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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그리스도의 임재 / 엡 3:14-19 (신 313쪽)

그리스도의 임재

3:14-19 (313)

3:14-19 “14 이러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15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16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18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19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같은 성경책을 가지고 설교를 반복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 안에서 새롭게 빼먹을만한 내용을 찾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같은 본문을 가지고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같은 본문의 내용으로 설교를 하는 것은 

그만큼 더욱 중요한 의미들이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우리 모두는 교회공동체를 섬기는 지체로서 

교회 생활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고 가야만 하는 겁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의 자리를 위협하는 위험요소는 사실 대부분 교회공동체 안에서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5:20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을 반대로 뒤집어서 생각을 해보면 

은혜가 있어야 하는 곳에 오히려 죄만 더욱 가득할 수 있는 겁니다


왜냐하면 교회공동체의 구성원인 우리가 모두 다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죄인이기 때문에 우리의 사고와 생각은 언제든지 자기중심적일 때가 많습니다

내가 좋아하면 다른 사람도 다 좋아해야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나를 싫어하는 것으로 여겨버리는 겁니다

이게 정말 무섭습니다

각 자의 스타일과 취향과 선호하는 것들이 다 다릅니다

이 차이를 인정하고 살 수 있어야만 합니다

그 차이를 인정하지 못하면 우리는 같이 살 수 없습니다.

 


영월의 권범수 목사님의 아주 유명한 일화입니다

저랑 같은 교회를 섬길 때 일입니다

하루는 목사님한테 자기 교구의 신실한 집사님 부부가 

서로 대판 싸우고 이혼을 하겠다고 전화가 왔더랍니다

그래서 부랴부랴 심방을 가서 부부를 앉혀놓고 싸운 이유를 듣자니까 가관이더라는 겁니다.

싸운 이유가 고작 해서 찐 감자에다가 무엇을 찍어서 먹어야 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남편 집사는 전라도 사람이라서 설탕을 찍어 먹어야 한다고 했답니다

부인되는 집사님은 경상도 사람이라서 소금을 찍어 먹어야 한다고 주장했답니다

그래서 설탕 가져와라, 그냥 소금 찍어먹어라 하다가 결국 대판 싸움으로 커진 겁니다

간식을 먹으면서 사이좋은 시간을 가져본다는 것이 뜻밖의 복병을 만나서 이혼하게 된 겁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다 들은 권 목사님이 딱 한 마디 했답니다.

나는 강원도 사람이라 찐 감자는 고추장 찍어 먹는다.’

그것으로 간단하게 싸움이 끝나고 심방도 끝났습니다.

 

서로의 차이를 이해해야만 합니다

이런 이해가 우리 신앙생활에 기본으로 깔려 있지 못하면 

아무리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고

또 예수 그리스도까지 우리 안에 계셔도 

우리는 늘 다툼과 싸움 밖에는 할 일이 없습니다


솔직히 우리는 삶의 가치관과 그 수준은 각 자가 다 다릅니다

다를 수밖에 없고, 또 달라야 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에 있어서는 우리가 공통적입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사는 성도라고 하는 겁니다

죄인이기 때문에

허물이 많기 때문에 

예수 믿고 사는 길 외에 다른 길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 언제든지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 하십니다.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도 바울이 고백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마음에 계시도록 기도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예수 그리스도가 이미 우리 안에 들어와 계시는 건데 

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계시도록 기도를 하라고 하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도대체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가 어떤 의미일까요

이미 우리 안에 와 계시는데도 

우리가 기도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를 구해야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오늘은 그 생각을 해보자는 겁니다.

 


믿음으로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가장 큰 신앙적인 딜레마는 의외로 믿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분명히 믿음으로 사는데

믿음이 가장 큰 약점이고

아킬레스건이고

가장 아픈 고민거리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사는 믿음의 모습이 삶의 자리에서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도원에 가 보면 아주 쉽게 드러납니다

집회 시간마다 가장 앞자리에 앉아서 열심히 찬송을 하고

말씀마다 아멘을 하고, 아주 뜨겁게 기도를 했던 믿음 좋은 모습의 사람도 

식당에 가서 보면 남들을 앞질러서 자리를 서는 새치기를 아주 기가 막히게 잘 합니다


삶의 자리에서 가보면 티가 확실하게 납니다


왕자와 거지라고 하는 동화 아시죠

왕궁 안에 사는 왕자와 성문 곁에 사는 거지가 서로 옷을 바꿔 입고 

서로의 행세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동화는 사실 이미 이야기의 전제부터가 틀렸습니다

아무리 숨기고 살아도 귀한 사람은 귀한 티가 납니다

아무리 가려도 천한 사람은 천한 티가 납니다

옷으로 가리고, 음식으로 가려도 이미 그 표가 확 납니다


명동이나 동대문에 가 보면 중국 사람이나 일본 사람은 우리나라 사람과는 확실하게 구분이 됩니다

아무 동양인이라서 비슷하게 보여도 뭔가 다릅니다

이미 그 속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살아온 삶의 자리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산다고 하는 것은 바로 그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삶의 자리에서 확실하게 드러날 수밖에 없는 감추지 못하는 모습인 것입니다


제가 많은 교회를 섬기면서 그래도 은근히 꽤 많은 소개팅을 주선해줬습니다

지금도 사실 제가 하고 싶은 전국적인 행사 하나는 

교회 안에 떠돌고 있는 수많은 선남선녀들을 주 안에서 만나게 해주는 신앙적인 프로그램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소개팅을 해주면서 느낀 것 딱 한 가지는 다시는 소개팅 하지 말자는 것이었습니다


성도들에게 목사가 속는 느낌이었습니다

작하는 말로는 상대의 믿음 한 가지만 본다고 합니다

그러나 정작 만남이 이루어지면 

이건 세상 사람은 저리 가라할 정도로 

너무 많은 외적인 요소들을 추구하고 핑계하고 요구하는 것을 봤습니다

정말 그 사람의 내면이 다시 보일 정도입니다


우리가 인간적인 실패를 두려워해야만 합니까

아니면 영적인 실패를 두려워해야만 합니까

인간적인 조건과 영적인 조건 앞에서 어떤 것을 먼저 따져야 합니까


그런데 그 문제가 내 문제가 되고,

내 가족 문제가 되면 그렇지 못한 겁니다

태도가 갑자가 확 바뀝니다

정말 저 사람이 내가 평소에 칭찬하던 그 사람일까 싶을 정도로 180도 변해버립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사는 모습이 아니더라는 말씀입니다

아니 자기 생각으로는 모시고 사는데

 그 가치가 자기의 인간적으로 연약하고 부족하고 모자라는 부분을 채워주는 

능력의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사는 겁니다.

한마디로 세상적인 가치의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니 삶의 자리에 가보면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지 않는 겁니다.

분명히 신앙을 살고, 은혜로 살고, 믿음으로 산다고 알고 있는데 

정작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은 없습니다.

 


때문에 성도들의 삶이 대부분 무대포 입니다.

이유 없이 강합니다

청산유수처럼 말은 잘 합니다

얼마나 신앙적인 지식이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나 삶은 없습니다

삶에서는 너무 약합니다


죽은 다음에 천국 가는 것이 우리 운명입니다

그러나 살아 있는 동안 천국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죽은 다음에 천국 간다고 하는 것은 사기 아닙니까


죽은 다음의 이야기야 죽은 다음의 문제니까 뭐라고 떠들면 어떻습니까

그러니까 아무렇게나 떠드는 것 아닙니까

사는 것은 진짜 예수의 O 과도 관계없이 살면서 말입니다.

게다가 그렇게 살더라도 하나님께서 가끔 야단하지 않으시니까

 이제는 아예 예수 믿는 성도로서의 감각조차도 다 무뎌졌습니다

이렇게 그냥 살아도 되는 것이라고 여기는 풍토가 되어 버렸습니다

오히려 이제는 세상을 따라 사는 정도가 아니라 세상보다 앞서서 사는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 바로 그 부분을 이야기하면서 기도하라고 하는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사는 삶을 위한 기도가 필요하다고 하는 겁니다


그 기도의 내용에 들어갈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세상을 분별하는 지혜입니다

하나님을 뜻을 구하는 태도입니다

세상 것에 대한 미련과 욕심을 내려놓는 포기에 대한 용기입니다

오늘의 형편과 처지에 대한 무조건적인 감사입니다

이렇게 살다가는 남들에게 뒤처질 것 같은 불안함에 대한 신앙적인 확신입니다

세상의 것으로 자랑하려고 하는 세태 앞에서 신앙의 것으로 무장한 떳떳함입니다

십자가의 삶을 사는 신앙적인 당당함입니다.

 

그런 것이 오늘 우리에게는 얼마만큼의 크기로 역사하고 있습니까

성도라고 이름하면서 얼마나 신앙적인 자랑으로 살고 있습니까


제가 제일 처음 필리핀 단기선교를 갔을 때 비행기에서 가졌던 만남의 모습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처음 필리핀을 간다고 참 오랫동안 교회 안에서 홍보와 광고를 했었습니다

교회의 담임목사님과 청년 찬양 팀과 함께 필리핀을 가는 비행기를 탔는데 

그 때 같은 교회의 집사님이 청년의 자녀들과 함께 필리핀 골프 투어를 가느라고 

같은 비행기에 타게 되어 서로 비행기 안에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때 목사님의 민망한 모습과 집사님의 당황한 모습이 잊혀 지지 않습니다

하필 그 집사님의 일정이 저희 단기선교 일정과 똑같았습니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도 다시 만났습니다

그 집사님은 단기선교에 10원짜리 하나 돕지 않았습니다


저는 우리 성도들에게 말씀을 가르치는 목사로서 

우리 성도들 중에는 이런 부끄러운 모습이 되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삶 안에 있도록 제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좀 어려운 형편이면 어떻습니까


사는 형편에 대해서 너무 개의치 마시기 바랍니다

형편과 처지는 다 이렇게 저렇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사는 삶의 빛은 그 어떤 형편에서든지 드러내고 살아야만 합니다

예수 믿고 사는 성도의 영적인 자랑스러움이 있어야만 합니다

지금 당장 하나님의 축복이 없다고 포기하지 마세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더 귀한 면류관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그 면류관을 우리 나무목교회 성도들이 반드시 차지하도록 

저는 더 열심히 가르치고 성도들은 더 열심히 기도하고 사셔서 

먼 훗날에 천국에 가실 때 하나님의 영광이 되시기 바랍니다

출처 : 나무목교회
글쓴이 : 뜨거운얼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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