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을 하늘에 쌓자.(마6;19~21)
집을 짓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기초를 닦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자가 지혜로운 자라고 하였습니다. 기초라는 것은 얼핏 보면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모르게 됩니다. 왜냐하면 기초라는 것은 완성되면 감춰져서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집이 완성되면 기초는 보이지 않고 외장만 보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외장을 보고 집이 좋다고도 하고, 집이 참 아름답다고도 합니다. 하지만 비가 많이 와서 홍수가 나면 반석 위에 지은 집은 무너지지 않지만 기초가 허술한 집은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어려움이 닥치면 기초의 진가가 드러납니다. 어려움이 닥치기 전에는 잘 알 수가 없습니다. 기초를 잘 닦은 집은 거센 풍파에도 든든하게 서 있지만, 그렇지 않은 집은 겉모습은 제아무리 아름답고 좋아보여도 한순간에 무너지고 마는 것입니다.
인생에 있어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을 집을 짓는 것으로 비유한다면, 인생에 있어서 기초는 무엇일까요? 인생을 잘 살려고 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인생의 기초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인생의 기초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산다는 것은 마치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인생의 기초가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인생을 잘 살려고 하는 사람들의 우선적인 관심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생의 기초가 무엇일까요? 인생의 기초는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누구인줄 아는 것이 인생의 기초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어떤 존재라고 말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나를 아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내가 인생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보내셨기에 내가 여기 있는 것입니다. 인생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것입니다. 나를 아는 것과 하나님을 아는 것은 별개가 아닙니다. 나를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알 수 없는 것이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나를 알 수도 없는 것입니다. 나를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알아야 하고, 하나님을 알면, 내가 또한 어떤 존재인지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자신을 소개하는 책입니다. 또한 성경은 인생이 어떤 존재인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11;6을 보면 “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성도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는 사람들이니 저들이 사모하는 본향은 하늘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이 인생의 본향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도의 본향은 이 세상이 아니라 천국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늘에 있는 본향을 사모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지금 이 세상에서 살고 있는데, 우리는 이 세상에서 어떤 자로 사는 것입니까? 나그네로 사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인생을 나그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생이 나그네인 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나그네로서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것을 알지 못하면 우리는 인생을 후회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사는 이 세상은 나의 본향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영원히 사는 곳이 아닙니다. 우리는 단지 나그네로서 이 세상을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사는 것이 나그네로 사는 것임을 알지 못합니다. 이 세상길이 나그네 길인 것을 믿습니까? 그러면 우리는 이 세상을 나그네처럼 살아야 합니다.
나그네는 어떤 사람입니까? 지금 이곳에 머물지 않는 사람이 나그네입니다. 그러므로 나그네는 지금 이 곳에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이 곳에 보화를 쌓아두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이곳에 영원히 머물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외국에 여행을 갔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곳에다 최고급 재료를 구입해서 으리번쩍하게 집을 짓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런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거기는 내가 영원히 살 곳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거기는 나그네로서 잠시 지나가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내가 이 세상에서 나그네인 것을 믿습니까? 네가 나그네인 것을 믿는다면 이 세상에다 집을 짓지 마십시오. 이 세상에다가 보화를 쌓아두려 하지 마십시오. 이 세상에 집을 짓는 것은 헛된 일입니다. 이 세상에 보화를 쌓아두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나그네로 사는 사람은 이 세상에 그 무엇도 쌓아두려고 하지 않습니다. 또한 나그네로 사는 인생은 소유하려 하지 않습니다.
여행을 처음 하는 사람은 여행 첫날부터 무엇을 보면 자꾸 사려고 합니다. 처음 나간 것이기 때문에 보는 곳마다 좋아 보이고, 다 귀해 보입니다. 그래서 여기가면 이것 사고, 저기 가면 저것 사고, 가는 곳마다 삽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자꾸 짐이 커지고 무거워집니다. 나중에는 자기가 산 짐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를 지경이 되고 맙니다. 결국 여행은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짐꾼이 되어서 기진맥진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집 나가면 고생이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집 나가면 고생입니다. 그런데 거기에다 또 짐을 만들면 되겠습니까? 짐을 줄여야 하지요.
여행을 잘 하려면 무엇을 사려는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즐기려고 해야 합니다. 우리가 나그네로 살면서 이 세상에서 무엇을 소유하려고 하는 것은, 마치 짐꾼이 되려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나그네는 짐이 많으면 안 됩니다. 될 수 있으면 짐이 가벼울수록 좋습니다. 짐을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짐이 많은 사람을 부러워합니다. 내가 이 세상에서 무엇을 소유하는 것이 짐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짐을 부러워합니다. 내가 무엇을 소유하는 것은 그것이 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무엇을 소유한다는 것은 내가 짊어져야하는 짐이 늘어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지난번 희망의 집에 가면서 “한벗조합”에서 한복을 가지고 갔습니다. 한복을 펼쳐놓고 다들 한 벌씩 고릅니다. 저는 지난번에 이미 한 벌을 골랐는데, 사람들이 골라서 입는 것을 보니까 또 한 벌이 챙기고 싶은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용포와 같은 황금빛 나는 한복을 골라 입었습니다. 입으니까 다를 새신랑 갔다고 목사님 너무 좋다고 한 마디씩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랑도 할 겸 좋다고 하면 한 벌 더 챙겨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집사님들에게 가서 선을 뵈었습니다. 어떻습니까? 그런데 분명히 안에서는 멋있다고 새신랑 갔다고 하였는데, 우리 성도들은 “목사님! 그건 아닌데요.”하는 것입니다. 집사람도 보고서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아무리 봐도 너무 멋있는 것입니다. 제게 딱 맞는 것이라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는 것입니다. 다시 안으로 들어와서 챙기려고 하는데 최목사님이 한 마디 하십니다. “최목사! 지난번 한 벌 안 가져갔어?” “가겨갔어요.” “그러면 한 벌이면 됐어. 가져가도 입지도 못해. 이거 입을 것이면 집에 있는 것 반납하고, 그렇지 않으면 벗어놔.” 하는 것입니다. 결국 벗어놓고 왔습니다. 생각해 보니까 틀림없이 가져오면 짐이 될게 뻔합니다. 그런데 왜 그런지 자꾸 소유하고 싶은 마음이 끊어지지가 않습니다. 그 소유욕을 끊어버리기가 너무나 힘이 듭니다. 그 소유욕 때문에 자꾸 자꾸 내가 짊어져야 하는 짐이 늘어나는데도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마다 내 안에서 욕심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늘에 있는 본향을 향하여 가고 있는 나그네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우리의 본향이 아니라, 우리가 잠시 머물다가 떠나야 하는 곳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이 세상의 나그네임을 알지 못한다면 우리의 인생은 결국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인생이 되고 말 것입니다. 우리들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이 어리석다고 하면서도, 지금 내가 욕심에 이끌려서 이 세상에서 무엇인가를 자꾸 소유하려고 하는 것이, 바로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인 줄은 깨닫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나그네로 살고 있습니까? 천국 본향을 향하여 가고 있는 나그네로서 살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더 이상 우리는 우리의 욕심에 이끌리면 안 됩니다. 무엇인가를 소유하려고 하는 욕망으로 우리의 인생을 채우려 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성경은 인생을 청지기라고 말합니다. 벧전4;10에 보면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직이 같이 서로 봉사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청지기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지금 내게 있는 것이 내 것이 아니라 주인이 내게 맡긴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내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청지기라는 것을 믿으십니까? 내가 청지기라는 것을 믿으신다면 지금 내게 있는 것도 내 것이 아니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지금 내게 있는 것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까? 청지기는 이 고백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으로 청지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인간을 나그네라고 말합니다. 성경은 인생을 청지기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인생에서 알아야 하는 기초입니다. 우리는 이 기초 위에서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이 기초가 무너지면 우리가 지은 집은 아무리 잘 짓는다고 하더라도 그 집은 모래 위에 지은 집일뿐입니다. 그런 사람은 인생의 마지막 시간에 후회하고 말 것입니다. 후회 없는 인생을 살려고 한다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나그네로 살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청지기로서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창수가 나도 후회하지 않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다시 한 번 읽겠습니다.
(마 6:19)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마 6:20)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저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마 6:21)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오늘 주님은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내가 나그네임을 아는 사람이 이 말씀대로 살 수가 있습니다. 내게 있는 것이 내 것이 아니라, 주인이 내게 맡긴 것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이러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왜 보물을 하늘에 쌓아야 합니까? 이 세상은 우리의 본향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나그네로서 이 세상에서 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보물을 하늘에 쌓아야 합니까? 우리가 청지기이기 때문입니다. 청지기는 소유할 수 있는 권한이 없습니다. 청지기는 소유하는 자가 아니라, 맡기신 자의 뜻대로 사용하는 자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늘에 쌓아야 할 보물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보물 하면 물질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보물은 단지 물질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보물이라고 하였지 물질이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무엇이 보물입니까? 21절 말씀을 보면 “네 보물이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무엇이 보물이냐면 내 마음이 가는 것이 보물입니다. 물질에 내 마음이 가면 그 물질이 보물입니다. 자식에게 마음이 가면 자식이 보물입니다. 자동차에 마음이 가면 그것이 또한 보물이 됩니다.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다 보물입니다. 오늘 주님은 그것들을 하늘에 쌓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일차적으로 우리의 마음이 가는 그것이 보물이 됩니다. 그런데 나의 마음이 간다고 그것이 곧 보물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보통 우리는 내가 귀하게 여기는 그것이 보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마음이 가는 그것이 보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실상은 내 마음이 간다고 보물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간 그것이 하늘에 쌓아져야 보물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 비밀을 깨닫기를 축복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귀하게 여기면 그것이 보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로 보물이 되기 위해서는 하늘에 쌓아져야 합니다. 그래야 참된 보물이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어렵게 얻은 딸이 있었습니다. 참으로 귀하게 얻은 딸입니다. 정말로 그 딸이 보물입니다. 그래서 그 보물을 갈고 닦았습니다. 좋은 옷 입히고요, 맛있고 좋은 것 골라서 먹였습니다. 아낌없이 그 자식을 위한 것이라면 쏟아 부었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키웠습니다. 그런데 자식을 하늘에 쌓아두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렇게 갈고 닦았으니 휘황찬란한 보석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요 하늘에 쌓아두지 않았기 때문에 그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은 그 딸이 그만 웅덩이에 빠져 죽고 말았습니다. 오늘 주님은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내 마음이 가는 그것이 보물이지만, 그 보물이 진정 보물이 되기 위해서는 하늘에 쌓아져야 합니다. 그것이 하늘에 쌓아지기 까지는 진정 보물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하늘에 보물을 쌓는 것일까요? 하늘에 보물을 쌓는 것은 하나님이 기억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억하실 때에 그것이 비로소 참된 보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늘에 보물을 쌓기를 원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서 기억하시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내가 소유한 것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드린 것을 기억하십니다. 내가 드린 것만이 참된 보물이 됩니다.
아브라함은 백세가 되어서야 아들 이삭을 얻었습니다. 이십 오년을 기다리다가 얻은 아들입니다. 얼마나 귀한 아들입니까? 그 아들 잘 키웠습니다. 그런데 이제 다 키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제 사람 노릇 하겠구나 생각했던 그 때에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나에게 번제로 드리라고 하십니다. 왜 하나님은 백세에 낳은 아들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는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백세에 낳은 아들 이삭을 원하시는 것은 그 이삭을 아브라함의 참 보물로 만들어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늘에 쌓아야 진짜 보물이 되는 것이기에, 나의 마음이 가면 보물이라고 우리는 생각하지만, 참 보물은 나의 마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림으로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늘에 쌓아야 참 보물이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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