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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고난속에 찾아오시는 하나님.hwp

스가랴 1장7절 부터 17절 말씀까지 교독하겠습니다. 저가 한 줄 읽고 다음줄 여러분이 읽으시고 교독하겠습니다.

 

7절: 다리오 왕 이 년 십일 월 곧 스밧월 이십사 일에 잇도의 손자 베레갸의 아들 선지자 스가랴 에게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여 이르시니라

8절: 내가 밤에 보니 사람이 홍마를 타고 골자기 속 화석류나무 사이에 섰고 그 뒤에는 홍마와 자마와 백마가 있기로

9절: 내가 가로되 내 주여 이들이 무엇이니이까 내게 말하는 천사가 내게 이르되 이들이 무엇인지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매

10절: 화석류나무 사이에 선 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이는 여호와께서 땅에 두루 다니라고 보내신 자들이니라

11절: 그들이 화석류나무 사이에 선 여호와의 사자에게 고하되 우리가 땅에 두루 다녀보니 온 땅이 평안하여 정온 하더이다

12절: 여호와의 사자가 응하여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여 여호와께서 언제까지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을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려나이까 이를 노하신지 칠십 년이 되었나이다 하매

13절: 여호와께서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선한 말씀,위로하는 말씀으로 대답하시더라

14절: 내게 말하는 천사가 내게 이르되 너는 외쳐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예루살렘을 위하며 시온을 위하여 크게 질투하며

15절: 안일한 열국을 심히 진노하나니 나는 조금만 노하였거늘 그들은 힘을 내어 고난을 더 하였음이라

16절: 그러므로 여호와가 이처럼 말하노라 내가 긍휼히 여기므로 예루살렘에 돌아왔은즉 내 집이 그 가운데 건축되리니 예루살렘 위에 먹줄이 치어지리라 나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

17절 다같이 읽겠습니다. 다시 외쳐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성읍들이 넘치도록 다시 풍부할 것이라 여호와가 다시 시온을 안위하며 다시 예루살렘을 택하리라 하셨다 하라 아멘

 

우리가 지난시간 스가랴서의 서론을 통해서 스가랴서의 구조를 우리가 함께 같이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스가랴서의 구조이면서 스가랴서의 아웃트라인, 개요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네 가지만 기억하시도록 말씀 드렸습니다. 서론이 있고 첫째로 서론이 있고 1장1절부터 6절까지, 그 다음에 두 번째는 무어라고 그랬어요? 몇 가지 환상? 8가지 환상, 1장7절부터 어디까지? 6장 마지막 절까지, 그 다음은 뭐에요? 7장과8장은 두가지 메세지, 그 다음에 9장부터 마지막 장 14장까지는 두가지 예언, 이래서 우리가 스가랴서의 구조, 서론, 8가지 환상, 두가지 메세지, 두가지 예언, 그렇게 기억하기 어려워요?

서론하고 그 다음에 8가지 환상 1장7절부터 6장까지, 그 다음엔 두 가지 메세지 몇장 몇장? 7장과 8장, 7장에는 특별히 금식에 대한 메세지가 있고 8장에는 회복의 메세지 입니다. 두가지 메세지, 그 다음에 9장부터14장까지는 두가지 예언, 혹은 두가지 신탁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다시 서론 빼놓고 8가지 환상, 두가지 메세지, 두가지 예언, 이것이 스가랴서 전체의 구조를 만들고 있는 틀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지난시간에 1장1절부터6절까지의 그 서론적 메세지를 함께 묵상했습니다. 이 메세지가 선포된 이후 하나님의 말씀이 스가갸 선지자에게 임하신 후에 다시 약 3달 반 이라는 시간이 지나갑니다. 주전 519년2월, 오늘 7절에는 다리오 왕 이 년 십일 월 이라고 그랬어요.11월, 그런데 유대인 칼렌더의 11월은 우리 칼렌더로 약2월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그래서 BC 519년 2월 스가랴 선지자는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받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환상의 형태로 임하고 있습니다. 환상의 형태로, 몇 가지 환상이에요? 8가지환상, 8가지 환상이 스가랴에게 임했습니다.

8가지 환상을 우리가 자세히 공부해 보시면 8가지의 그 비젼이 환상이, 혹은 이상이라고 그러는데 환상, 이상, 그런데 '이상' 그러면 자꾸 이상해져요. 그래서 '환상'하는 것이 더 좋겠습니다. 환상, 하나님이 보여주신 환상, 그것은 이스라엘 민족의 장래. 그 회복에 대한 환상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8가지 환상을 보여주셨는데 이 환상이 8가지 중에서 한가지만 빼놓고 두번째 환상만 빼놓고는 어떤 틀이 있어요 뚜렷한 틀이 있습니다. 환상도 그냥 환상을 보여준 것이 아니라 환상 속에 임하는 메세지의 어떤 특성이 있습니다. 세 가지의 두드러진 특성이 있어요. 즉 환상을 기술할 때 '내가 보니' 이렇게 시작이 돼요. 내가보니 내가 보니, 그리고 이제 보여주셔요. 보여주신 것에 관해서 질문을 합니다. 무슨 뜻입니까? 이 보여주신 환상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무슨 뜻이죠? 하고 물어봅니다. 그러면 그 다음에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해서 환상을 보여주신 이 천사를 통해서 다시 대답을 하십니다. 그것은 이런 뜻이다! 라고 대답을 하십니다. 이것이 공식 이에요 환상 속에 나타나는 하나의 공식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한번 보겠어요. 자, 8절 무슨 말씀으로 시작이 됩니까? 오늘 본문에 8절에도 내가 밤에 보니, 이렇게 시작됩니다. 내가 밤에 보니,이렇게 시작하는 거에요. "사람이 홍마를 타고 골짜기 속 화석류나무 사이에 섰고 그 뒤에는 홍마와 자마와 백마가 있기로" 9절에 보시면 내가 가로되, 뭐라고 질문을 합니까? "내주여 이들이 무엇이니이까" 내가 본 환상들, 이들이 도대체 무엇입니까?라고 질문을 합니다. 그랬더니 "내게 말하는 천사가 내게 이르되" 이게 대답 이에요 대답이 나오는 것입니다.

자,우리가 18절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18절, 18절에도 어떻게 시작 됩니까? "내가 눈을 들어 본즉" 이제 보았어요. 19절에도 보시면 '이에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묻되" 무어라고 물어봅니까? "이들이 무엇이니이까?" 이 뜻이 무엇입니까? 물어보았어요. 그랬더니 그 다음에 "내게 대답하되"라고 대답이 나옵니다.

자, 세번째는 조금 달라지는데 세번째는 조금 다른 형식이 있지만 그러나 세번째도 그의 유사합니다.

아~2장1절 보시면 "내가 또 눈을 들어 본즉" 2절에 "네가 어디로 가느냐 물어본즉 내게 대답하되" 약간 다르지만 그의 비슷해요. 그런 형태로 되어있어요. 3장에 나타나는 것이 조금 그런 형식을 뚜렷하게 따르지는 않았어요 그러나 거의 비슷한 형식이 3장에도 나옵니다.

4장 한번 찾아보세요 4장, 4절 보겠습니다. 4장4절 다같이 읽어요, 시작.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물어 가로되 내 주여 이것들이 무엇이니이까" 그전에 일단 보였어요. 쭉 보여주고 보여준 것에 관해서 어떻게 했습니까? 내 주여 이것들이 무엇입니까? 그 뜻이 무엇입니까? 물었어요. 그랬더니 5절 "내게 말하는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라고 대답이 나왔어요. 그 다음에 대답이 나왔습니다.

자, 5장 한번 보겠습니다. 5장1절 다같이 읽겠습니다. 5장1절 시작, "내가 다시 눈을 든즉 날아가는 두루마리가 보이더라" 이제 보였어요.다시 한번 보였습니다. 보였으니까 그날 무슨 질문을 할까요? 녜? 이것이 무엇이니이까?라고 질문을 하는 것이 당연하죠?

자,2절 다같이 "그가 내게 묻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하기로 내가 대답하되 날아가는 두루마리를 보나이다 그 장이 이십 규빗이요 광이 십 규빗이니이다"

3절 "그가 내게 이르되 이는 온 지면에 두루 행하는 저주라 무릇 도적질하는 자는 그 이편 글대로 끊쳐지고 무릇 맹세하는 자는 그 저편 글대로 끊쳐지리라" 녜,길게 좀 설명이 나온 후에요?

5절 보겠습니다. 5절 다같이 "내게 말하든 천사가 나아와서 내게 이르되 너는 눈을 들어 나오는 이것이 무엇인가 보라 하기로"

6절 "내가 묻되 이것이 무엇이니이까 그가 가로되 나오는 이것이 에바니라 또 가로되 온 땅에서 그들의 모양이 이러하니라" 서론이 길었지만 그의 같은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아~ 6장 한번 보겠습니다.6장, 6장1절에 "내가 또 눈을 들어본즉" 보았습니다. 무언가를 보았어요. 자,4절 다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내가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물어 가로되 내주여 이것들이 무엇이니이까"

5절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이는 하늘의 네 바람인데 온 세상의 주 앞에 모셨다가 나가는 것이라 하더라" 이게 형식이 있어요 없어요? 있죠? 녜, 그냥 쭉 보인 것이 아니라 뚜렷한 어떤 틀을 가지고 형식을 가지고 이 환상들이 나타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자,첫번째 환상, 이것을 홍마 탄 사람의 환상 보통 이렇게 부릅니다. 붉은 말을 탄 사람의 환상이다. 이것이 첫번째 환상이에요.

자 첫째로 환상을 본 때, 언제 보았습니까? 8절에 보면 1장 8절입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오셔서 1장8절에 환상을 언제 보았습니까? 녜 환상은 밤에 보는 거에요 낮에 볼려고 하지 마세요. 낮에 보면 몽유병 환자가 될 수가 있습니다. 환상은 밤에 보는 것입니다. 자, '내가 밤에 보니' 그랬습니다. 물론 저는 문자적으로 아~ 이 스가랴 선지자가 밤중에 이 환상을 보았다고 생각 합니다.그러나 저는 여기 어떤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왜냐하면 스가랴 선지자가 살았든 그 시대가 바로 어두운 밤이 였습니다. 하나님은 이 어두운 밤에 이 선지자에게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가 살고있는 때가 어두울수록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환상이며 비젼 입니다. 우리가 살고있는 삶의 자리가 어두울수록 내가 지금 걸어가고 있는 내 인생의 길이 어두울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비젼입니다. 희망을 걸 필요가 있습니다.

 

저 빅터 프랑클이라는 유명한 의미의 요법 로오델라피를 창안했든 심리학자가 독일 나치의 그 수용소 경험을 통해서 어느날 그가 남겼든 메모지에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그는 심리학자니까 그 수용소 안에서 감옥 안에서 동료 유대인들이 죽음을 앞에 두고 이 고난 속에서 행동하는 모습들을 학자답게 늘 관찰했었습니다. 두 사람의 행동을 관찰하면서 이런 메모지의 유명한 글을 남겼습니다. 한 사람은 차가운 감옥의 바닥만을 응시하고 있다. 그런데 또 한 친구는 감옥 저 건너편 하늘을 바라본다. 이것은 얼마나 현저한 차이인가? 꼭 같은 환경 속에 살면서 같은 감옥 안에서, 같은 위기에 직면하고 같은 고통의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한 사람의 시선은 차가운 감옥 밖에 보지 못하는 사람이 있어요 또 한 사람은 감옥 저 건너편의 하늘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빅터 프랑클 박사는 늘 감옥 안에서도 죽음의 위기 속에서도 그는 꿈을 꾸었습니다. 나는 반드시 감옥 속에서 나간다. 그리고 이 고통 속에서도 사람이 희망을 가질 때 얼마나 그 생존이 풍성한 생존일 수 있는 것인가를 내가 지구촌의 모든 사람에게 다니면서 나는 강연을 할 것이다. 그리고 그는 감옥에서 나가서 많은 사람들을 모아놓고 그들에게 이 도저히 인간으로서 생존하기 어려운 이 지옥 같은 이 감옥 속에서도 사람이 의미를 갖기 시작하면 희망을 갖기 시작하면 사람에게는 얼마든지 생존이 가능하다. 그 광경을 실제로 자기가 사람들에게 설교하고 있는, 강요하고 있는 teaching하고 있는, 자기의 모습을 늘 꿈꾸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드디어 해방과 함께 그 감옥의 생존자가 되었을 때 자기의 꿈을 실현하는 그런 학자로서의 제2의 인생을 새롭게 살아가기 시작합니다.

 

사람에게 환상이라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에요. 어두울수록 고통스러울수록 삶이 절망과 시련일수록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환상을 보는 것입니다. 환상을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뭐냐하면 환상이라는 것은 보고싶다! 그래서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에요. 환상은 보여지는 것입니다. 오늘 내가 하루종일 매우 피곤하게 하루를 살았다 오늘 밤 꿈이라도 멋있게 꾸어보자! 그래서 꾸어져요? 그것이 마음대로 안돼요 이것이 문제에요 마음대로 안돼요. 환상은 하나님 편에서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환상을 본 사람들, 그들이 환상을 본 그 삶의 정황을 살펴보면 두가지 사실이 현저한 특성으로 드러납니다. 하나는 뭐냐하면 그들이 정말 주의 말씀을 순종하기를 원했을 때, 그리고 엎드려 기도하고 있었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환상을 보여주십니다. 우리가 어두운 시대를 이기기 위해서 고통의 삶의 장을 극복해 나가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환상입니다. 환상을 보아야 돼요. 눈에 실제로 보이는 환상이든 마음으로 보여지는 환상이든 상관이 없습니다. 환상을 본 자는 견딥니다. 극복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찬란한 승리하는 사람으로 고난 저 건너편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누가 환상을 볼 수가 있느냐? 이것이 문제에요. 순종하는 자, 또 하나는 기도 하는 자,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기를 원했을 때 그리고 엎드려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환상을 보여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 삶이 조금 잘못 갈 수도 있어요. 이렇게 열심히 하지만, 열심히 하지만 내 삶의 방향이 잘못 될 수가 있어요. 그러나 내 동기가 선하고 내가 정말 주의 뜻대로 살기를 원하는 순종의 발걸음을 옮긴다면 그리고 기도하면서 살고 있다면 하나님은 환상을 통해서 방향을 바꾸어 주십니다.

바울이 그랬잖아요 자, 바울이 소아시아쪽으로 전도하러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울을 어디에서 쓰기를 원했습니까? 마케도니아 유럽 편에서 하나님은 바울을 사용하기를 원했다 말이죠.그런데 다른 방향으로 가요. 그렇지만 바울 편에서는 순종하기를 원했어요 정말 복음의 말씀을 가지고 주의 뜻대로 살기를 원했고 순종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기도하면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순종하는 이 자녀 이 종을 귀하게 쓰시기 위해서 밤중에 주께서 환상을 보여주십니다. 메시도니야, 마케도니아 사람이 복음을 듣지 못하고 죽어가는 환상을 보여주시죠? 와서 우리를 도와 주시요! 와서 우리를 도와 주시요! 그래서 발걸음을 옮깁니다.

우리가 정말 순종하기를 원하면, 기도하기를 원하면 내 삶의 방향을 고쳐주시고 내가 가야할 곳으로 가게 하시고 그리고 저 미래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 그 환상이 보여질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환상을 본 자, 밤중에 환상을 본 자, 이런 사람들이 새벽을 맞이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환상을 언제 보았느냐? 언제 보았어요? 밤에 보았어요. 낮에 볼려고 하시는 분이 있어요. 성가대에서 한번 보실려고 그러다가 지금 탁 깨셨습니다.하하~~ 밤중에 환상을 보시기를 축원합니다.

 

둘째로 이 환상의 궁극적 메세지가 뭐냐? 이 첫번째 환상, 붉은 말을 탄 사람의 환상, 이 환상이 보여 줄려고 하는 궁극적인 메세지, 16절과 17절에 나와있어요. 16절 17절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다같이 읽겠습니다.

16절 17절 시작, "그러므로 여호와가 이처럼 말하노라 내가 긍휼히 여기므로 예루살렘에 돌아왔은즉 내 집이 그 가운데 건축되리니 예루살렘 위에 먹줄이 치어지리라 나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

17절 까지, "다시 외쳐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성읍들이 넘치도록 다시 풍부할 것이라 여호와가 다시 시온을 안위하며 다시 예루살렘을 택하리라 하셨다 하라"

녜, 두가지 뭡니까 두가지? 첫째 예루살렘의 성전의 재건, 내 집이 다시 지어질 것이다. 건축될 것이다 성전의 재건, 이러한 메세지이고 또 뿐만 아니라 성전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 성의 회복,하나님은 성전만을 축복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이 성전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그 당시의 꿈, 또 하나님의 일을 대표하는 사건이 였어요. 대표하는 사건입니다. 그들이 성전을 재건하기를 원했다 이것은 하나님 일에 대한 그들의 관심을 대표하는 것입니다.

자, 그 집이 지어진다! 성전재건에 대한 약속이 여기 있었습니다. 이 환상 속에 주어진 약속입니다. 동시에 그 성전을 세우는 그 도성, 예루살렘 도성에 하나님이 축복을 약속하십니다. 17절에 보시면 "다시 외쳐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성읍들이 넘치도록 다시 풍부할 것이라" 주께서 하나님의 일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그들의 삶의 장에 언제나 주께서 축복하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일을 소원할 때 그 일을 수행할 수 있는 에너지, 그리고 자원을 하나님이 공급하십니다. 중국 내지 선교사 허드슨 테일러는 많은 고난 속에 선교하면서도 늘 그런 낙관적 삶의 태도로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늘 무엇이 부족하다고 불평하는 동역자들에게 이런 말을 늘 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일에 하나님의 공급이 결핍한적은 결코 없다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하나님 일에 하나님의 공급이 결핍한 적은 결코 없다네!

따라서 하십시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일에 하나님의 공급이 결핍한 일은 결코 없다.

내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 가운데 서 있으면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나를 도우시고 나를 책임 져주시고 나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성전의 재건과 그 도성의 회복을 함께 약속하십니다. 이것이 이 환상의 궁극적인 메세지에요

 

그 다음에 세 번째로 이 환상의 주체 이 환상의 초점이 뭐냐? 이 환상에서 가장 중요한 초점이 뭐냐? 초점, 혹은 주체, 이 환상의 주체가 있어요. 그것이 바로 8절에 나타난 홍마 탄 사람, 이것이 환상의 주인이십니다. 오늘 환상의 주체라고 할 수가 있어요. 환상의 주인, 가장 중요한 사건이 환상에서 뭐 많은 것들이 보였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이 제일 중요한 것이에요. 자, 8절 다시 한번 읽겠습니다. 시작, "내가 밤에 보니 사람이 홍마를 타고 골짜기 속 화석류나무 사이에 섰고 그 뒤에는 홍마와 자마와 백마가 있기로" 그랬습니다. 뭐 여러가지가 많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한가지만 또 기억하시면 돼요. '홍마 탄 사람' 붉은 말을 탄 사람, 이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에요. 그런데 이 홍마 탄 사람이 어디에 서 있었습니까? 화석류나무 사이에 서 있다 그랬어요. 화석류나무에 서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에서 홍마 탄 사람의 인물의 정체성을 밝혀내기 위해서는 11절하고 비교해보세요. 11절,

자,11절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그들이 화석류나무 사이에 선 여호와의 사자에게 고하되 우리가 땅에 두루 다녀보니 온 땅이 평안하여 정온 하더이다" 녜, 자 홍마 탄 사람이 화석류나무 사이에 서 있었는데 또 11절에 보면 화석류나무 사이에 선? 그분을 누구라고 그랬습니까? 여호와의 사자,그랬어요. 여호와의 사자, 그래서 신학자들은 바로 이 홍마 탄 사람이 바로 여호와의 사자다, 여호와의 사자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사자가 그냥 하나님이 부리시는 많은 천사들 중 한 사람이란 말이 아니에요. 우리가 영어 성경에도 보면은 이 말을 번역할 때 '디' 정관사 더(The)가 붙어있어요. 디 혹은 The angel of the Lord 주님의 그 천사, 주님의 그 천사, 이것은 막연히 많은 천사들을 의미한 것이 아니라 천사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어떤 분, 구약성경에 보면 종종 하나님이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천사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것을 천사형,혹은 인생형이라고도 말합니다. 구약성경에 하나님이 어떤 경우에는 천사의 모습으로 나타나시기도 하고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해요. 자,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삼위 하나님 가운데 그 인간의 모습으로 하고 나타날 수 있는 분, 이 분은 그의 예외 없이 제 2위 인격이신 성자하나님 예수그리스도 이십니다. 그래서 신학자들은 바로 이 분을 구약시대에 나타난 성육신 이전의 그리스도, 성육신 이전의 그리스도, 소위 Free incarnate Christe라고 말합니다. 성육신 이전의 그리스도,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아기의 모습으로 베들레헴에 탄생하셨지만 구약시대에도 예수님이 나타나는 거에요. 가끔 나타나셨어요. 가끔, 어떤 때는 천사의 모습으로 나타나시기도 하고 예수님이? 어떤 때는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시기도 합니다. 여기서는 천사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그 케이스에요. 여화와의 그 천사 그 천사의 모습, 이것은 바로 주님이시다. 홍마 탄 자,

 

자, 그런데 다시 8절을 읽어보시면 "내가 밤에 보니 사람이 홍마를 타고" 사람이 홍마를 타고 홍마를 탄 사람, 혹은 천사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예수그리스도시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됩니다. 예수님이신데 그분이 어디에 속에 있었다고 그랬어요? 골짜기 속, 골짜기 속 그 다음에 화석류나무 사이에 섰고 그랬습니다. 이 화석류나무 라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매우 의미를 가지는 톡특한 나무라고 합니다. 이 나무를 히브리 백성들은 하닷사라고 말합니다. 하닷사 하닷사,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 같지 않습니까? 하닷사, 네? 에스더. 네, 맞아요, 네. 에스더 강의 할 때 제가 분명히 그 얘기를 했습니다. 기억한 사람은 한 사람 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대여 축복이 있을 지어다 하하~~. 그러나 기억하지 못한 많은 사람들에게도 축복이 함께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이 잊어 버림으로서 저는 반복할 수 있는 특권을 갖기 때문입니다. 하닷사, 에스더라는 이름의 뜻이 사실은 하닷사에요. 에스더라는 이름의 뜻이 그것을 히브리식으로 표현하면 그것이 하닷사 입니다. 그리고 그 뜻이 바로 뭐에요? 화석류나무 입니다. 화석류나무, 이것은 히브리 백성들 사이에 매우 보편적인 이름 이에요. 아주 Popular한 Name 이에요 아주 흔한 이름이에요. 명자 순자 영자처럼 아주 흔한 이름 이에요. 네, 그래서 아주 흔한 이름 이에요. 그런데 이 나무는 화석류나무는 주로 초막을 지을 때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초막을 지을 때, 그래서 이 나무는 어떤 의미에서 이스라엘백성의 상징이기도 했어요. 어떤 학자들은 무화과 나무가 이스라엘백성의 상징이라고 하지만 또 어떤 경우에는 이 화석류나무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주 좋아했든 나무이고 많이 사용했든 나무이고 또 그 백성을 상징하는 나무이기도 했습니다.

자, 그런데 화석류나무 사이에 그 분이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화석류나무는 지금 어디에 있었습니까? 어디에 있었다고 그랬어요? 8절에 보면 골짜기에 있었다 골짜기 속에 있었다! 골짜기 속에 있는 화석류나무, 이것은 고난 속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상징한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고난 속에 있었든 이스라엘백성, 그런데 고난 속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찾아오신 우리 주님, 바로 이것이 환상의 의미에요. 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 포로 된 자리에서 돌아왔습니다. 자, 돌아왔지만, 꿈을 가지고 돌아왔지만 아직도 형편없어요. 자, 차라리 어떤 사람들은 그 포로생활 할 때가 더 나았다고 그때를 추억했을지도 몰라요. 네, 당장 와보니까 뭐에요? 다 삶을 살만한 조건이나 환경이 전혀 되어있지 않았어요. 성전도 쓰러지지 않았지, 성벽도 없었지, 말할 수 없이 비참한 환경이였어요. 그들의 삶은 마치 골짜기의 삶과도 같았습니다. 아주 거칠은 삶, 황폐한 삶, 그러나 하나님께서 스가랴 선지자를 통해서 이 환상을 보여주시면서 주시고자하시는 메세지, 전달하고자 하는 중요한 메세지는 딱 하나에요. 그대들은 아직도 고난 속에 있다 그러나 고난 속에 찾아오시는 하나님, 그렇습니다.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고난을 허용하시는지 그것은 잘 모르겠어요. 하나님만이 아시는 어떤 이유, 그것이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유익일 수 있는 어떤 계획과 플랜이 계시기 때문에 주께서는 그의 백성들의 삶의 장에 고난을 허용하실 것 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이것입니다. 그의 백성들이 고난 속에 있을 때 주님은 반드시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내 삶이 장이 캄캄한 골짜기 여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여도 그 골짜기 속에 임하시고 찾아오시고 함께하시는 주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자, 마치 구약성경에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이 포로시대에 살았든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자,그들은 그들의 신앙의 정조을 타협하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느부갓네살 왕에 의해서 어떻게 되었어요? 풀무불 속에 던짐을 받았어요. 풀무불 속에, 자, 왜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그 불 속에 던지어 지도록 그대로 방관 하셨을까요? 아마 우리는 이렇게 묻고 싶어할 것입니다. 그러나 풀무불 속에 던짐을 받은 사람들에게 놀라운 사건들이 일어났어요. 왕이 세 사람을 던져 놓고 보았는데 그 불 속에서 세 사람이 아니라 몇 사람을 보았습니까? 네사람, 이 제4의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그것은 하나님 자신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모습이라고 저는 생각을 해요.그것도, 그렇습니다. 자신의 백성들이 고난 속에 있을 때 임마누엘의 하나님, 우리와 함께하는 하나님,그 고난 속에, 그 고난 속에 다가오시는 주님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스폴즌 목사님 위대한 설교가 스폴즌 목사님이 말년에 여러 가지 병으로 고생을 많이 하셨습니다.참 고생을 많이 하셨어요. 그래서 어떤 교우 한 분이 신방을, 목사님을 방문해서 오셔서 "목사님 아프시죠?" 그런데 스폴즌 목사님이 이런 대답을 하셨다고 합니다. "네, 아파요 너무 너무 아파요 그러나 이 고통보다 주님은 내게 더 가까이 계셔요 그것이 나의 위로랍니다"

그렇지요. 아픈 건 아픈 거에요. 고난이 아프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고난을 엔죠이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아픈 건 아픈 거에요. 시련은 시련이에요. 고난은 고난이예요. 그 후에 아무리 빛나는 약속이 약속 되어있어도 아픈 것은 아픈 것이죠. 그러나 성경은 매우 일관성 있게 약속을 주시고 있습니다. 주의 백성들이 고난 속에 있을 때 반드시 찾아오신 하나님, 스폴즌 목사님의 고백처럼 고통 보다 더 가까이 계신 주님, 그 주님이 함께하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주님만 함께 하신다면 우리는 이 골짜기를 무사히 통과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해 받음을 두려워 아니함은 뭐에요?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 이로다,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 이로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약속입니다.

 

자, 네 번째로 환상의 주인을 보았어요. 환상의 주인, 함께하시는 주님, 예수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 환상의 조연들이 있습니다 환상의 조연들, 주연은 누구에요? 환상의 주연은? 예수님이에요. 그러나 이 환상의 조연들, 이 환상 속에 조연들이 있습니다. 조연들은 천사들입니다. 그들은 이 환상의 전달자 역할도 하고 또 이 환상의 해석자 역할도 하고, 또 환상의 주인공을 보조하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그들을 우리는 천사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제가 아까 예수님에 대해서 여호와의 천사, 그랬지만 이것은 그냥 무수한 천사들 중에 한분 천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를 의미한다고 그랬어요? 예수님을 의미한다 예수님을 의미한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이것은 성육신 이전의 그리스도다.

자,그것이 구별되는 현장을 우리가 11절에서 보시기 바랍니다. 11절을 조금 조심하면서 읽어보세요 11절 다같이 시작, "그들이 화석류나무 사이에 선 여호와의 사자에게 고하되 우리가 땅에 두루 다녀보니 온 땅이 평안하여 정온 하더이다." 여기서 11절에 '그들이' 라는 정체가 나옵니다. 그들이, 그들이 누구냐?

다시 8절로 돌아가겠습니다. 8절에 보시면 "내가 밤에 보니 사람이 홍마를 타고 골짜기 속 화석류나무 사이에 섰고" 이분이 주인공이에요 주인공, 홍마 탄 사람, 붉은 말을 타고 있는 사람, 그런데 그 뒤로 백그라운드로 그 뒤에 누가 있었습니까? 홍마와 자마와 백마가 있기로 그랬어요 말이 세 마리가 있었어요. 홍마 자마 백마. 이 자마는 중간에, 홍마는 뭐 붉은 말인데 백마는 하얀 색이고 이 자마는 보통 갈색이라고 많이 생각을 합니다. 갈색, 그러나 정확하게 갈색은 아니에요. 이것은 붉은색과 흰색의 중간 색깔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도대체 무엇을 상징하느냐? 신학자들 사이에 여러 가지 의견들이 갈라집니다. 그러나 대체로 홍마는 아마도 전쟁을 상징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백마는 뭘 상징할까요? 평화겠지요. 아마도 그 중간에 있는 자마는 전쟁과 평화가 썩여있는 어떤 상태를 묘사하는 것이 아닐까? 전쟁과 관련하는 천사들, 평화와 관련하는 천사들, 혹은 전쟁도 평화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와 더불어 관련되어서 일하는 어떤 천사들의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 아닐까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9절에 보시면 "내가 가로되 내 주여 이들이 무엇 니이까 내게 말하는 천사가 내게 이르되 이들이 무엇인지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매"

10절, "화석류나무 사이에 선 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이는 여호와께서 땅에 두루 다니라고 보내신 자들이니라"

자, 화석류나무 사이에 선 자는 누구일까요? 예수님이겠죠? 그분이 대답하여서 뭐라고 말했습니까? 이들은 누구냐 하면 여호와께서 땅에 두루 다니라고 보내신 자들이다. 이게 바로 누구에요? 천사들. 하나님이 부리시는 천사, 하나님의 심부름을 하고있는 일반적인 천사들이라고 말할 수가 있어요. 그런데 11절에 보면 '그들이' 그랬습니다. 그들이, 이게 하나님의 심부름을 하고있는 그들이 화석류나무 사이에 선 여호와의 사자 그분에게 보고를 하고있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보통 천사가 아니에요 그렇죠? 여기 명확하게 구별이 되죠? 그 많은 복수, plural 복수 천사들하고 그 천사는 구별되는 존재다. 그러니까 그 천사는 누구입니까?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이다. 구약성경에 나타난 성육신 이전에 그리스도 라고 여러분이 보시면 되는 거에요. 그분에게 보고를 했어요 그렇습니다 그들이 바로 조연 역할을 하면서 하나님의 심부름을 하고 예수님의 심부름을 하면서 환상을 전달하기도 하고 해석하기도 하고 보고하기도 하는 역할을 하고있는 환상의 조연들을 여기에서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자, 그 다음에 다섯번째로 이제 우리 환상 속에 있는 열방들을 보겠습니다. 환상 속에 있는 열방들,이 환상에는 열방들이 등장합니다. 환상 속에 있는 많은 열방들 자, 그 열방들의 모습을 11절에서 어떻게 보고 했습니까?

11절 다시 한번 읽어요. 시작, "그들이 화석류나무 사이에 선 여호와의 사자에게 고하되 우리가 땅에 두루 다녀보니 온 땅이 평안하여 정온 하더이다" 자, 열방들의 모습이에요. 온 땅이,이것은 이스라엘 땅이 아니고 다른 많은 땅들의 다른 나라들을 다녀보니까 다 평안하고 정온 하더이다. 이것이 좋은 보고가 아닙니다. 이스라엘편의 입장에서 보면은 좋은 보고가 아니에요. 이들은, 이 열방들은 바로 이스라엘을 괴롭히고 지금 이스라엘이 포로 되게 하고 이스라엘을 황폐하게 만든 주인공들,그 주변 세력들, 주변 열방들 이란 말이죠. 그런데 그들이 평온한 가운데 있다는 거에요. 이건 좋은 보고는 아니에요. 성경을 피상적으로 읽고 아!이게 좋은 보고 구나, 생각 하시면 안되는 거에요. 왜냐하면 이것을 또 우리가 가만히 읽어보시면 스가랴와 동시대의 선지자, 같은 시대의 선지자가 있었다고 그랬지요? 스가랴는 젊었다고 그랬어요 늙었다고 그랬어요? 젊은 선지자라고 그랬어요. 그래서 스가랴보다 늙은 선지자가 있었다고 그랬었죠? 누구였습니까? 학개. 자,학개 찾아보겠습니다. 학개.2장21절, 2장21절, 그렇게 방황할 문제가 아닙니다 한 장만 뒤로 가면 됩니다.하하~~한 페이지만 뒤로 가면 학개 2장입니다. 어디메로 가서 방황하고 계십니까 도대체? 평소 성경실력이 유감없이 폭로되는 처절한 환경이에요 지금의 모습이, 평소에 좀 열심히 보시면 아,뒤에 있구나 이렇게 딱 볼 텐데, 그냥 여기 있나 저기 있나? 학개가 어디 있나? 하하~~

 

네, 학개2장21절, 학개2장21절 다같이 읽어요. 학개 2장21절 다같이 시작, "너는 유다 총독 스룹바벨에게 고하여 이르라 내가 하늘과 땅을 진동 시킬 것이요"

22절 "열국의 보좌를 엎을 것이요 열방의 세력을 멸할 것이요 그 병거들과 그 탄 자를 엎드러뜨리리니 말과 그 탄자가 각각 그 동무의 칼에 엎드러지리라" 이 사건이 열방이 소요하고 열방이 심판을 받아야 이스라엘이 온전한 회복을 성취하게 돼요. 그런데 여기서 보고는 뭐냐 하면 열방이 평안하다는 거에요.고요하고 평안하다는 거에요.

자,그러나 이 평화는 물론 오래갈 수 있는 평화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15절에서 하나님이 드디어 이 보고를, 어떻게 된 일입니까 도대체 이렇게 하면 되겠습니까? 라고 말하죠?

녜, 12절에 보시면 "여호와의 사자가 응하여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여 여호와께서 언제가지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을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려나이까" 그러면 이 열방들은 그렇게 평안한데 이 이스라엘 민족은 언제까지 이런 상태로 그대로 놓아두시겠습니까? 성부와 성자의 대화처럼 우리가 보여집니다. 자, 그리고 나서 15절을 보세요. 대답이 나와요.15절, 15절 다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안일한 열국을 심히 진노하나니 나는 조금만 노하였거늘 그들은 힘을 내어 고난을 더하였음이라" 이것이 하나님의 대답이에요. 뭐냐 하면 이 안일한, 평안가운데 있는 이 열국에 인해서 내가 진노한다. 또 조금 있으면 진노할 것이다. 나는 조금만 노하였거늘 그들은 힘을 내어 고난을 더했다. 이것이 무슨 얘기냐 하면, 자, 이스라엘 백성들, 그 땅을 쳐들어 왔든 세력들, 어떤 세력들입니까? 예를 들어서 바벨로니나, 앗시리아, 자, 이들은 하나님의 손에 붙잡힘을 받아 지금 하나님의 백성들을 정신차리도록 하나님이 쓰신 몽둥이, 막대기, 채찍 역할을 한 것이에요. 네, 그래서 내 백성을 쳐라! 그래서 내 백성이 좀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도록 하나님이 쓰셨어요. 그래서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깨워주는 역할만하면 돼요. 그런데 그들이 어떻게 했다는 것이에요? '나는 조금만 노하였거늘', 우리 자식들에게 우리도 노하긴 노하는데 완전히 처절하게 노할 수는 없죠? 어떻게 해요 우리는? 대부분 자식들에게 노할 때 얼마만큼 노합니까? 조금만 노하셔야 돼요. 너무 노하시면 안돼요.

신학 성경에 우리 자녀교육의 중요한 원리 가운데 하나로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말고, 그랬습니다. 너무 진짜 노하게 만들면 큰 일이에요. 조금만 노하게, 정신차리도록 만 노하시면 돼요. 정신차리도록 만, 그런데 그들은 힘을 내어 고난을 더했다, 그들은 힘을 내어 내 백성을 너무나 짓밟았다 이말 이에요. 내 백성을 너무나 짓밟았다. 그래서 내가 그들도 그대로 두지않을 것이다 이 말이에요. 그들을 그대로 두지않고 그들을 심판하는 날이 곧 올 것이다. 이것이 열방의 형편이에요. 환상 속에 나타난 열방의 형편이에요.

 

자,그러면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환상 속의 이스라엘, 환상 속의 이스라엘의 백성, 자, 이 환상 속에 나타난 이스라엘 백성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야 할까요? 하나님은 그 백성을 지금 어떻게 보시고 있으며 어떻게 하시고자 하십니까? 여기 이스라엘 백성들의 미래, 주의 백성들의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예언이 있습니다.

우선 14절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14절 다같이 읽겠습니다. 14절 시작, "내게 말하는 천사가 내게 이르되 너는 외쳐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예루살렘을 위하며 시온을 위하여 크게 질투하며" 네. 이런 형편에 놓여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라보면서 내가 어떻게 한다? 질투한다. 질투한다고 그랬어요. 하나님의 열심입니다. 하나님의 애정입니다. 사실 사랑과 질투는 똑 같은 것이죠? 네, 남편이 바람을 피우는데 아내가 전혀 질투가 없다, 성녀죠? 그런 생각 하십니까? 아니에요 전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질투하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해요. 왜 질투합니까? 대답은 하나에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과 질투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것 이에요.

자, 주의 백성들을 깨우기 위해서 하나님이 이방 세력들을 잠시 쓰신 것을 보지만 그들에 의해서 그 백성이 짓밟히고 너무나 고난 속에 있자 하나님이 이번에는 화가 나신 거에요. 이 질투하시는 하나님, 다시 그 백성을 향해서 다가가시는 하나님, 이방을 다루시고 그 백성을 향한 설계와 그리고 격려를 펼치시는 하나님, 자 이제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십니까?

 

우리가 16절부터17절, 우리가 처음에 아까 읽었든 이 두절사이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미래, 미래에 대한 그 약속을 몇 가지로 크게 네가지로 정리해 볼 수가 있어요.

크게 네 가지로, 첫째로 메시야가 오신다. 메시야가 오신다, 16절, "그러므로 여호와가 이처럼 말하노라 내가 긍휼히 여기므로 예루살렘에 돌아왔은 즉" 돌아왔은 즉, 앞으로 이루어질 결정적 사실을 말할 때, 때때로 과거처럼 표현하는 그런 문법이 있어요. 표현 방법이 있습니다. 이것은 돌아오신다, 그분이 반드시 다시 온다, 메시야가 반드시 다시 오신다는 약속이에요. 자, 메시야의 오심에 대한 약속, 첫번째 약속이에요. 내가 다시 돌아온다. 그뿐만 아니라 메시야가 오실뿐만 아니라

그 다음에 또 어떤 약속을 했습니까? "예루살렘에 돌아왔은 즉 내 집이 그 가운데 건축되리니" 자,그 집이 건축된다, 그러니까 환상으로 볼 때는 이미 건축되는 것을 보고 있는 거에요 지금, 자, 예루살렘 성전의 재건입니다. 이것을 우선 문자적으로는 제2의 성전의 회복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자,성전의 회복,

 

그 다음에 세번째 약속이 있어요. 그 뿐만이 아니라 성전이 건축될 뿐 아니라 예루살렘 위에 뭐가 치어진다고 그랬어요? '먹줄이 치어지리라 나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먹줄을 칠 때는 건축하기 위해서 먼저 일단 줄을 이렇게 쳐주는 것을 말해요. 재건의, 성전 재건의 본격적인 준비하는 광경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럼 17절에 "다시 외쳐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성읍들이 넘치도록 다시 풍부할 것이라" 학자들은 여기서 우선 예루살렘 지경이 넓혀질 것을 보고있습니다. 이 먹줄을 친다는 것도 지경을 넓혀서 예루살렘 성의 확장을 예언한 것이라고 봅니다. 예루살렘 도성의 확장, 도성의 확장, 그 다음에 마지막으로 예루살렘 도성 그 자체에 대한 축복, 축복, 하나님의 온전한 축복이 올 때 까지 회복은 아직도 완성된 것이 아닙니다.

자,17절 다시 한번 읽어요. 다같이 시작, "다시 외쳐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성읍들이 넘치도록 다시 풍부할 것이라 여호와가 다시 시온을 안위하며 다시 예루살렘을 택하리라 하셨다 하라" 녜.네 가지 약속입니다. 네 가지 약속이 뭡니까? 자 이 환상 속에 있는 이스라엘의 미래, 네가지 약속, 첫째 메시야가 오신다. 두번째 성전이 회복된다. 세번째 예루살렘 도성의 지경이 넓혀진다. 네번째 예루살렘성이 축복을 회복한다. 이 네가지 약속이에요.

 

그런데 이 네가지는 성서학자들은 이 약속을 가리켜서 이중 예언이라고 말합니다. 보통 이중 예약이라고 말해요. 저와 함께 구속사를, 열린 성경학교에서 구속사를 공부하신 분들은 이중 예언이라는 말을 기억하고 계시죠? 이중 예언, 구약성경의 많은 예언은, 물론 이것은 문자적으로 얼마 후에 오실 예수그리스도의 초림을 가르키고 있는 것입니다. 초림을 중심으로 해서 이루어질 사건들을 보여주고 있어요. 그러나 한걸음 더 나아가서 이것은 예수님의 재림까지도 겨냥한 Double fulfill식, 이중으로 성취될 예언들을 동시에 한 Telescope로, 한 망원경으로 보고있는 사건이라고 할 수가 있어요. 그래서 여기도 뭐냐 하면 주님이 간섭하셔서 얼마 후에 성전 그 자체가 회복되고 제2의 성전이 다시 지어졌어요 실제로.그 성전이 회복되고, 또 예루살렘 도성도 좀더 넓혀졌어요. 그리고 예루살렘성이 축복을 경험했어요. 물론 이것은 잠시 후에 이루어질 역사적 그 사건을 보여주고 있지마는, 더 먼 안목에서는 이것이 예수님 재림 직전에 이루어질 사실들에 관한 예언이라고 볼 수가 있어요. 주님이 재림하실 때에도 어떤 사건이 일어날까요? 성전이 회복돼요. 지금 이스라엘에 가면 예루살렘 성전이 있어요 없어요? 있어요 없어요? 없어요. 성전이 있던 자리에 회교신전, 회교신전이 서 있어요. 벽 밖에 안 남았어요. 서쪽 벽 밖에, 하나 밖에 남아있지 않아요. 그 성전이 메시야가 재림하기 전에 다시 성전이 지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도성은 끊임없이 넓혀져 왔어요. 오늘 여러분들이 그 성지 순례를 가보시면 이제 옛날 예루살렘이 있고 Old city가 New city, 자꾸만 넓혀져요. 도시가 넓혀지는 거죠. 예루살렘의 도성이 넓혀졌어요. 이 넓혀져 가는 예루살렘, 이것도 하나님의 예언이 성취하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온전한 영광과 기대를 회복하고 축복 속에 들어가는 것, 저는 그날이 반드시 온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날은 멀지 않았다고 믿습니다. 하나님이 그 꿈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 환상을,

 

자, 지금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 황폐함 속에 살고 있어요. 아무것도 아직 지어지지 않았어요. 성전도 지어지지 않았어요. 도성은 아직도 비참한 상태 속에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환상을 보여주었어요. 자, 이 환상을 보았을 때 무얼 느꼈을까요? 환상을 보고 또 전달하고 전달된 메시지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환상을 보았을 때 야! 지어질 성전, 그렇다면 우리가 성전을 지어야겠구나! 그리고 이 성전을 그리고 이 도성을 하나님의 축복의 도성, 샬롬의 도성이 될 수가 있도록 일해야 겠구나, 라는 그 용기가 일어나지 않았겠어요? 이 환상을 본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저는 오늘 우리시대에 아직도 IMF의 고난의 시대가 끝나지 않은 이 시대를 살고있는 우리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있다면 환상을 보는 일 이라고 생각합니다. 환상을 본다.

 

미국에 유명한 흑인 목사님들, 마틴루터 킹 쥬니어, 자, 미국 같은 민주주의나라에서 아직도 흑인들이 백인들에 의해서 여전히 천대 받고 고통 당하는 모습을 보고 많은 흑인들은 자포자기 했습니다. 더 이상 그들이 훌륭한 인물이 될 수가 없다, 포기하고 있었든 흑인들에게 그가 와싱톤에서 위대한 설교, 나는 꿈을 가지고 있다, I have dream, 나는 흑인의 자손들이 백인의 자녀들과 나란히 한 식탁에서 식사를 하고 그들이 함께 공부를 하고 함께 위대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그들의 꿈을 키워가고 그들이 그 피부의 색깔에 의해서 판단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인격의 고매함에 의해서 판단되는 그날이 올 것을 나는 보고있다 I have dream, 나는 꿈을 가지고 있다.

그 꿈 때문에 흑인들의 민권이 회복되고 그들의 삶의 질이 향상되고 회복되고 있는 것 이에요. 이 꿈을 갖는 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제가 지난 주일 저녁에 우리교회 제직들과도 그런 꿈을 같이 나누었습니다마는 꿈을 갖는다 우리교회가 꿈을 갖는다 우리 민족이 꿈을 갖는다 저는 우리 민족의 꿈이 겨우 경제 회복이다 이건 너무 천박한 꿈이라고 생각해요 경제회복만 된다.그런데 경제회복만 되면 또 회복된 경제를 가지고 또 태국에 뱀 잡으러 또 돌아다니고 또 매춘업 업소에 드나들고 더 타락하면 더 크다란 심판을 경험할 수가 있습니다. 이 고난을 통해서 우리민족이 회개하고 영적 부흥을 체험하고 거룩한 민족으로 회복되시기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이 IMF를 지나고 났을 때 우리민족이 좀 더 깨끗한 민족이 되는 꿈, 그리고 이제는 제3세계를 돌아다니면서 폼잡고 이웃들을 무시하는 백성이 아니라 이웃들, 열방들을 겸손히 섬기는 우리민족, 선교한국인 그리고 정말 이웃들을 축복하고 세계를 섬기는 봉사하는 민족이 되는 꿈, 우리가 이런 거룩한 꿈을 꿀 수가 있다면 하나님은 우리민족 가운데 회복의 역사를 시작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에도 꿈을 꾸시기 바랍니다. 주께서 거룩한 환상을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이 환상은 제가 처음에 강조한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기로 결단하는, 순종하는 사람들에게만 환상은 보여집니다. 주님, 제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으로 살겠습니다. 그 일을 하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겠습니다. 그리고 엎드려 정말 기도할 때 주께서 여러분의 마음속에 여러분 가정을 위한 자녀들을 위한, 또 우리민족을 위한 위대한 꿈을, 거룩한 꿈을 보여주실 줄 믿습니다. 그 꿈을 통해서 그 비젼을 통해서 회복의 한해를 살아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십시다

자 우리 다같이 통성으로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이 한해를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 우리에게 꿈을 주시옵소서 우리가정에 꿈을 주시옵소서 우리 교회에 꿈을 주시고 우리민족에 꿈을 주시고 하나님 환상을 주시옵소서 우리가 그 환상을 보고 살아가는 이 한해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21세기의 환상, 깨끗한 민족 거룩한 교회 그리고 하나님 손에 붙들림을 받아 주앞에 쓰임을 받고있는, 위대한 교회와 민족의 환상을 꿈꾸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가정도 하나님이 축복하셔서 우리의 작은 사업이지만 그리고 우리의 작은 삶의 터전이지만 하나님의 손에 붙들림을 받아서 우리가정 식구들도 쓰임을 받는 거룩한 꿈, 하나님 이 꿈을 꾸게 도와주시옵소서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하시겠습니다.

자비로우신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우리 마음속에 꿈을 주시고 환상을 주셔서 우리가 내일을 향하여 하나님 위대한 내일을 향해서 걸어갈 수 있는 우리 민족이 될 수 있도록 우리교회가 되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성령님 역사하시고 능력으로 함께하시고 우리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주시옵소서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이 시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스가랴에게 주셨던 그 비젼 스가랴 시대를 살든, 골짜기의 거칠고 험악한 삶을 살든 그 백성들에게 환상을 주시든 주님 오늘 IMF의 골짜기를 헤매고 있는 이 백성들에게도 꿈을 주시옵소서 우리가정에도 꿈을 주시옵소서 가시나무에 찔리며 피 흐르는 고통 속에 시련 속에 살고있는 어떤 성도들의 가정에도 꿈을 주시옵소서 재건의 꿈을 회복의 꿈을 꾸게 하시고 우리가 잠시 시어를 견디고 기도하고 일어 났을 때 우리의 가정이 하나님의 손에 붙잡힘을 받아 위대하고 놀랍게 쓰임을 받는 그 꿈을 볼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이 환상으로 오늘의 시어를 이기고 찬양하고 승리하며 살아가는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되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하나님 감사합니다. 주의 말씀을 받고 주 앞에 기도로 우리의 삶의 짐을 내려놓고 응답하시는 주님 함께하시는 주님 신뢰하며 다시 삶의 장으로 나아갑니다. 주신 말씀 속에 우리인생의 내일에 대한 소망을 환상을 바라봅니다. 주님 내게 걸어가는 인생의 그 길이 아무리 험악한 골짜기라 해도 주님 함께하시면 우리는 넉넉히 승리하는 자가 될 줄로 믿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고난의 시대 우리에게 주신 그 은혜를 감사하며 우리들의 사랑이 우리의 이웃들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일에 귀하게 쓰임을 받기를 소원하여 드려지는 이 제물을 축복하시고 우리가운데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 시켜 주시옵소서 다시 삶의 장으로 나가는 주의 백성들에게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한결같은 사랑 하심과 성령의 교통케 하심과 평화를 주신 이, 이 날도 우리 발걸음마다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축원 하옵나이다 아멘

이동원목사

출처 : 보좌로부터흐르는생명수
글쓴이 : 하늘산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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