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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거룩한 깨달음 / 엡 3:14-19 (신 313쪽)

거룩한 깨달음

3:14-19 (313)

 

3:14-19 “14 이러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15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16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18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19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우리가 하고 있는 신앙생활은 단순한 행사나 행위가 아니라 분명한 삶입니다

삶은 생명력이 있고 호흡이 있고 성장이 있습니다

예수 믿고 구원 받아서 사는 이 땅에서의 우리 삶이 단순하게 날마다 천국이 아닙니다

천국을 살되 그 천국 안에서 천국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성장해 나가는 겁니다

자라되 날마다 자라가는 겁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자란다고 하는 표현을 아주 멋지게 표현을 했습니다.

 

고전15: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날마다 죽는다는 말을 합니다

아니 왜 사도 바울이 날마다 죽습니까

사도 바울이 바로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기 때문입니다.

 

18-19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알아도 어느 정도를 아느냐면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에 있어서 다 압니다

그냥 한마디로 전부를 다 압니다

그 사랑이 가지고 있는 엄청난 가치를 깨닫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영적인 철이 든 것입니다

때문에 성도들이 이 정도의 수준까지 올라가야만 한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지는 경지가 되어야 합니다

모든 성도들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확실하게 알아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기준은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심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심으로 우리를 충만하게 하기 위해서는 

그 엄청난 규격을 제대로 알아야만 하는 겁니다


그러려면 먼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야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를 알아야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어느 정도 크기인지를 제대로 모르니까 

자꾸만 우리 삶에서 사랑이라고 하는 부분이 희석되고 증발되고 약화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제대로 아는 것을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는 깨달아 라고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의 크기를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라고 하는 수량적인 표현을 하고 있는 겁니다.

 

저는 이것을 그냥 한마디로 거룩한 깨달음 이라고 말씀을 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에서도 깨닫는다고 하는 표현이 너무 많고

또 깨닫는다는 하고 명분으로 움직이고 있는 종교도 많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추구하고 독려하는 이 깨달음은 

세상의 어떤 깨달음, 타 종교의 어떤 깨달음과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고 하는 겁니다

세상의 깨달음은 그 대상이 모두 다 자기 자신입니다


아니 좀 더 확실하게 설명을 하자면 

자기 자신을 깨닫는 것이 언제나 먼저이고, 또 그것이 언제나 깨달음의 최종목표입니다

그냥 언제든지 자기 좋으라고 하는 겁니다

자기만 좋자고 깨닫는 겁니다

행동도 자기가 하면서 그 대상도 자기가 되는 겁니다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주의하고 조심해야만 합니다

자기 계발이니 

자기 완성이니 

자기 발견이니 하는 것들에 대해서 일단 경계를 해야만 합니다

목적과 수단이 모두 자기입니다

지금 세상의 삶이 다 자기 가치 우선으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자기만 좋으면 되는 겁니다.

 

문제는 세상이 아니고 오늘 우리들입니다

우리는 세상과 짝하고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왜 우리만 갖고 그래? 라고 묻고 싶으시겠지만 우리가 원래 그렇습니다

이유는 더 따져 물을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 그것으로 따져 물어봐야 입만 아픕니다


그래서 그런지 종종 목사한테 따져 묻는 분들이 꼭 있습니다

우리가 꼭 이렇게까지 살아야만 합니까?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대답은 그렇습니다

이 대답 외에 다른 대답이 없습니다

우리라고 이 땅에서 어렵게 힘들게 고통스럽게 살아야만 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라고 물으시면 

저는 딱 한 마디만 대답하겠습니다.

, 있습니다. 우리는 거룩하다는 겁니다.”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이 거룩하니까 우리도 거룩해야만 한다고 

하나님은 분명하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기에 불만이 있다면 저도 어쩔 수 없습니다.

 

11:45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분명하게 거룩입니다

우리의 트레이드마크는 거룩입니다

우리 컨셉트는 거룩입니다

우리의 자랑은 거룩입니다

우리의 영광은 거룩입니다

때문에 우리의 깨달음마저 거룩입니다

거룩한 깨달음입니다.


우리의 깨달음은 세상과는 다른 겁니다.

세상은 자기만을 위한 깨달음이지만 우리는 그런 세상과는 전혀 다른 깨달음입니다

세상과 완전하게 다른, 또렷하게 구분된 거룩한 깨달음입니다

내 삶을 나를 위한 것이 아닌 하나님의 충만하신 것으로 채워야만 하는 깨달음입니다

채우되 어떻게 채워야 하느냐면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의 채움입니다

우리 삶의 어느 한 영역이 예외가 없이 다 채워야만 하는 채움입니다

어느 일부분 한 쪽에 세상의 것으로 채워놓고

그 다음에 하나님의 영역으로 채우는 채움이 아닙니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몽땅 다 채워야만 하는 채움입니다


때문에 우리 삶의 가치 논리는 신앙의 논리입니다

믿음의 논리입니다

내가 행하는 무엇

내가 바라는 무엇

내게 필요한 무엇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요구 앞에 순종으로 응답하는 무엇입니다

혹시라도 그것이 내게 손해가 되는 일이라고 할지라도 기꺼이 감당할 줄 아는 채움입니다.

채우려면 그럼 먼저 뭘 어떻게 해야만 합니까?

 

17:30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먼저 나를 비우는 것이 필요합니다

비워야만 채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비우는 작업이 바로 회개입니다

회개는 하나님 앞에 내 죄를 내려놓는 것입니다

내 죄를 내려놓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죄인인 것을 바로 보는 겁니다


깨달음이란 바로 죄인인 나를 제대로 보게 됩니다

내 삶이 하나님 아버지 앞에 헛된 것을 알고 

돌이켜 하나님의 은혜로 채우고자 비우는 겁니다.


비우고 나면 이제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채우는 싸움을 하는 겁니다.

그런데 바로 그 채움을 어느 정도까지 하느냐면 

바로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의 채움을 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바로 그 채움은 잠간 동안의 달리기가 아닙니다

이건 정말 평생을 걸쳐서 달려가야만 하는 마라톤입니다.


마라톤은 어떻게 달리는 겁니까

자기가 달릴 수 있는 평균속도를 처음부터 끝까지 고르게 유지해서 달리는 겁니다

어느 한 부분에서 과속을 하거나, 어느 부분에서 걷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똑같은 속도로 꾸준하게 달리는 겁니다

그러니까 자기 스타일, 자기 체형, 자기 속도를 유지하면서 달리는 겁니다

누가 알아주건 알아주지 않건 여부에 관계없이 여전히 달리는 겁니다

아니 남들은 다 달린다고 하는데 혹시라도 자신이 달리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걸어가도 되는 겁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 똑같은 스피드를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각 자 자기에게 맞게 뛰든지 걷든지 하라는 겁니다

그러나 결코 뒤로 돌아서지도 말고, 멈추지도 말라고 하는 겁니다.

 

공부를 잘 하는 아이와 못 하는 아이의 다른 점이 뭡니까?

공부를 잘 하는 아이는 언제든지 책상에 앉아 있습니다

시험이 없을 때에도 여전히 책상에 앉아서 책을 보는 겁니다

그러나 공부를 못 하는 아이는 시험 때만 되면 부산합니다

갑자기 밤을 세운다고 야단법석입니다

그렇게 며칠 요란을 떨고 시험만 끝나면 도로 책상과는 이별을 하는 겁니다

그리고 시험 기간이라고 하더라도 책상에 앉아 있는 실제 시간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그냥 시험 때니까 밤을 새워서라도 오기로 앉아 있는 것이거나 

책상에 앉아 있다고 하는 자기 암시만 있을 뿐입니다

시험 성적이나 실력과는 아무런 함수 관계가 없습니다.

 


신앙에는 결코 지름길이 없습니다.

하루아침에 뚝딱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수요일에 나와서까지 기도를 한다고 해서 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의 기도가 뭔가 초특급으로 이루어지는 수단과 대책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해야만 합니다

간절히 열심히 진실하게 뜨겁게 기도하면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내가 기도한다고 하는 것은 곧 내가 오늘의 현실에 굴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오늘의 현실보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의지한다고 하는 겁니다

세상은 항상 현실에 굴복합니다

현실을 따라 갑니다

상황윤리를 따릅니다

사흘 굶어서 도둑질 안할 사람이 없는 겁니다


그러나 신앙은 아닙니다

여전히 하나님을 바라보고 내 안에 비울 것을 비웁니다

부족한 내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을 채우려고 꿈을 꿉니다.

때문에 기도도 하는 겁니다

나로 하여금 오늘의 현실에 절망하는 삶이 되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하신 말씀에 더욱 전념하는 믿음이 되도록 해달라고 기도하는 겁니다

그래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삶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세상의 묵은 때를 씻어내고 

하나님의 거룩을 조금이라도 흉내 내고 살려고 하는 겁니다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여전히 꾸준하게 걸어가든지 달려가든지 하는 겁니다

세상의 이것저것을 핑계해서 

멈추려고 하고 

쉬려고 하고 

돌아서려고 하는 나를 자꾸만 채찍질을 하는 겁니다.

 


우리의 깨달음은 단순히 생각만의 깨달음이 아닙니다

거룩한 깨달음입니다

세상과는 전혀 다른 방향과 가치의 깨달음입니다

기독교는 행함의 종교입니다

믿음의 종교입니다

믿기 때문에 행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심이 내 삶의 모든 영역에 풍성하게 채워주실 것은 믿기 때문에 

오늘 비록 아무 보잘 것 없는 초라한 걸음일지라도 여전히 걷는 겁니다.

끝까지 가는 겁니다


그 가는 걸음 위에 우리가 함께 도우면서 가는 겁니다

부축하고 가는 겁니다

대신 짐을 져주면서 가는 겁니다

아무리 연약해도 서로를 위해서 할 일이 있기 때문에 교회공동체의 지체가 되어 가는 겁니다

출처 : 나무목교회
글쓴이 : 뜨거운얼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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