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출애굽기 35장 20 - 35절((개역개정)
20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모세 앞에서 물러갔더니 21 마음이 감동된 모든 자와 자원하는 모든 자가 와서 회막을 짓기 위하여 그 속에서 쓸 모든 것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위하여 예물을 가져다가 여호와께 드렸으니 22 곧 마음에 원하는 남녀가 와서 팔찌와 귀고리와 가락지와 목걸이와 여러 가지 금품을 가져다가 사람마다 여호와께 금 예물을 드렸으며 23 무릇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는 베 실과 염소 털과 붉은 물 들인 숫양의 가죽과 해달의 가죽이 있는 자도 가져왔으며 24 은과 놋으로 예물을 삼는 모든 자가 가져다가 여호와께 드렸으며 섬기는 일에 소용되는 조각목이 있는 모든 자는 가져왔으며 25 마음이 슬기로운 모든 여인은 손수 실을 빼고 그 뺀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는 베 실을 가져왔으며 26 마음에 감동을 받아 슬기로운 모든 여인은 염소 털로 실을 뽑았으며 27 모든 족장은 호마노와 및 에봇과 흉패에 물릴 보석을 가져왔으며 28 등불과 관유와 분향할 향에 소용되는 기름과 향품을 가져왔으니 29 마음에 자원하는 남녀는 누구나 여호와께서 모세의 손을 빌어 명령하신 모든 것을 만들기 위하여 물품을 드렸으니 이것이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자원하여 드린 예물이니라 30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볼지어다 여호와께서 유다 지파 훌의 손자요 우리의 아들인 브살렐을 지명하여 부르시고 31 하나님의 영을 그에게 충만하게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으로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시되 32 금과 은과 놋으로 제작하는 기술을 고안하게 하시며 33 보석을 깎아 물리며 나무를 새기는 여러 가지 정교한 일을 하게 하셨고 34 또 그와 단 지파 아히사막의 아들 오홀리압을 감동시키사 가르치게 하시며 35 지혜로운 마음을 그들에게 충만하게 하사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시되 조각하는 일과 세공하는 일과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는 베 실로 수 놓는 일과 짜는 일과 그 외에 여러 가지 일을 하게 하시고 정교한 일을 고안하게 하셨느니라
성막에 대한 이해는 신앙생활에서 굉장히 중요합니다. 출애굽기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사용해서 다루고 있는 주제가 성막입니다. 출애굽기가 총 40장인데 그 중에 13장에서 성막과 성막의 기구들과 성막에서 섬기는 제사장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분량이 많다는 말은 그만큼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성막을 중요하게 다룬 이유는 성막의 역할 때문입니다.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간 광야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광야생활 중에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장소가 성막이었습니다. 솔로몬 성전이 세워지기 전까지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도 가나안에서도 성막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만나주셨습니다. 백성들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성막으로 나아가야 했습니다. 죄를 범한 백성들이 죄 사함 받는 장소가 성막이었습니다. 그래서 성막은 중요합니다. 그런데 성막에 대한 이해가 중요한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성막이 예표 하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막이 발전해서 성전이 되었습니다. 성막은 이동식 성전이었고 성전은 고정된 장소에 세워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막과 성전은 같은 것을 예표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막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됩니다. 성막의 모양, 성막의 재료, 성막의 식양 등은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가를 보여줍니다. 요 2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헤롯이 46년 동안 지었던 예루살렘 성전을 말씀하시는지 알고 오해를 했습니다. 그런데 요한은 요 2:21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님의 육체는 성전입니다. 우리는 성막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 있습니다. 또 하나 성막이 보여주는 중요한 것은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믿는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고전 3:16에서 사도 바울은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말했습니다. 믿는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이기 때문에 성막은 우리가 신앙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오늘 설교는 성막의 비전을 받은 모세와 예물을 드린 백성들 그리고 기술자인 브살렐과 오홀리압을 통해서 성막이 어떻게 세워졌는지를 보며 우리가 신앙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비전을 보라 하나님은 성막을 만드시기 전에 먼저 모세에게 시내산에 오르게 한 후에 성막의 비전을 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먼저 성막의 식양과 기물들에 대해서 보게 하셨습니다. 모세는 산에서 본 비전대로 성막을 제작했습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의 중요한 비밀입니다. 먼저 보고 그리고 행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에서 비전은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믿는 사람들에게 비전을 주시고 그 비전을 성취해 나가게 하시기 때문에 비전이 중요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입니다. 믿음은 비전이 실제가 되는 능력입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임하셔서 자녀들이 예언하게 하시고,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게 하시고, 노인들에게는 꿈을 꾸게 하시는 분입니다. 예언, 환상, 꿈은 비전을 말하는 것입니다. 비전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통해서 이루실 일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빌 2:13입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실 때 먼저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비전을 보여주십니다. 그런 후에 비전을 받은 사람이 비전을 따라 행함으로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지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비전은 다양합니다. 사람마다 비전이 다릅니다. 그러나 다양한 비전을 3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천국비전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의 최종 목적지는 천국입니다. 우리는 천국에 대한 확신 때문에 인내하며 고난도 감사하며 달려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천국을 바라보며 신앙생활 합니다. 둘째, 사역의 비전입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을 부르시고 사람마다 해야 할 일을 주십니다. 이것은 인생의 방향입니다. 속도보다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어디로 부르셨는가? 하나님이 나를 무슨 일로 부르셨는가를 알고 달려가는 것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셋째, 영성적 비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이지만 불완전한 성전입니다. 아직 완성되지 못한 지어져가는 성전입니다. 엡 2:22입니다.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여기서 ‘너희는’ 엡 1:1에 보면 거듭난 그리스도인입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이었던 에베소 교인들은 성전은 성전인데 아직 완성되지 못한 성전입니다. 지어져가야 하는 성전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직 완성되지 못한 성전입니다. 그래서 유다서에서는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성령으로 기도하며”(유 1:20)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한 성전입니다. 우리는 완전한 성전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야 합니다. 엡 4:13입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이 세 가지 비전이 분명해야 합니다. 천국비전을 품고 살아갑시다. 우리들의 최종 목적지는 천국입니다. 사역의 비전을 가지고 삽시다. 하나님은 무엇을 위하여 나를 부르셨으며 나는 무슨 일을 하며 하나님을 섬겨야 할지를 알고 그 일에 자신을 헌신하십시오. 영성적 비전을 품고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려고 힘씁시다. 우리의 영성의 목표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입니다.
2. 감동을 받으라 분문 21절에 보면 사람들이 성막을 짓기 위하여 예물을 드립니다. 그런데 드리는 사람들은 먼저 마음에 감동된 모든 자라고 말합니다. 26절에도 보면 마음에 감동을 받은 여인들이 성막에 필요한 실을 뽑아서 드렸습니다. 34절에도 보면 하나님은 오홀리압이라는 사람을 감동시키셔서 성막의 기물을 만드는 기술을 가르치게 하셨습니다. 성막은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예물을 드렸고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헌신해서 세워진 것입니다. 기독교는 감동이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많은 경우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읽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기록했습니다. 딤후 3:16에서는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라고 말씀합니다. 벧후 1:21에 보면 성경을 예언이라고 하면서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요구를 받으시고 사울을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그 때 삼상 10:26에 보면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된 유력한 자들이 사울과 함께 하여 나라를 세워갑니다. 하나님은 감동을 주셔서 나라를 세우셨던 것입니다. 삼상 11장에 보면 사울이 암몬 사람들과 전쟁을 하여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삼상 11:6을 보면 그 때도 사울이 하나님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어 암몬을 대적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 귀환 후에 성령의 감동이 있었고 백성들이 그 감동에 순종해서 성전을 세웠습니다. 스 1:5입니다. “이에 유다와 베냐민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그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을 받고 올라가서 예루살렘에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고자 하는 자가 다 일어나니” 감동이라는 말은 하나님이 호흡을 불어넣으신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쉽게 표현을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에 사인을 보내주시는 것을 우리의 마음이 느끼는 것입니다. 우리가 감동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세 가지 예화를 들어보겠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주일 예배를 마치고 사람들과 인사를 하는데 한 청년이 울먹이며 목사님에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목사님의 아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존재를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교회도 다니지 않고 방황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연히 이 길을 지나가다 교회를 보고 들어오고 싶은 마음이 생겨 1부 예배에 참석했는데, 예배 시간에 말씀을 듣다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저는 이제 방황하지 않을 것입니다. 목사님, 감사합니다.” 이 때 청년이 교회에 들어오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고 했는데 이게 감동입니다. 빌리 그레함 목사님이 기도하는데 마릴린 먼로가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전도하기 위해 전화를 했는데 비서가 바꾸어 주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바꾸어 달라고 사정해도 안 된다며 끝까지 바꾸어 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방송에 마릴린 먼로가 자살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빌리 그레함 마음에 마릴린 먼로가 자꾸 생각났습니다. 그게 성령의 감동이었던 것입니다. 어느 권사님 한 분이 기도하던 중 어떤 분이 막 걱정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신발이 있는데도 문을 열어주지 않아 문을 따고 들어갔더니 아버지와 아들 앞에 약봉지와 물이 있었습니다. 아내가 바람이 나서 가출한 것에 충격을 받은 착한 남편이 아들과 함께 죽으려던 참이었습니다. 그때 기도하는 권사님 마음에 막 그분이 걱정 되었던 것이 성령의 감동입니다. 저는 요즘 우리 교인들 마음에 하나님께서 감동을 주고 계시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금식의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금식을 하고 있는 분도 있고, 이미 하신 분도 있습니다. 또 앞으로 해야 한다는 마음을 먹고 있는 분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새벽기도의 감동을 받고 있습니다. 자꾸만 새벽기도가 부담이 되는 분들이 있습니다. 순종하십시오. 어떤 사람은 자꾸 ‘전도해야 하는데’ 하는 마음이 들고 있습니다. 전도하라는 성령의 감동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신앙생활을 돌아보며 ‘내가 이렇게 믿어서는 안 되는데’라는 생각이 자주 들고 있습니다. 성령의 감동입니다. 열심을 내십시오. 어떤 분은 헌금에 대한 감동을 받은 분이 있습니다. 감동대로 순종하세요. 드리는 것이 씨앗이 되어 풍성한 열매를 거둘 것입니다. 은혜를 받으면 감동이 옵니다. 감동을 받은 분들이 있으면 순종하십시오.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를 감동하십니다. 그리고 순종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3. 자원하라 21절에 보면 성막을 위해서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는 사람들은 마음에 감동을 받은 자들과 자원하는 자들이었습니다. 29절에도 보면 마음에 자원하는 사람들이 예물을 드렸습니다. 출 36:3-5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침마다 자원하여 예물을 가지고 와서 하나님께서 명하신 일을 하기에 남음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자원하는 사람들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일을 하십니다. 교회는 이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슨 일을 하려고 하면 너도 나도 자원해서 일군이 넘치고 재정이 넘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고후 8장에 보면 마게도냐 성도들의 헌금에 대해서 말씀을 합니다. 3절에 보면 그들은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했다고 말합니다. 이런 교회가 되어야 교회가 힘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육신을 입고 있기 때문에 자원해서 수고하고 자원해서 십자가를 지기를 원치 않습니다. 이솝우화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부자가 딸의 결혼식을 준비하려고 집에서 기르는 모든 동물들을 모아 회의를 소집했습니다. 주인은 동물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마을 사람들을 대접을 하려고 하는데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라고 묻자, 동물들은 일제히 “대찬성입니다”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러자 주인이 거위를 보며 말했습니다. “아무래도 거위요리가 좋겠다.”라고 말하자, 거위는 얼굴이 파랗게 질려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인님, 저는 주인님에게 큰 알을 낳아주잖아요. 저 암탉을 잡으시지요.” 그러자 옆에서 그 소리를 듣고 있던 암탉이 손을 저으며 “저는 매일 ‘꼬꼬댁'하며 아침을 알려주잖아요. 저 양을 잡으시지요.” 양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며 말했습니다. “주인님, 저는 따뜻한 털을 제공해주잖아요. 말고기는 어떤가요?” 그러자 말이 소를 가리키며 “주인님이 여행가실 때 누가 태워 줍니까? 암소고기가 최고지요.”라고 하자, 이번에는 소가 고함을 치며, “주인님, 나처럼 열심히 농사를 지어주는 동물이 어디 있습니까?”라고 항의를 했습니다. 동물들은 먹고 마시는 흥겨운 잔! 치에는 동의했지만, 결국 아무도 자신을 희생하지 않으려고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가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사람들은 남의 희생은 좋게 생각하지만 자신이 희생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조상호 목사님이 교회 봉사를 그만하겠다는 자매에게 “모든 사람이 다 십자가만 보려고 하면, 누가 십자가를 지나요?”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십자가를 통해서 은혜는 받고 십자가의 능력은 좋아하는데 정작 자기의 십자가는 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자원하는 신앙을 기뻐하십니다. 김홍도 목사님이 젊은 시절에 한번은 주일 밤예배를 마치고 집에 들어가 보니 9살짜리와 7살짜리 딸 둘이서 시원한 사이다 한 병과 컵을 들고 들어와 생글생글 웃으면서 앞에 놓고 마시라고 하더랍니다. 하도 이상해서 목사님이 “이 사이다 어디서 났니?”라고 물었습니다. 아이들이 대답하기를 “며칠 전부터 동전을 푼푼히 모았다가 아빠를 기쁘게 해드리려고 오늘 밤에 사왔어요”라고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이 “엄마가 시켰느냐?”고 물으니 “저희들이 스스로 했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김목사님은 여름동안에 자주 먹는 음료수이지만 그날은 이상하게 더 맛이 있고 기분이 좋았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우리 하나님의 심정도 이와 똑같으실 것이다’라고 생각하셨답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과 사랑의 나눔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드리고 우리도 그분을 사랑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그런데 사랑하면 자원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일에 자원하게 됩니다. 자원하는 신앙이 되길 바랍니다. 자원하여 주의 일을 하는 사람이 사랑을 받습니다. 고후 9:7에 보면 헌금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헌금도 자원하여 즐겁게 내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제가 군대 생활할 때 우리 부대는 구타가 아주 심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다른 병사들에 비해서 거의 구타를 당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고참들과 소대장에게 아주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 제가 그렇게 졸병시절을 보낼 수 있었던 이유가 있습니다. 제가 만남의 복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소대배치를 받지 않고 중대본부에서 하루 대기할 때 보일러병을 만났습니다. 그 양반이 저에게 소대에 가면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신속하게 모포를 정리하고 소대원들 전투화를 정리하고 쓰레기가 있으면 누가 말하지 않아도 빗자루로 쓸고 지저분한 곳은 걸레로 닦으라고 가르쳐주었습니다. 저는 소대에 배치 받고 다음 날 아침부터 기상과 동시에 보일러병이 가르쳐준 대로 했습니다. 보통 이등병들은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몰라서 멍하니 있는데 저는 알아서 신속하게 움직이니 고참들이 저를 신기하게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군생활이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군대생활은 한번 풀리기 시작하면 계속 풀리고 한번 꼬이기 시작하면 계속 꼬입니다. 그런데 제가 고참들이 시키지 않아도 자원해서 움직이니 고참들에게 사랑을 받았고 제대할 때까지 간부들에게 사랑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일이 보이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원해서 하십시오. 봉사할 일이 보이면 자원하여 솔선수범하여 하십시오. 하나님의 사랑도 받고 사람들에게도 귀하게 여김을 받을 것입니다.
4. 성령으로 충만하라 30,31절에 보면 성막의 기구들을 만드는 일을 했던 브살렐에 대해서 말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했던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브살렐에게 성령을 부어주셔서 하나님의 성막을 세우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성령으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행동만 달아보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의 행동도 보시지만 마음을 중요하게 생각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행동의 출발점이 어디인지를 보십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무엇이든지 자기로부터 출발한 것은 부인해야 합니다. 철저히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죽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가 사는 것은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 안에 거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사시는 것입니다. 갈 2:20을 보겠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내 안에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 생각, 내 감정, 내 의지를 내려놓고 우리 속에서 인도하시는 그분의 역사를 따라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충만한 삶입니다. 자동차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간다고 가정합시다.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먼저는 자동차를 내가 밀고 부산까지 가는 것입니다. 힘은 들지만 갈 수 있겠지요. 오늘 출발하면 한 5년 후에는 도착하겠지요. 누가 그렇게 하겠습니까? 의미가 없습니다. 또 한 가지 방법은 엔진의 힘으로 가는 것입니다. 자동차 시동을 걸고 액셀을 밟는 것입니다. 그러면 엔진에서 나오는 동력으로 어렵지 않게 부산에 갈 수 있습니다. 5시간이면 충분히 부산에 갈 수 있습니다. 자기로 사는 것은 자기 힘으로 자동차를 밀고 부산에 가려는 것과 같습니다. 성령으로 사는 것은 엔진의 힘으로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과 같습니다. 성령으로 삽시다. 야곱은 자기의 머리로 살았던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그가 자기 머리로 살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여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많은 고난을 그의 인생에 안배하셨습니다. 그가 당했던 문제와 고생이 당시에는 고통스러운 것들이었는데 그런 것들을 통해서 야곱은 자신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철저히 육신적으로 살았던 젊은 시절과 비교해볼 때 너무나 신령한 노년기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신앙생활은 나를 내려놓고 성령으로 사는 생활입니다. 성령충만하시길 바랍니다.
5. 은사와 달란트를 사용하라 32-35절을 보면 브살렐과 오홀리압은 성막의 기구를 제작하는 기술이 있었습니다. 그 능력은 은사인지 달란트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만 그들은 그 기술로 성막을 세우는 일에 헌신했습니다. 하나님은 기술로 섬기는 그들을 사용하셔서 성막을 세우셨습니다. 은사와 달란트는 다른 말로 하면 능력입니다. 은사는 하나님께 받은 후천적인 능력이고 달란트는 하나님께 받은 선천적인 능력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은사와 달란트를 주실 때는 그것을 가지고 자신의 영을 세우고, 이웃을 섬기고,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자신이 무슨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아는 것은 중요합니다. 자신이 무슨 능력이 있는 줄을 알아야 그 능력을 발휘해서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사명을 주십니다. 그리고 그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 직분과 능력을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명으로 주님의 일을 하고, 직분을 따라서 주님의 일을 하며, 받은 능력을 가지고 주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주신 은사와 달란트를 알 수 있는 방법은 내가 무엇에 관심이 많고,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내가 무엇을 잘 하는가를 봐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 그것으로 하나님을 섬기면 됩니다. 베르디라는 청년은 공부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노래를 너무 좋아하여 늘 노래를 부르면서 무엇인가를 자꾸 썼습니다. 노래를 너무 잘 부르는 그가 그의 재능을 썩히고 있으니 마을 사람들이 자꾸 교육을 받아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태리의 최고 음악학교, 세계적인 음악학교인 밀라노 음악학교에 갔습니다. 테스트를 해 본 교수가 음악성은 아주 좋지만 기초가 되어 있지 않으니 입학을 허락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는 입학을 거절당했지만, 노래가 너무 좋아서 계속 노래하고, 곡을 써보았습니다. 학교도 다니지 않은 그가 마침내 오페라 작곡가로 세계적인 거장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밀라노 음악학교에서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우리 학교의 교수로 와 주세요.” 학생으로도 받아주지 않았던 그 학교에서 교수가 되어달라는 부탁을 해온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밀라노 음악학교의 교수가 되었습니다. 교수가 된 후에 그는 음악 활동을 더 열심히 했습니다. 학교 이름보다 베르디 교수의 이름이 더 커져 결국 학교 이름이 베르디 음악학교로 바뀌었다합니다. 그는 노래를 잘했고 노래에 집중했던 것입니다. 미국에 흑인 노예 출신이고, 가난했고, 땅콩 농사꾼이었던 이가 미국 국회 상원에 가서 연설을 했습니다. 처음 계획은 10분이었는데, 앵콜을 거듭 해서 한 시간 반을 강연했습니다. 이 사람의 이름이 조지 워싱턴 커버 박사입니다. 조지 워싱턴 카버 박사는 1860년쯤에 태어났습니다. 그는 자신의 생일조차 모르는 노예의 자식이었습니다. 흑인 노예였던 그는 모든 고난을 극복하고 1943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흑인·백인을 불문하고 모든 미국인들이 존경과 애도를 표했습니다. 그는 미국 제일의 과학자로서 일생을 마감했습니다. 한 때 미국 남부 지방은 목화 재배로 유명했습니다. 그런데 목화는 땅에서 질소를 빼앗아 간다고 합니다. 목화를 오랫동안 재배하면 땅이 황폐해져 아무 것도 살 수 없는 버려진 땅으로 변해 버립니다. 미국 남부 지방이 목화 재배로 인해 황폐하게 되자, 미국 경제는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커버 박사가 땅콩 재배를 제안합니다. 땅콩을 심으면 땅에 질소를 공급해 비옥해진다고 했습니다. 커버 박사의 제안에 따라 남부의 모든 농민들이 땅콩을 심었습니다. 놀랍게도 땅콩 농사는 성공을 거두었고 많은 수확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농민들은 저마다 땅콩을 심어 엄청난 수확량으로 인해 판로가 문제였습니다. 커버 박사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10월 어느 날 새벽, 나는 너무나 마음이 괴로워 해뜨기 전에 산으로 들어가 거닐다가 동쪽에서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고 부르짖었다. 하나님이여, 왜 나에게 땅콩을 심게 하셨습니까? 그러자 하나님께서 ‘땅콩을 한 줌 들고 연구실로 들어가 연구하라’고 말씀하셨다.” 그 길로 커버 박사는 연구실에서 밤낮없이 연구에 몰두했습니다. 땅콩을 이용해 마가린, 비누, 화장품, 구두약 등 음식 105가지, 생활용품 200가지를 발견했습니다. 이로 인해 남부인들은 부를 얻게 되었고 미국 경제도 회복하였습니다. .커버 박사는 자신이 발견한 그 어떤 것에도 로열티를 받지 않았습니다. 모든 지혜는 자신의 것이 아니라 남부 농민들을 위해 하나님이 주신 지혜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생일조차 알지 못하는 노예의 자식, 조그마한 땅콩! 그러나 그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자기 안에 사시는 것을 믿었습니다. 볼품없는 그가 볼품없는 땅콩으로 미국의 경제를 회복한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죠지 원싱턴 커버는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능력에 집중해서 하나님의 일을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사와 달란트로 하나님을 섬기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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