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어머니
본문/ 삼상 1:21-28
일전에 TV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듣다가 눈물을 왈칵 쏟은 일이 있습니다. 가수 나훈아가 부르는 ‘홍시’라는 노랩니다.
그 가사가 이렇습니다.
생각이 난다 홍시가 열리면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자장가 대신 젖가슴을 내주던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눈이 오면 눈 맞을 새라 비가 오면 비 젖을 새라
험한 세상 넘어질 새라 사랑땜에 울먹일 새라
그리워진다 홍시가 열리면 울 엄마가 그리워진다
생각만해도 눈물이 핑도는 울 엄마가 그리워진다
생각만해도 가슴이 찡하는 울 엄마가 그리워진다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울 엄마가 보고파 진다
우리 엄마도 홍시를 무척 좋아하셨거든요. 치아가 부실하셔서 일찍 틀니를 하셨기 때문에 딱딱한 것을 드실 수 없어서 홍시를 즐겨 드셨습니다. 올해로 엄마가 돌아가신지 벌써 36년이나 됐는데도 왜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습니다. 왜 아직도 엄마가 그립고 보고 싶은지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세상을 떠났습니다만 이청준이라는 소설가가 있습니다. 이분의 작품에는 대체로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가득 담겨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장편소설 ‘축제’는 어머니의 3일 장 이야기가 중심 배경을 이룹니다. 떠나보낼 수 없는 어머니와 마지막 이별하는 그 장면을 축제로 승화하면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절정을 이룹니다.
그런데 이 책을 광고하면서 광고 카피로 쓴 말 한 마디가 이 책의 내용을 강열하게 대변해 줍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나는 어머니라는 말만 들어도 눈물이 납니다.”
그런데 어디 이청준이라는 이 소설가뿐이겠습니까? 우리 모두 ‘어머니’ 아니 ‘엄마’라는 말만 들어도 눈물이 납니다. 어째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 그런 것 같습니다.
도대체 왜 그럴까요? 간단합니다. 어머니는 우리에게 아주 특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위해 정말 큰 사랑을 베풀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갚을 수 없는 큰 사랑을 베풀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유대 탈무드에는 이런 말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곳에 다 계실 수 없어서 어머니를 만드셨다.” 그러니까 오직 어머니만이 하나님에 버금가는 사랑을 베풀 수 있는 분이라는 말씀입니다. 어머니만이 우리에게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사랑을 쏟아주시는 분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어머니는 아주 특별합니다. 그래서 어머니라는 말만 들어도 눈물이 납니다. 나이가 들어도 어머니를 떠나보낸 지가 아득한 세월이 지나도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지울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사랑
성경에도 이런 어머니 사랑에 관한 이야기들이 나옵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이야기를 소개해 보겠습니다.
마 15:21-31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방 여인의 딸을 고쳐주시는 이야기가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멀리 이방 지역인 두로와 시돈 지방에 가셨습니다. 이 때 수로보니게 족속의 이방여인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이 여인의 딸이 귀신이 들린 것입니다. 딸을 고치려고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보았지만 고칠 수가 없었습니다. 마침 예수님께서 자기 마을에 오신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딸을 고쳐달라고 청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방여인이 유대인 남자인 예수님 앞으로 나온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벽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을 상대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무엇을 부탁하기 위해 공개적으로 이방여인이 유대인 남자 앞에 나선다는 것은 지탄 받을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수로보니게 여인은 예수님 앞으로 나왔습니다. 유대인인 예수님께서 당연히 거절하실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예수님 앞으로 나왔습니다. 동네사람들로부터 지탄을 받게 될 것을 알면서도 예수님 앞으로 나왔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사랑 때문입니다. 귀신들려 고통받는 딸을 생각하면 자기가 거절당하는 것쯤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딸이 나을 수만 있다면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는 것쯤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지금 이 여인에게 딸을 낫게만 할 수 있다면 못할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여인에게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른 때 같았으면 이런 상황을 무릎 쓰고 주님 앞으로 나온 이 여인을 갸륵하게 여기시고 따뜻하게 대해주셨을 텐데 예수님께서 이 여인을 외면하시는 것입니다.
이 여인이 무척 당황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리고 모멸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웬만하면 물러섰을 것입니다. 욕이라도 퍼붓고는 물러섰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계속 간청했습니다. 아니 더욱 더 큰 소리를 지르면서 예수님의 뒤를 따랐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었을까요? 한 마디로 사랑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더 심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정말 심한 말로 이 여인에게 핀잔을 주셨습니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이방인을 개라고 표현하신 것입니다. 너는 개와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청을 들어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말씀은 이 여인을 시험하기 위해서 하신 말씀입니다.
큰 모멸감을 느꼈을 텐데도 이 여인은 물러서지 않습니다. 이렇게 말하며 예수님께 다가갔습니다.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자기가 이방인으로 개 취급당하는 것이 어쩌면 마땅하다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당하는 모멸감은 다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방인도 유대인에게 주어진 복의 부스러기라도 받을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한 것입니다. 자기는 어떤 취급을 받아도 좋으니 제발 딸만은 고쳐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여인의 딸을 사랑하는 마음을 미쁘게 여기셨습니다. 그리고 그 간절한 믿음을 귀히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이 여인의 소원대로 딸을 고쳐주신 것입니다.
바로 이 여인의 딸에 대한 사랑이 그 딸을 고친 것입니다. 아마도 이 여인은 자신의 문제라면 이렇게까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른 문제였다면 이렇게까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딸의 문제이기에 이렇게 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위대합니다. 자식을 위해 못할 것이 없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유일하신 아들까지 내어주신 것처럼 어머니는 자식을 사랑하기에 못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개그맨 이동우씨는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점점 실명해 가고 있습니다. 한 TV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자신의 안타까운 사연을 전했습니다.
그는 처음 실명사실을 알고 가족에게도 병을 밝히지 못했답니다. 그러면서 물을 쏟거나 하는 실수를 반복했는데 그럴 때마다 어머니가 정신을 어디다 두고 사느냐며 화를 냈다는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자기에게 화를 내는 엄마에게 자기도 모르게 화를 내며 이 사실을 말하고 말았답니다. '나 사실은 시력을 잃어가고 있거든? 나 눈 먼대 엄마. 이까짓 거 갖고 화내지 마’
그 말을 듣고는 어머니께서 오열하시면서 쓰러지셨답니다. 그리고 억지로 정신을 차리고는 온 몸을 떨면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더랍니다. ‘아무 걱정하지마. 내 눈 빼줄게. 엄마 다 살았잖니’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이 엄마의 사랑입니다. 우리가 이런 엄마의 사랑을 먹고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러니 어찌 그 사랑을 잊을 수 있겠습니다. 그 사랑 기억하며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어머니의 기도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의 어머니들은 자식들을 위해 남다른 특별한 일을 해 오셨습니다. 바로 기도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 말씀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어머니들이 자식을 위해 어떻게 기도해 왔는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한나가 아들 사무엘을 위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 드린 이야기입니다.
우선 한나는 아들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셔서 한나에게 아들을 주셨습니다. 한나가 그 이름을 사무엘이라고 지었습니다. 그 이름의 뜻은 ‘여호와께 구하여 얻었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무엘은 한나의 기도로 얻은 아들이라는 말입니다.
어디 한나 뿐이겠습니까? 오늘도 많은 그리스도인의 어머니들이 자녀를 위해 기도합니다. 그리고 그 기도의 응답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자녀를 얻습니다. 그러니까 오늘도 이 땅에는 많은 ‘사무엘’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도 이 땅에는 어머니의 기도로 태어난 사람들 오늘의 사무엘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저들에게는 어머니 기도가 정말 특별합니다. 그 기도를 잊을 수 없습니다. 그 기도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음으로 한나는 사무엘을 하나님께 바치고 기도했습니다. 2:1을 보면 “한나가 기도하여 이르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본문을 보면 한나는 하나님께 기도했고 그 기도의 응답으로 사무엘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한나는 기도하면서 마음에 서원을 했습니다. 아들을 주시면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말입니다. 이제 한나는 서원을 갚기 위해 사무엘이 젖을 뗄 떼까지 품에서 잘 양육했습니다. 그리고 젖을 떼자 아이를 데리고 성소로 가서 제사장 엘리에게 아이를 맡겼습니다. 그리고 기도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한나는 하나님과의 약속대로 사무엘을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그리고 사무엘을 위해 계속 기도했습니다. 사무엘이 훌륭한 하나님의 종이 되도록 기도했습니다. 사무엘은 그 어머니의 기도 덕에 잘 자랐고,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신앙생활하며 살아가는 것은 다 어머니 기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복을 누리며 사는 것은 다 어머니 기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옛날 서대문 영천시장은 콩나물 장수가 많기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그 중에 한 사람이 새벽마다 콩나물 통을 머리에 이고 시장에 나가는 길에 교회에 들러 새벽기도를 드렸습니다.
이 아주머니의 인생목표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면서 자식들을 믿음으로 성장시켜 하나님의 일꾼으로 길러내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그 어머니가 드린 새벽기도는 아들을 훌륭한 사업가로 키워냈습니다.
아들은 훗날 큰 제약회사의 사장이 되었습니다. 아들은 그의 어머니가 매일 새벽에 교회에 나가 열심히 기도하던 일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문에 지금의 자기와 회사가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늘 감사의 생활을 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의 새벽기도와 교회 종소리가 연상되도록 자신의 제약회사 심벌마크를 종으로 정했습니다. 그 회사는 빠르게 급성장하여 이름만 대도 누구나 다 알만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굴지의 큰 회사가 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의 종근당제약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어머니 기도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어머니 기도를 기억하며 그 기도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어머니 기도가 내 삶 속에서 응답되도록 살아야 합니다.
어머니에 대한 감사
우리가 어머니의 사랑으로 이 땅에 태어났고 이렇게 사람 구실하며 살고 있습니다. 특히 어머니의 기도로 예수 믿고 또 복을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 사랑, 그 기도를 잊지 말고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우선 그 사랑을 구체적으로 표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요19:26-27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시기 직전입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며 견디기 힘든 고통의 순간 맞고 계신 그 순간입니다. 눈앞에 어머니 마리아가 보입니다. 아들로서 어머니께 미안한 마음이 드셨습니다. 과부로 살아가는 어머니를 장남인 당신이 보살펴드려야 하는데 어머니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야 하는 마음이 너무 힘이 드셨습니다. 그래서 죄송한 마음에 어머니를 불러보셨습니다.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그리고 곁에 서있던 제자 요한에게 당신 대신 어머니를 부탁했습니다. “보라 네 어머니라” 요한아 내 대신 내 어머니를 네 어머니처럼 잘 모셔다오 라고 부탁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처럼 해야 합니다. 마지막까지 낳아주시고 길러주시고 사랑으로 기도해 주신 어머니의 그 사랑에 보답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최선을 다해서 어머니를 보살펴 드려야 합니다.
조선 중기의 문인 박인로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의 시 중에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반중 조홍감이 고와도 보이나니 유자 아니라도 품음직도 하다마는 품어가 반길 이 없으니 이를 서러워하노라’ 소반에 담긴 잘 익은 홍시를 보니 들고 달려가 부모님에게 드리고 싶지만 반겨 맞아주실 부모님이 이미 세상에 안 계시니 그것이 서럽다는 안타까운 내용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머님이 살아계실 때 잘 보살펴드려야 합니다. 어머님이 우리 곁을 떠나실 날이 언제 올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 때 후회해야 소용없습니다.
다음으로 어머니의 자랑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시 127:3을 보면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모님의 상이요 자랑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참된 효도는 우리가 훌륭한 사람이 되어 부모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랑스런 믿음의 사람이 되어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머님이 이미 돌아가신 사람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하늘에서 우리를 보시며 기뻐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때문에 하나님께 상을 받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이 어머니가 위암 판정을 받고 난 뒤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제목이 ‘어머니 아! 어머니’입니다.
나에게 티끌하나 주지 않은 걸인들이 손을 내밀면 불쌍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나에게 전부를 주신 당신을 보면서 불쌍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
나한테 인사치레 밥 한 번 사준 선배들과 친구들이 고마웠습니다. 답례하고 싶어 불러냅니다. 그러나 날 위해 밥을 하고 기다리는 당신이 감사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는 드라마 속의 가정사에 그들을 대신해 진짜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나 일상에 지치고 힘든 당신을 위해 눈물을 흘려본 적은 없습니다. 골방에 누워 아픈 당신 걱정은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친구와 애인에게는 사소한 잘못 하나에도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러나 당신에게 한 잘못은 셀 수 없이 많아도 용서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이제야 조금 알게 돼서 죄송합니다. 아직도 전부 알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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