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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그 별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라! (암 1:1-2:16)

그 별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라! (암 1:1-2:16)

 

 

  생떽쥐베리의 ‘야간 비행’이라는 소설에 보면, 주인공으로 리비에르 감독이 등장합니다. 이 사람은 자기 하는 일에 확실한 소신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매사에 아주 엄격한 사람인데, 그가 자기의 우편 비행 회사에서 일하던 한 직공을 징계하게 되었습니다. 그 회사에서 오랫동안 일해 왔던 고참 정비공인데, 하마터면 비행기 추락 참사를 초래할 수도 있는 큰 실수를 저질렀던 것입니다. 그래서 원래의 회사 방침과 규칙에 따라 징계한다면 그 직공을 해임시킬 수밖에 없었는데, 사정이 참 딱했습니다. 이미 나이도 많은데다가 또 부양가족이 딸려 있는 형편이었고, 리비에르 감독 자신도 개인적으로 참 좋아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리비에르 감독은 몇 번이나 해임 통고서를 손에 들고 ‘찢어버릴까?’하고 망설였지만, 결국에 가서는 ‘이 사람을 내어 보내는 것이 앞으로 다른 더 큰 사고와 희생을 막는 길이다.’라고 결단을 내리는 것입니다. 벌이라는 것은 이처럼 받는 쪽에서 뿐만 아니라 주는 쪽에서도 참 어려운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벌이라는 것이 올바로, 제대로 시행되어짐으로써 훨씬 더 큰 유익을 끼치고 다른 많은 사람들의 권익과 생명까지 보호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내리시는 벌 역시 그러합니다. 아모스 1장 1절과 2절에 「유다 왕 웃시야의 시대 곧 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시대의 지진 전 이년에 드고아의 목자 중 아모스가 이스라엘에 대하여 묵시 받은 말씀이라 / 저가 가로되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부르짖으시며 예루살렘에서부터 음성을 발하시리니 목자의 초장이 애통하며 갈멜산 꼭대기가 마르리로다」라고 기록했습니다. 아모스는 원래 남조 유다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북조 이스라엘까지 일부러 찾아가서 하나님 말씀을 선포하는 선지자가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단 한 가지, 하나님께서 그를 통하여 전하고자 하신 심판의 메시지(message)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벌이나 심판이란 말은 오늘날의 교인들이나 마찬가지로 대다수의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아주 듣기 싫어했던 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당시 남북조로 나뉘어져 있던 유다와 이스라엘의 현실에 꼭 필요했던, 그래서 그들이 반드시 들어야만 했던 아주 요긴한 메시지였습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는 지금 조국과 세계의 뒤숭숭하고도 불안한 현실을 보면서, 살아 계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벌’을 통하여서도 과연 어떻게 인생과 역사를 주장하고 계시는지를 함께 듣고 깨닫고자 합니다.

 

1. 신자와 교회를 보호하시기 위하여 악인을 벌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아모스 1장 3절부터 5절의 말씀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다메섹의 서너가지 죄로 인하여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저희가 철 타작기로 타작하듯 길르앗을 압박하였음이라 / 내가 하사엘의 집에 불을 보내리니 벤하닷의 궁궐들을 사르리라 / 내가 다메섹 빗장을 꺽으며 아웬 골짜기에서 그 거민을 끊으며 벧에던에서 홀 잡은 자를 끊으리니 아람 백성이 사로잡혀 길에 이르리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고 기록했습니다.

다메섹은 아람의 수도인데 예로부터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가장 두려운 원수였습니다. 여기 ‘저희가 철 타작기로 타작하듯 길르앗을 압박하였음이라’는 표현이, 바로 그 다메섹이 이스라엘에 행한 악행을 생생하게 묘사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그 다메섹 때문에 망하도록 버려두지는 않으셨습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예언하고 계시는 그대로 이 다메섹은 나중에 주전 732년에 앗수르 제국에 의하여 멸망당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계속해서 이하 6절부터 2장 3절까지 이스라엘 주변에 있던 다른 여러 이방 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하나하나 선포되고 있습니다. 가사, 두로, 에돔, 암몬 그리고 모압 등은 모두 이스라엘을 둘러싸고 있던 인접 이방 나라들로서 하나같이 이스라엘에게 적대적이고 해를 끼쳤던 원수들이었습니다. 그 심판 예언의 말씀들에서 꼭 같이 반복되고 있는 문구는 ‘(아무 나라의) 서너 가지 죄로 인하여’라는 말씀입니다. 그들의 죄들 가운데 공통적인 것 하나가 바로 ‘이스라엘을 괴롭힌 죄’였습니다. 아모스 1장 6절 하반절의 「모든 사로잡은 자를 끌어 에돔에 붙였음이라」는 말은, 가사가 이스라엘 사람을 사로잡아 에돔에 노예로 팔아넘긴 것을 가리킵니다. 아모스 1장 9절의 「저희가 그 형제의 계약을 기억지 아니하고」라는 말은, 두로가 옛날 솔로몬 시대 때 맺었던 자매결연의 약조를 나중에 가서 배신한 것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아모스 1장 11절의 「저가 칼로 그 형제를 쫓아가며… 분을 끝없이 품었음이라」는 말은, 에돔 족속이 혈통적으로는 이스라엘과 아주 가까운 ‘형제’이면서도 가장 적대적으로 이스라엘을 대하고 괴롭혔던 과거를 가리킵니다. 아모스 1장 12절에 「길르앗의 아이 밴 여인의 배를 갈랐음이니라」는 말은, 암몬이 자기네 영토 확장을 위하여 이스라엘 영토인 길르앗을 침략하여 만행을 저지른 것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여기서 저주와 심판을 선포하시는 나라들은 바로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원수들이었습니다.

이 심판 예언의 문단들에서 또 한 가지 계속 반복되는 것이 바로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라’는 선언입니다. 하나님께서 악인에게 벌주시기로 한번 작정하시면 절대로 취소하시는 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아모스 2장 3절 끝에서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고 또 한번 단단히 못을 박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무서운 벌을 바로 이와 같은 원수들의 압박, 침략, 공포에서 이스라엘을 지키시기 위하여 실로 공의롭게 작정하시고 엄격하게 시행하셨던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와 전 세계에서는 소위 반전 평화주의자들이 정말 희한한 논리를 펴고들 있습니다. 북한이 남한의 햇볕 정책을 통해 실컷 공짜로 얻어먹고 나서 그 답례로 원자폭탄 가지고 위협하고 나오니까, 그것을 두고 오히려 미국에게 책임이 있다고 말하는 우리나라의 국회의원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 진짜 당적이 혹 북한의 노동당이 아닌지 의심스러운 사람들입니다. 미국이 이라크에 대하여 군사적 조치를 취했을 때, 천주교 교황은 소위 ‘평화를 위한 기도일’이라는 것을 선포하면서 반전 운동에 앞장섰습니다. 그 평화의 기도란 것이 도대체 폭정 아래에서 투옥과 고문으로 죽어가고 있던 이라크 국민들이 계속 그렇게 살도록 가만 놔두시라는 기도입니까 아니면 후세인이 계속 그 악한 독재 권력을 쥐고 있을 수 있도록 평화를 유지해 달라는 기도입니까? 그 당시 어떤 기독교 신문에 보니까, 우리나라의 목사들 중에서도 ‘지금은 반미 데모도 해서는 안 되지만 반김정일 소리를 높일 때도 아니고 그저 기도해야 할 때’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목사가 무엇을 두고 기도해야 할지, 어느 쪽을 위해서 기도해야 할지를 전혀 모른다면 도대체 어떤 기도를 어떻게 한다는 말이며, 하나님께서는 그런 기도를 도대체 어떻게 응답해 주시라는 말입니까? 제가 뭐 미국의 부시 대통령을 ‘하나님의 심판의 사자’처럼 무조건 추겨 세우자는 뜻에서 하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그 사람도 그 나라 대통령이니까 당연히 자기나라의 국익을 위한 어떤 계산이나 의도도 포함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매일 아침마다 성경 읽고 기도하는 대통령을 현재 이 시간에도 기독교인들을 박해하고 죽이고 있는 독재자들과 비교해 볼 때, 그 둘 중에 어느 쪽이 옳은지를 소위 목사라는 사람들조차 판단할 수 없다는 말입니까?

1차대전 후에도 그와 꼭 같은 ‘비둘기파’ 평화주의자들의 소리가 높았습니다. 이미 독일은 베르사이유 조약을 완전히 무시하고 끝없이 군비 확장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하지만 영국의 체임벌린 수상을 비롯한 유럽의 정치 지도자들은 어찌하든지 히틀러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으려고, 그런 조약 파기에 대해서는 항의 한 번 제대로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히틀러의 말도 안 되는 생떼에 대하여 그저 양보에 양보만을 거듭했습니다. 무조건 ‘평화’, ‘반전’만을 외치면 히틀러도 그 말을 알아 들을만한, ‘대화해서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인 줄로 알았던 모양입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일부 정치가들이 김정일을 대하는 모습과 어쩌면 그렇게도 꼭 같이 닮았는지 신기할 정도입니다. 히틀러는 그런 얼빠진 비둘기파 정치가들의 묵인과 간접적인 고무 가운데 마음 놓고 야욕을 키우면서 완벽히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가 결국 2차대전을 일으키고 말았지 않았습니까?

악을 악이라 지적하지 않고, 악에 대한 심판과 저주를 선포할 줄 모르는 선지자와 교회는 진짜 중한 죄, 즉 악을 방치하고 묵인하는 엄청난 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후세인의 독가스로 죽었던 사람들, 김정일의 독재로 지금도 굶어 죽어 가고 있는 수백만의 북한 동포들에 대한 궁극적인 책임은 결코 미국에게가 아니라 당연히 이런 악의 방관자, 악의 묵인자, 아니 악의 동조자들에게 돌아가야 마땅합니다.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미움과 저주를 선포하지 않는 기독교야말로 틀림없는 사단의 앞잡이이며 진짜 나라와 민족을 팔아먹는 매국노인 것입니다. 오직 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이 인류 역사상 적시적소에 임했기 때문에, 적기독교적인 독재자들이 세계를 점령하지 못하고 패망하고 말았습니다. 만약 그런 하나님의 심판이 없었다고 한번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전 세계가 히틀러 밑에 살게 되었다고, 동남아시아 전체가 지금까지 일본의 소위 ‘대동아 공영권’이라는 미명으로 가려진 탐욕의 노예가 되었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 아닙니까? 히틀러가 원자폭탄을 조금만 더 일찍 만들었어도, 일본의 진주만 공습 때 만일 미해군 항공모함들이 그 항구에 정박하고만 있었어도, 오늘의 세계와 지금의 우리 생활은 아주 달라져 있었을 것입니다. 스탈린이나 김정일 같은 무신론 공산주의 독재자가 지금 미국보다 더 강력한 군사 전력을 갖추고 미국 대신에 세계를 주름잡는 권력을 쥐고 있다고 한번 상상을 해 보십시오. 온 인류가 말 한 마디 마음대로 못하고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잠 한숨 편히 못자는 지옥 같은 세상이 되었을 것입니다.

세계 역사가 결국에 가서는 ‘선이 악을 이기도록’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은 참 신기한 일이 아닙니까? 정말 이차대전에서 연합군이 승리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미소 간의 냉전 대결 끝에 미국 쪽이 아니라 소련이 망한 것은 저로서는 정말이지 자다가 깨어나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저는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 모든 사사건건들이 다 ‘인류가 재수가 엄청나게 좋아서’ 된 일이라고는 결코 믿어지지 않습니다. 더 더욱이 반전 평화주의자들이 목소리를 높여서 그렇게 된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이것은 오로지 하나님께서 전쟁을 사용하셔서, 또는 강대국의 군비 경쟁을 선하게 섭리해 주심으로써 이루어진 결과입니다. 지상의 모든 큰 사건, 모든 세세한 일들이 하나도 예외 없이 모두 다 절대 주권자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기에, 그리고 그 하나님께서 악인에 대하여 결코 ‘돌이키지 아니하시고’ 내리고야 마시는 심판이 있는 까닭에, 오늘 이 시간까지 이 세계가 유지되고 우리가 자유를 누리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악인에 대한 벌은 이처럼 하나님께서 신자를 살리시고 교회를 보존하시기 위하여 행하시는, 실로 공의로우시고도 자비로우신 심판 역사임을 부디 깨닫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 때로는 신자와 교회를 경책하시기 위하여 의인에게도 벌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아모스 2장 4절과 5절의 말씀에 기록하기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유다의 서너가지 죄로 인하여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저희가 여호와의 율법을 멸시하며 그 율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그 열조의 따라가던 거짓 것에 미혹하였음이라 / 내가 유다에 불을 보내리니 예루살렘의 궁궐들을 사르리라」고 했습니다. 율법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신 최고의 특권이요 축복이었는데도, 오히려 유다 백성들이 그것을 멸시하고 거역하고 파괴했습니다. 그것은 보통 죄악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주변 이방 나라들이 우상 숭배한 죄보다도 더욱 가증스러운 배교요 하나님을 정면으로 거역한 중죄였습니다. 이처럼 유다가 성경 말씀에서 떠나가기 시작하자 하나님께서는 가차 없이 벌주시기로 작정하시고 결코 돌이키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아모스 2장 6절 이하 12절 말씀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스라엘의 서너가지 죄로 인하여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저희가 은을 받고 의인을 팔며 신 한 켤레를 받고 궁핍한 자를 팔며… 너희가 나시르 사람으로 포도주를 마시게 하며 또 선지자에게 명하여 예언하지 말라 하였느니라」고 기록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친히 ‘애굽 땅에서 이끌어내어 광야에서 인도’하신 후, 강력한 가나안 민족 ‘아모리 사람을 저희 앞에서 멸하시고’ 그 가나안 땅을 차지하도록 해 주신, 정말 하나님의 구원 역사 체험이 아직 생생한 나라였습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이스라엘의) 아들 중에서 선지자를, 청년 중에서 나시르 사람(나실인)을 일으켜’ 주신, 정말 경건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많이 배출된 나라였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북조 이스라엘은 특히 ‘의인을 팔며, 나실인을 타락시키고, 선지자의 입을 막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죄들을 저지르고 있었습니다. 당시 주변의 국제 정세는 잠시 동안 이스라엘에게 퍽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북조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앗수르 제국이 다른 전쟁에 휘말려 거기 총력을 기울이게 된 바람에, 이스라엘은 일시적이기는 하지만 정치적 평화와 안정을 누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여로보암 2세 시대에는 이스라엘 주변의 소수 이방 민족들까지 점령하여 솔로몬 시대 이후로서는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던 참이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같은 사회적 평화와 물질적 부요가 오히려 영적 방심과 신앙의 타락을 불러왔으며, 바로 그것이 하나님께서 남조 유다와 더불어 북조 이스라엘 역시 벌주시게 된 이유였던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일제 해방이라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민족 구원 역사를 불과 50여 년 전에 체험했던 나라입니다. 100년 밖에 안 되는 기독교 역사에도 불구하고 정말 진실한 순교자, 훌륭한 목사들을 하나님께서 많이 세워 주셨습니다. 거기에다, 지금 비록 남한만 누리고 있기는 하지만, 실로 기적적인 경제 성장과 놀라운 교회의 부흥을 여전히 베풀어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시점에 와서 무슨 영적 방심 정도가 아니라 완전한 배교 행위를 일삼는 자들이 있습니다. 참된 기독교인들을 괴롭히고 참된 교회들을 욕하고 참된 ‘선지자들의 입을 막는’, 이 가짜 기독교 무리들이 그 세력을 날로 더해가고 있는 것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몽고메리 장군이 ‘전쟁의 역사’라는 그의 책 서문에 “평화를 얻기 위해서는 전쟁을 이해해야 한다.”라는 유명한 말, 정말 오늘 ‘육이오 사변’을 모르는 조국의 청년들이 제발 좀 새겨들어 보아야 할 말을 남겼습니다. 그러면서 그가 인용한 것이 예레미야 6장 13절과 14절의 말씀,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함이라 / 그들이…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라는 구절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임박한 심판을 경고하시던 때에도, 유다의 거짓 선지자와 제사장들은 정반대로 마지막 순간까지 그저 ‘평화, 평화’라는 말만 가지고 유대 백성 전체를 오도했던 것입니다. 이 역시 오늘날 이 나라의 얼빠진 정치 목사들과 어쩌면 그렇게도 꼭 닮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루에 삼십 만 발의 포탄을 수도 서울에 쏟아 부을 수 있는 야포들이 바로 지척의 휴전선 너머에 배치되어 있는데도, 아니 그것 가지고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라는 깡패식의 공갈협박을 그것도 남북간의 화합과 교류를 추진하고자 모인 화기애애해야 할 협상 테이블에서 공공연히 퍼붓는데도, 아니 실제로 적군의 총탄이 스물 몇 명의 꽃다운 우리 아들들의 가슴과 팔과 다리를 뚫고 지나갔는데도, 여전히 ‘모든 것이 평화롭다’고, ‘김정일이 남침할 위험은 전혀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도대체 무슨 배포인지 저로서는 도무지 알 도리가 없습니다.

성경 말씀에 분명히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삼상 17:47)이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정말이지 몽고메리 장군의 말 그대로, 우리가 전쟁을 이해하지 못하면 절대로 평화를 얻을 수 없습니다. 신자들마저 전쟁을 하나님께서 친히 사용하시는 역사의 도구로 바로 이해할 줄 모른다면, 사실 평화를 누릴 자격조차 이미 없는 것입니다. 해방 이후에도 한국교회의 다수가 일제 시대의 신사 참배라는 우상 숭배를 회개하지 않으니까, 하나님께서는 ‘육이오 사변’이라는 심판을 우리 민족에게 내리지 않으셨습니까? 그러니 조국을 생각할 때 가장 두려운 것은, 바로 조국의 교회가 타락하고 조국의 신자들이 방심하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을 멸시하는 자유주의 신학이 또다시 하나님의 심판을 이 민족에게로 불러들이게 될 최고 위험한 폭탄입니다. 교인을 타락시키는 가짜 목사들이야말로 조국을 망칠 테러분자나 다름없습니다. 참된 선지자가 외치는 입을 막아 버리려 하는 다수의 기독교계의 여론이야말로 하나님의 진노를 부채질하는 존재입니다. 만약에, 또 우리나라에 동족상잔의 비극이 벌어진다면, 지금 이 시간에도 ‘평강하다 평강하다’고 외치고 있는 가짜 목사들과, 용공 아니 대놓고 아예 친공 활동을 하고 있는 기독교 단체와 교회들이 전적으로 그 책임을 져야합니다. 하기는 제가 만약 김정일이라면 남북한을 적화통일하기 위해서 꼭 전쟁을 일으킬 필요조차 없습니다. 이미 남한 사회가 이처럼 급속도로 좌경화되어 가고 있는데, 공산당을 합법화시켜야 민주주의가 제대로 이룩된다는 논리가 대통령이란 사람 입에서 나오고 있는데, 젊은 청년들이 ‘반공’이란 말은 ‘반민족’으로 알아듣고 ‘반미’란 말은 ‘자주통일’이란 말로 알아듣고 있는데, 뭐 하러 어렵게 또 무력 침략을 동원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가만히 앉아 있어도 남한 사회 안에서 열심히 자기 편들어 주는 국회의원, 방송, 언론, 시민 운동, 노동자 연대, 교원 조합 등이 줄줄이 늘어나고만 있는데, 도대체 김정일이 힘쓸 이유가 뭐가 있겠습니까? 이미 2000여개의 친북 웹 사이트가 남한의 네티즌 사이에 돌고 있으니, 그저 적당한 때에 ‘남한의 노동자들이여, 주체 사상으로 무장하여 다 같이 궐기하라. 오늘이 바로 미 제국주의의 사슬을 끊고 우리의 숙원이던 자주 민족 통일을 성취할 때다.’하고 이메일 한 장 띄우고 그 곁에 ‘한반도기’가 휘날리는 동영상 하나만 첨부하면 아주 간단하게 끝낼 수 있는 것입니다. 만에 하나라도, 조국이 만일 그렇게 공산화된다면 진짜 교회와 신자는 또 한번 순교의 피를 흘릴 수밖에 없을 것이며, 지금도 평양 방문할 때마다 김일성 동상 앞에 가서 절하고 돌아오는 이 가짜 목사들은, 공산주의 독재 밑에서 산다는 것이 과연 얼마나 ‘주체적’이고 ‘자주 민족적’인 삶인지를 그제야 뼛골이 시리도록 맛보게 될 것입니다. 유다와 이스라엘이 바로 그런 거짓 선지자와 제사장들 때문에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을 당했다는 사실을 꼭 명심하면서, 이 조국의 교회와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인애와 자비와 용서를 베풀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아모스 2장 13절 이하 16절까지의 말씀에 보면, 그 하나님의 심판은 「곡식 단을 가득 실은 수레가 흙을 누름 같이」 강한 압력으로 짓누르실 심판이며, 아무도 「도망할 수 없으며… 피할 수 없는」 철저한 심판이며, 「강한 자도 자기 힘을 낼 수 없으며… 굳센 자도 벌거벗고 도망할」 수밖에 없는 불가항력적인 심판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심판을 내리시는 하나님을 향하여 ‘사랑의 하나님이 사람을 그렇게 벌주시면 안 됩니다.’라고, 감히 하나님 보고 이래라 저래라 말하는, 정말 간 큰 무례한 인생이 되어서는 절대로 아니 됩니다. 아모스 1장 2절에서 아모스 선지자는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부르짖으시며 예루살렘에서부터 음성을 발하시리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저주하시는 말씀의 진원지가 바로 시온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심판을 경고해 주시는 말씀을 온 세계로 울려 퍼지게 만드는 스피커가 바로 예루살렘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그때의 예루살렘과 꼭 같이, 오늘날 하나님의 심판을 세상을 향하여 외치며 경고하는, 하나님 말씀의 진원지요 스피커가 되어야 할 뿐입니다.

‘하나님’과 ‘심판’이라는 이 두 단어들을 마치 나란히 쓸 수 없는 말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하나님은 그저 사랑, 은혜, 축복 같은 단어들하고만 나란히 있어야 한다는 선입견에 꽉 찬 기독교인들도 아주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구속 역사는 이 세상 자체를 축복만으로 넘치는 유토피아로 바꾸려는 것이 결코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에게 죄가 있는 한 저주와 벌은 반드시 인생과 역사에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독신자는 그 하나님께서는 축복뿐 아니라 심판을 통해서도 꼭 같이 당신의 구속 역사를 성취해 나가고 계심을 똑똑히 깨달아야 합니다.

죄에 대해서는 반드시 심판하고야 마시는 것이 하나님의 철두철미한 공의의 발로입니다. 절대무오하신 하나님, 모든 일에 항상 선하고 옳으신 하나님, 그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심판 역시 완전하게 공의로울 뿐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앞으로도 교회와 성도를 악으로부터 보호하시기 위하여 반드시 계속 시행되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기독신자는 그 누구보다도 그런 하나님의 엄중한 벌을 진짜로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합니다. 교회와 성도를 보존하시기 위하여 악을 심판하시는 하나님, 때로는 교회와 신자를 경책하기 위하여 벌주기도 하시는 하나님 - 이처럼 ‘그 벌을 돌이키지 않으심’으로써 오히려 공의와 선을 완벽하게 이루시는 주권자 하나님을 자신 스스로가 먼저 두려워하면서 이 조국과 세상 앞에 그대로 선포하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아 멘 -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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