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제사장 여호수아에 대한 환상 : 스가랴(5)
스가랴 3:1-10
======================================================================
오늘 3장에는 네번째 환상이 기록되고 있습니다. 네번째 환상의 내용을 일반적으로 말할 때, 대제사장 여호수아에 대한 환상이라 이렇게 말합니다마는 저는 대제사장 여호수아에 대한 환상이라고 하는 것이라기 보다도 3장의 Title을 이렇게 붙이고 싶어요. 이것은 큰 대제사장 그리스도의 환상이다.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다시 말하면 환상이 주인이 궁극적으로 누가 나 물 좀 갖다 주셨으면 좋겠는데, 바뀌니까 물도 없어지고 뭐, 이상해요. 큰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가 궁극적인 이 환상의 주인이라 할 수가 있습니다. 구약시대에 속죄 사역을 담당하고 있는 제사의 사역을 담당하고 있는 그 주인공들은 물론 제사장들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으뜸되는 제사장을 가리켜서 우리가 대제사장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신약 성경에 보시면 특별히 히브리서, 이 히브리서는 구약하고 신약을 접속하고 있는 Link하고 있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책이죠. 이 히브리서 4장 14절 말씀에 보시면 이것은 히브리서 4장 14절 한 구절에만 나오는 내용이 아니라 히브리서 전체의 주제라고도 할 수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서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우리의 큰~ 대제사장. 다시 말하자면 대제사장 앞에다가 수식어가 하나 더 붙어요. 그 수식어가 바로 뭡니까? 큰 대제사장. 영어에 보면 The Great High Priest. 보통 대제사장을 high Priest 인데 그 앞에다가 Great라는 단어가 더 붙습니다. 큰 위대하신 대제사장. 예수님을 구약성경의, 구약 시대의 제사장들과 대제사장들 일반적으로 구별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서 그분을 위대하신 대 제사장 혹은 큰 대제사장이라 이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물론 이 본문에 표면적으로 나타난 그 주인공은 여호수아라는 인물입니다. 여호수아가 여러 사람이 있어요. 여호수아를 한 사람으로 생각하시면 안됩니다. 제사장 여호수아도 있습니다.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여호수아.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간 그 여호수아 말고 여호수아 대제사장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바벨로니아에서 포로되었던 상태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기적으로 귀환하게 되었을 때, 그 스룹바벨이라는 지도자 아래에서 약 5만명에 가까운 이스라엘 사람들이 시온의 땅으로 돌아 옵니다. 이 돌아오는 행렬 속에는 대제사장이었던 여호수아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스가랴가 활동하고 있었던 그 당시, 그 시대의 대제사장이었습니다. 자, 오늘 3장 1절에 보시면, 자, 스가랴 3장 1절 다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사자 앞에 섰고 사단은 그의 우편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시니라" 그랬습니다. 여호수아를 가리켜서 대제사장 여호수아 이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시면요, 대제사장 여호수아 말고,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분이 한 분이 본문에 그림자처럼 그러나 훨씬 더 중요한 비중을 가지고, 있는 분으로 다루어지고 있는 분이 있습니다. 자,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어디 앞에 서 있다고 그랬어요. 여호수아의, 여호와의 사자앞에 있다. 사자 앞에 있다. 그러니까 여호와의 사자는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어느 편에 있을까요? 뒤에 있어요. 뒤에. 그림자처럼 뒤에 있는 바로 그 분. 여호와의 사자. 자, 이 스가랴서에서 여호와의 사자는 매우 독특한 한 분을 가리킨다는 사실을 이미 말씀 드렸습니다. 그 분이 누굴까요? 예수님이예요. 성삼위 하나님 가운데,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 가운데 제 2위에 해당되는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종종 구약 시대에서 어떤 경우에는 천사로 나타나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사람의 모습으로 자신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다른 천사들과 구별되는 독특한 그 천사의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여호와의 사자. The angel , The angel of The Lord. 주님의 독특한 그 천사의 역할을 했던 분. 예수 그리스도예요. 그분이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뒤에 서있는 걸로 되있어요. 그림자처럼 서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그 분이 바로 누굴까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면 여호수아는 어떤 의미로 나타났을까요? 제사장인데 제사장의 책임은 물론 백성들의 책임을 대표하는 것입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환상 속에 나타난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그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표할 뿐만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모든 시대를 살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표하는 존재로 생각합니다. 우리들을 대표하는 존재가 이 대 제사장 여호수아라고 생각하시면 되는 것입니다. 자, 그가 어떤 역할을 하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을 한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한 그 분의 역할, 예수 그리스도의 역할, 그 걸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그가 바로 여호수아라는 제사장과의 관계에 있어서, 여호와의 사자이신 그 분이 하고 있는 역할, 이것이 바로 오늘 이 시대에도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여러분과 저를 위해서 하고 계시는 역할을 상지하신다는 것을 기억하시면 되겠어요. 어떤 역할을 하실까? 네가지 역할이 오늘 본문에 등장합니다. 첫째로는 그리스도의 변호하심. 우리를 위해서 변호하세요. 그것이 1절과 2절이고, 둘째는 우리를 용서하심, 우리 죄를 사하심. 그것이 3절과 4절입니다. 셋번째는 5절부터 7절까지 우리를 소명하심. 그리스도의 소명. 그리고 8절부터 10절까지는 우리를 구원하심.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그리스도의 변호, 그리스도의 용서. 그리스도의 소명. 그리스도의 구원,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역할을 오늘 본문에서 다룰 수가 있습니다.
첫째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변호입니다. 3장 1절과 2절입니다. 다 같이 읽겠습니다. 3장 1절과 2절 다같이 시작.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사자 앞에 섰고 사단은 그의 우편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시니라,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 하실 때에."
자, 이것을 보면 사탄이 또한 출현하는데요, 사탄이 어디에 있었습니까? 대 제사장 여호수아의 우편에 섰다 그랬습니다. 우편에 서 있어야 할 분은 주님이시지만은 마귀가 아마 주님의 자리를 점령하고 자기가 마치 그리스도인 것처럼 과장하면서 여호수아를 대적하는 존재로 마귀가 사단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사단의 역할을 한마디로 말하면 그는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대적하는 것. 그래서 사탄을 대적자, 적대자,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는 역할을 해요. 대적하면서 참소합니다. 대적하는 방법 중에 하나가 참소예요. 마귀의 뜻이 참소라 그랬죠. 참소. 하나님의 백성들을 고발하고 참소는 것입니다. 사단이 하나님의 백성을 참소한다 그것은 그 때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도 마귀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참소합니다. 우리가 사단이 마귀가 하나님의 백성을 참소한다고 말할 때 성경에서 대표적으로 들어나는 인상적인 광경 하나가 연상되지 않습니까? 무슨 사건이 생각나십니까? 욥. 맞습니다. 여러분이 욥기1장과 2장에 보시면 사단이 하나님의 보좌앞에 와서 욥을 참소하고 있죠. 하나님의 백성인 욥을 참소합니다. 아주 제가 의인인 것 같고 열심히 섬기는 것 같지마는 팔자가 좋아서 그래요. 하나님. 저 좋은 팔자 한번 뺏어 보세요. 어떻게 되나? 형편없이 하나님을 욕하고 그리고 하나님을 떠나 갈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백성을 참소하던 이 사단의 역할은 지금도 조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지금도 하나님의 백성들을 고발하고 참소하는 그 기능을 계속해서 담당하고 있습니다. 아니 마지막 때가 가까울수록 사단의 참소의 기능은 더 해 질 것입니다. 자, 우리가 요한 계시록 12장 10절을 한번 찾아 보세요. 요한 계시록 12장10절입니다. 요한계시록 12장 10절입니다. 요한계시록 12장 10절입니다. 조금 배가 고프지 않으십니까? 그러네요. 가만히 보니까 그래서 이런 소망이 생겼어요. 설교가 전보다 훨씬 더 짧아질 것이다. 식사시간에는 소망 중에서 진행이 될 것이다. 별로 감동이 안되시는 것 같으세요. 그만 두십시오.
요한계시록 12장 10절 말씀입니다. 요한 계시록 12장 10절 다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가로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이루었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사단이 결정적 패배를 당하고 있는 당하기 시작하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는데 여기서 사탄 마귀를 어떤 자로 묘사하고 있습니까?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언제 참소한다고 그랬어요. 밤낮으로 참소한다. 사단이 밤낮으로 참소해요. 우리는 사단의 이 참소의 역할을 오늘 본문에서도 볼 수가 있습니다.
자, 다시 스가랴 3장으로 돌아오시면 3장1절에는 그를 대적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시니라. 자,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2절에 보면 하나님이 사탄을 향해서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사단아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단을 오히려 책망하세요. 이 사단을 책망하시는 하나님의 능력. 그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사단의 참소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낮추고 우리를 실망하게 만들고 좌절시키고, 신앙에서 떠나게 하려는 사단의 이 끊임없는 참소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가 주앞에 설수가 있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도우심과 능력과 은혜인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역할이예요. 사단이 우리를 참소할 때 사단의 역할이 일종의 검사 역할과 비슷합니다. 요즘 검사님들이 고생 많이 합니다만은 검사가 참소해요. 고발합니다. 일단 고발을하면 그 옆에 또한 누가 있어요. 변호사가 있어요. 그렇지 않습니다라고 변호를 합니다. 자, 우리를 변호하는 자가 누굴까요? 자,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역할이죠. 자, 이 역할이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는 장면이 아마, 요한일서 2장 1절 모습일거예요. 한번 다 찾아 보세요. 요한 일서 2장1절입니다. 요한일서 2장 1절. 요한일서 2장 1절의 말씀입니다.
다 같이 읽겠습니다. 요한일서 2장1절, 다 같이. 시작. "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다. 우리를 대언해 주시는 분이 있다 그 분이 바로 누구라 그랬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라. 여기서 대언자라는 단어를 가장 실감나는 현대적인 표현으로 다시 바꾼다면 뭐라고 바꿀수가 있을까요. 변호사가 있으니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변호해 주는 분이 있으니 바로 그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라 그랬습니다. 사단은 우리를 참소하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변호하십니다. 자, 마귀의 참소에도 불구하고 마귀의 참소가 이루어지면 나도 알아요. 막 자신을 자학하게 되고 신앙에서 떠나고 싶고, 이것은 마귀의 참소의 결과라고 생각하시면 되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주의 보좌를 향해서 나올 수가 있는 것. 그것은 그리스도의 변호 때문이라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주님의 변호를 우리가 경험할 때 비로소 우리는 바울처럼 이렇게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사단이 우리를 대적하지만 우리는 또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하나님의 백성된 우리를 누가 대적하겠습니까? 사망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위험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칼이나, 그 아무도, 그 누구도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는 줄을 믿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변호예요. 그러면서 우리의 모습을 이렇게 말하고 있어요. 3장 2절에 보시면 사단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예루살렘은 나의 택한 자다. 시온은 나의 택한 자다. 모든 시대를 털어서 통 털어서 그리스도 예수의 은혜로 구원함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은 자신의 시온처럼 간주하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해요. 이는 불에서 꺼낸 뭐라 그랬습니까?. 그슬린 나무. 이게 우리들의 모습니다.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 따라서 하십시다.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 이 표현을 아주 즐겨 사용했던 사람이 요한 웨슬리예요. 요한 웨슬리 그는 간증할 때마다 "나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다"라는 이런 표현을 자주 썼습니다. 왜냐하면 실제로 요한 웨슬리 생애 가운데 그가 어렸을 때 6살 이었을 때 그 교회 목사관 비슷한데서 그가 잠을 자다가 화재가 일어 났습니다. 불이 났습니다. 지붕이 화재로 말미암아, 가라앉기 직전에 이웃집에 살던 사람이 뛰어들어 극적으로 어린 요한 웨슬리를 끄집어 냈습니다. 그래서 이 사건을 상기하면서 웨슬리는 한 평생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그 때 정말 죽어어야 한 존재인데 주께서 나를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처럼 살리셨고, 그리고 때가 찬 시각 마침내 나를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하셔서 하나님은 나를 쓰시고 있다. 그랬습니니다. 그렇습니다. 이렇게 극적으로 살려주신 당신의 자녀를 주께서 포기하실수가 있겠습니까? 사단의 참소에도 불구하고 마귀의 대적에도 불구하고 주께서 우리를 지키신다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주님의 변호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변호 때문에 사단의 정죄와 참소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는 여기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몫의 믿음의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변호.
두번째는 3절과 4절에 보시면 그리스도의 용서하심.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사하심에 대한 증언이 기록됩니다. 환상으로 나타나있어요. 이것이 3절과 4절이 같이 읽어요. 시작.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섰는지라,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과를 제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
자, 여호수아가 무슨 옷을 입고 있었어요. 더러운 옷을. 자, 제사장 여호수아는 누구를 대표한다고 그랬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을 대표합니다. 그것은 오늘 우리를 대표하는 것이기도 해요. 모든 시대의 하나님의 백성들 그들은 본래, 우리는 본래 무슨 옷을 입고 있던 자에요? 더러운 옷을 입고 있던 자예요. 여호수아가 입고 있었던 더러운 옷. 그것은 바로 여러분과 나의 모습입니다. 더 원색적으로 말할까요. 여러분과 저의 꼬라지 이예요. 네, 그것이 우리들의 모습이었어요. 더러운 옷을 입고 있었어요. 근데 이 환상이 보여주고 끝났다면 이 더러운 옷을 입고 계속해서 서 있는 여호수아의 모습이라면 우리는 얼마나 실망할까요. 어떻게 하셨습니까? 하니님께서 그에게 이런 선언을 하십니다. 내 죄는 사하여 졌다. 선언을 하세요. 그리고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힌다. 더러운 옷 대신에 우리에게 무슨 옷이 입혀지십니까? 아름다운 옷이 입혀집니다. 이것이 범죄했던 우리들이 주께서 우리들을 받아 주실 때 예수께서 우리들을 받아 주실 때 우리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의롭다고 선언해 주시는 의에 옷을 입는 우리의 아름다운 모습인 것을 보시길 바랍니다.
자, 이사야 64장 6절에 보시면 이사야 선지자는 사람들이 추구하고 있는 의 , 또 인간이 자랑하고 있는 의에 정체를 가리켜서 이사야 64장 6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의는 마치 다 더러운 옷과 같으나" 이렇게 기록돼 있어요. 우리의 의는 더러운 옷과 같다. 근데 이 더러운 옷이라는 번역은 사실은 아주 얌전한 번역에 속합니다. 본래의 뜻은 더러운 걸레. 더러운 걸레와 같다.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우리들의 모습. 본래의 모습. 하나님이 보시기에 여러분 다 재구 앉아 계시지만 속을 꿰뚫어 보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눈으로 보실 때는 우리가 입고 있는 옷이 다 무슨 옷이라고요. 누더기를 입고 있어요. 걸레인 누더기를 입고 있어요. 그것이 우리들의 진상이었어요. 우리들의 진상. 우리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환상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 환상으로 계속되었더라면 그것은 비극적인 모습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내 죄가 사하여 진다는 여호와 하나님의 선언과 동시에 그 다음에 아름다운 옷이 입혀진다는 약속이 나옵니다. 그것이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진 사실이예요. 우리가 주님 앞에 나왔을 때, 주께서 우리를 용서하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의로운 옷을 입혀 주시는 주님의 은혜를 믿으시길 바랍니다. 자, 이 주님의 은혜 때문에 사단의 참소는 패배할 수 밖에 없는 것이예요. 마귀의 참소는 결국은 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아마도 여러분은 이런 얘기를 들으셨을 거예요.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예요. 저 유면한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의 생애 가운데 일어났던 일입니다. 1900, 1990,1251년인가? 종교 개혁이 일어났던 그 해, 한참 개혁을 진행하고 있었을 때, 마틴 루터가 마음속에 어느 날 깊은 고통을 안게 되었습니다. 내가 과연 이런 종교 개혁을 할 자격이 있나, 개혁을 하면서도 자기 자신에 대한 그런 아픔과 고통이 그를 짓누르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그 고민을 하다가 잠들었어요. 마틴 루터가 잠들었어요. 근데 그 꿈 가운데서 마귀가 나타나서 다가옵니다. 그러면서 쫙 루터가 지금까지 범했던 죄의 목록들을 쭉 쓰는 것예요. 하나도 부인할 수 없는 것이었어요. 실제로 그는 그렇게 주 앞에 범죄한 자였습니다. 이 마귀가 보여주는 루터 자신이 보여 주는 루터 자신의 죄상 앞에서 루터는 꿈이지만 고개를 들지 못하고 떨구고 있었습니다. 쩔쩔매고 있었습니다. 너는 이 종교에서 벗어날 수 없다. 마귀가 회심의 미소를 흘리던 순간 꿈속이지만 갑자기 루터의 머리 속에 스치고 지나가는 말씀이 있었어요. 그가 평소에 외워 두었던 말씀이예요. 그가 붙들고 있었던 말씀이었습니다. 그 말씀이 뭐냐하면 요한 일서 1장 7절 말씀이었습니다. "그 아들 예수의 피가 너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이 말씀이 갑자기 생각이 나는 것이예요. 그 말씀을 붙들었습니다. 사탄을 향해서 마구 소리치는 거예요. 네, 지적은 맞다. 내가 그런 범죄를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내가 믿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이 모든 죄에서 나를 속양했느니라. 그리고 옆에 있던 잉크병을 들어서 마귀를 향해서 집어 던졌어요. 잉크병이 벽에 가서 맞으면서 잠을 번쩍 깼습니다. The Waterful clock Castle. 이라는 유명한 성에서 일어난 사건이고 깨어나 보니까 잉크병 자국이 벽을 꿰 뚫었습니다. 그리고 루터는 마음에 큰 자유를 얻었습니다. 주 앞에 도저히 설 수 없는 더러운 옷을 입고 있었던 우리의 정체에도 불구하고 십자가 앞에 나올 때, 주님 앞에 나올 때,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의 그 모든 죄에서 속양하여, 다시 주앞에 당당히 세워 주시는 은혜를 믿으시길 바랍니다. 주께서 우리의 죄 값을 사하여 주셨습니다. 바로 그 선포에 바로 그 환상인 것입니다.
그 다음, 세번째는 그리스도의 소명입니다. 3장 5절부터 7절까지 그리스도의 소명입니다. 3장5절부터 7절까지 그리스도의 소명입니다. 다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내가 말하되 정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소서 하매 곧 정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며 옷을 입히고 여호와의 사자는 곁에 섰더라. 여호와의 사자가 여호수아에게 증거하여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네가 만일 내 도를 준행하며 내 율례를 지키면 네가 내 집을 다스릴 것이요. 내 뜰을 지킬 것이며 내가 또 너로 여기 섰는 자들 중에 왕래케 하리라"
실제로 주인공은 대제사장 여호수아지만 그림자처럼 이 본문에 계속 나타나고 있는 분이 누구예요. 여호와의 사자. 바로 그 분이 누구라 그랬어요. 예수 이십니다. 이제 어떤 역할을 하나 보세요. 우선 어떤 역할을 했습니까? 내가 말하되 정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소서 하매 그 정한 그 정결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매 옷을 입히고 여호와의 사자는 곁에 섰더라. 그 정한 관을 관, 이게 무슨 뜻일까요? 여러분 출애굽기 28장을 좀 자세히 가서 읽어보시면 그 제사장이 아론 제사장이 취임할 때 반드시 머리에 관을 씁니다. 이것은 제사장이 되었다 이말이예요. 아마도 대제사장 그 당시 여호수아도 이런 말이 이런 생각이 있었을 거예요. 내가 정말 백성들을 대신해서 속죄제의 제사를 드릴 제사장의 자격이 있나? 나도 부족하고 더럽혀진 사람인데 저도 목사일을 하면서 그런 생각이 저를 지배할 때가 너무나 많아요. 내 부족을 느낄 때마다 내 연약함을 느낄 때마다 내가 과연 하나님의 거룩하신 말씀을 선포할 수 있는 그런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자격이 있어서 선 것이 아니예요. 은혜로 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보혈을 신뢰한 것으로 서는 것입니다. 거기서 끝나지 않고 주님은 그의 죄가 속양되었다는 선포. 아름다운 옷을 입혀 주셨을 뿐만 아니라, 이제 뭘 해주십니까? 이제는 관을 씌워 주세요. 정결한 관을 씌워 주십니다. 그것은 뭐냐하면 너는 제사장 자격이 있다. 이말이야 너는. 제사장 자격이 있다. 제사장 역할을 하라 이 말입니다. 여러분 이 제사장은 비록 대제사장에만 주어진 Title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신약시대에 와서 이 제사장은 바로 누굽니까? 네. 제사장이 누구예요. 목사가 제사장이죠. 제사장이 누굽니까?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다 제사장이예요 이것이 만인 제사장 주의예요. 근데 이게 구약에서부터 벌써 나와요. 신약에만 나온 것이 아니라 구약에서부터 특수한 제사장이 있었지만 제사장의 속죄의 일은 모든 백성들을 다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선택하셨을 때, 그 백성 전체를 향한 하나님의 언약이 그것이었습니다. 출애굽기 19장 6절을 찾아 보세요 출애굽기 19장 6절, 출애굽기 19장 6절입니다. 자, 다 같이 읽습니다. 출애굽기 19장 6절 다 같이 읽습니다. 시작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찌니라"자,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뭐가 된다 그랬어요? 제사장 나라가 된다. 그 백성 전체가 하나님 앞에 나오고 그리고 이웃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할 수 있는 제사장 나라가 되리라고 말씀했어요. 신약에 오면 이 제사장 특권이 누구에게 주어집니까?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우리는 다 왕 같은 족속이요. 하나님의 택함을 입은 제사장이라고 말씀십니다. 왕 같은 제사장들, 우리가 바로 그 분에게 선택함을 받아 그 분앞에 언제든지 나갈 수가 있고, 또 그 분의 말씀을 들고 사람들 앞에 나갈 수가 있는 나를 제사장으로 삼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바로 그 제사장이예요. 그 제사장의 소명을 확인해 주시는 것이예요. 확인해 보시면 본문에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다시 스가랴 3장으로 돌아오시면 7절에 중간 부분에 이렇게 말씀했어요. "네가 만일 내 도를 준행하며, 내 율례를 지키면" 그렇습니다. 우리가 말씀 가운데 신실하게 거한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계속 쓰실거예요. 그러나 우리가 제사장으로 선택함을 받아서도 계속 범죄하고 주 앞에서 계속 불 순종한다면 하나님은 나를 쓰실 수 없습니다. 내가 그의 말씀을 지킴에 삶 안에 계속해서 머물러 있다면, 그 약속이예요. 네가 내 집을 다스릴 것이다. 내 집을 다스릴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바로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 하나님께 쓰임을 받은 제사장으로 주님의 손에 붙들린 바 된 삶을 살아 갈 수 있다는 사실은 믿으시길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우리를 향한 소명이예요. 우리를 향한 소명. 그의 집에서 섬기고 그의 뜰을 지키며 우리는 하나님에 의해서 쓰임을 받는 제사장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 3장 8절부터 10절까지 .3장 8절부터 10절까지인 그리스도의 구원이 다시 약속됩니다. 8절부터 10절까지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대 제사장 여호수아야 너와 네 앞에 앉은 네 동료들은 내 말을 들을 것이니라 이들은 예표의 사람이라 내가 내 종 순을 나게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 여호수아 앞에 세운 돌을 보라 한 돌에 일곱 눈이 있느니라 내가 새길 것을 새기며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너희가 각각 포도나무와 무화과 나무 아래로 서로 초대하리라 하셨느니라" 이 마지막 부분에서 다시 스가랴의 환상 속에서 이 모든 환상의 궁극적인 주인이신 곧 바로 역사 속에 오실 메시아의 모습이 약속됩니다. 여기서 메시아는 이 마지막 부분에서 몇가지 이미지를 가지고 나타나요. 3가지 이미지를 가지고 나타나시는데 장차 오실 메시아가 3가지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우선 8절에 보시면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너와 네 앞에 앉은 네 동료들은 동료 제사장들은 내 말을 들을 것이니라 이들은 예표의 사람이라" 그 다음에 나와요 "내가 내 종 순을 나게 하리라." 여기에서 우선 메시아의 약속, 첫번째로 메시아를 뭐라 부르냐면 내 종. 나의 종 My Servant. 나의 종이라 그랬어요. 메시아는 나의 종이다. 하나님의 종이다.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Mission을 감당하기 위한 나의 종이다.
그 다음에 두번째로 메시아의 이미지를 뭐라 불렀습니까? 순이라 그랬습니다. 순. 순. 순은 가지란 말이예요. 가지. 가지 순 자. Branch .가지. 순이다 말입니다. 순. 메시아의 이미지가 가지로 약속된 것은 성경에 자주 나와요. 이사야에서도 많이 나오고요. 예레미야에도 등장합니다. 예컨대 예레미야 23장 5절에 한번 찾아보세요. 예레미야 23장 5절. 찾아 보시길 바랍니다. 예레미야 23장 5절입니다. 예레미야 23장 5절 말씀입니다. 예레미야 23장 5절. 다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행사하며 세상에서 공평과 정의를 행할 것이며" 이게 메시아의 약속인데 다윗에게서 한 가지가 나온다. 다윗의 후손 가운데에서 가지와 같은 새로운 생명의 싹이 나온다. 그는 왕이 되어 지혜롭게 행사할 것이고, 세상에서 공평과 정의를 행할 것이다. 누굽니까? 예수님 메시아에 대한 약속이예요. 그는 나의 종, 그리고 나의 순, 나의 순, 순 , 순의 이미지는 부드럽죠. 새로운 생명의 싹으로 오신 부드러운신 예수님. 그러나 예수님의 또 하나의 이미지. 메시아의 또 하나의 이미지가 나옵니다.
다시 스가랴 3장으로 돌아 오셔서 그 다음절에 보시면 9절에 보시면 뭐라 그랬습니까?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 여호수아 앞에 세운 이번에는 뭐라 그랬어요. 돌. 메시아의 이미지가 이번에는 뭘로 나타납니까? 돌로 나타납니다. 순하고 돌은 대조적이죠. 순은 순하고 돌은 돌이고 네, 돌은 견고한 순하기만한 예수님이 아니라, 그분은 견고한 메시아가 되십니다. 이 돌 위에 돌, 보배로운 기초 돌 위에 백성의 공동체가 세워질 것입니다. 모퉁이 돌. Corner stone. 신약에 가시면 이 보배로운 돌 되신 예수님. 그 예수님위에 하나님의 공동체가 세워질 것을 약속하십니다. 다시 말하자면 이 그리스도께서 메시아가 되시사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실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이미지는 약속을 이렇게 나타납니다. 자, 스가랴 3장 10절 다같이 읽습니다. 3장 10절. 시작.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너희가 각각 포도나무와 무화과 나무 아래서 서로 초대하리라 " 어떤 이미지가 느껴요. 여러분. 포도나무와 무화과 나무 아래서 서로 왔다 갔다하는 모습 어떤 이미지예요. 네. 기분 나빠요. 기분좋은 이미지예요. 기분 좋죠 평화의 이미지 예요.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주 평화의 아름다운 이미지를 상징할 때 무화과 , 포도나무 아래서 서로가 서로를 초대하며 왔다 갔다 . 하나님의 샬롬! 평안이 이루어진 모습. 메시아가 오실 때 하나님의 종이신 메시아, 생명의 가지 순처럼 오신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하나님의 공동체를 세우실 견고한 반석이신 돌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오시게 될 때, 그분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은 참된 평안을 얻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이 주님이 우리의 소망이신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아멘. 할렐루야. 기도하십시다.
이동원목사
'추천 설교 > 이동원목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작은 여우들을 잡으십시요./아가서 2:11-17 (0) | 2015.10.04 |
---|---|
[스크랩] 두가지 유형의 목자 : 스가랴(13) (0) | 2015.10.04 |
[스크랩] 당신의 가능성을 실현하십시오 (0) | 2015.10.04 |
[스크랩] 달리다굼 (0) | 2015.10.04 |
[스크랩] 다시 붙잡아야 할 비젼 (0) | 2015.10.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