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목회할 줄 아는 목회자
/ 한 홍 목사
수년 전 저는 미(美) 전국의 목회자들이 모이는 시카고 윌로우크릭 교회의 리더십 컨퍼런스
에 참석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구도자 예배(Seeker Service)를 통해 개척한지 20여 년
만에 윌로우크릭을 초대형 교회로 급성장시킨 빌 하이벨스 목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목
사가 자신이 섬기고 있는 교회에 줄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은 건강한 자기 자신입니다. 육체
적으로,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건강한 목사가 되십시오. 그것이 당신이 섬기는 교회에 줄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이 될 것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교회는 크게 만들어 놓고, 내 마음의 교회
는 쪼그라질 때로 쪼그라진 그런 목사가 되지 맙시다."
하이벨스 목사는 80년대 말, 10여 년이 넘게 하루를 25시간처럼 살면서 오직 목회에만 미친
듯이 몰두하다가, 마침내는 완전히 탈진되어 영혼의 블랙홀 속으로 가라앉는 듯한 영적 침
체에 빠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그가 도움을 구한 현명한 조언자들이 바로 이 진리를 일
깨워 주었고, 그 뒤 하이벨스는 자기 자신을 먼저 목회하는 것에 최우선 순위를 두고, 많은
동역자들과 함께 보다 많은 일들을 분담하는 팀 사역을 활성화 시켰다고 합니다. 짧은 시일
에 엄청난 외형적 교회 성장을 이루어 많은 이들의 부러움을 샀던 하이벨스 목사의 이 뜻밖
의 진솔한 고백은 저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목회는 쉽게 말해서
그 명령대로 우리에게 맡겨진 양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명령을 깊이 생
각해 보면 우리 자신을 먼저 사랑할 줄 알아야 이웃도 사랑할 수 있다는 뜻이 됩니다. 너무
나 많은 목회자들이(선한 의도에서) 자신은 남을 돌봐야 하니까, 스스로를 돌봐서는 안 된다
는 생각, 내가 아니면 누가 이들을 도울 수 있겠느냐는 "구세주 콤플렉스"에 빠져 있습니다.
프레드릭 브흐너라는 크리스천 작가는 말하기를, "만약 당신의 딸이 급류에 휘말려 허우적
댄다고 하자. 그 위험한 급류에 같이 뛰어 들겠는가? 둘 다 죽을 뿐이다. 이때야말로 당신이
가장 냉정하고 침착해야 할 때이며, 평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해질 때다. 일단 물 밖
둔덕에 당신의 몸을 의지하고 손을 내밀어야 한다. 그 냉정함이 결국은 둘 다 사는 길이다.
타인을 돌볼 수 있도록 당신 자신을 먼저 돌보아라. 남을 돕겠다고 피를 흘리되, 죽을 정도
로 흘리는 마음이란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계셨을 때도
수많은 사람들을 치유해 주었지만, 모든 사람들을 다 고쳐 주진 않았고, 당신 생애에 온 세
계를 다 복음화시키겠다고 나서지도 않았습니다.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제자들은 다
도망쳤고, 건물 하나, 책 하나 남기신 것이 없었건만, 예수님은 그가 채 못 이루신 일들 때
문에 안타까워 죄책감에 사로잡히시질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그저 하나님이 주신 시간동안,
하나님이 허락하신 일들을 하나하나 최선을 다해 감당하고, 그 마무리는 온전히 하나님께
의탁하신 뒤 초연하셨던 것입니다. 그가 이 땅에 계실 동안 그는 늘 아침마다 조용한 곳에
서 하나님과 함께 깊이 휴식하고 교제하는 시간을 철저히 지켰습니다. 당신도 진정으로 양
떼를 제대로 돌보고자 한다면 먼저 자신을 돌보아야 합니다. 목회자가 자기 자신을 돌보는
것은 세 가지로 나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먼저, 자신의 육체(body)를 잘 관리해야겠습니다. 작년에 크게 히트를 쳤던 인기 드라마 "허
준"의 한 장면이 기억납니다. 허준이 며칠 낮, 며칠 밤을 꼬박 지새우면서 환자들을 돌보던
감동적인 장면이었습니다. 피곤에 지쳐 꾸벅꾸벅 졸면서도 신음하는 환자들을 위해 침을 꽂
는 허준의 모습이 아름다운 배경 음악과 함께 어우러져 보는 이들의 가슴을 적셨습니다. 제
3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아, 정말 고귀한 희생정신을 가진 훌륭한 의원이다"란 생각이 들
게 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내가 지금 그에게 몸을 맡겨야 되는 환자의 입장이라면 생각이
다를 것 같습니다. 의사가 진정으로 나를 동정하는 것은 좋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피곤에
지쳐 흐릿한 정신으로 손을 덜덜 떨면서 내 몸에 침을 꽂기를 원치는 않기 때문입니다. 가
서 좀 주무시고 오라고 할 것입니다.
우리 나라 목회자들은 세계 그 어느 나라의 목회자들보다 더 부지런하고 헌신적으로 몸 아
끼지 않고 일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과로로 인해 중년에 심각한 병으로 쓰러
지는 목회자들 비율도 아마 세계에서 제일 높은 축에 속할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바람직한
현상이 아닙니다. 우리의 육체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기 때문에 건강하게 잘 관리해야 합
니다. 충분한 수면을 취하고, 매일 세 끼를 적당량의 식사를 하고, 정기적인 운동을 하는 기
본적인 건강 관리를 해야겠습니다.
또한, 자신의 정신, 즉 자신의 감정(emotion)을 건강하게 관리해야 할 것입니다. 심리학자들
의 말에 의하면 삶이 힘든 사람들을 늘 상대해야 하는 직업을 가진 이들, 즉 변호사, 의사,
전문 카운셀러, 목사 같은 이들의 상당수가 심각한 정신 이상 증세를 갖고 있다고 합니다.
늘 인생이 힘든 사람들만 상대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자신의 감정이 탈진이 되어 버려서
그렇다고 합니다. 오늘날 많은 목회자들이 목회에 너무 지친 나머지 즐거운 것을 보아도 웃
음을 터뜨리지 못하고, 슬픈 것을 보아도 진정으로 울지 못하며, 피리를 불어도 춤을 출 여
력이 없는 것 같습니다.
항상 다른 이들과 비교해서 더 잘 해야겠다는 강박관념, 그러나 자신의 생각대로 목회가 잘
풀리진 않으니까 스트레스가 쌓이고 이것이 그의 내면에 잠재된 분노가 되어 축척이 됩니
다. 그 결과로, 자신도 모르게 설교가 정죄하는 식이 되고, 가까운 가족이나 스탭들에게 신
경질과 짜증을 내는 빈도가 잦아지게 되며, 모든 일에 회의를 느끼는 정도가 심해집니다. 너
무나 많은 사람들의 문제를 홀로 싸안고 늘 씨름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자신의 감정이 바짝
메말라, 스스로를 파멸시키기 일보 직전까지 가는 것도 모릅니다.
당신의 메마른 감정에 물을 적시어야 합니다. 하루에 한 두 시간, 아니면 일주일에 반나절
쯤은 짬을 내어서 당신이 가장 자연스럽게 즐길 수 있는 것을 하십시오. 전화를 끄고, 컴퓨
터에서 떨어져서 뭔가 자연스럽고 인간적이고 아날로그적인 일에 자신을 던져 보십시오. 좋
은 호숫가에 가서 아내와 산책을 하든지, 당신의 아이들과 운동을 하든지, 좋은 영화를 본다
든지,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면서 좋은 양서(良書)를 읽는다든지, 그림을 그린다든지, 등등 무
슨 일이든 좋습니다. 교인들이 아닌 친근한 친구들의 네트웍을 형성해서 함께 유쾌하고 따
뜻한 교제를 나누십시오. 이렇게 6개월만 해 보면 당신 자신도 놀랄 정도로 당신의 목회가,
스스로의 모습이 풍성하게 변해 있을 것입니다. 목회자의 감정이 풍성해야 양떼들의 필요를
늘 섬세하게 채워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영성(spirituality)을 건강하게 관리해야 하겠습니다. 16세기 청교
도 리처드 백스터 목사는 "목회자들이 먼저 예수를 잘 믿으면 교회는 건강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목사가 예수를 잘 믿는다는 것은 무엇으로 알 수 있을까요? 가장 기본적인 것들
을 얼마나 뜨겁고 진실하고 지속적으로 하고 있는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영성의 가장
기본적인 것들은 우리의 기도생활과 말씀 묵상이라고 할 수 있는데, 많은 목회자들이 이 기
본적인 것들부터 제대로 하고 있느냐고 스스로 돌아보면 부끄러운 수준에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특히, 감히 목회자에게 열심히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고 있느냐고 물어보고,
체크를 해 주는 사람이 많지 않고, 또 이런 것들은 밖으로 드러나는 것들이 아니기 때문에
조금 소홀히 해도 남들이 금방 알아채지 못하기 때문에 더 위험합니다.
그러나 성실한 기도생활과 말씀 묵상은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임하는 통로와도 같기 때문
에, 여기에 녹이 슬고 장벽이 막히면, 분명히 당신의 목회는 어디에선가부터 서서히 삐걱거
리기 시작할 것입니다. 마치 바람이 없이 가는 배를 몰면 죽도록 노를 저어도 별 전진이 없
듯이,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없는 목회는 죽는 힘을 다 기울여도 별 열매가 없을 것입니다.
21세기 우리 목회자들은 좀 덜 말하고, 더 많이 침묵하면서 기도하고 말씀 앞에 엎드려야
하겠습니다. 세상을 변화시키겠다고 목에 핏대를 세우기 전에, 자신의 영혼부터 하나님이 변
화시키도록 겸손히 낮아져야 하겠습니다. 우리 목회자들의 마음속에 그런 영적 부흥이 일어
날 때, 한국교회 곳곳에는 자연스럽게 부흥의 불길이 산불처럼 번져갈 것입니다.
20세기 최고의 복음 전도자라 불리는 빌리 그래함이 90에 가까운 나이에 이르기까지 저토록
지속적인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일년에 한 두 달은 전화도 잘 안 되는 산골에
칩거하며 휴식하고, 묵상하고, 기도하며 보내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21세기 한국교회를
이끌어 나갈 목회자들은 자기 자신을 목회하는 것이 체질화된 사람들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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