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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두가지 유형의 목자 : 스가랴(13)

두가지 유형의 목자 : 스가랴(13)

스가랴 11: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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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랴의 마지막 네번째 부분 9장부터 14장까지. 두개의 약속. 한마디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메시아의 오심에 대한 약속이 마지막 부분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11장에다가 제목을 붙일 수가 있다면 두 가지 유형의 목자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두 가지 유형의 지도자, 혹은 두 가지 유형의 목자. 우리 10장과 11장에서 스가랴 선지자는 장차 오실 메시아를 지도자로 묘사합니다. 그는 지도자로 오신다. 이 리더로써 지도자로써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아주 탁월한 상징 가운데 하나가 바로 목자라는 표현입니다. 목자. 우리 교회에서도 목자라는 단어를 많이 쓰고 있습니다만은. 장차 오실 예수님, 그 메시야를 목자로 표시하고 있습니다. 우리 11장에는 선한 목자와 악한 목자를 비교하고 있습니다. 선한 목자와 악한 목자를 비교합니다. 선한 지도자와 악한 지도자. 리더쉽을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다면 저는 리더쉽을 영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리더쉽은 영향력입니다. 자신이 지도자라고 생각하시는 분 한번 손들어 보세요. 지도자로 생각하시는 분. 지도자가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분 손들어 보십시오. 자기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자기가 원하든, 원치않든 영향을 끼칩니다. 자기가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 보십시오. 그 사람은 다 지도자예요. 그러나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고, 또 안 좋은 영향을 우리가 끼칠 수가 있습니다. 우리 지도자들 가운데 보면 우리가 예수님처럼, 또 테레사 여사처럼 한 생애를 살면서 아주 아름다운 영향을 끼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또 히틀러처럼 아주 악한 영향을 남긴 사람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또 짐 존슨 같은 종교계에도 교주가 되가지고 많은 사람들을 죽음의 자리로 이끈 아주 악한 영향을 끼친 지도자, 사람들의 생애 속에 일생을 망치는 악한 그런 결과를 남기게 한 지도자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크게 두 부분으로 다시 나눌 수가 있다면 11장 1절부터 3절까지는 서론 부분인데, 11장의 서론적인 부분인데, 악한 지도자는 결국 멸망한다. 멸망에 대한 선언으로 시작이 됩니다. 그리고 11장 4절부터 시작해서 마지막 절까지 그 선한 목자와 악한 목자를 대조하고 있습니다. 비교하고 있습니다.

 

 

자, 우리 1절부터 3절까지 같이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1절부터 3절까지 다 같이 시작. "레바논이 네 문을 열고 불이 네 백향목을 사르게 하라. 너 잣나무여 곡할찌어다 백향목이 넘어졌고 아름다운 나무가 훼멸되었도다 바산의 상수리 나무여 곡할찌어다 무성한 산림이 엎드러졌도다. 목자의 곡하는 소리가 남이여 그 영화로운 것이 훼멸되었음이로다. 어린 사자의 부르짖는 소리가 남이여 이는 요단의 자랑이 황무하였음이로다." 우리는 성경학자들은 여기서 말하는 그 목자들이 악한 지도자들이, 이방의 지도자들을 말하느냐, 혹은 이스라엘 지도자를 말하느냐. 하는 그런 논쟁을 벌립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이방의 지도자를 얘기하는 것처럼 보여질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1절에 레바논아, 혹시 레바논의 지도자, 이스라엘 북쪽에 있었던 레바논 국가의 지도자를 혹시 향해서 선포했던 메시지가 아니였느냐?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레바논아 네 문을 열고 불이 네 백향목을 사르게 하라. 어떤 학자들은 이것이 꼭 레바논을 의미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종종 건축을 하고 그럴 때 레바논에서 백향목을 실어 왔는데 그것이 레바논이 자랑하던 백향목에 비추어서 이스라엘 지도자들을 상징시킨 일종의 상징에 불가하다. 이렇게 생각하는 더 많은 학자들이 있습니다. 저는 후자의 견해를 더 지지하는 편인데요, 여기 지도자들의 모습이 종종 성경에서는 그 나무로 상징 되었습니다. 나무.

여기 1절에는 레바논이 자랑하는 백향목. 나오는가 하면, 그 다음 절에는 어디가 나와요. 또 하나의 지명이 나오는데 바산이라는 지명이 나오죠. 2절에는 바산. 갈릴리 동북쪽에 있는 지명을 바산이라고 불렀습니다. 바산의 상수리 나무여. 바산의 상수리 나무여. 레바논의 자랑거리인 백향목. 이 바산지역에는 아주 아름다운 그리고 곧은 상수리 나무들이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종종 성경에 보면 사람을, 지도자들을 이런 나무에 비교한 표현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우리가 이사야 11장 1절 같은데 보면 다윗을 가리켜서 이새의 줄기에서 나온 싹이다. 이새의 줄기에서 나온 싹과 같다. 이렇게 표현이 나오기도 하고 또, 여기 백향목이 나왔습니다만은 우리가 에스겔 17장 한번 찾아 보실까요. 에스겔 17장 20, 에스겔 17장, 에스겔 17장. 네 에스겔 17장. 자, 에스겔 17장 22절부터 보시겠습니다. 에스겔 17장 22절부터. 22절, 23절 같이 읽습니다. 다 같이 시작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또 백향목 꼭대기에서 높은 가지를 취하여 심으리라 내가 그 높은 새 가지 끝에서 연한 가지를 꺾어 놓고 빼어난 산에 심되" 23절 "이스라엘 높은 산에 심으리니 그 가지가 무성하고 열매를 맺어서 아름다운 백향목을 이룰 것이요 각양 새가 그 아래 깃들이며 그 가지 그늘에 거할찌라" 이는 느부갓네살이라는 그런 지도자에 대한 이방인 지도자에 대한 상징을 그렇게 기록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비슷한 표현이 에스겔 31장에도 나와요. 에스겔 31장을 한번 보세요. 에스겔 31장을 보시면 첫머리 부분에 이렇게 시작하죠. 에스겔 31장 1절에 보시면 "제 십일년 삼월 초 일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너는 애굽 왕 바로와 그 무리에게 이르기를 네 큰 위엄을 뉘게 비하랴" 지금 애굽의 통치자요, 지도자인 바로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3절에 보시면 "볼찌어다 앗수르 사람은 가지가 아름답고 그늘은 삼림의 그늘 같으며 키가 높고 꼭대기가 구름에 닿은 뭐예요, 레바논 백향목이었느니라" 레바논이 자랑하는 백향목. 백향목을 종종 지도자들에 대한 그 상징적 이미지로 사용하고 있는 표현을 우리가 여기서 볼 수가 있습니다.

아마도 스가랴 선지자는 이 11장에서는 당시의 그 이스라엘 지도자들을 이러한 백향목 또, 바산의 상수리 나무, 이것들에 비교하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러나 역사적인 그 시대 그 시점에서 책임을 다하지 못한 지도자들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라를 잃어버리고 바벨로니아의 포로로 갈 수 밖에 없었고, 또 포로된 자리에서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로 해방을 경험하고 자유를 얻어 다시 시온의 땅에 돌아왔지만은 그러나 성전하나 제대로 건축하지 못하고, 회복하지 못하고 아직도 백성들은 방황하고 아직도 예루살렘은 황폐한 지경속에 놓여 있었던 지도자를 갖지 못했던 그 시대의 어둠.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었던 사람들. 대접받기를 원했던 지도자들은 자천, 타천의 지도자들은 많이 있어도, 역사를 바르게 인도하는 지도자들은 부재했던 그 당시의 어두운 시대속에서 스가랴 선지자는 이러한 지도자의 이미지를 나무에 비교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여기에 보면 2절의 마지막 부분에 뭐라그랬어요. 상수리 나무여 곡할찌어다. 무성한 산림이 어떻게요 넘어졌도다. 이런 나무들이 다 넘어지고 말았도다. 결국 그런 원인 중에 하나는 그런 그들이 주앞에 겸손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교만했던 지도자들이 결국 그 시대를 빛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어둠 속으로 인도한 책임이라고 지적하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백향목, 상수리 나무. 이것은 그들 자신의 아름다움과 빼어남을 자랑했지마는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넘어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를 내세우는 지도자들은 많았지만 백성을 섬기고 백성을 유익하게 하는 지도자들은 많지 않았던 그 당시 지도자들에 대한 아주 적절한 상징의 모습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교만하면 하나님은 쓰실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개인의 달란트가 뛰어나도 그리고 개인에게 아무리 뛰어난 은사가 있었도 결코 교만한 사람은 주님이 쓰시지 않습니다. 겸허한 사람, 섬길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들만이 하나님의 손에 붙잡임을 받는다는 역사적 교훈을 여기서 한번 더 확인하실수가 있습니다. 교만은 패망의 뭐라 그랬어요. 선봉이요. 네, 교만은 패망하는 일의 선봉입니다. 겸손은 그러나 존귀함의 앞잡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옛날 지구에는 메가 케로스라는 이름을 가진 불리워지는 학명이 붙은 아주 거대한 사슴이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 사슴보다도 비교가 안되는 굉장히 큰 거대한 사슴. 메가 케로스라고 불리워지는 그런 사슴이 있었다고 그래요. 근데 이 사슴은 뿔이 아주 굉장히 컸어요. 근데 왜 이 사슴이 멸종했냐하면 뿔이 너무 커가지고 멸종했다고 합니다. 뿔이 너무 크니까 써먹을 때가 없어요. 돌아다니면서 그냥 받기만 하고 부딪히다가 멸종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그런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도 교만하면, 그리고 섬길 준비가 되어있지 못하면,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공격하고 비판하고 비난하고 정죄하는 그런 식의 지도자들은 역사 속에서 결코 쓰임을 받지 못합니다. 스가랴 선지자가 하나님으로부터 예언을 받던 그 시대에 결코 자기를 지도자라고 주장하던 사람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예요. 그러나 그들이 역사 속에서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던 것. 그들은 쓸모없는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의 교만함, 그들의 이기심은 결국 그들을 쓸모없는 존재로 무너뜨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들의 파멸을 예언하면서 동시에 그러나 4절 이하 17절의 마지막 부분에서 진정한 지도자가 일어나고 있다. 예언하고 있는 것이예요. 그러면서 이 선한 목자, 참된 지도자와 악한 목자, 악한 지도자를 스가랴 선지자는 예언적으로 대조하고 있습니다. 참된 지도자와 악한 지도자는 어떤 면에서 그 contrast를 대조를 이루고 있을까요. 많이 나오는데 11장에 우리는 두들어진 4가지의 대조를 볼수가 있습니다. 누가 선한 목자냐, 누가 악한 목자냐. 왜 비교를 통해서 사실 여기서 스가랴 선지자가 강조하려는 초점은 선한 목자에 있습니다. 악한 목자들 때문에 우리는 방황하고 있었습니다. 헤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실망하지 마십시오. 참된 지도자가 오고 있습니다. 지금 이걸 약속하려고 그래요. 그리고 그 참된 지도자는 궁극적으로 누굽니까? 예수님이십니다. 메시야이십니다. 지금 그걸 예언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를 악한 목자와 비교하고 있어요. 그 다이아몬드가 얼마나 진짜냐, 그것을 감정시키는 방법 중에 하나는 감정사가 되길 원하면 그 훈련 가운데 하나가 가짜를 갖다놓고 자꾸 보게 한다고 그래요. 가짜를 한참 보고 있으면 어떻게 될까요. 진짜와 가짜를 구별을 하게되요. 또 반대로도 할 수가 있습니다. 진짜를 자꾸만 보고 있으면 뭐예요. 가짜가 저절로 구별될 수가 있습니다. 대조법에 의해서 구별할 수 있도록 그래서 악한 목자를 대조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우리를 위해서 오신 하나님이 보내 주신 약속하신 메시야. 그 분이 진실로 얼마나 복된 우리의 지도자인가를 스가랴 선지자는 예언하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4가지의 대조적 이미지들이 이 부분 속에 등장합니다.

 

자, 우선 악한 목자들을 보고 선한 목자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자 5절, 5절 다 같이 읽겠습니다. 5절 다 같이 시작 "산 자들은 그들을 잡아도 죄가 없다 하고 판 자들은 말하기를 내가 부요케 되었은즉 여호와께 찬송하리라 하고 그 목자들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는 도다" 여러가지 표현이 나오지만 제일 중요한 마지막 강조점이 뭐라 그랬어요. 악한 목자, 나쁜 지도자들은 어떻게 한다고요.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는다.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는다. 백성에 대한 애정이 없다. 불쌍히 여기지 않는다. 그러면 반대로 선한 목자는 참된 지도자는 어떤 지도자일까요. 불쌍히 여긴다. 그게 있어요, 없어요. 네, 있어야 원칙이죠. 자세히 보면 있어요. 시력만 좋으면 볼 수 있습니다. 실력 없어도 시력만 좋으면 되요. 몇 절에 나옵니까. 선한 목자는 불쌍히 여긴다. 7절 같이 읽어보세요, 7절. 7절 다 같이 시작. "내가 이 잡힐 양 떼를 먹이니 참으로 가련한 양이라. 내가 이에 막대기 둘을 취하여 하나는 은총이라 하며 하나는 연락이라 하고 양 떼를 먹일쎄" 자 7절에 어떤 표현이 나와요. 양을 가련한 양으로 본다. 불쌍히 여겨야 할 대상으로 사랑해야 할 대상으로 그 양을 불쌍히 여긴다. 여기서의 두 가지의 대조를 볼 수가 있죠. 악한 지도자는 백성을 향한 불쌍히 여김이 없다. 그러나 참된 지도자는 백성을 불쌍히 여긴다. 여러분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 우리 4복음서에 예수님이 백성들을 볼 때 제일 많이 백성들을 향한 예수님의 마음을 나타내주는 복음서의 표현가운데 지속적으로 반복되어 강조되는 표현이 하나있죠. 어떤 표현입니까? 무리를 불쌍히 여기셨다. 불쌍히 여기는 것, 이것 참으로 중요한 것이예요. 지도자의 마음. 성경적 지도자의 마음. 선한 지도자의 태도. 백성들을 불쌍히 여긴다. 참 불쌍히 여긴다. 여기 선한 지도자 상으로 가장 중요하게 강조한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 백성들을 섬기는 거란 말이죠. 백성들을 섬기기 위한 가장 중요한 첫번째 요건은 그들을 불쌍히 여긴다. 그들의 상처를 그들의 실수할 수 있는 가능성을 그들의 연약함을 늘 불쌍히 여기는 태도. 이게 성경적 지도자 상입니다. 불쌍히 여긴다. 주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주시기를 기도하십시다. 불쌍히 여겨.

 

그 다음에 또 하나의 선한 목자와 악한 목자의 또 하나의 대조는 어디에서 볼 수가 있는가. 자, 11장 9절. 11장 9절, 우리 다 같이 읽겠습니다. 11장 9절 . 다 같이 시작. " 내가 가로되 내가 너희를 먹이지 아니하고 죽는 자는 죽는대로, 망할자는 망할대로 그 나머지는 피차 살을 먹는대로 두리라 하고" 한마디로 표현 뭘까요. 네, 먹이지 않는다. 그대로 내버려 둔다. 굶어 죽어가고 있는대도 그대로 내버려 둔다. 먹이지 않는다 말이죠. 그러면 자연히 선한 지도자는 어떻게 하는 지도자일까요. 부지런히 퍼 먹인다. 네, 부지런히 메인다. 여기서 또 하나 악한 지도자 상과 선한 지도자 상의 대조를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 4절봐요. 4절. 4절 다 같이 시작.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는 잡힐 양떼를 먹이라" 너는 부지런히 그 양떼를 먹이라. 선한 지도자상 양떼를 부지런히 먹인다. 양떼가 굶든, 또한 기아상태에 있든, 그들을 그대로 버려둔다. 그럴 뿐만 아니라, 먹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더 계속 나아가면 16절에 이런 표현도 등장해요. 16절 한번 읽어봐요. 16절 다 같이 시작. "보라 내가 한 목자를 이 땅에 일으키리니 그가 없어진 자를 마음에 두지 아니하며 흩어진 자를 찾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강건한 자를 먹이지 아니하고 오히려 살찐 자의 고기를 먹으며 또 그 굽을 찢으리라" 오히려 살찐 자의 고기를 뭐예요. 먹는다. 뭐냐하면 먹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지가 먹는다. 자기가 오히려 먹는다. 빼앗아먹는다. 그래서 목사가 타락하면 뭐가 됩니까. 먹사가 됩니다. 평신도가 타락하면 뭐가 될까요. 병신도가 되구요. 목사가 타락하면 먹사가 되요. 자기가 먹을려고. 목자의 가장 중요한 책임은 어떤 책임일까요. 먹이는 것이죠. 뭘로 먹입니까. 진리의 꼴로 먹여야 합니다. 우리가 요한 복음 10장에도 예수님의 그 선한 목자상을 스스로 밝히시죠. 가르쳐 주시죠. 내가 온 것은 내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그 다음에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함이라. 목자는 꼴을 공급합니다. 먹을 것을 공급합니다. 말씀을 공급합니다. 영혼이 살아 움직이도록, 풍성한 진리의 말씀으로 꼴로 먹이는 목자. 여기서 우리는 선한 목자를 구별할 수가 있습니다. 악한 목자는 먹이는 일에 관심이 없어요. 다른 것에 관심이 있어요. 양떼의 창백한 영혼의 상태 속에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우리 목장 사역하는 작은 목자들도 늘 자기 목장에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 우리 목장의 양떼들에 영적인 상태가 어떤 상태이냐,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예요. 가장 중요한 관심. 말씀을 나누고, 말씀으로 세우고, 그래서 그 영혼이 빛을 발할 수 있도록 풍성한 생명으로 그가 윤기있는 영혼이 될 수 있도록 돕는 것. 악한 지도자는 먹이지 않습니다. 선한 지도자는 부지런히 생명의 꼴로 먹인다.

 

자, 그 다음에 세번째 또 다른 대조를 보일 수가 있어요. 여기 선한 목자와 악한 목자의 또 하나의 대조, 어떤 대조일까. 우리 7절을 다시 한번 읽겠습니다. 7절을 다같이 시작. "내가 이 잡힐 양 떼를 먹이니 참으로 가련한 양이랑 내가 이에 막대기 둘을 취하여 하나는 은총이라 하며 하나는 연락이라 하고 양떼를 먹일쎄" 여기 선한 목자상을 얘기하면서 장차 오실 그 좋은 목자는 어떻게 하느냐? 막대기 둘을 가지고 있다. 막대기 둘을 가지고 뭘하냐. 작대기 싸움해요. 자, 막대기 둘을 가지고 뭘 한다고 그랬어요. 그 막대기 하나는 은총. 또하나는 연락. 연락은 연락한다. 연결시킨다. Union 함께 연합시킨다. 이말이예요. 먼저 은혜를 베풀고, 은혜를 받게하고, 그 다음 은혜를 받은 다음에, 은혜를 받은 개개인들이 개인들로 남지 아니하고 그들이 연결시킬 수 있도록 돕는다. 그래서 선한 목자의 이미지를 여기서 이렇게 그린 것예요. 다시 말하면 자,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만들고, 주의 은혜를 체험하게 만든 다음에 그들을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어떻게 해요. 연결시켜서, 잘 연결시켜서 그들이 하나의 공동체로 세우도록 돕는 것. 이것이 선한 지도자. 성경적 지도자 Biblical Leadership 성경적인 지도자상의 아름다운 또 하나의 모습을 여기서 볼 수가 있어요. 그러나 반대로 악한 목자는 어떻게 할까요. 연결시킨다고 그랬으니까, 연결의 반대가 뭘까요. 네, 분열시킨다. 흩어놓는다. 악한 지도자는 자꾸만 흩어놔요. 이간시키고, 그게 바로 악한 지도자의 총 두목은 누굴까요. 총 두목. 네, 사탄 마귀. 마귀의 뜻 같은데 하나가 뭐라 그랬어요. 마귀는 이간시킨다. 그 단어의 뜻이 본래 두가지 단어의 결합이라고 그랬죠. 무엇 무엇 사이에 단어와 던지다, 던지다, diabolos di라는 말이 원래 영어로는 between이예요. Between. Bolow, throw 던진다. 던진다. 던져서 사이에 던진다. 사이가 자꾸만 나눠요. 별명이 참소자, 참소자 그랬죠. 자꾸만 참소해서 인간관계를 파괴시켜요. 파괴시키고, 단절시키고, 흩어놓고 교인과 교인 사이에, 또 지도자와 교인 사이에 자꾸만 그 관계를 이간시키고 흩어놓고 누가하는 일일까요. 마귀가 하는 일이예요. 항상 마귀의 종이 있어요. 마귀의 장단에 춤추는 마귀의 종들이 있어요. 여러분과 저는 그 마귀의 장단에 춤추지 않는 종들이 되지 않기를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항상 사람을 어떻게 하는 사람. 연합 시켜주는 사람. 그래서 세우는 사람. 은혜를 받고, 사람을 항상 견고한 공동체로 연결시키는 사람. 이것이 선한 목자상이예요. 선한 지도자상. 악한 지도자는 항상 어떻게 해요. 흩어놓는다. 사람을 이간시킨다. 싸우게 만든다. 자, 이런 모습들이 이제 계속 나옵니다. 몇가지 이미지로 나오는데 9절에 보시면 9절 다같이 다시 한번 읽어요. 시작. "내가 가로되 내가 너희를 먹이지 아니하고 죽는 자는 죽는 대로, 망할 자는 망할 대로, 그 나머지는 피차 살을 먹는 대로 두리라 하고" 이 마지막 이미지 가운데 이런 모습이 있어요. 피차 살을 먹는다. 물고 뜯는 이미지의 모습이 나와요. 그 다음에 14절 보시길 바랍니다. 14절, 14절,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내가 또 연락이라 하는 둘째 막대기를 잘랐으니 이는 유다와 이스라엘 형제의 의를 끊으려 함이었느니라" 이것은 하나님의 궁극적인 징계이되 결국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지 않는 그 백성들은 하나님이 내어 주셨어요. 그래서 그 결과가 어떻게 되냐 하면 남쪽과 북쪽이 갈라지고 형제와 형제 사이가 갈라진 것. 이것이 사탄을 따라간 그 백성의 선택에 대한 마지막 하나님의 심판이었단 말이죠. 우리는 이러한 배경 속에서 우리는 동일한 이미지를 볼 수가 있어요. 선한 지도자는 항상 어떻게 하는 사람이다. 연결시키는 사람. 합하는 사람. 근데 악한 지도자는 어떻게 해요. 분열시키고 나누는 것이 악한 지도자의 이미지라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자, 우리는 스가랴의 이제 마지막장 마지막 경고를 보도록 하겠어요. 16절 먼저 읽겠습니다. 16절. 16절 다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보라 내가 한 목자를 이 땅에 일으키리니 그가 없어지니 자를 마음에 두지 아니하며 흩어진 자를 찾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강건한 자를 먹이지 아니하고, 오히려 살찐 자의 고기를 먹으며, 또 그 굽을 찢으리라" 결국 이게 악한 목자상인데, 악한 목자. 악한 목자는 결국 어떻게 하는 것이 악한 목자예요. 마지막에 망가트린다. 이 말이죠. 아주 완전히 망가트린다. 상한자를 고치지 않고, 또 먹이지도 않고, 그러니까 병들게 되고, 상처받게 되고, 마지막에 완전히 망하게 만든다. 그러면 반대로 선한 지도자는 어떻게 할까요. 망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요. 흥하게 하는 자. 강건하게 하는 자, 건강하게 하는 자. 살찌게 하는 자. 양 떼를 강건하게 한다. 정리를 해 보겠어요. 여러가지로 많이 나와 있지만 여기 흩어나서 악한 목자와 선한 목자를 계속 스가랴 선지자가 대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핵심적인 강조점은 4가지 입니다. 선한 지도자는 4가지. 첫째 불쌍히 여긴다. 가련히 여긴다. 둘째 양떼를 먹인다. 셋째 은혜 받게하고 연결시켜서 세운다. 마지막 네번째로 건강하게 한다. 건강하게 하고 흥하게 한다. 이 4가지가 선한 지도자 상으로 드러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 당시 스가랴 선지자가 하나님 앞에 환상을 받고 예언을 하던 그 당시 시대의 지도자들은 그런 모습의 지도자가 아니라 악한 모습의 지도자들이 훨씬 더 많았다 말이죠. 여기 8절에 보면 난해한 구절인데 8절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11장 8절을 같이 한번 읽어요. 다 같이 시작. "한 달 동안에 내가 그 세 목자를 끊었으니, 이는 내 마음에 그들을 싫어하였고, 그들의 마음에도 나를 미워하였음이라" 여기 하나님이 내가 한 달 동안에 세 목자를 싫어서 끊어버렸다. 이 세 목자가 무엇을 말하느냐. 아주 성경적인 난해 구절이예요. 그러나 많은 성서 학자들은 여기서 세 목자를 이스라엘 역사를 통한 대표적인 세 그룹의 지도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자, 이스라엘 역사 속에 대표적인 지도자 그러면 세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누굴까요. 첫째는 왕, 왕이 있고. 또 하나는 누가 있어요. 제사장. 또 하나는 선지자. 왕과 선지자와 제사장. 이게 대표적인 지도자예요. 대표적인 지도자예요. 아마 스가랴 선지자는 이런 세가지 종류의 대표자를 생각하면서 그 당시 세 가지 종류의 대표자들이 다 그 역할을 제대로 다 못했다. 왕은 일종의 정치 지도자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선지자는 종교적 측면도 있지만 교육적인 지도자라고도 할 수가 있습니다. 제사장은 종교적 지도자죠. 정치 지도자도 교육계의 지도자도 종교의 지도자도 그 당시 백성들을 올바르게 인도하지 못했음을 인해서 백성들은 계속해서 방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내가 그들을 끊을 수밖에 없다. 그들을 심판할 수 밖에 없다는 하나님의 분노. 그 시대에 리더쉽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던 지도력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를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볼 수가 있습니다. 자, 그러나 이런 지도자들과 정 반대의 지도자가 오고 있다. 그걸 예언하고 있는 것이예요. 정반대의 지도자가. 그 분은 바로 왕과 선지자와 제사장의 역할을 한꺼번에 완성할 분이십니다. 이 세가지 역할을 한꺼번에 완성할 분. 자, 이 세가지 지도자의 역할의 공통점이요,

왕과 선지자와 제사장이 그 직위에 취임할 때 뭘하고 취임을 받습니까? 기름을 받습니다. 맞습니다. 기름 부음을 받습니다. 왕의 자리에 취임 받을때도 기름 부음을 받아요. 선지자도 , 제사장도. 자 왕의 책임은 뭐예요. 다스리는 자. 또 선지자의 책임은 가르치는 자, 예언하는 자, 제사장은 제사 드리는 자, 단어에도 나와 있는데.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죄 문제를 해결하고 하나님과 인간을 연결시켜 주는 역할을 했던 사람.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끈임없이 왕에게 실망합니다. 공평과 정의로 다스리지 못하고 잘못 다스리고 있는 왕들. 또 많은 가짜 선지자들. 거짓된 가르침을 가르치고 있었던 거짓 선지자들 또 제사장들은 백성의 죄 문제와 백성의 문제를 해결하기 앞서서 자기 문제로 허덕이던 제사장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참된 지도자를 갖지 못하고 지도자에게 실망을 할 때마다 마음속에 이런 기다림이 있었어요. 우리를 완전히 다스려 줄 수 있는 왕. 공평과 정의로 우리를 다스려 주고, 또 우리를 온전한 진리 가운데로 인도해 주고, 또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완전한 제사장. 왕과 선지자와 제사장의 역할을 한꺼번에 완성할 하나님이 기름을 부어 주셔서 보내 주실 분. 그 분이 바로 누굴까요. 메시야예요. 그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단 말이죠. 너희들이 이렇게 지도자들 앞에 실망하지 않았냐. 그런데 이 모든 역할을 완성할 진정한 지도자가 온다. 그것이 바로 이 11장의 밑 바탕에 흐르고 있는 가장 중요한 약속이예요. 참된 지도자가 온다. 근데 오는데 불행한 사실은 그 지도자를 너희들이 박대할 것이다. 박대할 것이다. 그것을 예언하고 있어요.

자 그게 12절 13절. 이, 다가오고 있는 지도자. 그가 받게 될 거절과 핍박의 예언이 12절과 13절에 기록되고 있습니다. 우리 12절 다 같이 읽어요. 시작. "내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좋게 여기거든 내 고기를 내게 주고 그렇지 아니하거든 말라 그들이 곧 은 삼십을 달아서 내 고기를 삼은지라" 그 얼마나 이 말씀이 여러분이 전율할 예언이예요. 그죠. 예수님 오시기 700년 전에 기록된 스가랴 선지자의 입술을 빌려 나타난 예언. 참되고 진정한 구원자가 이신 그리스도가 되신 메시야가 오신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를 박대할 것이다. 은 삼십에 그를 팔아버릴 것이다 그 말이죠. 사람들은 그를 환영하고 그를 모시고, 새로운 삶을 살기 보다, 그를 거절하고 핍박하고 은 삼십에 그를 팔을 것이다. 누굴 통해서 이 예언이 성취 되었어요. 네, 가롯 유다. 마태복음 26장에 보시면 정확하게 가롯 유다가 그 예언을 성취하기 위해서 사용된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은 삼십에 팔림을 받으신 그리스도. 본래 삼십에 판다는 것은 우리가 출애굽기 22장에 읽어 보시면, 어떤 노예가, 종이 소에 받쳤어요. 그러면 그 보상 가격으로 줄 때 삼십량을 줬어요. 그러니까 예수님을 그 정도밖에 보지 않았단 이 말이예요. 싸구려 가격으로 예수님을 팔아 먹었다. 기왕에 팔아 먹으려면 비싸게 팔아 버리든지 말이지. 은 삼십에 팔아 버렸다. 이렇게 최대의 모욕. 최대의 모욕감을 가지고,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야를 팔아 먹은 그런 인류의 비극. 메시야를 거절한 그 비극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예언을 통해서 마침내 진정한 우리의 지도자가 되실 것이다. 그는 이 거절과 핍박을 통해서 십자가를 통해서 마침내 우리를 구원하실 진정한 메시야로 오셨다. 여러분, 이 위대한 약속을 인해서 주님을 찬양하시길 바랍니다. 주님은 이 모든 것을 보시면서 우리를 위해서 그리스도를 예비하셨어요.

자,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참된 지도자를 알아보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의 비극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된 지도자를 여전히 예비하고 약속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합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 속에서 마침내 우리의 위대한 지도자이신 예수님을 만난 자가 된 것을 기뻐하시길 바랍니다. 우리에게는 위대한 지도자가 있어요. 여러분 그 예수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과제는 그 주님을 닮아서 우리도 작은 지도자지만 참 하나님이 쓰실 수 있는 지도자 상을 우리 안에 갖추는 일. 얼마나 중요한 일이예요. 우리 주변에게 영향을 끼칠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지도자로 살아 간다면 우리 예수님을 통해서 지도자 상을 배웁니다. 4가지 입니다. 참된 지도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어떻게 해요, 불쌍히 여기고, 두번째 진리로 그들을 먹여주고, 세번째 그들을 뭐예요, 은혜받게 하고, 그들을 연결시켜 주고, 마지막 네번째로 그들을 건강하게 세워주는 일 저와 여러분이 바로 그런 지도자가 되는 꿈을 꾸시길 바랍니다. 그러나 그 지도자가 되는 과정이 쉬운 것은 아니예요. 우리 예수님도 그 지도자가 되어 가는 과정있어서, 십자가의 사역을 감당함에 있어서 거절과 핍박이 있었습니다. 이상하게 지도력을 행사하는 과정에 있어서는 지불해야 할 대가가 있어요. 희생해야 할 대가가 있어요. 예수님은 기꺼이 자신이 거절 될 것을 알고, 알고도 이 세상에 오셨고, 십자가를 향해서 뚜벅뚜벅 걸어가셨어요. 왜냐하면 그분에게 꿈이 있었기 때문에. 그 분이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마침내 어떻게요, 많은 사람들을 구원...이동원목사

출처 : 보좌로부터흐르는생명수
글쓴이 : 하늘산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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