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결론
고린도전서 1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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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고린도 전서 연구 마지막 시간 되겠습니다
하나님이 타이밍을 마쳐주시는 것 같아요, 네, 오늘 마지막 금세기 마지막 수요일, 그동안 고린도 전서를 공부했는데, 오늘 마지막장 함께 같이 공부하게 되겠습니다.
우리가 다음 수요일부터는 우리가 좀 topical 스터디로 제목연구로 크리스챤의 사회윤리에 대해서 우리 삶의 여러 영역들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을 함께 공부하는 그런 시간들을 시리즈로 갖고자 합니다. 예를 들어서 환경에 대해서 성경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낙태에 대해서성경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이런 여러가지 주제별 크리스챤 윤리에 관한 성경 공부를 다음 수요일부터 시리즈로 같이 진행하고자 합니다. 굉장히 여러가지로 우리의 삶의 영역들에 관해서 갈등하는 부분들에 관한 도움이 되는 중요한 공부가 시작될 것입니다. 새천년의 삶을 향해서 우리의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 우리의 사회 속에서 부딪히는 여러 가지 윤리적인 갈등과 문제들에 관한 성경의 처방을 같이 공부하는 시간을 다음 수요일부터 갖고자 합니다.
첫번째 공부는 다음 수요일날 우리가 환경에 대한 성경의 말씀을 같이 공부하게 될 것 입니다.
오늘 고린도 전서 16장 , 고린도 전서 16장. 결론입니다.
고린도 전서 연구 전체의 결론 부분이 되겠습니다. 예, 이 고린도 전서라는 이 성경은, 이 책은 고린도 교회 교인들이 그 당시에 부딪혀 있던 문제들에 관해서 바울의 의견을 물었고 그래서 바울이 그것을 편지 형식으로 답변함으로써 씌여졌던 그러한 서신서였습니다. 고린도 전서는 대부분 신학적이고, 또 교리적이고 사상적인 여러가지 영역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마지막 장에 관한 한, 매우 실제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것은 실제적인 결론이고, 또 실제적인 메시지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이 고린도전서 16장은 바울과 고린도 교회가 선교 사역의 파트너로써, 함께 선교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서 필요한 몇가지 중요한 문제를 바울이 서술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16장은 어느 시대에나 주의 몸된 교회가 하나님의 선교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서 반드시 배워야 할 실제적인 그와 같은 교훈을 레슨을 담고있는 장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우리가 고린도 전서 16장을 통해서 우리가 성공적인 선교의 3가지 요소를 우리가 만나게 됩니다. 이 3가지 없이는 선교가 불가능하지가 않아요. 이 3가지가 뭘까요. 아주 실제적인 걸로 3가지 뭐가 필요할까요. 돈이 필요하죠. 돈. 눈치가 빠른 사람이 빨리 대답을 하시네요. 음. 돈. 헌금이 필요하죠. 그다음 또 뭐가 필요할까요. 시간이 있어야 되요. 시간. 타임. 머니. 타임. 그러면 세번째 뭐가 필요할까요. 사람이 필요해요. 혼자할 수가 없어요. 머니. 타임. 피플. 이 3가지 요소. 이 선교 사역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될 매우 중요한 실제적인 3가지 요소. 우리가 돈과 시간과 그리고 사람들에 관한 교훈을 우리가 본문에서 볼 수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것은 헌금과 시간과 동역자들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돈 없이는 우리가 선교가 할 수가 없습니다. 사역을 진행 시킬수가 없습니다. 실제적으로 사역을 위한 그 헌금이 어떻게 모아져야 하는가. 또 어떻게 씌여져야 하는가. 이런 원리들을 오늘 본문에서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본문에 나타나는 연보라는 단어 1절에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대하여는” 연보 이 단어는 본래 특별한 의미의 헌금을 가리치고 있는 단어입니다. 일종의 선교 헌금이라고 할 수가 있겠죠. 그러나 선교라고하면 우리가 해외 선교사를 돕는 것만 선교라고 생각하기 쉬운데요.그뿐만 아니라, 선교라는 것은 보다 광범위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사역 전체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구제도 이 선교 헌금속에 포함됩니다. 본문에는 특별히 구제의 성격을 가진 구제의 연보, 선교적 목적을 위해서 구제 헌금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의 배경은 바울사도가 예루살렘 주변에 기근이 들었고, 따라서 예루 살렘 교회에 속한 성도들이 굉장히 어려움에 처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들을 돕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고린도 성도들에게 그것을 호소합니다. 그래서 고린도 성도들의 헌금을 통해서 예루살렘 교회의 필요가 채워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 의미의 헌금의 상황 속에서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일반적인 그 헌금의 가장 중요한 몇 가지 기초적 원리들을 배울 수가 있습니다. 한 7가지 중요한 원리. 우리가 언제, 어느 때, 어떤 명목으로 헌금을 하든지,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할 헌금의 가장 중요한 한 7가지 원리들을 오늘 우리가 이 본문에서 우리가 배울 수가 있습니다. 우선 첫째로 저는 헌금의 가장 중요한 원리는 헌금은 자율적인 것이다. 자원함으로 드려지는 헌금이어야 한다. 우리 1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다같이 시작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 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우선 연보라는 단어자체가 로기아 라는 단어 인데, 이 단어의 뜻이 자율적으로 드려지는 헌금이라는 뜻입니다. 자원에 의해서 드려지는 헌금. 이것은 강제적인 어떤 세금과 매우 비교가 되는 그런 단어입니다. 그 단어 자체가. 헌금은 우선 자원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자원하는 마음이 없으면 그것은 아무리 많이 드려도 그것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나중에 고린도 후서에서 바울은 좀 더 이 헌금문제를 다루면서 억지로 해서는 안된다. 이것은 자원하는 마음에 의해서 드려져야 한다. 기쁜 마음으로 자원하는 마음으로, 헌금의 진정한 목적을 이해하고, 그 자율성에 의해서 드려져야 한다. 이것이 헌금의 첫번째 원리.
두번째로 헌금에는 의무적인 차원이 있습니다.
자율성의 차원이 있는 반면 의무적인 차원이 있습니다. 동시에 성도의 의무임을 깨닫고 드려야 한다. 두번째 원리가 헌금은 자율성이라는 측면이 있지만, 또하나 동시에 또한 헌금에는 어떤 의무적인 차원도 있어요. 분명히 있어요. 분명히 있습니다. 왜냐하면 여기 1절에 보시면 바울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헌금을 가르치고 권고하면서 그것을 명령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주목해서 보시길 바랍니다. 마치 내가 어디에 명한 것 같이, 갈라디아 교회를 향해서도 이 헌금을 내가 명령하고 가르친 것 처럼 여러분도 그렇게 하십시오. 여기서 어떤 의무감을 여기서 볼 수가 있습니다. 헌금은 어떤 자원에 근거한 것이지만 자원하는 마음이 반드시 있어야 되요. 자원하는 마음없이 의무만 행하면 그것은 차가운 의무가 될것입니다. 어떤 부부의 관계 이것은 어떤 자율적인 관계라는 측면이지만 동시에 의무적인 차원이 있지 않습니까. 가족의 의무. 우리는 여기에서 떠나서는 안되죠. 그러나 너무 의무때문에만 가족들의 어떤 관계를 형성한다면 이것은 아주 재미가 없습니다. 차가운 것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 두가지 측면이 다 필요해요. 마찬가지로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헌금에 영역에 있어서도, 자율성과 동시에 또한 의무성에 염력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헌금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해도 좋고 안해도 좋은 옵션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은 의무의 문제입니다. 바울은 그래서 내가 여러분들에게 헌금하라고, 호소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그것을 호소하지 않아요. 나는 여러분에게 명령할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도들이라 하면 마땅히 그렇게 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것을 의무의 차원에서 동시에 여기에서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고, 헌금의 두번째 원리는 이것은 성도의 의무임을 깨닫고 드려야 한다. 이것은 우리의 마땅히 해야할 의무임을 깨닫고, 그렇게 해야한다는 사실입니다.
세번째로 헌금의 또 하나의 원리는 규칙적으로 드려져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규칙적으로 자, 2절 다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매 주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은대로 저축하여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네, 헌금을 규칙으로 모아서 이렇게 드리는데, 네 어떻게, 언제마다 모으라고 그랬어요? 매주일 첫날에 모아라. 매주일 첫날에. 매주일 첫날에 이렇게 모으라고 한 이유는 매 주일 여러분들이 모일 때, 교회의 모임으로 모일 때 안식후 첫날에 한주가 시작되는 첫날에야, 안식 후 첫날 주일이 주일의 첫날이었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의 시간 계산법으로는 그래서, 그러니까 우리는 지금 월화수목금토일 맨 끝에 있는것 처럼 생각되지만 사실은 일. 첫날 일 월화수목금토일 이렇게 되는데, 주일 첫날에 첫날에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안식 후 첫날에 그들은 함께 모였습니다. 모여서 주님을 경배하고 떡을 떼며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그 때마다 그때마다 이렇게 모아서 바울이 그 전체를 가지고 갈 수 있도록 그렇니까 주일날 마다 헌금을 규칙적으로 드리도록 권고한 말씀으로 우리는 이 말씀을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왜 규칙적인 헌금이 중요할까요? 규칙적인 헌금은 우리의 규칙적인 헌신의 표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헌신 그것은 규칙적인 헌신이예요. 그냥 마음대로 개판으로 살다가 어느날 갑자기 헌신한다. 안하는 것 보다는 낫지만 그것은 매우 감정적인 것이고, 불안한 것이고, 그것은 우리의 삶이 될 수가 없어요. 우리의 신앙이 삶이 되어야 하는데 라이프 스타일이 되려면 규칙적이어야 합니다. 규칙적이 된다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막 보통 때는 안하고 있다가, 나중에 생각나면 일년에 한번 왕창한다. 아무리 많이해도 저는 그것이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헌금의 태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늘 규칙적으로 주님 앞에서 살아간다면 그것이 규칙적인 나의 헌신을 점검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네게 주신 것의 한 일부를 주를 향한 우리 신앙의 고백으로 드릴 수 있을 때, 규칙적 헌금은 우리의 규칙적 헌신의 표현일 수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규칙적으로 드려야 한다. 이 세번째 원리.
그 다음 헌금의 또 다른 원리 네번째 원리는 비례적으로 드려야 한다. 비례적으로 드려야 한다. 여기 2절 우리가 읽은 말씀에 매 주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무엇을 얻은 대로 그랬어요? . “이를 얻은 대로” 저축하여 두어서 “이를 얻은 대로” 많이 얻으면 많이 얻은 대로 , 적게 얻으면 적게 얻은 대로 이를 얻는 대로 드려야 한다. 저는 이 개념 속에는 헌금은 십일조 이상의 것이다라는 그런 정신이 들어 있다고 생각해요. 십일조는 구약시대부터 하나님의 백성들의 하나님을 향한 그림에 있어서 어떤 최저의 라인이었다고 할 수가 있어요. 영어로 Bottom line(최저라인)이라고 하는데, 아주 최최 최저의 어떤 기본적인 헌신의 표시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구약에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꼭 십일분의 일만 드린 것은 아니였어요. 레위인들을 향한 십일조, 그러니까 풀 타임으로 하나님의 사역에 전념하는 사람들의 그 삶을 생계를 서포트(support)하기 위해서 지원하기 위해서 소위 레위인들을 위한 천막 공사자들을 위한 십일조를 드렸고, 그리고 또 하나의 십일조를 드렸는데, 회식의 십일조를 드렸어요. 회식의 십일조. 이것은 명절날 종교적 성격을 지니는 특별한 명절,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 이런 절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예루살렘으로 모여와서 한 주간씩 축제를 보내고, Celebration을 할 때, 축제를 할 때,그 때 쓰게 될 회식을 위한 특별한 십일조를 그들이 또 드렸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3년의 한번씩은 소위 구제의 십일조를 드렸어요.
3년의 한번씩 그들은 규칙적으로 구제의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나그네, 과부, 고아 이런 약하고, 병들고 그리고 누군가의 사랑과 도움이 없이는 삶을 지탱할 수가 없는 그런 이웃들을 위해서 구제의 십일조를 3년마다 한번씩 드렸어요. 이걸 다 합하면 난 계산이 정확하지 못해서, 정확하게 계산하는데 20%는 하여간 넘고 23% 쯤 되지 않을 까 생각합니다. 훨씬 구약시대에도 십분의 일 소위 Ten Percent , 10 퍼센트보다 훨씬 더 많이 드렸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습니다. 신약에 와서는 꼭 십일조라는 개념이 자주 강조되지 않습니다. 단지 신약에서는 후히 드려라. 후히 넘치도록 후히 드려라. 많이 심은 자는 많이 거둔다라는 원리적인 측면에서만 신약성경은 헌금을 강조합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우리가 이를 얻은 대로 더 많이 축복을 받으면 더 많이 드릴 수가 있어야 한다. 월급은 자꾸만 올라가는데, 헌금은 올라가지가 않아요. 그것은 어떤 의미를 갖습니까? 그것은 뭐냐 하면, 자,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하신 것 우리 남편을 축복하시고, 나를 축복하시고, 우리 가정을 축복하시고 우리 사업을 축복하시고, 그 축복하신 것에 대한 인정이라 말이죠. 헌금은. 하나님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축복하셨습니다. 그런데, 축복은 늘어가는데, 헌금은 안 늘어가요? 우리가 마음속에 더많은 축복을 누리고 싶으면 하나님 더 많은 헌금을 드릴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하는 것이 더 합당하겠죠.
옛날에 어떤 사람 하나가 “하나님 제가 꼬박 꼬박 십일조를 드릴께요.” 아주 이사람이 불가 한 한달에 10불정도의 작은 월급을 받던 소년 하나가 하나님 1불을 드리면서 하나님이 내가 꼬박 꼬박 십일조를 드릴테니까, 평생 이것을 이행하겠습니다. 더 많이 주시면 더 많이 십일조를 드리겠습니다. 그래서 10불에서 1불을 드렸대요. 그리고 그 다음에는 100불을 얻게 되었어요. 그래서 10불을 드리게 되었어요. 근데 1000불을 받으니까, 그러면 얼마를 드려야 합니까? 100불. 그러니까 더 많이 드릴수록 어떻게 될까요? 더 어려워 지는 것예요. 그런데 거까지도 했어요. 이사람이 . 근데 나중에 한달에 드디어 10000불을 벌게 되었어요. 10000불이니까 얼마를 드려야 되요? 점점 더 더 많은 수입이 되니까 드리기가 힘들어 진다 말이예요. 1000불을 드리니까 벌벌벌 떨리기 시작하는 것예요. 근데 이사람이 솔직한 사람이라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를 “하나님 솔직히 더 많아 지니까, 그 만큼 그 비율에 따라서 더 많이 드린다는 것이 훨씬 어려워 지는데 어떻게 할까요?” 하나님의 조용한 음성이 들려 오더래요. “그러면 옛날 처럼 10불만 벌게해주마” 하하하하하, 우리가 더많이 드릴 수 있다는 것이 축복이예요. 그 만큼 내 삶에 있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인정하는 거라 말이죠.
그래서 이를 얻은대로 드릴 수가 있어야 한다. 헌금의 중요한 원리 가운데, 하나. 비례적으로 드려야 한다. 이 네번째 원리입니다. 그럼 다섯번째로는 준비하고 드려야 한다. 헌금의 또 다른 원리는 준비하고 드려야 한다. 2절에 “매 주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은대로 저축하여 두어서 내가 갈때에” 그 때 갑자기 연보를 하지 않도록 하라. 늘 준비된 마음으로 드려라. 이 준비된 마음으로 예배의 자리에 나온다는 것도 얼마나 중요합니까. 우리가 새 가족반 같은 시간 , 우리가 성경공부 하면서 강조했습니다만, 예배는 준비된 만큼 더 정성스럽게 드릴 수가 있어요. 뭐 우리가 어쩌다 보면 예배 시간에 늦을 수가 있죠. 그건 우리가 이해하는데, 어떤 분들 보면 찬양시간 다 빼먹고 설교 시작할 때 왔다가 나가시는 분들 있어요. 그건 합당한 예배가 아니죠. 예배 정신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차라리 예배 시간 전에 와서 5분, 10분이라도 마음으로부터 준비하고 드리면 더 온전한 예배를 드릴수가 있단 말이예요. 어떤 사람은 5분의 4예배, 어떤 사람은 3분의 2 예배. 그래서 아, 예배 시간이 너무 안 맞아서 그러나. 예배 시간 바꾸어 보면 마찬가지예요. 바꿔도 꼭 15분 지각하는 사람은 항상 습관적으로 15분 지각해요. 천국에 가서도 15분 지각할 것 같예요. 준비된 마음 예배 정신 가운데 중요한 것이 준비된 마음예요. 헌금도 마찬가지예요. 준비된 헌금. 미리 하나님 앞에 준비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나오는 것 그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헌금에 있어서 준비의 정신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는 성경에 나타난 모든 연보에 교훈을 우리가 공부할 때마다 매우 일괄성 있게 강조되는 중요한 교훈 가운데 하나입니다. 준비된 마음으로 드리자.
그 다음에 여섯번째로 또 하나의 중요한 원리가 있습니다. 헌금의 또 하나의 원리는 은혜의 응답으로 드려야 한다. 은혜의 응답으로써 드려야 한다. 은혜에 대한 보답으로써 드려야 된다. 3절에 보면 헌금에 관한 독특한 표현 하나가 등장합니다. 우리 3절 다같이 읽게 습니다. 시작 “내가 이를 때에 너희의 인정한 사람에게 편지를 주어 너희의 은혜를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가게 하라” 자, 지금 바울이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이 헌금한 헌금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가기를 원했단 말이죠. 근데 헌금을 가지고 간다 이런 표현을 쓰지 않고 여기 3절에 뭘 가지고 간다고 그랬어요. 은혜를 가지고 간다. 그랬어요. 은혜를 가지고 간다. 헌금은 은혜다. 다같이 헌금은 은혜다. 어떤 의미에서 이 은혜란 단어를 썼을까요? 우선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들이예요. 믿습니까? 그렇게 고백하십니까? 예 , 우리가 은혜를 받은 자들이예요.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뭘 얻었어요.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뭐예요 선물이다.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자격이 전혀 없었던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놀라운 은혜, 그 은혜로써 구원을 받고, 그 은혜로써 성령을 체험하고, 그 은혜로써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그 은혜로써 하나님의 축복들을 체험했어요. 한마디로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나님의 은혜의 빚진 인생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은혜 받은 자들이예요. 은혜 받은 자들. 은혜의 빚진 자예요. 그래서 헌금할 때에는 뭐냐하면, 은혜의 빚진 자로써 또 은혜를 보답하는 심정 헌금을 하는 것. 이 헌금이 또한 쓰여질 때, 내가 받았던 하나님의 은혜가 누군가에게 전달되길 원하는 것, 그래서 은혜를 받은 내가 이제 은혜를 나누는 것 그것이 헌금 정신이예요. 우리 따라서 하십시다. 헌금은 은혜도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은혜를 나누는 것 이것이 바로 헌금의 중요한 정신 가운데 하나인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이 본문에서 또한 헌금의 또하나의 중요한 원리를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의 교제를 위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교제를 위해서 드려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좀 성서적인 표현으로 말하자면 헌금은 코이노니아 다 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코이노니아. 따라서 하세요. 코이노니아. 코이노니아가 무슨 뜻이예요? 교제라는 뜻이죠. 교제. 교제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 교제란 말은 너무나 폭이 좁은 말이예요. 우리말의 교제란 말은. 교제 그러면 친구 교제하는 것만 생각하기 쉽고, 우리가 처음 제가 청년시절에 교회 나갔더니, 청년회 나가니까 다른 청년회원이 이래요. “이 형제 우리 같이 교제합시다” 그래서 아 어떻게 교제하나? 그래서 청년회 모임에 딱 갔더니 이런 것 하더라고,(웃음) 물론 그것도 교제의 한 방법일 수는 있겠죠. 사실 코이노니아란 단어는 매우 심호한 단어예요. 이것은 삶 전체에 참여한다는 의미예요. 그래서 삶과 삶이 연결되는 것이예요. 네가 상대방의 삶속 에 참여하고 상대방이 내 삶에 참여한다는 것이예요. 삶을 나누는 것이예요. 우리가 목장에 모일 때 마다 우리가 같이 우리 마음속의 고통과 아픔과 삶의 문제들을 내놓고 서로 기도합니다.
그리고 서로 격려를 나누어요. 그게 코이노니아예요. 삶을 나누는 것예요. 내가 상대방의 삶에 참여해요, 상대방이 내 삶 속에 참여하는 것이예요. 그러나 너무 어려운 사람을 위해서 우리가 헌금할 수가 있어요. 꾸어주는 것은 하지 마세요. 꾸어 주면 그것 때문에 교제가 깨져요. 꾸어주면 안되요. 드릴수가 있어요. 그냥 드리면 돼요.그러면 절대로 시험이 없어요. 그러나 꾸어주는 일은 하지 마세요. 성경은 꾸어주는 전통은 성경적으로 정당화되지 않았습니다. “너희가 사랑의 빚이외는 빚을 지지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정말 돕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돼요? 그냥 주면 돼요. 헌금해서 주면 돼요. 헌금해서 줄 때 거기에서 진정한 교제가 이루어 지는 것예요. 내가 상대방의 삶에 참여해요. 내가 상대방을 정말 아끼고 사랑한다면 물질까지도 줄 수가 있어야 합니다. 필요할 때 물질까지도 줄 수가 있어야 해요. 실제로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그렇게 물질로 유무 상통하며 어려운 이웃들을 세워지고 있던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자, 사실은 예루살렘교회가 모교회예요. 제일 중요한 교회. 모교회로부터 복음이 선포되고 많은 교회들이 세워졌어요. 이제 예루살렘 교회가 어려움 속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어디서 헌금합니까? 고린도 교회가 헌금을 해서 도와줬을 때, 고린도 교회와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이 어떻게 됩니까? 연결이 되요. 연합이 되요. 얼마나 진한 사랑을 느끼겠어요. 네. 자매 너무 어렵지? 하고 내가 다만 오천원이라도, 만원이라도, 이만원이라도 도와줄 때 우리 정말 이분이 나를 사랑하는 구나. 거기에서 느낄 수가 있단 말이죠. 진한 사랑을 느낄 수가 있어요. 그것이 연결이 돼요. 그래서 헌금은 연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외국의 어떠한 지역을 생각하고, 선교헌금을 했을 때, 그 지역과 우리가 연결이 되요. 갑자기 그 지역과 내가 낯선 지역이 아니고,그 지역에 사는 성도들과 내가 연결되는 것을 느낍니다. 지상에 있는 모든 성도들을 이 선교헌금을 통해서 우리가 연결이 됩니다. 크리스챤들의 코이노니아가 이루어지는 것이죠. 이것이 바로 헌금정신의 중요한 정신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아, 고린도 교회의 이 모범을 통해서 헌금의 중요한 정신 7가지.
헌금의 7가지 Principle, 원리들을 배울 수가 있었습니다. 첫째로 어떻게 드린다. 그 다음 두번째로 큰 두번째. 바울은 이 마지막 장에서 시간에 대한 얘기를 나눠요. 자기의 타임(Time) , 시간에 대한 얘기를. 우리가 선교하고 하나님의 일을 하려면 시간이 필요해요. 시간을 잘 사용할 줄 알아야 돼요. 그리스도인, 성실한 그리스도인, 충성스런 그리스도인이 되어 갈수록 바빠집니다. 그렇죠. 참 바빠져요. 할 일이 많아요.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은 시간이 많고 오늘도 뭐, 이마트로 월마트로 정신없이 돌아다니고 있는 이 시간에 삼성 플라자도 얘기하고, 롯데도 얘기해야지 공평하게 다. 그러나 교회 새벽에도 나오고, 낮에도 나오고 어떤 사람은 저녁에도 나올지도 모르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내일 모레 저녁에는 또 왕창 다 나와야 되고, 어디도 못 갈 것 같고, 참 시간이 바빠요. 그러나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시간을, Time을 잘 Manage할 줄 알아야 해요. 시간을 제대로 사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에베소서 5장에 보시면 바울은 “세월을 아끼라” 그랬어요. “때가 악하니라” . 세월을 아끼라. 여기서 아끼라하는 말은 평범한 단어가 아니라 시간을 본래 구원하라는 말이예요. 시간을 Save하라는 말입니다. 시간을 구원하라. 더 정확하게 말하면, 사람들의 영혼이 구원받는다, 구속받는다, 라는 말을 뜻하는 영어의 단어 가운데 Redeme.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Redeme. Redeme the time. Redeme. 이것은 값을 지불하고 대가를 지불하고, 뭐를 원상태로 회복시켜 놓는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세월을 아끼라는 말은 정말 잘 연구하고 생각해서, 고민을 하면서 댓가를 지불하고, 어떤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 잘 시간을 Manage 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우리가 짧은 인생을 살아요. 인생이 길지 않아요.이 짧은 인생동안 인생을 효과적으로 살고 아름다운 자취를 남기고 이세상에서 떠나가기 위해서는 남은 내 인생의 시간을 어떻게 잘 효과적으로 Manage해서 쓸 것인가? 이것을 생각해야 되요.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바울 사도의 고린도 교회를 향한 가르침을 통해서 시간 선용의 몇가지 중요한 원리를 배울 수가 있을 것입니다. 4가지 원리. 4가지 단어를 잘 생각하세요. 첫째로 계획을 해야 합니다. Plan을 해야 합니다. 시간을 잘 사용하려면 계획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돈도 잘 쓰려면 돈을 쓸 것을 계획할 때, 훨씬 더 효과적으로 쓸 수가 있습니다. 시간도 마찬가지 입니다. 시간 사용을 계획해야 합니다. 자, 바울은 본문에서 어떤 자기의 앞으로의 시간에 대한 계획을 분명히 하고 있었던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4절,5절 한번 같이 읽게 습니다. 다같이 시작. “만일 나도 가는 것이 합당 하면 저희가 나와 함께 가리라. 내가 마케도냐를 지날 터이니 마게도냐를 지난 후에 너희에게 나아가서”, 6절 “혹 너희와 함께 머물며 과동할 듯도하니 이는 너희가 나를 나의 갈 곳으로 보내어 주게 하려 함이라” 어떤 바울이 지금 계획을 세우고 있어요. 내가 너희들한테 고린도에 가기를 원하는데, 마게도냐를 지나서, 먼저 마게도냐를 들리고, 그리고 고린도를 가겠다.
우리가 고린도 후서 1장하고 연구를 해보면, 비교를 해서 자세히 연구해 보면 바울의 일정은 이렇게 됩니다. 우선 바울이 지금 이 편지를 어디에서 쓰고 있습니까? 에베소란 곳에서 쓰고 있습니다. 에베소 지역에서, 에베소에서 바울이 배를 타고 고린도로 갈 계획을 세웠던 모양입니다. 그 다음에 다시 마게도냐로, 그 다음에 마게도냐에서 다시 고린도로 내려왔다가 그 다음에 예루살렘으로 가겠다. 라는 어떤 계획을 세웠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다가 아무래도 여위치 못할 것 같아, 좀 더 생각을 해 보다가 계획을 조금 수정합니다. 우리가 계획을 하는 과정에서는 언제나 수정이라는 작업이 필요 합니다. 인간이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어떤 계획을 하다보면 아! 아니야. 이렇게 하면 더 효과적일 것 같애. 그런 수정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바울이 2차적으로 수정을 했던 것 같은데, 에베소, 마게도냐, 고린도, 예루살렘, 이런 식으로 자기 시간의 Plan , 어떤 여행 계획을 좀 바꿨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왜냐하면 7절에 보면, 7절 다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이제는 지나는 길에 너희 보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주께서 만일 허락하시면 얼마동안 너희와 함께 유하기를 바람이라” 무슨 얘기냐 하면 제가 제1차 바울의 계획은 에베소에서 고린도, 마게도냐, 고린도, 예루살렘 이렇게 계획을 했는데, 그래서 마게도냐를 가다가 고린도를 잠깐 지나 갈 생각을 가졌던 것 같아요. 바울이. 아,그렇게 되면 너무 짧다. 충분히 고린도 성도들과 그 동안 있었던 문제들을 이야기 하고 나누고, 또 그들에게 내가 정말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잠깐 얼굴만 보고 지나가는 식으로는 안되겠다. 그래서 나중에 계획을 좀 바꿨던 것 같애요. 그래 내가 마게도냐를 들렸다가 고린도에 가서 상당히 시간을 보내겠다.
그 후에 예루살렘으로 가겠다라는 식으로 시간을 계획을 변경했던것으로 보여집니다. 어쨌든 이런 Plan이 필요해요. 이런 계획을 세워야 해요. 계획을 잘 세워야 해요. 계획할수록 우리는 좀 더 효과적인 시간의 선용이 가능합니다. 우리가 잠언을 보시게 되면 “마음에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일의 성사는 여호와께 있다” 이런 말씀을 사람들이 잘못 해석을 해가지고 경영은 필요없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렇지 않아요. 이것은 하나님이 축복하지 않는 경영. 하나님이 축복하지 않는 계획은 필요가 없다라는 얘기지. 그것이 그 계획 자체의 무의미를 말하는 것은 아니예요. 우리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잘 계획을 Plan을 사용한다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계획. 두번째는 축복이라는 단어를 기억하세요. 축복이 되도록 시간을 계획하자. 첫째는 계획을 해야 되는데, 두번째는 축복이 되도록 제가 이미 말씀을 드렸어요. 바울이 지나가는 식으로 고린도 교회를 딱 지나가다가 이렇게 얼굴만 보고, 가지는 않겠다. 왜 그래요. 고린도 성도들에게 뜻있게 교제하면서 정말 내가 저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기왕에 시간을 보낼 바에는. 이것은 뭐냐하면 크리스챤들의 시간 사용, 소위 Time Management의 중요한 원리를 제시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 전체의 목적과 관련이 있어요.
그것은 뭐냐하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왜 부르셨다고 그러셨어요?축복의 근원이 되라. 우리가 복,복, 이웃들에게 축복이 되는 존재가 되기 위해서 그렇다면 내가 어떤 사람과 시간을 보낼 때 내가 그 사람하고 보내서 이렇게 시간을 보낼 때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될까? 신앙적으로 도움이 될까? 격려가 될까? 이런 것을 우선순위에 두고, 우리의 Time을 Plan하고 Manage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말이죠. 그래서 이웃에게 축복이 되도록 계획을 하자. 이것이 두번째 원리. 그리고 세번째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그 계획이 이루어 지도록 계획하자. 이것이예요. 첫째는 그 계획 자체가 중요합니다. 그런데 두번째는 뭐예요. 그 계획이 이웃들에게 축복이 되도록 계획하는 것이 중요하다. 세번째는 뭐냐하면, 그 계획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이루어 지도록 계획하자. 아무리 계획을 세워도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하시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허용하시지 않는다면, 그 계획은 아무런 의미도 없고 이루어 질수도 없는 것이죠. 자, 바울이 이러한 심정이 오늘 본문에 어떻게 나타나고 있습니까? 어떤 식으로 나타나고 있습니까? 어떤 단어에서 우리가 바울의 이런 심정을 볼 수가 있습니까? 본문에서 그게 몇 절이 있어요? 네, 7절 다시 한번 읽어요. 7절, 다같이 시작. “이제는 지나가는 길에 너희 보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주께서 만일 허락하시면 얼마 동안 너희와 함께 유하기를 바람이라” 여기 어떤 단어가 나와요. 만일 허락하시면, 다 같이 만일 허락하시면, 만일 허락하신다면, 내가 여러분과 교제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싶습니다. 만일 허락하시면, 그래서 미국 크리스찬들은 편지를 쓸 때 보면 그 단어가 굉장히 많이 나와요.
내가 미국사람들한테 편지를 받으면, 거의 빼먹지 않고 나오는 단어가 뭐냐하면 Lord ’s willing , Lord’s Willing 주님이 뜻하신다면, 주께서 원하신다면. 이런 말이 꼭 나와요. 이것이 성경적인 것이예요. 주께서 원하신다면. 제가 자매님과 좀 교제하고,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어요. 주께서 뜻하신다면. 주님이 허용하신다면 이 말이죠. 이것은 하나님의 섭리와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는 바울의 태도를 우리는 여기서 볼 수가 있죠. 자, 여기 중요한 단어 몇가지를 지금까지 생각했는데 하나만 더 하려고 하는데, 첫째는 무슨 단어예요. 계획. 두번째는 축복. 세번째는 섭리. 그리고 네번째로 크리스챤들의 시간 선용에 있어서, 중요한 단어는 성실함입니다. 성실. 현재에 성실해야 합니다. 우리가 미래의 계획을 아무리 세워도 현재에 성실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계획하고, 그것이 이웃의 축복이 되도록 계획하고, 그 계획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루어 지도록 계획하되,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부터 성실해야 합니다. 계획만 가지고 있어서는 안돼요. 오늘부터 성실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자, 바울이 지금 고린도 전서라는 편지를 어디서 쓰고 있습니까? 에베소에서 쓰고 있어요. 지금은 에베소에서 있어요. 그런데 바울이 내가 아무래도 에베소에서 좀 더 머물게 될 것 같다. 8절 내가 오순절까지는 에베소에 머물게 될 것 같다. 근데 보면 머물면서 어떤일을 할 것이냐? 9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내게 광대하고 공효를 이루는 문이 열리고 대적하는 자가 많음이니라”. 무슨말이면 지금 에베소에는 문이 활짝 열려있다. 넓은 문 광대한 문이 열려있다. 무슨 문일까요. 복음 전도의 문이 전도할 수 있는 문이 활짝 열려있다. 공효, 효과적으로 전도할 수 있는 효율성. 복음에 대한 효과적인 문이 활짝 열려 있다. 또, 대적하는 자도 많다. 복음의 기회가 많을수록 거기에는 무슨 역사가 많습니까?
사단의 역사가 많아요. 마귀의 역사도 있다. 그러나, 여기에 복음 전도의 놀라운 기회가 있으므로, 당분간 나는 에베소에 머물며 성실하겠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새로운 천년에 위대한 꿈을 갖는 것은 중요합니다. 위대한 비젼을 갖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오늘에 성실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내일의 비젼은 내일의 환상은 내일의 꿈은 개 꿈이 될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꿈이 정말 신령한 꿈이 되기 위해서는 위대한 비젼이 되기 위해서는 중요한 것이 오늘부터 성실돼요. 오늘부터. 오늘 어디에서 여기에서 오늘 여러분의 삶의 자리 이곳에서부터 성실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자, 바울은 마지막장에서 중요한 몇가지의 사역의 요소들을 지금 여기에서 우리 얘기하고 있는데, 첫째는 헌금. 둘째는 시간, 마지막으로는 사람입니다. 사람들. 함께하는 사람들없이 하나님의 일은 이루어 질 수가 없습니다. 동역자. 동역자. 바울은 동역자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 마지막 부분에서 다양한 동역자들의 이름을 열거함으로써, 우리는 바울이 동역자에 관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여기서 알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이 등장합니까? 에, 우선 디모데가 등장합니다. 디모데, 디모데에 대해서 어떤 얘기를 하고 있습니까? 10절 말씀을 다 같이 읽어요. 시작. “디모데가 이르거든 너희는 조심하여 저로 두려움이 없이 너희 가운데 있게 하라. 이는 저도 나와 같이 주의 일을 힘쓰는 자임이니라” 11절까지. “그러므로 누구든지 저를 멸시하지 말고 평안히 보내어 내게로 오게 하라. 나는 저가 형제들과 함께 오기를 기다리노라” .디모데는 바울의 뭐였습니까? 영적으로 아들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처음에는 아들이라는 표현을 쓰다가, 나중에는 바울이 형제 디모데는 이런 표현을 씁니다.
처음에는 아들처럼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가면 계속 아들은 아니잖아요. 그러나 지금은 동역자로 그의 성장한 것을 인정해 줘요. 형제라 이렇게 말이죠. 그러나 디모데는 아직도 젊은 전도자고, 아직도 디모데는 어렸어요. 어리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멸시 받을 가능성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디모데에게 편지할 때는 디모데서에서 어떤 말을 합니까?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라. 이런 말을 합니다. 한편, 디모데를 영접하라고 말하면서 저를 멸시해서는 안된다. 저를 평안히 보내어 내게 오게 하라. 이 디모데를 소중히 여기는 바울의 마음을 여기서 우리가 볼 수가 있습니다. 디모데를 격려합니다. 여기서 격려하고 있어요. 젊은 사역자를 격려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동역의 원리에 있어서, 격려라는 중요한 원리를 사용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주변의 사람들, 나보다 더 어려보여도, 나보다 더 재주가 없어 보여도, 우리가 함께 격려하면서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 수가 있습니다. 또, 두번째로 어떤 사람이 등장합니까? 디모데 말고 아볼로가 등장해요. 12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형제 아볼로에 대하여는 저더러 형제들과 함께 너희에게 가라고 내가 많이 권하되 지금은 갈 뜻이 일절 없으나 기회가 있으면 가리라” 아볼로는 뭐로 유명합니까? 사도행전에 보면 성경에 능한 자. 말씀을 잘 가르치는 사람. 일종의 어떤 성경학자 같은, 신학자 같은 그런 아카데믹한 은사를 가진 사람이 바로 아볼로였습니다.
교육 사역 말을 잘하는 표현을 잘 하는 웅변가였어요. 자, 아볼로를 여러분에게 보내면, 아볼로가 여러분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러나, 아볼로가 지금 갈 뜻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내가 곤고는 하고 있지마는 그에게 강요는 안하고 있다 이 말입니다. 우리 여기서 바울이 동역자를 대할 때 또 하나 어떤 자유함을 가지고 대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강제하지 않았어요. 강요하지 않았어요. 억지로 하라고 하지 않았어요. 자율성이 있어요. 자율성. 왜 아볼로는 고린도 가고 싶지 않았을까? 아마도 생각컨대, 지금 고린도 교회안에는 뭐가 있었어요. 고린도의 첫번째 문제가 무엇이었습니까? 분파 문제. 무슨 파들이 있었어요?. 예를 들어서 게바파, 베드로파, 바울파, 아볼로파. 이런 파가 있었잖아요. 그것은 의도적으로 아볼로가 파를 만들어서가 아니라, 아볼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파벌을 형성하고 있었으니까, 아볼로가 가면 그 파가 혹시 더 강화되지 않을까, 그래서 아볼로가 아마 가지 않았을 가능성이 아마도 있었을 것입니다. 지금은 안 가겠다. 그런 아볼로의 생각을 바울이 존중해 주었던 것 같아요. 초기 제자 훈련 시절에는 제자와 스승 사이를 너무 억지로 묶어 놓는 그런 충성심을 요구하는 경향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현대 제자 훈련에서는 좀 더 자유함이 강조되고 있어요. 자유한 관계. 아무리 그 사람이 내 영향을 받은 내 제자이어도 내가 그를 인격적으로 강제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바울은 아볼로의 자유한 생각을 존중해 주면서, 인격적 관계를 맺고 있었던 모습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이 등장합니까? 그 다음에 스데바나의 집 사람들. 스데바나의 집 사람들. 이 아가야 지역에서 바울의 전도를 받고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 되었던 사람들. 그러나 믿자마자 불타는 열심을 가지고, 바울과 그리고 복음의 사역에 헌신했던 스데바나의 집 사람들이 쭉 열거되고 있습니다. 바울은 그들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16절. 다 같이 읽습니다. “이 같은 자들과 또 함께 일하며 수고하는 모든 자에게 복종하라” 어떤 사람이 열심히 수고하는데, 사람들이 여기서 복종한다는 단어가 너무 무겁게 들리지만, 복종한다는 말은 따라간다는 말이예요. 어떤 사람이 열심히 일했을 때 그 사람을 따라가야져야 일이 된다 말이예요. 바울은 처음 믿은 사람들의 열정적 수고, 그들의 수고가 열매로 나타나기 위해서는 주변 사람들이 좀 따라 주어라. 따라 주어라.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이죠. 협력하라. 협력하라. 이것이 바울이 동역자들 사이의 협력의 중요한 원리를 강조하는 모습을 우리는 여기서 볼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여기 굉장히 재미있는 말이 나와요. 여기 18절에 보시면. 18절 우리 다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저희가 나와 너희 마음을 시원케 하였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이런 자들을 알아 주라” 열심히 수고 하는 사람들. 수고하는데 말이지, 그냥 이상한 소리를 해가지고 그 수고를 좌절시켜, 찬물을 끼얹어, 그렇게 수고하다 사람들이 시험을 받잖아요. 그러지 말고 이런 사람들을 알아주라. 아, 수고하시네요, 자매님. 혼자서 잘난 척 하지 말아요.
그래서 같고, 찬물을 끼얹어서 교회에서 수고하려다가 실컷 상처만 받고, 시험을 받고 떠나가는 사람들이 교회 사역의 현장에 적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런 사람들에게 시험이 되지 않도록 보호해 주고, 알아주고, 그러면 더 열심히 하게 되요. 사람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 주는 이 아름다운 봉사의 풍토를 만들도록 바울의 격려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몇몇 사람들이 더 나와요. 예를 들어서 브리스가라든지, 아굴라라든지, 19절 이하에 보시면 이런 사람들이 문안하고 있다. 문안을 전하고 있어요. 바울은 계속 사역자들을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틈을 내지 않아요. 사단은 계속 관계를 파괴합니다. 단절시켜요. 깨요. 그러나 바울은 연결시키는 사람이었어요. 바울의 동역의 중요한 원리중의 하나는 연결의 원리예요. Cordination의 원리. 연결의 원리. 잘 일하는 사람은 누가 잘 일하는 사람이냐? 연결시키는 사람. 그 사람이 있으면 사람들이 잘 모아져요. 그리고 서로 기분이 좋아져요. 어떤 사람이 있어 자꾸 계속 관계가 깨지면 아무리 열심히 해도 그 사람의 봉사에는 대단히 문제가 있고, 그 사람은 좋은 동역자가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기 동역의 중요한 원리 , 이 4가지 단어만 기억하세요. 첫째 격려함. 둘째 자유함, 세번째, 협력, 마지막 연결. 연결됨. 바울은 이런 아름다운 동역속에서 복음을 선포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 세계에서 확장시켜 나갔던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문제가 많았어요. 바울의 도움을 통해서 문제를 극복합니다. 그리고 쓰임을 받는 건강한 교회로 설 수가 있었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비젼과 그들의 회복이 우리 한국 교회와 우리 교회의 건강한 내일의 모습이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동원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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