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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 엡 3:14-19 (신 313쪽)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3:14-19 (313)


3:14-19 “14 이러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15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16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오며

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옵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18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19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겨울의 한 복판인 12월이 되면 크리스마스가 옵니다

크리스마스 때에는 누구든지 하얀 눈을 기다립니다

그래서 올 겨울에는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되게 해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는 저 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되면 고생을 더 할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군인들 고생합니다

도로를 청소하는 분들 고생합니다

운전하는 분들 고생합니다


운전하는 분들 중에도 차 안 몰고 나가면 괜찮은 분들 말고요

운전해야만 먹고 사는 분들을 말합니다

관념적으로는 흰 눈이 오는 크리스마스가 좋습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눈이 오면 큰일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 기독교의 가장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랑에 관한 내용입니다

사랑이라는 말은 사실 그 단어에서 이미 따뜻함과 온화함, 포근함 등을 느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가을이라고 하면 

남자의 계절이요, 독서의 계절이요, 결실의 계절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사랑은 그 대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저 생각만으로 흐뭇해지고 따뜻해지고 포근해지는 것이 사랑이 아닙니다

그건 그저 생각일 뿐입니다

사랑은 실제 사랑의 대상이 있어서 그 대상과 아울러 나누어 가지는 감정과 

실제의 모든 경험을 다 어우르는 표현입니다

그러니까 사랑이라는 단어만으로 뭔가 따뜻해지고 포근해진다고 하는 것은 그냥 관념론일 뿐입니다


사랑은 그 구체적인 대상이 있어야만 하는 겁니다

그렇지 못한 사랑은 아니라 그냥 허울 좋은 이론일 뿐입니다


기독교를 사랑의 종교라고 합니다

성경의 핵심을 사랑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전혀 뜻밖으로 사랑 안에 산다는 기독교가

사랑으로 살아야만 하는 성도가 

사랑이 전혀 없는 빈껍데기일 때가 정말 많습니다


직접적으로 서로 대하기 전에는 믿음도 좋고 은혜도 충만한 줄 알았는데 

막상 대하고 보니까 전혀 뜻밖인 분들이 꽤 많습니다

그 분은 그냥 이론뿐인 사랑, 관념뿐인 사랑을 하고 사는 겁니다

실제로 부딪히고 접촉하는 분들에게는 사랑을 전혀 나타내지 않는 분인 겁니다


사랑이 단순히 단어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고장난명이라고 하는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손바닥도 마주쳐야만 소리가 난다는 겁니다

우리가 말하는 사랑이 그렇습니다


기본적으로 우리 성도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있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사랑의 완성이기 때문입니다

또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난 후의 사랑이 진짜 사랑입니다

그 외의 사랑은 단순히 감정이나 관념의 사랑일 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사랑은 단순히 사람만의, 사람을 위한, 사람의 사랑이 아니라는 겁니다.

 

고후 5:11-14 우리는 주의 두려우심을 알므로 사람들을 권면하거니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알리어졌으니 

또 너희의 양심에도 알리어지기를 바라노라 우리가 다시 너희에게 자천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우리로 말미암아 

자랑할 기회를 너희에게 주어 마음으로 하지 않고 외모로 자랑하는 자들에게 대답하게 하려 하는 것이라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그리스도의 사랑이 사도 바울을 강권하는 겁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그가 그 어떤 경우에도 고린도교회를 사랑하는 일에 나설 수밖에 없는 겁니다

여기서 주의 할 것은

 단순히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기 때문에 

그 사랑을 추억하고 기념하고 생각하고 감사해 사랑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랑에 보답해서 사랑을 하자는 것도 아닙니다

기념하고 보답하고 감사하자고 하는 사랑이면 

그 근거와 기준이 몽땅 다 자기 자신에게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어떤 경우에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사랑이 되어 버리는 겁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근거와 기준과 출발이 모두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것과 같은 사랑을 해야만 하는 겁니다

왜냐하면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있기 때문에 내 감정과 기분과 상황을 무시한 실제적인 사랑이 있는 겁니다.

그 사랑이 바로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 입니다

막연하게 감정으로만 충만한 사랑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넘치는 지식이 있는 겁니다.

 


지식은 없고 감정만 앞세우면 망하기 딱 좋습니다

얼마 전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왜 물에 빠져서 죽는 사람은 한 곳에서 보통 두 사람은 넘을까요

물에 빠진 사람에 대한 감정만 있기 때문입니다

빨리 건져내고 싶고, 안타까워서 앞 뒤 안 가리게 되어 있습니다

내 사랑하는 이 아이, 이 사람을 건지기 위해서는 

무엇 무엇이 필요하다고 하는 지식이 전혀 없습니다

아니 지식이 있어도 그런 지식이 생각나지도 통하지도 않습니다

감정적인 사랑만 앞서는 겁니다

그러다가 결국 먼저 물에 빠진 사람과 건지려고 물에 뛰어든 사람 모두 둘 다 빠져 죽는 겁니다


왜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다가 서로 등을 돌리게 됩니까

서로에게 대한 지식이 없어서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우리더러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라고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행하는 사랑은 인간적인 것에 대한 지식이 아닙니다

우리가 함께 교회를 섬기고 있는 성도들에 대한 형편과 처지를 다 아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서로에 대한 형편을 잘 안다고 해서 그리스도의 사랑이 실천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인간적으로 서로 조금 알고 있는 것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에 있어서 

방해가 될 때가 더 많습니다


우리의 인간적인 형편은 서로 몰라도 됩니다

다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알아야만 한다는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얼마나 무한하고 풍성하고 한이 없는지를 확실하게 알아야만 합니다

그 사랑을 잘 모르니까 

늘 내 한계 안에서

내 아는 바 안에서

내 능력과 영역 안에서만 복작대고 있는 겁니다

여전히 내 감정의 기준과 잣대로 남을 판단하고 비방하고 헐뜯고 있는 겁니다.

 

딤전 1:12-16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사도 바울 자신은 죄인 중에서도 아주 상급 죄인이었다는 겁니다

그런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가운데서 용서를 받은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라 

또 다른 악당으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는 본이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때문에 자신의 삶은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역할뿐이라는 겁니다

자신의 삶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사랑을 보여줘야 한다는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사랑을 보여주려면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알아야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어떤 사랑을 주셨으며

또 그 사랑의 한계는 어디까지인지를 알아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내가 이 세상 사는 동안 내게 허락하신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사랑을 받을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내게 사랑을 주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에 무조건 사랑을 한다는 겁니다


이런 각오가 바로 오늘 우리에게 있느냐는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려고 하는 영적인 노력이 있어야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간다고 하는 것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겁니다

인격적인 성품이 예수 그리스도처럼 되어 가는 겁니다

믿는 것이 곧 아는 것이 되는 것이고

그것이 곧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아가는 겁니다.

 

4:13-15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저는 오늘 참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기분이 참 좋은 하루입니다

제 승용차가 10년은 넘은 겁니다

내일이 종합보험 만기일입니다

원래 그 차 보험이 전에 섬겼던 교회의 어떤 집사님께 들었던 겁니다

요즘은 보험만기가 돼가면 참 여러 곳의 보험회사에서 전화나 문자가 옵니다

자기네 보험을 들라는 겁니다

그런데 정작 제가 보험 들어있는 집사님께만 문자가 전화가 전혀 안 왔습니다

그래서 집사람을 통해서 연락을 해봤더니만 

목사님께서 혹시라도 다른 곳에 가입을 하실 수 있는데 

자기 때문에 못하실까봐 먼저 연락을 안했다는 겁니다

혹시라도 내가 불편할 수 있을까봐 그러셨다는 겁니다

집사님의 실적이나 배당이 우선이 아니라 보험을 드는 내가 편한 것이 우선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오늘 제가 재가입을 해달라고 전화로 요청을 했습니다


그런데 보세요

제가 알아본 가격은 51만원입니다

그런데 집사님께서 요구하신 것은 46만원입니다

얼마가 차이 납니까

이 차이가 뭐라고 생각이 되십니까


그러면 지금까지 드린 말씀을 다 모아서 한 번 생각해보세요

이 분은 원래 제가 연락해서 보험을 들면 자기 이익은 생각하지도 않으신 겁니다

그렇다면 충분히 제게 먼저 전화를 하실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렇죠

자기 이익 5만원을 안 받는다고 생색을 내면서 먼저 전화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안 했습니다

보험료에서 나오는 자기 이익을 깎아주고도 내가 할인해드린 거라는 말씀 한마디가 없습니다.


이것이 저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는 인격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다른 사람한테는 다 받아먹는데 저는 목사니까 그럴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제가 아는 그 분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처음부터 그 집사님이 하시는 보험에 들겠다고 집사람한테 연락을 했던 겁니다

그 집사님은 분명히 제 보험료를 깎아주실 것이라고 하는 생각은 결코 우선이 아니었습니다

더 깎아 주실 수 있는 분들을 제가 많이 압니다

그러나 그런 분들은 상대를 아주 피곤하게 만듭니다.

 

예수 닮은 인격이 뭡니까?

상대방의 입장을 철저하게 배려하는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아는 사람은 먼저 상대방 입장과 처지를 배려합니다

그러려면 우선 내 것은 먼저 내려놔야만 합니다

성격, 자존심, 실력, 재물, 경험 등등 자기에게 속한 모든 것들을 다 내려놓고 

철저하게 먼저 상대방의 입장에서 충분히 이해하고, 행동하는 겁니다


예수 믿고 세월을 좀 지내다보면 우리의 마음에도 동맥경화가 생길 수 있습니다

상대방의 마음 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고 내 처지, 내 형편만 주장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언제든지 상대방 우선이었습니다

그 사랑으로 돌아가야만 합니다

회복해야만 합니다.

그러자고 예배하고 찬양하고 기도하는 겁니다


오늘 이 저녁을 계기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과 삶으로 돌아가서 

착하고 충성된 종의 자리를 지켜가는 나무목교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출처 : 나무목교회
글쓴이 : 뜨거운얼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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