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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성도는 장자다.(창25;27~34)

성도는 장자다.(창25;27~34)

 

  나이가 들수록 세월이 속도가 빨라지는 것 같습니다.  군에 간 청년으로부터 편지를 받았는데, 훈련소에서 보내는 시간이 참으로 안 가는 것 같다고 하더군요.  시간의 속도는 나이대로라는 말이 있습니다.  30대는 30km로 가고 40대는 시속 40km로 가고 50대는 50km로 60대는 60km로 70대는 70km로 간다고 합니다.  30대까지는 시간의 속도를 잘 못 느끼고 사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40대에 들어서면서 시간의 속도를 느끼는 것 같습니다. 

  올해도 1달 남았습니다.  한 달 지나면 나이 한 살 더 먹습니다.  젊었을 때는 하고 싶은 것 해야지 하는 생각을 하였는데, 저는 나이가 들면서 잘 살아야지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주 앞에 서야할 날이 가깝다는 얘기가 되는 것이니까요.  지금까지는 어떻게 살았든지 간에 인생의 마지막 부분은 잘 살고 싶은 것이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12월을 맞이하면서 별로 한 것이 없는데 벌써 12월이라는 생각이 드는 분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나간 시간이요, 돌이켜 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자투리처럼 남은 날들이라고 할지라도 최선을 다해 잘 사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이번 주에 사랑방을 하면서 이런 얘기를 하였습니다.  이번 성탄을 맞이하기 위해서 특별기도회를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어떻게 성탄을 맞이하는 것이 잘 맞이하는 것일까를 기도 가운데 지혜를 얻고 싶었습니다.  성탄절이 있는 그 전 주간 한 주간을 “성탄 마지 특별 기도주간”으로 합니다.  그저 엉겁결에 맞이하는 성탄이 아니라, 이 땅에 구주로 오신 주님이 기뻐하시는 그런 성탄을 맞이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요즘은 아이를 많이 낳아야 둘이기 때문에 대부분이 장자입니다.  장자가 아니면 막내가 되는데, 오늘 말씀의 제목을 함께 읽겠습니다.  “성도는 장자다.”  오늘 말씀의 내용은 이삭의 쌍둥이 아들 에서와 야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삭은 40살에 장가를 들었습니다.  리브가라는 여인을 아내로 맞아들이고 사는데 결혼 생활 20년이 되었는데도 자식을 얻지 못했습니다.  얼마나 기도를 많이 하였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이삭의 간구를 들으시고 응답하셨습니다.  창25;21을 보면 “이삭이 그 아내가 잉태하지 못하므로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 간구를 들으셨으므로 그 아내 리브가가 잉태하였더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보통 아이가 없으면 아내들만 애가 타는데, 이삭의 가정은 오히려 이삭이 더욱 애가 탔던 것 같습니다.  물론 이삭만 기도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리브가도 기도를 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분명히 성경은 하나님께서 이삭의 기도에 응답한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성경이 말씀하는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을 다시 한 번 읽겠습니다.  “성도는 장자다.”  저는 하나님께서 이삭의 기도에 응답하여 자녀들을 주었다는 이 말씀이 하나님께서 장자의 기도에 응답하셨다는 말씀으로 다가옵니다.  우리는 응답을 원합니다.  그러면 먼저 장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장자의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장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도는 왜 장자입니까?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이기 때문에 장자입니다.  장자는 아버지의 유업을 잇는 자입니다.  유대인에게 있어서 아버지는 하나님을 대신하는 자입니다.  장자는 바로 하나님을 대신 하는 아버지의 유업을 이을 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장자는 기도의 사람이 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기도한다는 것은 내가 하나님과 교통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기도입니다.  교제라는 것은 혼자 할 수 없습니다.  교제는 교제하는 상대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에 대해서 착각할 수 있습니다.  홀로 독백을 하고서 기도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나의 소원을 간구하는 것으로 기도가 끝난다면 그것은 온전한 기도가 아니라, 독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기도되기 위해서는 간구로써 끝나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듣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기도를 나의 간구로 끝내지 마시고, 하나님의 응답을 듣는데 까지 나가기를 축복합니다. 

  장자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이요, 하나님과 통하는 사람입니다.  장자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성도는 장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심정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정이 없다면 장자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심정이 무엇입니까?  모든 자식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특별히 더욱 못난 자식에게 더욱 마음이 가는 것이 아비의 마음입니다.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는 심정이 하나님의 심정입니다.  99마리는 때가 돼서 다 우리에 있는데 한 마리만 사라졌습니다.  분명히 문제가 있는 양일 것입니다.  뭔가 삐딱한 양이겠죠.  그 양을 보면서 목자는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요?  이리는 지금 어디서 뭘 하는 거야?  물어가려면 저런 놈 물어가지.  목자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때에 가끔은 그런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양이 막상 우리에 없을 때에 찾아나서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비의 심정입니다.  결코 이리에게 내어 줄 수 없는 것입니다.  속상해서 말은 그렇게 하였지만 결코 그 양을 이리에게 빼앗길 수 없기에 목자는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아 나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심정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기 위하여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모든 영광을 버리신 것입니다.  우리를 살리기 위하여 자기를 내어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심정입니다.  내가 살겠다가 아니라, 너희를 살리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마음이 있습니까?  내가 살겠다가 아니라, 너희를 살리겠다는 이 마음이 있습니까?  장자의 마음에는 이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내가 살겠다가 아니라, 너를 살리겠다는 이 하나님의 마음이 장자의 마음인 것입니다.  이 마음이 성도의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이 마음이 우리 안에 들어올 수 있습니까?  이 마음이 있어야 장자인데, 내가 죽더라도 너희가 살아야 한다는 이 마음이 어떻게 우리 안에 들어온단 말입니까?  날마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어, 내가 살려면 별수 없잖아, 이렇게 사는 것이 우리들의 인생이 되어버렸는데, 어떻게 이 마음에 하나님의 심정이 들어올 수 있단 말입니까?  어떻게 이 마음에 나는 죽더라도 너희는 살아야 한다는 하나님의 심정이 들어올 수 있단 말입니까?  우리는 살려면 별 수 없다는 생각으로 살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의 심정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너를 살리기 위해서 내가 죽는다는 심정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려면 어쩔 수 없잖아.  그런 마음으로 살 때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우리의 이 마음에 하나님의 심정을 품을 수 있단 말입니까? 

  기도 외에는 없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이 심정을 부어주십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교통입니다.  우리는 기도함으로 하나님을 닮습니다.  나의 소원을 간구하는 것으로 끝나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데 까지 나아가는 기도를 하면 하나님의 심정이 내 맘에 부어지는 것을 경험할 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의 소원을 간구하는 것으로 여러분의 기도가 끝나지 않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의 기도가 하나님의 뜻을 듣는데 까지 나가는 기도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의 뜻을 듣는데 까지 나가는 기도가 되면, 하나님의 심정이 우리 안에 부어집니다.

  27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그 아들들이 장성하매 에서는 익숙한 사냥꾼인고로 들사람이 되고 야곱은 종용한 사람인고로 장막에 거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야곱과 에서는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장자가 되기 위해서 치열한 싸움을 하였습니다.  그 싸움에서 에서가 승리를 하여 장자가 되었습니다.  이제 장자의 명분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장자가 되었다고, 에서가 무슨 특별한 대우를 받은 것이 없습니다.  야곱과 자기와 다를 것이 전혀 없습니다.  장자를 위한 특별한 것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도는 장자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들에게 다른 사람들과 다른 특별한 것이 있습니까?  어떤 특별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마 에서는 그렇게 치열한 싸움을 하여서 장자가 되었는데, 장자가 되면 자기가 무슨 특별한 대우를 받는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엄마 뱃속에서 나오고 보니까 특별한 것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장자가 되면 야곱과 자기는 확연하게 달라질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달라지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32절 말씀을 보면 에서가 이런 말을 합니다.  “에서가 가로되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에서는 장자가 되면 자기에게 뭔가 유익한 것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런 기대는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34절에서는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겼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장자가 되면 내게 다른 사람과는 달리 특별히 유익한 것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를 합니다.  이런 기대를 한다면 그 사람도 틀림없이 에서처럼 될 것입니다.  장자가 된다는 것은 내가 특별대우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장자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심정을 품고 사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나는 죽더라도 너는 살리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장자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장자를 오해합니다.  장자를  특별대우를 받는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그런 기대를 가지고 있다가 기대가 충족되지 않으면 에서처럼 되고 마는 것입니다.  장자가 특별한 것은 특별한 대우를 받아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품을 수 있기에 특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정이 내 안에 있는 것이 특별한 것입니다.

  야곱이 팥죽 한 그릇으로 형의 장자권을 샀습니다.  사실 인간적으로 보면 참으로 야비한 짓입니다.  어떻게 배고픈 형에게 먹는 것 가지고 장난을 친단 말입니까?  어쩌면 야곱도 내게 이 장자권이 있으면 뭔가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을 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형의 장자권을 차지하고 싶었는지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야곱이 장자권을 산일을 통해서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결국에는 형의 분노를 사게 되어 부모를 떠나 먼 타향으로 떠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특별한 대우를 받기를 원했지만 오히려 그는 처량한 나그네가 되고 말았습니다.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에 가서 20년간 종살이를 하였습니다.  보통 야곱이 20년간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살았던 삶을 종살이였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저는 오늘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그것은 종살이가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장자의 삶이 아니었을까?’라고 생각해 봅니다.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그가 깨달았든지, 혹은 깨닫지 못했든지 간에 사랑하는 여인을 위하여 칠년을 수고하고, 또 사랑하지 않은 여인을 위해서도 칠년을 수고하는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저는 이런 야곱의 삶이 장자의 삶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장자는 내가 특별한 대우를 받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심정으로 사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아낌없이 쏟아 부으셨던 삶이 바로 하나님의 장자의 삶이었습니다.  내가 살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너를 살리기 위해서 사는 것이 장자의 삶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이렇게 장자의 삶을 살 때에 하나님 아버지가 기억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릴 때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조롱하였습니다.  비웃었고, 침을 뱉었습니다.  손가락질 하였습니다.  “저가 다른 사람은 구원한다고 하면서도 자기는 구원하지 못하는구나.” 하면서 조롱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조롱하였지만 하나님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삶을 장자의 삶으로 기억하시고, 모든 만물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시고, 모든 만물이 그 발 앞에 복종토록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도는 장자입니다.  장자는 하나님의 심정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내가 살려면 어쩔 수 없지.  그런 마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나는 죽더라도 너는 살아야 한다.  내가 부끄러움을 당할지라도 네가 부끄러움을 당해서는 안 되지.  내가 손해를 보아야지 네가 손해를 보아서는 안 된다.  내가 욕을 먹어야지, 네가 욕을 먹어서는 안 된다.  내가 울어야지 네가 울면 안 되지,  내가 아파야지 네가 아프면 안 되지, 내가 고생을 해야지 네가 고생을 하면 안 되지.  내가 억울할지언정 네가 억울해서는 안 되지.  이런 심정으로 사는 것이 진정 하나님의 장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시간 우리의 마음에 이 장자의 마음을 부어주시길 원합니다.  우리 이 시간 함께 기도하십시다.  하나님!  이 시간 하나님의 심정을 부어주시고, 명분만 장자가 아니라, 나의 삶이 장자의 삶이 되게 하여주옵소서.

출처 :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글쓴이 : 가장낮은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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