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마태복음 4장 17절(개역개정)
17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제가 어릴 때는 사람들에게 종기가 많이 났습니다. 아마도 위생상태가 좋지 않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만약 살 속에 고름이 생겨서 종기가 나면 피부에 빨간 약 바르고 반창고나 붙여두면 안 됩니다. 인정사정 볼 것 없이 고름을 짜내야 합니다. 우리 어릴 때 유명한 약 중에 ‘이명래고약’이라고 있었습니다. 저도 여러 차례 사용했던 약입니다. 종기가 생겨서 곪으면 이명래고약을 발랐습니다. 아버지가 기름종이에 이명래고약 작은 덩어리를 붙이고 라이터로 뜨겁게 해서 손가락으로 눌러서 평평하게 만든 다음에 종기에 붙여 주셨습니다. 하루 이틀 지나서 아버지가 고약을 들어서 종기를 확인하셨습니다. 만약 종기가 곪아서 터졌으면 고약을 벗겨내고 종기를 힘차게 짜서 종기 안에 있는 고름을 짜내주셨습니다. 종기를 짤 때 인정사정없이 짜야 합니다. 그래야 고름이 다 빠져나오게 됩니다. 만약 고름이 다 나오지 않고 남아 있으면 또 다시 곪기 때문에 아버지는 제가 아파하든 말든 상관없이 사정없이 고름을 짜내셨던 기억이 납니다. 여러분! 종기의 본질적인 치료는 고름을 제거하고 청결상태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종기에 빨간약 바르고 반창고 붙이는 것이 아닙니다. 한국교회가 위기라고 합니다. 1,200만 명에 달하던 기독교인의 수가 870만 명으로 떨어졌답니다. 저는 한국교회의 위기를 교인수의 감소로 보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진짜 위기는 한국교회가 본질에서 떠나고 있다는데 있습니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어야 하는데 공기를 마시고 있습니다. 종기가 났으면 고름을 제거해야 하는데 빨간약 바르고 있는 실정입니다. 한국교회의 위기는 기독교인들의 신앙의 위기에서 오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신앙이 본질에서 벗어났습니다. 정말 집중해야 할 것에는 별 관심이 없고 집중하지 말아야 할 일에는 관심이 많습니다. 한국교회 목사님들 중에 대형 사고를 치는 분들이 있습니다. 교인들 가운데도 교인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한국교회에는 사고 목사, 사고 교인들이 많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신앙의 본질을 떠나서 그렇습니다. 집중해야 할 것에는 관심이 없고 집중 하지 말아야 할 것에 집중하기 때문에 사고 목사, 사고 교인이 되는 것입니다. 운전자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나름대로의 습관이 있습니다. 좋은 운전습관을 가진 사람이 모범운전자입니다. 기왕이면 좋은 운전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가끔 버려야만 하는 잘 못된 운전습관을 가진 운전자가 있습니다. 어느 분은 운전 중에 탑승자와 대화를 하는데 꼭 상대를 쳐다보면서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주 위험한 습관입니다. 백미러로 보는 것도 위험한데 고개를 돌려서 상대를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주 위험한 습관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반드시 대형사고가 나게 되어 있습니다. 운전을 시작하고서 약 3년 정도 지났을 때가 가장 위험한 때라고 합니다. 그 정도 운전을 하면 운전에 대해서 자만심이 생깁니다. 그래서 딴 짓을 많이 한답니다. 전화통화를 하거나, 창밖을 구경하거나, 운전 보다는 다른 일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사고는 갑자기 발생하기 때문에 사고 시에는 순간적인 반응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딴 짓하는 사람은 그만큼 반응 속도가 늦기 때문에 사고가 커지는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급성장을 했습니다. 경제적으로도 먹고 살만해졌습니다. 이제 울고불고 기도하지 않아도 살만해서 그런지 딴 짓하는 운전자처럼 되어갑니다. 목사들도 교인들도 본질에 집중하지 못하고 딴 짓하기에 정신이 없습니다. 우리는 사고 목사, 사고 교인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신앙의 본질에 집중해야 합니다. 이제 비본질적인 것은 좀 내려놓고 본질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신앙이 살고 한국교회가 사는 것입니다. 오늘 설교는 기독교인들이 집중해야 할 기독교 신앙의 본질 몇 가지를 나누겠습니다.
1.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집중합시다. 저는 고혈압 때문에 2달에 한 번 병원에 갑니다. 병원에 가면 제가 반드시 만나야 할 사람이 있습니다. 누굴까요? 의사선생님입니다. 저는 병원에 가면 반드시 의사선생님의 진료를 받고 돌아옵니다. 그런데 이렇게 가정을 해봅시다. 제가 병원에 가서 간호사선생님을 만나서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말이 통해서 신앙에 관한 이야기, 천국에 관한 이야기, 선교에 관한 이야기, 다양한 주제에 대해서 오랜 시간 대화를 하고 돌아왔습니다. 참 유익한 대화였습니다. 저는 간호사선생님과 대화를 하느라고 의사선생님을 만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저는 그날 고혈압 약을 처방 받았을까요? 당연히 못 받지요. 왜요? 의사선생님을 만나야 하는데 간호사선생님만 만나고 왔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은 관계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자신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그리고 자연과의 관계가 신앙생활입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다른 대상과의 관계가 아무리 잘 맺어졌어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 못되었다면 신앙생활은 실패한 것입니다. 우리의 초점은 하나님께 맞춰져야 합니다. 바리새인들의 실수가 이것입니다. 그들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을 의식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의식했습니다. 기도를 할 때도 응답하실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에 신경을 썼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들의 외식함을 책망하셨던 것입니다. 마 6장에 보면 기도하고 구제하고 금식할 때에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하지 말고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께 인정받기 위해서 하라고 말씀합니다. 이런 말씀을 하신 이유는 우리들이 그런 실수를 범하기 때문입니다. 환자가 병원에 갈 때 가장 중점적으로 보는 것은 의사선생님입니다. 의사선생님이 실력이 출중하다면 간호사선생님과 대화가 안 통해도 상관없습니다. 직원들이 환자를 사랑으로 대하지 않고 좀 불친절해도 크게 상관없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명의고 내게 꼭 필요한 분이라면 다른 불편한 것들은 문제 되지 않습니다. 교회생활도 그런 것입니다. 교회에 오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과의 관계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교회에 오는데 문제 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신앙적인 침체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저도 있고 여러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신앙적인 침체에 빠지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하나님께 집중하지 못하고 사람에게 집중하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의 응답으로 하늘의 문을 닫으셔서 이스라엘에 3년 6개월 동안 비가오지 않게 하셨습니다. 그러다가 그가 다시 기도하니 하늘의 문을 열어주시고 비가 내리게 해주셨습니다. 엘리야는 대단한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영적 침체에 빠졌습니다.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 850명과 영적 싸움에 승리한 후에 이스라엘의 왕비 이세벨이 엘리야를 죽이겠다고 했을 때 엘리야에게 영적 침체가 찾아왔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께 집중하여 대단한 역사를 일으켰었는데 이세벨의 협박을 받은 후에는 이세벨에게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광야에 나가서 로뎀나무 아래서 하나님께 죽기를 구하는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집중하여 놀라운 사역을 했던 엘리야도 사람에게 집중하니 영적 침체에 빠졌던 것입니다. 사람을 바라보지 맙시다. 실망합니다. 낙심합니다. 분노합니다. 섭섭합니다. 침체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봅시다. 하나님이 힘을 주십니다. 일으켜 주십니다. 새 힘을 주십니다. 우리를 반드시 승리하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나의 모든 것을 보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바라봅시다. 하나님이 도와주실 것입니다. 2차 대전이 한창일 때였습니다. 영국이 전쟁에 패할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영국 수상 처칠은 기도하였습니다. 미국의 루스벨트를 직접 만나라는 영감이 응답으로 마음에 왔습니다. 그래서 루스벨트 대통령을 만나로 미국으로 갔습니다. 호텔 방에서 목욕을 하고 수건만 두르고 있는 데 루스벨트가 불쑥 들어 왔습니다. 당황한 처질은 순간적으로 수건을 놓쳤습니다. 수건이 흘러내리며 알몸이 되었습니다. 정장 차림의 루스벨트와 알몸의 처칠이 마주 서있는 긴장된 순간이었습니다. 그 때 처칠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습니다. “보시다시피 영국 수상은 미국 대통령에게 감추는 것이 전혀 없습니다.” 루스벨트는 깔깔 박장대소하고 웃었습니다. 그리고 마음이 활짝 열렸습니다. 그리고 기쁘게 영국을 도와주었습니다. 승리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연약함을 인정하고 기도할 때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며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사람보지 말고 하나님께 집중합시다. 그것이 기독교 신앙의 본질입니다.
2. 육신이 아니라 영혼에 집중합시다. 요 6:63을 봅시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롬 8:5-8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육신에 집중하면 사망입니다.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영에 집중하면 생명입니다. 하나님과 하나가 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집중하고 따라야 할 것은 육신이 아닙니다. 우리는 영에 집중하고 영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에서 아주 중요한 원리입니다. 신앙생활을 육신이 잘되는데 초점을 맞추어서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육신을 따르는 것입니다. 사망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 육신이 잘 되면 신앙생활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착각입니다. 매우 심한 착각입니다. 눅 12:16-21에 보면 한 부자가 나옵니다. 풍년이 들어서 많은 곡식을 추수했습니다. 창고가 있었는데 곡식을 쌓아두기에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창고를 하나 더 지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기 영혼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이 사람은 육신이 잘 되는 것이 영혼이 잘 되는 것이라고 잘못 알았던 것입니다. 육신의 만족이 영혼의 만족인줄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그는 부자였습니다. 육신적으로 성공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이 보실 때 그는 어리석은 부자였습니다. 다윗이 사울 왕에게 쫓겨 다닐 때 다윗은 육신적으로 비참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육신의 성공을 추구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영적인 부분에 집중했습니다. 그는 하루 3번 기도를 하고 하루 7번 찬송을 하면서 하나님과 자신의 영혼에 집중했습니다. 다윗에게는 사울 왕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2번이나 찾아왔지만 육신의 성공을 위하여 사울 왕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영적인 세계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가 이때 다윗의 모습을 보면서 실패한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육신적으로는 비참한 지경이었지만 영적으로 그는 성공한 자였습니다. 언제부터인가 교회 안에 세상이 들어왔습니다. 교회가 세속화 되어버렸습니다. 신앙이 세속화 되어버렸습니다. 그 결과 우리들은 모든 것을 영으로 판단하기보다 육신으로 판단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육신을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육신으로 신앙생활을 하다 보니 나 보다 돈이 더 많은 사람들을 보면 부러워하고, 나보다 더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 부러워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야 어떻든, 교회생활이야 어떻게 하든 세상에서 좋은 직장에 들어가고, 세상에서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돈을 많이 벌면 성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생각이 하나님과 원수 된다는 사실을 모른 채 육신을 따라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육신적인 관점으로 보니 자기가 가난하거나 문제 가운데 있거나 핍박 중에 있다면 마치 자기의 인생이 실패한 것처럼 보입니다. 히 11:35-38을 봅시다.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36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37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38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이들은 육신적으로는 너무나 비참한 모습입니다. 하지만 이들의 인생이 실패한 인생입니까? 하나님이 보실 때 실패한 인생이라면 어찌 위대한 믿음을 다루는 히 11장에서 이들에 대해서 말씀하시겠습니까! 믿음의 눈을 가지십시오. 육신의 차원에서 세상을 보지 말고 영적인 차원에서 세상을 보십시오. 육신이 잘되기를 위해서 힘을 쓰지 말고 영이 잘되기를 위해서 힘을 쓰시길 바랍니다. 그것이 기독교 신앙의 본질입니다.
3. 이 세상이 아니라 천국에 집중합시다. 빌 3:18,19을 봅시다.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19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이 말씀이 어떤 사람들에 관한 말씀입니까? 땅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지금 사도 바울이 눈물을 흘리며 빌립보 교우들에게 권면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제발 이 세상에 집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집중하며 사는 사람은 영적으로 비참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18절 보니 그들은 십자가의 원수라고 말합니다. 19절에 보니 그들의 마침은 멸망입니다. 땅의 것을 생각하는 사람들, 이 세상에서 잘 되려고만 몸부림치는 사람들의 마침은 멸망입니다. 결국 멸망당하는 것입니다. 또 그들의 신은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들의 배입니다. 그들은 교회생활은 하지만 자기 배라는 신을 섬기는 우상숭배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의 관심, 하나님의 관심, 성령님의 관심은 천국 즉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주님의 첫 설교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외치셨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주님의 첫 설교는 천국 설교였습니다. 주님은 설교하실 때 비유를 많이 사용하셨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비유 중에 가장 많은 비유가 무엇에 관한 비유입니까? 천국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40일 동안 친히 부활을 보여주시면서 설교하셨는데 무엇을 말씀 하셨습니까? 행 1:3을 봅시다.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부활하신 주님의 설교는 하나님의 나라였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복음을 믿습니다. 우리 주님이 외치셨던 복음은 천국 복음입니다. 마 4:23에 보면 주님의 3대 사역이 나옵니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주님은 가르치셨고 전파하셨고 치료하셨습니다. 주님이 전파하신 것은 복음인데 어떤 복음입니까? 천국 복입니다. 우리가 믿는 복음은 천국 복음입니다. 마 24장에 보면 주님께서 세상 종말의 때를 말씀해주셨습니다. 언제입니까?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전파 되는 때입니다. 마 24:14을 봅시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모든 민족에게 무슨 복음이 전파 되어야 합니까? 천국 복음입니다. 이 세상에서 잘 되는 것이 대단한 것 같아보여도 천국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인생은 空手來空手去(공수래공수거)입니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인생입니다. 엘리야 케이 교수님에게 들었는데요. 로스차일드 가문의 재산이 약 200경 달러로 추정한답니다. 200경 달러면 어느 정도 되는지 아십니까? 여러분! 어느 정도 재산이 있으면 좋겠어요? 제가 아내하고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30억 원만 있으면 좋겠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그 돈 있으면 좋겠지요? 200경 달러는 70억 인구에게 285억 7천만 원씩 나눠줘도 남는 돈입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는지. 정말 우리의 머리로 상상이 되질 않는 돈입니다. 그런데 로스차일드의 손자들 중에 어느 누구도 죽을 때 그 많은 돈 중에서 단 1달러도 가지고 가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가는 세계는 제가 볼 때 천국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데 더 기가 막힌 것은 천국에 들어가든 영원한 지옥에 들어가든 그 세계가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집중하지 마십시오. 영원한 천국에 집중해서 살아가십시오. 그것이 기독교의 본질입니다.
4. 욕망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집중합시다. 내가 원하는데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것은 욕망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 통달하신 성령님께서 가르쳐주십니다. 하나님은 원하시지 않으시는데 내가 소원하는 것은 욕망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부어주신 마음의 소원은 비전입니다. 인생의 성공은 비전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평생을 수고했지만 비전을 성취하지 못했어도, 하나님의 방법대로 비전을 따라간다면 성공적인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사랑하셨던 사람은 다윗입니다. 그의 인생은 정말 성공적인 인생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평생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실수도 있었고 부끄러운 짓을 하기도 했지만 그의 인생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인생이었습니다. 행 13:36에 보면 다윗의 인생을 이렇게 요약합니다.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다가 잠들어” 정말 부럽습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다윗은 당시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기다가 잠들어” 다윗은 본질적인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허파에 바람을 빼고 살아야 합니다. 마치 풍선에 바람이 가득 든 것처럼 대한민국의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에 욕망의 바람이 가듭니다. 허파에 바람만 가득합니다. 그 바람을 빼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역사를 하십니다. 우리는 욕심이 얼마나 영적으로 해로운지를 잘 모릅니다. 성경은 욕심의 위험성을 경고합니다. 골 3:5입니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땅에 있는 지체를 죽여야 합니다. 그 중에 하나가 탐심입니다. 우리는 탐욕스러운 마음을 죽여야 합니다. 왜 탐심을 죽여야 합니까? 탐심이 우상숭배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죄가 우상숭배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품지 말아야 할 욕심을 품는 것이 우상숭배랍니다. 욕심은 심각한 죄입니다. 약 1:15입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욕심은 사망의 열매를 맺게 합니다. 제가 존경하는 목사님이 여름 수양회 때 강사님과 낚시를 하다가 재미있는 것을 보았답니다. 큰 고기 한 마리가 죽어서 둥둥 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가까이 가서 보았더니 이 고기는 자기 입으로는 먹을 수 없는 큰 고기를 먹다가 그것을 삼키지 못하고 입이 막혀서 죽어 있더랍니다. 욕심은 자기를 죽이는 것입니다. 이제 내가 원하는 것을 내려놓읍시다. 그리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봅시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소원, 하나님이 주신 비전, 하나님의 뜻에 집중하시기를 바랍니다.
본질로 돌아가야 삽니다. 본질로 돌아갑시다. 오늘 우리가 돌아가야 할 본질 4가지를 나눴습니다. 1.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집중합시다. 2. 육신이 아니라 영혼에 집중합시다. 3. 이 세상이 아니라 천국에 집중합시다. 4. 욕망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집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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