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 한국의 비전
왕하22:8-13,계1:3
이야기 하나.
YWAM총재 로렌 커닝햄이 최근에 쓴 “열방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책”에 보면 “작은 땅 핏케언에서 일어난 혁명”이라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1991년 8월 로렌 커닝햄은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의 갬비어 제도에서 사흘간 배를 타고 망망대해에 떠있는 핏케언이라는 이 작은 섬을 방문하여 발견한 놀라운 사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섬은 2평방 마일의 작은 섬으로 불과 55명의 주민들이 평화롭게 살고 있는 작은 천국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섬이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본래 이 섬은 1789년 영국 군함 바운티 호에서 반란 사건이 일어나 아홉 명의 반란자들이 이 배를 탈취하여 찾아온 무인도였다고 합니다. 그들은 영국 정부의 처형을 두려워하여 그들이 타고 온 배를 불살라 버리고 이 섬에 은둔하여 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작은 섬은 점차 지옥으로 변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섬에서 자생하는 식물 뿌리로 술을 만드는 법을 터득하여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그 후 이 섬에는 미움과 시기, 싸움과 학살, 자살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섬을 변화시키는 한 사건이 일어납니다. 이 사건은 이 섬의 지도자 격이었던 존 애덤스라는 사람이 우연히 자기들의 동료의 소지품 상자에서 발견한 성경책을 읽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이 성경의 진리를 여인들과 아이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했고 이 작은 지옥은 마침내 작은 천국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로렌 커닝햄이 방문하기에 앞서서 이 곳을 방문했던 두 명의 영국 장교는 핏케언 섬의 문화가 마치 ‘기독교 황금기의 문화’를 보는 것 같았다고 기록했다고 합니다. 로렌이 이 섬을 방문했을 때 섬사람들은 그들을 변화시킨 이 애덤스의 성경책을 유리관에 보관해 둔 것을 볼 수 있었고 섬의 지도자는 애덤스가 사용하던 그 성경을 가르치며 ”이 책이 우리 섬의 모든 것을 바꾸었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야기 둘.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성경본문 열왕기 하 22장에서도 유사한 사건을 읽을 수 있습니다. 므낫세라는 이름의 왕이 통치하던 시절 유다 왕국은 살아계신 하나님에게서 멀어져 있었습니다. 백성들은 불안한 미래를 인하여 사술과 요술에 빠져 땅을 더럽혔고 이방신을 위한 단과 신상, 그리고 아세라 목상들이 심지어 성전안에도 세워져 있었고 므낫세 왕은 그의 친 자녀들까지도 몰록에게 제물로 바치고 있었습니다. 무죄한 자들의 피가 온 땅을 적시고 있던 당시의 성지는 지옥이었습니다. 므낫세의 아들 아몬이 왕위를 계승했지만 신하에 의해 그는 2년 만에 암살당하고 말았습니다. 아몬의 뒤를 이은 왕 요시야는 BC 622년경 불과 여덟 살의 나이로 왕이 됩니다. 그런데 그는 어렸지만 기도하는 왕이었고 하나님을 경외하였습니다. 그의 나이 스물여섯에 그는 성전을 다시 짓도록 명합니다. 그런데 이 성전 재건축이 진행되던 어느 날 제사장 힐기야는 돌 조각 더미에서 가죽으로 쌓인 무엇인가를 발견합니다. 그것은 모세의 법을 기록한 성경이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오래 동안 잊혀지고 있었던 하나님의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힐기야는 그것을 가슴에 품고 서기관 사반에게 달려가 외칩니다. 그것이 바로 본문의 8절입니다. “대제사장 힐기야가 서기관 사반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하였노라하고 힐기야가 그 책을 사반에게 주니 사반이 읽으니라” 서기관은 다시 이 사실을 왕에게 보고하고 왕 앞에서 이 책을 읽습니다. 10절입니다. “또 서기관 사반이 왕에게 말하여 이르되 제사장 힐기야가 내게 이 책을 주더이다 하고 사반이 왕의 앞에서 읽으매” 왕은 회개의 표시로 자신의 옷을 찢고 회개합니다. 그리고 다시 왕은 이 책의 말씀을 온 백성에게 들려주게 되고, 나라 전체에 거대한 부흥과 변화의 물결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야기 셋.
우리 나라가 일본의 속국이 된 후의 일이었습니다. 1920년대 초에 일본에서 유학하고 있던 조선 유학생들 중 일본의 무교회 주의 운동의 스승인 내촌 감삼의 성서 연구에 참여하여 영향을 받고 있었던 몇 명의 조선 청년들이 함께 자리를 같이 했습니다. 그들에게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잃어버린 조국에 대한 사랑이었고, 또 하나는 성서에 대한 사랑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 민족의 장래가 보이지 않던 어둡고도 암울한 시절 모일 때마다 나라를 위해 기도하며 별도로 ‘조선 성서 연구회’를 조직하여 성서 모임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성서만이 미래 조국의 유일한 희망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이 모임에는 김 교신, 함 석헌, 송 두용, 정 상훈, 양 인성등이 참석하고 있었습니다. 1927년 3월 동경 고등사범학교 지리과를 졸업한 김 교신은 귀국하여 함흥 영생 여자 고등보통학교에서 그리고 그 다음해에는 양정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그는 ‘성서 조선’이라는 잡지를 발간하기 시작합니다. 발간사에서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오늘의 조선에 우리가 줄 최고의 선물은 구 신약 성서 한 권 뿐이라고 믿는다. 오늘 우리의 염두의 전폭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조선 두 글자이고 이 애인에게 보낼 최고의 선물은 성서 한 권 뿐이로다. 성서 조선아!--조선혼을 가진 조선 사람에게 가라. 시골로 가라. 산촌으로 가라. 거기에 나무꾼 한 사람을 위로함으로 너의 사명을 삼으라.” 훗날 그는 다시 성서 조선에 이런 글을 남깁니다. “사랑하는 자에게 주고 싶은 것은 한 두가지에 그치지 않는다. 하늘의 별이라도 따주고 싶으나 인력에는 스스로 한계가 있다. 혹자는 음악을 조선에 주며, 혹자는 문학을 주며, 혹자는 예술을 주어 조선에 꽃을 피우며, 옷을 입히며, 관을 씌울 것이나, 오직 우리는 조선에 성서를 주어 그 골절을 세우며 그 혈액을 만들고자 한다.--(그렇다) 우리는 성서를 배워 성서를 조선에 주고자 한다. 더 좋은 것을 조선에 주려는 이는 주라. 우리는 다만 성서를 주고자 미력을 다하는 자이다. 그러므로 성서를 조선에--그러므로 조선을 성서위에” 그래서 뜻있는 오늘의 그리스도인 들 중에는 이런 김 교신 선생의 비전에 감동되어 오늘의 우리 시대 우리에게 필요한 비전을 “성서 한국의 비전”으로 부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로렌 커닝햄이 목격한 작은 섬 핏케언의 변화가 그리고 요시야 왕에게서 비롯된 유다 왕국의 변화가 그리고 일제의 억압아래서 김 교신 선생과 그의 동료들이 열망한 “미래 조국, 성서 조선의 비전”이 오늘의 한국 땅에서 진정으로 실현되기를 열망하시나요? 우리 민족이 진실로 복을 받는 민족이 되어 그 복을 또한 우리의 이웃과 더불어 나누는 민족이 되는 꿈을 꾸시겠습니까? 저는 여러분과 함께 결론적으로 그 해답을 계1:3의 말씀에서 찾고 싶은 것입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이 말씀 속에 세 개의 열쇠가 있습니다. “읽고-듣고-지키라”는 것입니다.
1. 우리는 성서의 말씀을 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시야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까? 이 책을 제사장이 읽었고 서기관이 읽었고 왕이 읽었고 그리고 마침내 온 백성이 읽었습니다.
2. 우리는 성서의 말씀을 참으로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듣는 것은 단순한 청취가 아닌 순종의 의도로 귀를 기울여 듣는 것입니다. 이런 청취에는 언제나 진지한 반응이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왜 요시야가 옷을 찢습니까? 말씀대로 살지 못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때문이 아닙니까?
3. 우리는 성서의 말씀을 참으로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오늘 이 땅에 이렇게 교회도 많아졌고 성경책도 많아졌고 성경의 번역도, 성경의 참고서도 무수하게 많아졌는데 이 땅이 변화되지 못하고 있습니까? 한 마디로 우리가 이 말씀대로 살고 있지 못한 때문이 아닙니까? 우리는 지킬 의도가 없이 말씀을 읽고, 지킬 의도가 없이 말씀을 듣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읽음도 아니고 들음도 아닙니다. 문제는 지킴인 것입니다. 계1:3의 강조는 결국 지킴인 것입니다.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지키기 위해 읽으십시오. 지키기 위해 들으십시오. 그리고 우리가 참으로 이 말씀을 지키기 시작할 때 그 때 비로소 하나님은 복된 역사를, 복된 나라를, 그리고 복된 교회를 그리고 복된 새 가정을 준비하십니다.
본문의 요시야는 이 말씀을 듣자마자 주 앞에 엎드리어 눈물을 흘리며 용서를 구합니다. 열하22:19에 보면 하나님은 이때 훌다라는 여선지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내 앞에서 겸비하여 옷을 찢고 통곡하였음으로 나도 네 말을 들었노라”고. 그는 마침내 우상을 제거했습니다. 유아를 제물로 바치던 악습을 폐기했고 성전을 정결케 했습니다. 그리고 부흥은 일어났습니다. 나라는 새로워졌고 역사는 새 아침을 맞이한 것입니다. 이런 부흥, 이런 ‘성서 한국의 비전’을 위해 기도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이동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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