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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마당/목회처신법

[스크랩] “두뇌목회 버리고 무릎목회 하십시오”

“두뇌목회 버리고 무릎목회 하십시오”

[특별대담] 충신교회 원로 박종순 목사(한국교회지도자센터 대표)
정윤석

삼사일언(三思一言, 세 번 생각하고 한 번 말한다)을 생활의 가장 큰 교훈으로 삼고 있는 목회자가 있다. 기자들이 들으면 그다지 반갑지 않은 좌우명이다. 기자들은 일단 말 많이 하는, 기사의 소재거리를 확실하게 제공하는 인터뷰 대상자를 좋아한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박종순 목사(충신교회 원로, 한국교회지도자센터 대표)는 기자들이 인터뷰하기에 쉬운 인물은 아니다. 기자를 만나던 날 박 목사는 감색 싱글 정장에 옅은 하늘색 와이셔츠를 입고 나왔다.

기자(교회와신앙 www.amennews.com)의 질문에 박 목사는 최대한 절제된 언어를 사용하며 짧고 간결하게 답했다. 삼사일언을 가장 좋아한다는 그다웠다. 기자는 그가 말을 중단하면 종종 더 대답이 이어질 줄 알고 잠시 기다리기도 했다. 대화를 하다가 쉼표를 찍은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박 목사의 대답이 끊겼을 때는 대부분 쉼표가 아닌 마침표를 찍은 거였다. 적응하는데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박 목사는 무척이나 행복한 목회자다. 우선 그의 주변에 사람이 많다. 박 목사를 늘 존경하고 목회의 멘토로 삼고 따르는 충신교회목회자출신모임인 충목회가 있다. 1976년 충신교회를 담임한 이후 거쳐 간 부목사, 전도사 등이 주축이 된 모임이다. 일산 한소망교회 류영모 목사 등 회원 수는 200여 명에 이른다. 이들 중 매년 30여 커플은 설에 세배를 오고 일 년 한 차례 부부동반 여행을 하며 친목을 다진다. 박 목사가 원해서 생긴 모임이 아니라 부교역자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모임이다.

3자녀 모두 신학을 전공했다. 목회자 아버지를 보고 스스로 선택한 길이었다. 박 목사는 성인이 된 세 자녀를 어느 날 불러 모았다. “목회의 길은 너희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쉽지 않다. 겉으로 보는 목사의 모습과 폐부를 들춰낸 목회자의 속은 많이 다르다. 마지막 기회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목회자의 길을 내려놓고 다른 길을 가라.”

그의 말에 목회자의 길을 포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자녀들도 모두 자신이 선택한 길이 소명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아무도 탈선하지 않고 목회자 아버지의 자녀로서 모범된 삶을 살아온 이들이다. 박 목사는 “자녀들이 결단을 촉구하는 내 말을 듣고서도 그대로 신학의 길을 선택한 것에 대해 무척이나 감사하다”고 말한다.

박 목사는 지난해 12월 말에 충신교회를 은퇴했다. 그의 은퇴 소식은 외부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 이유에 대해 박 목사는 “한국교회가 홍역을 앓고 있다”며 “그런 상황에서 (은퇴를)크게 알릴 일이 아니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박 목사의 후임으로는 이전호 목사가 세워졌다. 이 목사는 충신교회 부교역자 10년, 단독목회를 10년 했고, 충목회 회원으로서 박 목사를 영적 스승이요 멘토로 섬기고 있다.

차세대 목회자들이 추문에 휩싸이는 것에 대해 박 목사는 “인물 하나 키우는데 오랜 세월이 걸린다”며 “그런데 하루아침에 내려앉는 모습을 볼 때 가슴이 너무 아프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 목사는 “동서남북이 교회의 리더를 하루아침에 무너뜨릴 유혹거리들이라 생각해야 한다”며 “목회적 정체성을 갖고 자아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리고 박 목사는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려면 두뇌목회를 버리고 부단히 무릎을 꿇는 ‘무릎목회’를 하라고 당부했다.



▲ 설교하는 박종순 목사(사진제공 충신교회)
다음은 박 목사와의 인터뷰 전문이다.

- 바쁘신 가운데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먼저 목사님 함자의 뜻을 알고 싶습니다.
교회 전도사 생활을 하셨던 아버지께서 새벽 종(種)자에 순박할 순(淳)자, 종순으로 지어 주셨어요. 종은 소음이 되면 안 됩니다. 새벽 여명에 사람들의 잠을 깨우지만, 맑고 깨끗한 소리를 내야 합니다. 아버지께서 그런 사람이 되라는 의미로 지어 주신 것 같습니다.

- 목사님께서는 이름이 가진 뜻대로 살아오셨나요?
그렇게 살려고 노력해왔습니다.

- 목사님 고향이 전북 정읍으로 소개가 되고 있습니다. ‘정읍’하면 정읍사라는 백제가요와 내장산이 생각납니다. 그 고장의 정서가 목사님께 미친 영향이 있나요?
정읍은 ‘시’(市)이고 나는 그보다 시골인 ‘화호’라는 곳에서 태어났습니다. 고향 교회인 ‘화호교회’는 한국기독교장로회 총무를 지낸 이명민 목사 등 30여 명의 목회자를 배출한 교회입니다. 전도사로 사역하셨던 아버지는 내가 3살 때 돌아가셨어요. 땅 한 평, 집 한 칸도 남기지 않으셨습니다. 남기신 거라고는 1921년에 간행된 ‘구약사긔’라는 단 한권의 책이었습니다.

누나들은 이미 시집간 뒤여서 나는 홀어머니 품에서 거의 혼자 자랐어요. 끼니를 때우지 못하는 가난 속에 살아왔고 이 가난은 신학생이 된 뒤에도 이어졌어요. 한마디로 죽을 고생을 하면서 살았죠. 밥을 제 때 못 먹어도 티를 내지 않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는데 이게 몸에 뱄습니다. 목회자가 돼서도 궁상떨거나 추한 모습을 보이거나 구걸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살게 됐습니다.

- 가족에 대해 소개해 주십시오.
3남매를 두고 있습니다. 큰 딸 에스더는 미국 풀러신학교에서 M.Div.를 했어요. 사위 김다니엘은 딸과 같은 학교에서 선교영성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둘째 딸 미진도 풀러에서 M.A를 했고 사위 김제이미는 미국 트리니티신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막내 아들 정진도 풀러에서 M.Div를 했고 현재 며느리 김성윤과 미국에서 신학 수업 중입니다. 아내는 최영자입니다.

- 사모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평범한 한국여자죠.

- 목사님은 ‘목회와 가정’의 양 날개의 균형을 어떻게 맞추셨나요?
목회는 성공하나 가정에서는 성공하지 못한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이를 피하기 위해 아이들과 대화의 시간을 갖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어요. 두 딸은 결혼적령기가 됐을 때 결국 목회자를 결혼대상으로 선택하더군요. 아들도 신학을 전공해서 목회자의 길을 가고 있어요.

신학을 전공하는 세 자녀를 어느 날 불러 모아서 물은 적이 있습니다. “목회의 길은 피상적으로 관찰하는 것처럼 쉽지 않다. 겉으로 보는 목사 아버지의 모습과 폐부를 들춰내야 볼 수 있는 아버지의 속은 많이 다르다. 마지막 기회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더 늦기 전에 목회자의 길을 내려놓고 다른 길을 결정해도 괜찮다.”

내 말에 자녀들은 이구동성으로 “이 길을 걷겠습니다”라고 답했어요. 아무도 목회자의 길을 포기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자녀들도 모두 자신이 선택한 길이 소명이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아이들이 목회자인 나를 보고 또다시 목회자가 되겠다고 한 것은 가치관의 문제였던 거 같아요. 잘 먹고 잘 사는 데 인생의 가치를 두기보다 어떤 게 사람답게 사는 것인지, 그리고 하나님의 부르심이 무엇인지 스스로 깨달음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 아들을 후임으로 세울 생각은 들지 않았나요?
전혀 고민이 안 되더군요. ‘내 피붙이를 교회에?’ 그런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 강의중인 박종순 목사(사진제공 충신교회)

- 작년 12월말에 참 조용하게 은퇴하셨습니다. 목사님의 은퇴를 취급한 언론을 보지 못했을 정도였으니까요. 다른 목사님들은 은퇴 예배, 이·취임예배 등으로 언론에 소개되기도 했는데 목사님은 왜 그렇게 조용히 은퇴하셨나요?
해 놓은 일이 없어서죠. 그리고 지금도 그렇지만 은퇴한다는 것을 알릴만한 상황이 아니잖아요. 한국교회가 홍역을 앓고 있어요. 그런 상황에서 크게 알릴 일이 아니라 생각했어요.

- 조용히 은퇴하시는 걸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지 않았나요?
교회 장로님들을 비롯해서 충목회(충신교회 출신 목회자 모임) 후배들도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나섰어요. 호텔을 예약해서 성대하게 하자고 했지만 모두 사양했죠.

- 1976년 충신교회를 담임하셨으니 35년 목회를 하신 셈입니다. 목사님의 목회를 한마디로 압축해서 설명하면 무엇인가요?
목회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나는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목회는 피에로의 줄타기와도 같습니다. 순간순간 행복하기도 하고 또 순간순간 위기를 경험하기도 합니다. 목회는 파도타기와도 같습니다. 험한 파도가 몰아쳐도 잘 타면 앞으로 나갑니다. 즐거움을 경험합니다. 그러나 잘못 타면 침몰합니다.

- 후임 이전호 목사의 위임예배가 1월 23일 주일에 있었습니다. 담임목사에게 기대하는 바가 있다면, 그리고 후임 목사를 맞는 충신교회에도 한마디 해주십시오.
이 목사는 10년간 충신교회에서 부목사로서 사역했고 단독목회도 10년을 한 경험이 있습니다. 충신교회를 아주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에요. 서로를 이해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으로 생각돼요. 그는 성실하고 청렴하고 사심 없는 사람입니다. 목회를 잘할 거예요. 교회에 바라는 점은 이제 충신교회는 리더십의 전환기에 와 있습니다. 이 목사를 존경하고 사랑하며 따라줬으면 좋겠어요. 바통 터치가 잘되면 충신교회는 한국교회의 모범적인 목회 현장이 될 것입니다.

- 한국교회에 생기는 불미스런 일 중 하나가 원로목사와 후임목사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문제입니다. 예장 통합측에 소속한 교회들이 그런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있었는데 충신교회는 그러한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할텐데요.
이전우 목사는 53세예요. 나는 올해 71세죠. 원로나 담임이 부모와 자식처럼, 장남과 막내 사이처럼 지내는 게 답입니다. 아버지와 형님 사이라면 껄끄러울 것도 없습니다. 나는 내 입장에서 이 목사를 10년 가까이 알던 후배 목회자로 생각합니다. 나이도 사위 또래 아닙니까. 그도 나를 아버지로, 스승으로, 멘토로 마음을 정한 사람입니다. 그런 관계만 유지한다면 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원로목사가 후임 목회자라고 간섭하고 따지고 시비 걸고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원로로서 할 일은 그의 먼발치에서 울타리가 돼 주면 됩니다. 그 또한 나를 아버지와 형님처럼 대해 주면 됩니다.

- 작년에는 건강이 좋지 않으셨다고 들었습니다. 현재 건강은 어떠시고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고 계시는지요?
연말에 목이 좀 안 좋아서 한 달 간 설교를 쉬었어요. 지금은 아주 좋습니다. 건강관리를 위해 특별히 신경을 쓰는 건 없습니다. 그저 과욕 없이, 맘 편하게 먹고, 신경 쓰면서 살지 않는 게 관리법이라면 관리법입니다.

- 목사님들이 건전한 취미활동을 하는 게 중요할 텐데 목사님의 취미는 무엇인가요?
나는 잡기를 못해요. 바둑도, 장기도 못합니다. 화투도 마찬가지예요. 물론 할 기회도 없었죠. 가끔씩 집에서 먹을 갈아서 붓글씨 쓰는 게 취미라면 취미이고 책 읽고 글쓰기가 취미라고 할 수도 있죠.

- 얼마 전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삼사일언(三思一言)이라고 쓰인 족자를 서재에 걸어 놓으셨다고 하셨습니다. 그 글씨도 직접 쓰셨나요?
그건 내가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서 받은 거예요. 목회자는 말을 많이 하는 사람입니다. 다변이면 말실수가 생기는 법이죠. 말할 기회가 있어도 아껴야 합니다. 삼사일언의 사람들은 생각이 깊고 말을 아끼는 사람들이에요. 세 번 생각하고 한 번 말한다면 말로 인한 화를 피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삼사일언’이라는 말을 가장 좋아합니다.

- 한국교회 차세대를 이끌어갈 일부 목회자들이 추문에 휩싸이기도 했습니다. 한국교회 원로로서 그런 모습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아깝죠. 공군 파일럿 하나를 배출하기 위해서는 수 십 년의 세월이 걸린다고 하죠. 기독교에서도 인물 하나 키우는데 오랜 세월이 걸립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내려앉는 모습을 볼 때 가슴이 너무 아픕니다. 그분들이 그런 결과들을 결코 원치 않았을 텐데, 그 고비를 잘 넘겼다면 좋았을 텐데, 극복할 지혜가 부족했던 거 같아요(이 대화를 할 때 박 목사의 눈에 언뜻 물기가 맺혔다).

- 후배들이 어떤 목회자가 되길 바라시나요? 목회를 행복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첫째로 하나님의 종이라는 자기 정체성을 가져야 합니다. 성도들에게 군림하는 사람이 아니라 철저하게 종으로서 섬기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둘째로 자아관리를 잘해야 합니다. 목회자뿐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는 주변에 유혹이 깔려 있습니다. 동서남북이 교회의 리더를 하루아침에 무너뜨릴 유혹거리들이라 생각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럴 때도 ‘나는 공인이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목회적 정체성을 갖고 자아관리를 철저히 해야 합니다. 위기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내가 이 자리에서 넘어지면, 유혹에 빠지면 사역에 종지부를 찍게 된다는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자기 관리를 제대로 못하면 추락하고 밑바닥에 빠지는 것은 시간문제예요. 특히 탑에 올라섰을 때 더욱 큰 위기가 오게 됩니다. 누구나 노력하면 탑의 위치에 설 수 있어요. 그러나 모두가 탑의 자리를 지키는 건 아닙니다. 유혹에 빌미를 주지 않으면 유혹이 접근하다가도 ‘건질 게 없다’하며 되돌아섭니다. 모든 유혹에 동기부여를 하지 마십시오. 허점과 약점을 잡히지 말고 틈새도 보이면 안 됩니다.

셋째 영적 싸움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두뇌목회를 버리고 부단히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무릎목회를 하십시오. 무릎 꿇지 않으면 목회가 인본주의가 됩니다. 교회가 커지고 인기가 올라가고 역량이 높아진다고 해도 무릎 꿇지 않으면 승리할 수 없습니다.

- 목사님은 무릎으로 목회하셨나요?
현대 목회자들의 특징이 바쁘다는 겁니다. 회의도 많고 갈 데도 많고 오라는 곳도 많아요.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주님과 대화하는 시간이 줄어듭니다. 가능하면 주님과 단독으로 만나는 골방 기도를 하고 새벽기도를 해왔어요. 무릎 꿇는 시간을 늘리려고 노력해왔습니다.


▲ 충목회 목회자들과 함께한 박종순 목사(사진제공 충신교회)
- 이제 원로 목사가 되셨는데 계획은 무엇인가요?
원로는 강단을 떠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국회의원으로 따지면 지역구에서 전국구가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젠 비교적 자유로워졌으니 가지 못했던 교회, 세계 교회 등을 시간 나는 대로 방문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충목회 회원들을 중심으로 한지터(한국교회 지도자센터)를 마련했어요. 내가 평소 주장했던 ‘바른 신학, 균형 목회’를 실천하고 확산하기 위한 모임으로 운영할 것입니다. 조만간 법인화도 할 계획입니다. 목회자들을 위한 세미나를 비롯해 다양한 특강을 진행할 겁니다. 목회자들이 신학이 바르게 서야 합니다. 극좌, 극우 모두 안 됩니다. 너무 감성적으로 나가서도 안 되고 지성과 이성으로만 치우쳐도 안 됩니다. 이성과 감성, 말씀과 성령, 삶과 신앙이 균형이 맞아야 합니다. 한지터에서 올해까지 4회 째 '바른 신학, 균형목회'를 모토로 강의를 진행한 이유도 목회자들의 균형 잡힌 목회를 위해서였습니다.

- 한국교회가 해결할 과제 중 안티 기독교의 문제만큼 심각한 게 없습니다. 기독교의 이미지는 사람들에게 안 좋게 새겨져 있습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 게 좋다고 보시나요?
안티 기독교 활동이 활발해지도록 빌미를 제공한 것은 한국교회입니다. 또 한국교회의 일부 지도자들이 제공한 측면도 있습니다. 먼저 기독교가 자기 정화를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원인제공 하는 행위들을 더 이상 하지 말고 사회를 섬기고 자중하고 살을 깎는 자성을 해야 합니다.

안티 기독교 세력이 볼 때 기독교는 하는 일도 없고 자기들끼리 축제나 벌이고 때에 따라 사고치는 곳으로 보일 뿐입니다. 매스컴에서는 기독교의 부정적인 측면만 부각되고 있습니다. 이즈음에서 한국교회가 발걸음을 멈추고 ‘어떻게 살아야 하나’, ‘어떻게 하면 추락하지 않을까’ 라는 문제로 뜻을 모아야 합니다. 회개는 이벤트가 아닙니다. 광장에 10만 명이 모여 회개한다고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가 삶의 현장에서 먼저 빛과 소금이 돼야 하지 않겠습니까?

- 교회의 혼란을 틈타 준동하는 이단의 미혹에 어떻게 대처해야 한다고 보시나요?
첫째는 교회가 건강해야 합니다. 교회가 건강하면 이단이 들어오지 못합니다. 교회가 어지럽고 힘을 상실하니 그 틈을 타서 들어오는 게 이단입니다. 둘째로 건전한 신학으로 이단을 조명하며 비판하는 작업을 적극적으로 병행해야 합니다. 특정 이단단체가 왜 이단인지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단이 뭔지 알아야 전략도 세울 수 있는 법입니다.

- 마지막으로 한국교회 성도들에게 한 말씀 해 주십시오.
기독교인들 때문에 한국사회가 건강해져야 합니다. “기독교인들이 최고다”라고 말할 정도로 도시에 꼭 필요한 성도들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설을 맞아 건강 잘 챙기시고 신앙적 열심을 내며 사시기 바랍니다. 한국 땅에 건강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일을 기독교인들이 담당했으면 좋겠습니다.


출처 :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글쓴이 : 가장낮은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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