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그는 아버지를 신뢰하고 십자가를 지시는 순종을 결단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구원, 우리의 새 인생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을 사는 저와 여러분도 또 한번 새로운 역사 창조를 위해, 믿음과 순종의 결단으로 내 인생의 루비콘의 강을 건너는 오늘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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