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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설교/마경훈목사

[스크랩] 비전교회의 모델, 안디옥 교회

+ 설교제목 : 비전교회의 모델, 안디옥 교회
+ 설교본문 : 사도행전 13장 1 - 3절
+ 설교날짜 : 2007년 7월 29일 주일오전
+ 설교자 : 마경훈목사

한국 선교 초기에 사역했던 무명의 선교사님의 편지를 소개합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어머니, 이곳 조선 땅에 오기 전 집 뜰에 심었던 꽃들이 활짝 피어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하루 종일 집 생각만 했습니다. 욕심쟁이 수지가 그 씨앗을 받아 동네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니 너무나 대견스럽군요. 아마 내년 봄이 되면 온통 우리 동네는 내가 심은 노란 꽃으로 덮여있겠군요. 아버지 어머니, 이곳 조선 땅은 참으로 아름다운 곳입니다. 모두들 하나님을 닮은 사람들 같습니다. 선한 마음과 복음에 대한 열정으로 보아, 아마 몇 십년이 지나면 이곳은 예수님의 사랑이 넘치는 곳이 될 것 같습니다. 저는 복음을 듣기 위해 20km를 맨발로 걸어오는 어린 아이들을 보았을 때 그들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오히려 위로를 받습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탄압이 점점 심해지고 있습니다. 그저께는 예수님을 영접한지 일주일도 안 되는 서너 명이 끌려가 순교했고, 토마스 선교사와 제임스 선교사도 순교했습니다. 선교본부에서도 철수하라는 지시가 있었지만 대부분의 선교사들은 그들이 전도한 조선인들과 아직도 숨어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순교를 할 작정인가 봅니다. 오늘 밤은 유난히도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외국인을 죽이고 기독교를 증오한다는 소문 때문에 부두에서 저를 끝까지 말리셨던 어머니의 얼굴이 자꾸 제 눈앞에 어립니다. 아버지 어머니, 어쩌면 이 편지가 마지막 일수도 있습니다. 제가 이곳에 오기 전, 뒤뜰에 심었던 한 알의 씨앗으로 이제 내년이면 온 동네가 꽃으로 가득하겠지요. 그리고 또 다른 씨앗을 만들어 내겠지요. 저는 이곳에서 작은 씨앗이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제가 씨앗이 되어 이 땅에 묻히게 되었을 때 아마 하나님의 시간이 되면, 조선 땅에는 많은 꽃들이 피고, 그들도 여러 나라에서 씨앗이 될 것입니다. 저는 이 땅에 저의 심장을 묻겠습니다. 바로 이것은 조선을 향하는 저의 열정이 아니라, 조선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사랑합니다."
조선 말 한반도는 지금의 아프카니스탄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수많은 젊은 선교사들이 조선에 와서 순교의 피를 흘렸으며 그들이 썩어지는 밀알이 되어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게 된 것입니다.
시카고에 가면 휘튼 대학이 있습니다. 휘튼 대학 본관에 졸업생 명단이 있습니다. 특히 순교한 졸업생 이름에는 특별한 마크를 해 두었습니다. 1949년에 졸업한 짐 엘리어트라는 이름에도 순교 마크가 있습니다. 엘리어트는 학교에서 친구들과 기도하며 하나님께서 자신을 부르심에 도전을 받았습니다. 2학년 마치고 멕시코에 단기 선교를 갔다가 남미가사역지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후 친구들까지 다섯 명이 선교사로 헌신하였습니다. 그리고 남미로 갔습니다. 그 당시 남미에서 가장 잔인하기로 소문난 아우카족에게로, 그들이 선교를 가기 얼마 전에도 많은 사람을 죽였던 아우카 족에게 복음이 증거 된다면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실 것이라고 기대하며 다섯 명은 정글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 소식이 끊어졌습니다. 선교 본부에서 급하게 수색대를 조직하여 밀림에 들어가니 부패한 시체가 여기저기 있었습니다. 소지품을 보니 바로 그들이었습니다. 당시 언론은 무모한 젊은이들이라고 떠들썩하게 보도했습니다. 바로 그때 짐 엘리어트의 부인인 엘리자베스 엘리어트가 말했습니다. “후회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결코 비극적인 사고가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 섭리와 뜻대로 된 것입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부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남편의 죽음 2년 후,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 엘리자베스 엘리어트와 친구의 누이였던 라이처 자매가 다시 아우카 족에게로 갔습니다. 죽음을 각오했습니다. 남편이 순교한 현장에 자신의 심장을 묻겠다는 마음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아우카족이 주님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잔인했던 종족이 하나님을 받아들이는 종족으로 변화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이루진 일이었습니다. 엘리자베스는 스물여덟 살 꽃다운 나이에 남편을 떠나보냈지만, 그의 삶에는 후회함이 없었습니다. 왜냐면 남편과 자신의 존재 이유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 살고 있는 이유, 복음 증거의 사명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김 동호 목사님이 쓰신 글에서 읽은 내용입니다. 김 동호 목사님이 개인적으로 잘 알고 좋아하는 장로님 한 분이 있습니다. 그 장로님은 옛날에 사업을 하다가 부도를 맞아서 부도를 내고 감옥 생활을 한 적이 있으셨습니다. 감옥에서 나와서 다시 사업을 하시게 되었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그 사업이 제법 잘 되었습니다. 김 목사님이 그 장로님을 알게 되었을 때는 제법 사업이 잘 되던 때였습니다. 그런데도 그 장로님은 열 몇 평 밖에 안 되는 조그마한 아파트에 살고 계셨습니다. 차도 제일 작은 소형차를 타고 다니며 사업을 하고 계셨습니다. 처음에는 사업도 제법 하시는 분이 왜 그렇게 조그마한 집에서 살고 조그마한 자동차를 타고 다니시는지를 몰랐습니다. 나중에 그 이유를 알고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것은 전에 부도를 내었던 빚을 갚기 위해서였습니다. 결국은 그 빚을 다 갚았는데 그 때 그 장로님이 김 목사님에게 해 주셨던 이야기를 아직도 잊지 않고 있답니다. “목사님 빚 갚는 거 재미있어요. 저 요즘 빚 갚는 재미에 삽니다.”
김 목사님은 그 이야기를 들으며 그 장로님의 인격과 신앙을 느낄 수 있었답니다. 벌써 20년이나 지난 이야기입니다만 그 이야기를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에 감동이 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답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갚아야 할 큰 빚이 하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복음의 빚입니다. 우리나라 반만년의 역사 가운데 가장 귀한 역사가 있다면 그것은 이 땅에 복음이 들어온 것입니다. 이 땅에 복음이 들어오면서부터 우리 민족은 개화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발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빛이 비추기 시작하였습니다. 아프카니스탄에서 피랍된 23명의 형제자매들은 사랑의 빚, 복음의 빚을 갚으러 간 것입니다.
본문은 안디옥 교회가 성령의 음성을 듣고 선교사를 파송하는 내용입니다. 저는 우리교회가 성경에서 가장 닮아야 할 교회가 안디옥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교회가 많은 사람이 모이지 못해도, 큰 예배당을 짓지 못해도, 대형 프로젝트를 추진하지 못해도 교회는 교회다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진짜 교회는 주님의 지상 명령인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 되는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안디옥교회는 이 사명을 감당했던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도 안디옥 교회처럼 복음 증거의 사명을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안디옥교회를 통해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1. 안디옥 교회는 나누는 교회였습니다.
안디옥교회는 교회가 세워진지 얼마 안 되는 개척교회였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가 최초로 했던 일은 가진 것을 나누는 일이었습니다. 자기 교회를 세워 나가기도 힘겨운 교회가 어려운 다른 교회를 돌아보았던 것입니다.
12:25에 보면 바나바와 사울이 부조의 일을 마치고 예루살렘에서 돌아왔습니다. 여기서 부조의 일이란 그 당시 천하가 흉년이 들었는데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가 재정적인 어려움을 당하게 되었고 안디옥 교회에서는 성도들이 헌금을 해서 돈을 모아서 바나바와 사울의 손을 통해서 예루살렘 교회를 도왔던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교회도 나누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물질을 힘써 나눴습니다. 때로는 빚을 지면서도 나누는 일을 힘써왔습니다. 저를 사랑하는 선배님 한 분이 ‘자기 앞가림도 못하면서 가진 것을 나누는 것’은 지혜로운 일이 아니라고 사랑의 충고까지 해주셨지만 우리는 성령의 인도를 따라 열심히 나누었습니다. 개척교회들과 제정을 나누고 있고, 선한 일을 하는 기독교 단체들과 물질을 나누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여러분들이 일삼일만 운동에 동참해주셔서 지역에도 사랑을 나눌 수 있게 되었고, 성령의 감동에 순종해서 기사님들에게 사랑의 토스트도 나누고 있습니다. 금년 들어서 방과 후 공부방을 만들어서 어린이들에게 주의 사랑을 나누고 있습니다. 요즘 소문이 잘 났는지 지역에서 찾아와서 등록하는 학생들도 있고 학부모님들도 찾아와서 상담을 하고 있습니다.
안디옥교회는 물질과 함께 복음을 나누었던 교회입니다. 특히 성령의 음성을 듣고 최초로 선교사를 파송한 교회입니다. 안디옥교회 형편으로 보면 지나칠 만큼 헌신을 하는 것입니다. 1절에 보면 5명의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나옵니다. 그 가운데 바나바는 안디옥 교회의 담임 목회자였습니다. 그리고 사울은 안디옥 교회의 지도자 가운데서 가장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안디옥교회는 그 두 사람을 선교사로 파송하면서 엄청난 헌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비전교회는 그동안 해외선교에 나름대로 힘을 써왔습니다. 지나칠 만큼 큰 출혈을 하면서 선교에 힘을 썼습니다. 세상적인 가치관으로 보면 미련한 일인 것 같으나 하나님의 계산으로 하면 남는 장사라고 생각합니다.
왜 하나님은 12사도를 중심으로 세워진 예루살렘교회가 아니라 안디옥 교회를 통해 이방 선교의 문을 여셨습니까? 그것은 예루살렘교회가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교회는 예루살렘이라는 지역 밖으로 눈을 돌리지 못했습니다. 유대 민족주의라는 벽에 복음을 가두어 두었습니다.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하라는 사도행전 1:8의 사명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베드로가 성령의 지시로 이방인 고넬료집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했을 때 교회에서 들고 일어났습니다. “어떻게 유대인이 이방인의 집에 들어갈 수 있느냐?”라며 그들은 베드로를 정죄했습니다. 그들은 유대주의라는 벽을 허물지 못한 것입니다. 이것이 예루살렘 교회의 가장 큰 약점이었습니다.
우리 교회가 밖으로 향하지 않고 교회 살림만 생각한다면 교회의 재산은 늘어날 수 있고, 교회 생활 자체는 편안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신앙생활해가지고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공헌할 수 없고 하나님 앞에 씀임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이웃과 세계를 향하여 우리의 재정을 흘려보내지 않고 모으기만 한다면 경제적으로는 더 부요해질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 쓰임 받지는 못할 것입니다.
주님의 뜻은 우리가 가진 것을 나누는 것입니다.
2. 안디옥 교회는 예배가 살아있는 교회입니다.
2절에 보면 안디옥 교회가 ‘주를 섬겨’ 금식을 2006년 5월 28일


2007년 7월 29일


했습니다. 여기서 주를 섬겼다는 것은 영어성경을 보면 ‘worshiping the Lord’로 되어 있습니다. 주님에게 예배했다는 것입니다.
안디옥교회는 처음에는 선교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었습니다. 단지 하나님 앞에 예배드렸을 뿐입니다. 그런데 간절히 예배드릴 때 하나님께서 이 안디옥교회에 선교의 비전을 주셨고 선교의 일꾼을 보내 주셨고 선교의 능력을 주셨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선교를 위한 계획을 미리 세우고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하다가 성령이 주신 비전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 비전에 헌신 한 것입니다.
선교의 주체는 사람이 아닙니다. 성령이십니다. 교회를 이끌어 가시는 분도 성령이십니다. 성령이 말씀하시면 우리는 그 말씀에 순종할 뿐입니다. 우리가 계획을 세우는 것이 아니고 성령이 말씀하시고 우리는 성령이 주시는 음성대로 순종하는 것이 선교요 교회사역인 것입니다.
전병욱 목사님은 교회가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보면 항상 예배가 교회의 엔진이라고 말합니다. 예배라는 엔진 때문에 새로운 비전도 보이고 새로운 길로 나아가기도 하고 새로운 능력을 얻기도 합니다. 예배는 모든 사역의 뿌리이고 나머지 사역은 그 뿌리의 부산물입니다.
우리 교회뿐만 아니라 가정 등 모든 것이 살아나기 위해서는 예배에 목숨 거는 이 한 가지를 제대로 붙들 수 있는 예배의 부흥이 일어나는 교회와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요 4:23 하나님은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십니다. 성경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살펴보면, 하나님께서는 예배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예배가 우리의 인생을 결정짓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벨과 가인의 예배를 보면서 우리는 예배가 인생을 결정짓는 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창 4:4, 5을 보면,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백성과 버림받은 백성으로 구별 시키는 것이 예배라는 것입니다.
세상을 향해서는 우리가 가진 것을 나누는 교회, 하나님을 향해서는 예배가 살아있는 교회가 됩시다.
출처 :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 agaser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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