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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설교/나무목교회

[스크랩] 드로아의 환상 / 행16:6-10

우리 귀에 자주 들을 수 있는 신앙생활의 용어들이 있습니다.

복음화라는 말도 그 말 중의 하나입니다.

물론 세상은 복음화라고 하는 말을 무척 싫어합니다.

자신들을 마치 시베리아 수용소에라도 집어넣어서

어떻게 만드는 것처럼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복음화를 위해서 일하는 성도들을 기독교에 세뇌된 사람쯤으로 치부해 버립니다.

 

그런데 사실 복음화라고 하는 말은 우리가 직접 사용할 수 있는 용어는 아닙니다.

복음화는 우리가 원해서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복음화는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일이고,

그 방법과 절차는 하나님께서 결정하실 고유의 권한입니다.

 

복음의 성격 자체가 원래 그렇습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지난주에 말씀한 것처럼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일인 복음이 우리에게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사람을 통해서 행하십니다.

복음도 그렇습니다.

복음화를 하나님께서 하시되 반드시 우리를 통해서 하시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홀로 하지 않으십니다.

반드시 우리를 부르셔서 함께 하십니다.

때문에 나무목교회가 세워진 것입니다.

우리가 직분을 받아서 신앙생활을 하는 겁니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상황은 이미 진즉에 끝났습니다.

양단  간에 결단이 났을 것입니다.

복음을 받아들이는 자는 천국을 살고, 안 받아들이는 자는 이미 지옥으로 던져져서

이 세상의 삶은 모두가 다 끝이 났습니다.

오늘날처럼 살아가고 있는 생활은 이미 청산이 되어 버렸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가 세상 가운데 살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아직도 복음을 전해야만 하는 사명이 우리에게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직접 다 하시지 않고 우리에게 맡겨 놓으니까

아직도 복음이 다 전해지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역설적으로 우리가 아직 이 땅에서의 호흡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아직 세상의 끝이 임하지 않은 것이 복이 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아직도 저주에 시달리고 있는 형편인 것도 같습니다.

문제는 아직도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회를 사용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우리에게 여전히 부어주시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기회 역시 하나님의 원하시고 바라시는 뜻대로 사용하도록 여전히 우리를 권고하시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도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도 바울을 택하셔서 이방인의 사도로 세우시고, 그에게 몽땅 다 맡겨 버리지 아니하시고

여전히 그에게 이런 저런 가르침을 주시면서 그의 사역을 이끌어가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사도 바울의 복음 전파에 대한 사명이나 각오가 전혀 희석되지 않는 것입니다.

바울은 눈앞에 것을 보고 있지만 살아계신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보시면서

바울을 이끌어가고 계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의 가장 취약한 약점 중의 하나가 바로 이것입니다.

너무 눈앞에 것에만 신경을 쓰는 나머지 숲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두가 다

자기 밥그릇,

자기 교회,

자기 영역 안에서만 복딱거리고 있습니다.

 

때문에 하나님의 크신 시야에 따르는 세계복음화나 이방 선교의

전체적인 맥락을 짚지 못한 채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자기 자리에서만 큰소리를 하고 있습니다.

 

겨우 자기 교인 안 떨어져나가기만 감시하고 확인하고 연명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전체적인 맥락에서의 성장은 어림도 없습니다.


생각해보세요.

사실은 사도 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 자체가 인간적인 견해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자기가 1차 전도여행 때 세운 교회들을 한 번 돌아보는 것으로 정하고 떠난 겁니다.

자기의 영역을 정해놓고 그 영역 안에서 사역을 한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의 생각은 그하고는 전혀 다르셨습니다. 

사도 바울과는 스케일이 확실히 다른 겁니다.

 

보세요.

오늘 사도 바울의 각오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얼마나 많은 차이가 나고 있는지를 봐야만 합니다.


6절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7절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

9절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최소 이 정도입니다.

성경의 어디에서 하나님께서 이렇듯 발걸음을 막은 적이 있으십니까?

사도 바울이 다른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어디까지나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처럼 그의 걸음을 막으셨습니다.

더 넓은 세상이 있다는 것을 사도 바울에게 확실하게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천하의 사도 바울도

주님의 뜻에 합당하지 않을 때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복음 전파에 관한한 열정과 정열은 누구 못지않은 사도 바울입니다.

우리 생각에는 그가 계획하고 바라는 모든 일들이 다 하나님 앞에 영광이 되는 일들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직접 막으시는 일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방인의 사도로 세우신 사도 바울의 열정도 하나님께서 막으실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니 우리들이야 말해 뭣 하겠습니까?

우리의 생각이 다 옳지 않다는 겁니다.

사람의 생각과 뜻은 언제나 불완전할 뿐입니다.


잠16: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이 말씀이 오늘 이 상황에 딱 들어맞는 말씀입니다.

때문에 우리의 계획과 생각을 실천하고 살 때는

반드시 하나님께 여쭤보고 해야만 옳습니다.

더욱이 큰일이면 더욱 더 그렇습니다.

 

담임목사가 몇 사람과 입만 맞춰서 자기 맘대로 결정을 하고

그것이 곧 하나님의 뜻인 것처럼 우겨대는 모습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습니까?

우기고 나갈 때는 좋았는데 가다 보니까 도저히 안 되는 것 같아서

슬그머니 돌아오는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인간적으로만 생각하고 판단해서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우겨댈 때는 언제고,

슬그머니 제 자리로 돌아와서 모른 척 하고 있는 우스꽝스러운 모습들이

교회 안에 너무 많습니다.

때문에 세상이 교회들의 처사에 반발하고 비난하는 겁니다.


여쭤봐야 하고 물어봐야 하고 확인해야만 합니다.

사도 바울의 꿈속에, 환상 속에 성령님이 나타나신 것은

사도 바울이 이미 계속해서 여쭤보고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마음의 생각이 이미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전쟁이 나서 병사들이 죽어가고 있는데도 사령관이 골프를 치더랍니다.

마음이 급한 참모들이 사령관에게 계속해서 조릅니다.

골프는 그만 치시고 빨리 어떤 결정을 내려달라고 말입니다.

그랬더니 사령관이 참모들에게 너희들의 눈에는 내가 골프를 치는 것으로만 보인다면

너희는 내 참모가 될 자격이 없다고 했답니다.

그 사령관은 행동으로는 골프를 치면서도 마음으로는 계속해서

이기기 위해서는 자기 병력을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를 고민하고 생각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행동이 바로 그것입니다.

때문에 그는 즉시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그가 한 고민과 생각은 모두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릴 수 있을까 하는 것뿐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사실 우리의 생각과 하나님의 뜻이 다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이 그렇게 말씀을 합니다.

우리의 생각과 주님의 생각이 다를 수 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그렇게 다를 때는 곧바로 주님의 말씀을 따르라는 것을 보여주시고 있습니다.


우리가 급하게 생각하는 것과 주님이 급하게 생각하는 것 사이에 있는 차이는

우리가 매워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들이 지고 가야만 할 주님의 십자가입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들의 사명이요, 길이요, 걸음입니다.

 

그렇지 못한고 계속해서 내 고집과 주장만 해 나간다면

결국에 어리석은 죽음뿐입니다.

사람이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악수를 둘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거둘 수도 있어야만 합니다.

아닌 건 아니라고 말을 해야만 합니다.

잘못한 건 시인하고 빨리 회복해서 나가면 됩니다.


신앙생활은 날마다 결단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서서 달려 나가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걸어가면 됩니다.

행여 우리가 잘 못 판단하고 잘 못 결정할 수 도 있습니다.

 

때문에 늘 기도하고 사는 겁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반드시 옳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계획하고 있는 과정 중에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라면 기꺼이 감당해가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생각이 언제나 우선입니다.

혹시라도 우리가 잘 못 가고 있다고 하면 하나님은 환상을 통해서라도 고치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셨으면 가면 됩니다.

자꾸만 인간적인 생각과 마음이 앞서서 뒤돌아보고 고집하고 어리석게 갈 필요가 없습니다.


때문에 오늘 우리들의 형편이나 처지는 문제가 아닙니다.

아직 재정적으로 서지도 못한 교회가 무슨 선교냐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은 우선 우리 나무목교회가 좀 더 성장하고 부흥한 다음에

무엇을 해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반드시 그 생각이 아니실 겁니다.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해야하는 것은 하나님의 생각을 계속해서 묻고 또 묻는 것입니다.

그래서 꿈속에서라도, 환상 중에라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달려가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 있어서 우리의 형편과 처지는 결코 문제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들에게 어떻게 하라고 하시는지에 집중하시기 바랍니다.

밥을 먹어도,

길을 걸어도,

일을 해도,

잠을 자도 그 생각만으로 충만하시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말씀하실 것입니다.

 

기도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문제가 클수록,

염려가 많을수록,

감당해야만 할 짐과 사명이 힘들수록

더욱 기도해야만 합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보여주십니다.


렘33:2-3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게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출처 : 나무목교회
글쓴이 : 뜨거운얼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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