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의 땅을 향한 로드맵(17)광야의 축제(민 21:10-20)
아마도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읽은 책으로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힌 책은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일지 모릅니다. 주인공 ‘나’는 비행기 사고로 사하라 사막에 던져 졌을 때 거기서 어린 왕자를 만나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그가 여행한 별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주인공 나는 문득 타는 듯한 갈증을 느껴 죽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 주인공의 목마름을 알아차린 어린 왕자는 주인공에게 우물을 찾아 나서자고 제안을 합니다. 마침내 그들이 찾아낸 사막의 우물은 그저 모래에 구멍을 파 놓은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도르래, 두레박, 줄까지 이미 모든 것이 다 갖추어져 있었습니다. 어린왕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들어봐요. 우리가 우물을 잠에서 깨운 거에요. 그래서 우물이 노래를 하고 있어요” 주인공 나는 천천히 두레박으로 우물물을 끌어 올립니다. “물을 좀 줘요” 속삭이는 어린 왕자에게 주인공 나는 눈을 감고 물을 마시게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자신도 그 물로 또한 갈한 목을 적시기 시작합니다. 그 물은 축제처럼 달콤한 물이었습니다. 그 물은 일반 음식과 완전히 달랐습니다. 그 물은 마음까지 즐겁게 해 주는 물이었습니다. 그 물은 생명 자체였습니다. 그리고 어린왕자도 주인공 나도 더 이상 목마르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약속의 땅을 향해 나아가는 광야의 순례의 여정에서도 주의 백성들은 또 한번 타는 목마름으로 고생을 하게 됩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의 행진은 지금의 요르단 국가 경내로 들어서게 되었고, 오늘의 본문은 그 여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에시온 게벨(요르단 지명으로는 아라바)을 출발하여 에돔과 모압의 경계를 형성하는 세렛 강(계곡-12절)을 지나 모압으로 들어서게 되고, 마침내 모압과 암몬의 경계선상에 놓인 유명한 아르논 강(계곡-13절)을 지나가게 됩니다.(성경 지도) 그러나 이 광막한 사막을 지나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은 얼마나 목마름으로 고통을 겪어야 했을까요? 그러다가 홀연히 그들은 샘물이 솟는 우물을 발견하게 됩니다.얼마나 감동했을까요? 얼마나 기뻐했을까요? 그들은 바로 노래하며 축제를 시작하게 됩니다. 광야의 축제, 감사의 축제였습니다. 지금도 요르단의 사막지대에서 우물을 얻게 되면 마을 축제가 벌어지는 것은 일상적인 사건이라고 합니다.
지난 수요일 저녁 우리 교회에서는 셀 컨퍼런스 도중에 놀라운 축제를 가졌습니다. 신바람 나는 광야의 한밤의 축제였습니다. TV에 소개되는 우리 주변의 어떤 축제에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최고의 감동 축제였습니다. 우리 교회 모든 식구들이 함께 하지 못한 것 그리고 그 밤에 찾아온 모든 교우들을 다 수용하지 못한 것이 안타깝기만 했습니다. 내년 창립 15주년을 기념하는 때에는 밖의 큰 시설을 빌려 우리 교회 어린이부터 시니어부 까지 1-7부에 흩어져 예배하는 온 회중이 함께 하는 축제를 기획했으면 합니다. *그러면 왜 우리에게는 이런 광야의 축제가 필요한 것인가요?
1. 하나님의 인도를 감사하기 위해서입니다.
오늘의 본문 16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거기서 브엘에 이르니 브엘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시기를 백성을 모으라 내가 그들에게 물을 주리라 하시던 우물이라” 본문 10-15절 까지 호르산을 떠나 요르단 경내에 들어서기까지의 쉽지 않았던 그 여정을 보여준 후 갑자기 16절에서 “브엘에 이르니”라고 기록합니다. ‘브엘’은 ‘우물’이라는 뜻입니다. 이 브엘에 도착하기 전 마지막으로 건넌 곳이 14절에 보면 아르논 골짜기였습니다. 아르논 골짜기는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모압과 암몬 지역의 경계를 형성하는 골짜기로 깊고 험하지만 아주 아름다운 곳(요르단의 그랜드 캐년)입니다. 보기에는 아름다운 곳이지만 이 많은 백성들이 건너기에는 너무나 너무나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험한 계곡을 지나자마자 그들을 기다리던 것이 우물이 있는 오아시스였던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하고 얼마나 기뻐했을까요? 이 모든 여정이 하나님의 인도임을 실감하는 순간이 아니었겠습니까?
우리 부모님 세대가 잘 부르던 찬송 가운데 “나의 갈길 다 가도록”(434장)이라는 찬송이 있지요. 이 찬송의 가사의 마지막 부분은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고 되어 있습니다. 과연 이 찬송의 작시자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고난과 역경이 없는 만사형통의 인생이라고 믿어 이렇게 작사했을까요? 그런데 우리가 잊지 말 것은 이 찬송의 작시자는 패니 크로스비(Fanny Crosby)라는 시각 장애인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눈먼 그녀가 걸어가는 길이 결코 만사형통의 길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해마다 장애인의 날 혹은 장애인의 주일을 맞이하면서 우리 교회에서는 장애 체험 대회를 갖습니다. 눈 가리개를 하고 부축을 받아보며 길을 걷다 보면 시각 장애가 얼마나 심각한 장애인가를 실감하게 됩니다. 그런데도 패니 크로스비는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 형통하리라”고 노래합니다. 고통이나 시련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고통이나 시련에도 불굴하고 그 고통의 길, 시련의 길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인도 때문이었습니다. 주님은 결코 우리에게 고통과 시련이 없는 믿음의 길을 약속하시지는 않으셨습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요한16:33)고 말씀하신 바로 그 주님이 또한 우리에게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언약하신 분이십니다. 이스라엘의 광야의 축제도 광야의 시련을 넘어서는 그분의 인도를 실감한 감사의 축제가 아니었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도 오늘의 우리들 인생의 광야에서 여전히 그분의 함께 하심, 그분의 인도를 믿으신다면, 어찌 감사의 축제를 준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할렐루야!
2. 하나님의 공급을 감사하기 위해서입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이 걸어가는 이 광야에는 하나님의 인도만 함께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이 광야 길에 비록 그들이 불평했을 지라도 만나와 메추라기는 계속 공급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은 견딜 수 없는 타는 목마름으로 고통당하던 순간 주께서는 브엘의 우물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주께서는 이 우물을 가르치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다시 16절을 보십시오. “내가 그들에게 물을 주리라 하시던 우물이라”고. 17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이 노래하여 이르되 우물물아 솟아나라 너희는 그것을 노래하라” 자, 사막을 타는 목마름으로 걸어온 이 백성이 솟아나는 샘물을 마시고 무엇이라고 소리쳤을까요? “하나님, 당신은 공급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라고 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는 진실로 ‘야훼 이레’의 하나님, 준비하시고 공급하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바울의 고백을 들어보십시오. 빌4:19의 말씀입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고. 얼마나 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동일한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인생의 광야 한 복판에서 하나님의 신실하신 공급을 경험할 수 있었는지요? 그렇다면 우리 모두 축제를 준비함이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패니 크로스비의 이야기를 하나 더 들려드리겠습니다. 그녀에게는 시각 장애도 고통이었지만 그녀가 찬송 작시자로 알려지기 전에 가난으로 더 큰 고통을 경험했습니다. 어느 날 그녀는 단돈 5불이 없어서 중요한 일을 처리하지 못하게 되자 그녀는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주님의 도움을 간절하게 구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기도하고 일어 난지 얼마 안 되어 누군가가 집의 초인종을 눌렀다고 합니다. 나가보니 전혀 모르는 사람인데 “당신이 혹시 패니 크로스비이냐”고 묻습니다. “그렇다”고 하자 “찬송가를 작시한 일이 있느냐”고 다시 물으면서 “당신이 이곳에 산다는 얘기를 듣고 얼굴이라도 보고 싶어 집에 들렸다”고 말하더랍니다. 집을 떠나면서 악수하는 그녀의 손에 5불을 쥐어 주더랍니다. 이 정확하신 인도에 놀라면서 작사한 찬송이 바로 찬송 434장이었던 것입니다. 2절을 기억하십니까? “나의 갈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어려운 일 당한 때도 족한 은혜 주시네 나는 심히 고단하고 영혼 매우 갈하나 나의 앞에 반석에서 샘물 나게 하시네” 이스라엘 백성의 간증이 동일한 고백이 아니었습니까? 인생의 광야 길이 결코 쉬운 길은 아니었지만 그때마다 주님은 그들의 최소의 필요를 공급하셨고 타는 목마름으로 지쳐갈 무렵 우물이 있는 오아시스에 도착하게 하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공급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십시다.
3. 하나님의 통치를 감사하기 위해서입니다.
본문은 이스라엘이 이 우물을 발견하는 작업 속에 감취인 비밀 하나를 더 소개합니다. 18절입니다. “이 우물은 지휘관들이 팠고 백성의 귀인들이 규와 지팡이로 판 것이라”고. ‘규’는 옛 번역에는 ‘홀’이었습니다. 이것은 본래 통치자의 주권 혹은 왕권(우리나라의 옥새같은 것)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리더의 손에 잡힌 지팡이도 역시 지도자의 통치권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물을 팔 때는 본래 이런 것들이 사용되지 않습니다. 부삽이나 괭이등이 보편적인 도구였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도구를 쓰지 않고 규와 지팡이를 사용했을까요? 창49:10에서 그 해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규(홀)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이 규(홀)와 지팡이는 궁극적으로 메시아의 통치를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그 분의 주권적인 통치로 이 샘물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아마, 힘들이지 않고 지팡이로 헤쳐 보니까 우물이 발견된 케이스였을 것으로 보여집니다.
여러분, 인생을 우리 힘으로만 살면 힘들고 고생길이지만 그분의 통치를 복종하며 살면 기쁨과 은혜인 것입니다. 천국은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고 살면 이 땅에서도 천국을 경험합니다. 지금 여기에서 하나님의 다스리심, 그의 통치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곳이 바로 천국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이 천국가기 전에도 천국을 경험하기를 소원하십니다. 성령 충만의 본질은 바로 성령의 다스리심인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통치를 경험하면 지금 여기에서 천국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롬14:17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하십니다. 이런 천국을 사모하지 않으십니까? 우리는 천국가기 위해서만 예수를 믿는 자가 아니라, 천국을 살아가기 위해서 예수를 믿으셔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사는 모든 곳에서 천국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때 우리는 이런 찬송을 진정한 신앙의 고백으로 부르게 될 것입니다.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 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그렇습니다. 사막에서 조난당한 인생의 곁으로 오신 우리들의 진정한 어린 왕자이신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한 샘물을 약속하십니다.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고. 그리고 그는 이렇게 우리에게 속삭이십니다. “나와 같이 있는 곳이 바로 천국이야”라고. 이스라엘 백성이 이 브엘에서 샘물을 마신 후 그들은 이제 광야와 약속의 땅이 함께 보이는 비스가 산 꼭대기로 인도됩니다. 마지막 20절을 보실까요. “바못에서 모압 들에 있는 골짜기에 이르러 광야가 내려다보이는 비스가 산(느보 산) 꼭대기에 이르렀더라” 할렐루야! 약속의 땅이 머지않았습니다. 조금 만 견디십시오. 조금 만 기다리십시오. 노래하며 기다리십시오. 영원한 축제가 머지않았습니다. 사막의 골짜기 때문에 절망하지 마십시오. 사막의 목마름 때문에 사막의 행진을 불평하지 마십시오. 우물을 찾아 나서면서 어린왕자가 들려준 말을 기억 했으면 좋겠습니다.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사막에 샘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야.” 그리고 그 샘은 완벽하게 도르래와 두레박이 함께 준비되어 있었다는 것도우리가 어린왕자를 따라 나설 준비가 되어 있다면 우리는 모두 사막의 축제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물의 노래 소리를 듣게 될 것입니다. 노래 소리가 들리지 않으시나요?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한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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