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에스더 4장 7 - 17절(개역개정)
7 모르드개가 자기가 당한 모든 일과 하만이 유다인을 멸하려고 왕의 금고에 바치기로 한 은의 정확한 액수를 하닥에게 말하고 8 또 유다인을 진멸하라고 수산 궁에서 내린 조서 초본을 하닥에게 주어 에스더에게 보여 알게 하고 또 그에게 부탁하여 왕에게 나아가서 그 앞에서 자기 민족을 위하여 간절히 구하라 하니 9 하닥이 돌아와 모르드개의 말을 에스더에게 알리매 10 에스더가 하닥에게 이르되 너는 모르드개에게 전하기를 11 왕의 신하들과 왕의 각 지방 백성이 다 알거니와 남녀를 막론하고 부름을 받지 아니하고 안뜰에 들어가서 왕에게 나가면 오직 죽이는 법이요 왕이 그 자에게 금 규를 내밀어야 살 것이라 이제 내가 부름을 입어 왕에게 나가지 못한 지가 이미 삼십 일이라 하라 하니라 12 그가 에스더의 말을 모르드개에게 전하매 13 모르드개가 그를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되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목숨을 건지리라 생각하지 말라 14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 15 에스더가 모르드개에게 회답하여 이르되 16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 17 모르드개가 가서 에스더가 명령한 대로 다 행하니라
런던에 살고 있는 4살 된 아기가 넘어져서 팔이 부러졌는데도 웃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손목을 어머니에게 보이면서 “엄마! 나 팔 부러졌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아픈 줄을 조금도 몰랐습니다. 치료하느라고 수술을 하여도 주사기를 찔러도 도무지 아프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 아이가 자라 14살이 되었습니다. 놀다가 다리가 부러졌습니다. 그런데도 또 아픔을 느끼지 못 하는 것이었습니다. 상처를 보이고 자랑하면서도 아픔을 도저히 느끼지 못 하는 것이었습니다. 고통에 완전히 무감각하였습니다. 내과의사들이 아프면 아픔을 느끼도록 이 병을 고쳐보려고 하였지만 결국은 고치지 못 하였습니다. 이 병은 육체적으로 아파도 아픔을 모르고 고통스러워도 고통을 모르는 병입니다. 그런데 오늘 날 이것보다 더 무서운 병이 있습니다. 바로 ‘죄에 대한 무감각증’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사람을 ‘양심에 화인 맞은 사람들’(딤전 4:2)라고 말했습니다. 이 시대가 그런 시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나라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특히 요즘 같이 어지러운 시대에는 시국기도가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이 나라에 그리스도인들이 기도하여 고쳐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특히 동성애문제를 놓고 힘을 다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정치인들 중에는 동성애를 합법화시키려는 자들이 있습니다. 군인권이라는 미명아래 군대내 동성애를 합법화시키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박원순씨가 서울 시장이 된 후에 서울시에서는 북한 인권단체에 대한 지원을 중단했습니다. 반면에 동성애자들의 축제를 위해서는 몇 천만 원씩 재정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소수의 인권 보호라는 허울로 동성애를 서울시민인권헌장에 포함시키려는 시도가 있습니다. 반기문 UN 사무총장이 우리나라에 동성애를 합법화 시키라고 압력을 넣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는 몇 년 안에 세계 모든 나라들이 동성애를 합법화해야 한다고 말했답니다. 이미 UN의 모든 직원들에게는 국적과 상관없이 동성결혼을 허락했답니다. 국가 인권위원회가 대다수 국민의 뜻과 반대되게 동성애자들을 비호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동성애가 부끄러운 일이고 동성애로 인하여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하지만 기독교인들마저도 동성애를 반대하는 사람들을 속 좁은 사람으로 바라보는 시대입니다. 이제는 기독교 내에서도 동성애를 인정하고 동성애자를 성직자로 임명하는 패역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어제 국민일보 종교란의 마지막 면에 전면광고가 실렸습니다. “아 나의 조국 대한민국이여! 동성애는 망국의 징조입니다”라는 글입니다. 동성애 합법을 위한 거센 움직임을 보고 너무나 마음이 아프고 답답하여서 조국 대한민국을 너무나 사랑하는 예본교회에서 올린 글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 망국의 길을 기도로 막아서야 합니다. 이때에 에스더처럼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이 거센 물결 앞에 당당히 맞서 싸울 참된 지도자가 일어나야 합니다. 에스더는 자기 민족을 위해서 목숨을 건 애국자였습니다. 에스더는 페르시아의 왕후가 된 후에도 자기 민족을 위해서 목숨도 아까워하지 않았던 분입니다. 에스더서에는 페르시아의 포로로 지내던 유대인들에게 닥친 민족의 위기를 하나님의 은혜로 해결한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BC486-464년까지 페르시아를 통치한 아하수에로 왕은 정치, 경제, 군사, 교육에 능했던 왕입니다. 아하수에로 왕은 왕위 3년에 호화로운 잔치를 열었습니다. 그런데 그 잔치에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왕후 와스디가 왕의 부름을 거절한 것입니다. 그 결과 왕후는 폐해지고 그 자리에 유대인 포로이고 고아인 에스더가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에스더가 왕후로 뽑힌 후에 권력 2인자인 하만이 에스더의 사촌 오빠며 대궐 문지기인 모르드개를 미워하게 됩니다. 하만은 모르드개가 미워서 모르드개와 모르드개의 민족인 유대인들까지 다 죽이려는 음모를 꾸몄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에스더는 기도한 후에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왕에게 나아갔습니다. 그 당시 법도로는 왕후라 할지라도 왕이 부르지 않았는데 왕 앞에 나아가면 죽을 수 있었습니다. 기도의 응답으로 아하수에로 왕은 에스더를 반가이 맞으며 에스더의 청을 들어주게 됩니다. 그 결과 모르드개와 유대민족을 말살하려고 했던 하만은 오히려 자기가 세운 장대에 달려 죽게 되고, 유대인들을 몰살시키려고 했던 그 날에 오히려 유대인들이 원수들을 죽이는 일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을 기념해서 유대인들이 지키는 절기가 부림절입니다. 이것이 에스더서의 전체의 줄거리입니다. 오늘 설교는 에스더가 민족적인 위기 속에서 아하수에로 왕 앞에 나아갔던 사건을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그 사건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보겠습니다.
1. 에스더는 잘못된 생각을 바로 잡는 지혜가 있었다. 사람은 누구도 완벽할 수 없습니다. 언제나 바른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누구나 잘못된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잘못된 생각을 했다가도 바른 생각으로 돌이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에스더는 모르드개를 통해서 하만의 악한 계획에 대해서 들었습니다. 그리고 왕 앞에 나아가서 자기 민족을 위하여 간구하라는 말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에스더는 왕 앞에 나아갈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페르시아의 법이 누구든지, 심지어 왕비라 할지라도 왕의 부름을 받지 않았는데 왕 앞에 나아가면 사형을 받기 때문입니다. 거기다가 아하수에로 왕이 에스더를 찾지 않은지가 벌써 30일이 되었습니다. 만약 에스더가 왕 앞에 나아갔을 때 왕이 손에 들고 있는 지휘봉과 같은 규를 내밀지 않으면 왕비라 할지라도 죽는 것입니다. 모르드개는 에스더의 말을 듣고 그의 잘못된 생각을 고쳐줍니다. 13,14절을 읽겠습니다. “모르드개가 그를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되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목숨을 건지리라 생각하지 말라 14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 에스더는 모르드개의 말을 듣고 자기의 잘못된 생각을 고쳤습니다. 에스더는 모르드개에게 유다인들과 함께 금식기도를 해줄 것을 부탁합니다. 그리고 자신도 시녀들과 함께 3일을 금식하고 왕 앞에 나아가려고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잘못된 생각을 했던 에스더는 모르드개의 충고를 듣고 생각을 바구게 되었습니다. 교만한 사람과 겸손한 사람은 남의 충고를 어떻게 받아드리느냐에 차이가 있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귀가 닫혀 있습니다. 남의 말을 들을 귀가 없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언제나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반면에 겸손한 사람은 귀가 열려있습니다. 남의 말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습니다. 에스더에게는 에스더의 잘못된 생각을 바로 잡아 줄 수 있는 모르드개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모르드개의 충고가 없었다면 에스더는 자기민족을 구원하기 위해서 왕 앞에 나아가는 일이 없었을 것입니다. 문둥병에 걸려서 엘리사를 찾아왔던 나아만은 요단강에서 7번 씻으라는 엘리사의 말에 맘이 상했습니다. 그래서 나아만은 요단강에 몸을 씻지 않고 그냥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종들이 나아만에게 “선지자가 당신에게 큰 일을 행하라고 했다면 행하지 않았겠습니까? 하물며 요단강에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된다고 하는데 그 정도도 못하겠습니까”라고 말하니 나아만이 그 말을 듣고는 생각을 바꿔서 요단강에 몸을 7번 씻었습니다. 그 결과 그의 몸에 난 문둥병이 치유 되었습니다. 우리도 혹시라도 잘못된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의 생각을 고쳐주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준비해두신 안정장치가 있습니다. 3가지만 간략하게 소개하겠습니다.
첫째, 성경입니다. 딤후 3:16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성경의 기능 중에 하나가 잘못된 우리를 바르게 해주는 기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많이 읽어야 합니다.
둘째, 성령님이십니다. 요 16:8에 보면 성령님이 오셔서 하시는 일 하나를 말씀하십니다.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성령님께서 우리 속에 거하시면서 우리가 잘못된 생각을 갖게 되면 책망해주시면서 교정해주시는 역할을 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충만하고 성령님에게 민감하게 반응을 하면 성령님의 도움으로 우리는 잘못된 생각을 바르게 교정 받을 수 있습니다.
셋째, 회중의 스승입니다. 전 12:11입니다. “지혜자들의 말씀들은 찌르는 채찍들 같고 회중의 스승들의 말씀들은 잘 박힌 못 같으니 다 한 목자가 주신 바이니라” 여기서 말씀을 주시는 한 목자는 우리 주님을 의미합니다. 주님은 주님을 믿는 자들을 바르게 인도하시기 위해서 회중의 스승들 즉 설교자들을 세우고 사용하십니다. 성도들은 설교를 들으며 자신의 잘못된 생각들을 교정 받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지혜로운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 시대는 가치관이 혼돈된 시대입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헷갈리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동성애 문제에 반응하는 세상을 보십시오. 어떻게 동성애를 옳다고 할 수 있습니까? 서울시에서는 동성애 문제로 가출한 청소년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해주겠다고 합니다. 그 아이들을 치료하고 집으로 돌려보내야 정상 아닙니까? 그런데 그 아이들을 재정적으로 지원을 해주겠다니 도대체 제 정신인지 모르겠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자유주의 신학에 물든 목회자들입니다. 세상이 동성애를 옹호하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어떻게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다는 사람들이 그것도 목사라는 사람들이 세상과 동일한 생각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왜 그럴까요? 세상이론이 그들의 마음과 생각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이유가 아닙니다. 가치관이 흔들리는 이 시대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철저하게 진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시대가 악할수록 진리를 더 견고하게 붙잡아야 합니다. 우리의 잘못된 생각들을 진리로 고쳐나가야 합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지헤로운 삶입니다.
2. 에스더는 위기를 기도로 돌파했다. 민족을 구원한 에스더는 위기를 기도로 돌파했습니다. 에스더는 먼저 모르드개와 유대인들의 중보기도를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에스더는 시녀들과 합심해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에스더는 충분히 기도했습니다. 한번 기도하고 왕을 만나러 가지 않았습니다. 한 시간 정도 기도하고 왕을 만나러 가지 않았습니다. 밤낮 3일을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제가 지난 금요일에 찬양을 몇 곡하고서 여러분들에게 충분히 기도를 하라고 했습니다. 언제까지 기도하라고 했습니까? 영이 충분하다고 느낄 때까지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이 충분한 기도가 중요합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은 하루에 몇 시간 정도 기도해야 할까요? 답은 내적인 만족이 있을 때까지입니다. 영적으로 충분하다는 감이 올 때까지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영적으로 충분하게 기도하지 않고 움직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영적인 에너지를 쓰지 못하고 육적인 에너지만 쓰게 되는 것입니다. 그 결과 영적인 고갈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영적 고갈이 오면 만족할 수 없습니다. 행복할 수 없습니다. 에스더가 돌파해야 할 것은 최소한 2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에스더가 왕 앞에 섰을 때 왕이 에스더를 죽이지 않아야 했습니다. 또 하나는 에스더가 왕에게 자기 민족을 위하여 간청할 때에 왕이 에스더의 말을 듣고 유대민족을 구원해주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에스더의 기도를 들으시고 역사를 하셨습니다. 에스더의 기도를 들으시고 이 2가지 면에 돌파가 일어나게 역사해주셨습니다. 에스더가 아하수에로 왕 앞에 나아갔습니다. 그러자 왕의 눈에 에스더가 너무나 사랑스럽게 보였습니다. 아마도 하나님께서 왕의 눈을 만지신 것 같습니다. 에스더가 너무나 예뻐 보이도록 역사를 하신 것입니다. 저는 기도응답이라고 믿습니다. 하만은 모르드개를 죽이려는 계획을 세웠는데 하나님께서는 에스더의 기도를 들으시고 역사하셨습니다. 하만이 자기 집에 모르드개를 달기 위해서 20m가 넘는 나무를 준비해놓았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에 왕이 잠이 오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궁중 일기를 가져오게 해서 읽었습니다. 그런데 왕이 읽은 궁중 일기의 내용은 기가 막히게도 모르드개가 왕을 죽이려는 내시 2명의 계획을 고발했고 그 덕에 왕이 죽지 않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왕은 모르드개에게 무슨 상을 주었는지 물었습니다. 측근 신하들이 아무런 상도 주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왕은 하만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모르드개에게는 왕복을 입히고 왕관을 씌우고 왕이 타는 말을 타고 하만이 고삐를 잡고 성을 돌게 했습니다. 그리고 왕은 하만이 모르드개를 달려고 준비했던 장대에 하만이 달리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에스더의 기도를 들으시고 역사하셨던 것입니다. 성경은 믿음의 사람들이 문제를 만나고 위기에 처했을 때 위기를 기도로 돌파한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그런 이야기들은 아주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에 기도로 위기를 돌파한 이야기들을 많이 기록해 놓으신 이유가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처럼 위기를 만나고 문제를 만났을 때 부르짖어 기도하면 기도응답으로 위기를 돌파하게 해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국가의 위기 앞에서 기도해야 합니다. 이만하면 됐다라는 내적인 사인이 올 때까지 간절하게 간절하게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도 위기를 기도로 돌파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과테말라에서도 중보기도 능력이 확인되었습니다. 알모롱가라는 도시는 2만 명 정도가 살고 있습니다. 20여 년 전에 알모롱가는 알콜 중독자 투성이였습니다. 폭력과 술, 성적 범죄와 도박이 난무한 도시였습니다. 감옥소 4개는 항상 만원이었습니다. 마시옹이라는 우상 숭배가 깔려 있었습니다. 지금은 ‘교회의 도시’라는 별명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술집 36개중에 33개 없어지고 3개만 남았습니다. 그 도시 깡패들이 모조리 변화되어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90%가 복음화 되었습니다. 그 도시에 범죄자들이 없어져서 감옥소 4개가 폐쇄되었습니다. 결혼식장이나 사무실로 개조하였습니다. 그렇게 된 이유가 분명합니다. 마리아노 목사님을 중심으로 한 중보기도팀들의 기도가 맹렬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기 고향이 그런 모습인 것을 보고 일주일에 3-4일 금식하며 맹렬히 기도하였습니다.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그 지역 토지가 모두 옥토로 바뀌었습니다. 농작물이 2-3배씩 커졌습니다. 수확이 갑자기 1000배가 되었습니다. 미국 농업 전문가들이 몰려와서 조사하였습니다. 그들의 조사 결과는 간단하였습니다. “원인을 찾을 수 없다.” 중보기도의 능력입니다. 이 나라가 위기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한국교회들로 하여금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기도로 위기를 돌파해야 합니다.
3. 에스더는 십자가 정신을 가졌다. 16절에 보면 에스더가 왕 앞에 나아가는데 이런 각오를 하고 있습니다. “죽으면 죽으리이다” 에스더는 일사각오의 심정을 가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 정신입니다. 복음의 핵심은 십자가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을 얻은 우리들도 십자가 정신으로 살아야 합니다.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을 성경은 제자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주님을 따르기 때문에 제자입니다. 제자에게는 제자의 삶이 있습니다. 그런데 제자의 삶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마 16:24에 보면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십자가는 겉모습은 고통이지만 그 속에는 참된 생명과 자유와 신령한 복이 있습니다. 여러 해 동안 늙고 병들어 병원 생활을 하고 있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그 여인을 정성껏 돌봐준 간호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간호하던 여인이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 여인은 재벌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식이 없고 먼 친척뿐이었습니다. 세상을 떠나면서 그 여인은 자기 재산을 먼 친척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간호사에게는 커다란 십자가 하나만 주었습니다. 간호사는 당연하다고 생각하기도 하였고 좀 서운하기도 하였습니다. 그 간호사는 그 십자가를 안 보이는 병원 한쪽 구석에 치워놓았습니다. 그것은 별로 귀한 나무로 된 것도 아니었으므로 아무 데도 쓸데가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났습니다. 간호사는 십자가를 집으로 가지고 갔습니다. 그리고 과거 돌보던 여인을 생각하며 십자가를 가만히 들여다보았습니다. 그 십자가를 들고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작은 구멍이 있었습니다. 그 곳에 반짝이는 그 무엇을 보았습니다. 이상하여 파보았습니다.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그 곳에 아주 비싼 각종 보석들이 수없이 들어 있었습니다. 십자가속에 보물이 들어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십자가 속에는 보물이 들어 있습니다. 하늘의 생명과 능력이 들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 정신으로 살아야 하는데 그럼 십자가 정신이란 무엇일가요? 십자가 정신은 네 가지로 정리를 해봤습니다.
첫째, 내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십자가 정신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 날 밤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습니다. 막 14:36에 보면 주님이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주님도 육체를 입으셨기에 십자가를 지시는 것 고통스럽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주님의 육체는 십자가를 지시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뜻이 십자가를 지시는 것이었기 때문에 주님은 그 잔을 받아드리셨습니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육체와 하나님의 뜻 사이에서 갈등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갈등이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십자가 정신으로 사는 것입니다.
둘째, 주와 및 복음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도 내놓을 수 있는 것이 십자가 정신입니다.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라고 말했습니다. 에스더는 주님과 민족을 위해서 목숨까지도 내놓을 각오가 된 것입니다. 우리도 이런 각오로 살아야 합니다. 계 13장에 보면 마지막 때 어느 순간에 적그리스도가 출현하게 될 것입니다. 적그리스도가 출현하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타협하지 말고 목숨을 걸고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때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 정신으로 버텨야 할 것입니다. 적그리스도의 출현은 그리스도인들에게 2가지 측면에서 십자가 정신을 발휘해야만 하는 상황을 만들 것입니다. 하나는 적그리스도에게 경배하게 할 것입니다. 적그리스도는 세계적인 권세를 갖게 될 것입니다. 그는 자기 우상을 만들 것이고 사람들로 하여금 그 우상에게 경배를 하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는 사람들은 다 죽음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이 때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 정신을 발휘해야 합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또 하나는 그가 모든 사람들에게 오른 손이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할 것입니다. 그 표는 짐승의 표입니다. 666표입니다. 짐승의 표를 받지 않으면 경제생활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경제적인 고통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심지어 먹지 못해서 굶어죽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성경은 만약 그 표를 받게 되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영원한 지옥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666표 앞에서 십자가 정신을 발휘해야 할 것입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셋째, 남을 위해서 나를 희생하는 것이 십자가 정신입니다. 주님이 십자가를 지시는 것이 육신적으로는 주님에게 유익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고통과 수치만 있을 따름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주님이 십자가를 지시면 인류가 살기 때문에 주저함 없이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마지막 때에는 마귀가 사람들을 잘못된 사랑에 빠지게 만듭니다. 딤후 3:1-5에 보면 말세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말세에는 고통을 하는 때입니다. 그런데 왜 고통을 당하게 될까요? 그 이유는 19가지입니다. 그 중에 첫 번째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기적인 사랑입니다. 마지막 때에는 사람들이 마귀가 들려서 남들을 배려하지 않습니다. 자기만을 이기적으로 사랑합니다. 이러한 때에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풍조를 따라가지 않습니다. 세상 풍조를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세상은 자기만을 사랑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 정신으로 살아야 합니다. 남의 유익을 위해서 자기를 희생할 줄 알아야 합니다. 6.25 직후 한국에 온 미국 선교사들이 문둥병 수용소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문둥병자에게서 흐르는 피고름을 다 닦으며 받아내고 치료하였습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미국 특파원 사진 기자들이 이 사진을 찍으면서 말했습니다. “이 사진은 100만불짜리 사진입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100만불을 주어도 이런 일을 못 하겠습니다.” 그 때 고름을 닦아주던 선교사가 말했습니다. “나도 못 합니다.” 기자가 말했습니다. “지금 하고 있지 않습니까?” 선교사가 말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만 생각하면 그 분의 사랑이 나를 강권하고 있습니다.” 십자가 정신은 나의 유익보다 남의 유익을 생각하는 정신입니다.
넷째, 나의 유익보다 전체의 유익을 선택하는 것이 십자가 정신입니다. 주님은 인류 전체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우리도 주님처럼 전체를 생각할 줄 알아야 합니다. 가정생활을 할 때는 나의 편안함 보다 가족 전체를 생각해야 합니다. 교회생활을 할 때는 나의 유익보다 교회 공동체의 유익을 생각해야 합니다. 직장이나 학교에서도 나의 유익보다 전채의 유익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십자가 정신으로 사는 것이고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고전 13:5에 보면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미자립교회 청소년 수련회를 앞두고 있습니다. 그 사역은 여러 가지로 힘든 사역입니다. 돈도 많이 들어갑니다. 육신적으로 생각하면 우리가 그 일을 하지 않아도 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그 일이 하나님의 뜻이고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하고 한국교회에 유익하고 하나님의 나라에 유익하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도 십자가 정신의 실천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어느 추운 겨울날 영국 런던의 한 악기점에 남루한 옷차림의 한 부인이 낡은 바이올린을 갖고 들어왔습니다. “제가 몹시 배가 고파서 그러니 이것이라도 받으시고 돈 좀 주세요.” 선한 주인은 바이올린은 쳐다보지도 않고 그 부인에게 5불을 주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부인이 악기점에서 나갔습니다. 그 당시 5불은 큰돈이었습니다. 악기점 주인은 부인이 나간 후 낡은 바이올린이라도 한 번 켜보고 싶어서 먼지를 털고 바이올린을 켰습니다. 깜짝 놀랄 좋은 소리가 났습니다. “아니, 이렇게 좋은 소리가 나다니! 이건 보통 바이올린이 아니구나.” 바이올린의 먼지를 털고 안에 쓰여진 글씨를 본 악기점 주인은 기절할 뻔했습니다.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우스 1704’ 200년간 행방불명이 되어서 세계의 음악인들이 찾고 있던 것으로 십만 불 이상의 값이 나가는 바이올린이었습니다. 그때 십만 불은 지금의 백만 불보다 더 가치가 있었습니다. 십억 원이 더 가는 그 귀한 바이올린을 부인이 5불에 판 것입니다. 악기점 주인이 바로 밖으로 뛰어나갔지만 부인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악기점 주인은 횡재했지만, 그 부인은 여전히 거지로 살아갈 것입니다. 그 바이올린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부인이 알았다면 부자로 살았을 텐데, 몰라서 그런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저의 먼지를 털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망국의 시대에 나라를 살리는 에스더와 같은 귀한 삶을 살아가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은혜로 잘못된 생각을 바로 잡기를 바랍니다. 위기를 기도로 돌파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십자가 정신으로 승리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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