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의 땅을 향한 로드맵(16)치유 공동체(민 21:4-9)
언젠가 리챠드 마우의 ‘무례한 기독교’라는 책을 교회의 추천도서로 소개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 책이 던지는 중요한 물음은 오늘과 같은 소위 종교 다원화의 시대에서 우리들 기독교인들이 어떻게 우리와 다른 신념 혹은 다른 종교를 갖고 있는 사람들을 접촉해야 하느냐의 교양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모든 종교가 좋다는 식의 무분별한 포용주의가 기독교인의 바람직한 태도가 아닌 것처럼 내가 속한 종교외에 모든 것은 다 잘못된 것처럼 생각하는 독선적 배타주의도 기독교인이 취할 태도는 아니라고 말합니다. 얼마 전에 우리는 석탄일을 지났습니다만, 사실 저는 기독교의 복음이 이 땅에 소개되기 전에 불교나 유교와 같은 종교가 이 땅에 전파된 것을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런 종교들을 통해서 우리 민족이 문화와 윤리를 갖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이런 종교들을 통해 우리는 인생의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을 배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불교가 하나의 종교로서 출발한 기원을 기억하십니까? 인도의 궁궐안에서만 자라오던 어린 고타마 싯다르타 왕자가 어느 날 스승과 함께 백성들이 사는 궁궐 밖으로 나가 성안을 다니다가 늙은 사람, 병든 사람, 그리고 죽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인간은 왜 태어나고 왜 늙어야 하고, 왜 병들고 왜 죽어야 하는가의 소위 생노병사의 문제를 고뇌한 데서 그의 출가가 비롯되지 않았습니까? 적어도 고타마 싯다르타는 올바른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과연 그의 깨달음이 그가 고민하던 문제의 해답이었는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만, 우리는 적어도 그가 제기한 문제들은 바로 그리스도인들이 동일하게 직면하는 문제임을 공감할 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지금 광야를 여행하는 이스라엘 백성들도 동일한 문제들에 직면하게 되지 않습니까? 오늘 본문의 상황, 그러니까 호르산을 떠나는 출애굽 40년이 경과된 시점에서 모세와 여호수아, 갈렙 정도를 제외하고는 이미 대부분의 출애굽 세대는 광야에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그리고 호르 산을 떠나 직접 에돔 땅을 통과하지 못하게 되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에시온 게벨’로 내려가 다시 북상하는 우회로를 선택하게 됩니다.(출애굽 지도 참조) 그러나 이 험로를 지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 불평하게 되고(4-5절) 그 결과로 뱀에 물려 병들고 죽어가는 고통을 경험하게 됩니다.(6-7절) 그리고 백성들은 다시 중보자 모세에게 나아와 하나님의 치유를 기도해 달라고 호소하게 됩니다.
*그러면 과연 이런 질병과 고통의 문제에 대한 치유의 해답은 무엇입니까?
1. 문제의 원인을 바로 진단해야 합니다.
불교나 기독교가 인간 고통의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에는 유사성이 존재합니다만, 그러나 이 고통의 원인의 진단에서는 기독교는 불교와 다른 관점을 갖습니다. 성경은 인간 고통은 우연한 생의 보편성이 아니라, 죄 때문이라고 가르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그리고 본질적으로 죄가 고통을 가져왔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말은 우리가 겪고 있는 모든 고통이 직접적으로 개인의 죄와 관련이 있다는 말은 아닙니다. 우리는 욥의 케이스처럼 자신의 죄와 상관이 없이도 고통을 겪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의 고통의 뿌리에는 내 이웃의 죄라든지, 한 사회의 집단적 죄악 혹은 조상의 죄 문제등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버스 운전자의 잘못된 부주의 음주 운전으로 우리가 사고를 만난 경우 그것이 내 죄 때문은 아니지만, 운전자의 죄를 간과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많은 환경 재앙의 경우 자연을 소홀히 다룬 전체 인간의 죄 문제를 간과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고통당하는 이웃에게 죄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은 경박한 일이고 주의할 일이지만, 적어도 자신의 고통에 대해서는 자신의 죄를 성찰하는 것이 중요한 일입니다. 올바른 진단이 올바른 치유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치유가 어떻게 시작되는 지를 주목해 보십시오. 7절입니다.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말하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함으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여기 “우리가 범죄했습니다”라는 이 고백이 바로 치유의 시작이 된 것입니다. 기독교 교리에서는 이것을 회개라고 일컫습니다. 회개란 돌이킴, 방향의 전환을 뜻하는 말입니다. 누구도 죄에 대한 자각과 죄로부터의 돌이킴이 없이 구원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행3:19에서 사도 베드로는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적 신앙의 입문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인간의 병든 실존의 치유의 시작인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처방을 수용해야 합니다.
우리가 병원에 가면 의사 선생님들은 병을 초래한 잘못된 습관이나 문제를 지적합니다. 이것이 바로 진단입니다. 진단 다음에 중요한 것은 이제 의사의 처방을 수용하고 따르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저도 최근에 당원(당뇨병 환자군)에 가입했습니다만, 제가 정말 치유를 경험하려면 식생활이나 운동등의 처방에 얼마나 잘 따르느냐가 치유의 관건이 되겠지요. 자, 다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의 행진의 마당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불 뱀에 물린 이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처방이 무엇이었습니까? 8절에 하나님의 처방이 제공됩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좀 이상한 처방이 아닙니까? 뱀(불 뱀)에 물린 자들에게 뱀(놋 뱀)을 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메시지가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복음으로 선포되는 순간이었던 것입니다. 먼 훗날 신약시대에 예수님께서 자신을 방문한 니고데모라는 이름의 구도자에게 어떻게 구원의 처방을 말씀하셨는지-기억하십니까?
요한3:14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무슨 뜻입니까? 불 뱀에 물려 죽어가는 이스라엘 백성을 살리기 위해 장대위에 놋 뱀을 매다시던 하나님께서 죄로 죽어가는 인생을 살리시고자 인자(사람의 아들)되신 예수로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죄인되게 하시사 십자가에 매다시고 그를 바라보는 사람마다 구원을 받게 하신 것입니다. 이 기막힌 유비(analogy)를 주목하십시오. 뱀에 물린 백성을 위해 뱀을 장대에 매다시던 하나님이, 죄를 범한 인류를 위해 예수를 십자가라는 장대에 우리 대신 죄인을 삼으시고 매다신 것입니다. 그리고 오직 그분을 믿음으로 바라보는 사람마다 치유를 얻으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다시 요3:14에 이어지는 15절을 보십시오.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 다음 구절이 요3:16인 것을 기억하십니까?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 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제 이 구절을 이스라엘 백성의 입장에서 적용하여 읽어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죄로 말미암아 뱀에 물린 백성을 이처럼 사랑하사 장대위에 놋 뱀을 주셨으니 그 놋 뱀을 믿음으로 바라보는 자마다 새 삶을 얻으리라” 다시 본문 9절을 보실까요? “모세가 놋 뱀을 만들어 장대위에 다니 뱀에 물린 자가 놋 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 이것이 바로 좋은 소식, 복음인 것입니다. 죄인을 위한 하나님의 처방인 것입니다. 이 처방을 믿음으로 수용함이 바로 구원이요, 새 삶의 시작이요, 진정한 치유의 순간인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처방을 전파해야 합니다.
자, 믿음으로 장대위에 놋 뱀을 보고 치유 받고 새 삶을 얻은 백성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다고 생각하십니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들이 잠잠할 수 없었으리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참으로 죽음의 병에서 살림을 받았다면 아직도 이 구원의 처방을 알지 못하고 믿지 못하고 죽어가는 이웃들에게 이 소식을 감격으로 전하지 않았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전도요 선교인 것입니다. 우리위해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으시고 다시 사신 예수-그가 바로 우리의 구원이라고 우리의 생명이라고 말입니다. 오늘은 우리 교회가 창립 14주년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1994년 1월 첫 주일에 탄생 예배를 드린 우리는 그해 5월에 양재동 횃불 회관에서 우리 교회 탄생을 대외적으로 알리는 창립 예배 및 창립 전도 축제를 갖게 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는 창립 기념예배를 드리고 오늘 오후 6시에는 임직식을 갖고 오는 수요일부터 사흘간 ‘셀 컨퍼런스’ 축제를 갖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가 이런 축제를 갖는 이유도 우리의 존재 이유를 확인하고자 함인 것입니다. 광야 길에서 죽어가는 수많은 이웃들에게 예수가 우리의 구원이시고 소망이심을 선포하고자 함인 것입니다. 나 혼자의 힘으로 이 길을 걷는 이 무수한 사람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모일 때마다 이 소식을 효율적으로 함께 전하고 나눌 공동체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교회의 존재 이유입니다. 복음의 소식을 전하지 못하는 교회는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습니다. 초대 교회의 존재 양식을 알리는 행2:47을 보십시오.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저는 이 구절을 읽을 때마다 생동하던 초대 교회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초대 교회는 전도의 열정으로 가득한 진실로 dynamic church 였습니다. 인천 공항에서 비행기를 내려 입국 통로를 걷다 보면 dynamic korea의 선전판을 대하게 됩니다. 저는 그때마다 우리 교회를 생각합니다. 우리 교회는 얼마나 주님의 치유의 복음, 이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열정으로 가득찬 생동하는 교회인가를!
우리 교회가 지난 2002년부터 셀 교회로 전환한 것도 이 셀 모델이 우리 교회를 진정 ‘전도 지향적 교회’로 출범시키는 가장 효과적 전략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셀 교회로 모일 때마다 빈 방석 혹은 빈 의자 혹은 포도송이를 놓고 전도 대상자를 위해 기도하고 그들은 전도하기 위한 사역의 꿈을 놓치지 않고 달려왔습니다. 특히 작년 한해 2007년에는 우리 교회 등록자의 89,5%가 교회 배경이 없는 불신자들이었습니다. 이제 우리 교회는 더 이상 수평이동을 의존하는 교회가 아니라, 진실로 전도하는 교회로 서게 되었습니다. 초대교회처럼 ‘구원받는 사람들을 날마다 더하는 교회’가 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저는 우리 교회가 이 꿈을 붙들고 존재하는 한 교회의 머리되신 주께서 우리 교회의 미래를 또한 아름답고 영광스럽게 이끌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세월과 함께 지역 교회의 모습은 여러 가지로 달라질 수가 있습니다. 예배의 스타일도, 리더십의 체질도, 교회 행정의 방법도 달라 질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두 가지만은 어떤 경우에도 그 누구에 의해서도 결코 변하지 말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하나는, 우리가 전하는 복음입니다. 인간을 궁극적으로 변화시키고 치유하는 희망은 오직 십자가의 복음, 곧 우리 위해 죽으시고 다시 사신 예수뿐이라는 것-이것이 우리 교회의 변함없는 강단의 메시지가 되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우리 교회의 모든 역량은 추후에도 변함없이 믿지 않는 영혼들을 구원하는 전도와 선교에 집중되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성도들의 인생을 복음의 말씀으로 치유하도록 정성을 다해 섬기는 일-이것이 우리 교회의 지속적인 존재 이유가 되리라는 것입니다. 곧 완공될 가평 필그림 하우스도 광야 길에 지치고 힘든 영혼들을 치유하는 말씀의 집으로 역할을 다하게 될 것입니다. 진실로 14년전 작은 불꽃으로 우리를 출발하게 하신 우리 교회의 주인께서 이후로도 진정 우리 교회를 복음의 아름다운 횃불로 타오르게 하시기를 기도하십시다. 그리고 지난 14년 이 광야 길에 아름다운 동행자로, 동역자로 함께 섬겨주신 모든 성도들에게 담임 목사로서 가슴 깊은 사랑과 감사를 전해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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