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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설교/마경훈목사

[스크랩] 셀프 토크(self talk)

+ 설교제목 : 셀프 토크(self talk)
+ 설교본문 : 시편 42편 5절
+ 설교날짜 : 2007년 8월 5일 주일오전
+ 설교자 : 마경훈목사

잘 살려면 말을 잘해야 합니다. 벧전 3:10에서는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라고 말씀하는데 다른 말로 한다면 잘 살려면 말을 잘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다윗은 성경에 나오는 인물 중에 특별히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입니다. 행 13:22에 보면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특별한 사랑을 받은 이유는 남다른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남다른 것이 무엇입니까? 여러 가지를 찾을 수 있겠는데 오늘 주제와 관련 시켜서 생각해 보면 다윗은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언어생활을 했던 사람입니다. 다윗은 골리앗과 싸울 때 위대한 신앙고백으로 이긴 것입니다. 다윗은 골리앗을 향하여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고 놀라운 고백을 했고, 시 34:1에 보면 다윗이 아비멜렉이라는 왕 앞에서 미친 체 하다가 쫓겨나서 지은 시인데 “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내 입술로 항상 주를 찬양하리이다”라며 하나님을 높이는 말을 합니다. 삼하 23:1-7에 보면 다윗이 죽을 때 마지막 한 말이 나오는 데 그 말이 성경에 기록될 정도로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말을 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은 것입니다.
의사들은 혀를 들여다보고 질병유무를 진단합니다. 혀에 흰색이나 황색 설태가 짙게 끼어 있으면 소화기에 이상이 있고, 혓바닥 색깔이 다색이나 흙갈색으로 변하고 구취가 심하게 나면 티부스 증상이 있는 것이고, 혀 표면에 딸기 증세가 형성돼있으면 성홍열이 있는 것이고, 혀를 내밀었을 때 혀가 떨리고 고정이 되지 않으면 파킨스병이나 신경질환증세가 있는 것이고, 혀가 둔해지면 뇌졸중이나 뇌빈혈 증세가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건강유무 증세가 혀로 나타납니다. 혀가 건강해야 온몸이 건강합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말은 그 사람의 영적인 상태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이 건강한 사람이 영적으로 건강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요 6:63에서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사람의 언어를 통해서 그 사람의 영과 생명의 충만함 정도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1. 왜 말을 잘해야 하는가?
심은 대로 거두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심은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 법칙이며 영의 법칙인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토요일 날 설교 준비를 하는데 막내아들이 “아빠, 놀아주세요. 놀아주세요.”라며 계속 칭얼대며 방해를 하는 겁니다. 목사님은 참다 참다 화가 나서 소리를 버럭 질렀습니다. “야, 임마! 아빠 설교 준비하잖아. 나가!” 목사님의 입에서 그만 아들에게 상처를 주는 말이 나가고 만 것입니다. 막내아들이 그 소리를 듣더니 문을 쾅 닫으며 “에이씨, 설교도 되게 못하는 게.”라고 하더랍니다.
돌 하나가 연못에 떨어지면 파장을 일으키듯이 말이 떨어지면 나로부터 파장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나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끼리끼리 모인다는 말이 있는 겁니다. 부정적인 말을 하면 부정적인 파장이 일어나 부정적인 사람들이 내 곁에 모이고 내 삶은 부정적 인생이 됩니다. 비판적인 말을 하면 비판적인 파장이 일어나 비판적 사람들이 내 곁에 모이고 비판적 환경이 만들어집니다. 행복한 말을 하면 행복한 파장이 일어나 내 곁에 행복한 사람들이 모이고 행복한 환경이 조성되는 겁니다.
가수의 인생은 대개 자기가 가장 히트한 곡대로 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가수가 한 곡을 히트곡으로 만들려면 그 곡을 대개 오천 번은 불러야 하는데, 그렇게 부르다 부면 자기 암시에 빠져 그 인생도 그렇게 될 확률이 크다는 것입니다.
잠언 18:20에 보면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하여 배가 부르게 되나니, 곧 그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하여 만족하게 되느니라” 자기가 말한 것이 자신에게 양식으로 돌아오고 그 양식을 먹어서 배부르게 됩니다. 그러니 좋은 말을 한 사람은 좋은 양식이 와서 좋은 것을 먹게 되고 나쁜 말을 한 사람은 나쁜 양식이 돌아와서 나쁜 것을 먹게 되는 것입니다.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무슨 씨든지 뿌린 씨 그대로 열매가 열리는 것입니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녀에게 말의 씨를 심으면 우리의 자녀들에게는 우리가 심은 씨앗 그대로 열매가 열리는 것입니다. 미국에 있는 어떤 교도소에 수감된 재소자 90%가 부모한테 “너 같은 인간은 결국 교도소에 갈거야”라는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부모가 뿌린 씨앗이 열매를 맺어서 교도소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말한 대로 역사하신다. 우리가 잘 될 것을 말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잘 되도록 역사하시고 우리가 잘 안 될 것을 말하면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잘 안 되도록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민 14:28에 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말한 대로 그들의 말이 하나님의 귀에 들린 대로 역사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가데스바네아에서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12명의 정탐꾼들 중에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한 2명의 정탐꾼들은 그들의 말대로 가나안에 들어갔고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한 10명의 정탐꾼들은 그들이 말한 대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약 3장에 보면 사람의 혀는 배의 키와 같습니다. 키를 돌리는 방향에 따라서 엄청나게 큰 배도 방향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배의 방향을 키로 조종하듯이 우리의 인생의 방향도 혀로서 조종할 수 있는 것입니다. 승리와 축복과 성공과 번영을 말하는 사람들의 인생은 승리와 축복과 성공과 번영의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패배와 저주와 실패와 가난을 말하는 사람들의 인생은 패배와 저주와 실패와 가난의 방향으로 움직이게 됩니다. 인생의 방향이 말로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2. 어떤 말을 하는 것이 말을 잘하는 것인가?
말이 그만큼 중요한데 그렇다면 무슨 말을 해야 합니까? 어떤 말을 해야 합니까? 대화에는 자신과 말하는 셀프 토크가 있습니다.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우리는 항상 자기 자신에게 말하며 살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 평균 1분당 150개에서 200개의 단어를 말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나 자신과 대화할 때에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인 1분에 1,300개의 단어를 말할 수 있다고 합니다. 본문에 보면 다윗도 셀프 토크에 능했던 사람입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우리는 '셀프 토크(self talk)'의 중요성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에게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서 행복과 불행이 좌우되고, 희망과 절망이 좌우되고, 축복과 저주가 좌우됩니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반드시 복을 받는다.”고 자신을 축복하면 하나님이 정말 축복하십니다. 자기 자신을 격려하고, 자기 자신에게 행복한 언어를 선물하면 정말 삶이 행복하게 됩니다.
한 기자가 한 칸짜리 옥탑 방에 세 들어 사는 한 부인에게 물었습니다. “언제 가장 행복합니까?” 이 부인이 말했습니다. “밤에 빨래를 널 때가 행복합니다. 그때 하늘의 별을 바라보면 ‘나는 행복한 여자구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왜 밤중에 빨래하죠?” “낮에는 주인집에서 빨랫줄을 쓰니까 밤에만 제 차례가 와요.” 그 말을 하는 부인의 눈 깊은 곳에서 별이 총총 빛나고 있었다고 기자는 쓰고 있습니다. 그처럼 사소한 것에서도 감사의 조건을 깨닫고 감사하며 세상을 아름답게 보고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구나!”라고 하면 하나님께서 행복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 부인에게는 5년 전부터 식물인간으로 누워 있는 남편이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행복을 잃지 않은 비결은 바로 “나는 행복하다!”는 셀프 토크에 그 힘의 원천이 있었습니다. 그 힘으로 낮에 식당 일을 하면서 손이 마를 날이 없고, 밤에 빨래를 거는 고달픈 생활 속에서도 그녀는 마음의 여유와 감사와 행복을 잃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렇게 사니까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도 얼마나 잘 자라는지 모릅니다. 옥탑방에서 살아도 티 없고 너그러운 딸로 잘 자라고 있었습니다. 이 딸은 아빠의 눈동자를 통해 노트에 글을 써서 의사소통을 한다고 합니다. 아빠와 눈으로 말하며, 행복하게 아빠의 손을 자신의 볼에 대고 웃는 그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기자는 그 모습에서 천상의 기쁨을 느꼈다고 합니다. 행복하다고 하면 반드시 행복하게 됩니다. 특히 우리는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 사실만 가지고도 우리는 가장 행복한 존재인 줄 알아야 합니다. 그 사실을 끊임없이 자신에게 확인시키고 말하십시오. “나는 행복하다! 나는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녀이다. 사단이 어찌할 수 없다. 상처와 고통이 나의 벅찬 감사를 누를 수 없다.”
말의 대상은 하나님과 이웃 그리고 만물과 자기 자신이 있습니다. 오늘은 자신을 향해서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말을 하라.
성령 안에서 변화된 사람은 절대 긍정의 삶을 살 수 있기에 어떤 환경 속에서도 긍정적인 말이 가능합니다. 특히 자신에게 긍정적인 말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자신의 인생에 긍정적인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들이 버려야 할 말 중에 “죽겠다”는 말이 있습니다. “힘들어 죽겠다. 답답해 죽겠다. 어려워 죽겠다.” 이런 사람들은 “죽겠다, 할 수 없다”는 중병에 걸린 사람들입니다. 또 하나 버려야 할 말이 “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이런 사람은 현실을 정확하게 보는 것 같지만 사실은 현실을 초월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는 것입니다. 이런 말은 인생을 발전하지 못하게 하는 줄과 같습니다. 강아지가 마음껏 활동하고 싶지만 주인이 잡고 있는 개줄 안에서만 활동할 수 있는 것처럼 “죽겠다. 할 수 없다.”는 말이 그 사람을 묶어두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천지 우주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당신과 함께 하시는데 왜 할 수 없다고 말합니까?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질병과 저주를 다 청산하신 예수님이 계시는데 왜 할 수 없다고 말합니까? 당신을 떠나지 않는 보혜사 성령님이 당신을 지키시는데 왜 할 수 없다고 말합니까?
거울을 볼 때마다 자신에게 말하십시오. 낙심되는 마음이 찾아올 때마다 자신에게 말하십시오. 사단이 부정적인 생각을 집어넣을 때마다 자신에게 말하십시오. “마경훈, 너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존재야. 하나님은 너와 함께 하셔. 주님은 너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다. 너는 그렇게 존귀한 사람이야. 주 안에서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하나님의 복덩어리다. 나는 하나님의 비전을 이루는 이 땅의 진정한 성공자다.”
말은 능력이 있어서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말을 하면 우리의 인생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킵니다. 말은 우리가 흔히 먹는 물에도 영향을 준다고 합니다. 일본의 파동학자인 에모도 마사로는 <물은 답을 알고 있다>라는 그의 책에서 물도 사랑에 반응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물을 향해 심한 모욕의 말을 하면 물의 결정체가 흉하게 깨져 그 모양이 형편없이 변합니다. 혹 그 물에 ‘악마’라는 글씨를 써서 붙이면 결정체 가운데가 보기 흉한 구멍이 뚫립니다. 그런데 물을 보고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라는 긍정적인 말을 하면 물의 결정체는 아름다운 육각형을 띠고, 나아가 “너를 사랑해!”라고 물을 향해 말하면 가장 아름다운 결정체로 물의 분자가 변한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주파수가 물분자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물도 사랑을 받으면 생기가 나고 아름다워집니다. 하물며 사람의 인체는 어린이들은 70%가 물이고 나이를 먹으면 60%가 물입니다. 서로를 미워하고 저주하며 분노의 마음을 품으면 인체에 있는 물분자가 흉하게 일그러져 이상한 모양을 띠며 파괴적이 되어서 온갖 병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감사하고 칭찬하며 또 사랑하면서 서로를 격려하고 긍정적이며 적극적인 말을 나누면 우리 몸의 60%나 되는 물이 아름다운 육각형의 결정체를 만들어 건강과 생명이 충만해진다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연구지요?
사람은 보통 하루에 말을 얼마나 하면서 살아갈까요? 보통 평균적으로 남자는 25,000 단어를, 여성은 30,000만 단어를 사용합니다. 이렇게 1년 동안 사람이 말한 것을 책으로 만든다면 400페이지 분량을 132권 만들 수 있습니다. 자기와의 대화는 그보다 약 7배 정도 많으니 남자는 하루에 175,000단어를 여자는 210,000단어를 말하고, 책으로 만들면 900권 이상의 분량의 책을 만들 수 있으니 말의 영향력은 놀라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말을 하십시오.
미국 여성기업가 가운데 오스틴이라는 여자 속옷을 팔아 부자가 된 사람이 있습니다. 미국에 뚱보들이 많아지면서 스몰, 미디엄, 라지, 엑스라지 싸이즈 가지고는 팬티를 감당할 수 없어 “뚱보형”을 만들었습니다. 미국에 뚱보는 많은데 뚱보형 팬티는 팔리지 않는 겁니다. 오스틴은 직원들에게 “부정적인 말을 쓰지 마라 뚱보형을 ‘퀸 싸이즈’라고 바꾸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때부터 퀸 싸이즈가 불티난 듯 팔렸습니다. 긍정적인 말이 미국의 뚱보들을 움직인 것입니다. 긍정적인 말은 다른 사람만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도 움직이는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2) 태산을 옮기는 믿음을 믿음의 말을 하라.
우리의 구원은 믿음의 말로 얻게 되는 것입니다. 구원은 입술로 시인할 때 완성이 됩니다. 롬 10:10에 보면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기적도 믿음의 말을 할 때 일어납니다. 막 11:23에 보면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말씀의 능력을 가지신 분으로서 자신을 믿는 자들에게 언어의 권세를 주셨습니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할 때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기도하고 응답의 확신이 왔으면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명령하고 선언하세요.
인도에서 선교사로서 일생을 바친 스텐리 존스(Stanley Jones) 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 스텐리 존스 목사님이 89세가 가까웠을 때, 그만 중풍으로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수개월 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말도 하지를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 분이 자기를 간병하는 간호사를 불러서 이런 부탁을 했습니다. “나의 온 몸이 마비가 되고... 또 말을 잘 할 수가 없으니... 아침에 내가 잠에서 깨어나면 나를 대신해서 이렇게 말해 주세요” “어떻게 말할까요?”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일어나라! 이렇게 말씀해 주세요!” 그래서 이튿날 아침, 잠자리에서 눈을 뜨는 순간에 기다리고 있던 간호사가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오니 일어나라!”고 말했습니다. 스텐리 존스는 그 때마다 “아멘!”으로 화답했습니다. 주변의 사람들은 그걸 보고 웃었습니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무슨 병이 낫겠느냐?’고 생각하고 어리석은 일이라고 비웃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스텐리 존스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심을 신뢰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믿음을 입으로 고백하는 말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계속해서 간호사에게 그렇게 명령해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언제나 아멘으로 대답을 했습니다. 병이 아직 완전히 낫지 않은 상태에서 인도의 히말라야 산지로 휴양을 갔습니다. 그곳에 가서도 목사님은 계속해서 간호사들과 힘을 합쳐서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일어나 걸으라!”고 되풀이 하며 명령을 했습니다. 그렇게 한 지 얼마 후, 스텐리 존스 목사님은 중풍에서 완전히 낫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그것은 자신의 입술로 그의 신앙을 고백한 믿음의 힘이었습니다. 말로 믿음을 풀어 놓았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3) 미래를 바꾸는 꿈의 말을 하라.
하나님은 꿈을 따라 역사 하십니다. 강렬한 소원을 품을 때 온 우주 가운데 그 꿈을 이루는데 도움이 되는 것들이 보입니다. 강력한 꿈을 품으면 그것만 보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강력한 꿈을 품으면 그것은 우리의 인생에서 실제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 11:1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꿈에 믿음의 말이 곱해질 때 상상할 수 없는 능력이 나타나게 되고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현실화되어지는 시기는 단축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꿈을 말할 때 꿈의 능력과 말의 능력이 더해지는 것이 아니고 곱해지기 때문입니다.
행 27장에 보면 사도 바울이 죄수의 몸으로 배를 타고 항해를 하다가 태풍을 만나 표류하게 되었습니다. 배에 있는 사람들은 14일간을 먹지 못할 정도로 고생했고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졌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사람들 앞에 서서 “우리가 반드시 한 섬에 걸리리라”고 미래에 일어날 좋은 일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우리교회에 주신 하나님의 비전을 보았고 교회가 지금보다 더 작을 때에도 그 비전을 외쳤습니다. 이번 단기선교는 우리 교회의 형편이나 능력을 초월하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현재의 우리의 능력만으로는 할 수 없는 사역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미래를 바꾸는 꿈의 말들을 쉬지 않고 했기 때문에 굼 같은 일들이 현실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저는 조만간 우리교회에 1,200명의 예언적 중보기도자들이 세워질 것을 예수의 이름으로 선언합니다. 1,000명의 바르실래들이 세워질 것을 예수의 이름으로 선언합니다. 700명의 전문성을 가진 평신도 사역자들이 세워질 것을 예수의 이름으로 선언합니다. 하나님은 저의 말을 들으시고 그 말이 하나님의 귀에 들린 대로 일하실 것입니다.
출처 :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 agaser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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