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를 위한 잔칫집
요한복음12:1~11
2000년 9월10일 주일 낮설교
1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의 있는 곳이라
2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 새 마르다는 일을 보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
3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4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5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6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7예수께서 가라사대 저를 가만 두어 나의 장사 할 날을 위하여 이를 두게 하라
8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9유대인의 큰 무리가 예수께서 여기 계신 줄을 알고 오니 이는 예수만 위함이 아니요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도 보려 함이러라
10대제사장들이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모의하니
11나사로 까닭에 많은 유대인이 가서 예수를 믿음이러라
설교:
교회가 무엇이냐 라고 하는 문제에 많은 정의를 내릴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정의한다면 하나님에 의해 세상으로부터 구별된 성도들의 모임이라고 정의 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정의는 하나님의 가족 공동체라고 정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통해 살펴보면 교회는 예수님을 위한 잔치 집이다 라고 정의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교회에는 생명의 구원의 기쁨이 있고 주의 사랑과 은총이 언제나 넘쳐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곳이기 그렇게 정의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언제나 잔치 집 같은 냄새가 나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하러 나왔습니다. 이 예배는 주님과의 만남이요 이 세상에서 제일 기쁜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는 곧 잔치입니다.
우리는 매주일마다 예배를 통해 주를 기쁘게 해드리는 잔치를 해야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진정한 잔치가 되고 우리의 교회가 진정한 기쁨을 주님께 드리는 잔칫집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 우리가 봉독한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 3명의 헌신자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그 잔치에 그 장소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으나 주님은 그들로 인해 기뻐하지 않으시고 세 사람의 헌신으로 인해 기뻐하셨습니다.
그들은 어떤 사람들인가요? 오늘 우리는 그 헌신자들의 모습을 살펴보면서 오늘 이 시대에 우리가 어떻게 해야 주를 기쁘게 하는 헌신자들이 될 것인가를 살펴보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교회가 주님을 위한 잔치 집이 되려면
1. 마르다 같은 헌신자가 필요합니다.(2절)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 새 마르다는 일을 보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
그 잔치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습니다. 얼마 전 베다니에서 죽은 자가 살아나 사건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죽은 자를 살리신 예수님이 그 자리에 오신 것입니다. 그러니 그 예수님을 보려는 자들이 얼마나 많이 모여들었을까요?
그곳에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가 주님을 기쁘게 하는 자리였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마르다 같이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헌신 봉사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2절에 짧게 한마디 언급되는 말씀 "마르다는 일을 보고"라는 이 구절이 별로 우리 눈에는 띄이지 않는 구절입니다.
그러나 이 구절은 마르다의 헌신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성도여러분!
우리는 "마르다" 하면 생각나는 것이 있습니다.
누가복음11장38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을 자기 집에 모셔서 대접하는데 마리아가 주책없이 예수님 무릎 앞에 앉아 예수님을 말씀만을 듣자 화를 내면서 부엌에 나와 좀 도와주라고 불평하는 모습입니다.
아마도 마르다는 장녀라 그런지 부엌일에는 전문가적인 은사가 있었나 봅니다.
비록 예수님에게 마리아보다는 칭찬을 받지 못했지만 오늘 본문 말씀에도 보면 잔치 집에서도 마르다는 일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가 무슨 일을 했을까요? 부엌일입니다. 예수님을 잘 대접하려는 마음으로, 예수님을 기쁘게 해드리려는 마음으로 열심히 봉사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 안에도 이런 봉사의 손길이 있어야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잔치를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예배를 드리러 나올 때 그냥 성경책만 들고 나아오지만 그러나 이 예배가 진정한 예배가 되고 참된 잔치의 예배가 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의 보이지 않는 봉사의 헌신이 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예를 들면 식사봉사를 위해 맛있는 음식을 각 구역에서 정성을 다해 준비합니다.
예배안내를 위해 일꾼들이 정성스럽게 옷단장을 하고 일찍이 나와서 더운 날씨에 봉사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성가대 대원들은 하나님께 아름다운 찬양을 드리므로 기쁨의 잔치 예배가 되도록 하기 위해 열심히 연습을 합니다. 예배가 마쳐지면 남들은 집에 가면 끝나지만 성가대원들은 예배 후에 열심히 연습을 합니다. 학생 성가대는 아침8시30분에 나와 연습하고 예배합니다.
뿐만 아닙니다. 꽃꽂이를 맞아 봉사하는 집사님은 매주 서울에 올라가서 꽃을 사다가 정성을 다해서 꽃을 꽂습니다.
그뿐 아니라 이른 아침부터 나와 어린이들을 가르치며 주일학교교사들, 청소 봉사자들 학생부 교사들...
이런 저런 봉사자들이 주님의 일을 자기의 일을 하듯이 봉사하기에 예배가 온전히 이루어지고 그런 봉사가 있기에 주님을 기쁘게 하는 잔치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여러분은 어떤 분야에서 어떤 자세로 봉사를 하고 계십니까? 혹시 그냥 잔치에 참여만 하고 얻어먹는 그런 자들이 아닌가요?
그런데 봉사의 일을 할 때는 몇 가지 주의해야 할 자세가 있습니다.
1)자원하여 해야합니다.
2)원망과 시비가 없이 해야 합니다.
3)나를 위해 하지 말고 주를 위해 해야합니다.
4)그리고 이일이 주님이 내게 맡겨주신 일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즉, 사명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각자가 받은 분야가 있습니다. 혹시 일을 하고 싶은데 맡겨주지 않았습니까? 그러면 저를 찾아와서 따지시기 바랍니다. 맡은 일이 없다고 손님 역할만 하지 마시고 내가 할 일이 무엇인가를 찾으시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길이 없는 것 같을 때 주저앉으면 평범한 사람이고 길이 없어도 그 길을 만들어 하는 사람은 큰사람이 될 것입니다.
묵묵히 남이 알아주던 안 알아주던 상관치 않고 봉사 헌신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교회가 주를 위한 잔치가 되려면
2.나사로 같은 헌신이 필요합니다. (2절)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 새 마르다는 일을 보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
여기 2절 말씀을 자세히 보면 나사로는 아무 것도 안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실상 그 잔치 집에는 예수님과 함께 앉아 있기만 했는데 그것이 곧 엄청난 헌신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나사로는 앉아 있기만 해도 큰일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죽었다가 살아난 자입니다. 죽은지 사흘 되는 상태, 완전히 죽어 썩어 가는 그를 주님이 무덤에서 살려내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예수님 옆에만 앉아 있어도 사람들이 그를 보고 예수님이 생명의 주요,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증거해 주는 역활을 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앉아 있기만 해도 예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람인 것입니다.
9절~11절 말씀을 보세요
"유대인의 큰 무리가 예수께서 여기 계신 줄을 알고 오니 이는 예수만 위함이 아니요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도 보려 함이러라 10대제사장들이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모의하니 11나사로 까닭에 많은 유대인이 가서 예수를 믿음이러라"
할렐루야! 나사로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은혜를 받은 사람은 교회에 나와 가만히 않아 있기만 해도 그로 인해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교회 안에는 나사로 같이 은혜를 체험한 사람도 있어야 합니다. 그는 죽었다가 산사람입니다. 완전히 죽었다가 산사람입니다.
실상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죄와 허물로 죽었다가 산 사람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나사로와 비교해 볼 때 어떻습니까?
우리 때문에 오히려 사람들이 주님께 나오는 것을 망설이고 있지는 않습니까? 저 사람 같으면 믿을 맘 없다고 하지는 않습니까?
11절을 보세요 나사로 때문에 많은 유대인이 예수를 믿었다고 했습니다.
오늘 나 때문에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은 얼마나 되고 있습니까?
성도 여러분!
은혜를 체험하시고 예수님의 산 중인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런 헌신자가 교회에 있어야 교회는 잔치 집이 되는 것입니다.
인천의 어떤 교회는 1년에 수백명씩 전도하는 분이 10명 이상 있답니다. 그들의 삶은 그야말로 영혼구원에 뜨거운 열정에 붙들린바 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늘 나라가면 나 때문에 구원받은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가를 물어보시면 무엇이라 대답 할 것입니까?
전도는 죽은 나사로를 살리는 것보다 더 큰 일입니다. 나사로는 살았다가 다시 죽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전도한 그 사람은 영원히 하늘나라에서 생명을 누리며 살게 됩니다.
나사로는 죽은목숨이 다시 살아난 사람입니다. 이젠 두려울 것 없고 오직 예수님을 위해서만 사는 헌신자가 된 것입니다. 그의 앞길에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죽은 자도 살리시는 예수님, 아니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예수님. 무엇이 문제가 되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도 앉아 있기만 해도 영광을 돌리는 헌신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무엇이 우리를 가로막을 수 있단 말입니까?
교회가 주를 위한 잔치 집이 되려면
3.마리아와 같은 헌신자가 필요합니다.(3절)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예수님이 그 잔치 집에서 대접을 받는 중에 주님을 가장 기쁘게 한 헌신자는 마리아입니다. 그는 정말로 값진 향유를 주님의 발에 붓고 머리털로 그 기름을 닦아내는 헌신을 합니다.
그 향유의 값이 계산에 빠른 가롯 유다의 평가에 의하면 300 데나리온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돈으로 약 1,000만원 가량입니다. 장정이 하루 일한 품삯이 1데나리온 입니다. 우리 돈으로 35,000원씩만 계산해도 1000만원이 넘는 돈입니다. 그 엄청난 향유는 마리아의 전 재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마리아는 예수님께 아낌없이 그 향유를 부어 주를 기쁘게 대접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3가지가 이유가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1)받은바 은혜를 계산해보니 다 드려도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왜요? 죽었던 오라비 나사로가 살아났습니다. 무엇으로 그 은혜를 갚을 길이 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받은바 은혜를 우리가 온전히 헤아린다면 주님께 다 주어도, 심지어 우리 생명을 주어도 부족할 것입니다.
가롯 유다의 눈에는 낭비로 보이는 그 향유, 그러나 주님의 베푸신 구원의 은혜를 안다면 결코 가롯 유다와 같은 소리를 하지 않을 것입니다.
마리아는 오라비가 산것이 감사해서 1000만원어치의 엄청난 것을 일시에 주님께 드리는데 나는 내가 죄와 사망에서 구원을 받았다고 믿으면서 왜 이다지도 인색할까요?
예수님은 이 마리아의 기름부음을 장사를 위한 것으로 여기고 결국 몇 일 못되어 십자가에 죽었습니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던 마리아처럼 우리도 기회를 놓치지 않는 성도 되시길 바랍니다
2)마리아는 욕 얻어먹을 각오를 하고 헌신했습니다. 결국 그 한사람의 헌신이 온 집안을 향기로 채웠습니다.
욕먹을 것 겁내지 마세요, 주님이 기뻐하는 일이라 생각되면 남을 의식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계산해보세요. 오늘 본문에 마리아가 예수님께 한 헌신과 예수님이 마리아에게 베푼 축복이 어느 것이 더 큰 것입니까?
막14장9절에서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3)마리아는 자기의 미래를 주께 맡기고 헌신했습니다.
예수님의 이 잔치에 누가 주인공입니까? 예수님입니다. 그리고 다시 산 나사로 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 헌신이 이루어지게 되자 누가 주인공이 되었습니까? 생명을 걸고 미래를 걸고 헌신한 이 마리아가 바로 주인공이 된 것입니다. 나를 전체로 쏟아 붓는 헌신자는 주님잔치에 주인공이 됩니다.
성도 여러분이여!
주님잔치 집에 액스트라로 만족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인공이 되시되 온전한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우리 장안중앙교회도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잔치 집이 되려면 이런 헌신자들이 필요합니다. 주를 위한 잔치에는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헌신하는 마르다 같은 헌신자도 있어야 합니다. 많은 은혜와 체험 속에서 앉아 있기만 해도 영광을 돌리는 나사로 같은 헌신자도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쏟아 붓는 헌신을 하며 받은 은혜를 감사하고 욕먹을 것을 각오하고 자기의 미래를 주께 맡기고 헌신하는 마리아 같은 헌신자가 있다면 이 예배는 기쁨의 잔치가 될 것이며 우리 교회는 주를 기쁘게 하는 잔치 집이 될 것입니다.
누가 이런 헌신자 입니까?
주님을 기쁘게 할 헌신자를 주님은 지금도 찾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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