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주님을 사랑할까?
본문 - 시편 18편 1절
본문 - 시편 18편 1절(개역개정)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일본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한 가정이 캐나다로 이민을 가면서, 기르던 개를 자기들이 살던 집으로 이사 오는 집 주인에게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개가 주인이 이민을 가는 날 공항까지 따라 나갔습니다. 그 다음 날부터 그 개는 먹지도 않고 늘 끙끙거리기만 했습니다. 새 주인이 아무리 정성껏 보살펴 주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다 하루는 집을 나간 개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온 동네를 다 찾아도 없었습니다. 늦게 서야 새 주인은 옛 주인이 떠나간 공항에 가서 그곳에 있는 개를 발견하고 집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그러나 개는 다시 공항으로 가서 주인을 기다렸습니다. 6년의 세월이 흐른 어느 날, 주인을 기다리던 개가 공항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주인을 사랑하는 마음, 주인을 기다리는 마음이 변함없는 개를 갸륵하게 여긴 사람들이 개의 무덤을 만들어 주고 묘비까지 세워 주었습니다. 한 주인을 끝까지 사랑하고 기다린 충성스러운 그 개의 무덤을 보기 위해 지금도 많은 관광객들이 그곳을 방문한다고 합니다. 여러분, 그 개가 그렇게 주인을 기다렸지만, 그 주인은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다리는 주님께서는 ! 오십니다. 우리는 재림의 주님을 기다리며 이 세상에서 주님을 사랑하며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행 13:22에 보면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만나니 다윗의 마음이 하나님에게 맞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윗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루고자 하시는 모든 뜻을 다 이루신 것입니다.
여러분! 진정으로 성공한 인생을 사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그것은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루고자 하시는 뜻을 이루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윗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럼 다윗이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요? 저는 그 비결을 본문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먼저는 다윗이 하나님께 인정받았던 비결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나의 힘’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는 마치 양이 목자를 의지하듯이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그런 신앙의 고백이 바로 시 23편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는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또 하나 다윗이 하나님께 인정받았던 비결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은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자신의 힘으로 삼는 것만 아니라 사랑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자신의 힘으로 삼지만 하나님을 사랑하지는 않습니다. 사실 이것은 온전한 신앙이 아닙니다. 온전한 신앙은 하나님을 힘으로 삼는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기까지 하는 신앙입니다.
하나님을 힘으로 삼는데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신앙은 하나님을 이용하는 신앙입니다. 하나님을 이용하는 신앙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중심을 살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미사여구에 속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외식된 모습에 속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을 힘으로 삼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오늘 설교는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1. 하나님을 사랑하려면 하나님을 계속적으로 생각하십시오.
여러분! 사랑해보셨습니까? 사랑하면 어떤 현상이 나타납니까? 대표적인 현상이 상대를 자꾸만 생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나도 몰라. 자꾸 생각나는 것을 어떻게 하냐? 밥은 먹었는지, 잠은 잘 잤는지, 아프지는 않은지 자꾸 걱정되는데 나보고 어떻게 하란 말이냐?” 이게 사랑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사랑하면 상대를 자꾸 생각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내 마음이 상대에게 끌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 마음이 누구에게 끌리고 있느냐, 무엇에게 끌리고 있느냐를 보면 내가 누구를 사랑하고 있는지 무엇을 사랑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은 하나님에게 끌리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늘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어디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을 생각하며 사는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의 생각을 점검해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하루 종일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가? 누구를 생각하며 사는가? 내가 하루 종일 하는 생각 속에 하나님에 관한 생각은 얼마나 많은가?
여러분! 아마 이런 분이 계실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 생각이 잘 나지 않는데 어떻게 하지?’ 그런 분들은 의지를 가지고 자꾸만 하나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의도적으로 하나님께 집중하는 훈련을 하십시오. 이것을 ‘하나님 임재 연습’이라고 합니다.
무슨 일을 만나든지 그것을 하나님과 연관시켜서 생각하는 훈련을 하십시오. ‘이 일을 통해서 하나님이 나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은 무엇일까? 하나님은 나의 어떤 부분을 고치기를 원하셔서 이런 일을 허락하셨을까? 하나님께서 이 사람을 만나게 하신 뜻은 무엇일까?’
어떤 상황에 들어가든지 그 상황을 보고 계시는 하나님을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그분이 원하시는 뜻은 무엇일까를 생각하십시오. 이것이 되면 신령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생각은 영적인 전선인 것입니다. 전선이 연결되면 전기가 전달 될 수 있고 전선이 끊어지면 전기가 전달될 수 없듯이 영적인 생각을 하면 영적인 생활이 가능하고 영적인 생각이 끊어지면 영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것입니다. 롬 8장에 보면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고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입니다. 무슨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서 영적인 것과 육신적인 것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다윗의 생애를 보면 하나님을 깊이 생각할 때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았고,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을 때는 하나님의 뜻과 거리가 먼 생활을 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극단적인 두 가지 예를 살펴봅시다. 다윗이 사울 때문에 도망을 다닐 때가 있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리고 장군이 된 후 가는 곳마다 지혜롭게 행하고 하는 전쟁마다 승리하니 백성들이 다윗에게 열광합니다. 사울에게 악령이 역사하니 다윗을 시기하고 다윗을 미워하게 됩니다. 악령이 강하게 역사하니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합니다. 다윗은 사울의 칼이 두려워서 도망을 치게 되고 사울은 도망하는 다윗을 계속해서 추격합니다. 한 번은 다윗이 사울을 죽일 기회가 왔습니다. 다윗을 추격하던 사울 왕이 다윗이 숨어있는 동굴에 들어와서 불일을 보려고 합니다. 그 때 다윗을 수종들던 아비새라는 사람이 다윗에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오늘 당신의 원수를 당신의 손에 넘기셨나이다 그러므로 청하오니 내가 창으로 그를 찔러서 단번에 땅에 꽂게 하소서 내가 그를 두 번 찌를 것이 없으리이다” 그 때 다윗이 어떻게 합니까? 다윗은 그 상황을 하나님과 연관시켜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대답합니다. “죽이지 말라 누구든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면 죄가 없겠느냐”(삼상 26:9) 다윗은 그 상황에서! 하나님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찾았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인간적으로 사울을 죽이고 왕위에 오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포기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왕의 자리에 오르는 일은 세상적으로 보면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다윗은 하나님을 생각했기 때문에 세상적인 영광보다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일을 선택했던 것입니다.
또 한 사건은 우리야의 아내를 취하고 우리야를 죽인 사건입니다. 신령한 차원에서 보면 고난이 복이라는 말이 맞습니다. 사람이 육신적으로 편안해지면 영적으로 약해지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적으로 편안해지면 영적으로 느슨해지는 것 같습니다. 다윗에게도 그런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삼하 11장에 보면 다윗의 왕권이 확실해지고 나라가 견고하게 세워지니 이제는 다윗이 전쟁에 직접 나가지 않아도 되게 되었습니다. 이 상황은 잘 된 상황이지만 문제는 영적으로 느슨해진 것입니다. 다윗의 신하들은 전쟁터에 나가서 전쟁을 하는데 다윗은 엄청난 범죄를 저지르게 됩니다. 성경은 다윗이 저녁때에 침상에서 일어났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다윗이 그만큼 해이해졌다는 말입니다. 다윗이 왕궁 옥상을 거닐다가 목욕하는 한 여인을 보게 됩니다. 그 여인은 다윗의 충신 우리야의 아내였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그 여인이 다윗이 그 시간에 그곳에 나타나는 것을 알고 다윗을 유혹하기 위하여 목욕을 했다고 합니다. 아무튼 다윗의 신하들은 전쟁터에서 전쟁을 하는데 다윗은 충신의 아내 밧세바를 불러드려 동침을 합니다. 그리고 그 여인! 이 임신을 하게 되자 그 사실을 숨기기 위하여 우리야를 불러서 술을 먹게 하고 밧세바와 동침을 하게 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야는 전쟁 중이라 아내와 동침하지 않습니다. 그만큼 충신입니다. 다윗은 우리야가 밧세바와 동침을 하지 않으니 할 수 없이 자신의 부끄러운 짓을 숨기기 위해서 충신 우리야를 죽이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다윗은 우리야의 손에 편지를 써서 요압 장군에게 보냅니다. 그 편지의 내용은 우리야를 전투에서 죽게 만들라는 명령이었습니다. 우리아에게서 다윗의 편지를 받아 본 요압은 다윗의 명령대로 우리야를 죽게 합니다. 이 사건을 보면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 다윗은 하나님을 생각지 않았습니다. 그는 욕망에 눈이 멀어서 하나님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가 만약 그 상황에서 하나님을 생각했다면 그런 부끄러운 짓을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나를 보고 계시는데, 나는 하나님을 잊고 살아가면 참 미안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생각합시다. 의도적으로 하나님을 생각합시다. 그리고 어떤 상황 속에 들어가든지 하나님의 뜻을 찾으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범사에 선한 길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2. 하나님을 사랑하려면 하나님 앞에 머물고 싶어 하십시오.
사랑은 참 신기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 사람 생각만 나고 이상하게 그 사람하고 계속 붙어 있고 싶습니다. 반대로 누군가를 미워하면 그 사람하고 함께 있는 것이 싫습니다. 보기도 싫고 그 사람의 목소리 듣는 것도 싫습니다. 저는 아내를 사랑해서 제 아내와 함께 있는 시간이 좋습니다. 제 아내도 저와 함께 있는 시간이 좋을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서로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은 가족끼리 서로 사랑해서 가족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좋은 가정이 되기를 바랍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과 함께 있고 싶어집니다. 신앙이 뜨거워지면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이 좋고 신앙이 식어지면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보다 다른 사람을 만나거나 다른 일을 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있고 싶은 사람에게 두 가지 현상이 나타납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사랑해서 하나님과 함께 있고 싶어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집을 사모합니다.하나님을 사랑했던 다윗이 그랬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집을 사모했습니다. 얼마나 사모했는지 시 84:10에 보면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라고 고백합니다. 이 시는 고라의 시라고 나오는데 학자들은 다윗의 시를 고라의 자손들이 노래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제가 초등학생, 중학생 시절에 좋아했던 친구가 있습니다. 그 친구는 충남 서산에서 올라와서 자취를 하던 친구인데 저는 그 친구 집에 하루에 몇 번씩 놀러갔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한 달에 10일 이상은 그 친구 집에서 잠을 잤던 것 같습니다. 여러분! 제가 왜 그 친구 집을 그렇게 자주 찾아갔을까요? 그 친구를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집을 자주 찾으십시오.
요 2장에 보면 주님께서 성전을 정결하게 하십니다. 그 모습을 보는 제자들에게 떠오른 말씀이 있었습니다. 요 2:17입니다.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제자들이 주님을 보니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고 한 말씀이 생각났던 것입니다. 그만큼 주님은 주의 전을 사모했습니다.
여러분!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있으면 그 열심이 나를 삼키게 됩니다. 주의 전에 가야 하기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합니다. 주의 전에 가야 하기 때문에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도 포기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랑하신다면 주일에 교회 오는 것이 결코 힘든 일이 아닙니다. 일주일에 몇 번 하나님의 집을 찾아도 번거롭게 생각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누구를 만나는 것도 무슨 일을 하는 것도 희생하며 하나님의 집에 올 수 있을 것입니다.
구정 연휴 기간 중에 신학교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이런 저런 대화 중에 윤00 장로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신앙이 얼마나 훌륭한지 몇 명의 친구들이 대단히 칭찬을 하더군요. 윤 장로님은 사업을 하는 분인데 외국에 출장을 가도 주일이면 본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한국으로 돌아온다고 합니다. 미국에 출장을 갔다가도 본 교회에서 주일을 지키기 위해서 100만원이 넘는 돈을 드려서 한국에 들어왔다가 다시 돌아간다고 합니다. 참 대단한 신앙입니다. 그 이야기를 듣던 친구 중에 작년에 우리 교회에서 화장실을 지어주었던 전라도 고흥에서 목회하는 주현광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주목사님이 자기 교인 중에 한 분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몇 년 전에 구정이 주일이었던 날 있었던 일이랍니다. 교인 중에 한 사람은 구정 세로 서울에 올라갔다가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택시를 타고 내려왔다고 하더군요. 참 훌륭한 신앙을 가진 분들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도 이 정도로 주의 집을 사모하는 열심이 있어야 합니다. 주의 전을 사모하는 그 열심이 나를 삼킬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해서 하나님과 함께! 있고 싶어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집을 사모합니다.
또 하나님을 사랑해서 하나님과 함께 있고 싶어 하는 사람은 예배를 사모합니다.하나님은 예배를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은 예배자를 찾으신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며 경배하며 즐거워하기를 원하십니다.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의 외적인 표현이 제사였습니다. 성도는 하나님과 언약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성도와의 언약 관계를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 제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시 50:5을 통해서 “나의 성도들을 내 앞에 모으라 그들은 제사로 나와 언약한 이들이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신약 시대에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의 외적인 표현이 바로 예배입니다.
뉴욕에 가면 허드슨 강이 있는데 그 강의 하류에 가면 쏠트라인이 있습니다. 바다에서 올라오는 소금물과 상류에서 내려오는 민물이 만나는 선을 말합니다. 날이 가물어서 강물이 약해지면 바닷물이 역류해서 허드슨 강으로 올라옵니다. 그러면 식수를 공급하는 수원지에 위협을 받게 됩니다. 비가 적당히 내려서 어느 정도 물이 계속 흐르게 되면 결국 민물이 바닷물의 세력을 계속 밀어내어 수원지가 안전해지는 것입니다. 이 허드슨강의 쏠트라인은 끊임없이 당기고 미는 일이 반복됩니다. 이와 같은 일은 우리 인생살이, 신앙생활에도 있습니다. 영력이 강하면 유혹을 물리칠 수 있지만, 영력이 약해지면 자신도 모르게 밀려가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쏠트라인을 지키는 힘은 예배였습니다. 그는 가는 곳마다 예배를 드렸고 그 힘으로 세상을 이겼으며 복의 근원으로서의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우리의 쏠트라인도 예배입니다. 우리가 예배에 성공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생활을 할 수 있고 예배에 실패하면 마귀가 기뻐하는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 앞에 머물고 싶습니다. 하나님 앞에 머물고 싶은 사람은 하나님의 집을 사모합니다. 그 열심이 그 사람을 삼키게 됩니다. 또 하나님을 사랑하여 하나님 앞에 머물고 싶은 사람은 예배를 사모합니다. 왜냐하면 예배시간은 사랑하고 사모하는 주님을 만나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3. 하나님을 사랑하려면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을 하십시오.
요즘 남자들은 ‘주주 클럽’, ‘시시클럽’에 가입된 사람이 많답니다. 아내가 주면 주는 대로 먹는 사람들의 모임이 주주클럽입니다. 아내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시시클럽입니다. 만약에 남편이 아내가 무서워서 주주클럽, 시시클럽에 가입되어 있다면 비참한 것입니다. 아내를 사랑해서 주주클럽, 시시클럽에 가입되었다면 그 남자는 행복한 남자이고 그 가정은 천국입니다.
우리 신자들은 누구든지 영적인 주주클럽, 시시클럽에 가입되어야 합니다. 주님이 주면 주는 대로 감사하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주클럽, 시시클럽에 가입되기는 했는데 주님이 무서워서 그렇게 한다면 그 신앙은 율법적인 신앙이며 절대 행복할 수 없는 신앙입니다. 우리가 영적인 면에서 주주클럽, 시시클럽에 가입되었는데 주님을 사랑해서 그렇게 한다면 그 신앙은 굉장히 성숙된 신앙이고 그 삶은 아름답고 행복한 삶인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을 사랑하십니까? 그렇다면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십시오. 그럼 주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 무슨 일입니까?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장 원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그 일은 바로 목양입니다. 잃어버린 영혼을 찾고 그 영혼을 양육하는 일만큼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없습니다.
요 21장에 보면 부활하신 주님께서 물고기를 잡고 있는 제자들을 찾아가셔서 그들을 다시 부르십니다. 베드로는 물고기 잡는 제자들에게 말을 붙이신 분이 주님이라는 것을 알고 수영을 해서 해변에 도착합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3번을 물으셨습니다.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 물음에 베드로가 대답했습니다.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베드로의 대답을 들으신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뭘 부탁하셨습니까? “내 어린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목양입니다. 전도하고 전도 된 영혼을 성장, 성숙시키는 것이 주님께서 주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가장 원하시는 것입니다.
전도는 인간적인 능력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주님의 마음을 가지고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만 있으면 주님이 열매를 맺게 하실 것입니다.
제가 존경하는 목사님 교회의 한 가정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식사 시간에 네 살 먹은 아이가 말했습니다. “엄마, 오늘은 내가 식사 기도할게.”, “그래, 해 봐라.”, “하나님 아버지, 너무 슬퍼요. 우리 아빠 때문에 슬퍼요. 엄마랑 나는 예수님을 믿어서 천국 가는데, 아빠는 예수님을 믿지 않아 지옥에 가요. 아빠는 바보예요. 예수님을 믿으라 해도 안 믿어요. 너무 너무 슬퍼요….” 네 살 먹은 외동아들이 눈물을 주르르 흘리며 기도했습니다. 기도는 하지 않고 구경만 하고 있던 아빠의 가슴이 찡해졌습니다. 그래서 “울지 마라. 다음 주부터 교회에 따라가 줄게.”라고 말하고 교회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전도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리고 전도는 인간적인 능력으로 하는 게 아닙니다. 기도하고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역사는 하나님이 하실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살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해서 기쁨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두려워서 할 수 없이 하나님의 뜻을 행합니다. 하나님의 매가 무서워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되면 안 됩니다. 물론 매를 맞으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는 사람보다는 낫지만 그건 비참한 신앙생활입니다.
옛날 임금님이 키우던 개가 한 마리 있었습니다. 그러나 짓지도 않고 하는 일이라곤 머리를 아래 위로만 흔드는 이상한 버릇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임금님은 “내 개의 머리를 좌우로 흔들 수 있게 하는 사람에겐 큰 상을 내리겠노라”라고 명을 내렸습니다. 며칠 후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와서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개의 머리를 좌우로 흔들게 만들어 보려했지만 모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때 마지막으로 한 남자가 007 가방을 들고 들어섰습니다. “제가 개의 머리를 좌우로 흔들도록 해보겠습니다.” 하더니 007 가방에서 벽돌을 한 장 꺼내어 개에게로 다가가더니 느닷없이 개의 머리를 벽돌로 두 세 번 내리찍자, 놀란 개가 뛰다시피 임금님 뒤로 숨어버렸습니다. 그 남자는 개를 빠끔히 쳐다보자 한마디 했습니다. “더 맞을래?” 개는 겁에 잔뜩 질려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댔습니다. 그 사람은 많은 상금을 가지고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일이 있은 후 개에게서 또 다른 행동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젠 개가 고개를 늘 좌우로만 흔들어대는 것이었습니다. 화가 난 임금님은 개의 머리를 아래위! 로 흔들 수 있는 사람에게 큰 상을 내리겠노라고 하자,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왔으나 모두 실패하고 돌아갔습니다. 또 그 007 가방을 든 남자가 마지막으로 들어섰습니다. “제가 개의 머리를 아래위로 흔들게 해 보겠습니다.” 그러더니 007 가방을 열고 벽돌을 보이면서 개에게 한마디를 툭 던졌습니다. “너, 나 알지?” 개가 고개를 어떻게 했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이 들고 협박하시는 빨간 벽돌을 보고 순종하는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해서 기쁨으로 감사하므로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힘으로 삼아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힘으로만 삼고 끝나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숙한 단계까지 가야 합니다.
오늘 설교는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서 세 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첫째, 하나님을 사랑하려면 하나님을 계속적으로 생각하십시오. 둘째, 하나님을 사랑하려면 하나님 앞에 머물고 싶어 하십시오. 하나님의 집을 사모하시고 예배를 사모하십시오. 셋째,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을 하십시오. 특히 영혼 구원에 힘을 쓰시고 기쁨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시기를 바랍니다.
[비전교회] 경기도 하남시 감이동 3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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