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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교회의 사명! (2) (마28:16-20)

교회의 사명! (2) (마28:16-20) 

 


16 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의 명하시던 산에 이르러

17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오히려 의심하는 자도 있더라

18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딤전2:4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벧후3:9 하반부의 말씀입니다.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아무도 멸망하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요3:16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20:21 하반부입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하나님이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신 것처럼 예수님도 우리를 세상으로 보내십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세상으로 보내시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것을 자세히 설명한 것이 바로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은 내용상 세 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의 권세입니다. 16~18절입니다.

둘째, 예수님의 명령입니다. 19~20절 상반부입니다.

셋째, 예수님의 약속입니다. 20절 하반부입니다.


우리는 이미 첫째 대지에 대해서는 살펴보았습니다. 잠시 복습을 해보겠습니다. 16절입니다.


“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의 명하시던 산에 이르러.”


예수님이 부활하신 지 대략 20여 일이 지났을 때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갈릴리로 갔습니다. 그때 그곳에는 예수님의 열한 제자들을 비롯해서 오백 여명 정도가 모였습니다. 고전15:6입니다.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태반이나 살아 있고 어떤 이는 잠들었으며.”


그 당시 예수님을 대적하던 자들은 대부분 예루살렘에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 많은 인원이 방해를 받지 않고, 안전하게 모일 수 있는 곳으로서는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진 갈릴리에 있는 산이 적합했을 것입니다. 17절입니다.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오히려 의심하는 자도 있더라.”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뵈옵고 경배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는 아직도 의심하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물론 예수님의 열한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두 세 번 뵈었습니다. 그곳에 있는 여인들 가운데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뵈온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있는 오백 여명의 제자들 가운데 대부분은 그때 처음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뵈옵게 되는 것입니다. 뒤에 서있는 사람들은 앞에 있는 사람들에게 가리워서 멀리 서 계신 예수님의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 속에 있는 의심을 아시고, 그들의 의심을 떨쳐주시기 위해 어떻게 하셨습니까? 18절입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부활하신 예수님은 그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가까이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또한 부활하신 예수님은 자신의 입을 열어 평소에 제자들이 듣던 그 음성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제자들은 자신들의 눈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분명히 보게 되었습니다. 또한 제자들은 자신들의 귀로 부활하신 예수님의 음성을 똑똑히 듣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곳에 있는 모든 제자들은 마음속에 있던 의심을 다 떨치고, 똑같이 부활하신 예수님 앞에 엎드려 경배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복음을 전하라는 지상명령을 내리시기에 앞서, 성부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권세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성부 하나님의 성자 예수님에게 주신 권세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마태는 예수님을 왕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마1:1입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예수님은 다윗 왕의 자손으로 오셨습니다. 왕의 혈통으로 오신 것입니다. 또 마2:2입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예수님은 동방박사들의 입을 통해서도 유대인의 왕으로 오셨음이 입증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그 머리 위에 붙여진 죄패가 무엇이었습니까? 마27:37입니다.


“그 머리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 예수라 쓴 죄패를 붙였더라.”


물론 이것은 그 당시 사람들이 예수님을 조롱하기 위해서 붙인 죄패였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예수님은 사망의 권세를 깨치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리함으로서 예수님은 자신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왕이심을 분명히 보여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왕으로서 우리에게 명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절대적인 순종만 있을 뿐입니다.

여기까지는 우리가 이미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우리는 둘째 대지 예수님의 명령과 셋째 대지 예수님의 약속을 차례대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말씀을 통해서 우리 모두는 교회가 해야 할 본질적인 사명이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깊이 깨닫고, 그 사명에 충실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예수님의 명령에 대해서 살펴봅시다.


마28:19~20의 상반부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이 말씀을 우리는 “the Great Commission,” 곧 예수님의 “지상대명령”이라고 부릅니다. 본문은 “그러므로”라는 접속사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무슨 뜻이겠습니까? 예수님은 지금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으로서 우리에게 명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19장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젊고도 부유한 관원이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에게 영생을 얻는 길이 있다고 보고, 예수님에게 와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님은 그에게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그러면서 예수님은 그 젊은 관원이 익히 알고 있는 계명들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자 청년은 이렇게 되물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오니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그때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마19:21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러자 그 청년은 어떻게 했습니까? 마19:22입니다.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청년의 문제가 무엇이었습니까? 그는 예수님을 자신의 그리스도요, 자신을 구원해 주실 분 곧 자신의 Savior로는 믿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를 거부함으로서 예수님을 자신의 주(主) 곧 자신의 Lord로 모시는 일에는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도 혹시 이 부자 청년처럼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만을 원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그렇게만 바란다면 우리도 부자 청년처럼 이런 저런 사정과 형편 때문에 결국은 예수님을 떠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도 신경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예수님은 먼저 우리의 주가 되셔야 합니다. 그리할 때 예수님은 우리의 그리스도가 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주로서, 또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으로서 우리에게 무엇을 명하셨습니까? 예수님의 지상대명령 속에는 여러 개의 동사가 나옵니다. 그 가운데 주 동사는 “제자를 삼아”입니다. 이것만 명령형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외의 동사들, 곧 ‘가서’라든지, ‘세례를 주고’라든지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동사는 모두 분사형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들은 제자를 삼으라는 명령을 달성하기 위해 요구되는 조건들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내리신 지상명령의 핵심은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가 해야 할 본질적인 사명입니다. 물론 교회가 해야 할 사명들은 여러 가지입니다. 교회에서는 예배도 드려져야 하고, 말씀도 가르쳐야 하고, 사랑의 교제도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명들은 우리가 하늘 나라에 가면 더 잘 완벽하게 이루어 질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교회를 이 땅에 존재하게 하시고, 우리를 하늘 나라로 불러가시지 않고, 아직도 이 땅에 남겨두신 것은 우리가 해야 할 또 다른 사명, 가장 본질적인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모든 족속으로 예수님의 제자를 삼는 복음 전파의 사명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이십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아니면 그 어떤 족속이라도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행4:12입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따라서 복음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에게 전해져야 합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떠한 사람이라도 예수님으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라”고 명하셨습니다. 제자를 삼는다는 것이 무든 뜻입니까? 언뜻 생각하면 “제자”라고 하면 예수님을 처음 믿는 초신자보다는 좀더 수준이 높은 개념처럼 여겨지기 쉽습니다. 다시 말해서 교회가 실시하는 어떤 특별한 제자훈련이나 양육과정을 거쳐야 예수님의 제자라고 불릴 수 있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누구든지 회개하고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으면 그 순간 그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예컨대 요4:1입니다.


“예수의 제자를 삼고 세례를 주는 것이 요한보다 많다 하는 말을 바리새인들이 들은 줄을 주께서 아신지라.”


예수님이 자기를 믿고 따르는 자들을 일정기간 훈련시키시고 난 뒤에 비로소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로 삼으신 것이 아닙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고 구원함을 받으면 그는 그 길로 예수님의 제자가 된 것입니다. 초대 교회의 사역에서도 우리는 이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행2:40~41입니다.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그들이 특별한 제자훈련을 받고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된 것은 아닙니다. 누구든지 믿고 구원함을 받으면 그 시로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하신 말씀의 뜻은 누구에게든지 복음을 전해서 예수님을 믿고 구원함을 얻게 하라는 뜻입니다. 그러길래 오늘 본문의 말씀과 같은 내용을 막16:15~16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또 눅24:47~48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다가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오면 그 순간 그는 예수님의 제자가 됩니다. 오늘 우리는 사도 신경을 통해서 우리의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우리는 예수님을 우리의 주요, 우리의 그리스도로 고백하기 때문에 이미 예수님의 제자가 된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의 제자가 되면 그 순간 그에게는 귀중한 사명이 주어집니다. 바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야하는 사명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와 그 형제 안드레를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4:19입니다.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우리에게는 사람을 낚는 어부로서의 사명, 곧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우리를 예수님의 제자로 삼으신 목적이요, 하나님이 우리를 하늘 나라로 데리고 가시지 않고 아직도 우리를 이 땅에 남겨 두신 목적입니다. 이것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신 지상명령이기 때문에, 여기에 우리의 이견이 들어가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그저 절대적으로 복종할 따름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모든 족속으로 예수님의 제자를 삼기 위해서 해야 할 일들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세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마28:19~20상반부를 다시 읽어봅시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세 가지 사항이 있습니다. 첫째는 가라(go)입니다. 둘째는 세례를 주라(baptize)입니다. 그리고 셋째는 가르치라(teach)입니다. 차례대로 살펴봅니다.

첫째는 “너희는 가서”입니다. 가만히 앉아서 오는 사람을 기다리지 말고, 한 마리의 잃은 양을 찾아다니는 심정으로 세상 속으로 들어가라는 말씀입니다. 롬3:10~11입니다.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그렇습니다. 타락한 인간은 자기 스스로 하나님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예컨대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고서 타락했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다.

“하나님, 어디 계십니까? 저희가 선악과를 따먹고 죄를 범했습니다. 그러니 어서 오셔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그러면서 그들이 하나님을 찾았습니까? 아닙니다. 정반대였습니다. 창3:8~9입니다.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을 찾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숨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담의 이름을 부르시며, 그를 찾으신 것입니다. 성경의 마지막 장에 있는 계22:17입니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이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죄인들을 부르시고 찾으시는 분은 언제나 하나님이십니다. 죄인들은 스스로의 힘으로는 하나님을 찾아 나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우리를 세상으로 보내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잃어버린 양들을 찾아가야 합니다. 기도로 찾아갑시다. 전화로 찾아갑시다. 편지로 찾아갑시다. 두 발로 찾아갑시다. 이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명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입니다. 세례는 예수님과의 연합을 의미합니다. 롬6:3~4입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세례를 받은 사람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합하고, 예수님의 장사되심과 합하며, 아울러 예수님의 다시 사심과도 합하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형편상 세례를 받지 못할 경우도 있습니다. 예컨대 십자가상의 한 강도를 생각해봅시다. 그는 세례를 받지는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분명히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이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이 명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마10:32~33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


생각해 봅시다. 믿는 형제들 앞에서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며 세례를 받지 않는 사람이 어찌 불신자들 앞에서 자신의 신앙을 담대하게 고백 할 수 있겠습니까? 따라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세례를 받지 않으면 그의 믿음의 순수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례는 교회가 임으로 제정해서 베푸는 예식이 결코 아닙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명령하셨기에, 우리가 그 명령에 순종해서 베푸는 거룩한 예식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 복음을 듣고 믿기로 작정한 사람은 그 즉시 세례를 받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몇 곳만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행2:41입니다.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행8:38입니다.


“이에 명하여 병거를 머물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세례를 주고.”


행9:18입니다.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행10:48입니다.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 하니라 저희가 베드로에게 수일 더 유하기를 청하니라.”


행16:33입니다.


“밤 그 시에 간수가 저희를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기고 자기와 그 권속이 다 세례를 받은 후.”


행18:8입니다.


“또 회당장 그리스보가 온 집으로 더불어 주를 믿으며 수다한 고린도 사람도 듣고 믿어 세례를 받더라.”


행19:5입니다.


“저희가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행22:16입니다.


“이제는 왜 주저하느뇨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하더라.”


세례는 우리 믿음의 외적인 표현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예수님의 제자라면 누구라도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해서 세례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세례와 관련해서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립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세례를 줄 때에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여기서 “이름”이란 단어를 세 번 사용하시지 않고 단 한 번만 사용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아버지의 이름”과 “아들의 이름”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이름”이라는 단어를 복수형으로 쓰시지 않고 단수형으로 사용하셨습니다. 왜 그럴까요? 삼위 하나님은 한 이름, 곧 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삼위 하나님은 언제나 일체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삼위 하나님이 언제나 일체가 되어 역사 하시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인 우리들도 언제나 마음과 뜻을 같이해서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인 영혼 구원의 일에 모든 것을 다 바쳐 헌신해야 할 것입니다.

셋째는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입니다. 우리말 성경은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번역이 되어 있어 “지키게 하라”는 말이 강조되고 잇습니다. 그러나 이를 헬라어 원문대로 번역하면 “지키도록 가르치라”입니다. 다시 말해서 “가르치라”는 단어에 강조점이 있다는 뜻입니다. 일찍이 예수님은 요14:26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성경의 기자들은 성령님의 감동에 따라 예수님이 분부하신 모든 것을 성경에 기록해 놓았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딤후3:16~17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우리가 예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기 위해서는 먼저 예수님이 우리에게 분부하신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을 부지런히 가르치며 배우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아무도 멸망치 않고,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를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우리를 세상으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우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입니까?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의 본질적 사명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우리의 모든 시선은 언제나 제자를 삼는 일, 곧 복음을 전함으로서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촛점이 맞추어져야 할 것입니다.


셋째로, 예수님의 약속에 대해서 살펴봅시다.


마28:20의 하반부 말씀입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것은 예수님의 약속임과 동시에 분명한 사실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실 때,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나타나서 무엇이라고 말했습니까? 마1:23입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예수님은 임마누엘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마18:20에서 예수님은 같은 내용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전에도 또다시 같은 내용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볼지어다”라는 말은 무엇인가 중요한 말씀이 주어질 때, 우리의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해 쓰이는 감탄사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중요한 말씀을 하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서는 “내가”라는 일인칭 대명사가 강조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명에 순종해서 복음을 전할 때, 예수님은 어떻게 하십니까? 하늘 보좌에 앉으신 채로 가만히 지켜보고만 계십니까? 그렇지 않으면 천사 가운데 하나를 우리에게 붙여주십니까? 아닙니다. 사망의 권세를 깨치시고 부활하신 예수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 세세토록 영광과 존귀를 받으실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사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힘만으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야한다면 우리는 매우 곤혹스러울 것입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며 친히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복음은 온 유대와 사마리아를 거쳐 이제는 땅 끝까지 전파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날은 예수님이 구름을 타시고 영광 가운데 다시 오시는 날입니다. 옛 하늘과 옛 땅은 사라지고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하는 날입니다. 그날까지  예수님은 예수님의 모든 제자들과 함께 계십니다. 갈릴리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뵈옵고 경배했던 500여 제자들은 이미 다 세상을 떠났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그들과도 함께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그 뒤에도 예수님을 믿고 따르며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모든 제자들과도 함께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우리와도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앞으로도 세상 끝날까지 예수님의 명에 순종해서 복음을 전하는 이들과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우리 곁에 계셔서 우리를 지키시고 우리를 통해서 아름다운 전도의 열매가 맺히도록 역사 하십니다.

미국의 유명한 부흥사였던 D. L. 무디는 대규모의 전도집회를 통해서 수십 만 명을 예수님의 제자로 삼은 사람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개인적으로 전도하는 일에도 소홀함이 없었습니다. 그는 하루에 한 사람에게 반드시 복음을 전한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이런저런 일을 하느라고 아무에게도 전도하지를 못했습니다. 그날 밤 그는 잠자리에 들었지만, 그날 해야할 책임을 완수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때문에 잠이 오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무디는 다시 옷을 입고 거리로 나갔습니다.

그는 밤중에 길거리에 서서 전도해야 할 대상자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때 누군가가 그의 앞으로 어슬렁거리면서 다가왔습니다. 그의 입에서는 술 냄새가 역하게 풍겨왔습니다. 그는 술 주정꾼이었습니다. 무디는 그에게 복음을 전해야겠다고 생각을 하면서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예수님을 아시나요?”

그러자 그 술 주정꾼은 무턱대고 화를 내면서 시비를 걸려고 했습니다. 무디는 어쩔 수없이 쫓기다시피 집으로 되돌아왔습니다. 그로부터 약 3개월 정도가 흘렀습니다.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습니다. 무디가 나가보니 예전의 그 술 주정꾼이었습니다. 그 술 주정꾼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그날 밤 선생님이 제게 예수님을 아느냐고 물으셨지요? 제가 그 당시에는 술에 취해서 무턱대고 화를 내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부터 그 말이 내 귓전에서 계속 맴돌며 떠나지를 않았습니다. 선생님, 제가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믿을 수 있습니까?”

무디는 그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그를 교회로 인도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복음의 씨를 뿌리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그 나머지는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앞에 어떤 불신자가 있습니다. 그는 분명 우리가 전도해야 할 대상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마음으로 전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 주님! 주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계십니다. 지금 저는 주님의 명에 순종해서 이 분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합니다. 제가 이 분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는 것보다 주님이 이 분을 더 사랑하시지 않습니까? 저는 단지 주님의 도구로 쓰일 뿐입니다. 그러하오니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주께서 이 분의 마음을 여시고, 이 분을 감동시켜서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시옵소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지금도 살아 계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우리를 통해서 반드시 아름답고도 풍성한 전도의 열매를 맺게 하실 것입니다. 이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해서 우리를 통해서 믿고 구원을 받는 자의 수가 날마다 더해 가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10월 15일에 있을 총동원 전도주일에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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