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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목사는 성도를 위하여 세우셨다.

목사는 성도를 위하여 세우셨다.
설교자 : 마경훈목사

본문 - 에베소서 4장 11 - 16절(개역개정)

11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12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16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성도가 목사를 위하여 존재합니까 아니면 목사가 성도를 위하여 존재합니까? 성경을 보면 둘 다 맞습니다. 성도와 목사는 모두가 하나님을 위하여 존재하지만 또 서로를 위하여 존재합니다.
성도가 없다면 목사는 필요 없습니다. 왜냐하면 목사의 사명이 성도를 목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양이 없는데 양치기가 필요합니까? 자동차가 없는데 운전자가 필요합니까? 필요 없습니다. 그래서 목사는 성도들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있기에 목사인 제가 있는 것입니다.
목사가 없으면 성도는 어떨까요? 양치기가 없는 양은 이리의 밥이 되고 말 것입니다. 눈이 어두운 양들에게는 목자가 보호자이며 인도자입니다. 목사가 없으면 성도들은 목자 없는 양떼처럼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성도는 나의 목사가 있음을 감사해야 합니다.
11절에서는 초대교회에 있었던 5종류의 사역자들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 교사입니다. 오늘은 이 5중직 중에서 목사에 대해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목사는 하나님을 위하여 존재하며 동시에 성도를 위하여 존재합니다. 이 사실을 성도들은 감사하게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히 3:5,6을 봅시다. “또한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언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종으로서 신실하였고 6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그와 같이 하셨으니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이라” 모세는 하나님의 집에서 종으로 수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 수고하셨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의 집이 무엇인가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집은 구약시대의 성전을 말하는 것도 아니고 비전교회라는 간판을 단 건물을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집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모세가 수고를 했는데 누구를 위하여 수고했다는 말입니까? 성도를 위하여 수고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수고하셨는데 누구를 위하여 수고하셨다는 말입니까? 성도를 위하여 수고하신 것입니다. 목사도 누구를 위하여 사역하는 것일까요? 성도를 위하여 사역하는 것입니다.
목사는 성도를 위하여 사역하기 때문에 성도는 목사를 잘 이용해야 합니다. 세상적으로 이용해 먹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목사를 세워주신 목적이 있는데 그 목적이 여러분에게 이루어지도록 목사를 이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12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교회 가운데 목사를 세우신 3가지 목적이 나옵니다. 1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오늘 설교는 그것을 나누겠습니다.

1. 성도를 온전하게 하려고 세우셨다.
성도를 온전하게 한다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것을 말합니다. 13절을 봅시다. 성도가 온전하게 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른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그리스도를 닮는데, 쏙 빼 닮는다는 말입니다.
그럼 성도가 그리스도를 닮는데 어떤 면을 닮아야 할까요? 닮을 점은 너무나 많습니다만 저는 3가지로 정리를 해서 말씀을 드립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입니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입니다. 셋째,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능력과 사역을 닮는 방법은 성령충만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충만하면 성령의 열매가 열리는데 그 열매는 우리의 인격을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처럼 변화시켜주기 때문입니다. 갈 5:22,23입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성령님이 역사하시면 성령의 열매가 열려서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은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한번은 예수님께서 사마리아를 통과하시게 되었는데 사마리아 사람들이 길을 막았습니다. 그랬더니 요한이 예수님에게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라고 말했습니다. 그 정도로 난폭했던 사람인데 그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후에는 사랑이 흘러넘치는 사랑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성령님께서 그의 인격을 변화시켜주신 것입니다.
성령충만하면 성령의 은사가 나타납니다. 성령의 은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우리를 통해서 나타는 것입니다. 고전 12:8-10을 보면 성령님의 9가지 은사가 나옵니다. 방언, 통역, 예언, 신유, 능력 행함, 영분별, 믿음, 지식의 말씀, 지혜의 말씀의 은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성도들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삼손의 힘은 성령의 은사였습니다. 그가 힘을 쓸 때마다 성령께서 강하게 임하셨습니다. 그런데 삼손이 하나님께 범죄하고 머리카락까지 잘리면서 나실인의 규례를 모두 어기게 되니 성령님께서 그를 떠나셨습니다. 성령님이 그를 떠나시니 그는 힘을 잃게 되고 블레셋 사람들에게 잡혀서 눈이 뽑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삼손은 성령께서 역사하실 때는 힘이 강했는데 성령께서 떠나시니 힘을 쓸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는 그의 힘은 성령의 은사였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것입니다.
성령충만하면 예수님의 사역을 닮게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일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메시지의 중심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행 1:3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부활하신 주님께서 40일 동안 사람들을 만나셨습니다. 40일 동안 많은 말씀을 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40일간 하신 말씀을 요약하면 ‘하나님 나라의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하셨습니다. 병을 고치신 것도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함이었고, 귀신을 쫓아내신 것도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신 일이었습니다. 또 사람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신 것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사역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것을 좁게 보면 나를 구원하시기 위함이었지만 넓게 보면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하시던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남겨두시고 아버지께로 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남겨두신 하나님 나라의 일은 우리들이 감당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며 그 일을 성령으로 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요 14:12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우리는 주님이 하신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보다 더 큰 일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예수님이 하셨던 일을 하게 하실 때 사용하시는 방법이 있습니다. 꿈과 환상입니다. 그런데 그 꿈과 환상을 주시는 분이 바로 성령님입니다. 그래서 성령충만하면 꿈을 꾸게 되고 꿈을 위해서 수고하므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것입니다.
행 2:17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빌 2:13입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성령께서 사도 바울에게 임하셨습니다. 그랬더니 그가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성령님은 그에게 충만하게 역사하셔서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셨습니다. 바울은 성령의 열매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아갔습니다. 또 성령님은 바울에게 충만하게 역사하셔서 은사가 나타나게 하셨습니다. 바울은 성령의 은사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닮아갔습니다. 그리고 성령은 바울에게 비전을 주셨습니다. 바울은 그 비전을 따라가다가 예수님의 사역을 닮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성령님이 주시는 꿈을 따라서 로마에 복음을 전하게 되었고 결국은 로마가 복음 앞에 굴복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성령님은 바울에게 로마의 비전을 주셔서 예수님의 사역을 계승하게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저를 여러분의 목사로 세워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저의 목회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온전한 성도들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성령으로 충만하십시오. 그래서 예수님의 인격과 능력과 사역을 닮아 가시기를 축원합니다.

2. 봉사의 일을 하게 하려고 세우셨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저의 목양을 통해서 디아코니아 즉 봉사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봉사에 힘을 쓰기를 바랍니다.
봉사의 일은 대상에 따라서 다르게 나타납니다. 많은 물건을 들고 가는 사람의 짐 중에 일부를 대신 들어주는 것은 좋은 봉사입니다. 그러나 자동차에 많은 물건을 싣고 가는 사람의 물건 중에 몇 가지를 대신 들어주겠다고 하는 것은 봉사가 아닙니다. 오히려 상대를 귀찮게 하는 것이고 그가 하는 일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봉사는 상대에 따라서 다르게 해야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 하는 봉사를 몇 가지 표현으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첫째, 예배가 봉사입니다.
하나님께 봉사는 예배입니다. 예배는 영어로 ‘worship’이라는 단어도 사용하고 ‘service’라는 단어도 사용합니다. ‘service’는 봉사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봉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이 목사의 목양을 받으며 예배자로 세워지기를 원하십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 복을 받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점이 몇 가지가 있습니다. 그중에 두드러진 것이 예배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예배가 제사와 단을 쌓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가인과 아벨의 차이점은 예배, 제사였습니다. 다윗과 사울왕의 차이점도 역시 예배, 제사였습니다. 아브라함의 영성 중에 두드러진 것이 예배, 제사였습니다. 그는 가는 곳마다 단을 쌓았습니다. 그는 단을 쌓을 때에 자기를 위하여 단을 쌓지 않고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습니다.
현대인들에게 회복 되어야 할 것이 예배입니다. 하나님은 예배 받으시길 기뻐하십니다. 사 43:21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찬송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말입니다.
마지막 때가 가까워질수록 예배가 약해집니다. 하나님은 다니엘을 통해서 마지막 때에 관한 예언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예언을 읽어보면 하나님은 다니엘서를 통해서 4번이나 마지막 때가 되면 매일 드리는 제사가 폐하여 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지막 때는 예배가 약해집니다.
하나님은 마지막 시대를 사는 믿음의 사람들이 시대적인 흐름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시대를 거슬러 살기를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마지막 시대에는 마귀가 자기 때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믿음의 사람들을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예배도 그렇습니다. 마지막 때에 마귀는 사람들을 분주하게 만들고, 예배에 무관심하게 만들어서 예배를 약화시킬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더욱 예배에 힘을 써야 합니다. 히 10:25입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예배는 영적으로 식사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한국 사람은 밥심으로 산다고 하잖아요. 밥을 먹어야 힘을 얻고 밥을 먹어야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신자는 예배의 힘으로 사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인 에너지가 공급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힘으로 승리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봉사하는 것입니다.

둘째, 섬김이 봉사입니다.
주님은 이 세상에 오실 때 섬김을 받으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려고 오셨습니다. 우리는 우리 주님을 본 받아서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어디를 가든지 섬김의 자세를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가정에서도 교회에서도 직장에서도 섬기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섬김에는 원칙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는 것입니다. 행 13:36에 보면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다가 잠들어...”라고 말씀합니다. 다윗은 평생을 섬기는 인생을 살았는데 원칙이 분명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겼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겼다는 말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섬겼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목동으로 부르셨을 때 다윗은 목동으로 섬겼습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골리앗을 물리치는 장소로 부르셨을 때 다윗은 골리앗을 물리침으로 하나님과 이스라엘을 섬겼습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장군으로 부르셨을 때 다윗은 장군으로서 하나님과 이스라엘을 섬겼습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왕으로 부르셨을 때 그는 왕으로서 하나님과 국가와 백성들을 섬겼습니다.
인생에서 자신의 부르심을 아는 것은 중요합니다. 우리의 인생의 참 주인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고전 6:20에 보면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말씀합니다. 죄로 인하여 영원히 죽을 우리를 위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셨습니다. 주님은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의 죄의 값을 지불하시고 우리를 사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참 주인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참 주인이신 하나님의 부르심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부르심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셋째, 사역이 봉사입니다.
성경에 사역이라는 말은 많이 나오지 않습니다. 개역개정 성경에는 전체 9번 나옵니다. 성경에서 많이 사용하지 않았고, 일반적으로도 잘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지 사역에 대한 오해가 있습니다.
하나는 전임사역자가 하는 일만 사역이라고 생각하는 오해입니다. 그래서 사역자라고 할 때 목회자나 선교사 그리고 전도사를 생각하게 됩니다. 평신도는 사역자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오해입니다.
또 하나의 오해는 큰 일만 사역이라고 생각하는 오해입니다.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하나님의 일은 모두가 사역입니다.
사역은 다른 표현을 사용하면 하나님의 일입니다. 행 6:4에 보면 사도들이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일과 사역은 동의어입니다. 큰 일이 일인 것처럼 작은 일도 일입니다.
우리 교회는 사역자라는 말을 목회자와 평신도 구분 없이 사용합니다. 목회자가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으면 사역을 하고 있는 것인 것처럼 평신도가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으면 역시 사역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잠실에 123층짜리 고층 빌딩을 짓고 있습니다. 거기서 일하는 사람 중에는 공사 감독처럼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도 있고, 빗자루를 들고 바닥을 쓰는 가벼운 일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외에 많은 기술자들이 붙어서 그 건물을 짓고 있습니다. 그들이 하는 일들은 중요성에 있어서 차이는 나지만 모두가 123층 고층 건물을 짓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거기서 쓰레기를 정리하는 사람도 일하는 것이고 설계나 감리를 하는 사람도 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일 즉 사역도 그렇습니다. 일의 크기가 다르고 중요도가 다를 수 있지만 목회자나 평신도나 큰 일을 하는 사람이나 작은 일을 하는 사람이나 모두가 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여러분이 목사인 저의 사역을 통해서 봉사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제 목양을 통해서 하나님이 찾으시는 참된 예배자가 되십시오. 어디를 가든지 섬기는 자리로 가십시오. 섬기되 하나님의 뜻이라는 원칙을 따라서 섬기십시오. 그리고 크든 작든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역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려고 세우셨다.
그리스도의 몸은 교회입니다. 엡 1:23에 보면 “교회는 그의 몸이니...”라고 확실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몸을 세운다는 말은 교회를 세운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이 목사인 저의 목양을 통해서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음 몇 가지가 필요합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해야 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은 몸의 지체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는 내가 그리스도에게 붙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것은 믿음으로 됩니다. 우리가 믿음을 갖게 되면 포도나무에 가지가 붙어있는 것처럼 우리도 그리스도에게 붙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져 나가면 안 됩니다. 그리스도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하나님의 자녀이고, 천국 백성입니다. 그리스도 밖으로 나가면 사망이고 마귀의 종이며 그를 기다리는 것은 지옥 형벌입니다.

둘째, 다른 지체와 연합해야 합니다.
16절을 보면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고 말씀합니다. 각 마디는 성도들을 말합니다. 성도들은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연결되고 결합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세워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두 가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는 “나는 교회에서 중요한 인물이다.” 내가 비록 사회적으로 부족한 면이 많다 하더라도 내가 없으면 교회는 장애자와 같습니다. 다른 지체는 다 뛰어난데 입이 아주 못생긴 사람이 있다고 가정을 해봅시다. 그 사람은 그 입이 원망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입을 없앨 수는 없습니다. 입이 없으면 그 사람은 장애자입니다.
또 하나는 모든 지체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내가 보기에 너무 형편없고 차라리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질만한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그 사람은 교회에 있어야 합니다. 그 사람 없으면 교회는 장애자가 되는 것입니다.
나도 중요하고 남도 중요하다는 사고를 가져야 연합을 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는 잘났는데 다른 사람들은 못났다고 생각하는 교만이나, 다른 사람들은 다 잘난 것 같은데 나만 못난 것 같다는 열등의식을 가지면 연합이 힘듭니다. 모두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야 연합이 잘 되는 것입니다.

셋째, 자신의 역할에 충실해야 합니다.
몸이 온전하려면 모든 지체가 몸에 붙어있어야 하고 또 모든 지체가 자기의 역할에 충실해야 하는 것입니다.
김기범 장로님이 심장의 혈관이 막혀서 병원에 입원하셨습니다. 심장의 혈관 하나를 놓고 보면 몸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미미합니다. 그런데 그 미미한 것 하나 때문에 중환자실에 며칠 계셨습니다. 지금은 일반병실로 옮기셨습니다.
교회를 세우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지체가 자기의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지기의 역할을 감당해야 건강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장애를 가진 분이라고 몸에 전반적인 이상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목구비 사지백체 오장육부 중에 어느 것 하나만 제 기능을 못하면 장애자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에서 여러분의 자리는 어디입니까? 그 자리를 지키십시오.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그 일을 감당하십시오. 그래야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세워지는 것입니다.

넷째, 전도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면 교회 안에 새로운 신자가 계속해서 들어와야 합니다. 그래야 교회가 건강한 것입니다.
우리의 몸은 수많은 세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세포의 수명은 부위마다 좀 다릅니다. 피부세포는 2-4주 정도의 주기로 생성되었다가 사라집니다. 뼈의 세포는 좀 길어요. 10년 정도의 주기로 생성되었다가 사라집니다. 손톱의 세포는 약 6개월입니다. 세포는 생성 되었다가 사라지지만 새로운 세포가 계속해서 생성되기 때문에 우리의 몸이 유지되는 것입니다. 만약 뼈의 세포가 다시 생성되지 않는다면 약 10년이 지나면 사람의 몸에 뼈가 사라지게 되니 몸이 지탱하지 못하고 죽을 것입니다. 하지만 새로운 뼈세포가 계속해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사람은 수가 다할 때가지 사는 것입니다.
교회도 몸과 같습니다. 교회에 나오던 사람이 수가 다하여 죽기도 하고,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교회를 옮기게 됩니다. 사람들이 교회에서 사라져가는 것은 세포가 죽는 것처럼 막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래도 교회가 건강하게 유지되려면 몸에서 새로운 세포가 생성되듯이 새로운 신자들이 교회 안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새로운 신자가 교회 안으로 들어오는 일은 전도를 통해서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도를 하면 그리스도의 몸은 세워지는 것이고, 전도를 하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몸은 점점 쇠약해지고, 결국은 없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전도합시다. 우리 안에 역사하시는 성령님은 우리에게 전도의 부담을 주십니다. 행 1:8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성령이 주시는 부담감을 받아드리십시오. 성령이 주시는 전도의 부담에 순종하십시오. 그래야 교회가 건강하게 세워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목사를 세우셨습니다. 무엇 때문에 세우셨습니까? 성도를 위하여 세우셨습니다.
여러분은 저의 목양을 통해서 온전해 지십시오. 그리스도를 닮으십시오. 성령으로 충만해서 예수님의 인격을 닮고, 예수님의 능력을 닮고, 예수님의 사역을 닮으십시오.
여러분은 저의 목양을 통해서 봉사의 일을 하십시오. 예배는 하나님께 봉사하는 것입니다. 섬기십시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는 것이 봉사입니다. 사역자가 되십시오.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봉사입니다.
여러분은 저의 목양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우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믿으므로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과 연합하시고, 다른 지체들과 연합하십시오. 다른 지체들도 귀하고 나도 귀한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자신의 역할을 감당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전도합시다. 새로운 세포가 생성되듯이 전도를 통해서 새로운 신자가 교회 안으로 들어오기를 바랍니다.

[비전교회] 경기도 하남시 감이동 361-4
(02) 443-9197
비전교회 : http://www.visionchurch.co.kr

출처 :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 agaser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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