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갈라디아서 6장 7 - 10절((개역개정)
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10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세상에는 다양한 법칙들이 있습니다. 세상은 그 법칙들에 의하여 돌아갑니다. 그런데 그 법칙들 가운데 심고 거두는 법칙이 있습니다. 이 심고 거두는 법칙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서 만드신 법칙입니다. 심고 거두는 법칙 중에 우리의 눈으로 확인하기 쉬운 것이 농사입니다. 한 알의 씨앗을 심으면 하나의 열매가 열리는 것이 아닙니다. 수십 배 수백 배의 열매가 열립니다. 그리고 그 열매들은 또 다른 씨앗을 가지고 있어서 무한대의 가능성으로 심은 사람에게 돌려주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 추수의 법칙, 심고 거두는 법칙을 깨닫고 실천해서 추수 때에 풍성한 열매를 거두는 농부처럼 풍성한 인생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본문은 심고 거두는 법칙을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본문을 통해서 주님이 우리들에게 주시는 몇 가지 음성을 함께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심어야 거둔다(7절). 심어야 거둔다는 진리는 너무나 당연한 진리입니다. 하지만 우리들 중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이 진리를 무시하고 심지 않고 거두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느 신학생이 시험공부를 하지 않아서 시험지를 보니 캄캄했습니다. 나름대로 지혜를 짜내서 빙그레 웃으면서 답안지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맞는 말이죠. 하나님은 다 아시죠. 교수님이 그 답안지를 보고 이렇게 점수를 주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100점, 학생은 0점.” 공부도 심고 거두는 것입니다. 공부하지 않고 좋은 성적을 기대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착각 속에 살 때가 많이 있습니다. 육신을 따라 살고 하나님께는 심지도 않으면서 “하나님은 내 모든 사정을 다 아시니까 나를 이해하실거야”라고 스스로를 위안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의 사정을 너무나 잘 아십니다. 하지만 열매는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법칙이 심는 대로 거두는 법칙이기 때문입니다. 심지 않고 거두려고 하는 사람은 두 가지 실수를 하는 것입니다. 첫째, 자신을 스스로 속이는 것입니다. 본문에 보니 “스스로 속이지 말라”고 말합니다. 심지 않고 거두려고 하는 사람은 스스로를 속이는 사람입니다. 자신도 열매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또 열매를 거두려고 합니다. 자기가 자기를 속이는 일입니다. 농부가 봄부터 가을까지 놀기만 하다가 추수 때에 낫을 들고 논으로 간다면 바보 아니겠습니까? 바보가 아닌데도 낫을 들고 논으로 나간다면 그는 스스로 자신을 속이는 것입니다. 이런 일이 우리들의 생활에 많습니다. 일하지 않고 돈을 벌기를 원하고, 공부하지 않고 좋은 성적이 나오기를 원합니다. 제가 헌금시간에 우리교인들 중에서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난 이름을 갖게 되는 사람들이 나오기를 기도합니다. 제가 그런 기도를 하니까 그런지 성도들이 대표기도 시간에도 종종 그런 기도를 합니다. 아마 개인기도 시간에도 그런 기도를 하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기도를 하는 분이 계시다면 기도 후에는 열심히 노력하시기를 바랍니다. 심어야 거두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자신이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난 이름을 갖기를 원하는 기도는 하지만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들은 스스로를 속이는 것입니다. [아웃라이어]라는 책의 저자인 말콤 글래드웰은, “일만 시간의 노력을 기울이면 누구나 보통 사람의 범주를 넘어 성공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하면서 ‘일만 시간의 법칙’을 주장하였습니다. 일만 시간이란 하루 3시간씩 10년간 노력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영국의 그룹 비틀즈는 대단한 인기를 얻었고 지금도 그들의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영국에서는 그들이 음악으로 세계에 영국을 알리니 귀족작위를 주었습니다. 그들은 명예와 함께 엄청난 돈을 벌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이름이 세계에 알려지기 까지 하루에 8시간씩 10년을 연습 했다고 합니다. 그들은 1만 시간이 아니라 약 3만 시간을 투자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것입니다. ‘저 푸른 초원위에’를 부른 국민가수 남진씨가 장로가 되었다는 사실은 아십니까? 지금은 이분의 나이가 69세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지금도 하루에 하루 4시간씩 노래를 부른다고 합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명성을 얻은 사람들은 그만큼 노력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미래를 위해서 전혀 준비하지 않으면서 미래가 잘 되기를 바란다면 스스로 속이는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전문성이 있다면 그 분야를 1만 시간은 연습하리라는 각오로 열심히 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열매가 풍성할 것입니다. 둘째, 심지 않으면서 거두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7절에 보니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않으시는 분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을 개역성경에는 '만홀히 여긴다.'고 번역을 했습니다. 만홀히 여긴다는 말은 ‘가볍게 취급한다.’, ‘조롱한다.’, ‘우습게 여긴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법칙을 만들어 놓고 법칙대로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이 만드신 법칙대로 살지 않는다면 법칙을 만드신 하나님을 우습게 여기는 것입니다. 제가 어릴 때 태권도 선수를 했습니다. 그때 제가 다른 아이들보다 태권도를 좀 잘했습니다. 제가 다른 아이들보다 실력이 좋았던 것은 제가 운동신경이 뛰어나서가 아닙니다. 다른 아이들보다 더 많이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태권도를 하는 사람이 열심히 연습을 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하기를 기대한다면 그 사람은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면서 동시에 심은 대로 거두는 법칙을 만드신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기독교 역사에서 예수님 다음으로 대단한 업적을 이룬 분입니다. 그분의 그런 업적은 첫째는 하나님의 역사가 있었지만 두 번째는 하나님의 역사를 따라 그가 수고했기 때문입니다. 즉 열심히 심었기 때문에 풍성한 열매를 거둔 것입니다. 골 1:29에 보면 바울이 이런 고백을 합니다.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바울은 심어야 거두는 진리를 알았던 것입니다. 심어야 거둡니다.
2. 육체를 위하여 심지 말고 성령을 위하여 심으라(8절). 8절에 보니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고 말씀합니다. 무엇이든지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는 것입니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원인 없는 결과는 없습니다. 어느 병원 중환자실에선 매주 일요일 오전 11시면 같은 병상에서 환자가 죽어나가곤 했는데, 환자의 컨디션과는 무관하게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의사들이 풀기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초자연적 힘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왜 매주 일요일 오전 11시에 그 병상에서 환자가 죽어나가는가 이해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일요일 오전 11시 수분 전에 그 중환자실에서 근무하는 의사와 간호사 전원이 현장에 모여 그 끔찍한 모습의 진상을 지켜보기로 했다. 어떤 사람들은 악귀를 쫓기 위해 나무 십자가나 기도서나 다른 성스러운 물건들을 들고 왔다고 합니다. 정각 11시가 되니 병원 청수부가 중환자실에 들어서더니 진공청소기를 사용하기 위해 생명 유지 장치의 전원 플러그를 빼는 것이었습니다. 매주 일요일 오전 11시에 그 병상에서 중환자가 죽어나가는 분명한 원인을 발견한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결과가 있으면 원인이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날마다 심는 생활을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심는 것을 나누어 보면 크게 두 가지 종류 밖에 없습니다. 육체를 위하여 심는 것과 성령을 위하여 심는 것이 있습니다. 육체를 위하여 심으면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둡니다.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둡니다. 많은 사람들은 심으면 거둔다는 단순한 진리를 외면하고 엉뚱한 행동을 합니다. 대표적으로 두 가지 엉뚱한 행동이 있습니다. 첫째, 심지도 않고 거두기를 원합니다. 그것은 맹목적인 것이고 도박심리입니다. 이 부분은 앞에서 말씀드렸습니다. 둘째, 자신이 심은 것과 전혀 다른 엉뚱한 것을 구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콩 심어 놓고 팥이 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이성적인 행동입니다. 심어야 거두고 좋은 것을 심어야 좋은 것을 거둡니다. 좋은 것을 심느냐 좋지 못한 것을 심느냐는 ‘누구를 위하여’ 심느냐로 결정되는 것입니다. 인류의 비극이 이것을 잘못 했기 때문에 시작 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왜 에덴동산에 선악과를 만들어 놓으셔서 아담과 하와가 그것을 따먹게 했는가?’라는 질문을 갖습니다. 여기에 대한 답은 여러 가지인데 가장 기초적인 답은 ‘하나님은 선악과와 함께 선악과보다 훨씬 더 귀한 자유의지를 주셨다. 인간은 로봇과 같은 존재가 아니라 모든 일을 선택하며 살아가는 존재로 지음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랑이라는 것도 자유의지로 선택해서 해야 아름다운 것입니다. 제가 집에 들어가면 제 아내가 저에게 “여보! 오늘 수고 많으셨어요. 당신이 있어서 행복해요. 사랑해요”라고 말한다면 저의 피곤이 다 씻겨나가게 될 것이고 저는 행복해질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로봇이 제가 집에 들어갈 때마다 프로그램 된 대로 “주인님! 오늘 수고 많으셨어요. 주인님이 계셔서 행복해요. 사랑해요”라고 한다면 저는 로봇의 소리에 감동을 받지도 않을 것이고 행복도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이 제 아내처럼 자신의 자유의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배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인간이 로봇처럼, 앵무새처럼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기를 원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여러 가지를 받았습니다. 그 가운데에서 중요한 것이 자유의지입니다. 그런데 이 자유의지는 하나님을 위하여 사용해야 생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자유의지를 자신들을 위하여 잘못 사용했습니다. 자기들이 하나님과 같아지는 일을 위하여 자유의지를 잘못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에덴동산을 상실하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위하여’라는 말을 참 많이 씁니다. ‘엘리제를 위하여’ ‘황제를 위하여’ 건배할 때도 ‘위하여’ 수많은 ‘위하여’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에서 제일 좋은 ’위하여‘는 ’성령을 위하여‘입니다. 이 누구를 위하여가가 우리가 심는 것의 질을 결정합니다. 같은 것을 심는데 그것이 누구를 위하여 심느냐에 따라서 그것이 생명이 되기도 하고 사망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같은 일을 해도 누구를 위하여 하느냐에 따라서 하나님 앞에서 그 일의 가치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한번은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을 만나서 말하기를 “당신네 미국 조상들은 오직 하나님만 찾기 위하여 미국에 왔는데 오늘은 하나님도 찾고 황금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아르헨티나 조상들은 오직 황금을 찾으러 아르헨티나에 왔는데 황금도 못 찾고 하나님도 못 찾는 비참한 나라가 되었습니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두 나라의 조상들은 비슷한 행위를 했습니다. 그런데 미국의 조상들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자신들이 잘 먹고 잘살기 위해서 그 행위를 한 것입니다. 같아 보이지만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사는 사람은 그 중심이 하나님과 가깝기 때문에 잘살기 위한 방법마저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법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이 아니라면 경제적인 이익이 된다 할지라도 단호히 포기할 줄 압니다. 차범근씨는 축구선수로서 잘 나갈 때 술 광고 제의가 들어왔지만 거절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위하여 사는 사람들은 그 중심이 하나님과 멀기 때문에 잘살기 위한 방법이 하나님과 거리가 멀어도 상관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초대교회 시절에 이성봉 목사님이라는 유명한 부흥사가 계셨습니다. 그분의 글에 보면 만주에 사는 영수 이야기가 나옵니다. 영수는 요즘으로 말하면 안수집사와 같은 직분입니다. 이성봉 목사님이 그를 만나보니 아편 장사를 하더랍니다. 그래서 “교회 영수가 그런 방법으로 돈을 벌어서 되겠느냐?”고 했더니 아들이 하나 있는데 그 아이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만 하겠다고 하더랍니다. 몇 해 후에 만났더니 여전히 아편장사를 하더랍니다. 그러면서 변명하기를 “아들이 졸업했지만 한 밑천 잡고 그만 두려고 아직 그 장사를 한다.”고 하더랍니다. 그 후 얼마 있다가 만났더니 가슴을 치면서 통곡하더랍니다. 그 하나 밖에 없는 외아들이 헌병 노릇하다가 아편쟁이가 되어 폐인이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기독교인이었지만 그 마음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아편 장사를 한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복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왜 복을 받아야 합니까? 더 잘 먹고, 더 좋은 집에서 살고, 더 좋은 차를 타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주와 및 복음을 위하여 그렇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을 위하여 심으십시오.
3. 심은 후에는 인내하고 기다리라(9절). 사도 바울은 심는 자에게 한 가지 요구되는 것이 있다고 말합니다. 인내심입니다. 9절입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여기에 두 가지 권면이 나옵니다. 하나는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포기하지 않으면 때가 이르면 거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할 때가 많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조급함 때문입니다. 열매가 생각처럼 빨리 맺혀지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또 하나는 사람의 인정을 받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선을 행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몰라줄 때 낙심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아라. 포기하지 아니하면 정해진 때에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 때를 기다리며 눈물로 씨를 뿌려야 합니다. 그러면 때가 되면 거두는 것입니다. 봄에 모내기를 했으면 가을 추수 때가지 기다려야 합니다. 좋은 씨를 뿌렸고 열심히 일을 했어도 때가 되지 않으면 열매가 없는 것입니다. 좋은 씨를 뿌렸고 열심히 일했다면 열매를 거둘 때까지 잠잠히 기다리며 일해야 합니다. 그러면 풍성하게 거두는 것입니다. 영국의 한 부자는 날마다 큰돈을 벌 생각만 했습니다. 하루는 아프리카에 금광이 숨겨져 있다고 소문을 듣고는, 곧 광물학자를 초빙해서 탐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금이 있을 법한 광산 한 곳을 찾아내고 즉시 채취하러 갔습니다. 두 달을 팠지만 아무 것도 얻지 못했습니다. 그는 낙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낙담 끝에 그는 의욕이 떨어져 귀국하는 배표를 사고는 광산을 한 청년에게 팔았습니다. 광산을 헐값에 산 청년은 부자가 파다 만 광산을 계속해서 파 나갔습니다. 그런데 1미터를 다 파기도 전에 대량의 금맥을 발견하고 청년은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2년 후 청년은 영국에 돌아와 그 부자를 만나서 1미터를 더 판 덕에 대량의 금광을 발견했다고 말했습니다. 부자는 비통해하며 가슴을 치고 원망하다 얼마 후 화병으로 죽었답니다. 사단이 우리의 신앙을 무너뜨리기 위하여 쓰는 방법 중에 하나가 낙심입니다. 교회 생활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열심히 신앙생활을 잘 하다가 어느 날 마귀가 주는 부정적인 생각을 받아드리고 그 결과 마음에 낙심이 찾아오면서 신앙이 무너지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물이 끓는 온도를 비등점이라고 합니다. 물이 어는 온도를 빙점이라고 합니다. 물은 100도에 끓습니다. 그리고 0도에 업니다. 몰의 온도가 99까지 올라가도 끓지 않습니다. 비등점인 100도가 되어야 끓는 것입니다. 물의 온도가 1도까지 내려가도 얼지 않습니다. 빙점인 0도가 되어야 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도 이런 사람이 많습니다. 기도를 하다가도 99도에서 포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주의 일에 헌신하고 충성하다가도 99도에서 포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절대 응답과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 중에 열심히 기도하는데 응답이 시원치 않고, 주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데 열매가 별로 없어서 낙심 중에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포기하지 마십시오. 지금 여러분의 기도가 비등점 바로 앞인 99도 상태인지도 모른다. 포기하지 마십시오. 때가 되면 거둘 것입니다. 인도에서 선교하던 스텐리 죤스 선교사님 이야기입니다. 아무리 전도하여도 사람들이 받아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답답하여 탈진상태에 빠졌습니다. 급기야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던 중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왜 쓰러져 있느냐?”, “아무리 전해도 듣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 사과나무를 보아라. 햇빛이 그렇게 뜨겁게 비추고 농부가 거름을 아무리 열심히 주어도 7년 되어야 사과를 맺지 않니? 지금 열매가 없다고 낙심하지 말아라” 그는 이 음성을 듣고 다시 일어나 일하여 위대한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만약 그가 그때 낙심한 상태에서 일어나지 못했다면 그는 선교하다 포기한 선교사가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마십시오. 때가 되면 거두게 될 것입니다.
4. 기회 있는 대로 심으라(10절). 10절에 보면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라고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심고 거두는데 심은 만큼만 거두는 것이 아닙니다. 곱하기로 거두는 것입니다. 미국의 어느 도시에 있는 가구점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이었습니다. 점원들은 손님이 없으니까 빙 둘러 앉아서 서양장기를 두며 잡담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 때였습니다. 다리를 저는 웬 할머니 한 분이 상점 밖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따금씩 힐끗힐끗 안쪽을 들여다보면서 가구점 안에 있는 진열된 가구들을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점원 가운데 한 청년이 보았습니다. 그는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문을 열고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하고 있는 할머니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할머니, 비오는 데 거기 서 계시지 말고 가게 안에 들어오셔서 비를 피하세요. 그리고 심심하실 텐데 들어오셔서 가구도 좀 구경하시고요.” 할머니가 말했습니다. “아니야 젊은이, 나는 지금 차를 기다리고 있어. 물건을 사러 온 사람이 아니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청년은 할머니를 강권해서 가게 안으로 모시고 왔습니다. 빗물이 뚝뚝 떨어지는 할머니의 우산을 받아주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앉아 있던 의자를 내주어서 쉴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잠시 뒤에 기다렸던 차가 왔습! 니다. 할머니는 나가면서 그 청년에게 명함 한 장을 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고맙다는 말과 함께 차에 올라탔습니다. 그 뒤 여러 날이 지났습니다. 어느 날 뜻밖에도 깜짝 놀랄 만한 편지 한 통이 가구점에 전달되었습니다. 당시 강철 왕으로 이름이 나있던 카네기의 친필로 쓴 편지였습니다. 바로 그 청년에게 온 편지였습니다. 내용은 이러했습니다. “일전에 비오 던 날, 우리 어머님에게 베풀어 주신 친절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 어머니의 요청에 따라서 이번에 스코틀랜드에 짓고 있는 대저택에 쓸 가구 일체와 또 우리가 새로 짓고 있는 회사에 들어갈 가구 일체를 당신의 가구점에서 구하고 싶습니다. 단,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일에 당신이 책임을 지고 처리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청년은 작은 친절을 베풀었다가 엄청난 보상을 받게 된 것입니다. 물론 이런 경우는 아주 특별한 것입니다. 우리가 베푼 사랑과 친절이 언제나 즉각적으로 아름다운 결실을 맺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때가 되면 반드시 거두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평소에 나그네를 잘 대접했습니다. 롯은 삼촌 곁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자랐습니다. 그래서 롯도 손님 대접을 잘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두 사람은 부지중에 천사를 대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약속의 자식이 없던 아브라함은 일 년 뒤 약속의 자녀인 이삭이 태어나는 복을 받았고, 롯은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당할 때 자신과 가족이 구원을 얻는 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서 심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십니다. 하나님이 기회를 주실 때 순종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 기회를 빼앗기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심고 거두는 진리를 깨달은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17년 정도 됩니다. 제가 막 심고 거두는 진리를 알게 되고 열심히 심으면서 교인들에게 그 진리를 가르쳐줄 때 있었던 일입니다. A라는 분이 제가 먹을 보약을 해가지고 왔습니다. 제가 감사하게 먹고 있는데 얼마 후에 B라는 분이 또 보약을 해봤습니다. 제가 B라는 분에게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B라는 분에게 제 약을 해줄 것을 명하셨는데 B라는 분이 망설이고 있는 동안 하나님께서 A라는 분에게 응답을 해주셔서 A라는 분이 보약을 해오게 된 것입니다. B라는 분이 그것 보고 하나님이 기회를 주셨을 때 해야 하는데 망설이다가 기회를 다른 사람에게 빼앗겼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좀 늦었지만 제 보약을 또 해온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실 때 순종하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지난주에 북한선교 복음 컨퍼런스에 참석을 했습니다. 컨퍼런스에서 탈북자들의 실상을 들으면서 너무나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하나님, 제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우리 교회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라는 질문을 하고 응답을 받았습니다. “너희 가정에서 먼저 선교사님을 만난 탈북자들이 한국으로 들어오는데 필요한 경비를 심어라. 그리고 교회에서 동전선교를 하는 것 역시 탈북자들이 한국으로 들어오는 경비로 심어라” 저는 그 응답을 받고 조금도 망설여지지 않았습니다. 한 사람이 선교사님을 만난 후에 신앙교육을 받고 한국으로 오는데 약 150만 원 정도의 경비가 필요하지만 저는 기쁨으로 심기로 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지금까지의 제 경험으로 볼 때 먼저 심게 하시고 그 후에 풍성한 열매를 주신 것을 많이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저희 가정에 기회를 주고 계시는 것이고, 우리 교회에도 기회를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서도 감동이 되시는 분들이 계시면 하나님이 기회를 주신다고 믿고 심어보시기를 바랍니다. 기회 있는 대로 심으시길 바랍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1. 심어야 거둔다. 2. 육신을 위하여 심지 말고 성령을 위하여 심으라. 3. 심은 후에는 인내하고 기다리라. 4. 기회 있는 대로 심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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