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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주님을 어떻게 따라가야 할까?

+ 설교제목 : 주님을 어떻게 따라가야 할까?
+ 설교본문 : 마가복음 1장 16 - 20절
+ 설교날짜 : 2007년 7월 22일 주일오전
+ 설교자 : 마경훈목사

본문에는 주님께서 4명의 어부들을 제자로 부르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본문은 눅 5장의 말씀과 짝이 되는 말씀인데 본문과 눅5장을 종합해 보면 베드로와 나머지 세 명의 제자들이 물고기를 잡기 위해서 밤이 세도록 그물을 던졌으나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상태입니다. 이제 날이 밝아오고 더 이상 고기를 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갈릴리 바다는 날이 밝으면 고기를 잡을 수 없습니다. 지난 1월에 이스라엘에 다녀왔는데 그 때 갈릴리 바다에도 가봤습니다.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건넜는데 항구에 다다를 즈음에 선원이 그물을 몇 번 던졌습니다. 그런데 그물을 끌어 올릴 때마다 단 한 마리의 고기도 없었습니다. 눅 5장에 보면 베드로와 안드레는 그물을 씻고 있었고 19절에 보면 야고보와 요한은 그물을 깁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주님은 그 네 명의 어부들을 제자로 부르셨고 그들은 주님을 따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저는 본문에서 부르심을 받은 제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주님이 사용하시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를 생각해 봅니다.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지만 고기를 단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어부들이 낙심하여 고기잡이를 포기하지 않고 내일의 희망을 가지고 그물을 깁고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자포자기하여 술이나 마시고 노름이나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화풀이나 하는 어리석은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지난 밤 고기잡이에 실패했으나 내일을 바라보고 준비하는 사람을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 중에 가장 위대한 대통령으로 존경받고 있는 사람이 아브라함 링컨입니다. 저는 아브라함 링컨은 하나님이 사용하신 사람이라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흑인들을 노예제도로부터 해방시킨 위대한 일을 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그를 사용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 요인을 꼽을 수 있습니다. 첫째, 그는 성경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옳다고 하는 일에 인생을 걸었던 사람입니다. 둘째, 그는 기도의 사람입니다. 그는 전쟁 중에도 기도를 쉬지 않았습니다. 아주 위급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 앞에 기도했으며 그가 기도하는 동안은 어떤 일도 어떤 사람도 그의 기도를 방해할 수 없었습니다. 셋째, 그는 많은 일들에 실패했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고 도전에 도전을 거듭해서 인생에 성공한 사람입니다. 그는 1831년 사업에 실패해서 파산했습니다. 1832년 주의회 선거에서 낙선했습니다. 1835년 사랑하는 아내가 죽었습니다. 1836년 신경쇠약증으로 병석에 누웠습니다. 1838년과 1843년에 연방 하원의원 선거에 출마했지만 연달아 떨어졌습니다. 1855년과 1858년 상원의원 선거에서 또 연거푸 낙선했습니다. 1856년에는 그는 부통령 선거에도 도전했지만 실패했습니다. 이 정도 실패했으면 포기할 만도 한데 4년 후인 1860년에 미국 대통령 선거에 또 다시 출마했습니다. 마침내 그는 미국의 제 16대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며, 남북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으며, 흑인들을 노예제도에서 해방시키는 위대한 일로 하나님 앞에 쓰임 받았습니다.
저는 본문에서 부르심을 받은 제자들을 보면서 “나의 평범함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내가 주님을 따라가기만 하면 주님은 평범한 나를 비범하게 위대하게 사용하실 수 있다.”라는 믿음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은 평범한 사람을 부르셔서 비범하게 위대하게 사용하시는 분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많은 인물들이 그런 사람들입니다. 약 5장에 보면 하나님이 위대하게 비범하게 사용하셨던 엘리야의 기도의 능력을 다루면서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라고 말씀합니다. 말 한 마디로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못하게 만들었던 위대한 엘리야, 한 번의 기도로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는 응답을 받고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 850명을 물리친 위대한 선지자 엘리야, 무릎으로 기도해서 3년 6개월간 닫혔던 하늘의 문을 열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도 기다렸던 비가 내리게 했던 위대한 엘리야가 본래 위대한 사람이 아니라 우리들과 성정이 같은 평범한 사람이었다고 말씀합니다. 그렇게 평범한 엘리야가 위대한 하나님께 사용되면서 위대한 일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네 명의 어부들은 예루살렘에 살던 지식인들이 아닙니다. 큰 권세를 가진 사람들도 아닙니다. 많은 재물을 가진 사람들도 아닙니다.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하찮은 어부에 불과했던 사람들입니다. 고전1:26-29에 보면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저는 주님이 제자들을 부르신 것처럼 우리 모두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부르셨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직업이 무엇이든, 내가 가진 능력이 크든지 작든지, 내가 가진 재물이 많든지 적든지 상관없이 주님은 우리 모두를 부르신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께로부터 목회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선교사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중보기도자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바르실래로 부르심을 받았고 어떤 사람은 평신도 사역자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부르심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모든 그리스도인은 모두가 다 주님에게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주님이 나를 부르셨다면 나는 어떻게 주님을 따라야 할까요? 평범했던 네 명의 어부들이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주님을 따르므로 위대한 제자가 되었습니다. 오늘 설교는 그들이 주님을 어떻게 따랐는가를 통해서 우리가 주님을 어떻게 따라야 하는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1. 비전을 가지고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부르면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는 비전을 주셨습니다. 물고기 잡는 사람들이 사람을 살리는 비전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 비전에 사로잡혀서 수많은 사람들을 주님에게로 인도하는 생명 살리는 일을 하게 된 것입니다.
비전은 사람을 바꿔놓습니다. 네 명의 제자들이 주님이 주신 비전을 받기 전에는 자기들이 출생한 지역에서 누구든지 할 수 있는 평범한 일을 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주님의 비전을 받고 난 후부터 모험적인 삶을 시작합니다. 자신들의 삶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변화에 도전합니다. 그리고 주님을 따라갑니다. 그들은 물고기 잡는 어부에서 사람을 살리는 비범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유진 랜드’라는 자수성가한 한 백만장자의 이야기입니다. 그가 할렘가에 있는 가난하고 어렵게 사는 학생들로 가득한 한 학교를 방문했습니다. 그 학교 학생들은 극소수만이 중학교에 진학했는데 ‘유진 랜드’가 그들에게 비전을 심어주자 90%의 학생들이 중학교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유진 랜드’가 학생들에게 말했습니다. “얘들아! 만약 너희들이 끝까지 학교에 남아 졸업하면 내가 대학교육을 시켜주겠다.” 그 말에 아이들은 처음으로 삶에서 비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한 학생이 말했습니다. “저는 제 일생에 처음으로 앞날에 대한 어떤 기대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내 앞에서 나를 위해 기다리는 어떤 것을 기대하니까 정말 기분이 좋았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그 학교 6학년 학생 중에 90%의 학생이 중학교에 진학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비전은 사람을 바꿔놓습니다.
하나님은 내 능력을 초월하는 위대한 비전을 품기를 원하십니다. 그 당시의 제자들은 사람을 살리는 영적인 어부를 할 만한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에게 위대한 능력을 갖게 하셨고 그들은 자신들이 받은 능력대로 놀라운 일들, 위대한 일들을 해냈습니다. 행 2장에 보면 베드로는 한 번의 설교를 3천명의 사람들의 영혼을 살리는 위대한 일도 해냈던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비전이 없는 끝을 보지만 믿는 사람들은 끝없는 비전을 본다.’는 말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에게 비전을 주시는 하나님이 끝없는 영원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위대한 비전을 주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그분이 주신 비전을 믿음으로 받아드리면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위대한 일을 하십니다. 만약 우리가 주님이 주시는 위대한 비전을 받아드리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리의 능력의 한계에 갇혀서 우리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 밖에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비전은 내 수준으로 보는 것이 아닙니다. 비전을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고 비전을 이룰 수 있는 능력을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믿고 주님을 따른다면 위대한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 위대한 비전이 위대한 삶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번 단기선교는 약 200명의 사람들이 동참합니다. 몇 년 전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선교를 하는 비전을 봤을 때는 꿈같은 일이었으며 그 당시 우리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해 보이는 일 같았습니다. 그런데 믿고 주님을 따르다보니 벌써 200명의 사람들과 함께 단기 선교하는 수준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주님이 주신 비전에 좀 더 접근해 가는 우리의 모습을 봅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주신 위대한 비전을 품고 주님을 따르다가 위대한 일들을 행한 사람들의 기록입니다.

2. 순종하며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본문의 네 명은 주님께서 "나를 따라 오너라!"고 말씀하시자 즉시 순종하고 따랐습니다.
순종은 축복된 존재가 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조건입니다. 순종이 주는 축복과 불순종이 주는 저주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람들이 사울과 다윗입니다. 사울은 하는 일마다 하나님께 불순종한 사람이고 다윗은 하는 일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사람입니다. 그 결과가 삼하 3:1에 분명하게 나옵니다.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사이에 전쟁이 오래매 다윗은 점점 강하여 가고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하여 가니라” 불순종한 사울은 점점 약해져갔고 순종한 다윗은 점점 강성해져 갔던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루는 밀림에서 뱀의 꼬리가 머리에게 그 동안 항상 가졌던 불만을 쏟아냈습니다. 항상 머리가 자기 가고 싶은 대로 가니까 이제는 자기 가고 싶은 대로 가자고 했습니다. 꼬리가 하도 불평하니까 하루는 머리가 “너 가고 싶은 대로 가 봐라!”라고 하면서 양보했습니다. 꼬리는 신이 나서 열심히 가다가 가시덤불로 들어가게 되었고 그 결과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되었다고 합니다. 꼬리는 반드시 머리를 따라가야 합니다. 꼬리가 머리를 앞서면 불행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의 문은 순종이라는 열쇠를 통해서 열수 있는 것입니다. 어느 아버지가 고3 아들에게 대학에 합격만 하면 자동차를 사주겠다고 약속을 했고 이 아들은 열심히 공부를 해서 대학에 합격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나 저제나 기다려도 아버지는 아무 말씀이 없었습니다. 보따리를 쌓아 학교 기숙사로 떠나는 날, 아버지는 아들에게 성경을 한 권 주면서 "매일 쉬지 말고 읽어라. 그리고 오늘 저녁에는 빌립보서 4장을 꼭 읽도록 해라" 라고 말했더니 아들은 실망을 했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4년 동안 읽지도 않은 채 대학을 졸업했고 졸업장을 들고 나오는 아들과 함께 차를 타고 오면서 아버지는 "너 내가 읽으라고 준 성경 어떻게 했니?"하고 물었습니다. "글쎄요 책장 어딘가에 있겠지요"하고 볼멘소리를 했습니다. 아버지는 딱하다는 표정으로, "성경을 찾아 빌립보서 4장 19절을 읽어 보아라" 하시는 것입니다. 그는 그 날 밤, 편치 않은 마음으로 먼지 묻은 성경을 찾아 빌립보서 4장19절을 찾아 읽었습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하는 말씀과 함께 봉투하나가 끼워 있었는데 그 봉투를 뜯어보니 "대학 합격을 축하한다"는 아버지의 글과 함께 자동차 교환권이 한 장 들어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말씀대로 순종했더라면 4년 전에 자동차를 가질 수 있었는데 4년 간 그것을 모르고 지낸 것입니다. 기록된 말씀은 약속의 말씀입니다. 믿고 순종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보증수표입니다. 기록된 말씀에 순종하면 복을 받습니다.
저주라는 문은 불순종할 때 저절로 열리는 것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미완성의 비유"란 제목으로 설교를 했습니다. 한 사람이 결혼을 했는데 그는 신혼여행이 끝나자마자 사라졌습니다. 몇 달 후에 갑자기 나타난 신랑에게 신부는 몹시 화를 냈습니다. 신랑은 "왜 화를 내요? 나는 분명히 결혼을 했고, 당신을 사랑하고, 매주 수표를 보냈는데 무엇이 문제란 말이요?" 한 아이가 학교에 입학을 했습니다. 그 아이는 입학식 다음날부터 학교엘 나가지 않았습니다. 가정을 방문한 교사에게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우리 아이는 학교를 가나 안가나 우등을 할 것입니다. 수재이니까요." 한 청년이 군대에 입대를 했습니다. 충성서약을 마친 후 그 청년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헌병에게 체포되었을 때 그 청년은 말했습니다. "나는 열다섯 살부터 총을 쐈어요. 전쟁이 나면 나를 부르십시오. 당신들보다 나을 테니까요?"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믿기로 했습니다...... 이 설교는 여기에서 끝이 났습니다. 이 미완성의 비유는 청중들에게 각자 말을 이어가라는 뜻에서 미완성으로 끝낸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뒤에 무엇이라고 말을 이어가시겠습니까?

3. 자기의 것을 희생하며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주님의 부름에 베드로와 안드레는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18절 말씀을 보십시오. “곧 그물을 버려두고 따르니라.” 야고보와 요한은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20절 말씀을 보십시오. “곧 부르시니 그 아비 세베대를 삯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예수를 따라가니라.” 그들은 자기의 소중한 것들과 인간관계를 희생하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그들은 배도 고기도 희생하고 주님을 따라갔던 것입니다.
희생이 무엇입니까? 더 소중한 분을 위해서 나의 소중한 것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위대한 믿음의 선진들은 다 이런 포기할 줄 아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사실상 신앙생활에서 호주머니를 비우는 능력이 없으면 바른 신앙을 가지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돈 얘기가 참 많습니다. 성경 전체에 기도에 관한 말씀이 500구절 있고, 믿음에 관한 말씀도 약 500구절 나오고, 사랑에 관한 말씀이 약 700구절 나오는데 돈과 소유에 관련된 말씀은 2000구절 넘게 있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다는 얘기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기록한 복음서의 6분의 1이 돈과 소유에 관련된 말씀이고, 예수님이 하신 가장 위대한 산상설교의 3분의 1이 돈과 소유에 관련된 말씀이며, 예수님께서 하신 비유 38개 중에서 돈과 소유에 관한 비유가 17개나 있음을 생각할 때 주님의 온전한 제자가 되려면 돈 씀씀이에서 희생이 있어야 함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에서 십일조는 내가 돈을 의지하지 않겠다는 하나의 좋은 증거가 됩니다. 그러나 십일조도 중요하지만 나머지 십의 구를 가지로 어떻게 쓰느냐도 매우 중요합니다. 그 돈을 가지고 내가 어디에 쓰느냐에 따라서 나의 가치관과 삶의 질이 나타나게 됩니다. 돈을 의지하면 쌓아놓는 것을 좋아할 것이고, 쾌락을 좋아하면 쾌락을 위하여 돈을 사용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선한 일, 좋은 일, 하나님 기뻐하시는 일에 쓸 것입니다.
17세기에 할레라는 곳에서 고아원을 운영하는 아우구스트 프랑크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분이 고아들 먹일 돈이 없어 고민하는데 한 거지 과부가 그를 찾아왔습니다. 돈 좀 달라고 하는데 마음은 아팠지만 “미안하지만 도와줄 여유가 없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과부는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습니다. 모든 희망을 다 잃어버린 것처럼 보였습니다. 프랑크는 그 모습을 보고 너무 가슴 아파서 골방으로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합니까?” 기도를 시작하자마자 곧 신비한 평화가 그의 마음속에 임했습니다. 한 끼 정도는 굶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골방에서 나가서 그에게 남은 마지막 금화 하나를 그녀에게 주었습니다. 프랑크는 아이들에게 한 끼만 금식하자고 했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굶지 않게 하셨습니다. 바로 그날, 그는 한 부자로부터 금화 12개와 스웨덴의 친구로부터 금화 2개를 받았고 곧 이어 그의 필요를 들은 근처의 한 영주로부터 금화 500개를 기부 받게 되었습니다. 그날 이후, 프랑크의 눈에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의 눈물이 끊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무엇인가를 희생할 것을 요구하실 때 그 희생에 대한 대가를 준비하게 계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종들이기 때문에 아무런 대가가 없어도 희생하고 순종해야 하지만 하나님은 종인 우리들에게 풍성한 대가를 항상 준비하고 계시는 분입니다.
100년이라는 세월을 희생하며 방주를 만들던 노아는 구원의 대가를 받게 되었습니다. 독자 이삭을 희생하려 했던 아브라함은 이삭을 돌려받았고 하늘의 별처럼 많은 후손을 얻게 되었습니다.
백화점 왕으로 유명한 워너메이커를 아십니까? 이분이 종로 2가에 있는 YMCA 건물을 지어준 분입니다. 그가 젊을 때 하루는 장미화원을 잘 가꾼 한 가정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이 집의 주인은 그를 자신의 정원으로 데리고 나가 백장미와 흑장미 등 온갖 장미들을 구경시켜 주었습니다. 그런 다음 장미꽃들을 꺾어버리기 시작했습니다. 몇 개의 덩굴은 꽃 한 송이만을 남겨두고 모두 가지를 쳐버리기도 하였습니다. 워너 메이커는 “아니, 왜 가지를 모조리 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웃으면서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좋은 장미 덩굴을 만들려면 가지를 쳐내야 합니다. 내가 가지를 쳐서 잃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가지를 잘라내 잃는 것이 없다’는 말에 충격을 받은 워너 메이커는 그날부터 나누어주는 사업을 시작했고 결국 점점 더 큰 사업체를 갖게 돼 나중에는 미국의 대재벌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가진 것, 우리의 시간, 우리의 재능, 우리의 몸, 우리의 재물, 우리의 자존심 등을 희생하십시오. 그것이 주님을 따르는 길입니다.
출처 :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 agaser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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